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조선사-4]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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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5 окт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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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wang_history

Комментарии • 1,4 тыс.

  • @hwang_history
    @hwang_history  Год наза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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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q5933
      @aq5933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심리학 전공자구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4불가론
      1번 항목이 모든뜻이 함축 되어있다 봅니다
      이후 조선의 행보(조공)도
      이성계의 주장을 뒷받침함
      두번째!!
      장수가 "불가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한다는것
      그것 주는 "의미"는
      어찌되었건 위험을 무릎쓰고 반대의사를
      명확히 표명했다는 뜻임으로
      처음부터 쿠테타 의도는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확실한 의사표현을
      하였으나, 관계가 틀어진듯 함이
      타당한 추측같습니다.
      우리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명분도 있고
      당장 요동땅 먹을만한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우리입장 아닌가요?
      이로인해 명과 대립관계
      우리의 국력과 상대의 파워
      막상 요동을 정벌해도
      영토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것 까지는
      쉽지않다고 보았던것같음
      (아프카니스탄 주둔처럼)
      또한, 뺏기기 전 우리것과
      다시 되찾고 유지하는 것은
      냉정하게 또 다르다고 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승자에 기록인데
      저는 왕권 문화 자체가
      생물학적 "본능"에의한
      "인간의 서열구조"라 보고있고
      인류문명이 발생하고
      영토가 자연스럽게 나뉘면서
      힘의 균형을 통해 발현되는듯
      불편한 진실이죠
      초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위화도 회군을 , 단순히
      다시 들여다보고자 왔는데
      이성계를 옹호할 마음은
      없고 ,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보니 그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던것 같네요
      고려가 강했다면
      무혈입성을 최소한 저지하는 시늉이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의 도덕적인 잣대로
      역사를 평가할수도 없고
      그건 의미가없다고 봅니다
      조선왕조 500년 모든책임과
      결과론적인 해석은 무의미
      단..위화도 회군과 근현대사를 둘러보면
      5.16 , 12.12등 역사적 격변기에
      한국인 기질이 보이는군요
      왕조 문화가 자체가
      인간의 지배,통치,섬김
      본능에 의한 부산물임을 고려할때
      후손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냉철하게 분석하고 교훈삼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리시앙에게진심인
      @리시앙에게진심인 Месяц назад

      ​@@aq5933infj?

  • @푸른봄청춘
    @푸른봄청춘 Год назад +15

    감사합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 @실버선장-q4r
    @실버선장-q4r Год назад +93

    중국왕조들이 요동땅의 경제성을 욕심내기보단 고구려,발해,금,청 등 반농반목의 세력들이 커지는걸 견제하려한게 크지요,
    철기가 개발되고서부터 유목민족의 기병이 곡도와 철갑으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고 특히나 동이세력은 나름의 반농의 기반하에 문화가 형성되어있어 중원세력에겐
    위협적이었던거죠

  • @nhh2774
    @nhh2774 Год назад +25

    최영 장군이 중국에서 몆번 전투하여 이겼다고 하던데..싸워보니 별거 아니라 해 볼만하여 북진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근요.

    • @내취저
      @내취저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실제로도 5만 병사로 20만까지 막았을거라 봅니다. 중국이 뭐 실전에서 계속 발전햇다고해도 만주쪽으로 원정오긴 쉽지않았을거라봄. 와서 졌으면 수나라꼴 됐음

    • @noname-wq6jl
      @noname-wq6jl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최영은 원나라 요청을 받은 공민왕의 지시로 38세에 원나라지원 고려군을 이끌고3년간
      산동 하북 지역에서 주원장의 홍건적과 수십차례 대소형 전투를 치르면서
      주원장을 알게됨 결국 홍건적의 우두머리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으며 명나라 집권층은 원나라 병사보다 날 래고 잔인한 고려군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게됨 최영은 이때의 경험으로 25년후 요동정벌하면 명나라를 이길수 있다고 생각함

    • @jamisont1
      @jamisont1 4 месяца назад

      @@noname-wq6jl 문제는 17년전엔 고려군이 요동정벌가서 기철 아들상대로 요동성 점령했다가 보급이 없어서 굶어서 퇴각한 전적이 있슴..
      그뒤로 바로 요동은 명나라에 투항해서 주원장이 15년간 요새화 한게 요동지역이었슴. (12위 설치해서 주둔군 최소 6만)
      나하추가 요동북부지역 만주에서 번번히 요동지역 쳐들어갔다가 깨진 이유임. 명이 나하추 항복받아낼때 20만 동원한것도 옛날처럼 걸어서 간것도 아니고 수군통해 요동와서 보급받아가면서 북으로 간거였슴. 그뒤 15만데리고 북원 기습해서 멸망시킨게 위화도 회군 딱 한달전일이었슴.
      요새화된 요동.. 주둔군 6만이던 애덜 상대로 5만으로? 그것도 공성전 수성전이 종특이던 명나라군 상대로? (북원이 야전에서 명나라 털고 북경 공성전하다 궤멸당한게 화약무기들때문임)... 최무선이 화약제조법을 알아내서 왜구 상대로 화약무기 개발해 사용한거지만.. 화약재료는 죄다 명나라에서 수입하던게 고려였슴..
      그리고 운좋게 요동을 빠르게 점령했다쳐도.. 북원 멸망시키고 남하하던 남옥의 15만하구 상대해야했슴..

  • @이요원-c2v
    @이요원-c2v Год назад +9

    고려 국경이 잘못됐어요!. 북한에는 저런 천리장성이 없습니다.

  • @질풍노도-u3u
    @질풍노도-u3u Год назад +8

    저 역시 깊히 공감 합니다.

  • @쉼표-b2d
    @쉼표-b2d Год назад +11

    철령의 위치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지요.
    요동은 우리민족의 강역이었고,
    최영은 5천 병력으로 중국본토 전역에서 강력한 승기를 잡았던 장군으로 그 가능성을 보았었구요.

  • @이게나라냐-x2t
    @이게나라냐-x2t Год назад +9

    감사합니다.

  • @김재진-g1g
    @김재진-g1g Год назад +4

    조선과 명의 국경선아 요하인데
    요동은 원래 신라, 고려, 조선의 땅입니다.
    중국인은 산해관 동쪽에 거주하지 않았는데
    요동이 중국인땅인 듯 설명을 하니 열불남.
    요동은 조선과 여진이 다투던 땅인데, 명과는 관련이 없는 땅이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요동을 청에게 뺏긴 것 뿐임....

  • @절물사려니
    @절물사려니 Год назад +47

    위화도 직접 가셨군요 멋집니다 쌤

  • @별빛달-d5k
    @별빛달-d5k Год назад +12

    프리고진이 이성계를 알았다면 모스크바 회군때 승부를 걸었어야했다..

    • @해호-e8m
      @해호-e8m Год назад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손절하고 발빼는 분위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시킬수있게 되었네요

  • @수배박-f5g
    @수배박-f5g Год назад +6

    게다가 원나라가 당장 망한 것도 아니고 북원과의 전쟁중에 주원장도 디질정도로 치열했는데 ㅈㅅ은 알아서 기었음

  • @베텔게우스-p9i
    @베텔게우스-p9i Год назад +14

    철령위 위치가 거기 아닌데 …

  • @Jvista15
    @Jvista15 Год назад +11

    (4:30)철령을 함경도로 비정해 놓고, 철령을 요동에 귀속시킨다고 했으면, 이제 요동이라는 건데, 그 1년뒤에 압록강 위화도가 조선 땅이었다는? 말이 안 되잖아요. 철령은 심양 바로 위에 있는 Tieling铁岭市가 있네요.

    • @Jvista15
      @Jvista15 Год назад

      @@enjoylife79551 혹시 옮겼다는 근거 사료를 알 수 있을까요? 한국사에 보면 근거도 없이 하도 비정이 많아서요.

    • @user-nm8gv5kn6t
      @user-nm8gv5kn6t Год назад

      맞습니다
      철령위는 함경도에있는 철령(친일역사관)이 아니고 중국 요동에 있는 철령위를 설치한다는 것으로 위란 말은 병사 진지를 뜻하며 이제 너희들 땅은 이제 압록강 으로 국경을 정하겠으니 물러 나라고하니 우리 고토 요동을 정벌한다고 하니 일어난 일임. 중국이 함경도에 있는 철영에 위를 설치한다??

    • @jamisont1
      @jamisont1 4 месяца назад

      거긴 주원장이 철령위 세울려다 실패한뒤에 지가 점령한 요동에 철령위 세우고 끝낸거임..

  • @BD-xo1zo
    @BD-xo1zo Год назад +21

    회군 안했으면 충분히 밀었을 거임. 최영이 바보도 아니고 전략은 맞는거임. 원과 연합하든 명의 후미를 치든 여진을 규합하든...전술은 이성계의 몫이였는데 그냥 첨부터 반란을 생각한듯.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씌여짐...

    • @SuperWonder
      @SuperWonde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요동 정복(요동 점거)은 커녕, 요동에 대한 무력 시위부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홍건적의 침입때만 해도, 200,000명이나 되는 홍건적 대군에 국경이 털리고,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포함한 주요 도시들이 함락되었었다. 심지어 바로 직전에 수십 년간 지속된 왜구의 침략만 보아도 고려는 국가 멸망의 상황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그 피해가 매우 컸었다. 당대의 이런 상황들을 보면 당시 고려의 국력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또한 당시 명나라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장군인 남옥, 서달, 상우춘과 주원장의 라이벌이었던 진우량 또한 명장들이었고, 풍승, 목영, 탕화, 장옥 등의 능력이나 전공을 감안하면 굴복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위키에다 위화도 회군 검색하니가 나오더라고요.

    • @coreantiger5210
      @coreantiger5210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성계는 애초에 다른 마음을 품고 회군의 명분을 변명으로 늘어놨을 뿐.

    • @폭행고릴라
      @폭행고릴라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하지만 진다면 반도가 명이 됐을수도 있음 모든건 일장일단이 있음
      저때 명군 사기가 진짜 높아서
      부담스러움

    • @고등어자반
      @고등어자반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밀었어도 상대는 주체인데..... 영락제는 중국사 한족 왕조 군사력 goat일텐데 고려가 감당하겠음?

    • @토미베스트
      @토미베스트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명나라가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을 건너 고려로 들어오기 힘듦. 그 구간이 원정군한테는 정말 힘든 지형임. 명이 고려로 들어와도, 수나 당, 거란처럼 되려 자기 국력만 깍아먹게 될 것임. 요동에서 한번 붙어 볼만했는데, 이성계는 처음부터 싸울 마음이 없었으니

  • @Dspellmagic
    @Dspellmagic Год назад +8

    이성계가 어떤 사람인데ㅎ
    그 사람은 어느 쪽도 확실한 가능성이 없으면 애초에 군사를 일으키지도 않아요.
    가는 길에 어느 쪽이 큰 이득인지 고민을 하며 가다가 그냥 답을 내린거죠.
    되찾을 수는 있고 끌어들일 세력도 알고 있지만 그러면 평생을 전쟁으로 보내야 하는데 적당히 타협하면 편하게는 살거란 말이죠.
    이미 답을 정해 놓고 갔다기 보다는 되돌리는 순간까지 고민을 했다는게 더 정확하지 않나 합니다.
    요동 땅에서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놓치기도 아깝고, 치자니 그 이후 인생이 평생 피곤해질게 보이니 피가 말리는 상황이었던건 틀림 없겠죠.
    먹을거리가 없었던게 아니에요.
    ㅎㅎ

    • @jaehoonha6
      @jaehoonha6 Год назад +12

      만고역적 이성계

    • @쭉뒤빡줏
      @쭉뒤빡줏 Год назад

      만고역적 능지처참 이성계

    • @sangkwonhyun9254
      @sangkwonhyun9254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성계는 출발하기 전부터 회군만 생각했고
      그 증거는 수두룩합니다.

  • @sonuj1218
    @sonuj1218 Год назад +70

    위화도와 녹둔도의 정확한 위치를 두고 현재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압록강 끝에 위화도가 있고 두만강 끝에 녹둔도가 있다니 뭔가 지나치게 공교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21세기 현재에도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라고 안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 @Park88408
      @Park88408 Год назад +12

      구글지도를 보니 요동이라고 일컬어 지는 곳은 베이징 서남부 지역입니다..

    • @rionalmessi642
      @rionalmessi642 Год назад +2

      환빠

    • @이대순-v4k
      @이대순-v4k Год назад

      ​@@rionalmessi642 넌 친일매국노 이병도 떨거지.

    • @이대순-v4k
      @이대순-v4k Год назад

      @@enjoylife79551 그건 박정희가 구데타로 통이 되었지만 친일매국노 남로당빨갱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거랑 마찮가지임.

    • @정신교육대-p7u
      @정신교육대-p7u Год назад +1

      17.000년전 세계 최초로 청주 소로리에서 볍씨 재배,
      이후
      한민족이 전세계로 퍼져 홍산문명, 수메르문명..4대문명.
      마야 잉카 문명 건설.
      단군이 최초로 국가형테 조선 건국후
      마한 진한 번한이 세게를 다스리다
      고백신 가야가 다스리다 신라가 통일.
      이성게가 압록강=오비강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투루판 =함흥에서 고려를 합병.
      나라이름을 그대로 고려라고 했다고 왕조실록에 나옴.
      태종이 명나라를 만듦.
      세종나라는 고려.
      1897년 고려에서 대한제국연방으로 개명.
      이후 서방 8개국이 합작으로 대한제국 멸망시키고
      강제합병후
      세게를 부르는 이름 조선을
      중화민국이 한반도가 조선이라고 조작후
      한반도로 넘겨주어 이병도 신석호가 조작 완성?
      흑피옥과 마고문명 인간창조 2 ㅡ 다음 검색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 ㅡ 다음 검색
      중국 역사는 1911년 중화민국 부터 시작.
      이전 역사는 전부 우리역사
      1920년 동아일보 창간호에 권덕규는 우리나라땅을 6대주로 나누었다 ㅡ 다음 검색

  • @Korean-h5k
    @Korean-h5k Год назад +24

    황쌤💙

  • @조혜숙-o8c
    @조혜숙-o8c Год назад +24

    항상 잘듣고 있어요

  • @김동영-p7o
    @김동영-p7o Год назад +14

    반란군이 됐으면 당연히 빨리 내려가야죠..

  • @다물-u9q
    @다물-u9q Год назад +29

    위화도는 압록강 가운데 있는 섬이 아니라 압록강 건너 너머에 있는 반도형 지역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음ㅡ압록강 중류 건너편
    책보고 유튜브인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설득력이 있었음
    위화도의 도라는 글자도 꼭 섬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반도형 지역을 도"라고도 씀 바로 한반도. 요동반도. 산동반도 등등 무스히 많음. 1000명의 군사도 야영하지못할 강가운데 모래톱 정도를 위화도라고 말함은 이치에 맞지않음 그리고 쌍성총관부니. 철령위니 다 요동쪽에 있느 것이지 함경도 원산 함흥지역에 있는 것이 아님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고 합당함

    • @seahawk7893
      @seahawk7893 Год назад +1

      그런거 따져봐야 뭐함 뭐 그래서 요동이 원래 우리영토였다고? 근데 거기 살던 사람들이랑 우리랑 전혀 동질성이 없는데? 그냥 우리랑 별개의 역사라고 봐야함. 어차피 거기 사는 사람들 지금 중국인 정체성으로 사는 사람들인데 왜 거기 사람들 의견은 안물어보고 우리땅. 우리역사라고 함?

    • @jangmi486
      @jangmi486 Год назад

      ​@@seahawk7893바보인가??어찌이리 하수이자멍청한것인지 참나 이러니 중국과 일본이 우리땅이라고내놓으라고함반박도못하고 내줄인간이로다

    • @TK-xl4xt
      @TK-xl4xt Год назад +1

      개구리가 되어 우물안에서 보는 세상만 전부라고 살아가라 평생
      모르면 배우고 깨우쳐라 광대했던 선조들의 영토까지 욕되게하지말고
      역사는 반복된다 단 당신같은 인간들이 많아질수록 남아있는 지금의 반도까지도 뺏기게될것이다

    • @kingkangin
      @kingkangi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seahawk7893 님. 생각좀하고 말하셈. 따져봐야 뭐함이 아니라 살던 사람들이랑 동질성이 없는데가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취지이지. 왜 사실을 밝힌다는데 부정적임? 이해를 할 수없네.

    • @seahawk7893
      @seahawk7893 9 месяцев назад

      @@kingkangin 그니까 요동에 있는 사람들의 역사지 지금 우리나라가 아니라. 세종이 4군6진 개척하고 거기 살 인구가 없어서 남도 사람들 강제 이주 시켰는데 요동사람들이 퍽이나 한반도에 살고 있겟노 다 그땅에서 중국인으로 살고 있지. 근데 그 사람들한테ㅈ니들 원래 한국 사람이었다고 하면 뭔 개소리하노 이럴듯

  • @홍가은-u7y
    @홍가은-u7y Год назад +23

    황현필 선생님~감사합니다

  • @Kwang-Min-Lee
    @Kwang-Min-Lee Год назад +145

    사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성계는 왕이되고싶었던 마음이 컸기때문에 결국 위화도회군이라는 선택을 하게되었던거같아요~ 당시 고려말 상황도 쿠데타를 일으키기에 딱 좋은 시기였구요!! 하지만 그래도 고려를 더 부강하게 만들기위해서 이성계나 최영 모두다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많이 드네요.. 물론 이성계 입장에서는 요동정벌의 성공유무랑 상관없이 본인에게는 득될것이 없다고 판단했겠지만요

    • @정신교육대-o2w
      @정신교육대-o2w Год назад

      최 신순 내글 참조

    • @아기상어-x9s
      @아기상어-x9s Год назад +22

      요동을 차지했어도 오래버텨봐야 수십년임. 영락제가 가만 놔뒀을 리가 없음.
      그리고 최영 죽고난 이후의 고려왕실과조정이 과연 명의 거센압박에 물심양면 요동을 지원할까 하는 의문 그리고 이성계에 대한 견제. 명의 공격 한두번은 버티겠지. 그런데 명의 광대하고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인구와 경제력 차이를 뭔수로 감당하겠음? 안 그래도 피폐해진 고려가.

    • @Kwang-Min-Lee
      @Kwang-Min-Lee Год назад +3

      @@아기상어-x9s 그런데 중국에게 요동이라는 지역은 아주 중요한 위치인가요?

    • @아기상어-x9s
      @아기상어-x9s Год назад

      @@Kwang-Min-Lee 가지고 있기엔 행정력이 미치기 쉽지 않은 척박한 변방이죠. 다만 농사짓고 사는 고려가 유목세력까지 아우르게 하지 않기 위해서 견제했던 겁니다. 제2의고구려가 생기는 걸 방지하는 것이죠. 기회만 생기면 요동에 믿을만한 장수 데려다놓고 유목민족 이간질시키면서 유지하는게 낫죠.
      아니라도 요동은 유목민족이 차지하게 두고 다른 유목세력을 지원하고 고려가 또 그들을 견제하게 하고 이렇게 이이제이 를 참 좋아라 하죠.

    • @DVMLEE
      @DVMLEE Год назад +41

      그냥 딱 반역자임 이성계는

  • @역사왜곡금지
    @역사왜곡금지 Год назад +6

    철령위는 요동이에요

  • @003nirvana
    @003nirvana Год назад +7

    1388년 위화도회군이 일어난지 정확히 6백년후 한반도에서도 올림피아제전이 벌어집니다

  • @천대식-s8k
    @천대식-s8k Год назад +5

    외적의 침공을 당하면 죽기살기로 맞싸워야 하지만, 타국의 영토를 침범할 때는 섣불리 덤벼서는 안됨. 우리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천년 가까이 지킬 수 있었던 것도 한반도를 지키는데 힘을 쓰고 섣불리 영토 확장 정책을 펴지 않은(못한 ?) 덕이 아닐까요? 수비는 쉽고 공격은 어렵습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화군을 하지 않았다면 ... 명나라와 전쟁을 했을 것이고 아마 철령 이북의 땅을 명나라에 넘겨주는 선에서 강화가 맺어졌을듯.

    • @박준영-b4g
      @박준영-b4g Год назад

      그거아셈? 여진족이랑 명 체급 차이가 고려랑 명 체급차보다 크잖아요? 심지어 얘네는 맞다이로 이김; 우리라고 못 이길 사이즈는 아니었고 된다는 판단을 전쟁 프로(최영)이 ok한건데 결국 자기이득만 챙기는 이기적인 ㅅㄲ 이성계가 사심채우려고 만든 나라가 조선아님?ㅋㅋ

    • @JJ-st5zh
      @JJ-st5zh 3 месяца назад

      1~2년 요동 땅 정벌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북원 정복한 명나라가 밀고 내려오는걸 끝내 막지는 못했을듯 하네요

  • @고구려yhy
    @고구려yhy Год назад +22

    최영 대장군님 최고의 장군 이었으나
    한번 패장으로 ㅠㅠ

  • @Kim-cn5bl
    @Kim-cn5bl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래서… 정벌은 왕이 직접해야함 군대를 내주는것 자체가 미친짓임

  • @2duseo
    @2duseo Год назад +6

    이성계 입장에서 보자면 사병을 보유한 자신을 견제하려 사지로 내몰았다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군요

    • @이준서-z8n
      @이준서-z8n Год назад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죠. 당대 최고, 최대의 병력을 보유한 장군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다분하죠. 명망도 높고, 병력도 막강하니 제거하고 싶었겠죠. 정치적인 이유로. 대부분의 호족들이 사병을 보유했고 그 중 가장 세력이 강했습니다.

  • @tsg2201
    @tsg2201 Год назад +21

    군인들 데려가서 점령은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얻어낸 영토를 영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였고
    당시 고려의 국력으로 요동의 영구적 지배는 무리였음

  • @jujoo202
    @jujoo202 Год назад +38

    지금의 한국 역사가 그런가보다 하려해도 의문이 드는게 참 많습니다. 당시의 지도를 보면 고려.조선의 역량에 비해 영토는 엄청 작은게 이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하추가 항복 했으면 철령을 경계로 북쪽으로는 명나라 땅이 되는건데 세종 이전에 무슨일이 있었나요? 별일 없었으면 6진 개척을 명나라에서 보고만 있었나요? 금나라가 들어서기 까지 여진족은 조선에 사대 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구요. 또 철령과 요동의 거리가 상당히 먼데 명나라에서 굳이 장난 칠 필요가 있을까요? 고려는 북진정책을 추구 했는데 오백년 간 압록강 이남으로 만족 했는지도 이상하구요. 하여튼 한반도 역사는 이상한게 너무 많은거 같습니다

    • @sukjukim7103
      @sukjukim7103 Год назад +5

      [중국의 동북아고대사는 가짜다]의 저자 김석주입니다.
      귀하의 의문은 1990년대 저의 의문과 같습니다.
      [동북아고대사정립 1]부터 읽으시면 귀하의 의문은 모두 해소될 것입니다.

    • @messi4goalsinfrenchleague
      @messi4goalsinfrenchleague Год назад +7

      위에 환빠는 거르고 고려 조선의 역량이 거기까지였음 자꾸 역량을 과대평가 하시는데 고구려 때는 아에 연합 부족 국가 급으로 미개해서 대부분 유목을 해서 가능했지
      고려,조선은 농경사회로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농사가 안되고 지금도 -30도까지 가는 만주를 경제적으로 아우룰 수 없음 그대신 영향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만주 다스릴려했음 명 영락제가 만주를 정벌해서 직접 통치할려 할때 태종이 옛 우리땅이였다 하면서 다시 여진이 독립되고 여진한테 처발리고 고려도 마찬가지로 여진 정벌해서 성 몇개 얻었는데 결국 포기하고 역량이 딸리니까 그럼 지금이야 산업화 되고 만주에 메가 석유단지가 있지만

    • @sukjukim7103
      @sukjukim7103 Год назад

      @@messi4goalsinfrenchleague 중국과 일본이 한민족의 역사를 귀하처럼 생각하지요.
      하지만 중국의 정사서와 삼국사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성강 이하에 BC 4세기까지는 국가 문명이 없었습니다.
      [고대 한국]인 고조선과 고구려가 지금의 한국인 고려와 조선으로 승계된 것입니다.
      글을 남기신 분은 충분히 깆을 수 있는 의문을 피력하셨는데 귀하의 댓글은 환빠 운운하며 무례하시네요.
      저의 책 목적 중 하나가 환빠 치료지만 구한말부터 120년 동안 역사 왜곡의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정사서를 곡해하는 주류 사학의 책임이 큽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동북아고대사를 정립하겠습니다.
      [중국의 동북아고대사는 가짜다]의 저자 김석주 드림

    • @한톨-s6v
      @한톨-s6v Год назад

      일제 강점기때 거금 들여가며 조선자 편수회에서 조작하고 부정하고 왜곡하고 감추고 축소하고 지우고 파괴하고 쓰여진 조선사를 지금까지도
      배워 왔기 때문입니다.
      이덕일 티브이나 매림역사티브이나 우실하교수의 요하문명연구 책보고채널을 보시면 안갯속 같은 우리 역사가 보이기 시작 할 것입니다.

    • @김경수-z4q
      @김경수-z4q Год назад +1

      요령일대와 만주일대는 당시로선 쌀 농사가 힘든 개쓰레기땅이었음 요동과 요서는 그래도 잡곡이나 콩,구황작물같은건 재배가 가능하긴했지만 만주는 그마저도 불가능했음 만주와 요령일대에서 쌀농사가 가능해진건 일제강점기가 한창이던 20세기이후임

  • @쾌걸조로Z-l7w
    @쾌걸조로Z-l7w Год назад +4

    한반도역사를되돌릴수있다면결정적사건2가지
    첫째 고구려의삼국통일
    둘째 이성계의위화도회군쿠데타실패
    다 부질없는상상이지만

    • @나일권-h4r
      @나일권-h4r 9 месяцев назад

      환웅이안내려오고천계에있었다면어떻게됐을까요?
      유튜브책보고영상많이봐주세요

  • @lovemam2289
    @lovemam2289 Год назад +24

    서명완료 ~~~ 샘 파이팅...👍👍👍🤗🤗🤗

  • @재철김-n7l
    @재철김-n7l Год назад +5

    이성계가 요동성을 포위한적이 있었지만 명나라애들이 눈치까고 들어와서 도망간적이 있다.....이 시기 고려에서 군대를 양성했더라면 국경선이 바뀌었을텐데 아쉽다.

  • @푸른혜성-z6k
    @푸른혜성-z6k Год назад +22

    여름철이라고 하지만 실은 장마철이었죠. 지금처럼 도로가 잘 발달된 시기가 아니라서 젖은 오솔길을 통해서 대군을 행군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라스푸티차가 발생하면 전쟁 자체가 지체되는 것 잘 보셨잖아요.

  • @dawn_dew
    @dawn_dew Год назад +31

    황현필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순신해

  • @As-summer-passes
    @As-summer-passes Год назад +15

    자유지만 황샘 그냥 조선중기부터만 하세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심양왕을 왜 고려왕으로 임명했는지 철령위치설명상 함경도라니 그리고 명이 만주도 아니고 함경도 귀퉁이를 내놓으라고 한다 말이 될까요
    거의 모든 영상 댓글이 어렵다 명나라에게 개박살 날것이다라는결론
    이때에 고려의 정신 병력 경제상황을 살펴야하는데 교과서의 고려라면 쉽지 않았겠지만 전후상황을 본 고려라면 한판 뜬게 나은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 @dodogo1
      @dodogo1 Год назад +1

      지금 중국 철령시에서 철령위 관련 비석이 나온다큐도 있는데말이죠ㅋ
      정정 다큐는 아니었네요

    • @jamisont1
      @jamisont1 4 месяца назад

      함경도 귀퉁이 내놓으라고한 이유.. 원나라를 명이 이어받았다고해서 원나라때꺼 다 달라고 하던게 주원장 색히임.. 제주도도 탐라총관부있던데라 달라구 하던 색히임.. 그래서 고려가 탐라는 원래부터 고려땅이구.. 거기 말이나 몽골애덜이 키운거라고해서 제주도 말 내놓으라구해서 OK 콜하다 일어난게 목호의 난이었슴.

  • @gunkim702
    @gunkim702 Год назад +2

    고마워요

  • @알로에-m9o
    @알로에-m9o Год назад +19

    널리 알리고 있어요~^^

  • @단기4357-l8f
    @단기4357-l8f Год назад +1

    동참~~~

  • @발레이닝
    @발레이닝 Год назад +12

    황쌤 쵝오

  • @아침-y8d
    @아침-y8d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요동을 정벌한다고 한들 뺏기지 않았을까?
    명나라한테 뚜들겨 맞고 땅 안뺏겻으면 다행이다

  • @MrEhdghksp
    @MrEhdghksp Год назад +40

    사실 요동정벌의 명분이 고구려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여몽전쟁이 끝나고 20만이 넘는 고려인들이 요동에 살고 있었고 요동을 관리하는 요양행성의 승상이 홍씨와 왕씨 가문의 고려인이었죠. 게다가 요동의 왕인 심양왕이 고려왕이거나 고려왕실의 종친이었습니다.
    당시 지금처럼 국경이 명확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요동에 사는 고려인 입장에서는 고려인들이 살고 고려인 관리가 관리하고 고려왕이 다스리는 요동은 고려땅이나 다름없었죠
    그러니까 고토라는건 고구려때까지 갈필요도 없이 이미 요동정벌 수십년전에 고려땅이었다는 명분이 생긴 겁니다

    • @절물사려니
      @절물사려니 Год назад +6

      공감가네요

    • @이준서-z8n
      @이준서-z8n Год назад +3

      그런 논리면, 굳이 정벌하러 가지 않아도 되겠네? 이미 고려구만... 말이 되나?

    • @정신교육대-p7u
      @정신교육대-p7u Год назад

      미국땅이 조선이었다는 증거
      1922년 메이저리그 대표단 방한 ㅡ다음 검색

    • @MrEhdghksp
      @MrEhdghksp Год назад +3

      ​​​​​​@@이준서-z8n제가 말한 "고토"시절은 충선왕이후 원 내부가 안정화 되면서 끝납니다. 고려는 몽골과 강화이후 "선택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원종은 세자시절 아릭부케와 쿠빌라이 중 쿠빌라이를 선택했고 충선왕도 원 황위다툼에서 무종을 선택했죠
      하지만 충선왕이 유배되고 충선왕이 가진 왕위를 충숙왕과 왕고가 나눠가지면서 고려는 "선택당하는" 입장이 됩니다. 원 내부가 안정되자 지방의 제후왕과 제민족세력을 약화시키며 중앙집권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원은 심기가 불편할때마다 심왕을 고려왕으로 내세웠고, 심왕은 명예직으로 강등시켰습니다. 당연히 요양행성의 왕씨 홍씨들 고려인들은 영향력이 미미해졌죠. 그런 과정에서 명목상 원의 영토였던 요동은 점차 실질적 원의 영토가 되었고
      심왕과 사이에서 "선택받아야"했던 고려는 요동에는 신경쓸수 없던 겁니다. 그런데 공민왕이 그런 "원의 선택"을 물리쳤고 고토인 요동을 정벌한겁니다. 하지만 그런 공민왕도 노국공주가 죽은 이후 유익이라는 요동 군벌이 귀부를 요청했을때 묵살하는등 이미 정치에 손에 놔버렸죠. 그러다 우왕이 다시 시도했고 이성계의 쿠데타로 고려가 망한겁니다.

    • @griffithbalt9632
      @griffithbalt9632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지배층이 고구려인 피지배층이 말갈원주민
      그래서 지배층이 무너지고 사실상 여진족으로 쉽게 둔갑
      말갈족이 훨씬 많으니깐 당연한것

  • @hyunsukim3631
    @hyunsukim3631 Год назад +3

    오늘 최영, 윤관장군 묘 다녀왔는데 위화도 회군이 올라오네...ㅋ
    두 장군의 묘가 참으로 대비된다는...
    윤관은 과장 좀 보태서 릉과 맞먹고 최영은...

  • @하하우-e1b
    @하하우-e1b Год назад +5

    당시 고려상황이 좋은 건 아니여서 ㅜㅜ 천추태후때 고려 상황이 이때엿다면 충분히 점령햇을듯 국력이 30만 이엇으니 거기에 출중한 장수도 많앗고 고려말이라 사실 좀 힘든시기긴 했음ㅜㅜ 근데 넘 아쉽기는 함 완전한 장악은 힘들엇을듯

  • @bittersteel5150
    @bittersteel5150 Год назад +3

    혹시나 했는데 아직도 역시나군요 ㅎㅎ 이해는 합니다. 수험생들 가르쳐야 하니...헌데 진짜 철령위가 함경도면 뭐하러 요동으로 가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 @user-wzzang
      @user-wzzang Год назад +2

      그러니 이게 심각한 식민사학의 폐혜입니다.

    • @user-wzzang
      @user-wzzang Год назад

      ​@@enjoylife79551이해를 못하고 있군요.

    • @bittersteel5150
      @bittersteel5150 Год назад

      @@enjoylife79551 나무위키 논리를 가져오신 거 같네요 ㅎㅎ 그런 수준이시면 그런거겠죠. 다른 의견 존중합니다.

  • @Ho-soon-e
    @Ho-soon-e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단순한 궁금증인데 동쪽에 철령이 있는데 왜 서쪽으로 갔을까요? 아시는분 설명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ToSsGirLNo.1
    @ToSsGirLNo.1 Год назад +23

    당연하죠..
    출근때와 퇴근때 사기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죠..

  • @춘영이-o2h
    @춘영이-o2h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이성계는 왕병의 중환자였슴.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인들 못했을까?

  • @계영배-s1h
    @계영배-s1h Год назад +3

    위화도 위치도 잘못됐소. 서압록에 위화도가 있고 5만병력은 현 동압록 위화도엔 주둔 불가능하오. 청이 봉금령 내리며 조선 국경과 군대를 뒤로 밀게하여 당시 동압록이 현재의 압록강이 됐고 서압록의 진지들이 뒤로 밀려내려왔소

  • @용삼봉
    @용삼봉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위화도의 위치가 맞는가요? 아니란 내용도 있더군요 저는 압록강 근처가 이나라고 생각됩니다만...

  • @mayli5206
    @mayli5206 Год назад +16

    이성계는 실제로 1차 요동정벌때 요동성 점령 해본 사람임. 그가 군대를 물렸다는건 점령해도 유지할 능력이 없다는걸 잘 알았다는거임.

  • @GlovesRed
    @GlovesRed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서명하려고 하는데.. 링크가 연결이 안됩니다. 연결이 비공개로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라고 뜨네요.. 어덯게 해야 하는건지..

  • @solla3130
    @solla3130 Год назад +19

    영상속 설명들에 오류가 일부 있음...
    1) 2차 요동정벌 당시 요동에 주둔중이던 명나라군의 규모는 5만이 아니라 최대 7만8천명이었음.. 명나라는 고려의 제2차 요동 정벌, 곧 위화도 회군 직전인 1387년 이전까지 요동 지역에서만 13위를 갖추었는데 참고로 명나라의 군사 단위에 있어 1위는 일반적으로 5,000 - 6,0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음. 즉, 13위가 갖추어진 상황에서 요동에 주둔중이던 명군의 숫자는 최소 6만5천명에서 최대 7만8천명에 달하는 상황이었음.. 공격하는 측이 방어하는 측보다 3배나 더 어렵다는 군사적 격언을 생각해볼때 5만으로 요동을 정복하는건 매우 힘든 상황이었음..
    2)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은 1387년 정로대장군 풍승(馮勝)의 지휘 아래 좌부장군 부우덕, 우부장군 남옥의 20만 대군을 요동으로 출병시켜 나하추의 근거지인 요동의 금산을 점령하도록 했음. 결국 이런 명나라의 대군세를 바탕으로 한 주원장의 항복 권유에 나하추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명나라에 항복하게 됨. 즉, 나하추의 20만 대군이 사라진게 아니라 그대로 20만 대군이 명나라측에 흡수된거임.. 실제로 나하추는 이후 명나라군의 장수로서 몽골과 토착계 잔당들이 남아있는 운남 정벌에 나섰다가 그곳에서 병사했었음.
    3) 1388년 남옥은 총사령관으로서 15만 대군을 이끌고 북원 정벌에 나섰고 부이르 호수에서 북원 군대를 대파하고, 마침내 쿠빌라이계 북원을 멸망시켰음. 그와함께 끝내 북원의 황제이자 칸이던 천원제 토구스테무르 칸이 명나라군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다가 살해당하면서 쿠빌라이계 북원의 명맥은 끊어지게 되었고 북원 또한 완전히 멸망해버림. 즉, 2차 요동 정벌 기준으로 북원은 이미 멸망해서 군소세력들만 남은 상황이었음. 한마디로 북원과 명나라와의 장기전(?) 같은 희망은 이미 2차 요동정벌 당시에는 꿈도 꿀 수 없던 상황이었음..

    • @sukjukim7103
      @sukjukim7103 Год назад +4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의 대군이 위치한 곳아 요심 지역이 아니라 지금의 난하 유역이라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요심 지역이 결국 요동의 치소가 되었기에 사가들이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시도했다고 기록했을 가능성과 우왕과 최영이 고려 서경이었던 요심 지역만 수복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려말의 상황은 아직 깊이 있게 연구하지 못해 저의 의견일 뿐입니다.
      [중국의 동북아고대사는 가짜다]의 저자 김석주 드림

    • @sukjukim7103
      @sukjukim7103 Год назад

      ​@@enjoylife79551
      안녕하세요. 요심 지역에 고려 서경이 위치한다는 것을 댓글로 논증하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 길어서...
      하지만 관련 내용을 담은 책 2권을 이미 출판했고 향후 6권을 추가로 출판할 예정이기 때문에 논증도 없이 함부로 뱉은 말은 아니며 그 책들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런 답변을 드려 죄송합니다.
      [중국의 동북아고대사는 가짜다]의 저자 김석주 드림.

    • @흰둥이-b2m
      @흰둥이-b2m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나도 이게 맞다라고 생각함 무패의 용사 이성계가 불가능하다고 할정도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

    • @jamisont1
      @jamisont1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나마 님같은 사람이있어서 고구마 쳐먹는 기분이다가 좀 풀림..
      유익의 귀부이후 주원장이 요동에 정요도위 설치하구 (나중엔 25위까지 불어나지만 위화도 회군당시엔 12위까지 설치됐었슴) 그래서 요동 주둔병은 최소 6만이었을거라고봄.
      이게 1373년부터임.. 최소 15년간 요동을 요새화한게 명나라였슴. 그래서 요동 북부에 위치했던 나하추가 번번히 요동에 침공했었지만 개발렸던 이유..
      그래서 옛날처럼 육로로 요동까지 이동하던게 명나라가 아니라 그냥 수군통해서 요동에 가던 시절이었슴. 나하추를 포위할때 풍승 남옥등 20만이 갈때도 수군통해 요동통해 갔던거구.
      나하추가 별다른 저항없이 바로 항복하구 그뒤 15만끌고 북원 기습하러간건데.. 위화도 회군시점이 바로 북원이 기습당해 멸망당한지 딱 한달뒤임.
      즉 만주 주둔군 6만 기본에.. 북원 패망시키고 회군하던 15만하고 상대해야했던게 이성계였슴..

    • @jamisont1
      @jamisont1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리고 핵심적인 내용인데.. 당시 고려 괴롭히던 왜구들 최무선이 화약무기 개발해서 까부셨던거 알거임.. 그 화약제조법을 최무선이 알아낸거지만 화약의 재료들은 명나라에서 수입하던 시절임.
      명나라 종특이 공성, 수성전이었슴. 북원이 야전에서 명나라 바르고도 번번히 북경공략 실패한게 화포로 성안에서 쏴대는거 못뚫어서임. 그런 명나라 상대로 공성전은.. 이성계라도 안된다고봄.
      게다가 화약수입없이 왜구는 어떻게 상대하라고..

  • @대성조-g1u
    @대성조-g1u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 @독기-e9p
    @독기-e9p Год назад +159

    요동을 왜 갔을까나 거긴 원래 우리 땅이 여서 그랬던것.

    • @박림박이
      @박림박이 Год назад +20

      고려가 고고려 계승한 나라인데 수복해야죠

    • @김스타-o3n
      @김스타-o3n Год назад +3

      거기가 왜 우리 땅임? 북한 땅이지

    • @seahawk7893
      @seahawk7893 Год назад +7

      ​@@김스타-o3n북한땅도 아님 그냥 중국땅이지

    • @donggyukim50
      @donggyukim50 Год назад +13

      한국사는 민족의식 고취정도면 딱이다 국뽕으로 가면 동북공정이나 다를바 없다 한국사 강사 개나소나 ㅋ

    • @네모난콩벌레
      @네모난콩벌레 Год назад +1

      어후... 진짜 역하다 역해~

  • @권지어지선
    @권지어지선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요동성을 점령할 수는 있겠지만 유지해 나가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 @계영배-s1h
    @계영배-s1h Год назад +4

    중국의 사서들을 읽어보시오. 고려 북쪽국경은 요하와 흑룡강 이었소

  • @lebronfinal1347
    @lebronfinal1347 Год назад +2

    서명합시다

  • @Horang2.
    @Horang2. Год назад +14

    찌질한 우왕이 경이가면 나는 어떡하오? 라며 최영을 잡아두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도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최영이 예정대로 총괄관리자로서 이성계를 견제하며 같이 요동을 공략했더라면 이렇게요

    • @아기상어-x9s
      @아기상어-x9s Год назад +1

      만일 그랬다면 이성계가 조민수랑 짝짜꿍해서 최영부터 암살했을 겁니다.

  • @강석덕-w4z
    @강석덕-w4z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여름장마철 에다 비가 많이내려 많이 불리한 요동정벌 아니였나요

  • @이대순-v4k
    @이대순-v4k Год назад +6

    전 위화도 회군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대륙땅도 잃었다구 봅니다. 그래서 선초에 역사서 수거해서 감췄죠.

  • @oneul2jina
    @oneul2jina Год назад +1

    11' 39"
    중국이라고 하면 조선 이라고 해야죠
    중국은 국호를 쓰고 조선은 왜 국호를 안쓰나요?
    중화인민공화국은 국가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가 아닌가요?
    황당하네요

  • @채승현-m1o
    @채승현-m1o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죄송한데요..혹시 위화도에 5만 병력이 주둔 할수가 있습니까?..ㅎ

    • @최유훈-n1r
      @최유훈-n1r 4 месяца назад

      우리나라 지형을 생각하면 서쪽은 평야가 많고 동부는 산이 많은데 5만 주둔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 @likeutude
    @likeutude Год назад +3

    이순신 난중일기에는 조선영토에 대한 이상한 말이 있어요. 북방 난이 일어났을 때인데, 그 지점을 지칭하는 지명. 그걸 좀 파주세요.

    • @dodogo1
      @dodogo1 Год назад +2

      지금 식민사학(정설학계)는 기록이있어서 뭉겝니다 어쩔수없어요
      간도관련해서도 숙종때 정계비가있지만 고종 대한제국 전까지 조선국경도가 교과서에선 변하지도않으니까요
      이순신장군 녹둔도도 두만강 넘어 서 운영되었다고하는데 이것도 여전이 논란중인거보면 압록강 두만강 넘어 국경이 그려지길 싫어하는거같아요

  • @어처-x9c
    @어처-x9c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생하세요

  • @dalbuk
    @dalbuk Год назад +12

    철령위를 강원도 "철령"과 연관지어 말하는 것은 언제쯤 바뀔지 모르겠네요. 주원장이 철령의 동쪽, 북쪽, 서쪽은 명나라땅, 그 남쪽은 고려땅이라고 말했는데 이것만 가지고 방위를 추정해봐도 철령의 위치는 고려의 북쪽 또는 서북쪽 변경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강원도의 철령은 바로 옆이 동해이기 때문에 여기를 두고 주원장이 말한 것이라면, 철령의 "동쪽"이라는 표현을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즉, 강원도 철령을 두고 "이동, 이서, 이북" 운운 하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철령위의 설치 위치, 이동 연혁, 철령(테링)시의 존재 등을 봐도 철령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해도 고려의 서북면의 어디쯤에 위치한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 @isjoo6501
      @isjoo6501 Год назад +3

      ​@@fjwk8사서 어디에도 쌍성촌관부가 함경도라고 지칭한건 없죠
      단지 그게 통설이니 군말말고 따르라 이거죠
      통설이 실증 사학인가
      웃기는 이야기죠

    • @dalbuk
      @dalbuk Год назад

      @@fjwk8 그렇다면 이자춘의 근거지가 지금의 함경도가 아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명나라 주원장과 고려 우왕이 주고받는 국서로 돌아가서 보면, 고려 우왕은 철령은 조상대대로 우리땅이니 그냥 예전처럼 고려땅으로 하자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주원장이 말하기를 "고려는 이전에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는데 지금은 철령으로 꾸미니 거짓임이 분명하다"고 맞받아칩니다. 주원장 본인의 입으로 한번은 "철령 동쪽/서쪽/북쪽은 명나라땅, 철령 남쪽은 고려땅으로 하자"고 하고, 뒤이어서 "이전에 고려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아놓고선 왜 지금에서는 철령이 너희땅이라고 하냐"고 합니다. 주원장이 말하는 "철령"이 압록강 북쪽에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발언인 것입니다. 애초부터 강원도의 "철령"을 두고서 국경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더군다나 쌍성총관부는 원나라 때 "개원로" 소속이었고, 원사에 쌍성과 화주는 요동에 있다고 나오고, 또 개원(카이위안)시의 명칭의 유래가 바로 개원로라 하니, 쌍성총관부 자체도 함경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겠지요.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Год назад +1

      맞습니다 이게 상식이죠~
      강원도 원산에 철령위를 설치했는데 동쪽이 어디있으며 뜬금없이 요동을 친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 @isjoo6501
      @isjoo6501 Год назад +1

      @@fjwk8 반박은 본인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해야지
      식민사관에 찌드린 소위 강단사학은 항상 그런식이다
      재야 사학을 공격할때 실증사학을 내세우지만 끝에는 통설이 그렇다란다

    • @jamisont1
      @jamisont1 4 месяца назад

      역사를 기초라도 알면 이런 무식한 소리 못한다 ㅉㅉ

  • @푸푸푸딩-f8y
    @푸푸푸딩-f8y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전쟁은 첫째로 둘째도 보급인데... 당시 고려 국력으로 이 보급이 될 리가 없잖아요,...

  • @bnf7255
    @bnf7255 Год назад +25

    위화도회군 당시 요동정벌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
    그런데 조선이 건국되고나서 정도전이 주도한 요동정벌은 할만했다고 생각함.
    중국에서 정난의 변이 일어났는데 그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함.
    그런데, 기가막히게도 이방원이 난을 일으킴.

    • @걍튜브-q3v
      @걍튜브-q3v Год назад

      정난의변 승리자가 영락제고 영락제는 중국역사상 역대급 정복군주인데 조선이 개겼다간 완전 개박살 났을 가능성이 높아요

    • @tv-rt7ht
      @tv-rt7ht Год назад +1

      이방원이 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한글은 창제 되지 않았음

    • @jaehoonha6
      @jaehoonha6 Год назад +1

      개방원

    • @Euebzknjaywzxh2lI
      @Euebzknjaywzxh2lI Год назад

      무슨 개솔인지 뭐가 할만 했는데??
      근거 좀 대봐라

    • @Euebzknjaywzxh2lI
      @Euebzknjaywzxh2lI Год назад

      이런글 싸지르는 애들은 뇌가 비었나

  • @김재진-g1g
    @김재진-g1g Год назад +2

    고려의 국경선은 산해관 ~ 공험진,선춘령

  • @keysersoze9861
    @keysersoze9861 Год назад +4

    😳😳😳
    👍😳👍

  • @kotparam
    @kotparam Год назад +1

    어떻게든 요동성을 점령하더라도 수당처럼 명이 수십만 대군으로 몇번이고 공격했을 때 끝까지 지킬 가능성이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이성계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지금 한국만 해도 "너무 오래 분단돼 북한과 다른 민족 됐으니 통일하지 말고 이대로 살자"는 국민이 여론조사에서 많고, 지금 방향대로 쭉 다민족국가화되면 영구분단 확정인데, 후손들에게 남북통일 여지라도 남겨줄 수 있게 국민들이 정신 차리고 바꿔야 합니다.

    • @토미베스트
      @토미베스트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건 우리의 변명같은 생각이고, 주원장은 요동을 칠 생각이 없었음. 그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고려가 요동먹고 빼째버리는 전략으로 외교전으로 나갔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임. 애초에 요동이 고려땅이라는건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수양제, 당태종이 100만대군으로도 요동정벌에 실패했다는건 명나라 한족들도 다알고 있는 사실이라 절대 섣불리 요동정벌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었음.

    • @jamisont1
      @jamisont1 4 месяца назад

      @@토미베스트 그당시 요동은 명나라에 투항해서 주원장이 요새화한지 15년이 지난 시점이었슴.. 나하추가 번번히 요동 공략했지만 죄다 깨진이유였고..
      주원장이 나하추 포위해서 항복시킨것도 명나라에서 요동까지 간게 아님. 수군통해 요동에 와서 보급받아가면서 북으로 올라가서 나하추 친거였슴. 나하추가 별 반항도 못하구 항복한뒤엔 바로 15만끌고서 북상해서 북원 기습해서 멸망시킨지 딱 한달뒤가 위화도 회군시점임.

  • @keysersoze9861
    @keysersoze9861 Год назад +5

    출진 부터 쿠테타 준비한 듯

    • @절물사려니
      @절물사려니 Год назад +2

      드라마에서는 이성계가 위하도에서 조민수 설득하는 장면 나오는데 님말처럼 미리 출전하기 직전에 짝짝궁한 듯

    • @이준서-z8n
      @이준서-z8n Год назад

      그건 아닌 듯. 그랬으면 개경 나갔다가 바로 오지, 뭐하러 트래킹하다 옴? 실무자가 안된다는거 자꾸 시키니까 하는 척 하다가 들이받고 나 안 해. 한 거지..

  • @장산범-k1u
    @장산범-k1u Год назад +11

    두 차례의 요동정벌을 하지못한게 아쉽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여전히 중국을
    넘보지 못했으니까요...
    광개토태왕과 연개소문
    이성계와 정도전
    효종과 윤휴
    북벌은 계속 이어나갔으면합니다

  • @cjw102885
    @cjw102885 Год назад +1

    그래서 우리나라가 역사 연구를 더 많이 해야됨.. 이건 우리나라만의 역사로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됨 북한 중국 우리나라 이렇게 협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역사연구가 불가능함..

  • @별사탕오영운
    @별사탕오영운 Год назад +6

  • @boyfreemium7007
    @boyfreemium7007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려가 아무리 썩었다 해도 공민왕이 요동정벌을 명했다는건 모든걸 설명한다 이씨 조선을 증오합니다!

  • @도깨비-i4g
    @도깨비-i4g Год назад +43

    의병장 하고 있는데 최대한 많이 받아보겠습니다
    오늘도 잘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현필 선생님

  • @HYUNJUN730
    @HYUNJUN730 Год назад +2

    이순신해서명
    당연했죠.

  • @계영배-s1h
    @계영배-s1h Год назад +3

    철령이 함경 이라함은 식민사학이요. 요동에 철령이 있소. 함경에는 없소

    • @maple4801
      @maple480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북한에 지금도 철령관이라는 곳이 있고요. 우리나라에서 영동 영서 영남 하는 게 이 철령을 기준으로 정한 겁니다.

    • @계영배-s1h
      @계영배-s1h 9 месяцев назад

      @@maple4801 주원장이 강원도의 철령에다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했다면 정신 이상자 이지요. 철령은 지금도 만주 선양부근에 남아있고 요동의 기마족속을 억압통치하던 군사요충지였소. 식민사학을 이성적으로 타파하세요.
      고려는 조선 보다 군현이 3배 많았고 거란 여진 몽골에 대등하게 싸우던 30만 정병을 거느리던 강국이었소. 그에비해 조선은 군사가 5만도 안되는 약소국

    • @jamisont1
      @jamisont1 4 месяца назад

      요동에 있는건 철령위 세울려다 고려가 반발하니깐 그냥 국경에다가 주원장에 세운거자나.. 그뒤엔 더 먼쪽에다 옮긴걸 지금 환빠색히들이 원래 철령은 만주에 있었다란 개소리가 나온거고

  • @thesid3276
    @thesid3276 Год назад +1

    시기가 안좋았다 봅니다. 만약 원나라 멸망과 명 건국 사이의 혼란기가 30~50년만 늦어지거나 더 걸렸어도 요동 정벌을 실제 시도를 해볼만 했을겁니다.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Год назад +10

    애초에 고려가 조선보다 작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조선이 축소해서 집필한 고려사에도 고려의 북쪽 영토는 최소 요동포함하여 만주전체입니다
    원나라 시절에도 고려왕은 곧 심양왕이었고 이는 요동땅이 고려의 관할이었다는 겁니다
    철령위가 강원도 원산이라는건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입니다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Год назад +1

      @@fjwk8 깨우쳐줘도 소용없는 축생 ㅉㅉ

    • @세이블빈티지
      @세이블빈티지 Год назад

      고려가 조선보다 좀더 자주적 외교정책을 했다고 고려가 조선보다 영토가 커야하는게 당연한것처럼 말하는게 이해가 안됨. 당시의 동북아 국제정세를 같이 봐야하고 그에따라 영토는 커지거나 줄어드는거지. 원나라는 적은 인구로 엄청나게 넓은 지역을 관할해야해서 고려 왕족을 원나라 수도와 가까운 지역인 심양왕에 앉히고 볼모로 잡아둔것임. 그래야 먼곳에 있어서 신경쓰기 힘든 고려가 이상한짓을 못하게 하기 위한건데 원나라가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 고려왕족을 심양지역 왕으로 앉힌걸 심양과 요동이 고려 영토고 관할이었던것처럼 말하는건 역사를 우리에게 유리한쪽으로만 근거도 없이 상상해서 유추하는것임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Год назад +3

      @@세이블빈티지고려의 영토에서 관한 내용은 저의 뇌피셜이 아니고 100% 역사기록입니다 링크 영상 참고 부탁드립니다 ruclips.net/video/zmtAus4LMb8/видео.html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Год назад +1

      @@fjwk8 전문가? 대학교수,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공부는 진짜 공부는 절대 하지 않으며 명백한 역사기록이 존재함에도 본인들이 배운 엉터리 역사, 식민사학만이 맞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 @SuperWonder
      @SuperWonder Год назад

      심양왕? 그거 그냥 작위지, 고려영토로 인정하겠다는게 아니잖아요. 그게 가능하면 남북국 시대에 남조 왕조들은 일본왕을 왜신라임나진한모한제군사왜국왕으로 책봉했는데 한반도 남부는 일본땅 됩니까?

  • @jung7041
    @jung7041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당시 요동을 정벌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 정벌후가 문제였던거죠. 우리나라 평안도, 함경도 지방만 해도 춥고 여진족등의 침입이 빈번하여 백성들이 가기를 꺼려하여서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범죄자 등을 포함하여 이주를 시켰고 도망가면 사형까지 했으나 도망치는 자들이 많았다고 하죠. 그런데, 요동까지 백성들이 가서 지킨다? 압록강 지역도 힘든데 더 먼곳까지 병력, 백성, 보급까지 현실적 문제가 더 많았을거라 봅니다. 특히, 함경도는 조선시대 내내 역차별을 받아 반란이 빈번했죠. 여차저차 요동1차 정벌처럼 어찌해서 이긴다해도 유지하기도 힘들었고 국력만 갉아먹었을 가능성이 크죠. 이성계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와 이겨도 져도 자기한테 손해인 싸움이라 피했던 거구요. 공신이 되도 왕권의 견제로 암살이나 숙청된 전임들을 많이 봤고 져도 세력약화와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양통수 였을겁니다.

  • @goryeo1392
    @goryeo1392 Год назад +3

    누루하치는 겨우 6만으로 조선, 명나라를 격파 금나라 건국, 최영이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군인이고 그당시 왕다음 정보를 가지고 있는 넘버2인데 무적정 진군 시키지 않았을것...
    어처구니 없는건 정도전은 표전문 시비로 요동정벌 하려했음 그당시 명나라가 더강하면 강했지 1388년보다 약하지 않았을것

    • @jamisont1
      @jamisont1 4 месяца назад

      누르하치도 못넘던게 산해관이었슴.. 명나라에서 반란일어나 스스로 문열어주기전까진

  • @hooni8652
    @hooni8652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점령은 가능했을지도… 근데 영구적으로 다스릴수 있었을지는 의문.

  • @정재성-c1l
    @정재성-c1l Год назад +7

    승리하더라도 요동지역을 지속적으로 유지관리가능할까요?

    • @MomitoSeo
      @MomitoSeo Год назад +3

      광개토대왕은 관리 잘 했는데요?
      관리 잘 할수 있느냐 없느냐는 의지와 능력 문제이지 관리 자체가 가능, 불가능한 게 아니죠.
      누군가는 점령하고 관리해냈으니까.

    • @정재성-c1l
      @정재성-c1l Год назад

      @@MomitoSeo 광개토왕전부터 요동은 고구려땅이었다가 한동안은 남에게 빼았겻다가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시대와 조선시대 및 현대와는 시스템상 차이가 큽니다. 고대로 갈수록 영토 행정력개념이 현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현대적인 개념으로 모든 지방에 국가행정력을 구석구석투입하는 것이 고대에서는 어려운 일이죠.

  • @freesia4597
    @freesia4597 Год назад +2

    중국 북방에는 연왕(훗날 영락제)이 버티고 있는데 잘도 요동정벌 하것다 ㅋㅋㅋㅋ 밥먹고 맨날 쌈질만 하던 전투력 어마어마한 연왕 군대가 버티고 있는데

  • @정쌈꾼
    @정쌈꾼 Год назад +3

    누구나 링위에 오르기 전에는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쳐맞기 전에는

  • @Frog-bigmouth
    @Frog-bigmouth Год назад +36

    황선생님 위화도를 다녀오셨으니 잘 아실텐데, 과연 지금의 위화도가 5-6만 군사가 숙영을 할 정도로 넓은지 궁금합니다.

    • @davidjeong7675
      @davidjeong7675 Год назад +5

      정확하지는 않치만 위화도에서 숙영하지 않고 위화도를 목전에두고 숙영한걸로 알고 있어요

    • @내맘대로-b3g
      @내맘대로-b3g Год назад +4

      그럼 진짜 위화도가 어딘지 비정을 해보든가 비정하라 하면 맨날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같이 좀 고증좀 해보자'이런 식으로 뜬구름잡는 소리나 하고 ㅉㅉ

    • @cyx0406
      @cyx0406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내맘대로-b3g 정확하지 않은 표기를 한반도 안에 우겨넣는 자국역사의 부정적 해석이 식민사학 자체에 너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거지 교차검증이 되고 확실히 자료가 있는 부분은 연구를 해야 마땅한것을

    • @김병천-q7u
      @김병천-q7u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도대체 위화도가 어디에 있어요?한반도에 위화도와 강동육주는 어디에 있는지요,,제발 찾아주세요

  • @jjjb9981
    @jjjb9981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조용히 살고싶은 한국인들 경제가 이렇게 발전하고 군사력이 이렇게 높아져도 북진하자는 여론 0%

    • @maple4801
      @maple480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전쟁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닙니다

    • @marchjann2511
      @marchjann2511 4 месяца назад

      야망이 없는거임 진취하고싶은 욕망 그게 없어서 한민족은 한번도 남의 민족의 땅을 빼앗고 지배한 적이 없음
      러시아 보셈 그렇게 땅이 많아도 우크라이나 침략하잖아 끝없는 욕망
      이건 어쩔수없음 조상 유전자가 그래서 후손들도 그러는거임 그게 수백년 이어진거고

  • @정의-n8b
    @정의-n8b Год назад +11

    존경하는 황현필 선생님

    감사히 배움 합니다

  • @funstory1629
    @funstory1629 Год назад

    충분이 가능했다.
    불가능 그깡꺼
    설사 실패했다손치더라도 시도도 못해보고 뭐ㆍ 왈가왈부?

    • @SuperWonder
      @SuperWonde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충분히 불가능하죠.
      몇년 전까지만 해도 홍건적한테 수도를 털리고 왜구한테 수운이 막혀서 나라 망하기 직전인 고려가 얼마나 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실패하면 명나라 침략은 예정되있는건데 그냥 한번 해보자? 말도안되는 소리죠.

  • @유형숙-o5v
    @유형숙-o5v Год назад +3

    💙💙💙💙💙

  • @kryul73
    @kryul73 Год назад +2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했으니 한반도만 접수했지.

    • @SuperWonder
      @SuperWonder Год назад

      회군안했으면 명나라가 한반도를 접수하지.

  • @jaehojang1077
    @jaehojang1077 Год назад +40

    여진족이 청을 세우는 불가능한 경우는 수천가지 였고 가능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도 청을 세운건 그들의 도전정신이었다

    • @아기상어-x9s
      @아기상어-x9s Год назад +7

      가장 중요한 건 여진족이 청을 세울 땐 명이 지 스스로 쓰러져 가던 때이고 회군 시기는 명 건국초기에 북원을 몰아내고 욱일 승천하던 때라 백전연마의 장수와 병사들이 많던 때였어요. 여진족은 유목민족이라 상대가 공격할 땐 어렵고 야지에서 공격받을 땐 각개격파를 걱정해야 할만큼 기동력에서 차이가 나죠. 반면 조선도 역시 성을 쌓고 방어해야 하는 터라 소모전으로 가면 결국 고구려처럼 당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 @천대식-s8k
      @천대식-s8k Год назад +13

      여진족은 원래부터 강인한 전투 민족입니다. 그들이 한족의 중국왕조나 다른 북방 기마 민족의 지배를 받은 기간보다는 그들이 한족이나 다른 북방 기마 민족을 지배했던 기간이 더 길어요.

    • @dx9185
      @dx9185 Год назад

      ​@@천대식-s8k.ㄷ

    • @solla3130
      @solla3130 Год назад +5

      정확히 그 당시 명나라는 이자성의 대규모 농민 반란으로 이미 망해가던 상황이었음.. ㅇㅇ 청나라는 시기를 매우 잘 만나서 중원 입성에 성공한거임.. 실제로 명나라는 이자성의 순나라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고 왕조가 멸망했으며, 그 이후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가 청나라에 휘하 병력들과 함께 투항하면서 청나라는 피 한방울 안 흘리고 산해관을 넘어 중원에 입성 할 수 있었음..

    • @정신교육대-o2w
      @정신교육대-o2w Год назад

      @@천대식-s8k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중공의 역사는 1911년 중화민국부터 시작.
      이전 역사는 전부 우리역사

  • @푸른모자-b4m
    @푸른모자-b4m Год назад

    고민한건... 그냥 작전 세우느라고... 뭘 때려 엎어야지.. 죽일려고 드는데 그냥 죽어주나..

  • @sukjukim7103
    @sukjukim7103 Год назад +3

    환빠 척결님
    [중국의 동북아고대사는 가짜다]만 읽으셔도 기존 교과서의 이론체계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동북아고대사정립]의 저자 김석주 드림.

    • @김석주-p8n
      @김석주-p8n Год назад +1

      김석주님. 책보고 유튜브에도 댓글을 남겨 주십시오.

    • @sukjukim7103
      @sukjukim7103 Год назад

      ​@@김석주-p8n 책보고 유튜브는 대륙삼국설 또는 대륙고려설을 주장하는 채널로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삼한 땅의 일부였던 한반도에서 백제와 신라가 성장했고, 삼한 땅을 통일한 한민족의 국가가 고려입니다.
      중국 본토 연안에 백제의 영토가 조금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백제의 시작점도 현 요서지역입니다.
      하지만 고대 국가의 형태를 갖춘 백제의 본토는 한반도 서부 지역이며, 참고로 백제의 전성기에는 요동반도 일대까지 백제의 영토였습니다.
      책보고 유튜브에도 예전에 댓글을 남긴 적이 있으나 운영자 분이 너무 배타적이라 그곳에 댓글은 남기는 것은 시간 낭비라 여기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 @sukjukim7103
      @sukjukim7103 Год назад

      누구에게 허학을 받는데? 그리고 얼마나 바닥 인생을 살았길래 소개와 홍보도 구분을 못하는 건지... ㅉㅉ

    • @sukjukim7103
      @sukjukim7103 Год назад

      ​@@killhwan773어이구... 화상아...
      한 곳에서 떠들어라 돌아다니지 말고..
      신원 까고 공개토론 하자.

  • @풍천-i2h
    @풍천-i2h Год назад +1

    4군6진도 버거워했던 조선인데 요동을 점령했다한들 간수가 어려웠을것. 뭐... 만주족이 언제 가져가나 시간문제였을듯.

  • @arcyoon
    @arcyoon Год назад +12

    회군보다 왜 이전 역사서를 조선이 불태웠는 지 그 점이 가장 괘씸함.

  • @지투요
    @지투요 Год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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