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ol5cz8iq5q 영국은 신대륙을 개척할려고 캐나다와 미국지역을 개발했지 거기있던 원주민은 다 쫓아내고 아프리카의 노예들과 유럽의 각종 민족이 미국에 들어오게됨 근데 영국이 유럽내의 전쟁 때문에 재정적 으로 안좋아지게 되자 미국에 세금을 엄청 많이 맥임 그래서 미국은 영국으로 부터의 독립 전쟁을 한거임 애초에 미국 이란 땅에는 원주민이 옹기종기 모여지냈고 거기엔 국가가 없었음 아메리카의 국가라고 하면 아즈택 제국이랑 잉카제국 대부분은 남쪽에 있었지 결론적으로 미국은 영국한테 점령당한게 아니라 영국이 북아메리카를 개척한다는 명분으로 원주민들 내쫓고 자국민이랑 노예들을 보내 개발했는데 세금때문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는게 맞음
요즘 이런 생각이들어..한줌 땅이지만 그래도 주변에 수많은 침략으로 현재 국가라도 남겨준 조상에게 고맙단 생각..지도 보면 옆으로는 중국 위로는 북군들..밑으로는 일본..중국 소수민족이 5십?개로 아는데 그럼 중국도 원래는 오십몇개로 나누어진 땅이란 소리인데..이정도라도 민족을 지켜준 조상에게 참 험난한 세상을 살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싶다..
이씨조선 이성계 편들어 주는 헛소리 생각 이라고 봅니다. 현시대 중국 군사력 총 다해도 200만명 밖에 안됩니다. 중국은 그중 5개로 나눠서 운영합니다. 몰빵하지 않는 이상 현시대에도 40만 군사입니다. 명나라가 50만 군사를 한번에 만든다구요?? 만들어서 만주로 쳐들어 온다구요?? 그거 이성계와 정도전이 위화도 회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개소리 일 뿐입니다.. 참.. 조선시대부터 뿌리깊게 박힌 사대주의의 표본이 센서 스튜디오는 아니길 바랍니다..
임진왜란때 전성기였던 일본이 20만 대군 동원하고도 이미 쇠퇴하던 명나라와 조선 상대로 한치의 땅도 점령못하고 끝났는데 다 망해가는 고려가 5만명 들고 전성기 명나라 상대로 전쟁? 이 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거임 신라가 백제 멸망을 위해 동원한게 5만인데 명나라 상대로 요동정벌하겠다는 고려가 겨우 5만가지고 뭘 해보겠다고
일본이 한치의 땅을 점령 못한 건 아니지 충청도 지역 제외하면 거의 다 먹혔었고 명나라랑 협상할 때도 조선 절반주는 조건은 받아들여졌었음 그이후에 일본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무산되었던 거지 그리고 5만으로 요동정벌 하는 건 좀 무리수긴 했지만, 그때 당시 명나라도 전성기는 아니었음 장수도 이성계였어서 명나라가 이겼겠지만 애 좀 먹긴 했을 거임
최영장군이 젊었을 때 원나라 군대와 함께 명나라 독립군 소탕하면서 100전 100승을 이루어 황제 하사품으로 검도 받았다고 한 사실이 있고, 명나라의 전투력을 잘 아는 상황이었지요. 국내 상뢍이야 어쩐지 그게 문제였겠지만. . . 여진족도 고려보다 적은 병력으로 명나라 무너트리고 청나라를 건국도 했지만. .
쭝궈몽 둥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이성계 입장에서 1차 요동 정벌 경험이 좋지 않게 끝나서 더 그런 듯합니다. 군사만 잃고 소득 없이 물러났으니까요. 1차 요동 정벌에서 이성계에게 무슨 떡고물이라도 소득이 있었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고, 자신을 견제하려고 최영이 우왕을 충동질해서 이성계를 보낸 거니 이성계 입장에서 요동 정벌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안 했을 것 같습니다.
고구려를 대입하는 바보들은 고구려는 수성전이었고 반대로 당시 고려군은 야전에서 공성을 벌여야하는 공격자의 입장이었다는걸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음 심지어 비가와서 병장기들 녹슬고 고려내지에서 보급이 되지 않아 굶주린게 당시 원정군 상황인데, 나하추 무너지고 북원을 아작낸 남옥의 15만대군이 남하하는 상황에서 그 상황의 고려군이 버텨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이 ㅂㅅ들은 그 고구려조차 요동성 전투 이전의 대규모 야전인 주필산 전투 때는 고구려군이 전멸당하던건 빼먹어서 모름 ㅋ 국사교육도 ㅂㅅ인데 요동성 전투는 가르치면서 주필산전투는 빼먹고 가르치는게 이 나라 역사 공정 수준이 일본 수준인걸 보여줌 ㅋㅋㅋㅋㅋㅋㅋ 좀만 더 분발하면 짱도 뛰어넘을듯 ㅋ
그 당시에 1387년에 고려수군을 맡고 있던 정지장군이 자신이 관음포해전에서 이겨서 남해안 재해권을 되찾았으니 대마도를 점령해서 왜구들 전부 쓸어버리자고 했는데 최영장군이 이 의견을 씹고 한민족의 고토를 되찾아야 한다고 요동정벌 주장 대마도정벌를 주장한 정지장군도 박위장군도 모조리 요동정벌군 지휘부에 편성해서 이성계와 함께 보냈는데 이성계에 동조해서 같이 위화도회군 회군 성공후에 박위장군 지휘하에 대마도정벌을 한걸보면 대체로 고려의 장군들은 요동정벌은 미친짓이고 대마도정벌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박정헌-z6x 님아 근데 고려군은 어케 요동성 먹을까요? 님이 요동에 있는 성들 장악이 힘들다고 했잔아요 명나라군은 가만히 구경 만 할까요? 그리고 고려군이 수나라 당나라 처럼 명나라가 도저히 감당 이 안되는 병력으로 요동을 공격 했나요? 수성은 명나라은 못하고 고려군 만 할수가 있는 방법이에요ㅋㅋㅋㅋ 그리고 고구려보다 고려가 군대가 많았다고요? 정말이에요? ㅋㅋㅋ 땅 규모 만 봐도 고려은 고구려 상대가 아님 홍건적 외적 도적떼들 한테도 당했던 고려가 수나라 당나라군 상대 했던 고구려보다도 군대가 강하고 병력이 많았다고요ㅋㅋㅋ 참 재미있는 사람이네요ㅋㅋㅋㅋ
네가 말한 원나라가 그 전쟁을 못하는 중국한테 대륙에서 쫓겨났고, 걔네 잔당 북원은 수도 초토화 당하고 칸 모가지가 따이는 지경이었는데? 거기다 명나라는 원나라가 실패한 베트남 정복도 성공한 나라임. 합구필분 분구필합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듯 왕조 말기에 골골대는 모습만 볼게 아니라 새 왕조 열었을 때 중원의 왕조들 여력이 상상을 초월한단 사실도 인지해둬야지. 당시 명나라는 엄연히 후자에 속하는 상황인데.
이 문제는 좋고 나쁜 두가지 면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삼백여년 간 북방호족들의 땅이었던 중국의 화북지방은 아직 옛 중국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던 터였고 남경의 주원장 역시 아직 확실한 국가체제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데다가 내란의 조짐마저 있었고 이것을 두려워한 명태조 주원장은 자신을 도와 명을 개국하는데 공을 세운 숱한 명장들을 모조리 숙청해서 쓸만한 군 지휘관이 별로 남지 않았었다. 만약에 고려가 요동을 정벌 했더라면 명나라는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고 고려는 적어도 옛 금나라만한 크기로 자라났을 것이고 만주족과 몽고족을 흡수해서 강대한 나라를 세울수 있었을 것이며 중국인들은 결국 양자강 이남으로 다시 밀려갔을 것이다. 위화도 회군이 가져온 한가지 전화위복이라면 자고로 중국대륙을 정복하여 왕조를 세운 북방호족치고 거대한 중국에 문화적으로는 물론 언어적으로까지 동화되어 사라지지 않은 민족이 없었다는 것이며 우리 민족 역시 그 길을 따라 소멸의 길로 사라져 갔을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반도는 중화인민공화국 고려성으로 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시 정도전 같은 사람 역시 만주땅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고 하는데 이방원은 그것보다는 우리 민족이 자기 언어를 쓸 수 있는 문자를 개발하는 것이 더 급하다고 하여 둘 간에 의견차이가 좀 있었다고 한다. 이태조의 조선개국 직후 명나라는 내전상태로서 연왕 주체(훗날 영락제)는 남경정부와 전쟁중이어서 북경을 비운 상태였기에 정도전의 으견이 일리는 있었지만 모든 북방 소수민족들이 중국을 정벌하고서 사라져간 이유가 문화적인 정체성의 부족함을 간파한 이방원은 우선 우리 민족의 내면적인 정체성 확립을 확실히 해서 민족의 소멸을 막아야 한다고 보고 정도전의 의견을 반대한 것 아닌가 여겨진다. 훗날 호랑이같은 두 아들을 제치고 책벌레 충령대군(혹은 충녕대군)을 세운 이유도 그런 앞날을 내다본 것 아닌가 한다. 나라는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다고만 좋은 것이 아니다. 그 큰 나라의 통일을 유지하기위해 그 많은 백성들이 심한 압제와 폭정과 내란에 시달려온 중국의 오천년 역사를 보면 좀 작더라도 내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된 나라가 더 낫지 않을까 보여진다. 옛날 노자가 이상적인 국가는 영토와 인구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고 했던 말을 상기해야 한다.
이미 위화도 부근 도착할때쯤 군량이 바닥나서 추가 보급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함. 그대로 요동 갔으면 굶어 죽어 전멸했을판... 최영이 국제정서에 어려웠던게 당시 소문만 듣고 북원하고 양면전쟁하면 되겠지 했는데 고려군 출병 하기도 전에 북원은 멸망했고 몽골 수도 카라코룸까지 싹타 불태워 버림. 그 15만 대군이 남하하던중
최영 이성계 두 영웅이 뜻이 엇갈린거 라고 봅니다. 요동정벌 될 수도 안될 수도 있죠.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조선 세우고 시도한걸보면 시기와 준비만 되면 가능하다는게 당대의 시각이죠. 하지만 누굴 비하해서는 안됩니다. 무조건 안되면 같은 논리로 청나라 러시아를 이기고 세계 1,2위 영국 미국의 동의를 얻은 일본에게 나라넘긴 이ㅇㅇ은 합리주의자 인지요?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대결하던 일본에게 독립운동은 억지인지요? 모든게 결과론이지만 무모한 일을 성공하니 영웅인겁니다. 강감찬, 이순신, 세종대왕, 경부고속도로, 경제개발 등 당대의 천재들이 억지라던걸 성공 했습니다. 뛰어넘었으니 영웅인거죠. 다만 누굴 야유하기보다는 서로 존중만해도 양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영이 억지라면 두번이나 중원정벌을한 금나라는 뭐고 언급하기도 싫지만 일본은 뭡니까 다 변방이라고 그들을 무시만 했지 그들에게 조아린 현실이죠. 그런데 코앞에 조상땅 요동도 못되찾고 그게 억지라니 너무합니다. 그렇게 치면 이제 동북공정도 끝났겠다. 이북땅도 넘기고 한강이북도 넘기고 우리나라는 끝나는거죠. 너무 허황된거도 나쁘지만 너무 유약한 생각도 나쁩니다.
그당시 명나라가 현재 미국하고 같다고요 말이되나요 명나라도 40만 50만을 밎나요 명도 대부분 오합지졸 이었음 그리고 원이 중국화되어서 훈련도 거의 하지 않고 반란군하고 싸우다 유능한장군 경험있는 병사들도 다죽어서 오합지졸이었음 고려의 문제는 5만명을 요동 원정군으로 보냈으면 후방에 최소한 5만명 이상의 잘 훈련된 병사를 조련 했어야되는데 최영장군의 무모한 원정이 문제 였던것임 결국 고려가 망한건 최영장군이 성급함 그리고 이성계 조민수를 너무 믿었다는것임 차라리 이인임이 있었다면 이런 성급한 원정군은 일어나지 않았을듯
그당시 전세계 생산량 절반을 담당하던 애들인데 애초에 저당시에는 미국이상 존재가 맞아요 요동 정벌해도 어차피 45만 오합지졸 군대들이 5만명은 떡을 치고도 남고 보통 국가의 군인들은 전체인구의 1~2% 유목민족들의 경우 전체인구의 10~20% 정도 뽑을 수 있는데 마음만 먹으면 저그마냥 수백만 대군을 뽑을 수 있었지만 재정 쌓을려고 덜 뽑은게 45만인데요? 중국이 군사력이 약할때여도 충분히 한반도 정벌은 할 수 있었습니다 자원도 없는 하찮은 땅이라 그냥 냅 둔거죠 점령해서 얻는게 있어야 점령하니까요 전쟁한다면 위쪽에서는 몽골 왼쪽에서는 신강과 티베트가 약탈할거고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주변국들을 침략해서 대제국이 될테니 다 해결하려면 머리 아파져서 적당히 몇번 패서 전쟁에서 져도 빈사상태로 만드며 그냥 너 내 따까리 되라며 냅둔거죠
회군 안했으면 필패였을 상황이죠 그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던게 이성계였구요.. 최영이 말년에 노망나서 억지로 밀어붇히는 바람에 출정했다지만 압록강 직전에 회군한건 진짜 어쩔수 없지만 잘 판단한거임.. 건넜으면 가다가 전염병창궐에 장마때문에 옷과 몸이 다 젖은채로 행군하는 군사들 제대로 전투하기도 전에 지쳐쓰러지고 가서 싸운다 한들 필패임!!
전쟁은 돈줄이라는 말이 있듯이 명사 읽어보면 남옥의 15만이 전부가 아니라 옆에 20만 10만씩 보유한 장군들은 다른데 치고 있었는데, 저 때 이미 전력으로 100만 대군을 짤 수 있는 힘이 있었던게 명나라고 당시 명이 더 전성기를 일찍 맞았고 조선은 상대적으로 뒤에 어느정도 병력을 일으킬 힘이 생겨서 힘의 시대 차이가 있다 보니 게다 이 시점에는 고려에는 재정이 없었고요. 이거 이외에 이전에 1차요동정벌에도 이성계 이인임 등 요동 먹었다가 군량 태워먹고 돈 없어서 다시 빠꾸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유지를 기반으로 넓게 생각해야지 단순하게 점령하고 끝인가라고 하면 그건 장수가 아니겠죠. 더 웃긴건 명사에는 처음에 주원장도 고려에서 온 사신이 요동은 고구려이후 원래 한민족 땅이라고 했었어서 아 그런가 그럼 고려에 그냥 주는게 맞지 않냐?하고 하는 게 있는데 최영이 그냥 급하게 걍 치자 해서 밀고 올라간 바람에 주원장도 고려도 그렇고 조선도 그렇고 더욱 더 싫어짐.
고구려가 수나라의 입조 요구에 성 박살내는거로 답해준거에 뽕차서 우리도 꼴받으면 맛깔나게 싸대기 날려주는 식으로 하면 안됬음? 하는 사이다패스분들이 계시는데... 고려는 고구려가 아닙니다... 고구려가 그냥 대단하고 그 노빠꾸 외교도 할 입장과 준비가 되니까 한거지 위화도회군 시점의 고려는 절대 그럴수 없어요...
1차 요동정벌 때는 원명 교체때 했을때도 고구려 시기때 수나라 막았던 요동성 함락 했지만 겨울철이고 군량미 없어 가지고 철수 했는데 전사한 군사가 요동성 전투때 전사한 군사보다 철수할때 전사한 군사가 더 많았다고 했고 저 시기때는 장마철 때문에 성공 더 어렵지 않았을려나 잠시 요동성 함락 시켜도 지키기 더 어려웠을거고
아뇨...대부분이 이성계가 요동을 쳤으면 잠시만 점령 후 그 다음에 바로 명나라에게 되치기 당한다고 하는데요..최영 장군도 멍청이가 아닌 전략가였으며...일단 이성계가 점령 후 여진족을 관리하면서 계속 주둔해서 명나라를 되쳤으면 됩니다..단지 꾹뽕이 아니라 옛 여러 사서 및 야사에서는 이성계는 여진족의 피도 흐르는 사람으로 해석도 합니다..그리고 개인적인 역사 해석으로는 여진,거란,말갈, 다 우리랑 같은 언어군 및 천신숭배 등 기마민족의 후예라 생각 함..같은 주어 목적어 동사 어구쓰는 민족들...저도 전주 이씨 효종 18대손이지만 이놈에 조선은 없어야 할 나라였음...요동 정벌 후 거기서 이성계가 여진족들과 잘 융합하여 만주땅을 지켰다면..... 참고적으로 여진역사서에서는 이성계가 조선건국하자 우리 여진 후손이 조선왕이 됬다고 함..또한 명 나라 초기에는 조선을 굉장히 의심하고 전쟁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음...지금의 미국과 명나라 비교는 좀 아니라고 봅니다..명나라도 건국초기였기에 불안한 정국이었고 50만 군대가 과연 한번에 이동이 가능이나 할까요? 아마도 10만~20만 수준..중국역사서의 뻥튀기는 심함..요즘 현대 세상에서도 군대 10만을 동시 이동하는거 무진장 어렵습니다..다들 군대 다녀와서 아시잖아요? 명군 50만이 북원 원정? 그걸 사실대로 가능이나 할까요? 역사는 해석의 학문이기에 단순 꾹뽕이 아닌 요동 정벌은 충분히 가능성있는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초기 미국이 건국되었을 때 그렇게 강하지 않았음..초기 명나라 건국과 미국초기 건국을 비교해야지요...지금의 넘사벽 천조국 미국과 건국초기 명나라는 비교 자체가 아니라고 봅니다
-_- 당시 명은 20만 이끌고 만주에있던 나하추 포위해서 항복받아냈는데 뭔 가능을 따집니까.. 20만 가능하면 50만도 가능한거지. 게다가 그이후엔 남옥이 15만 이끌고 북으로 올라가 북원을 기습해서 멸망시켰슴. 이떄가 위화도 회군하기 보름전이었구.. 당시 최영은 북원과 연대해서 같이 명하고 싸울려던 계획이었는데 애초부터 글러먹은 상태란거임. 고려가 요동을 회복할 의지가 1이라도 있었냐?? 요동이 명에 접수되기전에 요동책임지던 사람이 고려에 투항할려던것도 생깟던게 고려였슴. 이성계가 요동정벌해서 요동성 점령했을때 포기하고 돌아온 이유부터가.. 보급이란거 받질못해서 굶어 죽어가면서 간신히 돌아온거였슴.. 이런판에 뭔 요동정벌인건지.. 국사시간에 오로지 한국쪽 기록만가지고 가르치는건 한국 사학과 교수들이 죄다 병신들이라 그런거임.. 외국자료같은건 하나도 보질않았단 얘기고. 위화도 회군당시 요동은 명이 이미 차지한지 16년뒤이고 그동안 명은 꾸준히 요새화하면서 12위를 설치했었슴. 12위 = 6만 수비병력임. 게다가 수군통해서 여러곳에 군수물자 쌓아뒀었고.. 나중에 풍승-남옥이 나하추 칠때 여기통해서 친거였슴. 나하추가 항복당시 세력이 20만이었는데.. 나하추가 요동을 여러번 쳤지만 번번히 실패했었슴. 글구 가장 핵심은.. 당시 날뛰던 왜구가 수구러든 이유가 최무선이 화약제조법 알아내서 화포개발한뒤부터임. 근데 화약제조법을 알아낸거지 화약제조에 쓰이는 원료는 죄다 명나라에서 수입하고있었슴. 전에 북원이 야전에서 명나라 바르고도 공성전에서 대패했던 이유가 바로 화포때문인데.. 요새화된 요동을 친다?? 게다가 화약공급없이 그당시 왜구는 무슨수로 견제하구..
요동을 정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복한 새 땅을 지킬 수 있느냐가 문제죠. 군대도 주둔시켜야 하고 백성들도 이주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합니다. 요동 1차 정벌에 성공하고도 고려군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었지요. 이성계는 1차 요동 정벌 때 현실을 봤기 때문에 4불가론을 내세운 거죠.
그리고 농번일치의 30-40만이어봐야 오합지졸입니다 정예 병사 5-6만으로 청야전술 성 굳건히 지키면 끝이고 고려가 돈이 왜 없나요 벽란도 무역등으로 해상 상권 국가 아니었나요 최소 요동은 명과 분할 통치 협상을 하던 오랜 기간 알박기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지금 다 말하는게 if 이면 이런 if도 가능할것
중국 지배했던 나라들도 처음에는 다 똑같이 객관적으론 열세에서 시작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힘든 전쟁입니다만, 혹시 모르죠 중국이 다 우리 한민족 땅이 되어 있을지도. 반도에 갇힌 우리 민족이 실패든 성공이든 시도했던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중국 미국 눈치보며 살고 있게된 사건을 어쩔수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니 공감하기 힘드네요.
왕건과 이성계의 혁명은 똑같은 역성혁명이지만 왕건과 이성계의 비교가 왕건에게 모욕적인 이유 1. 왕건은 폭군 궁예를 몰아낸거지만 이성계는 멀쩡한 국왕이었던 공양왕을 명분도 없이 폐위시킴 2. 왕건은 폐주하던 궁예를 죽이지 않았음(공식적으로 도망가다 백성에게 맞아죽음)궁예의 후손들도 잡아 죽이지 않았음 하지만 이성계는 고려왕씨를 조직적으로 학살했고 왕위에서 물러난 공양왕과 그 아들들을 모두 참수함(중국왕조는 전왕조의 후손들을 잡아 죽이는게 흔했지만 한반도 왕조중 저렇게 잔인한 학살은 이성계가 유일함 그 신라조차 원수인 백제왕실을 저렇게 학살하진 않았음) 3. 왕건은 반쪽짜리 나라로 후백제와 신라를 멸망시켜 한반도 통일을 완성시켰지만 이성계는 찬탈이후 아무 업적도 없이 아들과 권력싸움하다 아들에게 왕위에서 쫓겨남 4. 왕건은 비교적 자주적인 왕조를 표방했지만 이성계의 조선은 처음부터 중국에 굴종적이고 나라이름조차 중국에서 받아옴 우리가 흔히 아는 조선이라는 국명은 단군조선이 아니라 중국인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임 P.S 가끔 이성계가 왜구와 홍건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 미화하는데 이성계가 싸운 대상들은 정규군이 아님 해적(왜구), 산적(홍건적), 망한 원나라 잔당들(나하추군대) 정규군이랑 싸운건 없음
서로 경우와 상황이 다른거지 누가 누구한테 모욕인건 없음. 왕건의 경우 철저하게 같은 민족끼리 내전으로서 오른 왕이라면 이성계는 말그대로 당대에 존재 했던 모든 외적들과 싸워 백전백승을 한 한반도 내에 전무후무하며 당시 고려라는 왕조를 유지가 가능케한 명장 중에 명장이였습니다. 대외적인 명분이라면 딱히 후달리지도 않죠. 그리고 이성계의 업적은 역성혁명 그 자체입니다. 조선 건국으로 인해 고려 때의 대내외적인 외침과 정치적 혼란 등을 안정 시켰죠. 조선초에는 명나라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요동정벌 논의가 있었을정도이니 고려말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명나라에 제시한 국명은 화령과 조선 이 두개 였는데. 화령이라는 단어는 당시 몽고의 수도와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이라는 국호는 강요함과 동시에 통보하는 형식이였습니다. 상당히 정지적인 수법이였죠. ps. 당시 이성계가 싸운 상대가 정규군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 때 당시 외적들은 정규군에 버금가는 막강한 군대였습니다. 그래서 이성계가 대단한거죠
당시 왜구는 소위 경인년 이후 왜구입니다 일본 남북조시대에서 북조에게 점차 밀리던 남조에서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여 왜구짓을 했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왜구라 하지만 실제론 남조 병력이 다수 포함된 남조의 정규군 왜구입니다 그리고 홍건적이 산적이라니요 ㅎ 명나라 건국 전에 그 홍건적에게 원나라가 쓸려나갈 뻔 했습니다 홍건적은 원나라를 붕괴시킬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원나라가 살아난 것은 그저 차칸테무르와 베이르테무르 그리고 코케테무르란 원나라의 이 세 명장들 덕분이었고요 더군다나 나하추가 원나라 잔당이라굽쇼? 명나라가 가장 경계했던 군벌입니다 원나라가 마지막 역전을 노릴 수 있던 근간이 바로 20만 병력의 노련한 군벌 나하추였습니다 명나라는 북원 + 나하추 + 고려 연합을 제일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미화라고요? 이성계를 싫어할 순 있지만 스스로 부실한 근거로 왜곡하진 마시길
4:42 휴 다행이다 이영상 못 볼뻔...
+이스터에그방 이용정지 내려젓네요...
이것만큼은 이성계한테 고맙다
이성계가 ㅈㄴ 현명하고 똑똑한거였구나
괜히 왕이 된 게 아님. 아들도 똑똑했고, 아들의 아들은 더 똑똑했고, 아들의 아들의 아들도 똑똑했고, 딱 여기까지 였지만
주제신청: 만약에 발해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오오
벌써 좋은데
와드 박아라 ㅇㄷ
발해가 거란한테 멸망하지 않았다면...... 몽골한테 멸망하지 않았을까요?
@@남진혁-v6s 그러게요..?
진짜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떼는 댓글들 보고 느꼈다. 저런 사람들이 국뽕 유튜브 조회수 채워주는거구나...
4:18 중국인이 되다니..차라리 자결 하겠다
차라리 귀신이 되는게 더좋은선택이다
ㅋㅋㅋㅋㅋ
ㅋㅋㅋ
@좀커 '아직도'
좀 아는 거 있는 유초딩하고 대화하는 것 같앜ㅋㅋㅋ
4:36 독립운동은 일어났겠네요
@@메다닥-j4u 그래도 차별은 했겠죠
중국은 독립운동으로 절대 빛 못봄
@@user-ol5cz8iq5q 미국이 영국한테 침략 당했다고? 역사시간에 졸았노 ㅋㅋㅋ
@@user-ol5cz8iq5q 영국은 신대륙을 개척할려고
캐나다와 미국지역을 개발했지
거기있던 원주민은 다 쫓아내고
아프리카의 노예들과 유럽의 각종 민족이 미국에 들어오게됨
근데 영국이 유럽내의 전쟁 때문에 재정적 으로 안좋아지게 되자 미국에 세금을 엄청 많이 맥임 그래서 미국은 영국으로 부터의 독립 전쟁을 한거임
애초에 미국 이란 땅에는 원주민이 옹기종기 모여지냈고 거기엔 국가가 없었음
아메리카의 국가라고 하면 아즈택 제국이랑 잉카제국 대부분은 남쪽에 있었지
결론적으로 미국은 영국한테 점령당한게 아니라
영국이 북아메리카를 개척한다는 명분으로 원주민들 내쫓고 자국민이랑 노예들을 보내 개발했는데 세금때문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는게 맞음
@@user-ol5cz8iq5q 그리고 전쟁하다가 따이든 아니든
민족의 정체성만 남아있음 독립운동은 일어남
주제신청: 만약 인조반정이 일어나지않았더라면?
오~
대한민국은 더 성장했을수도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역사에서 사라졌을듯
@@user-injective 중일전쟁때 우리나라가 전쟁터되었을듯
그럼 병자호란이 안이러나고 중립외교가 계속되네요
간만에 국뽕없는 상식이 있는 채널을 보네요
요즘 이런 생각이들어..한줌 땅이지만 그래도 주변에 수많은 침략으로 현재 국가라도 남겨준 조상에게 고맙단 생각..지도 보면 옆으로는 중국 위로는 북군들..밑으로는 일본..중국 소수민족이 5십?개로 아는데 그럼 중국도 원래는 오십몇개로 나누어진 땅이란 소리인데..이정도라도 민족을 지켜준 조상에게 참 험난한 세상을 살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싶다..
4:21 “중국인이 되었을 겁니다” 이멘트 왤케 소름돋냐..ㄷㄷ
이씨조선 이성계 편들어 주는 헛소리 생각 이라고 봅니다. 현시대 중국 군사력 총 다해도 200만명 밖에 안됩니다.
중국은 그중 5개로 나눠서 운영합니다. 몰빵하지 않는 이상 현시대에도 40만 군사입니다.
명나라가 50만 군사를 한번에 만든다구요?? 만들어서 만주로 쳐들어 온다구요??
그거 이성계와 정도전이 위화도 회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개소리 일 뿐입니다..
참.. 조선시대부터 뿌리깊게 박힌 사대주의의 표본이 센서 스튜디오는 아니길 바랍니다..
@@tv-ly2zx ㅋㅋㅋ 미안한데 그 당시 명나라는 몽골을 씹어먹고 중국을 통일한 한족왕조라니까 ㅋㅋㅋㅋㅋㅋ 일단 북평왕 주체, 몽골을 만리장성 이북으로 몰아내고 카라코룸까지 진격한 주원장이 버티고있었는데 ㅋㅋㅋ 과대한 국뽕은 그만해라
~한다면 컨텐츠가 너무 좋아여 형💕
ㅋㅋ루삥뽕
@@인간-i1u Wls
@@클로버유니버스 ㅗ
@@클로버유니버스 딱대^^
너때문에 내 12000원 날렸어
오히려 요동 먹고 명나라에게 고려가 멸망햇어도 북방 여진족과의 전혀 새로운 국가가 성립되엇을것임. 추론이 아니라 역사는 항상 그래왓으니까. 역사는 멸망햇다고 그 나라 끝 아니고 항상 새로운 국가가 다시 생겨낫다
국뽕빼고 팩트 손흥민 월클아님 느그흥
@@BL.E-v1p 맹구토버기
저당시 명나라면 불가능하지 그리고 명나라 없었어도 요동쳐서 일시점령은 했어도 금방 돌아올 가능성이크지 고려 꼬라지가 개판인데 무슨 본국만한 땅을 어떻게먹어
주제 신청: 만약 한국과 북한이 남북으로 갈라지지 않고 서독, 동독처럼 서동으로 갈라지게 된다면?
요거 조타
@@미국-y3v ㅇㅈ
동쪽 산맥오짐
장점:방어전 유리
단점:산에서 뭘하겠다는거지?
서쪽
장점:평야 개쩜, 한강있음
단점:딱히???
서쪽이 이기지않을까요?
산에서뭐해 평야도없는데...
@@o7o7o-k4m 음.. 서쪽이 한국이라면 중국,북한에게 둘러쌓여서 좀 그럴것같고 동쪽이라면 코리아팀님이 말씀하신것처럼 별로 좋은점이 없네여
명나라에 대해 이해하지못한 최영장군의 오판이었던것 같네요. 고려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도였겠지만 국내적으로 잦은 전란과 흉년 등으로 피폐해진 상황이고 명나라가 막 국력을 크게 떨치던 상황인데.
이성계는 이미 공민왕때 요동을 정벌하고 점령까지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결국 요동을 포기했었지요. 공민왕 시기보다 더 막장이었던 우왕 시기에 요동정복이라...절대 불가능합니다.
임진왜란때 전성기였던 일본이 20만 대군 동원하고도 이미 쇠퇴하던 명나라와 조선 상대로 한치의 땅도 점령못하고 끝났는데 다 망해가는 고려가 5만명 들고 전성기 명나라 상대로 전쟁? 이 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거임 신라가 백제 멸망을 위해 동원한게 5만인데 명나라 상대로 요동정벌하겠다는 고려가 겨우 5만가지고 뭘 해보겠다고
명나라 이제 세워진 나란데 뮌 전성기임 전성기가 아님
@@흥석채-x1p 전성기는 아니긴 한데, 적어도 국가적인 흐름에 있어 꺾여가던 왜란 당시의 명과 비교하면 더 나은 면이 많은 것도 사실.
일본이 한치의 땅을 점령 못한 건 아니지 충청도 지역 제외하면 거의 다 먹혔었고
명나라랑 협상할 때도 조선 절반주는 조건은 받아들여졌었음
그이후에 일본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무산되었던 거지
그리고 5만으로 요동정벌 하는 건 좀 무리수긴 했지만,
그때 당시 명나라도 전성기는 아니었음 장수도 이성계였어서
명나라가 이겼겠지만 애 좀 먹긴 했을 거임
@@young-gilchoi9220 근데 그렇게 따지면 협상할 이유가 있어요?
이미 명나라가 참전한 뒤에도 조선의 땅을 거의 다 먹었다는 이야기인데, 나라면 명나라까지 각을 보지 먹었던 땅까지 뱉진 않을 거 같은데...
@@흥석채-x1p 원제국을 정면으로 박살낸 명이다. 군사력으로는 그 당시 세계 최강이다. 생각하고 살아라
최영장군이 젊었을 때 원나라 군대와 함께 명나라 독립군 소탕하면서 100전 100승을 이루어 황제 하사품으로 검도 받았다고 한 사실이 있고,
명나라의 전투력을 잘 아는 상황이었지요.
국내 상뢍이야 어쩐지 그게 문제였겠지만. . .
여진족도 고려보다 적은 병력으로 명나라 무너트리고 청나라를 건국도 했지만. .
청은 명나라를 원래 이기는게 불가능했지만 내부에서 무너져서 멸명한거죠.
명나라의 부패가 결국 자기 자신을 무너뜨린거임.
그당시의 명나라는 내정이 완벽하게 자리잡지 못했음.만약 고려로 대규모 원정단이 왔다면 100프로 내부반란 일어났을시기.역사적으로도 그런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었기 때문에 명나라 역시 우리쪽으로 대규모 원정단 보내기가 껄끄러울시기.그 무시무시했던 수나라도 개국초기 내정이 완벽하지않았던시기 대규모원정으로 풍비박산
명이 내란으로 자멸 안했으면 청도 산해관 근처에서 계속 머물러 있었을거임 이자성의 난 때문에 자금성 괴멸되니까 오삼계가 지키던 산해관이 허무하게 뚫린거지
산해관을지키던 원숭환이 모반으로 사형당하지 않았다면?
@@박정헌-z6x 100만으로 꼬라박은 수나라랑은 다르지 그리고 북원도 멸망시킨군대가 고려는 못이기겠냐
주제추천: 만약 조선이 세워지지 않고 고려가 계속 있었다면?
실제 가능성은 높았음.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지고 정몽주가 거의 제거 직전까지 갔으니.
하남 ㄴ
이번 영상주제에 연장선이네 뭐...
@@이과생-o6w 하남이 왜요?
개성이 1000년동안 계속수도 였을수도ㄷㄷ
물론 그냥 평양이나 서울로 천도했을듯
요동정벌이 당시에도 말이 ㅈㄴ 안 되는 얘기였음. 이성계 포함 신하들 싹다 반대하는데도 최영이 그냥 지 죽을 날 얼마 안 남았는데 머라도 이루어 보겠다고 저지른 전쟁이었음.
그 말도 안되는 요동정벌이 왜 조선을 세우고
나서 이성계와 정도전은 바로 요동정벌을 준비하냐 앞뒤가 안맞지 않냐? ㅋㅋㅋㅋㅋ
@@두둥이-x4b그때랑 이때랑은 상황이 틀렸음 명나라는 내전중이였고
'왜 요동 정벌 안했어? 아쉽네..' 소름...ㄷㄷ
4:18 결과적으로 센서형이미 잡혀가거나 망명갔겠구나
주제신청: 하멜표루기에서 보면 조선은 개방적이지 못하고 상업보단 농업에만 치우쳐서 일본보다 서양의 근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였는데 만약 일본보다 개혁개방을 빨리했다면 어땠을지에 대한 주제신청을 합니다.
이게 아니면 청일전쟁 이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젔다면 어땠을까요??
@센서로동당중앙센놈위원회 뭐야 이게 ㅋㅋㅋㅋㅋ
하멜이 왔을 당시가 17세기쯤 아닌가요? 이때는 호란을 막 겼었던 때라 나라살림 어려운 와중에 북벌 추진중이어서 무기류 개혁에 큰관심을 보인걸로 알고있어요. 글구 그때는 아직은 서양에서도 근대라고도 할수없는 시기기도하고ㅎㅎ
이건 그냥 국뽕 유도 질문인듯
베트남 동양에서 가장 빨리 개방해서 많은 근대화 성공 = 프랑스한테 망함
이집트 베트남보다도 빨리 개방 근대화 성공 = 망함
러일,청일전쟁이 일본이 지면 일제강점기가 될 수 없고 청나라나 러시아의 식민지를 될 운명이었어요...왜냐면 열강의 식민지 점령이 유행이었던 시대라서..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았다면.....편리한 한글이 없었을 것임.
애초에 중국인으로태어남
如果没回军就没有朝鲜这个国家
Xi jinpingping
끔찍하다...
뭐 중국인으로 태어나는것도 나름 괜찮을지도?
차라리 10만도 거뜬히 뽑아내던 고려전성기때면 모를까 저때는 이미 망조가 든 상황이라...
ㅇㅇ 거의 망한 시점이라...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이 까이는 이유가
지가 집권하고 나서 정도전의 요동정벌
찬성하는 내로남불인걸 모르고 떠드는
사람들이 많네 당장 고정댓글부터
쭝궈몽 둥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이성계 입장에서 1차 요동 정벌 경험이 좋지 않게 끝나서 더 그런 듯합니다. 군사만 잃고 소득 없이 물러났으니까요. 1차 요동 정벌에서 이성계에게 무슨 떡고물이라도 소득이 있었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고, 자신을 견제하려고 최영이 우왕을 충동질해서 이성계를 보낸 거니 이성계 입장에서 요동 정벌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안 했을 것 같습니다.
고구려를 대입하는 바보들은 고구려는 수성전이었고 반대로 당시 고려군은 야전에서 공성을 벌여야하는 공격자의 입장이었다는걸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음
심지어 비가와서 병장기들 녹슬고 고려내지에서 보급이 되지 않아 굶주린게 당시 원정군 상황인데, 나하추 무너지고 북원을 아작낸 남옥의 15만대군이 남하하는 상황에서 그 상황의 고려군이 버텨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이 ㅂㅅ들은 그 고구려조차 요동성 전투 이전의 대규모 야전인 주필산 전투 때는 고구려군이 전멸당하던건 빼먹어서 모름 ㅋ 국사교육도 ㅂㅅ인데 요동성 전투는 가르치면서 주필산전투는 빼먹고 가르치는게 이 나라 역사 공정 수준이 일본 수준인걸 보여줌 ㅋㅋㅋㅋㅋㅋㅋ 좀만 더 분발하면 짱도 뛰어넘을듯 ㅋ
굳이 그렇게 깊게 생각안해도 고구려를 대입하는것들은 진짜 바보아닌가 애초에 고려 전기에나 고구려 계승의식이 있었던거지 이후부터는 나라이름만 고려지 완전히 딴나란데
결론: 이성계는 600년 앞을 내다본 엄청난 인물이다.
이 알고리즘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당시에 1387년에 고려수군을 맡고 있던 정지장군이 자신이 관음포해전에서 이겨서 남해안 재해권을 되찾았으니 대마도를 점령해서 왜구들 전부 쓸어버리자고 했는데 최영장군이 이 의견을 씹고 한민족의 고토를 되찾아야 한다고 요동정벌 주장 대마도정벌를 주장한 정지장군도 박위장군도 모조리 요동정벌군 지휘부에 편성해서 이성계와 함께 보냈는데 이성계에 동조해서 같이 위화도회군 회군 성공후에 박위장군 지휘하에 대마도정벌을 한걸보면 대체로 고려의 장군들은 요동정벌은 미친짓이고 대마도정벌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박성현-l7e 거기다 이성계가 4대불가론을 말한 직후에 만약 출전을 하려면 가을에 하자고 했는데 최영이 씹음.
전하의 희생 하심을 깊히 감사드리옵니다...
@@space_lab2817 ㅗㅜ 안녕하세요
댓글들 미친듯이 달려드네 ㅈㄴ 무섭다 ㅋㅋ
절대는 없다지만 위화도 회군안했으면 발릴 가능성이 더높았던건 맞는데
만약 김재규가 육본이 아닌 남산으로 갔으면 어떻게 됬을까??
그러면 사형 안됐겠다
재밌겠다
오호 이것도 재미겟다
미국으로 갔어야 사는거 아닌가요?
됐
이성계가 요동을 쳤다면 후방이 불안해진 명이 북원과 전면전을 벌이기 어려웠겠지. 전면전이 힘들어졌다면 북원이 더 오래갔을테고 그럼 고려초기때에 송, 요, 고려 이런식으로 명, 북원, 고려 이렇게 삼각구도가 되서 역사가 또 바뀌었을수도..
그런데 북원이 너무 개판이라 양면전쟁해도 당시 동아시아 최강인 명나라가 이기지 않았을까...
요동 먹고서 성만 제데로 구축해 놨으면 명나라가 수십만대군이 와도 쉽게 안뚫렸을듯요. 요동성은 적은수의 인원으로도 쉽게뚫릴만한성이 아니고 어렵사리 뚫는다해도 명나라초기 내정이 완성되기전 갓 신생국이라 군사력은 강해도 내정이 약해져서 충분이 반란도 일어났을테고 요동으르 대규모 원정단을 보내면 서쪽의 전쟁광 티무르에겐 명나라가 아주먹음직스런 먹잇감이 됬을테고.뭐 어차피 지난일인데 아쉽긴하쥬~ㅎ 연전연승하던 홍건적들도 우리에게는 한번쓴맛을 봤었고 몽고는 수성보단 전면전 위주라 우리나라의 독하디독한 수성전을 한번 경험시켜줬었으면 하는바램이 있긴있네요ㅋ그리고 동영상에 고려가 가용가능한 인원이 6만? 이건 말도안됨. 인구가 고려보다 훨씬 적었던 고구려가 요동라인에 13만 중앙과 남쪽라인에 5만의군사가 있었고 신라가 나당연합군으로 참전할때 군사수가 5만이었는데 어케 삼국통일되고 귀족 호족들 사병제가 성행했던 고려가 6만밖에 못뽑았다는건 솔직이 말이안됨.그당시 분명 요동은 비어있었음.한번 먹었었고 군량미 불탔는데 다시 지원을 안해줘서 철수했었고 다시가도 먹었을듯.방비만 잘해놨음 요동성 충분이 개미지옥만들어놨었을텐데.
@@박정헌-z6x 님아 근데 고려군은 어케 요동성 먹을까요? 님이 요동에 있는 성들 장악이 힘들다고 했잔아요 명나라군은
가만히 구경 만 할까요? 그리고 고려군이 수나라 당나라 처럼 명나라가 도저히 감당
이 안되는 병력으로 요동을 공격
했나요? 수성은 명나라은 못하고 고려군 만 할수가 있는 방법이에요ㅋㅋㅋㅋ
그리고 고구려보다 고려가 군대가 많았다고요? 정말이에요? ㅋㅋㅋ 땅 규모
만 봐도 고려은 고구려 상대가 아님 홍건적 외적 도적떼들 한테도 당했던 고려가 수나라 당나라군 상대 했던 고구려보다도 군대가 강하고 병력이 많았다고요ㅋㅋㅋ 참 재미있는 사람이네요ㅋㅋㅋㅋ
@@이마겐-f6e 요동성을 고려가 치면 안된다는거엔 동의하는데 님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싹다 뇌피셜이라 웃기지도않음ㅋㅋㅋ 일단 요동정벌이 두차례에 걸쳐 진행됐었는데 1차정벌때 이미 요동성을 함락시켰었음. 어이없는실수때문에 물러난거지만.
그리고 당시 명과 고려만의 싸움이아니라 북원이 아직 버티고있었고 물론 사서에는 자주 등장하진않아서 ㅈ밥취급받지만 실제로는 병자호란때까지 존속할정도로 북원도 무시못할전력이었음. 고려또한 시궁창이어서 요동을 관리하기엔 국력소모가 심했어서 안치는게 맞다는입장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고려가 요동정벌을 감행했을때 함락에 실패했을확률은 님이말한것보단 상당히 높음
저때 이미 북원은 작살낫어요. 영상에서도 말햇듯이 남옥이 왜 군대를 거느리고 저기 잇엇는지 아세요? 머 고려군을 방어할려고
한다 이런생각 하는거 아니죠.ㅎㅎㅎ 남옥은 이미 북원의 마지막 희망을 밟아버리고 정비하는 상황이엿어요.
그러면 우리는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중화사상에 가득찬 댓글을 쓰고있겠네
한니발 처럼 잘싸우는 장수도 국력앞에서는 어쩔수 없다. 거기다 건국초기라 유능한 장수들이 많고 병사들도 백전을 걸친 정예들이라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함.
한니발 정도 동기부여와 전투력 가진 장군 아니면은 안되죠 거기다 당시 명나라는...
군인이 건의를 해야지 반란을 일으키는건 엄연한 범죄
주제신청 - 흥선대원군이 만약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다면?
예전 부터 궁금했음
진정한 국뽕이란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내 나라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 채널 주인장의 말은 절대적으로 옳고 최소한의 이성과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에 동의를 표할 것이다.
잘못아셨는데 한해 앞서 1387년 요동의 나하추세력이 명나라에 항복합니다. 그러니 요동이 결코 무주공산이 아닙니다.
정답은 이성계가 개털린다는 것. 그때 명나라는 떠오르는 태양인데 주원장이 "아이고 요동 빼앗기다니 너무 아깝구나" 이러고 그냥 넘어갈 인간이 아님. "감히 동이족 따위가 땅을 넘봐?" 이러면서 명나라가 이성계 군대를 개박살냈을 가능성이 큼
얼마 전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라 더 와닿네요.
저길 싸워 뺏어도...지키고 유지할 힘이
없었어...진짜 요동정벌 저때 했으면...
지금 우리는 중국말 쓰고 있었을꺼야...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이번 시험범위가 달랐겠죠.
위화도 회군은 안배우지만
중국왕조 다 외워야함 ㅋㅋㅋㅋ
주제신청-만약 흥선대원군이 폐쇄정책이 아닌 개방정책으로 서양국가들과 교류를 진작에 제대로 했었다면?
역사적으로 보자면 중국은 전쟁을 매우 못하는 민족이라.. 군사력이 10분의 1도 안되는 창나라랑 원나라한테 나라 전체게가 점령 당한걸 보면 요동정도는 가능했을 수도 있을 덧이라 봅니다.
그런데 성공할 확률이 좀 낮긴하죠
네가 말한 원나라가 그 전쟁을 못하는 중국한테 대륙에서 쫓겨났고, 걔네 잔당 북원은 수도 초토화 당하고 칸 모가지가 따이는 지경이었는데? 거기다 명나라는 원나라가 실패한 베트남 정복도 성공한 나라임. 합구필분 분구필합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듯 왕조 말기에 골골대는 모습만 볼게 아니라 새 왕조 열었을 때 중원의 왕조들 여력이 상상을 초월한단 사실도 인지해둬야지. 당시 명나라는 엄연히 후자에 속하는 상황인데.
진짜 국뽕들 이 영상에서도 드글드글 거리네요 어떻게 몽골의 중심인
원나라,같은 홍건적의 내전 도합 80만
군대가 전투한 파양호 전투, 이민족들과
전투로 단련된 정예군이 수십만인데
위화도 올때 사기가 저하된 고려군
수 만이 어떻게 명을 꺾는다고ㅋㅋ
중국의 전쟁 기세 꺾으려면 쟤네 원정 풀군단을 적어도 3-4번은 이겨야함. 그래야 전쟁 포기하지.
이런 반역자
고려침입은 중국에서도 부담스러운 내용이라 점령까지는 아니고 항복을 받아내고 조공을 더 바쳐야하는 신세가됐을거라고 봅니다. 중국입장에서도 멀리까지 대군을 보내려면 보급부터 시작해서 내분도 걱정해야하고 다른국경들도 문제가되니까요. 여튼 고려가 이길수있는 가정은 단한개도 없습니다 ㅋㅋㅋㅋ
막약 동학농민 운동이 일본과 청의 개입이 없엤고 프랑스처럼 혁명식으로 갔다면 어떻게 됬을지 해주세요
심영:조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말하는것입니다여러분~
아니면 불가능했겠지만 영세중립국해서 스위스처럼되기
@Republic Cantanasian 4딸라
주제 신청: 만약에 위화도 회군을 하더라도 정몽주가 정도전과 이성계 이방원 모두 죽여 온건파가 이겨 고려를 유지한다면?
안그래도 똥구멍 찢어지도록 쪼들리는 고려가 그나마 남아있는 전 재산 거의 다 태워서 만든게 요동 정벌군이라 말이 안되지 않을까 싶네요
정도전은 몰라도 이성계는 온 나라의 인심을 받던 장수라(현대인들이 이순신을 보는거랑 동급이라 보면..)죽이기도 힘들도 죽였다간 망국이 더 가속화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시 고려 백성들 삶 그자체가 개헬인데 그걸 개혁하려면 왕조 갈아버리는 거 밖엔..
유튜브를 한자로 치면서 대화나누고 있었겠져.
명나라가 50만은 커녕 5만만 끌고가도 고려 갈아버릴듯
이 문제는 좋고 나쁜 두가지 면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삼백여년 간 북방호족들의 땅이었던 중국의 화북지방은 아직 옛 중국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던 터였고 남경의 주원장 역시 아직 확실한 국가체제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데다가 내란의 조짐마저 있었고 이것을 두려워한 명태조 주원장은 자신을 도와 명을 개국하는데 공을 세운 숱한 명장들을 모조리 숙청해서 쓸만한 군 지휘관이 별로 남지 않았었다.
만약에 고려가 요동을 정벌 했더라면 명나라는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고 고려는 적어도 옛 금나라만한 크기로 자라났을 것이고 만주족과 몽고족을 흡수해서 강대한 나라를 세울수 있었을 것이며 중국인들은 결국 양자강 이남으로 다시 밀려갔을 것이다.
위화도 회군이 가져온 한가지 전화위복이라면 자고로 중국대륙을 정복하여 왕조를 세운 북방호족치고 거대한 중국에 문화적으로는 물론 언어적으로까지 동화되어 사라지지 않은 민족이 없었다는 것이며 우리 민족 역시 그 길을 따라 소멸의 길로 사라져 갔을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반도는 중화인민공화국 고려성으로 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시 정도전 같은 사람 역시 만주땅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고 하는데 이방원은 그것보다는 우리 민족이 자기 언어를 쓸 수 있는 문자를 개발하는 것이 더 급하다고 하여 둘 간에 의견차이가 좀 있었다고 한다.
이태조의 조선개국 직후 명나라는 내전상태로서 연왕 주체(훗날 영락제)는 남경정부와 전쟁중이어서 북경을 비운 상태였기에 정도전의 으견이 일리는 있었지만 모든 북방 소수민족들이 중국을 정벌하고서 사라져간 이유가 문화적인 정체성의 부족함을 간파한 이방원은 우선 우리 민족의 내면적인 정체성 확립을 확실히 해서 민족의 소멸을 막아야 한다고 보고 정도전의 의견을 반대한 것 아닌가 여겨진다.
훗날 호랑이같은 두 아들을 제치고 책벌레 충령대군(혹은 충녕대군)을 세운 이유도 그런 앞날을 내다본 것 아닌가 한다.
나라는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다고만 좋은 것이 아니다.
그 큰 나라의 통일을 유지하기위해 그 많은 백성들이 심한 압제와 폭정과 내란에 시달려온 중국의 오천년 역사를 보면 좀 작더라도 내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된 나라가 더 낫지 않을까 보여진다.
옛날 노자가 이상적인 국가는 영토와 인구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고 했던 말을 상기해야 한다.
진심으로 요동 정벌 가능했을거라고 생각함?
역사에 만약은 없다.
이성계+정도전은 군사쿠데타 세력이었다
민주주의시대 박정희가 진짜 역적이지
저때 위화도 회군 안했으면 원간섭기 이어서 바로 명간섭기 당했겠지 ㄹㅇ
근데 조선시대 자체가 병자호란때까지는 명간섭기나 마찬가지임 병자호란 이후는 청간섭기
@@흑화한루피 ㄴㄴ 원간섭기는 사실상 식민지배 수준이었음 그래서 묘호도 못 쓰고 원나라 관리들이 계속 고려에 상주하면서 고려왕도 두들겨패고 고려인들도 노예로 납치해가고 온갖 탄압과 간섭은 다 하던 시절이라 일제강점기하고 비교하는게 더 정확함 ㄹㅇ
주제신청:중국이 민주주의 였다면..
일단 북한은 사라짐
그럼 통일이었겠지..
@@user-ol5cz8iq5q 중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다면 한국전쟁때 북한을 지원하지 않았을테니까요?
중국이 한국같은 민주주의였다면 최소 몇십개로 쪼개졋겟지
그주제 예전에 했다가 노딱먹고 영상내림
요동을 치는건 진짜 멍청한 생각이었다
주제신청: 만약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이어갔다면?
Was ist des Deutschen Vaterland?
독일이 더 강해졌을듯.....
@@green_._tea ???: 명예와 승리가 가득한 나라 오스트리아
비스마르크가 개잘하긴 했지
@하이퍼리얼 그러면 이탈리아 진짜바로 갑자기 프랑스1890년때 공격함
이미 위화도 부근 도착할때쯤 군량이 바닥나서 추가 보급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함. 그대로 요동 갔으면 굶어 죽어 전멸했을판...
최영이 국제정서에 어려웠던게 당시 소문만 듣고 북원하고 양면전쟁하면 되겠지 했는데 고려군 출병 하기도 전에 북원은 멸망했고 몽골 수도 카라코룸까지 싹타 불태워 버림. 그 15만 대군이 남하하던중
수나라도 100만으로 치는데
최대 전성기 명은 ㅋㅋㅋ
심지어 그 수나라의 113만은 수나라 말기였음을 감안하면.....
@@kelihon 망해갈때 113만 동원한게 아니고, 겁나 강한 최전성기에 113만명 동원했는데 져서 갑자기 망한것.
한국에서는 웃기는게 지들이 이긴거면 중국의 군대수를 졸라 확대함. 지들이 지면 중국의 군대수를 졸라 줄이고.
최영 이성계 두 영웅이 뜻이 엇갈린거 라고 봅니다. 요동정벌 될 수도 안될 수도 있죠.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조선 세우고 시도한걸보면 시기와 준비만 되면 가능하다는게 당대의 시각이죠. 하지만 누굴 비하해서는 안됩니다. 무조건 안되면 같은 논리로 청나라 러시아를 이기고 세계 1,2위 영국 미국의 동의를 얻은 일본에게 나라넘긴 이ㅇㅇ은 합리주의자 인지요?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대결하던 일본에게 독립운동은 억지인지요? 모든게 결과론이지만 무모한 일을 성공하니 영웅인겁니다. 강감찬, 이순신, 세종대왕, 경부고속도로, 경제개발 등 당대의 천재들이 억지라던걸 성공 했습니다. 뛰어넘었으니 영웅인거죠. 다만 누굴 야유하기보다는 서로 존중만해도 양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영이 억지라면 두번이나 중원정벌을한 금나라는 뭐고 언급하기도 싫지만 일본은 뭡니까 다 변방이라고 그들을 무시만 했지 그들에게 조아린 현실이죠. 그런데 코앞에 조상땅 요동도 못되찾고 그게 억지라니 너무합니다. 그렇게 치면 이제 동북공정도 끝났겠다. 이북땅도 넘기고 한강이북도 넘기고 우리나라는 끝나는거죠. 너무 허황된거도 나쁘지만 너무 유약한 생각도 나쁩니다.
그럴 듯한 가설을 사실적으로 잘 풀어 놓으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내용 잘 봤습니다. ^^
위화도 회군 후 조선을 세우는 뻘짓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요
@@왕자님-q2b 조선을 싫어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시비 아니고 그런 생각을 안 해봐서 다른 의견이 궁금해서요)
@@정태건-n2j 쓸데없이 이상주의적인 성리학 + 사대명분
명나라50만 오합지졸이었음 고려에서 방어잘하면 5만으로 충분히막아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주제 신청: 가야가 통일 했다면??
그럼 대대로 엄청 약해질 것 같은데
@@mjl8376 대가야, 소가야, 금관가야 등등...
그당시 동아시아 짱인 당나라가 도와줘도 답이 없음...
신라처럼 기반이라도 있어야....
가야가 나름 철 생산해가지고 강국이였다는 기록은 있음. 실제로 금관가야가 신라를 공격해서 신라를 차지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함. 그때 최강국이였던 백제가 전군을 보내 가야와 전쟁할정도. 고구려 전성기 시절 금관가야를 공격해서 나라가 반쯤 망한거임.
그당시 명나라가 현재 미국하고 같다고요 말이되나요 명나라도 40만 50만을 밎나요 명도 대부분 오합지졸 이었음 그리고 원이 중국화되어서 훈련도 거의 하지 않고 반란군하고 싸우다 유능한장군 경험있는 병사들도 다죽어서 오합지졸이었음 고려의 문제는 5만명을 요동 원정군으로 보냈으면 후방에 최소한 5만명 이상의 잘 훈련된 병사를 조련 했어야되는데 최영장군의 무모한 원정이 문제 였던것임 결국 고려가 망한건 최영장군이 성급함 그리고 이성계 조민수를 너무 믿었다는것임 차라리 이인임이 있었다면 이런 성급한 원정군은 일어나지 않았을듯
그당시 전세계 생산량 절반을 담당하던 애들인데 애초에 저당시에는 미국이상 존재가 맞아요 요동 정벌해도 어차피 45만 오합지졸 군대들이 5만명은 떡을 치고도 남고 보통 국가의 군인들은 전체인구의 1~2% 유목민족들의 경우 전체인구의 10~20% 정도 뽑을 수 있는데 마음만 먹으면 저그마냥 수백만 대군을 뽑을 수 있었지만 재정 쌓을려고 덜 뽑은게 45만인데요? 중국이 군사력이 약할때여도 충분히 한반도 정벌은 할 수 있었습니다 자원도 없는 하찮은 땅이라 그냥 냅 둔거죠 점령해서 얻는게 있어야 점령하니까요 전쟁한다면 위쪽에서는 몽골 왼쪽에서는 신강과 티베트가 약탈할거고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주변국들을 침략해서 대제국이 될테니 다 해결하려면 머리 아파져서 적당히 몇번 패서 전쟁에서 져도 빈사상태로 만드며 그냥 너 내 따까리 되라며 냅둔거죠
다 떠나서 우왕이 최영은 개경에 남아! 하지만 정예군은 전쟁하기 싫은티 팍팍내는 이성계 너가 다 끌고가! 이런 병신짓만 안했어도 위화도 회군은 없었음.
뭐 최영이 이성계 감시자로 따라갔어도 정작 위화도에서 야 이거 철군각이다 하고 돌아갔겠지만
위화도 회군 안한다면 전진밖에 없으니, 당시 한창 상승세였던 명군에 고려는 완전 멸망당했겠죠
홍무제가 사람 생명 아끼는 위인도 아니었으니 엄청난 학살이 일어났을수도 있고
사 사쿠라짱
4:35임진왜란 자체는 일어났을겁니다. 다른점이 있다면 조선vs일본구도에서 중국vs일본으로 일어났겠죠.
회군 안했으면 필패였을 상황이죠 그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던게 이성계였구요.. 최영이 말년에 노망나서 억지로 밀어붇히는 바람에 출정했다지만 압록강 직전에 회군한건 진짜 어쩔수 없지만 잘 판단한거임.. 건넜으면 가다가 전염병창궐에 장마때문에 옷과 몸이 다 젖은채로 행군하는 군사들 제대로 전투하기도 전에 지쳐쓰러지고 가서 싸운다 한들 필패임!!
최영도 결국 최고 권력을 차지하다 보니… ㅜㅜ ㅠㅠ
주제신청.
단종이 폐위당하지 않고 왕위를 계속 이었다면?
문종이 요절하지 않고 단종이 성인식을 치를 때까지만이라도 살아있었다면?
(즉, 세조의 왕위찬탈이 없었다면? 입니다.)
주제신청:만약 이순신 장군님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올려라!!!!!!!!!!!!
이순신장군님이 일부러 전사를 햇다고 통설로 남아잇음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전쟁을 통해 의병 과같은 영웅들은 찬양하고 정부에는 민심이 돌아섬. 딱 반란 일으키기 좋다고 판단하여 유교 어쩌구 하면서 영웅들 대다수 참수당함
이거랑 관령잇지 않을까 봅니다.
차라리 요동 대신에 대마도를 갔으면 성공했을텐데 실제로 정지장군의 건의하에 대마도정벌 의견이 나왔는데 최영장군이 요동정벌을 하라고해서 묵살되었음 정지장군은 관음포해전에서 남해안 재해권을 되찾은 인물인데 이분 말대로 요동 대신 대마도를 쳤으면 성공했지
선댓후 감상~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리는것은 내부 역학관계와 국제정세를 이용하는것임.
국제관계를 마치 1대1건달싸움 처럼 해석하는 그머리에 찬사를 보낸다.
전쟁은 돈줄이라는 말이 있듯이 명사 읽어보면 남옥의 15만이 전부가 아니라 옆에 20만 10만씩 보유한 장군들은 다른데 치고 있었는데, 저 때 이미 전력으로 100만 대군을 짤 수 있는 힘이 있었던게 명나라고 당시 명이 더 전성기를 일찍 맞았고 조선은 상대적으로 뒤에 어느정도 병력을 일으킬 힘이 생겨서 힘의 시대 차이가 있다 보니 게다 이 시점에는 고려에는 재정이 없었고요. 이거 이외에 이전에 1차요동정벌에도 이성계 이인임 등 요동 먹었다가 군량 태워먹고 돈 없어서 다시 빠꾸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유지를 기반으로 넓게 생각해야지 단순하게 점령하고 끝인가라고 하면 그건 장수가 아니겠죠.
더 웃긴건 명사에는 처음에 주원장도 고려에서 온 사신이 요동은 고구려이후 원래 한민족 땅이라고 했었어서 아 그런가 그럼 고려에 그냥 주는게 맞지 않냐?하고 하는 게 있는데 최영이 그냥 급하게 걍 치자 해서 밀고 올라간 바람에 주원장도 고려도 그렇고 조선도 그렇고 더욱 더 싫어짐.
주제 :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센서로동당중앙센놈위원회 지군단이 뭐에요?
고려의 아버지:태조 왕건
2:31
고려:어렵게......... 5만명
명나라:쉽게 ^^ 50만명
만약 명나라가 전 국력을 쏟아부으면?
100만 정도?
코로나 뿌려버리면 100만도 비틀비틀
주제신청: 위화도 회군은 일어났지만 온건파가 승리해 고려가 유지되었다면?
오
그당시 고려가 얼마나 쇠퇴하고 썩을대로 썩은 나라였는데 유지되면 뭘하노?
@@즐거운날들-p4d 조선은 정치인들 좋았음?
@@강아지고양이-g3o 그렇긴하죠 그럼 조선말은요??
ㅋㅋㅋ 저거 명나라 처들어갔으면 우리 지금 중국말
쓰고있을껄?ㅋㅋㅋㅋㅋ
아버지 죽자마자 조카 내치고 왕 될 정도로 강력한 군대 들고있던 주체가 지키고 있었구먼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당시 만주는 명이 직접 통치하던 지역이 아니었고 당시 고려왕은 반몽세력이었기 때문에, 과거 심양왕 통치 지역의 회복을 명분으로 심양 지역(요동반도)만 먹고, 명에게 반몽 의지만 제대로 전달하고 친명을 표방하면 그럭저럭 괜찮았을 겁니다.
요동은 명나라가 북방 상황 컨트롤하는 최중요 요충지인데 도대체 뭔 소리임. 그건 한국이 친미반중 천명하면 미국이 핵개발 허용해줄거란 수준의 소리임.
주제선정: 만약 동맹국이 1차대전에서 승리를 했다면?
만약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승리 했다면?
만약 남부연합이 맘북전쟁에서 승리 했다면?
@ᄋᄋᄋᄋᄋ ㄴㄴ 어자피 러시아는 혼란에 빠지고 일본이 그 틈을 노려서 한반도 식민지화 시킴. 그러니 러시아 처럼 공산화 어쩌구 하는군 별 의미가 없음.
주제 신청:만약 한국이 세계 1위 패권 국가라면?
'였다면' 이라뇨 '라면'으로 해야죠ㅋㅋ
@@green_._tea 먹고 싶노
그 비슷한거 있었지않나여? 결과가 전세계가 한국어를 공용어로 쓸거고 한국인 교육자가 세계각국으로 파견될거고 영어쓰는 기업들 다 한국어로 바뀔거고 등등 센서님이 영상 만들었던거로 기억합니당
고구려가 수나라의 입조 요구에 성 박살내는거로 답해준거에 뽕차서 우리도 꼴받으면 맛깔나게 싸대기 날려주는 식으로 하면 안됬음? 하는 사이다패스분들이 계시는데...
고려는 고구려가 아닙니다... 고구려가 그냥 대단하고 그 노빠꾸 외교도 할 입장과 준비가 되니까 한거지 위화도회군 시점의 고려는 절대 그럴수 없어요...
1차 요동정벌 때는 원명 교체때 했을때도 고구려 시기때 수나라 막았던 요동성 함락 했지만 겨울철이고 군량미 없어 가지고 철수 했는데 전사한 군사가 요동성 전투때 전사한 군사보다 철수할때 전사한 군사가 더 많았다고 했고 저 시기때는 장마철 때문에 성공 더 어렵지 않았을려나 잠시 요동성 함락 시켜도 지키기 더 어려웠을거고
그때 이성계의 의견을 수용해서 후일 군사력을 더 증강해서 요동정벌을 시도헀으면........
이거 우리 만주 찾았을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빠가 보던 "상식밖의 한국사" 라는 책에 나옴...
아뇨...대부분이 이성계가 요동을 쳤으면 잠시만 점령 후 그 다음에 바로 명나라에게 되치기 당한다고 하는데요..최영 장군도 멍청이가 아닌 전략가였으며...일단 이성계가 점령 후 여진족을 관리하면서 계속 주둔해서 명나라를 되쳤으면 됩니다..단지 꾹뽕이 아니라 옛 여러 사서 및 야사에서는 이성계는 여진족의 피도 흐르는 사람으로 해석도 합니다..그리고 개인적인 역사 해석으로는 여진,거란,말갈, 다 우리랑 같은 언어군 및 천신숭배 등 기마민족의 후예라 생각 함..같은 주어 목적어 동사 어구쓰는 민족들...저도 전주 이씨 효종 18대손이지만 이놈에 조선은 없어야 할 나라였음...요동 정벌 후 거기서 이성계가 여진족들과 잘 융합하여 만주땅을 지켰다면..... 참고적으로 여진역사서에서는 이성계가 조선건국하자 우리 여진 후손이 조선왕이 됬다고 함..또한 명 나라 초기에는 조선을 굉장히 의심하고 전쟁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음...지금의 미국과 명나라 비교는 좀 아니라고 봅니다..명나라도 건국초기였기에 불안한 정국이었고 50만 군대가 과연 한번에 이동이 가능이나 할까요? 아마도 10만~20만 수준..중국역사서의 뻥튀기는 심함..요즘 현대 세상에서도 군대 10만을 동시 이동하는거 무진장 어렵습니다..다들 군대 다녀와서 아시잖아요? 명군 50만이 북원 원정? 그걸 사실대로 가능이나 할까요? 역사는 해석의 학문이기에 단순 꾹뽕이 아닌 요동 정벌은 충분히 가능성있는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초기 미국이 건국되었을 때 그렇게 강하지 않았음..초기 명나라 건국과 미국초기 건국을 비교해야지요...지금의 넘사벽 천조국 미국과 건국초기 명나라는 비교 자체가 아니라고 봅니다
-_- 당시 명은 20만 이끌고 만주에있던 나하추 포위해서 항복받아냈는데 뭔 가능을 따집니까.. 20만 가능하면 50만도 가능한거지. 게다가 그이후엔 남옥이 15만 이끌고 북으로 올라가 북원을 기습해서 멸망시켰슴. 이떄가 위화도 회군하기 보름전이었구..
당시 최영은 북원과 연대해서 같이 명하고 싸울려던 계획이었는데 애초부터 글러먹은 상태란거임.
고려가 요동을 회복할 의지가 1이라도 있었냐?? 요동이 명에 접수되기전에 요동책임지던 사람이 고려에 투항할려던것도 생깟던게 고려였슴. 이성계가 요동정벌해서 요동성 점령했을때 포기하고 돌아온 이유부터가.. 보급이란거 받질못해서 굶어 죽어가면서 간신히 돌아온거였슴.. 이런판에 뭔 요동정벌인건지..
국사시간에 오로지 한국쪽 기록만가지고 가르치는건 한국 사학과 교수들이 죄다 병신들이라 그런거임.. 외국자료같은건 하나도 보질않았단 얘기고.
위화도 회군당시 요동은 명이 이미 차지한지 16년뒤이고 그동안 명은 꾸준히 요새화하면서 12위를 설치했었슴. 12위 = 6만 수비병력임. 게다가 수군통해서 여러곳에 군수물자 쌓아뒀었고.. 나중에 풍승-남옥이 나하추 칠때 여기통해서 친거였슴. 나하추가 항복당시 세력이 20만이었는데.. 나하추가 요동을 여러번 쳤지만 번번히 실패했었슴.
글구 가장 핵심은.. 당시 날뛰던 왜구가 수구러든 이유가 최무선이 화약제조법 알아내서 화포개발한뒤부터임. 근데 화약제조법을 알아낸거지 화약제조에 쓰이는 원료는 죄다 명나라에서 수입하고있었슴. 전에 북원이 야전에서 명나라 바르고도 공성전에서 대패했던 이유가 바로 화포때문인데.. 요새화된 요동을 친다?? 게다가 화약공급없이 그당시 왜구는 무슨수로 견제하구..
명나라가 북원과의 전쟁에서 명나라의 황제가 토목보에서 포위되여 겨우 살아남은 적이 있어요, 비록 북원이 초원으로 쫓겨났지만 북원은 그만큼 강했습니다. 고려는 마땅히 북원과 손잡고 만주를 도모 했어야 했죠. 그런데 이성계가
일본보다 먼저(정조 말~철종 정도에) 근대화를 하거나 서양 문화를 들여왔으면 어땠을지 주제 신청합니다!
조선 사회상 그랬을리가 없음. 메이신 유신급의 정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폐쇄적인 조선사회에서는 제로에 수렴함. 일본도 말도 안되게 성공한거. 중국도 실패했음 근대화 작업은. 그만큼 어려운 것.
차라리 세종대에 빨리 서양이랑 접촉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오규열-v2r 그래서 신청한대잖어!
@@오규열-v2r 세종때의 서양은 동양보다 기술이 덜 발달 되있었습니다
유교사상이 청나라와조선을망하게함
오~~어릴적부터 궁금했던 가설인데 감사합니다^^
회군을 했던 안했던..이씨가 우리나라를 오늘날 이꼴로 만들었다는거..
도려내고 싶은 역사가 이씨조선
요동을 정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복한 새 땅을 지킬 수 있느냐가 문제죠. 군대도 주둔시켜야 하고 백성들도 이주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합니다. 요동 1차 정벌에 성공하고도 고려군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었지요. 이성계는 1차 요동 정벌 때 현실을 봤기 때문에 4불가론을 내세운 거죠.
고려는 5만 동원하고 끝인가요 명은 30만, 40만 계속 동원이 되겠는지 환관이나 지방 영주들이 필히 반역을 할 것입니다 마지막에 명에 초토, 한반도가 중국어를 쓴다? 이건 좀 선 넘은듯
꼰ㅡ
세상에 절대는 없습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절대라는 말은 정보지식을 전달하는 입장에서 조심히 써주셨으면 하네요
주제신청:정조가 죽고 조선이 공화정이 된다면?
주제 신청:만약 센서스튜디오가 없었다면?
주제 신청: 만약 효종이 북벌을 했다면
북벌 못해요 그대로 속국 엔딩임
그리고 농번일치의 30-40만이어봐야 오합지졸입니다 정예 병사 5-6만으로 청야전술 성 굳건히 지키면 끝이고 고려가 돈이 왜 없나요 벽란도 무역등으로 해상 상권 국가 아니었나요 최소 요동은 명과 분할 통치 협상을 하던 오랜 기간 알박기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지금 다 말하는게 if 이면 이런 if도 가능할것
하... 고려 전성기 해상 상권국가 얘기하네 ㅋㅋㅋ 흑사병으로 원나라 교초 인플레이션때매 원이랑 고려랑 상업경제파탄났는데?ㅋㅋㅋㅋ 정예병사는 무슨 농사짓던 애들 데려와서는 에휴....
중국 지배했던 나라들도 처음에는 다 똑같이 객관적으론 열세에서 시작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힘든 전쟁입니다만, 혹시 모르죠 중국이 다 우리 한민족 땅이 되어 있을지도. 반도에 갇힌 우리 민족이 실패든 성공이든 시도했던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중국 미국 눈치보며 살고 있게된 사건을 어쩔수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니 공감하기 힘드네요.
이건 역사가 증명 해주고 있죠. 몽골족, 여진족 등 중국 중원을 차지했던 민족들은 하나같이 압도적인 한족 인구 앞에서 결국은 한화 되어 민족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현실적이진 않지만 한민족이 중국을 먹았다고 가정을 해도 결국 청나라때처럼 소수의 한민족이 다수의 한족을 지배하는 구조였을테고 결국은 중국역사에 합병돼서 지금의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큼
어 모야 내가 안본 센서 영상도 있어? 하면서 들어왔는데 방금 나온거였네
왕건과 이성계의 혁명은 똑같은 역성혁명이지만 왕건과 이성계의 비교가 왕건에게 모욕적인 이유
1. 왕건은 폭군 궁예를 몰아낸거지만 이성계는 멀쩡한 국왕이었던 공양왕을 명분도 없이 폐위시킴
2. 왕건은 폐주하던 궁예를 죽이지 않았음(공식적으로 도망가다 백성에게 맞아죽음)궁예의 후손들도 잡아 죽이지 않았음 하지만 이성계는 고려왕씨를 조직적으로 학살했고 왕위에서 물러난 공양왕과 그 아들들을 모두 참수함(중국왕조는 전왕조의 후손들을 잡아 죽이는게 흔했지만 한반도 왕조중 저렇게 잔인한 학살은 이성계가 유일함 그 신라조차 원수인 백제왕실을 저렇게 학살하진 않았음)
3. 왕건은 반쪽짜리 나라로 후백제와 신라를 멸망시켜 한반도 통일을 완성시켰지만 이성계는 찬탈이후 아무 업적도 없이 아들과 권력싸움하다 아들에게 왕위에서 쫓겨남
4. 왕건은 비교적 자주적인 왕조를 표방했지만 이성계의 조선은 처음부터 중국에 굴종적이고 나라이름조차 중국에서 받아옴 우리가 흔히 아는 조선이라는 국명은 단군조선이 아니라 중국인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임
P.S 가끔 이성계가 왜구와 홍건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 미화하는데 이성계가 싸운 대상들은 정규군이 아님
해적(왜구), 산적(홍건적), 망한 원나라 잔당들(나하추군대) 정규군이랑 싸운건 없음
서로 경우와 상황이 다른거지 누가 누구한테 모욕인건 없음. 왕건의 경우 철저하게 같은 민족끼리 내전으로서 오른 왕이라면 이성계는 말그대로 당대에 존재 했던 모든 외적들과 싸워 백전백승을 한 한반도 내에 전무후무하며 당시 고려라는 왕조를 유지가 가능케한 명장 중에 명장이였습니다. 대외적인 명분이라면 딱히 후달리지도 않죠.
그리고 이성계의 업적은 역성혁명 그 자체입니다. 조선 건국으로 인해 고려 때의 대내외적인 외침과 정치적 혼란 등을 안정 시켰죠.
조선초에는 명나라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요동정벌 논의가 있었을정도이니 고려말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명나라에 제시한 국명은 화령과 조선 이 두개 였는데. 화령이라는 단어는 당시 몽고의 수도와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이라는 국호는 강요함과 동시에 통보하는 형식이였습니다. 상당히 정지적인 수법이였죠.
ps. 당시 이성계가 싸운 상대가 정규군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 때 당시 외적들은 정규군에 버금가는 막강한 군대였습니다. 그래서 이성계가 대단한거죠
조선 건국초 학살당한 왕씨는 135명 ~150명 정도입니다.
우리역사에 죄선같은 븅 구카있었나!백성은 우리조상이지만 이조는 사람색히 맞느냐!!!
당시 왜구는 소위 경인년 이후 왜구입니다 일본 남북조시대에서 북조에게 점차 밀리던 남조에서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여 왜구짓을 했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왜구라 하지만 실제론 남조 병력이 다수 포함된 남조의 정규군 왜구입니다
그리고 홍건적이 산적이라니요 ㅎ 명나라 건국 전에 그 홍건적에게 원나라가 쓸려나갈 뻔 했습니다 홍건적은 원나라를 붕괴시킬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원나라가 살아난 것은 그저 차칸테무르와 베이르테무르 그리고 코케테무르란 원나라의 이 세 명장들 덕분이었고요
더군다나 나하추가 원나라 잔당이라굽쇼? 명나라가 가장 경계했던 군벌입니다 원나라가 마지막 역전을 노릴 수 있던 근간이 바로 20만 병력의 노련한 군벌 나하추였습니다 명나라는 북원 + 나하추 + 고려 연합을 제일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미화라고요? 이성계를 싫어할 순 있지만 스스로 부실한 근거로 왜곡하진 마시길
게다가 탈탈 털어 보내느라 고려 방어할 병력이 전멸했는데 이때 왜구 처들어왔으면 개경까지 한큐에 털리기 때문에 요동 점령해도 대부분 병력이 바로 고려에 돌아와야 했음. 전 병력 있어도 왜구한테 아홉원수가 털리고 개경 코앞까지 점령당한적 있어서..
성계좌... 그는...대체...
이걸 믿음?명나라가 고려를 합병한다고?
원래 명의 목적인 한반도 북부만 먹겠지
@@House_of_Min 명이 한반도 전체를 다 지배하지 않을 지언정 원 간섭기 이상으로 피폐한 나라 운영을 했겠지요.
이성계 영웅인가 역적인가 찬반토론 여러분의 생각은?
1:32 어디선가 많이본거같은데
역사에서 저런 상황 ㅈㄴ 많아서 뭔지 모르겠네
위화도회군 안했으면 x된건맞고.그렇다고 명나라가 쳐들와서 점령한다고해도 중국되는건아님 걔네도 이넓은땅의 먼곳에 병력을 계속주둔시킬순없음. 대충 꾸짖고 털어먹고 충성약속받고 돌아가는거지. 점령과 귀속은 전혀다른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