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전공자구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4불가론 1번 항목이 모든뜻이 함축 되어있다 봅니다 이후 조선의 행보(조공)도 이성계의 주장을 뒷받침함 두번째!! 장수가 "불가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한다는것 그것 주는 "의미"는 어찌되었건 위험을 무릎쓰고 반대의사를 명확히 표명했다는 뜻임으로 처음부터 쿠테타 의도는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확실한 의사표현을 하였으나, 관계가 틀어진듯 함이 타당한 추측같습니다. 우리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명분도 있고 당장 요동땅 먹을만한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우리입장 아닌가요? 이로인해 명과 대립관계 우리의 국력과 상대의 파워 막상 요동을 정벌해도 영토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것 까지는 쉽지않다고 보았던것같음 (아프카니스탄 주둔처럼) 또한, 뺏기기 전 우리것과 다시 되찾고 유지하는 것은 냉정하게 또 다르다고 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승자에 기록인데 저는 왕권 문화 자체가 생물학적 "본능"에의한 "인간의 서열구조"라 보고있고 인류문명이 발생하고 영토가 자연스럽게 나뉘면서 힘의 균형을 통해 발현되는듯 불편한 진실이죠 초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위화도 회군을 , 단순히 다시 들여다보고자 왔는데 이성계를 옹호할 마음은 없고 ,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보니 그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던것 같네요 고려가 강했다면 무혈입성을 최소한 저지하는 시늉이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의 도덕적인 잣대로 역사를 평가할수도 없고 그건 의미가없다고 봅니다 조선왕조 500년 모든책임과 결과론적인 해석은 무의미 단..위화도 회군과 근현대사를 둘러보면 5.16 , 12.12등 역사적 격변기에 한국인 기질이 보이는군요 왕조 문화가 자체가 인간의 지배,통치,섬김 본능에 의한 부산물임을 고려할때 후손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냉철하게 분석하고 교훈삼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영은 원나라 요청을 받은 공민왕의 지시로 38세에 원나라지원 고려군을 이끌고3년간 산동 하북 지역에서 주원장의 홍건적과 수십차례 대소형 전투를 치르면서 주원장을 알게됨 결국 홍건적의 우두머리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으며 명나라 집권층은 원나라 병사보다 날 래고 잔인한 고려군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게됨 최영은 이때의 경험으로 25년후 요동정벌하면 명나라를 이길수 있다고 생각함
@@내취저 5만으로 20만 "막는"거야 불가능한건 아니지...그 시대 전쟁에서 수비자가 가지는 이점이 어마어마한데. 근데 "와서 졌으면"이 성립되기 더 힘들어지는게 중국 통일왕조는 이미 수나라가 병신엔딩 맞은 꼴을 봐서 당장 그 다음 당나라부터 수나라의 병크를 고친채로 침공하니 결국 고구려도 더 버티지는 못하게 된거죠.
맞습니다 철령위는 함경도에있는 철령(친일역사관)이 아니고 중국 요동에 있는 철령위를 설치한다는 것으로 위란 말은 병사 진지를 뜻하며 이제 너희들 땅은 이제 압록강 으로 국경을 정하겠으니 물러 나라고하니 우리 고토 요동을 정벌한다고 하니 일어난 일임. 중국이 함경도에 있는 철영에 위를 설치한다??
조선과 명의 국경선아 요하인데 요동은 원래 신라, 고려, 조선의 땅입니다. 중국인은 산해관 동쪽에 거주하지 않았는데 요동이 중국인땅인 듯 설명을 하니 열불남. 요동은 조선과 여진이 다투던 땅인데, 명과는 관련이 없는 땅이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요동을 청에게 뺏긴 것 뿐임....
요동 정복(요동 점거)은 커녕, 요동에 대한 무력 시위부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홍건적의 침입때만 해도, 200,000명이나 되는 홍건적 대군에 국경이 털리고,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포함한 주요 도시들이 함락되었었다. 심지어 바로 직전에 수십 년간 지속된 왜구의 침략만 보아도 고려는 국가 멸망의 상황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그 피해가 매우 컸었다. 당대의 이런 상황들을 보면 당시 고려의 국력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또한 당시 명나라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장군인 남옥, 서달, 상우춘과 주원장의 라이벌이었던 진우량 또한 명장들이었고, 풍승, 목영, 탕화, 장옥 등의 능력이나 전공을 감안하면 굴복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위키에다 위화도 회군 검색하니가 나오더라고요.
위화도는 압록강 가운데 있는 섬이 아니라 압록강 건너 너머에 있는 반도형 지역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음ㅡ압록강 중류 건너편 책보고 유튜브인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설득력이 있었음 위화도의 도라는 글자도 꼭 섬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반도형 지역을 도"라고도 씀 바로 한반도. 요동반도. 산동반도 등등 무스히 많음. 1000명의 군사도 야영하지못할 강가운데 모래톱 정도를 위화도라고 말함은 이치에 맞지않음 그리고 쌍성총관부니. 철령위니 다 요동쪽에 있느 것이지 함경도 원산 함흥지역에 있는 것이 아님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고 합당함
그런거 따져봐야 뭐함 뭐 그래서 요동이 원래 우리영토였다고? 근데 거기 살던 사람들이랑 우리랑 전혀 동질성이 없는데? 그냥 우리랑 별개의 역사라고 봐야함. 어차피 거기 사는 사람들 지금 중국인 정체성으로 사는 사람들인데 왜 거기 사람들 의견은 안물어보고 우리땅. 우리역사라고 함?
@@kingkangin 그니까 요동에 있는 사람들의 역사지 지금 우리나라가 아니라. 세종이 4군6진 개척하고 거기 살 인구가 없어서 남도 사람들 강제 이주 시켰는데 요동사람들이 퍽이나 한반도에 살고 있겟노 다 그땅에서 중국인으로 살고 있지. 근데 그 사람들한테ㅈ니들 원래 한국 사람이었다고 하면 뭔 개소리하노 이럴듯
@@MomitoSeo 광개토왕전부터 요동은 고구려땅이었다가 한동안은 남에게 빼았겻다가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시대와 조선시대 및 현대와는 시스템상 차이가 큽니다. 고대로 갈수록 영토 행정력개념이 현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현대적인 개념으로 모든 지방에 국가행정력을 구석구석투입하는 것이 고대에서는 어려운 일이죠.
17.000년전 세계 최초로 청주 소로리에서 볍씨 재배, 이후 한민족이 전세계로 퍼져 홍산문명, 수메르문명..4대문명. 마야 잉카 문명 건설. 단군이 최초로 국가형테 조선 건국후 마한 진한 번한이 세게를 다스리다 고백신 가야가 다스리다 신라가 통일. 이성게가 압록강=오비강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투루판 =함흥에서 고려를 합병. 나라이름을 그대로 고려라고 했다고 왕조실록에 나옴. 태종이 명나라를 만듦. 세종나라는 고려. 1897년 고려에서 대한제국연방으로 개명. 이후 서방 8개국이 합작으로 대한제국 멸망시키고 강제합병후 세게를 부르는 이름 조선을 중화민국이 한반도가 조선이라고 조작후 한반도로 넘겨주어 이병도 신석호가 조작 완성? 흑피옥과 마고문명 인간창조 2 ㅡ 다음 검색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 ㅡ 다음 검색 중국 역사는 1911년 중화민국 부터 시작. 이전 역사는 전부 우리역사 1920년 동아일보 창간호에 권덕규는 우리나라땅을 6대주로 나누었다 ㅡ 다음 검색
사실 요동정벌의 명분이 고구려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여몽전쟁이 끝나고 20만이 넘는 고려인들이 요동에 살고 있었고 요동을 관리하는 요양행성의 승상이 홍씨와 왕씨 가문의 고려인이었죠. 게다가 요동의 왕인 심양왕이 고려왕이거나 고려왕실의 종친이었습니다. 당시 지금처럼 국경이 명확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요동에 사는 고려인 입장에서는 고려인들이 살고 고려인 관리가 관리하고 고려왕이 다스리는 요동은 고려땅이나 다름없었죠 그러니까 고토라는건 고구려때까지 갈필요도 없이 이미 요동정벌 수십년전에 고려땅이었다는 명분이 생긴 겁니다
@@이준서-z8n제가 말한 "고토"시절은 충선왕이후 원 내부가 안정화 되면서 끝납니다. 고려는 몽골과 강화이후 "선택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원종은 세자시절 아릭부케와 쿠빌라이 중 쿠빌라이를 선택했고 충선왕도 원 황위다툼에서 무종을 선택했죠 하지만 충선왕이 유배되고 충선왕이 가진 왕위를 충숙왕과 왕고가 나눠가지면서 고려는 "선택당하는" 입장이 됩니다. 원 내부가 안정되자 지방의 제후왕과 제민족세력을 약화시키며 중앙집권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원은 심기가 불편할때마다 심왕을 고려왕으로 내세웠고, 심왕은 명예직으로 강등시켰습니다. 당연히 요양행성의 왕씨 홍씨들 고려인들은 영향력이 미미해졌죠. 그런 과정에서 명목상 원의 영토였던 요동은 점차 실질적 원의 영토가 되었고 심왕과 사이에서 "선택받아야"했던 고려는 요동에는 신경쓸수 없던 겁니다. 그런데 공민왕이 그런 "원의 선택"을 물리쳤고 고토인 요동을 정벌한겁니다. 하지만 그런 공민왕도 노국공주가 죽은 이후 유익이라는 요동 군벌이 귀부를 요청했을때 묵살하는등 이미 정치에 손에 놔버렸죠. 그러다 우왕이 다시 시도했고 이성계의 쿠데타로 고려가 망한겁니다.
사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성계는 왕이되고싶었던 마음이 컸기때문에 결국 위화도회군이라는 선택을 하게되었던거같아요~ 당시 고려말 상황도 쿠데타를 일으키기에 딱 좋은 시기였구요!! 하지만 그래도 고려를 더 부강하게 만들기위해서 이성계나 최영 모두다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많이 드네요.. 물론 이성계 입장에서는 요동정벌의 성공유무랑 상관없이 본인에게는 득될것이 없다고 판단했겠지만요
요동을 차지했어도 오래버텨봐야 수십년임. 영락제가 가만 놔뒀을 리가 없음. 그리고 최영 죽고난 이후의 고려왕실과조정이 과연 명의 거센압박에 물심양면 요동을 지원할까 하는 의문 그리고 이성계에 대한 견제. 명의 공격 한두번은 버티겠지. 그런데 명의 광대하고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인구와 경제력 차이를 뭔수로 감당하겠음? 안 그래도 피폐해진 고려가.
@@Kwang-Min-Lee 가지고 있기엔 행정력이 미치기 쉽지 않은 척박한 변방이죠. 다만 농사짓고 사는 고려가 유목세력까지 아우르게 하지 않기 위해서 견제했던 겁니다. 제2의고구려가 생기는 걸 방지하는 것이죠. 기회만 생기면 요동에 믿을만한 장수 데려다놓고 유목민족 이간질시키면서 유지하는게 낫죠. 아니라도 요동은 유목민족이 차지하게 두고 다른 유목세력을 지원하고 고려가 또 그들을 견제하게 하고 이렇게 이이제이 를 참 좋아라 하죠.
이성계가 어떤 사람인데ㅎ 그 사람은 어느 쪽도 확실한 가능성이 없으면 애초에 군사를 일으키지도 않아요. 가는 길에 어느 쪽이 큰 이득인지 고민을 하며 가다가 그냥 답을 내린거죠. 되찾을 수는 있고 끌어들일 세력도 알고 있지만 그러면 평생을 전쟁으로 보내야 하는데 적당히 타협하면 편하게는 살거란 말이죠. 이미 답을 정해 놓고 갔다기 보다는 되돌리는 순간까지 고민을 했다는게 더 정확하지 않나 합니다. 요동 땅에서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놓치기도 아깝고, 치자니 그 이후 인생이 평생 피곤해질게 보이니 피가 말리는 상황이었던건 틀림 없겠죠. 먹을거리가 없었던게 아니에요. ㅎㅎ
외적의 침공을 당하면 죽기살기로 맞싸워야 하지만, 타국의 영토를 침범할 때는 섣불리 덤벼서는 안됨. 우리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천년 가까이 지킬 수 있었던 것도 한반도를 지키는데 힘을 쓰고 섣불리 영토 확장 정책을 펴지 않은(못한 ?) 덕이 아닐까요? 수비는 쉽고 공격은 어렵습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화군을 하지 않았다면 ... 명나라와 전쟁을 했을 것이고 아마 철령 이북의 땅을 명나라에 넘겨주는 선에서 강화가 맺어졌을듯.
자유지만 황샘 그냥 조선중기부터만 하세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심양왕을 왜 고려왕으로 임명했는지 철령위치설명상 함경도라니 그리고 명이 만주도 아니고 함경도 귀퉁이를 내놓으라고 한다 말이 될까요 거의 모든 영상 댓글이 어렵다 명나라에게 개박살 날것이다라는결론 이때에 고려의 정신 병력 경제상황을 살펴야하는데 교과서의 고려라면 쉽지 않았겠지만 전후상황을 본 고려라면 한판 뜬게 나은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함경도 귀퉁이 내놓으라고한 이유.. 원나라를 명이 이어받았다고해서 원나라때꺼 다 달라고 하던게 주원장 색히임.. 제주도도 탐라총관부있던데라 달라구 하던 색히임.. 그래서 고려가 탐라는 원래부터 고려땅이구.. 거기 말이나 몽골애덜이 키운거라고해서 제주도 말 내놓으라구해서 OK 콜하다 일어난게 목호의 난이었슴.
저도 어릴때 김진명 소설 좋아했는데, 역사 전공하고 나서 보니 너무... 왜곡이.... 어지간하면 재미로만 보는걸 추천드립니다. 철령위치에 대한 역사학계 논쟁있는건 맞는게, 정설은 교과서에 나오는 그 위치가 맞습니다. 그리고 논쟁의 대상도 명은 철령을 만주쪽이라고 생각해서 외교문서를 보냈는데, 고려는 쌍성총관부 지역을 달라는걸로 인식했다 정도입니다. 즉 살제 위치가 아니라 명이 철령을 어디로 생각했는가의 논쟁입니다.
그저 단순히 외우고 그 실제 위치관련 얘기만하면 거품 무는 종자들이 있네ㅋㅋㅋ 그리고 궁금해서 묻고 의견을 나누자는건데 ㅋ 정설이라고하는데 왜 실제 있는 비석들이나 사서들 들이밀면 무조건 아니라고하고 아니라는 근거는(기록도 없고 그저 추정) 못대는건지 정설 학계도 반성해야될거같아요
영상속 설명들에 오류가 일부 있음... 1) 2차 요동정벌 당시 요동에 주둔중이던 명나라군의 규모는 5만이 아니라 최대 7만8천명이었음.. 명나라는 고려의 제2차 요동 정벌, 곧 위화도 회군 직전인 1387년 이전까지 요동 지역에서만 13위를 갖추었는데 참고로 명나라의 군사 단위에 있어 1위는 일반적으로 5,000 - 6,0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음. 즉, 13위가 갖추어진 상황에서 요동에 주둔중이던 명군의 숫자는 최소 6만5천명에서 최대 7만8천명에 달하는 상황이었음.. 공격하는 측이 방어하는 측보다 3배나 더 어렵다는 군사적 격언을 생각해볼때 5만으로 요동을 정복하는건 매우 힘든 상황이었음.. 2)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은 1387년 정로대장군 풍승(馮勝)의 지휘 아래 좌부장군 부우덕, 우부장군 남옥의 20만 대군을 요동으로 출병시켜 나하추의 근거지인 요동의 금산을 점령하도록 했음. 결국 이런 명나라의 대군세를 바탕으로 한 주원장의 항복 권유에 나하추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명나라에 항복하게 됨. 즉, 나하추의 20만 대군이 사라진게 아니라 그대로 20만 대군이 명나라측에 흡수된거임.. 실제로 나하추는 이후 명나라군의 장수로서 몽골과 토착계 잔당들이 남아있는 운남 정벌에 나섰다가 그곳에서 병사했었음. 3) 1388년 남옥은 총사령관으로서 15만 대군을 이끌고 북원 정벌에 나섰고 부이르 호수에서 북원 군대를 대파하고, 마침내 쿠빌라이계 북원을 멸망시켰음. 그와함께 끝내 북원의 황제이자 칸이던 천원제 토구스테무르 칸이 명나라군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다가 살해당하면서 쿠빌라이계 북원의 명맥은 끊어지게 되었고 북원 또한 완전히 멸망해버림. 즉, 2차 요동 정벌 기준으로 북원은 이미 멸망해서 군소세력들만 남은 상황이었음. 한마디로 북원과 명나라와의 장기전(?) 같은 희망은 이미 2차 요동정벌 당시에는 꿈도 꿀 수 없던 상황이었음..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의 대군이 위치한 곳아 요심 지역이 아니라 지금의 난하 유역이라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요심 지역이 결국 요동의 치소가 되었기에 사가들이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시도했다고 기록했을 가능성과 우왕과 최영이 고려 서경이었던 요심 지역만 수복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려말의 상황은 아직 깊이 있게 연구하지 못해 저의 의견일 뿐입니다. [중국의 동북아고대사는 가짜다]의 저자 김석주 드림
@@enjoylife79551 안녕하세요. 요심 지역에 고려 서경이 위치한다는 것을 댓글로 논증하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 길어서... 하지만 관련 내용을 담은 책 2권을 이미 출판했고 향후 6권을 추가로 출판할 예정이기 때문에 논증도 없이 함부로 뱉은 말은 아니며 그 책들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런 답변을 드려 죄송합니다. [중국의 동북아고대사는 가짜다]의 저자 김석주 드림.
그리고 핵심적인 내용인데.. 당시 고려 괴롭히던 왜구들 최무선이 화약무기 개발해서 까부셨던거 알거임.. 그 화약제조법을 최무선이 알아낸거지만 화약의 재료들은 명나라에서 수입하던 시절임. 명나라 종특이 공성, 수성전이었슴. 북원이 야전에서 명나라 바르고도 번번히 북경공략 실패한게 화포로 성안에서 쏴대는거 못뚫어서임. 그런 명나라 상대로 공성전은.. 이성계라도 안된다고봄. 게다가 화약수입없이 왜구는 어떻게 상대하라고..
고려가 조선보다 좀더 자주적 외교정책을 했다고 고려가 조선보다 영토가 커야하는게 당연한것처럼 말하는게 이해가 안됨. 당시의 동북아 국제정세를 같이 봐야하고 그에따라 영토는 커지거나 줄어드는거지. 원나라는 적은 인구로 엄청나게 넓은 지역을 관할해야해서 고려 왕족을 원나라 수도와 가까운 지역인 심양왕에 앉히고 볼모로 잡아둔것임. 그래야 먼곳에 있어서 신경쓰기 힘든 고려가 이상한짓을 못하게 하기 위한건데 원나라가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 고려왕족을 심양지역 왕으로 앉힌걸 심양과 요동이 고려 영토고 관할이었던것처럼 말하는건 역사를 우리에게 유리한쪽으로만 근거도 없이 상상해서 유추하는것임
가장 중요한 건 여진족이 청을 세울 땐 명이 지 스스로 쓰러져 가던 때이고 회군 시기는 명 건국초기에 북원을 몰아내고 욱일 승천하던 때라 백전연마의 장수와 병사들이 많던 때였어요. 여진족은 유목민족이라 상대가 공격할 땐 어렵고 야지에서 공격받을 땐 각개격파를 걱정해야 할만큼 기동력에서 차이가 나죠. 반면 조선도 역시 성을 쌓고 방어해야 하는 터라 소모전으로 가면 결국 고구려처럼 당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정확히 그 당시 명나라는 이자성의 대규모 농민 반란으로 이미 망해가던 상황이었음.. ㅇㅇ 청나라는 시기를 매우 잘 만나서 중원 입성에 성공한거임.. 실제로 명나라는 이자성의 순나라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고 왕조가 멸망했으며, 그 이후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가 청나라에 휘하 병력들과 함께 투항하면서 청나라는 피 한방울 안 흘리고 산해관을 넘어 중원에 입성 할 수 있었음..
철령위가 요동땅에 있다고 하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요? ruclips.net/user/results?search_query=%EC%9D%B4%EB%8D%95%EC%9D%BC+%EC%9A%94%EB%8F%99%EC%A0%95%EB%B2%8C
강원도에 철령이 있고 원나라가 쌍성총관부 둬서 직접 관할했었슴.. 공민왕이 쳐서 다시 되찾은거지만 주원장이 명이 원나라 이어받는다란 입장이라.. 원이 통치하던거니 내놔라 한거임.. 근데 고려가 원래 고려땅이고 수도인 개성에서도 가깝고 하고 반발하니.. 그냥 국경근처에 철령위 세웠다가.. 국경문제될거같으니 나중엔 더 먼 심양 북쪽으로 옮긴거고.. 나중에 환빠 ㅄ들이 철령위는 심양 북쪽에 있다... 원래 철령은 저기였다란 개소리들이 나온거고..
전세계에서 이성계보다 위대한 장수는 아무도 업흡니다. 이성계는 불세출의 영웅입니다. 손문일당과 일제와 서양세력이 조작한 역사관으로 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성계는 홍건적을 진압하고 1368년 명조선을 건국하고 징기스칸의 친손녀사위로서 1369년 원나라가 장악했던 모든 영토를 장악하고 티무르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1392년 고려가 지배했던 영토까지 모두 장악하고 대조선을 건국한 인류역사상 최고의 영웅입니다. 물론 영락제 태종 이방원은 나머지 전세계 모두를 지배했으니 이방원을 제외하면 최고의 인물입니다.(원사참고)
철령위를 강원도 "철령"과 연관지어 말하는 것은 언제쯤 바뀔지 모르겠네요. 주원장이 철령의 동쪽, 북쪽, 서쪽은 명나라땅, 그 남쪽은 고려땅이라고 말했는데 이것만 가지고 방위를 추정해봐도 철령의 위치는 고려의 북쪽 또는 서북쪽 변경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강원도의 철령은 바로 옆이 동해이기 때문에 여기를 두고 주원장이 말한 것이라면, 철령의 "동쪽"이라는 표현을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즉, 강원도 철령을 두고 "이동, 이서, 이북" 운운 하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철령위의 설치 위치, 이동 연혁, 철령(테링)시의 존재 등을 봐도 철령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해도 고려의 서북면의 어디쯤에 위치한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fjwk8 그렇다면 이자춘의 근거지가 지금의 함경도가 아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명나라 주원장과 고려 우왕이 주고받는 국서로 돌아가서 보면, 고려 우왕은 철령은 조상대대로 우리땅이니 그냥 예전처럼 고려땅으로 하자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주원장이 말하기를 "고려는 이전에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는데 지금은 철령으로 꾸미니 거짓임이 분명하다"고 맞받아칩니다. 주원장 본인의 입으로 한번은 "철령 동쪽/서쪽/북쪽은 명나라땅, 철령 남쪽은 고려땅으로 하자"고 하고, 뒤이어서 "이전에 고려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아놓고선 왜 지금에서는 철령이 너희땅이라고 하냐"고 합니다. 주원장이 말하는 "철령"이 압록강 북쪽에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발언인 것입니다. 애초부터 강원도의 "철령"을 두고서 국경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더군다나 쌍성총관부는 원나라 때 "개원로" 소속이었고, 원사에 쌍성과 화주는 요동에 있다고 나오고, 또 개원(카이위안)시의 명칭의 유래가 바로 개원로라 하니, 쌍성총관부 자체도 함경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겠지요.
당시 명나라 병력이 40-50만에 원나라는 전선 유지를 못하고 명나라 올타임 레전드 장군인 남옥이 15만 -20만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원나라 아예 막타치던 상황이었는데, 만약에 총 5만명 남짓한 병사로 요동을 쳤다면 어떻게 함락을 했다고 치더라도 뒤가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법. 남을 섬기는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니? 국제질서는 내 성질대로 하는게 아님. 우리는 왜 미국한테 빌빌대? 그렇게 자주적이면 주한미군도 나가라하고, 김정은이도 잡아 조지고, 시진핑 싸대기 날리지.. 그게 안되잖아... 그러니 사이즈 보고 판단하는거지. 평생을 전장에서 애들 모가지 따던 인물인데, 머리 숙이는게 체질에 맞겠니? 사대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어... 자네도 싫잖아? 다 마찬가지야.. 어느 누구는 셔틀하고 싶겠니? 셔틀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 상황이, 또 이해관계가, 생존이 걸려 있는 것이니 판단을 하는 거지... 앞으로는 깊게 생각하고 말해. 치욕적인 어쩌구 하지말고. 뭐가 그렇게 치욕적이니? 그럼 다 같이 대가리 터지게 싸우다 한 놈도 안남고 다 죽어야 속이 시원하고 자랑스런 왕조겠니?
어떻게든 요동성을 점령하더라도 수당처럼 명이 수십만 대군으로 몇번이고 공격했을 때 끝까지 지킬 가능성이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이성계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지금 한국만 해도 "너무 오래 분단돼 북한과 다른 민족 됐으니 통일하지 말고 이대로 살자"는 국민이 여론조사에서 많고, 지금 방향대로 쭉 다민족국가화되면 영구분단 확정인데, 후손들에게 남북통일 여지라도 남겨줄 수 있게 국민들이 정신 차리고 바꿔야 합니다.
그건 우리의 변명같은 생각이고, 주원장은 요동을 칠 생각이 없었음. 그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고려가 요동먹고 빼째버리는 전략으로 외교전으로 나갔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임. 애초에 요동이 고려땅이라는건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수양제, 당태종이 100만대군으로도 요동정벌에 실패했다는건 명나라 한족들도 다알고 있는 사실이라 절대 섣불리 요동정벌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었음.
*황현필의 [귀퉁이 조선사] 몰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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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전공자구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4불가론
1번 항목이 모든뜻이 함축 되어있다 봅니다
이후 조선의 행보(조공)도
이성계의 주장을 뒷받침함
두번째!!
장수가 "불가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한다는것
그것 주는 "의미"는
어찌되었건 위험을 무릎쓰고 반대의사를
명확히 표명했다는 뜻임으로
처음부터 쿠테타 의도는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확실한 의사표현을
하였으나, 관계가 틀어진듯 함이
타당한 추측같습니다.
우리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명분도 있고
당장 요동땅 먹을만한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우리입장 아닌가요?
이로인해 명과 대립관계
우리의 국력과 상대의 파워
막상 요동을 정벌해도
영토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것 까지는
쉽지않다고 보았던것같음
(아프카니스탄 주둔처럼)
또한, 뺏기기 전 우리것과
다시 되찾고 유지하는 것은
냉정하게 또 다르다고 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승자에 기록인데
저는 왕권 문화 자체가
생물학적 "본능"에의한
"인간의 서열구조"라 보고있고
인류문명이 발생하고
영토가 자연스럽게 나뉘면서
힘의 균형을 통해 발현되는듯
불편한 진실이죠
초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위화도 회군을 , 단순히
다시 들여다보고자 왔는데
이성계를 옹호할 마음은
없고 ,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보니 그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던것 같네요
고려가 강했다면
무혈입성을 최소한 저지하는 시늉이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의 도덕적인 잣대로
역사를 평가할수도 없고
그건 의미가없다고 봅니다
조선왕조 500년 모든책임과
결과론적인 해석은 무의미
단..위화도 회군과 근현대사를 둘러보면
5.16 , 12.12등 역사적 격변기에
한국인 기질이 보이는군요
왕조 문화가 자체가
인간의 지배,통치,섬김
본능에 의한 부산물임을 고려할때
후손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냉철하게 분석하고 교훈삼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aq5933infj?
감사합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최영 장군이 중국에서 몆번 전투하여 이겼다고 하던데..싸워보니 별거 아니라 해 볼만하여 북진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근요.
실제로도 5만 병사로 20만까지 막았을거라 봅니다. 중국이 뭐 실전에서 계속 발전햇다고해도 만주쪽으로 원정오긴 쉽지않았을거라봄. 와서 졌으면 수나라꼴 됐음
최영은 원나라 요청을 받은 공민왕의 지시로 38세에 원나라지원 고려군을 이끌고3년간
산동 하북 지역에서 주원장의 홍건적과 수십차례 대소형 전투를 치르면서
주원장을 알게됨 결국 홍건적의 우두머리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으며 명나라 집권층은 원나라 병사보다 날 래고 잔인한 고려군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게됨 최영은 이때의 경험으로 25년후 요동정벌하면 명나라를 이길수 있다고 생각함
@@noname-wq6jl 문제는 17년전엔 고려군이 요동정벌가서 기철 아들상대로 요동성 점령했다가 보급이 없어서 굶어서 퇴각한 전적이 있슴..
그뒤로 바로 요동은 명나라에 투항해서 주원장이 15년간 요새화 한게 요동지역이었슴. (12위 설치해서 주둔군 최소 6만)
나하추가 요동북부지역 만주에서 번번히 요동지역 쳐들어갔다가 깨진 이유임. 명이 나하추 항복받아낼때 20만 동원한것도 옛날처럼 걸어서 간것도 아니고 수군통해 요동와서 보급받아가면서 북으로 간거였슴. 그뒤 15만데리고 북원 기습해서 멸망시킨게 위화도 회군 딱 한달전일이었슴.
요새화된 요동.. 주둔군 6만이던 애덜 상대로 5만으로? 그것도 공성전 수성전이 종특이던 명나라군 상대로? (북원이 야전에서 명나라 털고 북경 공성전하다 궤멸당한게 화약무기들때문임)... 최무선이 화약제조법을 알아내서 왜구 상대로 화약무기 개발해 사용한거지만.. 화약재료는 죄다 명나라에서 수입하던게 고려였슴..
그리고 운좋게 요동을 빠르게 점령했다쳐도.. 북원 멸망시키고 남하하던 남옥의 15만하구 상대해야했슴..
@@내취저 5만으로 20만 "막는"거야 불가능한건 아니지...그 시대 전쟁에서 수비자가 가지는 이점이 어마어마한데.
근데 "와서 졌으면"이 성립되기 더 힘들어지는게 중국 통일왕조는 이미 수나라가 병신엔딩 맞은 꼴을 봐서 당장 그 다음 당나라부터 수나라의 병크를 고친채로 침공하니 결국 고구려도 더 버티지는 못하게 된거죠.
@@마속산악회거란10만도 털렸던 경험있어서 요동 제대로 싸우자했으면 명나라도 안 싸우고 그냥 나머지땅 먹었을거같긴함.
감사합니다.
저 역시 깊히 공감 합니다.
중국왕조들이 요동땅의 경제성을 욕심내기보단 고구려,발해,금,청 등 반농반목의 세력들이 커지는걸 견제하려한게 크지요,
철기가 개발되고서부터 유목민족의 기병이 곡도와 철갑으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고 특히나 동이세력은 나름의 반농의 기반하에 문화가 형성되어있어 중원세력에겐
위협적이었던거죠
😊
지금 한반도 분단정책도 마찮가지죠
(4:30)철령을 함경도로 비정해 놓고, 철령을 요동에 귀속시킨다고 했으면, 이제 요동이라는 건데, 그 1년뒤에 압록강 위화도가 조선 땅이었다는? 말이 안 되잖아요. 철령은 심양 바로 위에 있는 Tieling铁岭市가 있네요.
@@enjoylife79551 혹시 옮겼다는 근거 사료를 알 수 있을까요? 한국사에 보면 근거도 없이 하도 비정이 많아서요.
맞습니다
철령위는 함경도에있는 철령(친일역사관)이 아니고 중국 요동에 있는 철령위를 설치한다는 것으로 위란 말은 병사 진지를 뜻하며 이제 너희들 땅은 이제 압록강 으로 국경을 정하겠으니 물러 나라고하니 우리 고토 요동을 정벌한다고 하니 일어난 일임. 중국이 함경도에 있는 철영에 위를 설치한다??
거긴 주원장이 철령위 세울려다 실패한뒤에 지가 점령한 요동에 철령위 세우고 끝낸거임..
철령위 위치가 거기 아닌데 …
조선과 명의 국경선아 요하인데
요동은 원래 신라, 고려, 조선의 땅입니다.
중국인은 산해관 동쪽에 거주하지 않았는데
요동이 중국인땅인 듯 설명을 하니 열불남.
요동은 조선과 여진이 다투던 땅인데, 명과는 관련이 없는 땅이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요동을 청에게 뺏긴 것 뿐임....
황쌤💙
위화도 직접 가셨군요 멋집니다 쌤
철령위는 요동이에요
회군 안했으면 충분히 밀었을 거임. 최영이 바보도 아니고 전략은 맞는거임. 원과 연합하든 명의 후미를 치든 여진을 규합하든...전술은 이성계의 몫이였는데 그냥 첨부터 반란을 생각한듯.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씌여짐...
요동 정복(요동 점거)은 커녕, 요동에 대한 무력 시위부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홍건적의 침입때만 해도, 200,000명이나 되는 홍건적 대군에 국경이 털리고,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포함한 주요 도시들이 함락되었었다. 심지어 바로 직전에 수십 년간 지속된 왜구의 침략만 보아도 고려는 국가 멸망의 상황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그 피해가 매우 컸었다. 당대의 이런 상황들을 보면 당시 고려의 국력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또한 당시 명나라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장군인 남옥, 서달, 상우춘과 주원장의 라이벌이었던 진우량 또한 명장들이었고, 풍승, 목영, 탕화, 장옥 등의 능력이나 전공을 감안하면 굴복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위키에다 위화도 회군 검색하니가 나오더라고요.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성계는 애초에 다른 마음을 품고 회군의 명분을 변명으로 늘어놨을 뿐.
하지만 진다면 반도가 명이 됐을수도 있음 모든건 일장일단이 있음
저때 명군 사기가 진짜 높아서
부담스러움
밀었어도 상대는 주체인데..... 영락제는 중국사 한족 왕조 군사력 goat일텐데 고려가 감당하겠음?
명나라가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을 건너 고려로 들어오기 힘듦. 그 구간이 원정군한테는 정말 힘든 지형임. 명이 고려로 들어와도, 수나 당, 거란처럼 되려 자기 국력만 깍아먹게 될 것임. 요동에서 한번 붙어 볼만했는데, 이성계는 처음부터 싸울 마음이 없었으니
철령의 위치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지요.
요동은 우리민족의 강역이었고,
최영은 5천 병력으로 중국본토 전역에서 강력한 승기를 잡았던 장군으로 그 가능성을 보았었구요.
🎉😢
철령위 이견이란 건 원균명장설과 비슷한 겁니다.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을 뿐 별 근거 없음
@@lIlIllIIlIlIlllIIlI 에휴 일본학자뇌피셜로 만든 국사책으로 고려역사 공부하고서 뭔 철령위가 북한 설정햇다는 소리를 믿고있음 ㅋㅋㅋ
@@내취저 이런 분들 지도로 그려보라면 뇌정지와서 아무말대잔치 작렬하지 ㅋㅋㅋㅋㅋ
@@lIlIllIIlIlIlllIIlI 역사그냥 허투루 계속 배우세요. 어차피 니들은 니네가 아는것만 보이니 ㄲㅋ
고려 국경이 잘못됐어요!. 북한에는 저런 천리장성이 없습니다.
있어요
요동을 왜 갔을까나 거긴 원래 우리 땅이 여서 그랬던것.
고려가 고고려 계승한 나라인데 수복해야죠
거기가 왜 우리 땅임? 북한 땅이지
@@김스타-o3n북한땅도 아님 그냥 중국땅이지
한국사는 민족의식 고취정도면 딱이다 국뽕으로 가면 동북공정이나 다를바 없다 한국사 강사 개나소나 ㅋ
어후... 진짜 역하다 역해~
요동을 정벌한다고 한들 뺏기지 않았을까?
명나라한테 뚜들겨 맞고 땅 안뺏겻으면 다행이다
게다가 원나라가 당장 망한 것도 아니고 북원과의 전쟁중에 주원장도 디질정도로 치열했는데 ㅈㅅ은 알아서 기었음
고마워요
프리고진이 이성계를 알았다면 모스크바 회군때 승부를 걸었어야했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손절하고 발빼는 분위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시킬수있게 되었네요
위화도는 압록강 가운데 있는 섬이 아니라 압록강 건너 너머에 있는 반도형 지역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음ㅡ압록강 중류 건너편
책보고 유튜브인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설득력이 있었음
위화도의 도라는 글자도 꼭 섬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반도형 지역을 도"라고도 씀 바로 한반도. 요동반도. 산동반도 등등 무스히 많음. 1000명의 군사도 야영하지못할 강가운데 모래톱 정도를 위화도라고 말함은 이치에 맞지않음 그리고 쌍성총관부니. 철령위니 다 요동쪽에 있느 것이지 함경도 원산 함흥지역에 있는 것이 아님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고 합당함
그런거 따져봐야 뭐함 뭐 그래서 요동이 원래 우리영토였다고? 근데 거기 살던 사람들이랑 우리랑 전혀 동질성이 없는데? 그냥 우리랑 별개의 역사라고 봐야함. 어차피 거기 사는 사람들 지금 중국인 정체성으로 사는 사람들인데 왜 거기 사람들 의견은 안물어보고 우리땅. 우리역사라고 함?
@@seahawk7893바보인가??어찌이리 하수이자멍청한것인지 참나 이러니 중국과 일본이 우리땅이라고내놓으라고함반박도못하고 내줄인간이로다
개구리가 되어 우물안에서 보는 세상만 전부라고 살아가라 평생
모르면 배우고 깨우쳐라 광대했던 선조들의 영토까지 욕되게하지말고
역사는 반복된다 단 당신같은 인간들이 많아질수록 남아있는 지금의 반도까지도 뺏기게될것이다
@@seahawk7893 님. 생각좀하고 말하셈. 따져봐야 뭐함이 아니라 살던 사람들이랑 동질성이 없는데가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취지이지. 왜 사실을 밝힌다는데 부정적임? 이해를 할 수없네.
@@kingkangin 그니까 요동에 있는 사람들의 역사지 지금 우리나라가 아니라. 세종이 4군6진 개척하고 거기 살 인구가 없어서 남도 사람들 강제 이주 시켰는데 요동사람들이 퍽이나 한반도에 살고 있겟노 다 그땅에서 중국인으로 살고 있지. 근데 그 사람들한테ㅈ니들 원래 한국 사람이었다고 하면 뭔 개소리하노 이럴듯
이순신해 서명 완료~
👍👍👍👍👍👍👍👍👍👍
저도 서명 했읍니다!
이제서야? 나는 처음 링크 뜨자마자, 3주전쯤에 했는데? 구독하고 이제서야 서명하는 인간들이 왜이리많아. 이래서 이순신해 되겠어?
저도요🎉
@@이대박-l4j해도 난리여~
승리하더라도 요동지역을 지속적으로 유지관리가능할까요?
광개토대왕은 관리 잘 했는데요?
관리 잘 할수 있느냐 없느냐는 의지와 능력 문제이지 관리 자체가 가능, 불가능한 게 아니죠.
누군가는 점령하고 관리해냈으니까.
@@MomitoSeo 광개토왕전부터 요동은 고구려땅이었다가 한동안은 남에게 빼았겻다가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시대와 조선시대 및 현대와는 시스템상 차이가 큽니다. 고대로 갈수록 영토 행정력개념이 현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현대적인 개념으로 모든 지방에 국가행정력을 구석구석투입하는 것이 고대에서는 어려운 일이죠.
위화도와 녹둔도의 정확한 위치를 두고 현재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압록강 끝에 위화도가 있고 두만강 끝에 녹둔도가 있다니 뭔가 지나치게 공교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21세기 현재에도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라고 안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구글지도를 보니 요동이라고 일컬어 지는 곳은 베이징 서남부 지역입니다..
환빠
@@rionalmessi642 넌 친일매국노 이병도 떨거지.
@@enjoylife79551 그건 박정희가 구데타로 통이 되었지만 친일매국노 남로당빨갱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거랑 마찮가지임.
17.000년전 세계 최초로 청주 소로리에서 볍씨 재배,
이후
한민족이 전세계로 퍼져 홍산문명, 수메르문명..4대문명.
마야 잉카 문명 건설.
단군이 최초로 국가형테 조선 건국후
마한 진한 번한이 세게를 다스리다
고백신 가야가 다스리다 신라가 통일.
이성게가 압록강=오비강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투루판 =함흥에서 고려를 합병.
나라이름을 그대로 고려라고 했다고 왕조실록에 나옴.
태종이 명나라를 만듦.
세종나라는 고려.
1897년 고려에서 대한제국연방으로 개명.
이후 서방 8개국이 합작으로 대한제국 멸망시키고
강제합병후
세게를 부르는 이름 조선을
중화민국이 한반도가 조선이라고 조작후
한반도로 넘겨주어 이병도 신석호가 조작 완성?
흑피옥과 마고문명 인간창조 2 ㅡ 다음 검색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 ㅡ 다음 검색
중국 역사는 1911년 중화민국 부터 시작.
이전 역사는 전부 우리역사
1920년 동아일보 창간호에 권덕규는 우리나라땅을 6대주로 나누었다 ㅡ 다음 검색
동참~~~
😳😳😳
👍😳👍
서명완료 ~~~ 샘 파이팅...👍👍👍🤗🤗🤗
항상 잘듣고 있어요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반란군이 됐으면 당연히 빨리 내려가야죠..
맞아요,
사실 요동정벌의 명분이 고구려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여몽전쟁이 끝나고 20만이 넘는 고려인들이 요동에 살고 있었고 요동을 관리하는 요양행성의 승상이 홍씨와 왕씨 가문의 고려인이었죠. 게다가 요동의 왕인 심양왕이 고려왕이거나 고려왕실의 종친이었습니다.
당시 지금처럼 국경이 명확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요동에 사는 고려인 입장에서는 고려인들이 살고 고려인 관리가 관리하고 고려왕이 다스리는 요동은 고려땅이나 다름없었죠
그러니까 고토라는건 고구려때까지 갈필요도 없이 이미 요동정벌 수십년전에 고려땅이었다는 명분이 생긴 겁니다
공감가네요
그런 논리면, 굳이 정벌하러 가지 않아도 되겠네? 이미 고려구만... 말이 되나?
미국땅이 조선이었다는 증거
1922년 메이저리그 대표단 방한 ㅡ다음 검색
@@이준서-z8n제가 말한 "고토"시절은 충선왕이후 원 내부가 안정화 되면서 끝납니다. 고려는 몽골과 강화이후 "선택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원종은 세자시절 아릭부케와 쿠빌라이 중 쿠빌라이를 선택했고 충선왕도 원 황위다툼에서 무종을 선택했죠
하지만 충선왕이 유배되고 충선왕이 가진 왕위를 충숙왕과 왕고가 나눠가지면서 고려는 "선택당하는" 입장이 됩니다. 원 내부가 안정되자 지방의 제후왕과 제민족세력을 약화시키며 중앙집권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원은 심기가 불편할때마다 심왕을 고려왕으로 내세웠고, 심왕은 명예직으로 강등시켰습니다. 당연히 요양행성의 왕씨 홍씨들 고려인들은 영향력이 미미해졌죠. 그런 과정에서 명목상 원의 영토였던 요동은 점차 실질적 원의 영토가 되었고
심왕과 사이에서 "선택받아야"했던 고려는 요동에는 신경쓸수 없던 겁니다. 그런데 공민왕이 그런 "원의 선택"을 물리쳤고 고토인 요동을 정벌한겁니다. 하지만 그런 공민왕도 노국공주가 죽은 이후 유익이라는 요동 군벌이 귀부를 요청했을때 묵살하는등 이미 정치에 손에 놔버렸죠. 그러다 우왕이 다시 시도했고 이성계의 쿠데타로 고려가 망한겁니다.
지배층이 고구려인 피지배층이 말갈원주민
그래서 지배층이 무너지고 사실상 여진족으로 쉽게 둔갑
말갈족이 훨씬 많으니깐 당연한것
❤
사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성계는 왕이되고싶었던 마음이 컸기때문에 결국 위화도회군이라는 선택을 하게되었던거같아요~ 당시 고려말 상황도 쿠데타를 일으키기에 딱 좋은 시기였구요!! 하지만 그래도 고려를 더 부강하게 만들기위해서 이성계나 최영 모두다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많이 드네요.. 물론 이성계 입장에서는 요동정벌의 성공유무랑 상관없이 본인에게는 득될것이 없다고 판단했겠지만요
최 신순 내글 참조
요동을 차지했어도 오래버텨봐야 수십년임. 영락제가 가만 놔뒀을 리가 없음.
그리고 최영 죽고난 이후의 고려왕실과조정이 과연 명의 거센압박에 물심양면 요동을 지원할까 하는 의문 그리고 이성계에 대한 견제. 명의 공격 한두번은 버티겠지. 그런데 명의 광대하고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인구와 경제력 차이를 뭔수로 감당하겠음? 안 그래도 피폐해진 고려가.
@@아기상어-x9s 그런데 중국에게 요동이라는 지역은 아주 중요한 위치인가요?
@@Kwang-Min-Lee 가지고 있기엔 행정력이 미치기 쉽지 않은 척박한 변방이죠. 다만 농사짓고 사는 고려가 유목세력까지 아우르게 하지 않기 위해서 견제했던 겁니다. 제2의고구려가 생기는 걸 방지하는 것이죠. 기회만 생기면 요동에 믿을만한 장수 데려다놓고 유목민족 이간질시키면서 유지하는게 낫죠.
아니라도 요동은 유목민족이 차지하게 두고 다른 유목세력을 지원하고 고려가 또 그들을 견제하게 하고 이렇게 이이제이 를 참 좋아라 하죠.
그냥 딱 반역자임 이성계는
한반도역사를되돌릴수있다면결정적사건2가지
첫째 고구려의삼국통일
둘째 이성계의위화도회군쿠데타실패
다 부질없는상상이지만
환웅이안내려오고천계에있었다면어떻게됐을까요?
유튜브책보고영상많이봐주세요
이성계가 어떤 사람인데ㅎ
그 사람은 어느 쪽도 확실한 가능성이 없으면 애초에 군사를 일으키지도 않아요.
가는 길에 어느 쪽이 큰 이득인지 고민을 하며 가다가 그냥 답을 내린거죠.
되찾을 수는 있고 끌어들일 세력도 알고 있지만 그러면 평생을 전쟁으로 보내야 하는데 적당히 타협하면 편하게는 살거란 말이죠.
이미 답을 정해 놓고 갔다기 보다는 되돌리는 순간까지 고민을 했다는게 더 정확하지 않나 합니다.
요동 땅에서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놓치기도 아깝고, 치자니 그 이후 인생이 평생 피곤해질게 보이니 피가 말리는 상황이었던건 틀림 없겠죠.
먹을거리가 없었던게 아니에요.
ㅎㅎ
만고역적 이성계
만고역적 능지처참 이성계
이성계는 출발하기 전부터 회군만 생각했고
그 증거는 수두룩합니다.
💙💙💙💙💙
황현필 선생님~감사합니다
외적의 침공을 당하면 죽기살기로 맞싸워야 하지만, 타국의 영토를 침범할 때는 섣불리 덤벼서는 안됨. 우리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천년 가까이 지킬 수 있었던 것도 한반도를 지키는데 힘을 쓰고 섣불리 영토 확장 정책을 펴지 않은(못한 ?) 덕이 아닐까요? 수비는 쉽고 공격은 어렵습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화군을 하지 않았다면 ... 명나라와 전쟁을 했을 것이고 아마 철령 이북의 땅을 명나라에 넘겨주는 선에서 강화가 맺어졌을듯.
그거아셈? 여진족이랑 명 체급 차이가 고려랑 명 체급차보다 크잖아요? 심지어 얘네는 맞다이로 이김; 우리라고 못 이길 사이즈는 아니었고 된다는 판단을 전쟁 프로(최영)이 ok한건데 결국 자기이득만 챙기는 이기적인 ㅅㄲ 이성계가 사심채우려고 만든 나라가 조선아님?ㅋㅋ
1~2년 요동 땅 정벌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북원 정복한 명나라가 밀고 내려오는걸 끝내 막지는 못했을듯 하네요
자유지만 황샘 그냥 조선중기부터만 하세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심양왕을 왜 고려왕으로 임명했는지 철령위치설명상 함경도라니 그리고 명이 만주도 아니고 함경도 귀퉁이를 내놓으라고 한다 말이 될까요
거의 모든 영상 댓글이 어렵다 명나라에게 개박살 날것이다라는결론
이때에 고려의 정신 병력 경제상황을 살펴야하는데 교과서의 고려라면 쉽지 않았겠지만 전후상황을 본 고려라면 한판 뜬게 나은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 중국 철령시에서 철령위 관련 비석이 나온다큐도 있는데말이죠ㅋ
정정 다큐는 아니었네요
함경도 귀퉁이 내놓으라고한 이유.. 원나라를 명이 이어받았다고해서 원나라때꺼 다 달라고 하던게 주원장 색히임.. 제주도도 탐라총관부있던데라 달라구 하던 색히임.. 그래서 고려가 탐라는 원래부터 고려땅이구.. 거기 말이나 몽골애덜이 키운거라고해서 제주도 말 내놓으라구해서 OK 콜하다 일어난게 목호의 난이었슴.
황현필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순신해
고생하세요
요동정벌은 가능했다
할 가능성이 있었다
못했다.
최근 김진명 단편소설 풍수전쟁에 철령워치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더군요 한반도지역이 아니라는... 그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환단고기같은소리 대륙백제 같은 괴변임
저도 어릴때 김진명 소설 좋아했는데, 역사 전공하고 나서 보니 너무... 왜곡이.... 어지간하면 재미로만 보는걸 추천드립니다. 철령위치에 대한 역사학계 논쟁있는건 맞는게, 정설은 교과서에 나오는 그 위치가 맞습니다. 그리고 논쟁의 대상도 명은 철령을 만주쪽이라고 생각해서 외교문서를 보냈는데, 고려는 쌍성총관부 지역을 달라는걸로 인식했다 정도입니다. 즉 살제 위치가 아니라 명이 철령을 어디로 생각했는가의 논쟁입니다.
그저 단순히 외우고 그 실제 위치관련 얘기만하면 거품 무는 종자들이 있네ㅋㅋㅋ 그리고 궁금해서 묻고 의견을 나누자는건데 ㅋ 정설이라고하는데 왜 실제 있는 비석들이나 사서들 들이밀면 무조건 아니라고하고 아니라는 근거는(기록도 없고 그저 추정) 못대는건지 정설 학계도 반성해야될거같아요
소설은 일단 소설로ㅋㅋ 소설얘기로 들먹이면 소설가지고왔다고 까입니다.
대체역사소설 정도로 보고 읽으시면 됩니다
이성계 입장에서 보자면 사병을 보유한 자신을 견제하려 사지로 내몰았다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군요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죠. 당대 최고, 최대의 병력을 보유한 장군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다분하죠. 명망도 높고, 병력도 막강하니 제거하고 싶었겠죠. 정치적인 이유로. 대부분의 호족들이 사병을 보유했고 그 중 가장 세력이 강했습니다.
최영 대장군님 최고의 장군 이었으나
한번 패장으로 ㅠㅠ
황선생님 위화도를 다녀오셨으니 잘 아실텐데, 과연 지금의 위화도가 5-6만 군사가 숙영을 할 정도로 넓은지 궁금합니다.
정확하지는 않치만 위화도에서 숙영하지 않고 위화도를 목전에두고 숙영한걸로 알고 있어요
그럼 진짜 위화도가 어딘지 비정을 해보든가 비정하라 하면 맨날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같이 좀 고증좀 해보자'이런 식으로 뜬구름잡는 소리나 하고 ㅉㅉ
@@내맘대로-b3g 정확하지 않은 표기를 한반도 안에 우겨넣는 자국역사의 부정적 해석이 식민사학 자체에 너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거지 교차검증이 되고 확실히 자료가 있는 부분은 연구를 해야 마땅한것을
도대체 위화도가 어디에 있어요?한반도에 위화도와 강동육주는 어디에 있는지요,,제발 찾아주세요
1388년 위화도회군이 일어난지 정확히 6백년후 한반도에서도 올림피아제전이 벌어집니다
황쌤 쵝오
영상속 설명들에 오류가 일부 있음...
1) 2차 요동정벌 당시 요동에 주둔중이던 명나라군의 규모는 5만이 아니라 최대 7만8천명이었음.. 명나라는 고려의 제2차 요동 정벌, 곧 위화도 회군 직전인 1387년 이전까지 요동 지역에서만 13위를 갖추었는데 참고로 명나라의 군사 단위에 있어 1위는 일반적으로 5,000 - 6,0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음. 즉, 13위가 갖추어진 상황에서 요동에 주둔중이던 명군의 숫자는 최소 6만5천명에서 최대 7만8천명에 달하는 상황이었음.. 공격하는 측이 방어하는 측보다 3배나 더 어렵다는 군사적 격언을 생각해볼때 5만으로 요동을 정복하는건 매우 힘든 상황이었음..
2)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은 1387년 정로대장군 풍승(馮勝)의 지휘 아래 좌부장군 부우덕, 우부장군 남옥의 20만 대군을 요동으로 출병시켜 나하추의 근거지인 요동의 금산을 점령하도록 했음. 결국 이런 명나라의 대군세를 바탕으로 한 주원장의 항복 권유에 나하추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명나라에 항복하게 됨. 즉, 나하추의 20만 대군이 사라진게 아니라 그대로 20만 대군이 명나라측에 흡수된거임.. 실제로 나하추는 이후 명나라군의 장수로서 몽골과 토착계 잔당들이 남아있는 운남 정벌에 나섰다가 그곳에서 병사했었음.
3) 1388년 남옥은 총사령관으로서 15만 대군을 이끌고 북원 정벌에 나섰고 부이르 호수에서 북원 군대를 대파하고, 마침내 쿠빌라이계 북원을 멸망시켰음. 그와함께 끝내 북원의 황제이자 칸이던 천원제 토구스테무르 칸이 명나라군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다가 살해당하면서 쿠빌라이계 북원의 명맥은 끊어지게 되었고 북원 또한 완전히 멸망해버림. 즉, 2차 요동 정벌 기준으로 북원은 이미 멸망해서 군소세력들만 남은 상황이었음. 한마디로 북원과 명나라와의 장기전(?) 같은 희망은 이미 2차 요동정벌 당시에는 꿈도 꿀 수 없던 상황이었음..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의 대군이 위치한 곳아 요심 지역이 아니라 지금의 난하 유역이라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요심 지역이 결국 요동의 치소가 되었기에 사가들이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시도했다고 기록했을 가능성과 우왕과 최영이 고려 서경이었던 요심 지역만 수복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려말의 상황은 아직 깊이 있게 연구하지 못해 저의 의견일 뿐입니다.
[중국의 동북아고대사는 가짜다]의 저자 김석주 드림
@@enjoylife79551
안녕하세요. 요심 지역에 고려 서경이 위치한다는 것을 댓글로 논증하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 길어서...
하지만 관련 내용을 담은 책 2권을 이미 출판했고 향후 6권을 추가로 출판할 예정이기 때문에 논증도 없이 함부로 뱉은 말은 아니며 그 책들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런 답변을 드려 죄송합니다.
[중국의 동북아고대사는 가짜다]의 저자 김석주 드림.
나도 이게 맞다라고 생각함 무패의 용사 이성계가 불가능하다고 할정도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
그나마 님같은 사람이있어서 고구마 쳐먹는 기분이다가 좀 풀림..
유익의 귀부이후 주원장이 요동에 정요도위 설치하구 (나중엔 25위까지 불어나지만 위화도 회군당시엔 12위까지 설치됐었슴) 그래서 요동 주둔병은 최소 6만이었을거라고봄.
이게 1373년부터임.. 최소 15년간 요동을 요새화한게 명나라였슴. 그래서 요동 북부에 위치했던 나하추가 번번히 요동에 침공했었지만 개발렸던 이유..
그래서 옛날처럼 육로로 요동까지 이동하던게 명나라가 아니라 그냥 수군통해서 요동에 가던 시절이었슴. 나하추를 포위할때 풍승 남옥등 20만이 갈때도 수군통해 요동통해 갔던거구.
나하추가 별다른 저항없이 바로 항복하구 그뒤 15만끌고 북원 기습하러간건데.. 위화도 회군시점이 바로 북원이 기습당해 멸망당한지 딱 한달뒤임.
즉 만주 주둔군 6만 기본에.. 북원 패망시키고 회군하던 15만하고 상대해야했던게 이성계였슴..
그리고 핵심적인 내용인데.. 당시 고려 괴롭히던 왜구들 최무선이 화약무기 개발해서 까부셨던거 알거임.. 그 화약제조법을 최무선이 알아낸거지만 화약의 재료들은 명나라에서 수입하던 시절임.
명나라 종특이 공성, 수성전이었슴. 북원이 야전에서 명나라 바르고도 번번히 북경공략 실패한게 화포로 성안에서 쏴대는거 못뚫어서임. 그런 명나라 상대로 공성전은.. 이성계라도 안된다고봄.
게다가 화약수입없이 왜구는 어떻게 상대하라고..
애초에 고려가 조선보다 작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조선이 축소해서 집필한 고려사에도 고려의 북쪽 영토는 최소 요동포함하여 만주전체입니다
원나라 시절에도 고려왕은 곧 심양왕이었고 이는 요동땅이 고려의 관할이었다는 겁니다
철령위가 강원도 원산이라는건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입니다
@@fjwk8 깨우쳐줘도 소용없는 축생 ㅉㅉ
고려가 조선보다 좀더 자주적 외교정책을 했다고 고려가 조선보다 영토가 커야하는게 당연한것처럼 말하는게 이해가 안됨. 당시의 동북아 국제정세를 같이 봐야하고 그에따라 영토는 커지거나 줄어드는거지. 원나라는 적은 인구로 엄청나게 넓은 지역을 관할해야해서 고려 왕족을 원나라 수도와 가까운 지역인 심양왕에 앉히고 볼모로 잡아둔것임. 그래야 먼곳에 있어서 신경쓰기 힘든 고려가 이상한짓을 못하게 하기 위한건데 원나라가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 고려왕족을 심양지역 왕으로 앉힌걸 심양과 요동이 고려 영토고 관할이었던것처럼 말하는건 역사를 우리에게 유리한쪽으로만 근거도 없이 상상해서 유추하는것임
@@세이블빈티지고려의 영토에서 관한 내용은 저의 뇌피셜이 아니고 100% 역사기록입니다 링크 영상 참고 부탁드립니다 ruclips.net/video/zmtAus4LMb8/видео.html
@@fjwk8 전문가? 대학교수,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공부는 진짜 공부는 절대 하지 않으며 명백한 역사기록이 존재함에도 본인들이 배운 엉터리 역사, 식민사학만이 맞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심양왕? 그거 그냥 작위지, 고려영토로 인정하겠다는게 아니잖아요. 그게 가능하면 남북국 시대에 남조 왕조들은 일본왕을 왜신라임나진한모한제군사왜국왕으로 책봉했는데 한반도 남부는 일본땅 됩니까?
군인들 데려가서 점령은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얻어낸 영토를 영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였고
당시 고려의 국력으로 요동의 영구적 지배는 무리였음
단순한 궁금증인데 동쪽에 철령이 있는데 왜 서쪽으로 갔을까요? 아시는분 설명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아직도 역시나군요 ㅎㅎ 이해는 합니다. 수험생들 가르쳐야 하니...헌데 진짜 철령위가 함경도면 뭐하러 요동으로 가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니 이게 심각한 식민사학의 폐혜입니다.
@@enjoylife79551이해를 못하고 있군요.
@@enjoylife79551 나무위키 논리를 가져오신 거 같네요 ㅎㅎ 그런 수준이시면 그런거겠죠. 다른 의견 존중합니다.
좋아요
여진족이 청을 세우는 불가능한 경우는 수천가지 였고 가능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도 청을 세운건 그들의 도전정신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여진족이 청을 세울 땐 명이 지 스스로 쓰러져 가던 때이고 회군 시기는 명 건국초기에 북원을 몰아내고 욱일 승천하던 때라 백전연마의 장수와 병사들이 많던 때였어요. 여진족은 유목민족이라 상대가 공격할 땐 어렵고 야지에서 공격받을 땐 각개격파를 걱정해야 할만큼 기동력에서 차이가 나죠. 반면 조선도 역시 성을 쌓고 방어해야 하는 터라 소모전으로 가면 결국 고구려처럼 당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여진족은 원래부터 강인한 전투 민족입니다. 그들이 한족의 중국왕조나 다른 북방 기마 민족의 지배를 받은 기간보다는 그들이 한족이나 다른 북방 기마 민족을 지배했던 기간이 더 길어요.
@@천대식-s8k.ㄷ
정확히 그 당시 명나라는 이자성의 대규모 농민 반란으로 이미 망해가던 상황이었음.. ㅇㅇ 청나라는 시기를 매우 잘 만나서 중원 입성에 성공한거임.. 실제로 명나라는 이자성의 순나라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고 왕조가 멸망했으며, 그 이후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가 청나라에 휘하 병력들과 함께 투항하면서 청나라는 피 한방울 안 흘리고 산해관을 넘어 중원에 입성 할 수 있었음..
@@천대식-s8k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중공의 역사는 1911년 중화민국부터 시작.
이전 역사는 전부 우리역사
널리 알리고 있어요~^^
위화도 회군은 , 이성계의 쿠테타라고 본다. 만약 요동을 정벌 했다면, 다른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성공한 구테타니 혁명이죠
고려의 마지막 왕은 이성계죠
요동이 요동쳤겠죠
요동을 점령하는게 민중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그걸 지키기위해 동원되는 군사 와 토목노동력에 힘들지 않았을까?
한반도 천연의 요새 첩첩산중아래서도 충분히 풍요를 누를 수 있었다. 정치만 올바르면.
땅의 크기가 국민의 행복은 아님
명나라가 다시 요동 수복하고 더 많은 땅을 빼았겼겠죠. 고려말은 패망 직전의 국운이 다 한 시기였죠.
병자호란이 그 때 일어났겠지.
서명합시다
당연하죠..
출근때와 퇴근때 사기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죠..
위화도 위치도 잘못됐소. 서압록에 위화도가 있고 5만병력은 현 동압록 위화도엔 주둔 불가능하오. 청이 봉금령 내리며 조선 국경과 군대를 뒤로 밀게하여 당시 동압록이 현재의 압록강이 됐고 서압록의 진지들이 뒤로 밀려내려왔소
위화도회군 당시 요동정벌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
그런데 조선이 건국되고나서 정도전이 주도한 요동정벌은 할만했다고 생각함.
중국에서 정난의 변이 일어났는데 그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함.
그런데, 기가막히게도 이방원이 난을 일으킴.
정난의변 승리자가 영락제고 영락제는 중국역사상 역대급 정복군주인데 조선이 개겼다간 완전 개박살 났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방원이 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한글은 창제 되지 않았음
개방원
무슨 개솔인지 뭐가 할만 했는데??
근거 좀 대봐라
이런글 싸지르는 애들은 뇌가 비었나
죄송한데요..혹시 위화도에 5만 병력이 주둔 할수가 있습니까?..ㅎ
우리나라 지형을 생각하면 서쪽은 평야가 많고 동부는 산이 많은데 5만 주둔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여름철이라고 하지만 실은 장마철이었죠. 지금처럼 도로가 잘 발달된 시기가 아니라서 젖은 오솔길을 통해서 대군을 행군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라스푸티차가 발생하면 전쟁 자체가 지체되는 것 잘 보셨잖아요.
🤩🤩🤩
이성계가 요동성을 포위한적이 있었지만 명나라애들이 눈치까고 들어와서 도망간적이 있다.....이 시기 고려에서 군대를 양성했더라면 국경선이 바뀌었을텐데 아쉽다.
여름장마철 에다 비가 많이내려 많이 불리한 요동정벌 아니였나요
중국의 사서들을 읽어보시오. 고려 북쪽국경은 요하와 흑룡강 이었소
철령위가 요동땅에 있다고 하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요?
ruclips.net/user/results?search_query=%EC%9D%B4%EB%8D%95%EC%9D%BC+%EC%9A%94%EB%8F%99%EC%A0%95%EB%B2%8C
강원도에 철령이 있고 원나라가 쌍성총관부 둬서 직접 관할했었슴.. 공민왕이 쳐서 다시 되찾은거지만 주원장이 명이 원나라 이어받는다란 입장이라.. 원이 통치하던거니 내놔라 한거임.. 근데 고려가 원래 고려땅이고 수도인 개성에서도 가깝고 하고 반발하니.. 그냥 국경근처에 철령위 세웠다가.. 국경문제될거같으니 나중엔 더 먼 심양 북쪽으로 옮긴거고..
나중에 환빠 ㅄ들이 철령위는 심양 북쪽에 있다... 원래 철령은 저기였다란 개소리들이 나온거고..
이성계는 그렇게 큰 인물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상놈이 귀족을 협박하여 왕이 된 경우, 이씨조선 좆이나 처먹어, 연개소문 은 그래도 왕 자리는 차지하지 않았어
전세계에서 이성계보다 위대한 장수는 아무도 업흡니다.
이성계는 불세출의 영웅입니다.
손문일당과 일제와 서양세력이 조작한 역사관으로 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성계는 홍건적을 진압하고 1368년 명조선을 건국하고 징기스칸의 친손녀사위로서 1369년 원나라가 장악했던 모든 영토를 장악하고 티무르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1392년 고려가 지배했던 영토까지 모두 장악하고 대조선을 건국한 인류역사상 최고의 영웅입니다.
물론 영락제 태종 이방원은 나머지 전세계 모두를 지배했으니 이방원을 제외하면 최고의 인물입니다.(원사참고)
유튜브에 댓글이나 남기는 사람이 이성계 보고 큰 인물이 아니네 마네 하는게 개웃기네 ㅋㅋㅋㅋㅋ
@@현이성-q6i중국한테 대가리박기 ㅉ
@@RL1354 네 위치에선 중국한테 대가리 박기도 못함 엌ㅋㅋ
고려의 국경선은 산해관 ~ 공험진,선춘령
전 위화도 회군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대륙땅도 잃었다구 봅니다. 그래서 선초에 역사서 수거해서 감췄죠.
완료
의병장 하고 있는데 최대한 많이 받아보겠습니다
오늘도 잘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현필 선생님
출진 부터 쿠테타 준비한 듯
드라마에서는 이성계가 위하도에서 조민수 설득하는 장면 나오는데 님말처럼 미리 출전하기 직전에 짝짝궁한 듯
그건 아닌 듯. 그랬으면 개경 나갔다가 바로 오지, 뭐하러 트래킹하다 옴? 실무자가 안된다는거 자꾸 시키니까 하는 척 하다가 들이받고 나 안 해. 한 거지..
철령위를 강원도 "철령"과 연관지어 말하는 것은 언제쯤 바뀔지 모르겠네요. 주원장이 철령의 동쪽, 북쪽, 서쪽은 명나라땅, 그 남쪽은 고려땅이라고 말했는데 이것만 가지고 방위를 추정해봐도 철령의 위치는 고려의 북쪽 또는 서북쪽 변경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강원도의 철령은 바로 옆이 동해이기 때문에 여기를 두고 주원장이 말한 것이라면, 철령의 "동쪽"이라는 표현을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즉, 강원도 철령을 두고 "이동, 이서, 이북" 운운 하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철령위의 설치 위치, 이동 연혁, 철령(테링)시의 존재 등을 봐도 철령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해도 고려의 서북면의 어디쯤에 위치한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fjwk8사서 어디에도 쌍성촌관부가 함경도라고 지칭한건 없죠
단지 그게 통설이니 군말말고 따르라 이거죠
통설이 실증 사학인가
웃기는 이야기죠
@@fjwk8 그렇다면 이자춘의 근거지가 지금의 함경도가 아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명나라 주원장과 고려 우왕이 주고받는 국서로 돌아가서 보면, 고려 우왕은 철령은 조상대대로 우리땅이니 그냥 예전처럼 고려땅으로 하자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주원장이 말하기를 "고려는 이전에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는데 지금은 철령으로 꾸미니 거짓임이 분명하다"고 맞받아칩니다. 주원장 본인의 입으로 한번은 "철령 동쪽/서쪽/북쪽은 명나라땅, 철령 남쪽은 고려땅으로 하자"고 하고, 뒤이어서 "이전에 고려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아놓고선 왜 지금에서는 철령이 너희땅이라고 하냐"고 합니다. 주원장이 말하는 "철령"이 압록강 북쪽에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발언인 것입니다. 애초부터 강원도의 "철령"을 두고서 국경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더군다나 쌍성총관부는 원나라 때 "개원로" 소속이었고, 원사에 쌍성과 화주는 요동에 있다고 나오고, 또 개원(카이위안)시의 명칭의 유래가 바로 개원로라 하니, 쌍성총관부 자체도 함경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겠지요.
맞습니다 이게 상식이죠~
강원도 원산에 철령위를 설치했는데 동쪽이 어디있으며 뜬금없이 요동을 친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fjwk8 반박은 본인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해야지
식민사관에 찌드린 소위 강단사학은 항상 그런식이다
재야 사학을 공격할때 실증사학을 내세우지만 끝에는 통설이 그렇다란다
역사를 기초라도 알면 이런 무식한 소리 못한다 ㅉㅉ
중국 북방에는 연왕(훗날 영락제)이 버티고 있는데 잘도 요동정벌 하것다 ㅋㅋㅋㅋ 밥먹고 맨날 쌈질만 하던 전투력 어마어마한 연왕 군대가 버티고 있는데
오늘 최영, 윤관장군 묘 다녀왔는데 위화도 회군이 올라오네...ㅋ
두 장군의 묘가 참으로 대비된다는...
윤관은 과장 좀 보태서 릉과 맞먹고 최영은...
이성계는 왕병의 중환자였슴.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인들 못했을까?
존경하는 황현필 선생님
늘
감사히 배움 합니다
원격포맷 지룡자💯
청나라 옛 지도에 철령은 심양 근처에 표기 되어 있습니다. 다른 옛 지도에도 철령은 모두 심양에 있습니다.
그곳까지가 고려의 영역이었지요.
철령위가 함경도 쪽에 있었다는 문헌을 좀 알려주시오.
찌질한 우왕이 경이가면 나는 어떡하오? 라며 최영을 잡아두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도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최영이 예정대로 총괄관리자로서 이성계를 견제하며 같이 요동을 공략했더라면 이렇게요
만일 그랬다면 이성계가 조민수랑 짝짜꿍해서 최영부터 암살했을 겁니다.
국경이라는 것은 인위적인 것일뿐 수많은 고려인들이 여진족들과 만주지역에서 살고 있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수백년 동안고구려 땅이었고 발해 땅이었지 않습니까?
그 여진족이 우리편이라고 확신합니까? 통수는 안친답니까?
주원장 생몰 오류네요
1328 입니다
@@OWEL-d5f 아 ㅋㅋ
@@OWEL-d5f 오류라고 해놓고
저도 ㅋ
👍 👍 👍 👍 👍 👍
이래서… 정벌은 왕이 직접해야함 군대를 내주는것 자체가 미친짓임
당시 명나라 병력이 40-50만에 원나라는 전선 유지를 못하고 명나라 올타임 레전드 장군인 남옥이 15만 -20만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원나라 아예 막타치던 상황이었는데, 만약에 총 5만명 남짓한 병사로 요동을 쳤다면 어떻게 함락을 했다고 치더라도 뒤가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겨우 명군 20만 정도로는 고려멸망 못시킴 요동이나 한반도는 중국평야랑 다름.
홍건적 썰어버린 고려인데 ㅋ
@@DoDo.Shibal 억지부리네 ㅋㅋㅋ
@@현이성-q6i 응 억지아니고
@@DoDo.Shibal 몽골 살리타가 처들어올때 3만 가지고 고려 개털어버렸는데 그런 몽골을 박살낸 명나라 정예병 20만으로 잘도 고려 멸망 못 시키겠네 ㅋㅋㅋ
11' 39"
중국이라고 하면 조선 이라고 해야죠
중국은 국호를 쓰고 조선은 왜 국호를 안쓰나요?
중화인민공화국은 국가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가 아닌가요?
황당하네요
어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위화도 위치가 잘못 되었다하던데... 그리고 어차피 역사는 승자의 역사.. 마지막으로 이성계는 스스로 사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 그로 인해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왕조가 되었다..
근데 이성계 자식들이 왕이 안 되었으면 우리 아직도 한문 쓰고 있었어야 됐어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법. 남을 섬기는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니? 국제질서는 내 성질대로 하는게 아님. 우리는 왜 미국한테 빌빌대? 그렇게 자주적이면 주한미군도 나가라하고, 김정은이도 잡아 조지고, 시진핑 싸대기 날리지.. 그게 안되잖아... 그러니 사이즈 보고 판단하는거지. 평생을 전장에서 애들 모가지 따던 인물인데, 머리 숙이는게 체질에 맞겠니? 사대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어... 자네도 싫잖아? 다 마찬가지야.. 어느 누구는 셔틀하고 싶겠니? 셔틀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 상황이, 또 이해관계가, 생존이 걸려 있는 것이니 판단을 하는 거지... 앞으로는 깊게 생각하고 말해. 치욕적인 어쩌구 하지말고. 뭐가 그렇게 치욕적이니? 그럼 다 같이 대가리 터지게 싸우다 한 놈도 안남고 다 죽어야 속이 시원하고 자랑스런 왕조겠니?
어떻게든 요동성을 점령하더라도 수당처럼 명이 수십만 대군으로 몇번이고 공격했을 때 끝까지 지킬 가능성이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이성계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지금 한국만 해도 "너무 오래 분단돼 북한과 다른 민족 됐으니 통일하지 말고 이대로 살자"는 국민이 여론조사에서 많고, 지금 방향대로 쭉 다민족국가화되면 영구분단 확정인데, 후손들에게 남북통일 여지라도 남겨줄 수 있게 국민들이 정신 차리고 바꿔야 합니다.
그건 우리의 변명같은 생각이고, 주원장은 요동을 칠 생각이 없었음. 그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고려가 요동먹고 빼째버리는 전략으로 외교전으로 나갔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임. 애초에 요동이 고려땅이라는건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수양제, 당태종이 100만대군으로도 요동정벌에 실패했다는건 명나라 한족들도 다알고 있는 사실이라 절대 섣불리 요동정벌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었음.
@@토미베스트 그당시 요동은 명나라에 투항해서 주원장이 요새화한지 15년이 지난 시점이었슴.. 나하추가 번번히 요동 공략했지만 죄다 깨진이유였고..
주원장이 나하추 포위해서 항복시킨것도 명나라에서 요동까지 간게 아님. 수군통해 요동에 와서 보급받아가면서 북으로 올라가서 나하추 친거였슴. 나하추가 별 반항도 못하구 항복한뒤엔 바로 15만끌고서 북상해서 북원 기습해서 멸망시킨지 딱 한달뒤가 위화도 회군시점임.
철령이 함경 이라함은 식민사학이요. 요동에 철령이 있소. 함경에는 없소
북한에 지금도 철령관이라는 곳이 있고요. 우리나라에서 영동 영서 영남 하는 게 이 철령을 기준으로 정한 겁니다.
@@maple4801 주원장이 강원도의 철령에다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했다면 정신 이상자 이지요. 철령은 지금도 만주 선양부근에 남아있고 요동의 기마족속을 억압통치하던 군사요충지였소. 식민사학을 이성적으로 타파하세요.
고려는 조선 보다 군현이 3배 많았고 거란 여진 몽골에 대등하게 싸우던 30만 정병을 거느리던 강국이었소. 그에비해 조선은 군사가 5만도 안되는 약소국
요동에 있는건 철령위 세울려다 고려가 반발하니깐 그냥 국경에다가 주원장에 세운거자나.. 그뒤엔 더 먼쪽에다 옮긴걸 지금 환빠색히들이 원래 철령은 만주에 있었다란 개소리가 나온거고
시기가 안좋았다 봅니다. 만약 원나라 멸망과 명 건국 사이의 혼란기가 30~50년만 늦어지거나 더 걸렸어도 요동 정벌을 실제 시도를 해볼만 했을겁니다.
당시 고려상황이 좋은 건 아니여서 ㅜㅜ 천추태후때 고려 상황이 이때엿다면 충분히 점령햇을듯 국력이 30만 이엇으니 거기에 출중한 장수도 많앗고 고려말이라 사실 좀 힘든시기긴 했음ㅜㅜ 근데 넘 아쉽기는 함 완전한 장악은 힘들엇을듯
이순신해서명
당연했죠.
이성계는 실제로 1차 요동정벌때 요동성 점령 해본 사람임. 그가 군대를 물렸다는건 점령해도 유지할 능력이 없다는걸 잘 알았다는거임.
그래서 우리나라가 역사 연구를 더 많이 해야됨.. 이건 우리나라만의 역사로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됨 북한 중국 우리나라 이렇게 협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역사연구가 불가능함..
누루하치는 겨우 6만으로 조선, 명나라를 격파 금나라 건국, 최영이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군인이고 그당시 왕다음 정보를 가지고 있는 넘버2인데 무적정 진군 시키지 않았을것...
어처구니 없는건 정도전은 표전문 시비로 요동정벌 하려했음 그당시 명나라가 더강하면 강했지 1388년보다 약하지 않았을것
누르하치도 못넘던게 산해관이었슴.. 명나라에서 반란일어나 스스로 문열어주기전까진
서명하려고 하는데.. 링크가 연결이 안됩니다. 연결이 비공개로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라고 뜨네요.. 어덯게 해야 하는건지..
지도는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