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13장 ] 한영버전ㅣ온전한 것(영적 사랑)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하나님의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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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8 окт 2024
  • [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란? ]
    농부가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일년내내 수고하여 농사를 짓듯이
    영적인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열매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약 5:7~8
    전도 많이 하고, 교회에 충성, 봉사하는 사람이 열매입니까?
    전도하고 선교하고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요, 의무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상급을 쌓는 것에 해당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열매의 표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천국에 상급을 많이 쌓아 놓고도
    결국은 열매되지 못하여 지옥에 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언하고 방언하고 병 고치는 등, 이적, 기사를 행하는 신령한 종이 열매입니까?
    혹은 수많은 성도들에게 은혜 주는 부흥강사나 목회자들이 열매입니까?
    아니면 자기 몸을 불살라 희생하고 구제하는 자가 열매입니까?
    예언, 방언은 성령의 은사(잎, 가지)이지 열매가 아닙니다.
    여름까지는 가지가 화려하게 뻗어나가고, 잎이 무성하면 농부가 기뻐하지만
    가을이 되어 추수할 때가 되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하다면
    농부는 탄식하며 가차 없이 도끼로 나무를 찍어 불살라 버릴 것입니다.
    지금 현대 교회는 가지와 잎만 무성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도 같습니다.
    아무리 기독교 역사와 웅장한 교회 건물과 수많은 성도들의 숫자, 체계적인 교리와 교파, 조직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화려한 가지와 무성한 잎만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닌지 진지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앙 상태를
    돌아보아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열매와 씨는 같습니다.
    사과 씨를 심으면 사과 열매가 맺히고 포도 씨를 심으면 포도 열매가 맺히듯이
    어떤 씨를 심었느냐에 따라 열매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씨는 곧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이루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씨를 우리 심령 속에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일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시고 보여주시며 가르치시다가,
    마침내 사랑 받을만한 아무런 자격도 가치도 없는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원수노릇 하는 불의한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영적 사랑을 이루시고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사랑의 씨를 심었으므로 열매도 사랑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의 씨를 심었으니 마지막 추수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이룬 자가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키시고 성령을 부어 주시며
    신령한 하늘의 은사들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성령받고 신령한 은사를 받고도 마지막에 사랑의 열매를 맺은 아름다운 알곡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탄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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