매우 중요한 동영상을 제작된 지 무려 4년이 지난 후에 보게 되어 송구합니다. 책보다 님 댓글에서 보니 네이버 웹툰작가님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이런 중차대한 어젠다는 대중성이 강한 영화 제작을 통해서 대국민여론의 공론화를 이루어서 결국은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혁신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박수님님과 책보다님이 나서주신다면 저도 열심히 돕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황남대총 고분군 중 가장 크며 6만점 가까운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돌무지덧널무덤꼴로 남녀 어울무덤이다. 금관을 쓴 여왕의 무덤임에도, 신라 최초 여왕 선덕여왕보다 훨씬 이전인 500년 전후에 조성되었다. 신라가 양자강에 있을 적, 즉 경주가 신라의 영역이 아닐 때의 무덤!
거기에 합당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태후입니다 법흥왕의 딸이며 입종 갈문왕의 아내 입종갈문왕이 먼저 사망하였기에 사망당시 신분이 갈문왕이었기에 금동관을 착용했으나 지소태후는 아들 진흥왕으로 인해 태후에 오르고 막강한 세력으로 사망시 금관을 쓸수있는 지위에있었으며 그로인해 남자의 무덤이 먼저생기고 여자의 무덤이 더크게 조성되었으며 남자의 무덤에만 순장자가 있다는것도 설명됩니다 순장의 금지는 아들 진흥왕때니 일찍 사망한 아버지 무덤은 순장했으나 후일 합장한 지소태후에 무덤은 더 화려하나 순장자가 없는 이유지요 금관은 꼭 남자만 그리고 왕만 사용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설명이 가능하리라 보입니다.
@@gulchakgi 그렇네요 그러나 선대 지증왕이 금지하였다 해도 당시 신라는 왕권이 약하였으므로 우리에 생각과달리 엄격하계 지켜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왕명이라하나 이를 지킬 군사력이 호족들에비해 약하였으니까요 그렇기에 일찍사망한 아버지는 순장자가 있으나 어머니는 태후라 할지라도 진흥왕 입장에선 지증왕이 정한 국법에따라 묘역을 크게 확장하였으나 순장을 할순 없었던것이 아닐까요! 어찌되었든 유물의 연대나 무덤의 형태로 보와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보단 윗대 인물은 분명하며 진흥왕대신 수련첨정을 하던 지소태우일 가능성이 님의 이론보단 가망성이 더 많아보이네요
왕권이 약했기 때문에 순장금지를 따르지 않았다라는 주장은 제 생각으로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왕조차도 순장을 행하지 않는데 그런 순장을 한다라는것은 왕 이상의 권력자여야하고 , 하는 즉시 왕에게 " 내가 너를 능가한다 " 라는 도전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의미까지 되어버립니다. 그런 순장을 행한 사람이 금동관에 , 은제무구들만이 무덤속에서 나왔다 ? 이해할수가 없군요. 순장은 생명을 아우르는것입니다. 신 , 귀신에게 살아있는 생명을 재물로 받치듯이 순장의 의미는 아주 큰 의미입니다. 저로서는 그 주장이 앞뒤가 달라 모순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정리하자면 순장을 행함으로써 왕에 대한 능멸을 표했으면서도 , 복식이나 장신구는 금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서 예를 행했으므로 앞뒤가 맞지않기에 동의할수가 없다.
@@bnf7255 진흥왕의 아버지는 일직 사망합니다 아무리 그직위가 높아다 신분에 대한 구분이 엄격했던 신라에서 순금관은 대표만 사용했을 것이고 금동관이 구리에 금을썩은것이 아니라 구리관에 금을 입흰 것이기에 외견으론 구별할수 없었을 것이나 진흥왕을 섭정했던 지소태후라면 금으로만 관을 만들어 권위를 높이고자 했을 것입니다. 진흥왕은 선골 즉 부모 모두가 김씨 왕위 계승권을 가진자 먼저 사망한 아버지가 왕은 아니었기에 금동관에 작은무덤애 순장을 이후 지소태후가 사망하자 화례한 순금관에 더큰 무덤을 증축했고 선대왕의 율법으로 순장을 하지 안았다.. 이상은가오???
매우 날카로운 분석입니다. 기존 역사학계에 밥 빌어먹는 사람들이 부들부들 할 영상입니다. 밑에 댓글을 보니 논리고 생각이고 뭐고 없는 사람들 참... 뭐 할말이 없네요. 그리고 금관의 화려함으로 보면 속국의 지위는 아닌 듯 합니다. 본국에서 사신이 온다 해도 감췄다가 가면 쓰고 하는 식은 아니니까요. 전에 제가 금관총 주인이 마한왕이라고 주장했었는데, 이 또한 연대 측정을 하면 이 또한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기록에 남지 않은 거대한 무덤이 경주에 집중되어 있다는 건 분명 주변국에 많은 영향을 주는 국가였을 것 같습니다.
호우총은 축조연대가 6세기초라는것이 학계의 공통된견해입니다. 6세기초는 삼국사기를 봤을때,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력밑에 있던 시기로 볼수 없음에도, 당시 축조된 호우총에선 광개토태왕이 새겨진 호우가 출토됐죠. 이것 역시 호우총의 주인이 신라가 아님을 보여주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영상도 엄청나군요 .. 정말 좋습니다. 근데 왕이 아닌 자의 무덤의 크기가 더 컸을수도 있다라고도 반박할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의 다이묘의 무덤크기가 왕의 무덤보다 더 컸던것을 예로말이죠. 하지만 이 황남대총의 경우 , 경주에 위치해 있고 경주는 신라의 수도고 수도는 왕이 다스리는곳이라 힘이 실리지 않는군요. 왕을 짓누를수있는 권력을 가졌었던 권력가들도 겉 양식은 왕을 존중해주는 자세를 취했던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따라서 지방세력이 아닌 경주에서 그러한일이 일어났을거라고는 생각되지않네요. 재밌는 영상입니다. 다음영상은 언제죠 ?? 이거 어떻게기다립니까.. 매일 sumin park 검색해서 영상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ㅜㅜ 그리고 궁금한점이 이렇게 많은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려면 먼저 알고있어야하는데 어떻게 이러한것들을 알고계신지 정말궁금합니다.
제가 올리는 영상의 내용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얻을수 있는자료들입니다. 저는 단지 박창범교수의 일식기록에서 대륙삼국의 가능성을 보았고, 기존에 우리가 배워왔던 한반도 내 삼국의 유적들을 비판적인 입장에서 검토하다보니 몇가지 모순점들을 발견하게된것입니다. 님께서도 얼마든지 찾으신다면 찾아내실수 있을겁니다.
백제의 경우 지방 토호세력이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쓰고 은제장식을 가지고 있죠. 물론 왕가 인척이겠지만 . 신라에서 왕도 아니면 금관을 쓸 사람들은 백제 왕인척 뿐이죠. 왕은 김씨들이고 친인척은 백제 귀족.. 왕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나 대륙 . 그당시 유럽왕가들 처럼 지금보다 이동이자유롭고 세계적인 시대라.
역사는 여러 가설을 입증하는 길고 긴 숙제죠.. 금동관이 묻힌 남분은 북분보다 30년전에 묻혔습니다. 남편이 죽은후의 시기가 금동관에서 금관으로 바뀌는 시기였을수 있다는걸 추정할수 있죠. 물론 선덕여왕보다 앞선 시대에 살았던 왕비의 것으로 추정해볼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신라시대것이 아니라는 가설은 글쎄요…
신라는우리가 생각하는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구성된 형태가 아니라 연방제적 형태를 지닌 국가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했던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경상도에 존재하는 세력만이 신라가 아니라 양자강 일부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 + 왜의 일부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 등등의 연합집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서구 역사로 보면이전시기이기는 페네키아 세력은 바다를 따라 이곳저곳에 도시와 그 주변부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페네키아를 일컬을 때 그들이 세운 세력중 일부인 카르타고만을 페네키아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신성로마제국안에는 수많은 제후국들이 존재하는데, 크기와 영향력에 따라 지방 대빵들을 부르는 명칭이 다 다릅니다. 왕, 대공, 공작, 후작 등등입니다. 경상도 지방의 신라 대빵을 부르는 명칭은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 마립간 -> 왕으로 변경하는데, 신라라는 국가안에서 경상도 지방의 대빵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고 보아도 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일은 신라 내 다른 이사금(또는 거서간 차차웅들)들이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어느지역에 있었는지 알아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김부식은 여러 이유로 경상도 이외의 신라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을 수 있겠지만, 여러 단서들은 남겨놓았습니다. 그 단서들을 모아서 하나의 퍼즐로 만들어가시는 수민님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수민박님!!!!!!! 조문국요~~~ 화랑세기에 조문국 얘기가 나온대여. 그리고 조문국은 일본섬으로 건너가 왜가 되었다는~~ 오늘 기묘한밤 이라고 유튜브 채널에 나온 내용이 이 내용과 연결되는 듯 해여~!!! 한번 시간 나신다면 조문국 조사해 주세여!!!! 잘 지내고 계시죠?? 벌써 가을 시작입니다~
매우 흥미롭게 영상들을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진실에 매우 근접하는 설명이라고 보는데요. 삼국사는 대륙에서 벌어진 일이고 한반도에 신라가 들어오기 이전의 역사흔적이라고 봅니다. 그저 어리석은 인간들이 지가 믿고있는 역사랑 틀리다고 욕하고 조롱하는데 그런거에 흔들리지말고 연구 계속 해주시기 바랍니다. 약간 황당하지만 '여인왕국' 이라는 책에 보면 그 당시 경상도 지역에 여인왕국이 있었다고 나오는데 그냥 참고삼아서 한 번 찾아보시면 도움될 것 같습니다. 박수민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기존 역사계의 설명이 틀렸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무덤의 주인이 지소태후라는 글에 대해 답변을 달고자 합니다. 를 보면 지소부인이 574년 불국사를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어, 지소부인은 적어도 574년까지는 생존해있었던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 무덤의 연대는 우선 유물의 편년을 근거로 할때 그 상한선은 6세기 초반입니다. 따라서 574년 이후에 사망했을 지소부인이 이 무덤의 주인일확률은 거의 없고, 영상에서 언급했던 질량분석법에 의거한다해도, 남분의 연대 상한선(520년)에서 부인이 50년을 더 살았다는 다소 무리한 가정에 의해 끌어올린 연대가 570년이므로 , 이역시 574년 이후 사망했을 지소부인의 무덤이 될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이럴수도 있어요. 두 분의 아들이 왕이 된 경우. 아버지가 죽을 때에는 일개 왕족의 신분이었다든지(신라 귀족 체계는 잘 모름), 그 이후에 왕이 되고 어머니가 죽었다면 합장 시키면서 아버지 때보다 더 높은 예우로서 무덤을 조성했을 수도 있죠. 이런 역사가 있는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황남대총에서 나온 왕의관이 은관, 왕비의 관이 금관인 이유는 아래 영상을보면 2/3지점쯤 그 이유가 나옵니다 옛날 우리 선조였던 북방 유목민 문화에서는 여자가 금, 남자가 은을 상징했다는 것입니다. 여왕은 아니라는 것이죠 ruclips.net/video/Q1xW5hEO1mM/видео.htmlsi=sfHoyQs7Ai97PCuK
저도 수민박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여왕이라는 논리 말이죠 글고 삼엽 또는 삼환 환두대도가 나오는 거면 신라왕조가 한반도로 오기 이전의 한반도지역 통일 국가 세력으로 봐야 한다는겁니다. 환두대도의 삼엽문양과 남분 부인대 라는글이 나온 쪽은 금관은 경주지역에서만 보이는데... 과학과 기록을 따라야죠
일리있는 말씀만 하시네요 맞습니다 신라 화랑도 얼마나 그당시 흰색피부에 그리움이 있었으면 혼열이 많아도 하얗분칠을 하고 나갔을까요 역사는 어느 일이 없으면 안하죠 그 샤머니즘도 하늘에 제사도 모든것이 뭐에 관련된거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죠 그 말많은 성경도 어느정도 고친것도 있지마 그 뿌리는 역사를 아는 사람은 다들 아시죠... 일단 우리나라 역사의식이 한반도부터가 잘못된것도 많구요...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구독자는 많지가 않은게 아쉽습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편하게 쉽게 살려하면서 자기들을 만든 조상에 대한건 관심이 없으니...그러면 딱 남미 아프리카처럼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중국공산당처럼 가짜역사 조작역사로 간다면요...
@@이순신장군-n6v 흰 피부에 그리움? 아마 전통일겁니다... 한 예로 칸이 정복할때도 전체 나라가 아니였으면 나중에는 무슨칸으로 다 각나라로 변했죠... 즉 흰 피부에 그리움이 아니라 그지역에 오래 있으니 토착세력과에 혼인은 빈번했을겁니다 그럼 사람도 변화죠...그래서 한 예로 세계어디에도 있는 근친이 많았습니다 아시죠... 뭐를하면 자꾸 비아냥 거리지 마시고 의구심을 한번 가져보세요... 대구 애들 그러는거보면 전라도 경상도 일본을 따로 놓고 구분지을려고 하는거 같은데... 참 님이 슬라브 뭐 이렇게 구분지었죠... 그럼 몽골제국이 유럽 정복하면 다 몽골인같이 유럽인들이 생겨야하나요... 몽골군이 와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도망갔을때 그럼 그외 지역은 다 시간이 지나면 다 몽골반점 있는 동양인이 되어야 하나요... 그거아시죠 아프리카에서 원시인류가 생겼다 하지만 아시아에 새로운 종족이 있으면 순다랜드 동남아에도 서양과 다른 원시인류가 있다는거... 황당하다 하지말고 자신에 지식에 폭을 넓혀보세요... 저도 아메리카는 조선이다는 말도 안되는것과 무슨 판게아가 하루아침에 된다는식에 선동질은 싫어하지만... 어차피 헌응 치우등등 다 가족단위 싸움아닙니까...무슨 중공에 시조가 환응이고 합니까... 과학기술은 거짓말 안하는거 아시죠 이미 천체도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삼국이 있다고 나오는데...우린 왜 한반도로 왔냐를 따져야지 그게 왜 거짓이냐 이렇게 나오면 내분밖에 안되는겁니다... 제국주의때 식민지화 하면 다 세계가 유럽사람 됩니까... 님 백인에 백이 서양에 백인인과 다른거 아시죠...이런 기본도 안되면서 역겹다 표현을 왜 하시는건가요 한국어 수준을 따져봐야 할거 같네요... 그냥 세뇌교육으로 오토바이 기스 간지 가오 발음하면서 일본 싫어하면서 역겹다 하면 그게 모순압니까... 그냥 본인 비위에 싫으니 역겹다 하시는거 같은데...세상을 크게보세요 동네만 돌아다니지 마시구요... 쓸데없이 까스 발음하면 일본인 발음 지적하고... 일본어도 못하면서 한국인이 돈까스 그러면서 한국어도 못하고... 와사비 그러면서 그게 무슨식물인지도 모르면서 고추냉이 하는거 아니죠? 미나리냉이를... 지적은 이렇게 하는겁니다... 모르니 알려고 해야지 그게 아니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같이 나아가야지 그럼 왜 다 그렇게 안되었냐 하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역사를 다 모르니 이런 주장도 하고 논문도 나오고하는거 아닙니까... 일본땅에 한국인들이 점령하면 다 큰키가 되고 그럽니까... 북방민족 유전자가 더 많으니 한국에서는 조금 더 키가 큰거지 일본보다 뭐가 한국이 키가 크니 일본보다 우월하다 이렇게 나오면 내분밖에 안된다는겁니다... 일본도 남 북에 기온차이가 엄청난데 왜 집이 저럴까요... 그런 전통이 있기에 하는겁니다... 사막도 밤에는 겨울처럼 추워요... 사막이라고 밤되어도 더운게 아니라... 그럼 사막인들이 다 모피입고 다닙니까 밤에... 그리고 흰 피부에 그리움? 으로 지적하셨는데 제가 생각하는 지식수준으로는 전통이나 권력에 한 가지라 봅니다... 아직도 인간이 그렇잖아요 남들과 다르면 우월하다는 논리... 그런 시대에 삶에서 그 시대상에 남들과 다른 권력자에 흰부는 아마 권력을 상징하지 않았을까 봅니다... 지금에 종교쓰레기들도 아직 그 미련을 못 버려서 그러지 않습니까... 아직 서양 중심적 사고방식이 있어서 짱개도 없어지지 않는데 그정도 시기에 살고있는겁니다... 물론 환국시대등 보고 온 지구가 조선이다는 논리를 가지는 분도 계시지만...뭐 어때요 그래서 차근이 나아가면 되는거죠 그게 맞다가 아니라... 아니 동네 종교쓰레기 건물도 저렇게 많은데 믿고 주말 휴일마다 가서 헌금 십일조 하면서 다단계 하지않습니까 합법같은 불법으로...그런데 거기에서 누가 불법건축물이다 종교쓰레기다 해요... 앞에 횡단보도 나주고 하니 불법주차해서 예배중 번호판에 붙여서 견인도 안하는 나라에서... 이런걸 보라는겁니다... 남과 의견이 다르면 속에 비위가 상해서 역겹다 하지마시구요... 그렇게 역겨우면서 아니 한국인이면 한국인척 하는 짱개모터바이크 99.8프로 교통질서와 불법무단주차 보고는 얼마나 역겨워서 살아가셨나요... 아니 혹시 대소변 보고도 손 안씻는 부류 아닌가요? 이런 의구심을 해보라는 겁니다... 손도 안씻으니 그런 부류도 봐도 그게 맞는건줄 아는...자신에 비위만 상하면 역겹다 하지 말구요... 그래서 세상 살아가십니까... 보는것마다 역겨워서... 대소변 보고도 손을 안 씻으면서 겉모습만 반듯하면 뭐해요 위생은 아닌데... 그런건 역겹지 않나봐요... 자신에 비위에 안상하니...
황남대총 뿐만 아니라 지금의 한반도 경주라는 곳에서 출토 되는 것은 모두 신라의 것이 아니랍니다ㅡ왜냐하면 신라가 한반도에 없었기 때문이래유ㅡ경주라는 이름도 이성계 장군이 한반도로 오고 나서 붙인 이름이래유ㅡ고려때 경주는 동경이었습니다.동경은 수도의 동쪽에 있어야 돼유ㅡ그럼 고려의 수도가 한반도 개성이면 원산이나 주문진 쪽이 동경이어야 되고유ㅡ그래서 고려도 한반도에 없었고유ㅡ왜냐하면 고려 왕릉이 한반도에 1기도 없어유ㅡ 있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유ㅡ 신라는 지금의 랴오닝성 북쪽에서 출발했대유ㅡ진저우锦州 가보면 토함산부터 경주 남산(금오산)까지 차례 대로 있시유ㅡ한반도 금오산은 구미 왜관 쪽에 있어서 사서历史书와 전혀 다른 위치에 있시유ㅡ(남산의 별칭이 금오산) 한 번이라도 가보세유ㅡ 그리구 묘지군락에 별을 보는 장소를 만들었다는 나라는 세계사에 하나도 없대유ㅡ가짜 첨성대(천문대)ㅡ어떤 미친놈이 꾸역꾸역 우겨서 첨성대가 됨 ㅡ
가야의 영역이 지금의 경상도 지역이었고 법흥왕이 532년 점령했던 금관가야가 금관들이 유일하게 나오는 경주지역이 아닐지요? 한자는 다르지만 이름이 묘하게 겹치죠? 김해김씨가 현재도 많다는 것은 가야의 후손들이 한반도 남부에 많이 있다는 말이지요. 경주를 시작으로 신라가 한반도 가야영역을 다 흡수하고 나중에 7세기 이후 대륙에서 밀려나 한반도로 천도한다는 것이 어떨지. 그많은 신라 김씨왕들이 있었음에도 한반도에는 신라마지막 경순왕의 후손들만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역사의 미스테리가 너무많아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는 국사연구가 정말로 진지하게 국가차원에서 활성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은 뭐하나 몰라. 인문학 관련 일자리도 늘어나서 경기활성화에도 도움되고 기존 한반도중심 소중화주의 식민사학을 극복하도록 민족역사도 미래를 위해 재정립하고. 우리나라가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극복하고 더 발전하려면 진실된 역사를 바탕으로 국사를 재정립해야함. 일본식민지에서 쓸법한 오류로 가득한 현재의 국사교과서는 가치창출을 제대로 못하는 폐기대상임.
신라고분 전부 가짜라는 설도 있음~ 고고학자들도 사실 경주고분이 신라것인지 확신 못함~!!! 옛날엔 역사학자,고고학자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이제 인터넷,특히 유튜브영상이 일반화 되어 다양한 견해,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됐음 신라가 아니라고 전제한다면~ 경주를 중심으로 한 세력가일 수 도^^
오래전 어디선가 보았던 여인왕국이란 책이 생각나네요. 자동서기(채널링)로 쓴 책인데..진짜로 과거로 넘어가 경상도(안동?)에 존재했다는 수수께끼의 여인왕국을 경험하고 쓴 것인지 증명할 수 없지만요.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중국소수민족 중 자바족이 주혼제도를 통해 모계사회를 형성하고 있고, 부족장이 여왕 노릇을 하는 걸 본 기억이 납니다. 험난한 오지에 살고 있으니 그나마 여인국이 유지되는 듯..하긴 그리스 신화에도 전설의 여인부족 아마조네스(아마존)가 나오는 걸 봐도 세계 곳곳에 여인국이 고대부터 존재했던 모양..여인의 출산을 고대인들이 신과 맞먹는 창조능력으로 귀하게 여겼다는 설이 있지만..암튼 여인왕국이란 책은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다는데...레즈비언의 적나라한 장면이 묘사된 탓에 음란도서로 분류되어 출판금지되거나 강제수거해 폐기처분되었을 것라고 합니다.
@@michaeljung4398 연대로 보나 위치로 보나 6가야 중 한곳이 신라에 합병되기 전의 가야국으로 보입니다. 여왕일수도 있고 왕비일수도 있지만 현재의 역사서는 그 기록이 너무 적어서 기록되지 않은게 수천 수만배이상 더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책에 없는 내용으로서 상세히 분석해보면 그 내용을 알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여자 관속에서 금관이 나오고 남자는 금동관이라 여자가 여왕이라고요? 그런데 여자 관에서는 물레와 실패 등이나왔다고요? 여왕이 통치를 실 자으면서 합니까? 금관이 사라진 이유는 신정일치의 붕괴라고 하던데. 혹시 여자의 경우 미리 수의 지어놓듯 미리 금관을 마련해놓은 것은 아닐까요? 좀 더 광범위한 증거와 논리적 추론이 아쉽습니다
오직 금관 때문만이 아니라 황남대총의 규모와 여기서 출토된 부장품의 규모로부터 여왕으로 추정한것입니다. 또한 부장품의 성격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생전에 사용하던것, 그리고 사후의 삶에 있어 필요될 물품이 될수있습니다. 물론, 여왕이 실 뽑는행위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경험도 없을수 있지만, 사실 고대에 그 여왕이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운것입니다. 또한 님의 의견대로 여왕의 삶과 실은 전혀 관련지을수 없다해도, 사후의 삶을 위해 넣어주었을수 있으며, 혹은 고대인의 입장에서 가락바퀴가 어떤 풍요를 나타내는 상징품일수도 있습니다.
@@gulchakgi 여왕이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모르신대면서요? 그러면서 부장품으로는 취미용 물레를 넣는다고 맘대로 추정해요? 왕의 부장품이 상징하는 게 뭔지 믈라요? 사가의 부인이면 몰라도. 그러면서 지금 저보고 통치도구 말해보라고요? 그럼 님이 북능에서 어느게 여왕이라고 단정지을수 있는 통치도구인지 말해보세요 금관빼고. 이건 뭐 세월호 잠수함 인신공양설만큼 억지스럽네요. 끝 말할 가치 없음
대륙설에 의하면, 원래 신라 수도 경주는 중국 안후이성에 있었는데 후대에 현재 경상도 경주지역에 영토를 확장하여 동경(말그대로 동쪽 수도)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만든거죠 그래서 실제 신라 왕족들의 무덤은 현재 중국에 있다는 겁니다. 대신 경상도 경주에는 역사서에 기록이 안되어있는 이름도 모르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sumin park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대륙설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일제가 식민시관을 위해 삼국을 한반도에 어거지로 끼워맞춰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예상하는 두가지 예측. 1. 저 무덤이 굳이 여왕의 무덤이 아니라 왕의 부모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효심이 지극한 왕이 특별히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또는 나라자체의 운명을 바꿨을 결정이나 조언에 따라 큰 공을 세워 그 덕을 기렸음에 저렇게 큰 무덤을 세웠고 후대에도 그 이유가 타당하여 저 무덤보다 크게 짓지 못했을것이다. 라는게 1차 이유. 혹은 굳이 저 큰 무덤보다 크게 지어야 할 이유가 없었음에 경제적 이유를 들어 그럴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음. 2. 금관 자체의 탄소연대측정으로 인한 결론은 옳지 못하다. 금관은 말 그대로 귀한것인데 일정시기에 제작 후 물려줬을 판단도 배제 할 수 없다. 저정도 크기가 되는 무덤이었기에 물려받은 금관이 딸려 묻힐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탄소연대측정 또한 완벽한것이 아니고 오차범위도 크기때문에 확실한 결론을 낼 수 없다.
@@대광성 신라의 유적이 한반도의 남부에서만 발견이 됩니다. 일식 기록만으로 신라가 중국 양자강 유역에 있었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 유적들이 신라의 유적이 아니면 황남 대총의 주인공은 왜국의 신공황후 정도가 되겠지요. 역사 기록에 당시의 정치 세력은 왜가 있으니, 일본의 주장대로 한반도 남부는 왜국, 일본의 고토입니다.
일식기록을 확인하기엔 신라초 일식이 확인된 상황은분명하나 삼국사기에서 신라 건국 연도와 실질적신라 건국연도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식기록만 가지고 정확히 어디다 라고 비정하기엔 아직은무리가 있습니다.우습게 들리시겠지만 본인은 아달라이사금 58세손 입니다.누구보다 신라의 나라에 애착과 관심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없지요 따라서 처음엔 인물을 분석하다 점차 신라에서산출되는 공통적 산출품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바로 양잠의 역사 입니다. 만일 한반도에서 발원하여 시작된신라가 그 오랜 양잠의 문명의 주역을 이끌던 우리 민족이 나라가 무너지고 양잠의 역사가 무너졌다? 상상이 가시나요?한반도에 건너온 직후 비단을 산출할 기술이 없었던 것 이 아닌그 기반이 만들어질 상황이 못 되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비단을 산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려를 거쳐 조선때엔 완전히비단이 중국에서 넘어오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이지요지금도 그러하거니와 과거는 더 심각했을 농토 부족현상이확연히 보이는 나라에서 뽕나무를 재배하여 누애를 친다?허황된 생각이지요 그렇다고 물량을 맞출 수 도 없었을테니스스로들도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신라와 오나라의 관계를 아신다면 오늘날 한반도 남쪽이라고생각할 수 있을까요?
매우 중요한 동영상을 제작된 지 무려 4년이 지난 후에 보게 되어 송구합니다. 책보다 님 댓글에서 보니 네이버 웹툰작가님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이런 중차대한 어젠다는 대중성이 강한 영화 제작을 통해서 대국민여론의 공론화를 이루어서 결국은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혁신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박수님님과 책보다님이 나서주신다면 저도 열심히 돕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황남대총이 신라의 것이 아니라는게 충격적이지만, 수민님의 논리가 굉장히 설득력이 있네요.👏👏👏👍👍👍🤩🤩🤩
정확한 말씀이라고 생각 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경주를 중심으로 '매금'이라는 정체불명의 왕국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네요.
유목문화의 전통에,
달을 상징하는 남자는 은장식,
태양을 상징하는 여자는 금장식,
사후에도 부장품을 구분해서 한다는 내용을 어떤책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측면에서 이해한다면
금 과 은이
꼭 지위의 높고 낮음을 결정하는건 아닐수도 있을거같네요
황남대총
고분군 중 가장 크며 6만점 가까운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돌무지덧널무덤꼴로 남녀 어울무덤이다. 금관을 쓴 여왕의 무덤임에도, 신라 최초 여왕 선덕여왕보다 훨씬 이전인 500년 전후에 조성되었다.
신라가 양자강에 있을 적, 즉 경주가 신라의 영역이 아닐 때의 무덤!
황남대총은 어릴 때, 개구장이 우리들 끼리 봉황대라 불렀으며, 올라가서 연을 날리거나, 전쟁놀이를 많이 했지요. 그 밑에 금관이 있을 줄이야! 어느 책을 읽어보니, 금관이 데드 마스크(dead mask)라는 설도 있더군요. 아뭏튼 흥미진진합니다.
저의 본가가 경주시 로서리(현, 로서동)인데 어릴때 놀러가 능 위에서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줫까고있네ㅋㄱㅋㅋㄱㄱㅋㄱㄱ
봉황대는 노서동에 있는게 봉황대죠 황남대총은 아닙니다
봉황대는 시내 중심가서 아래시장 가는 데 있었자나요. 황남대총은 거기아니여요. 저두 경주출신
금관제작 기술에 비해 새겨진 글이 너무 조악한 것 아닌지요
유물속 시대별 글자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듯 합니다
신라는 5-6c 대륙에 있었던듯 합니다
거기에 합당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태후입니다 법흥왕의 딸이며 입종 갈문왕의 아내
입종갈문왕이 먼저 사망하였기에 사망당시 신분이 갈문왕이었기에 금동관을 착용했으나 지소태후는 아들 진흥왕으로 인해 태후에 오르고 막강한 세력으로 사망시 금관을 쓸수있는 지위에있었으며 그로인해 남자의 무덤이 먼저생기고 여자의 무덤이 더크게 조성되었으며 남자의 무덤에만 순장자가 있다는것도 설명됩니다 순장의 금지는 아들 진흥왕때니 일찍 사망한 아버지 무덤은 순장했으나 후일 합장한 지소태후에 무덤은 더 화려하나 순장자가 없는 이유지요 금관은 꼭 남자만 그리고 왕만 사용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설명이 가능하리라 보입니다.
순장의 금지는 지증왕입니다.
@@gulchakgi 그렇네요 그러나 선대 지증왕이 금지하였다 해도 당시 신라는 왕권이 약하였으므로 우리에 생각과달리 엄격하계 지켜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왕명이라하나 이를 지킬 군사력이 호족들에비해 약하였으니까요 그렇기에 일찍사망한 아버지는 순장자가 있으나 어머니는 태후라 할지라도 진흥왕 입장에선 지증왕이 정한 국법에따라 묘역을 크게 확장하였으나 순장을 할순 없었던것이 아닐까요!
어찌되었든 유물의 연대나 무덤의 형태로 보와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보단 윗대 인물은 분명하며 진흥왕대신 수련첨정을 하던 지소태우일 가능성이 님의 이론보단 가망성이 더 많아보이네요
왕권이 약했기 때문에 순장금지를 따르지 않았다라는 주장은 제 생각으로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왕조차도 순장을 행하지 않는데 그런 순장을 한다라는것은 왕 이상의 권력자여야하고 , 하는 즉시 왕에게 " 내가 너를 능가한다 " 라는 도전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의미까지 되어버립니다.
그런 순장을 행한 사람이 금동관에 , 은제무구들만이 무덤속에서 나왔다 ? 이해할수가 없군요.
순장은 생명을 아우르는것입니다. 신 , 귀신에게 살아있는 생명을 재물로 받치듯이 순장의 의미는 아주 큰 의미입니다.
저로서는 그 주장이 앞뒤가 달라 모순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정리하자면
순장을 행함으로써 왕에 대한 능멸을 표했으면서도 , 복식이나 장신구는 금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서 예를 행했으므로 앞뒤가 맞지않기에 동의할수가 없다.
@@bnf7255 그냥 귀족이 아니라 왕의 선발권을 가진 귀족입니다 그러기에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태후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고대국가의 왕권을 다진 왕이 바로 진흥왕이기 때문이조 그전에는 왕의 존재는 그저 여러귀족중에 뽑은 상징적인 대표에 불과했으니까요
@@bnf7255 진흥왕의 아버지는 일직 사망합니다 아무리 그직위가 높아다 신분에 대한 구분이 엄격했던 신라에서 순금관은 대표만 사용했을 것이고 금동관이 구리에 금을썩은것이 아니라 구리관에 금을 입흰 것이기에 외견으론 구별할수 없었을 것이나 진흥왕을 섭정했던 지소태후라면 금으로만 관을 만들어 권위를 높이고자 했을 것입니다.
진흥왕은 선골 즉 부모 모두가 김씨 왕위 계승권을 가진자 먼저 사망한 아버지가 왕은 아니었기에 금동관에 작은무덤애 순장을 이후 지소태후가 사망하자 화례한 순금관에 더큰 무덤을 증축했고 선대왕의 율법으로 순장을 하지 안았다..
이상은가오???
의견 공감합니다.
오재성 선생님의 견해와 일치하는 듯 하여
링크 남겨 봅니다.
ruclips.net/video/zKIGXv3So20/видео.html
한국의 고대사가 정말 미스테리네ㅋ
매우 날카로운 분석입니다. 기존 역사학계에 밥 빌어먹는 사람들이 부들부들 할 영상입니다. 밑에 댓글을 보니 논리고 생각이고 뭐고 없는 사람들 참... 뭐 할말이 없네요.
그리고 금관의 화려함으로 보면 속국의 지위는 아닌 듯 합니다. 본국에서 사신이 온다 해도 감췄다가 가면 쓰고 하는 식은 아니니까요. 전에 제가 금관총 주인이 마한왕이라고 주장했었는데, 이 또한 연대 측정을 하면 이 또한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기록에 남지 않은 거대한 무덤이 경주에 집중되어 있다는 건 분명 주변국에 많은 영향을 주는 국가였을 것 같습니다.
미지의 세력에 대해서도 영상 만들어 주세요. 추측되는 세력 후보로 해서 영상 만드는 것도 괜찮을 거 같네요.
그런게 있을리 없자나요. 여왕의 무덤이란 추측만 있을뿐 결정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잘 봐줘야 50:50확률
과학적 연대측정방식과 일치하는 시기에 존재하는분 단한분 존재합니다 지소태후 무덤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진흥왕 어린시절 섭정하였구 .(섭정은 왕역활 대신)진흥왕 시절 신라는 강력 하였구 무덤규모도 크게 제작이 가능 하였습니다 남분에 무덤은 갈문왕으로
추정합니다
지소태후는 어떤분인가요 ?? 궁금해서 여쭈어봅니다.
@@pisla8283 통일신라 이전 신라이 최고전성기 왕인 진흥왕 어머니 남편은
법흥왕 동생인 갈문왕 입니다 그리고 신라하면 화랑이죠 그화랑을 만들었 다는 설이 있습니다
은관과 금관에 대한 다른 분의 해석이 있습니다...
은관은 남자가 금관은 여자가 썼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하얀색의 관을 쓰는게 왕으로서의 지위를 나타낸다고 하더군요!!!!
북방유목세력 전통중,
남자는 달을 상징해서 은장식,
여자는 태양을 상징하는 금장식을 한다더라구요,
사후의 부장품도 거기에 마추구요
혹시 이장의 가능성은 없을까요? 뭔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유로 왕릉을 지금 경주자리로 이장해서 조성했다거나 아니면 진짜는 다른 곳에 있고 가묘를 만들었다면?
경주에서 발굴된 호우총의 유물에 광개토 호태왕의 글자가 새겨졋습니다. 412년에 광개토태왕이 돌아가시고 볼모로 갔던 내물왕의 아들이 가지고 온 거라 추정하는데요..유물은 제작년도가 을묘년(415~6)이라 하니 참조하시길..
호우총은 축조연대가 6세기초라는것이 학계의 공통된견해입니다. 6세기초는 삼국사기를 봤을때,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력밑에 있던 시기로 볼수 없음에도, 당시 축조된 호우총에선 광개토태왕이 새겨진 호우가 출토됐죠. 이것 역시 호우총의 주인이 신라가 아님을 보여주는것이라 생각합니다.
경주에 있는 무덤들은 일도 이름이 밝혀진것은없음없음니다 신라천년동안 장군무덤은 김유신묘가유일하다 이상하지않음니까 왕릉도마찬가지 우리역사의 미스터리
나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었군요,
이제껏 실제 무덤내부발굴 에서 나온 명문은
호우총그릇 과 칼자루에 세겨진 이사지왕 ,
두개뿐인듯하네요
전혀 신라와 매칭이 안되죠,
왕의 무덤에 지석 하나없다니,
이해가 안됨
김유신묘도 경주에 없습니다. 김유신이라고 나온 무덤도 없죠. 대륙에서 발견됐습니다. 김유신 묘가요. 대륙에서 고백신이 존재했었고. 신라는 경상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친일사학자들에 의해 조작된 것입니다.
역시나 요즘 드는 생각에 삼국은 반도에 없었구나...삼한은 대륙에 있었다...
동의합니다
대단합니다!!!
오늘도 참 흥미롭네요. 경주 황남빵 먹으러 가야지~~ 항상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가야일 가능성이 높을듯 합니다. 사실 가야가 지배한던걸 신라로 개명한 다른 집단이 내려와서 지배층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을지도요.
가야가 신라로 개명했을수도있죠.
홍콩에서 가락바퀴나 바늘이 발견되던데요 잘은 모르지만 한국의 것보다 조금은 세련되고 컷어요. 아마 오키나와 가야 홍콩이란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거 같은 느낌 아닌 느낌이
@@dkdl11el 가야 세력이나 그 일부는 인도에서 출발하여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국까지 오고 신라나 백제에 밀려 일본으로도 건너간 것이란 학설이 있습니다. 물론 인종이나 문화는 이동 과정에 변화들은 있었겟지만.. 일리 있는 주장인듯..합니다.
이번영상도 엄청나군요 .. 정말 좋습니다. 근데
왕이 아닌 자의 무덤의 크기가 더 컸을수도 있다라고도 반박할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의 다이묘의 무덤크기가 왕의 무덤보다 더 컸던것을 예로말이죠.
하지만 이 황남대총의 경우 , 경주에 위치해 있고 경주는 신라의 수도고 수도는 왕이 다스리는곳이라
힘이 실리지 않는군요.
왕을 짓누를수있는 권력을 가졌었던 권력가들도
겉 양식은 왕을 존중해주는 자세를 취했던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따라서 지방세력이 아닌 경주에서 그러한일이 일어났을거라고는 생각되지않네요.
재밌는 영상입니다.
다음영상은 언제죠 ?? 이거 어떻게기다립니까.. 매일 sumin park 검색해서 영상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ㅜㅜ
그리고 궁금한점이 이렇게 많은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려면 먼저 알고있어야하는데
어떻게 이러한것들을 알고계신지 정말궁금합니다.
제가 올리는 영상의 내용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얻을수 있는자료들입니다. 저는 단지 박창범교수의 일식기록에서 대륙삼국의 가능성을 보았고, 기존에 우리가 배워왔던 한반도 내 삼국의 유적들을 비판적인 입장에서 검토하다보니 몇가지 모순점들을 발견하게된것입니다. 님께서도 얼마든지 찾으신다면 찾아내실수 있을겁니다.
신라의 수도는 경주이다? 하대 신라일 경우는 맞는 말인데 상대 신라는 중국 안후이성 쪽에 수도가 있었습니다
업로드 기다리고있습니다..
8월초에 업로드 예정입니다.
백제의 경우 지방 토호세력이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쓰고 은제장식을 가지고 있죠. 물론 왕가 인척이겠지만 . 신라에서 왕도 아니면 금관을 쓸 사람들은 백제 왕인척 뿐이죠. 왕은 김씨들이고 친인척은 백제 귀족.. 왕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나 대륙 . 그당시 유럽왕가들 처럼 지금보다 이동이자유롭고 세계적인 시대라.
역사는 여러 가설을 입증하는 길고 긴 숙제죠.. 금동관이 묻힌 남분은 북분보다 30년전에 묻혔습니다. 남편이 죽은후의 시기가 금동관에서 금관으로 바뀌는 시기였을수 있다는걸 추정할수 있죠. 물론 선덕여왕보다 앞선 시대에 살았던 왕비의 것으로 추정해볼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신라시대것이 아니라는 가설은 글쎄요…
신라는우리가 생각하는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구성된 형태가 아니라 연방제적 형태를 지닌 국가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했던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경상도에 존재하는 세력만이 신라가 아니라 양자강 일부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 + 왜의 일부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 등등의 연합집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서구 역사로 보면이전시기이기는 페네키아 세력은 바다를 따라 이곳저곳에 도시와 그 주변부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페네키아를 일컬을 때 그들이 세운 세력중 일부인 카르타고만을 페네키아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신성로마제국안에는 수많은 제후국들이 존재하는데, 크기와 영향력에 따라 지방 대빵들을 부르는 명칭이 다 다릅니다. 왕, 대공, 공작, 후작 등등입니다. 경상도 지방의 신라 대빵을 부르는 명칭은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 마립간 -> 왕으로 변경하는데, 신라라는 국가안에서 경상도 지방의 대빵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고 보아도 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일은 신라 내 다른 이사금(또는 거서간 차차웅들)들이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어느지역에 있었는지 알아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김부식은 여러 이유로 경상도 이외의 신라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을 수 있겠지만, 여러 단서들은 남겨놓았습니다. 그 단서들을 모아서 하나의 퍼즐로 만들어가시는 수민님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홍콩에서도 비슷한거 봤어요
우리 고대사를 처음 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듯.
이해 할 수 없는 부분들.
들어 맞지 않는 조각들이
너무 많다.
전방위적으로 처음부터 다시
연구 해야 될 듯.
정보 감사합니다~^^
하아.. 유튜브 sumin park를 검색했는데 동영상이 올라와있다?? 그날로 끝임 걍..
기분정말좋습니다. 오늘 좋은일이 가득할거같군요
감사합니다^^
가야인듯.
이분은 우리나라 모든 역사 유물을 부정하는 것으로 살아가시네요.
07:00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여쭙고자 합니다. 지증왕은 신라임금이니, 주장하신대로 이 곳이 신라가 아니라면, 지증왕의 순장금지가 유효하지 않은게 아닌가요?
지소태후는 대원일통 입니다.
신분상 남편보다 훨씬높지요
오로지 대원일통만이 금관을 쓸 수있었던게 아닐까요
현재의 신라고분은 신라꺼아니라는 연구를하던 학자가 사고사당한게 생각나네 ㅋ현재 고분군은 가야세력이 대륙에서 한반도와서 활약하다가 왜로가기전의 흔적일듯
경주대 이근직 교수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ㅠㅠㅠ
ㅠㅠ 이근직 경주대. 한국 고대사 연구.
2011년 6월 17일 경주대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요.....
@@ILovekorea365 헉 이근직 교수님 돌아가셨다구요?!!
네~ 네이버 검색..... ㅠㅠ
수민박님!!!!!!!
조문국요~~~
화랑세기에 조문국 얘기가 나온대여.
그리고 조문국은 일본섬으로 건너가 왜가 되었다는~~
오늘 기묘한밤 이라고 유튜브 채널에 나온 내용이 이 내용과 연결되는 듯 해여~!!!
한번 시간 나신다면 조문국
조사해 주세여!!!!
잘 지내고 계시죠??
벌써 가을 시작입니다~
조문국 일수도 있겠네요..음~~
조문국은 경북 의성
매우 흥미롭게 영상들을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진실에 매우 근접하는 설명이라고 보는데요. 삼국사는 대륙에서 벌어진 일이고 한반도에 신라가 들어오기 이전의 역사흔적이라고 봅니다. 그저 어리석은 인간들이 지가 믿고있는 역사랑 틀리다고 욕하고 조롱하는데 그런거에 흔들리지말고 연구 계속 해주시기 바랍니다. 약간 황당하지만 '여인왕국' 이라는 책에 보면 그 당시 경상도 지역에 여인왕국이 있었다고 나오는데 그냥 참고삼아서 한 번 찾아보시면 도움될 것 같습니다. 박수민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기존 역사계의 설명이 틀렸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매우 흥미가 아니구요 진실입니다!!! 오래전부터 중공과 일본이 왜곡시키고 없앤것!!!
신라는 양자강 동남부와 한반도의 동신라가 있었습니다...동신라는 후기신라의 수도가 있었던 것이라고 봅니다..왜냐면 일식기록장소가 신라 후기는 경주쪽에서 기록 되었기 때문이죠...아마도 삼국사에 기록된 천재지변으로 중국에서 살 수 없어 옮긴것 같네요
무덤의 주인이 지소태후라는 글에 대해 답변을 달고자 합니다. 를 보면 지소부인이 574년 불국사를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어, 지소부인은 적어도 574년까지는 생존해있었던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 무덤의 연대는 우선 유물의 편년을 근거로 할때 그 상한선은 6세기 초반입니다. 따라서 574년 이후에 사망했을 지소부인이 이 무덤의 주인일확률은 거의 없고, 영상에서 언급했던 질량분석법에 의거한다해도, 남분의 연대 상한선(520년)에서 부인이 50년을 더 살았다는 다소 무리한 가정에 의해 끌어올린 연대가 570년이므로 , 이역시 574년 이후 사망했을 지소부인의 무덤이 될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불국가고금창가 잘못 기술됐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근데 질량부석법이 플러스 마이너스 오차가 적지 않다고 들어서 좀 단정은 위험하지 않을지
@@홍길동-y2s8u 어떤 연유로 그리 보시는지요
허균이 신라역사를 우찌 알것어라
왕이 아닌데 금관을 쓰는 경우가 있나요?.... 7세기 이전은 매금신라 지역 아닌가요?....
황남대총은...한국것이요 우리 아빠 박혁거세 환생 진평왕 28대까지 신라에서 사셧어요
감사합니다
삼한의 하나인 변한의 왕무덤 ~~~♥
관은 진짜. 뜬금 없는 뛰어난 것이긴 해요.
모름지기ᆢ
이럴수도 있어요. 두 분의 아들이 왕이 된 경우. 아버지가 죽을 때에는 일개 왕족의 신분이었다든지(신라 귀족 체계는 잘 모름), 그 이후에 왕이 되고 어머니가 죽었다면 합장 시키면서 아버지 때보다 더 높은 예우로서 무덤을 조성했을 수도 있죠. 이런 역사가 있는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은관 이라서 남자의 직위가 낮다가 아니라 음양에 따라서 남자가 은관 여자가 금관 입니다
황남대총에서 나온 왕의관이 은관, 왕비의 관이 금관인 이유는 아래 영상을보면 2/3지점쯤 그 이유가 나옵니다
옛날 우리 선조였던 북방 유목민 문화에서는 여자가 금, 남자가 은을 상징했다는 것입니다. 여왕은 아니라는 것이죠
ruclips.net/video/Q1xW5hEO1mM/видео.htmlsi=sfHoyQs7Ai97PCuK
저도 수민박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여왕이라는 논리 말이죠
글고 삼엽 또는 삼환 환두대도가 나오는 거면 신라왕조가 한반도로 오기 이전의 한반도지역 통일 국가 세력으로 봐야 한다는겁니다.
환두대도의 삼엽문양과 남분 부인대 라는글이 나온 쪽은 금관은 경주지역에서만 보이는데...
과학과 기록을 따라야죠
논리정연하네요.
대륙신라가 이동해 오기전 변한의 왕국인듯
아무리 봐도 고구려와 친밀한 어느 왕국이였거나.. 고구려에서 떨어져나간 또다른 왕국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분의 다른 영상에서도 보았듯이 고구려 태왕만이 가질 수 있는 유물이 다른 금동관과 함께 들어있다는 영상을 봤기 때문에
재야 사학계의 결론과 일치하는 분석입니다.
날카로운 분석감사드립니다 왜곡된 한국사는 늘 흥미진진합니다
이번 영상도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할따름입니다.
일본이 가야 유물을 싹 없앴죠
그럼 왜그랬을까요
가야는 훨씬 발달하고 인구도 많고
국제적인 사실을 숨길려고
가야를 빍히면 임나일본부설을 깰수ㅈ있ㅇㄹ듯
그리고 한국 남부에 여인국이 있었음
명문화된 돌같은게 나왔으면 좋았을텐데..어느왕의 무덤인지 알수없으니 답답하네요...
입종갈문왕일 경우도 있죠...진흥왕의 아버지..537년 사망..부인은 법흥왕의 딸..진흥왕이 어렸를때 죽었으니 ..
신라는 6세기초에 처음 쓴 국호입니다. 그전은 마한, 백제, 구구려등의 제후국이었지 나라는 아니었습다.
미친놈일세. 일본서기에 그리 써있나?
고구려백제신라가....일제시대 한반도에 역사책으로 온겁니다.그냥 삼국은 대륙의 주인입ㄴ다. 명나라는 조선의옆구리에 끼인국가라고 책에나오죠!!ㄱ냥..한반도는 corea라고 예고지도에 나옵니다.
가야 아닌가요?
흉노 혹은 북방 기마 민족의 무덤이조
요새 전라도도 유물 나오던데 전라도가 북방계가 더 많은데 전라도도 스키타이인가요? 난 내조상이 스키타이라면 인정 못하는데? 스키타이들 사물놀이도 없지 춤도 없지, 판소리도 없지. 스키타이들 너무 미개해.
경주에있는 모든 무덤과유물은 신라것이 아니고 부족장의 무더이고 나라없는 무명의 묘인데,일제가 왜곡시킨 거짓의 유물인데 신라 것이라고 우기니 이런 더러운 학자놈들이 어디있나?
신라는 다민족사회 였다 는게 증명
법흥왕이구만...여자는 박씨구요...법흥왕이 이방인인데 박씨 아내를 맞아서 왕이 되는데 사실상 박씨아내의 힘으로 왕이 된것이라 법흥왕이 왕이긴해도 서열은 박씨가 더 높다라고 봐도 되죠.
정말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너무도 석연찮은 것이 많다는것이죠 제대로 된게 있는지도 의심 스럽습니다.
조선총독부 애들이 왜곡한 한국학을 공부한 친일세력들이 아직도 한국대학을 장악하고 교육부에서 한국학생들에게 매국식민사학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듯이 여자의 장신구가 화려하다고 생각하면 금관이 왕비의 것으로 볼 수도 있지않나
일리있는 말씀만 하시네요 맞습니다 신라 화랑도 얼마나 그당시 흰색피부에 그리움이 있었으면 혼열이 많아도 하얗분칠을 하고 나갔을까요 역사는 어느 일이 없으면 안하죠 그 샤머니즘도 하늘에 제사도 모든것이 뭐에 관련된거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죠
그 말많은 성경도 어느정도 고친것도 있지마 그 뿌리는 역사를 아는 사람은 다들 아시죠...
일단 우리나라 역사의식이 한반도부터가 잘못된것도 많구요...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구독자는 많지가 않은게 아쉽습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편하게 쉽게 살려하면서 자기들을 만든 조상에 대한건 관심이 없으니...그러면 딱 남미 아프리카처럼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중국공산당처럼 가짜역사 조작역사로 간다면요...
말씀 중에 부인이란 말도 맞죠 유럽에 마담도 어떻게 보면 술집여자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 사용하는 호칭은 아시잖아요...
흰 피부에 그리움? 명예 백인인가? 역겹워서. 신라에 백인이 있다면 대구 애들이 슬라브 빠진 체코계나 트루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사람처럼 생겨야지 대구에 순종 오리지날 북부 국경선 중국인이나 황인족 위그루만 보이는 이유가 뭐에요? 진짜 황당하다. 이정도였나?
@@이순신장군-n6v 흰 피부에 그리움? 아마 전통일겁니다... 한 예로 칸이 정복할때도 전체 나라가 아니였으면 나중에는 무슨칸으로 다 각나라로 변했죠...
즉 흰 피부에 그리움이 아니라 그지역에 오래 있으니 토착세력과에 혼인은 빈번했을겁니다 그럼 사람도 변화죠...그래서 한 예로 세계어디에도 있는 근친이 많았습니다 아시죠...
뭐를하면 자꾸 비아냥 거리지 마시고 의구심을 한번 가져보세요... 대구 애들 그러는거보면 전라도 경상도 일본을 따로 놓고 구분지을려고 하는거 같은데...
참 님이 슬라브 뭐 이렇게 구분지었죠... 그럼 몽골제국이 유럽 정복하면 다 몽골인같이 유럽인들이 생겨야하나요... 몽골군이 와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도망갔을때 그럼 그외 지역은 다 시간이 지나면 다 몽골반점 있는 동양인이 되어야 하나요... 그거아시죠 아프리카에서 원시인류가 생겼다 하지만 아시아에 새로운 종족이 있으면 순다랜드 동남아에도 서양과 다른 원시인류가 있다는거...
황당하다 하지말고 자신에 지식에 폭을 넓혀보세요... 저도 아메리카는 조선이다는 말도 안되는것과 무슨 판게아가 하루아침에 된다는식에 선동질은 싫어하지만...
어차피 헌응 치우등등 다 가족단위 싸움아닙니까...무슨 중공에 시조가 환응이고 합니까... 과학기술은 거짓말 안하는거 아시죠 이미 천체도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삼국이 있다고 나오는데...우린 왜 한반도로 왔냐를 따져야지 그게 왜 거짓이냐 이렇게 나오면 내분밖에 안되는겁니다...
제국주의때 식민지화 하면 다 세계가 유럽사람 됩니까...
님 백인에 백이 서양에 백인인과 다른거 아시죠...이런 기본도 안되면서 역겹다 표현을 왜 하시는건가요 한국어 수준을 따져봐야 할거 같네요... 그냥 세뇌교육으로 오토바이 기스 간지 가오 발음하면서 일본 싫어하면서 역겹다 하면 그게 모순압니까... 그냥 본인 비위에 싫으니 역겹다 하시는거 같은데...세상을 크게보세요 동네만 돌아다니지 마시구요... 쓸데없이 까스 발음하면 일본인 발음 지적하고...
일본어도 못하면서 한국인이 돈까스 그러면서 한국어도 못하고... 와사비 그러면서 그게 무슨식물인지도 모르면서 고추냉이 하는거 아니죠? 미나리냉이를... 지적은 이렇게 하는겁니다... 모르니 알려고 해야지 그게 아니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같이 나아가야지 그럼 왜 다 그렇게 안되었냐 하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역사를 다 모르니 이런 주장도 하고 논문도 나오고하는거 아닙니까...
일본땅에 한국인들이 점령하면 다 큰키가 되고 그럽니까... 북방민족 유전자가 더 많으니 한국에서는 조금 더 키가 큰거지 일본보다 뭐가 한국이 키가 크니 일본보다 우월하다 이렇게 나오면 내분밖에 안된다는겁니다...
일본도 남 북에 기온차이가 엄청난데 왜 집이 저럴까요... 그런 전통이 있기에 하는겁니다... 사막도 밤에는 겨울처럼 추워요... 사막이라고 밤되어도 더운게 아니라... 그럼 사막인들이 다 모피입고 다닙니까 밤에...
그리고 흰 피부에 그리움? 으로 지적하셨는데 제가 생각하는 지식수준으로는 전통이나 권력에 한 가지라 봅니다... 아직도 인간이 그렇잖아요 남들과 다르면 우월하다는 논리...
그런 시대에 삶에서 그 시대상에 남들과 다른 권력자에 흰부는 아마 권력을 상징하지 않았을까 봅니다... 지금에 종교쓰레기들도 아직 그 미련을 못 버려서 그러지 않습니까...
아직 서양 중심적 사고방식이 있어서 짱개도 없어지지 않는데 그정도 시기에 살고있는겁니다... 물론 환국시대등 보고 온 지구가 조선이다는 논리를 가지는 분도 계시지만...뭐 어때요 그래서 차근이 나아가면 되는거죠 그게 맞다가 아니라... 아니 동네 종교쓰레기 건물도 저렇게 많은데 믿고 주말 휴일마다 가서 헌금 십일조 하면서 다단계 하지않습니까 합법같은 불법으로...그런데 거기에서 누가 불법건축물이다 종교쓰레기다 해요... 앞에 횡단보도 나주고 하니 불법주차해서 예배중 번호판에 붙여서 견인도 안하는 나라에서... 이런걸 보라는겁니다... 남과 의견이 다르면 속에 비위가 상해서 역겹다 하지마시구요... 그렇게 역겨우면서 아니 한국인이면 한국인척 하는 짱개모터바이크 99.8프로 교통질서와 불법무단주차 보고는 얼마나 역겨워서 살아가셨나요... 아니 혹시 대소변 보고도 손 안씻는 부류 아닌가요? 이런 의구심을 해보라는 겁니다... 손도 안씻으니 그런 부류도 봐도 그게 맞는건줄 아는...자신에 비위만 상하면 역겹다 하지 말구요... 그래서 세상 살아가십니까... 보는것마다 역겨워서... 대소변 보고도 손을 안 씻으면서 겉모습만 반듯하면 뭐해요 위생은 아닌데... 그런건 역겹지 않나봐요... 자신에 비위에 안상하니...
사실 신라는 4세기 전반까지는 흉노족, 그 이후는 북방 선비족 모용씨가 침투하여 두 부족간 연합국가이기 때문에 당시 두 부족의 매장풍습에 관한 중국측 사료를 찾아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왕릉급무덤이다. => 선덕여왕 무덤이 아니다. => 결론 : 경주는 신라의 영역이 아니다. ?
비약이 날다가 개똥에 처박히는 결론이야 ?
황남대총 뿐만 아니라 지금의 한반도 경주라는 곳에서 출토 되는 것은 모두 신라의 것이 아니랍니다ㅡ왜냐하면 신라가 한반도에 없었기 때문이래유ㅡ경주라는 이름도 이성계 장군이 한반도로 오고 나서 붙인 이름이래유ㅡ고려때 경주는 동경이었습니다.동경은 수도의 동쪽에 있어야 돼유ㅡ그럼 고려의 수도가 한반도 개성이면 원산이나 주문진 쪽이 동경이어야 되고유ㅡ그래서 고려도 한반도에 없었고유ㅡ왜냐하면 고려 왕릉이 한반도에 1기도 없어유ㅡ 있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유ㅡ
신라는 지금의 랴오닝성 북쪽에서 출발했대유ㅡ진저우锦州 가보면 토함산부터 경주 남산(금오산)까지 차례 대로 있시유ㅡ한반도 금오산은 구미 왜관 쪽에 있어서 사서历史书와 전혀 다른 위치에 있시유ㅡ(남산의 별칭이 금오산)
한 번이라도 가보세유ㅡ
그리구 묘지군락에 별을 보는 장소를 만들었다는 나라는 세계사에 하나도 없대유ㅡ가짜 첨성대(천문대)ㅡ어떤 미친놈이 꾸역꾸역 우겨서 첨성대가 됨 ㅡ
신라는 미스테리가 너무 많다
천마총의 천마도 그렇고 ᆢ흉노가 와서 신라의 왕을 했다는 얘기도 이해하기 힘들고~
남편 왕관을 물려 쓰듯
고구려 속국시대 고구려 공주네
앵?
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의 수도와 주위에 변변한 성의 주춧돌도 없다는건 어불성설입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가 아닙니다
황남대총은 내물왕릉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내물왕의 부인이 미추왕의 딸이니 신분이 높았다고 보여집니다.
머리아픕니다 ㅋ
황남대총 조성 시기와 이전이 경주가 신라었다는 증거가 없네요
부인의 부 자가 아내 부가 아니고 사내 부인 것, 나주 반남 고분에서도 금관 발견.
부인의 부는 사내부가 맞는데 과거의 뜻과 현재의 뜻이 다르다라는 것인가요?
경주에서 발굴되었다고 신라왕들 무덤이라 생각하는것 자체가 문제임...
다른 가능성은 1도 생각없음.
신라왕들 무덤중에 밝혀진 건 딸랑 1개 내물왕릉...
이것도 맞나 모르겠다.
최근에는 지위가 높았다라기 보다는 그냥 시대가 흐르면서 기술이 발전하여 더 좋은 관을 만들 수 있었다로 보는 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영상에 거기에 대한 반론도 나옵니다.
조선 시대 만들어진유교적 사고관으로 인해 나온 반론일 뿐입니다
영상은 보고 댓글다는건가....
가야의 무덤일 확률이 크네요. 가야는 여자의 지위가 더 높은 걸로 봐서 가야인 듯합니다.
가야의 영역이 지금의 경상도 지역이었고 법흥왕이 532년 점령했던 금관가야가 금관들이 유일하게 나오는 경주지역이 아닐지요? 한자는 다르지만 이름이 묘하게 겹치죠? 김해김씨가 현재도 많다는 것은 가야의 후손들이 한반도 남부에 많이 있다는 말이지요. 경주를 시작으로 신라가 한반도 가야영역을 다 흡수하고 나중에 7세기 이후 대륙에서 밀려나 한반도로 천도한다는 것이 어떨지. 그많은 신라 김씨왕들이 있었음에도 한반도에는 신라마지막 경순왕의 후손들만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역사의 미스테리가 너무많아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는 국사연구가 정말로 진지하게 국가차원에서 활성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은 뭐하나 몰라. 인문학 관련 일자리도 늘어나서 경기활성화에도 도움되고 기존 한반도중심 소중화주의 식민사학을 극복하도록 민족역사도 미래를 위해 재정립하고. 우리나라가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극복하고 더 발전하려면 진실된 역사를 바탕으로 국사를 재정립해야함. 일본식민지에서 쓸법한 오류로 가득한 현재의 국사교과서는 가치창출을 제대로 못하는 폐기대상임.
박미실의 선대 여왕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미실도 왕 이상의 권력자였다가 밀려서 추락한것이 아니겠습니까?
박씨들과 김씨들이 왕과 왕비 배출 가문으로 권력분점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토배기인 박씨의 힘이 더 강력했으리라 추정됩니다.
@부여흙발 > 미실은 박씨입니다.
미실의 어머니나 할머니의 권력은 왕을 넘어섰습니다.
김씨가 친족결혼을 하다보니 김씨왕족의 씨가 말라버립니다.
그래서 김씨 친족이 왕이되며 왕권이 약화되고
신라 말기에 다시 박씨 왕이 몇명 나오죠.
신라고분 전부 가짜라는 설도 있음~ 고고학자들도 사실 경주고분이 신라것인지 확신 못함~!!!
옛날엔 역사학자,고고학자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이제 인터넷,특히 유튜브영상이 일반화 되어 다양한 견해,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됐음
신라가 아니라고 전제한다면~ 경주를 중심으로 한 세력가일 수 도^^
가야와 연결은 안되나요?
연결 가능하죠 그런데 아무도 연결을 안해요 금관총 이사지 왕은 가야 왕 같은데 아무도 연결 안했더라구요
난 아내에게 만큼은 최고의 선물을 하고싶어 결혼반지를 아내것은 순도높은 진짜 다이아몬드를 넣었고 내반지엔 큐백을 넣었는데...재질로 신분을 가린다는건 조금...
고대에 머리에 쓰는 관은 부부간의 선물의 용도라기 보단 생전의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는 물품으로 보는것이 타당할것입니다.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하는것과 뭐가 다른지.
개소리라는 얘기를 비유한 듯 한데, 반론을 제기하셔야죠.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댓글을 다시면...;;;
@@TheGreatDebunkers 두사람이 그동안 해온 발언들을 보면 개소리하는거지 무슨반론?
그럼 박근혜와 결혼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는건가?
자기가 초능력자라고. 떠벌이는 인간의 말에 무슨 반박?
부인대 글자가 너무 허접합니다... 이건 누가 조작한게 아닐까 싶을정도로요...
^^달의정원님 간만에 재시청중이신가봐요 감사합니다 다음주 라방으로 뵙겠습니다
@@gulchakgi 네네, 몇시간째 보고 있어용~~!!!
@@ILovekorea365 재시청임에도 이렇게 후원주셔서 감사합니다 달의정원님^^
오래전 어디선가 보았던 여인왕국이란 책이 생각나네요. 자동서기(채널링)로 쓴 책인데..진짜로 과거로 넘어가 경상도(안동?)에 존재했다는 수수께끼의 여인왕국을 경험하고 쓴 것인지 증명할 수 없지만요.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중국소수민족 중 자바족이 주혼제도를 통해 모계사회를 형성하고 있고, 부족장이 여왕 노릇을 하는 걸 본 기억이 납니다. 험난한 오지에 살고 있으니 그나마 여인국이 유지되는 듯..하긴 그리스 신화에도 전설의 여인부족 아마조네스(아마존)가 나오는 걸 봐도 세계 곳곳에 여인국이 고대부터 존재했던 모양..여인의 출산을 고대인들이 신과 맞먹는 창조능력으로 귀하게 여겼다는 설이 있지만..암튼 여인왕국이란 책은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다는데...레즈비언의 적나라한 장면이 묘사된 탓에 음란도서로 분류되어 출판금지되거나 강제수거해 폐기처분되었을 것라고 합니다.
신라가 고구려 백제늘 물리치고 통일을 했다면 최소한 이정도는 됐어야 가능했지 싶습니다.
국사배울때 진짜 신라가 당나라의 도움으로 삼국통일했다했을때 진짜 이상하다 생각했었거등요
엄밀히 말하면 당나라가 주도한 정도로 봐야죠. 당나라는 고구려 멸망을 원했고 신라는 백제 멸망을 원했고 그래서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협조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왕과 왕비의 부모나 형제일수도...,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치않을까싶네요.
추론인지 가설인지 모르겠지만... 좀 황당하네요...
여자왕의 무덤이다 선덕여왕이 최초의 여왕이니까 신라인이 아니다? 이말이 맞다면
먼저 생각해야 되는건 왕의 무덤이고 주인공이 여자라면 선덕여왕 이전에 여왕이 있었다는건
왜 먼저 생각안해보는지..... 말도 안됨
기록되지않은 왕의 존재가능성?
기록되어있는 왕의 무덤조차 나오지않아서
그게 더 희박해보이기도하군요
지소태후 무덤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분석한 내용으로 보면 가야국의 여왕이었을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이는군요.
뭐라꼬 ㅋ
가야국에 여왕의 기록이 있는지요? 더 큰 비약입니다.
@@michaeljung4398 연대로 보나 위치로 보나 6가야 중 한곳이 신라에 합병되기 전의 가야국으로 보입니다.
여왕일수도 있고 왕비일수도 있지만 현재의 역사서는 그 기록이 너무 적어서 기록되지 않은게 수천 수만배이상 더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책에 없는 내용으로서 상세히 분석해보면 그 내용을 알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한반도는 모계 사회였다. 가야도
금관이나 금동관은 왕관이라는것
이것이 이글에 함정
여자 관속에서 금관이 나오고 남자는 금동관이라 여자가 여왕이라고요? 그런데 여자 관에서는 물레와 실패 등이나왔다고요? 여왕이 통치를 실 자으면서 합니까? 금관이 사라진 이유는 신정일치의 붕괴라고 하던데. 혹시 여자의 경우 미리 수의 지어놓듯 미리 금관을 마련해놓은 것은 아닐까요?
좀 더 광범위한 증거와 논리적 추론이 아쉽습니다
오직 금관 때문만이 아니라 황남대총의 규모와 여기서 출토된 부장품의 규모로부터 여왕으로 추정한것입니다. 또한 부장품의 성격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생전에 사용하던것, 그리고 사후의 삶에 있어 필요될 물품이 될수있습니다. 물론, 여왕이 실 뽑는행위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경험도 없을수 있지만, 사실 고대에 그 여왕이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운것입니다. 또한 님의 의견대로 여왕의 삶과 실은 전혀 관련지을수 없다해도, 사후의 삶을 위해 넣어주었을수 있으며, 혹은 고대인의 입장에서 가락바퀴가 어떤 풍요를 나타내는 상징품일수도 있습니다.
@@gulchakgi 순전히 풍요 기원이라면 남쪽 남자 능에서도 나왔어야지요 님이 소개한 부장품들을 보면 전형적 여자용 입니다 여왕이면 통치도구가 좀 나와야하지 않을까요? 통치도구 하나도 안 나왔다는 것도 주목 하십시오
@@brightbirch9580 풍요기원이 여러 요인중 한가지가 될수있단 말씀이며, 성별에따라 그에 적합한 상징품이 고대인들의 입장에선 구별될수있습니다. 그리고 통치도구라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통치도구가 나와야 왕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싶습니다.
@@gulchakgi 여왕이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모르신대면서요? 그러면서 부장품으로는 취미용 물레를 넣는다고 맘대로 추정해요? 왕의 부장품이 상징하는 게 뭔지 믈라요? 사가의 부인이면 몰라도. 그러면서 지금 저보고 통치도구 말해보라고요? 그럼 님이 북능에서 어느게 여왕이라고 단정지을수 있는 통치도구인지 말해보세요 금관빼고. 이건 뭐 세월호 잠수함 인신공양설만큼 억지스럽네요. 끝 말할 가치 없음
신라의 역사를 부정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가요? 얄팍한 지식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는뭘까 신라이전의 어떤 왕조가 존재 했는지도 분명히 밝혀야 수긍할수 이다
대륙설에 의하면, 원래 신라 수도 경주는 중국 안후이성에 있었는데 후대에 현재 경상도 경주지역에 영토를 확장하여 동경(말그대로 동쪽 수도)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만든거죠
그래서 실제 신라 왕족들의 무덤은 현재 중국에 있다는 겁니다.
대신 경상도 경주에는 역사서에 기록이 안되어있는 이름도 모르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sumin park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대륙설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일제가 식민시관을 위해 삼국을 한반도에 어거지로 끼워맞춰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예상하는 두가지 예측.
1. 저 무덤이 굳이 여왕의 무덤이 아니라 왕의 부모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효심이 지극한 왕이 특별히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또는 나라자체의 운명을 바꿨을 결정이나 조언에 따라 큰 공을 세워 그 덕을 기렸음에 저렇게 큰 무덤을 세웠고 후대에도 그 이유가 타당하여 저 무덤보다 크게 짓지 못했을것이다. 라는게 1차 이유. 혹은 굳이 저 큰 무덤보다 크게 지어야 할 이유가 없었음에 경제적 이유를 들어 그럴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음.
2. 금관 자체의 탄소연대측정으로 인한 결론은 옳지 못하다. 금관은 말 그대로 귀한것인데 일정시기에 제작 후 물려줬을 판단도 배제 할 수 없다. 저정도 크기가 되는 무덤이었기에 물려받은 금관이 딸려 묻힐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탄소연대측정 또한 완벽한것이 아니고 오차범위도 크기때문에 확실한 결론을 낼 수 없다.
탄소연대측정방식도 확실하기는 하지만 사료가 오염되지 않았때만이죠
당시 신라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근거 있는 반론을 말해보시오.
그럼 역으로 물어보겠습니다.신라가 한반도가 아니면 안돼는 이유를 좀 설명해 보시지요
@@대광성
신라의 유적이 한반도의 남부에서만 발견이 됩니다. 일식 기록만으로 신라가 중국 양자강 유역에 있었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 유적들이 신라의 유적이 아니면 황남 대총의 주인공은 왜국의 신공황후 정도가 되겠지요. 역사 기록에 당시의 정치 세력은 왜가 있으니, 일본의 주장대로 한반도 남부는 왜국, 일본의 고토입니다.
일식기록을 확인하기엔 신라초 일식이 확인된 상황은분명하나 삼국사기에서 신라 건국 연도와 실질적신라 건국연도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식기록만 가지고 정확히 어디다 라고 비정하기엔 아직은무리가 있습니다.우습게 들리시겠지만 본인은 아달라이사금 58세손 입니다.누구보다 신라의 나라에 애착과 관심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없지요 따라서 처음엔 인물을 분석하다 점차 신라에서산출되는 공통적 산출품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바로 양잠의 역사 입니다. 만일 한반도에서 발원하여 시작된신라가 그 오랜 양잠의 문명의 주역을 이끌던 우리 민족이 나라가 무너지고 양잠의 역사가 무너졌다? 상상이 가시나요?한반도에 건너온 직후 비단을 산출할 기술이 없었던 것 이 아닌그 기반이 만들어질 상황이 못 되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비단을 산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려를 거쳐 조선때엔 완전히비단이 중국에서 넘어오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이지요지금도 그러하거니와 과거는 더 심각했을 농토 부족현상이확연히 보이는 나라에서 뽕나무를 재배하여 누애를 친다?허황된 생각이지요 그렇다고 물량을 맞출 수 도 없었을테니스스로들도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신라와 오나라의 관계를 아신다면 오늘날 한반도 남쪽이라고생각할 수 있을까요?
@@대광성 안돼는 -> 안되는
맞춤법 틀린건 죄송합니다만 알아 듣는 것엔 아무런지장이 없어 보이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