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데르 6세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나눠 식민지로 만들어 식민지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라고 했던 교황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교황이었습니다.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었을 때 노아의 후손이 아닌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동물로 볼 것인지 사람으로 볼 것인지 논란이 많았습니다. 노아의 홍수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결국 동물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노예로 만듭니다. 이로인해 거의 일억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노아의 홍수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바이블의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바빌로니아 홍수이야기를 배낀 이야기이지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그렇게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노예제도 옹호론자들은 바이블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바이블에는 함의 자손인 흑인은 저주받았다는 내용과 이방인은 진멸하고 노예로 삼아라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이블은 문제가 많습니다. 미국 세일럼의 마녀사냥은 유명한데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튜브에 동영상이 있습니다. 잘못된 종교로 인한 불행한 일입니다. 장자 인신공양의 원조는 바알신(전쟁의 신. 主. LORD)입니다. 그런데 야훼가 바알신을 질투해 자신도 장자 인신공양을 원합니다. 아브라함 장자 이삭을 인신공양 하라고 하고 아브라함도 장자 이삭을 인신공양 하려고 합니다.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야훼는 왜 장자 인신공양을 원했을까. 바이블에 답이 있더군요. 야훼는 질투하는 신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신이 질투하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야훼의 롤모델은 바알신입니다. 교황청 중앙에 바알신의 상징 오벨리스크가 있습니다. 바알신에서 알라가 나온 것 같습니다. 바알신은 전쟁의 신. 야훼도 만군의 야훼. 알라도 전쟁의 신. 테러의 신. 바알신과 야훼와 알라는 삼위일체인 것 같습니다. 바알신은 야훼 이전에 있었습니다. 바알신은 알라 이전에 있었습니다. 바알신은 바이블에 71번 나옵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들은 聖戰이라고 전쟁을 신께 인신공양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입니다. 십자군 전쟁도 마녀사냥도 신께 인신공양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잘못된 종교로 인한 불행한 일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안식일에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야훼는 안식일에 나무하는 사람도 죽이라는 존재입니다. 예수는 야훼를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웠습니다. ㅡ 성서의 뿌리 ㅡ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웠다는 증거는 많습니다. 요즘 유튜브에 예수와 크리슈나가 같다는 동영상이 많습니다. 바가바드기타는 아르주나가 왕권을 놓고 형제들과 전쟁을 하는 내용으로 크리슈나가 참모로 나옵니다. 사실상 크리슈나가 주인공입니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고 가족과 형제들을 분열케 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은 바가바드기타의 내용입니다. 예수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렇더군요. 그러나 이런 말은 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예수는 교회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웠습니다. 예수를 추종한다면 예수를 따라 불교와 힌두교를 배우는 것이 예수를 추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가족과 형제들을 분열케 하겠다고 했는데, 요즘 기독교 종파가 많은 것을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불경과 신약성서는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ㅡ 법화경과 신약성서 ㅡ 열반경에는 惡象(악상)과 惡友(악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악상에 죽으면 지옥에 이르지 않지만 악우에 죽으면 지옥에 이르러니 악상보다는 악우를 더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네 육체를 멸할수 있을지언정 네 영혼을 멸할수 없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네 육체와 더불어 영혼까지 지옥에 이르게 하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 악상과 악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惡象(악한 코끼리)은 네 육체를 멸할수 있을지언정 네 영혼을 멸할수 없는 자를 말하고, 惡友(악지식)는 네 육체와 더불어 영혼까지 지옥에 이르게 하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 악상보다는 악우를 더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가 말하는 지옥은 불교의 지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떻게 불경을 말할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는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구약에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누구 한사람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야훼는 천국이나 지옥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예수가 천국과 지옥을 언급합니다. 야훼도 만들지 않았고 구약시대에는 없던 천국이나 지옥을 신약에 와서 예수가 천국과 지옥을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지옥에 갔다는 것입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도 지옥이 없다고 말했는데 예수가 언급한 천국과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불교의 천상과 지옥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이블은 비과학적입니다. 열왕기하 2장에 야훼를 믿는 엘리사가 언덕으로 올라갈 때 어린아이 수십명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리니 엘리사가 야훼의 이름으로 이를 저주하니 야훼가 응답하고 엘리사를 놀리는 수십명의 어린아이들 중 42명을 암곰 2마리를 보내 죽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압니까. 대머리라고 놀릴수도 있죠. 종교를 믿는 사람이 웃고 넘길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린아이들을 저주하는 엘리사가 종교가 입니까. 그런 엘리사의 요청을 받아 암곰 2마리를 보내 어린아이들 42명을 죽인 야훼는 올바른 신입니까. 어린아이들 중 42명을 죽였다고는 것은 모인 어린아이들이 42명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70명. 80명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놀아도 10명 이상 모이기 힘듭니다. 70명. 80명 모인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모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만약 곰 2마리가 나타나면 어린아이들은 모두 흩어집니다. 곰 2마리가 죽일수 있는 어린이 수는 불과 2명 밖에 안됩니다. 곰은 먹이를 잡으면 한마리만 잡고 있지 한마리 잡아놓고 또 먹이를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린아이들 70. 80명이 있었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곰 2마리가 어린아이들 42명을 죽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바이블에 기록한 사람의 과학수준이 부족한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서 3일동안 살았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도 그렇고 지구가 평평하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도 그렇고 바이블을 기록한 사람의 과학수준이 부족합니다. 루터와 캘빈도 멈춘 것이 태양이지 지구냐며 지동설을 비판했습니다. 예수가 유대지방에서만 살았다면 고향사람들에게 배척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고향사람들을 배부르게 했더라면 병자를 고쳐주었다면 고향사람들에게 환영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12세에서 30세까지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유대교 율법을 부정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야훼의 말을 부정하고 안식일에 일을 했기 때문에 고향사람들에게 배척되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죄를 찾을 수 없다고 예수를 풀어줄려고 했는데, 고향사람들이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유대교 사제들이 앞장섰습니다. 그 죄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짊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2000년간 나라없이 생활합니다. 지금도 예수는 고향에서 배척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않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신약은 금서입니다. 예수를 믿지않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지옥에 가는가 천국에 가는가. 예수를 믿지않는 이스라엘 유대인들도 천국에 간다고 생각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잘못된 말입니다. 어느 종교에나 구원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1절의 천지창조는 엘로힘의 천지창조입니다. 바알신의 부친이 엘 입니다. 창세기 1장과 1절의 천지창조는 바알신의 부친 엘로힘의 천지창조입니다. 바이블에는 엘로힘이 2400번 나옵니다. 바이블의 주인공은 엘로힘입니다
먼가 알듯 말듯 혼돈의 연속입니다 결국 무위의 행을 하면 살육전조차 신성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쟁을 하라는게 아닌 전쟁으로 드러난 신성의 드러남을 누리라는 얘기 겠죠 전쟁에 대해 자유자재하니 일부러 전쟁은 하지 않겠죠 직관적인 앎은 올듯 말듯 한데 논리적 앎은 어렵네요🙏
"이 물질세계는 누구나 어떤 행위든지 행위를 하게 되어 있고, 또 이 세상에 속박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가 있고,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 행위가 있다. 행위의 결과를 목적으로, 거기에 집착한 상태에서의 행위는 하나의 행위가 다음 행위의 원인이 되는, 희로애락이 반복되는 환생의 쳇바퀴에 구속되게 만든다. 반면에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 그저 할 일을 하는 행위는 자유에 이르게 한다. 즉 행위의 길의 핵심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하는 것이다" 저는 이 개념을 선과 악의 이분적인 내용이 아니라, 일어날 일은 일어나며, 참나는 행위의 결과를 넘어서고,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행위자로 여기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해도 죄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행위자가 아니므로 자신의 행위와 그 결과에서 자유롭습니다. 즉 모든 존재자체가 자기자신이고, 신적인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삶의 자유란 이런 것이군요
마음에 깊이 들어오는 목소리에 깊은 마음이 느껴져서 가끔 와서 제자리로 돌어가는 시간을 갖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기분좋은 하루가 될것같습니다 다 치유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소녀가 어느날 손에든 해바라기씨를 보며 방끗 웃었습니다 올 여름에는 방끗웃는 해바라기를 생각하면 기분이 너무 좋다고 짤막 시 한줄 적어밨습니다 항상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감시합니다~^^♡😊❤
너무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평온한 휴일 잘 보내고 계시죠~~?^^
덕분에 새로운 음성에 귀 기울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9:44 어떻게 살아가면 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알렉산데르 6세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나눠 식민지로 만들어 식민지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라고 했던 교황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교황이었습니다.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었을 때 노아의 후손이 아닌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동물로 볼 것인지 사람으로 볼 것인지 논란이 많았습니다.
노아의 홍수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결국 동물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노예로 만듭니다.
이로인해 거의 일억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노아의 홍수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바이블의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바빌로니아 홍수이야기를 배낀 이야기이지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그렇게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노예제도 옹호론자들은 바이블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바이블에는 함의 자손인 흑인은 저주받았다는 내용과 이방인은 진멸하고 노예로 삼아라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이블은 문제가 많습니다.
미국 세일럼의 마녀사냥은 유명한데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튜브에 동영상이 있습니다.
잘못된 종교로 인한 불행한 일입니다.
장자 인신공양의 원조는 바알신(전쟁의 신. 主. LORD)입니다.
그런데 야훼가 바알신을 질투해 자신도 장자 인신공양을 원합니다.
아브라함 장자 이삭을 인신공양 하라고 하고 아브라함도 장자 이삭을 인신공양 하려고 합니다.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야훼는 왜 장자 인신공양을 원했을까.
바이블에 답이 있더군요.
야훼는 질투하는 신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신이 질투하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야훼의 롤모델은 바알신입니다.
교황청 중앙에 바알신의 상징 오벨리스크가 있습니다.
바알신에서 알라가 나온 것 같습니다.
바알신은 전쟁의 신.
야훼도 만군의 야훼.
알라도 전쟁의 신. 테러의 신.
바알신과 야훼와 알라는 삼위일체인 것 같습니다.
바알신은 야훼 이전에 있었습니다.
바알신은 알라 이전에 있었습니다.
바알신은 바이블에 71번 나옵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들은 聖戰이라고 전쟁을 신께 인신공양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입니다.
십자군 전쟁도 마녀사냥도 신께 인신공양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잘못된 종교로 인한 불행한 일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안식일에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야훼는 안식일에 나무하는 사람도 죽이라는 존재입니다.
예수는 야훼를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웠습니다.
ㅡ 성서의 뿌리 ㅡ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웠다는 증거는 많습니다.
요즘 유튜브에 예수와 크리슈나가 같다는 동영상이 많습니다.
바가바드기타는 아르주나가 왕권을 놓고 형제들과 전쟁을 하는 내용으로 크리슈나가 참모로 나옵니다.
사실상 크리슈나가 주인공입니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고 가족과 형제들을 분열케 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은 바가바드기타의 내용입니다.
예수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렇더군요.
그러나 이런 말은 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예수는 교회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웠습니다.
예수를 추종한다면 예수를 따라 불교와 힌두교를 배우는 것이 예수를 추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가족과 형제들을 분열케 하겠다고 했는데, 요즘 기독교 종파가 많은 것을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불경과 신약성서는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ㅡ 법화경과 신약성서 ㅡ
열반경에는 惡象(악상)과 惡友(악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악상에 죽으면 지옥에 이르지 않지만 악우에 죽으면 지옥에 이르러니 악상보다는 악우를 더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네 육체를 멸할수 있을지언정 네 영혼을 멸할수 없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네 육체와 더불어 영혼까지 지옥에 이르게 하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 악상과 악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惡象(악한 코끼리)은 네 육체를 멸할수 있을지언정 네 영혼을 멸할수 없는 자를 말하고,
惡友(악지식)는 네 육체와 더불어 영혼까지 지옥에 이르게 하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 악상보다는 악우를 더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가 말하는 지옥은 불교의 지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떻게 불경을 말할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는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구약에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누구 한사람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야훼는 천국이나 지옥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예수가 천국과 지옥을 언급합니다.
야훼도 만들지 않았고 구약시대에는 없던 천국이나 지옥을 신약에 와서 예수가 천국과 지옥을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지옥에 갔다는 것입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도 지옥이 없다고 말했는데 예수가 언급한 천국과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불교의 천상과 지옥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이블은 비과학적입니다.
열왕기하 2장에 야훼를 믿는 엘리사가 언덕으로 올라갈 때 어린아이 수십명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리니 엘리사가 야훼의 이름으로 이를 저주하니 야훼가 응답하고 엘리사를 놀리는 수십명의 어린아이들 중 42명을 암곰 2마리를 보내 죽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압니까.
대머리라고 놀릴수도 있죠.
종교를 믿는 사람이 웃고 넘길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린아이들을 저주하는 엘리사가 종교가 입니까.
그런 엘리사의 요청을 받아 암곰 2마리를 보내 어린아이들 42명을 죽인 야훼는 올바른 신입니까.
어린아이들 중 42명을 죽였다고는 것은 모인 어린아이들이 42명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70명. 80명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놀아도 10명 이상 모이기 힘듭니다.
70명. 80명 모인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모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만약 곰 2마리가 나타나면 어린아이들은 모두 흩어집니다.
곰 2마리가 죽일수 있는 어린이 수는 불과 2명 밖에 안됩니다.
곰은 먹이를 잡으면 한마리만 잡고 있지 한마리 잡아놓고 또 먹이를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린아이들 70. 80명이 있었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곰 2마리가 어린아이들 42명을 죽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바이블에 기록한 사람의 과학수준이 부족한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서 3일동안 살았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도 그렇고 지구가 평평하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도 그렇고 바이블을 기록한 사람의 과학수준이 부족합니다.
루터와 캘빈도 멈춘 것이 태양이지 지구냐며 지동설을 비판했습니다.
예수가 유대지방에서만 살았다면 고향사람들에게 배척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고향사람들을 배부르게 했더라면 병자를 고쳐주었다면 고향사람들에게 환영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12세에서 30세까지 인도에서 불교와 바라문교를 배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유대교 율법을 부정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야훼의 말을 부정하고 안식일에 일을 했기 때문에 고향사람들에게 배척되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죄를 찾을 수 없다고 예수를 풀어줄려고 했는데,
고향사람들이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유대교 사제들이 앞장섰습니다.
그 죄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짊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2000년간 나라없이 생활합니다.
지금도 예수는 고향에서 배척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않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신약은 금서입니다.
예수를 믿지않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지옥에 가는가 천국에 가는가.
예수를 믿지않는 이스라엘 유대인들도 천국에 간다고 생각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잘못된 말입니다.
어느 종교에나 구원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1절의 천지창조는 엘로힘의 천지창조입니다.
바알신의 부친이 엘 입니다.
창세기 1장과 1절의 천지창조는 바알신의 부친 엘로힘의 천지창조입니다.
바이블에는 엘로힘이 2400번 나옵니다.
바이블의 주인공은 엘로힘입니다
아르쥬나여~~~ 대영제국과도 바가바드기타를 바꾸지 말라....
감사합니다~^^♡😊🎈❤
먼가 알듯 말듯 혼돈의 연속입니다
결국 무위의 행을 하면 살육전조차 신성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쟁을 하라는게 아닌 전쟁으로 드러난 신성의 드러남을 누리라는 얘기 겠죠
전쟁에 대해 자유자재하니 일부러 전쟁은 하지 않겠죠
직관적인 앎은 올듯 말듯 한데
논리적 앎은 어렵네요🙏
"이 물질세계는 누구나 어떤 행위든지 행위를 하게 되어 있고,
또 이 세상에 속박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가 있고,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 행위가 있다.
행위의 결과를 목적으로, 거기에 집착한 상태에서의 행위는 하나의 행위가 다음 행위의 원인이 되는,
희로애락이 반복되는 환생의 쳇바퀴에 구속되게 만든다.
반면에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 그저 할 일을 하는 행위는 자유에 이르게 한다.
즉 행위의 길의 핵심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하는 것이다"
저는 이 개념을 선과 악의 이분적인 내용이 아니라, 일어날 일은 일어나며, 참나는 행위의 결과를 넘어서고,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행위자로 여기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해도 죄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행위자가 아니므로 자신의 행위와 그 결과에서 자유롭습니다.
즉 모든 존재자체가 자기자신이고, 신적인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억양이 너무 이상해서 ㅎㅎㅎㅎ 짧은 영상하나에 광고가몇개인지..포기하고 그냥 갑니다 ㅜㅜ
예 그러네요..
억양도 이상하고 중간광고는 제가 의도치않게 다 들어가 버렸네요.. ㅜ
처음 억양이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행위자 너머에 아름다운 마음이 느껴지기에
구독과 좋아요를 누루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자주 찾아 듣겠습니다
@@치유의책장깨달음으로저는 오히려 말씀해주시는 톤이 그냥 글을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몰입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진심으로요
일본 작품이군요. 빠가 빠가. 깃타. (바보. 바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