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조보다는 사도세자의 입장에 더 공감이 가고, 정비 정성왕후를 냉대하다 못해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거나 이런부분들이 최악으로 느껴졌네요~ 영조 성격이.. 한번 심사가 꼬이면 사람들 앞에서 꼽주고 무시해서 무안주는 게 기본이라.. 단, 말씀대로 영조는 백성들에게는 좋은 임금이었습니다~
@@이미미-e7u 단연 영조는 인조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더 좋은 왕이며 좋은 업적을 많이 많이 남겼습니다~ 다만, 인조와 영조가 아들에게 가혹했던 공통점이 있으니 그 부분에서는 최악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표현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네요~ 너그러히 양해 부탁드립니다~! ㅠ
지나 가다가 잠깐 한마디 하고 갈 게요.^^ 조선시대의 '궁녀'는 서양의 '시녀'와 전혀 다릅니다. 서양의 '시녀'는 엄청나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입니다. 예컨대 '백작 부인' 이상 정도의 신분이 되어야 자격이 주어질 정도 입니다. 급여도 없고 오로지 명예직 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부'를 갖춘 집안이어야 하고 따라서 권력도 갖추어야 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비유하자면, 영의정 좌의정 등 정경부인들이 왕비 또는 공주와 담소를 나누고 옷 입는 것을 도와 준다거나 하는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조선시대의 '궁녀'는 서양의 '하녀'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엄연히 의미가 같게 해석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개인적 의견입니다 말씀대로 서양권에서 시녀는 정말 좋은 집안의 영애들이고 조선의 궁녀나 무수리와는 급이 달랐죠 개인적으로 며느리의 하녀, 숙의 문씨 보다는 시녀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 집중해서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피드백도 감사합니다! 또 자세한 설명도 넘넘 최고입니다!♡
영조 자체가 특이한 케이스라서 본인은 예외다 라는 맘이 항상 있을수있겠죠 모후인 숙빈최씨만 봐도 무수리가 저런 관직을 받을수가있을까요?? 절대불가아님? 마치 연산군이 장녹수 같은 기생을 숙용에 자리에 올려놓은것과 같겠죠 그래도 연산군은 숙용이네요 영조에모후는 숙빈이죠~~
@@역사톡 맞습니다 영조는 티를안냈지만 심각한 컴플렉스에 평생 시달린사람으로 생각이됩니다 그이유는 중전인 정성왕후 가 곱게 자라 손발이 흰것을보고 경멸하여 다신 찾지않았다 한것에 비유해보면 양반집 규수 티를 낸 정성왕후가 못마땅하고 나아가 자신의 모후의 출신이 천하다는걸 비꼰다 혼자 자격지심에 그녀를 다신 찾지않았다 하니`~~ 가히 그밴댕이 속알딱지를 알만 하지않겠음? 이후 계비 정순왕후 역시 집안이 별볼일없는 규수로 일부로 골랐을정도이니
왕족 이니 어쩔수 없죠. 보위를 물려 받아야할 자손이 번창 해야 하니. 왕이 바람 피우면 정당화 했죠... 하지만 아무리 세자라도 왕에 오르지 못하면 그것은 아버지 왕한테 인륜적으로 안좋게 보는건 마땅하죠. 법적으로 따지면 자신도 죄를 지었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 또는 자식을 추궁 할수 있느냐 할테지만 . 왕은 특별 했습니다. 고려때에는 자식들간에 혼인 하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혈통 관계 혼인이죠. 국왕의 핏줄기는 본시 국왕에 몸에서만 자란다는 성설. 그러니까 고려 시대 이전에서 부터 씨족 사회제도 이다 보니까 혼인도 혈통에서만 한것 입니다. 우리의 시조는 단군이시니. 기원전 3333년 10월 3일에. 서울에 왕검이 나라세우고. 중국에 공산 문화 받아드렸다. 핏줄기 같은 씨족 사회여. 씨족 사회 넘치면 부족 사회고. 부족 사회 넘치면 부족 국가이니라. 그중에서 앞선 나라 고조선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와 숙의문씨 영상이 올라오다니 감사합니당!❤
왜안돌아와요?ㅠㅠ
영상 좋아요
좋아서 따봉도 누르고 구독도 했는데 왜 안돌아와요?
영조 무수리태생이라 콤플렉스 덩어리였다더니
하는 짓이 천박한 걸 보니 지 본바탕은 못 속이네
오ㅏ 이준호 영민한 정조역에 진짜 찰떡~
갠적으로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연출 엄청나고 영화같은 웰메이드 사극이죠
다음 영상은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입니다~
@@역사톡 ᆢ
효장세자도 숙빈최씨 상중에 낳아서 숙종이 혼냈다는 기록이 있음. 꼭 상중에 애를 낳음. 백성에게 괜찮은 왕이었지만 가족에게는 최악의 사람이었음. 형.형수.아들 죽이고 정실은 냉대했고 역대왕중 정실 냉대한 최악의 남편.
맞아요 ㅋㅋㅋ 그래 놓고 막상 내로남불 오졌죠
정조도 처음에 태어났을 땐 요절한 친형인 '의소세손'이 사망하고 6개월 반 지나고 태어났다고 해서 냉대했다고 하죠 ㅋㅋㅋ
합궁은 훨씬 이전일텐데 말이죠..ㅎ
자식을 낳은 건 아니죠.만들었지
영조가 최악의 왕은 아니죠
성격은 괴팍했지만
왕으로서는 나쁘지않은
최악은 선조 인조로 알고있어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조보다는 사도세자의 입장에 더 공감이 가고, 정비 정성왕후를 냉대하다 못해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거나 이런부분들이 최악으로 느껴졌네요~ 영조 성격이.. 한번 심사가 꼬이면 사람들 앞에서 꼽주고 무시해서 무안주는 게 기본이라..
단, 말씀대로 영조는 백성들에게는 좋은 임금이었습니다~
임금의 공적생활과 사적생활은 구별 해야합니다.
영조와 인조를 한 반열에 놓고 최악의 왕이라고 한다면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단 백성에게는 좋은 임금이었다니...
그것이 임금의 가장 중요한 덕목 입니다.
@@이미미-e7u 단연 영조는 인조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더 좋은 왕이며 좋은 업적을 많이 많이 남겼습니다~
다만, 인조와 영조가 아들에게 가혹했던 공통점이 있으니 그 부분에서는 최악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표현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네요~ 너그러히 양해 부탁드립니다~! ㅠ
역사에 100% 객관성은 없다. 영상 감사합니다. 괜히 트집잡는구만
다음엔 정조의 후궁 화빈윤씨에 대해서 부탁드려도 될까용?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역사톡 드라마 옷소매붉은끝동보다가 궁금해져서요! 화빈윤씨 영상이 잘 없더라구요(아무래도 유명하지 않아서인가봐요)좀 부탁드릴게용!!선생님😘
옷소매 붉은 끝동 팬이었어서 블로그에 글도 쓰고 했었어요~~😃😃 재밌게 영상 만들어 오겠습니당!! 감사해용~~
@@역사톡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화빈윤씨 영상 업로드 했습니다!! 이번엔 일이 있어서 좀 업로드가 늦었네요! 양해 부탁드리며, 재밌고 유익한 감상하세요~~ ♥
주책맞은 노인네같으니
ㅋㅋㅋㅋ 표현 너무 재밌으셔요👍
지나 가다가 잠깐 한마디 하고 갈 게요.^^
조선시대의 '궁녀'는 서양의 '시녀'와 전혀 다릅니다.
서양의 '시녀'는 엄청나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입니다.
예컨대 '백작 부인' 이상 정도의 신분이 되어야 자격이 주어질 정도 입니다.
급여도 없고 오로지 명예직 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부'를 갖춘 집안이어야 하고
따라서 권력도 갖추어야 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비유하자면, 영의정 좌의정 등 정경부인들이 왕비 또는 공주와 담소를 나누고 옷 입는 것을 도와 준다거나 하는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조선시대의 '궁녀'는 서양의 '하녀'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엄연히 의미가 같게 해석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개인적 의견입니다
말씀대로 서양권에서 시녀는 정말 좋은 집안의 영애들이고 조선의 궁녀나 무수리와는 급이 달랐죠
개인적으로 며느리의 하녀, 숙의 문씨 보다는 시녀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 집중해서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피드백도 감사합니다! 또 자세한 설명도 넘넘 최고입니다!♡
영조 자체가 특이한 케이스라서 본인은 예외다 라는 맘이 항상 있을수있겠죠 모후인 숙빈최씨만 봐도 무수리가 저런 관직을 받을수가있을까요?? 절대불가아님?
마치 연산군이 장녹수 같은 기생을 숙용에 자리에 올려놓은것과 같겠죠 그래도 연산군은 숙용이네요 영조에모후는 숙빈이죠~~
출신 성분이 너무 좋으면 오히려 부담스럽고, 자신과 비슷한 것 같거나 좀 더 낮으면 오히려 더 호감이었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사톡 맞습니다 영조는 티를안냈지만 심각한 컴플렉스에 평생 시달린사람으로 생각이됩니다 그이유는 중전인 정성왕후 가 곱게 자라 손발이 흰것을보고
경멸하여 다신 찾지않았다 한것에 비유해보면 양반집 규수 티를 낸 정성왕후가 못마땅하고 나아가 자신의 모후의 출신이 천하다는걸 비꼰다 혼자 자격지심에
그녀를 다신 찾지않았다 하니`~~ 가히 그밴댕이 속알딱지를 알만 하지않겠음? 이후 계비 정순왕후 역시 집안이 별볼일없는 규수로 일부로 골랐을정도이니
일종의 동변상련인가요 ..ㅎㅎ 아주 심사가 꼬일대로 꼬였죠
주변 사람 정말 다 떠나가게 할 피곤한 스타일입니다 😫 😫
왕이니까 그나마 주변에 사람들이 남아있었을 뿐..
@@역사톡 주제가 내로남불이라서 하는말이지만 ㅋ 그래놓고 자식교육이나 자식배우자감은 엄청나게 따졌음 ㅋ 그야말로 내로남불이겠지요
며느리인 세자빈, 혜경궁 홍씨에게는 배경이 좋다면서 비아냥거렸다죠~~ (선조의 소생인 정명공주의 후손)
이중적인 마음이 있었나봅니다
왕족 이니 어쩔수 없죠. 보위를 물려 받아야할 자손이 번창 해야 하니. 왕이 바람 피우면 정당화 했죠...
하지만 아무리 세자라도 왕에 오르지 못하면 그것은 아버지 왕한테 인륜적으로 안좋게 보는건 마땅하죠. 법적으로 따지면 자신도 죄를 지었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 또는 자식을 추궁 할수 있느냐 할테지만 . 왕은 특별 했습니다. 고려때에는 자식들간에 혼인 하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혈통 관계 혼인이죠. 국왕의 핏줄기는 본시 국왕에 몸에서만 자란다는 성설.
그러니까 고려 시대 이전에서 부터 씨족 사회제도 이다 보니까 혼인도 혈통에서만 한것 입니다.
우리의 시조는 단군이시니.
기원전 3333년 10월 3일에.
서울에 왕검이 나라세우고. 중국에 공산 문화 받아드렸다. 핏줄기 같은 씨족 사회여.
씨족 사회 넘치면 부족 사회고.
부족 사회 넘치면 부족 국가이니라.
그중에서 앞선 나라 고조선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조 정조 추앙하는 드라마가 많은데 영조도 그렇고 정조도 그렇고 노답에 꼰대 유교 탈레반임
조선 최악의 임금이라고 한걸 생각해보니...이 두 임금은 아들에게 최악의 아버지였던 임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그 의미로 조선 최악의 임금이라고 이야기 하신건 아닌지..
영조는 자기자신을 짐이라고 부를정도인데 뭐무슨일이든 할수있죠
독불장군 스타일인듯합니다 성격이
영조가 무슨 조선 최악의 군주입니까?
나 원...기가 막혀서.
사도세자건만 빼면 영조의 업적이 어마하거늘..
방원이가 왕이될라고 환장한 이유가있겠지
태종 이방원도 후궁을 엄청나게 두었죠,, 즉위 하자마자 돌변.
장녹수보다 나쁜후궁입니다ㅡ
인조 후궁 귀인조씨(소용조씨)
영조 후궁 숙의문씨
아주 최악이죠. 소현세자와 사도세자를 아버지 임금들로부터 이간질했으니,,
영조는 좌파였나보네. 내로남불 오지네ㅋㅋㅋㅋ내로남불 수준이 민주당에서 당대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고위원급은 할수있겠다
아끼는 며느리가 죽었는데 ㅈ.이 서는건 별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