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렉계 농경유대민족이 동북아로 이주해서 초기에는 비옥한 농경지[심양~벧산~ 평양]에서 발상했죠. 3조선+예맥+일본+서국+부여 이렇게 초창기에는 농경생활 이 중심이다가 봉건영주제의 발전으로 시베리아까지 영토가 확장되면서 그 지역의 기후상 목축생활을 하면서도 문명인의 기치는 계속 이어져서 그 문명을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에 1천여년 먼저선착했던 욕단계 흉노(몽골)족이 우리[중국 원주민은 *객가*라 칭함]가 동방에 후착했을 때에도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했고 목축생활도 재래 식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보더라도 문명의 우리민족은 시베 리아에 살아도 문명인이었죠. 감사합니다.
발해는 당나라가 망해가고 신라가 후삼국시대에 접어들었을 때도 해동성국으로 건재했었음. 멸망하기 2년 전에는 거란의 요주에 선빵 날린 적도 있었음. 그러니 발해가 망한 게 ㄹㅇ 허무하다고 할 수밖에. 고구려 망했을 때처럼 지배층의 내분이 아니고서는 부여성이 한방에 뚫리고 상경까지 하이패스가 만들어졌을 리 없다고 봐야 함.
하지만 알아야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10대 선왕은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후손이었습니다. 갑자기 왕계가 방계로 바뀐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면? 어떤 왕위 다툼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 대동강변의 나라가 신라에 투항을 하는 일이 12대 왕 정도부터 나타나게 됩니다. 그 지배층의 내분은 생각했던것보다 더 이른 10대 선왕 정도 이후 부터 보는게 맞겠죠
일단 거란이 전통적인 루트인 요동이 아닌 부여쪽으로 침공루트를 정한걸 보면 아마 발해 요동쪽에 발해의 대군이 집중되있었고 그래서 거란이 요동을 피해 상대적으로 병력 집중이 덜된 발해의 부여부로 정해서 갔을 가능성도 큼 거란침공 2년전까지 요동을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싸웠기에 발해입장에서 요동을지키기위해 요동쪽에 병력을 집중했을 것이고 거란은 그 점을 노려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여부쪽으로 노리고 바로 상경쪽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음
제 생각은 지금처럼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화산 폭팔 전조현상으로 인해. 이제 발해는 끝이난나는 세기말현상처럼, 지배층이 혼란과 타락으로 인해 당시 거란은 새로운 땅의 주인이라는 신앙이란게 생겨서. 자연스레 내,외부적으로 무너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공포는 조금씩 마음쏙에서 커지니깐요
제가 구독하고 있는 채널중에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채널 .. 제 아이들에게 역사인식과 한국에 대해 알려줄때 많이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발해가 위대하지만 기록이 많지 않은건 정말 아쉽네요.. 역사는 승자의기록이니, 요나라에 의해 멸망 된것도 다른 의미가 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게다가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수심이 깊은 강들도 많아서 이걸 이용해서 천연요세를 구축하기에도 좋았어요 수나라나 애를 먹었고 당나라도 애를 먹어서 이점 때문에 보급이나 고구려 여러차례 침공에 실패했던것도 이러한점 때문이죠 신라하고 협공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방어선을 무너트리는게 가능해지고 게다가 보급문제도 해결되서 고구려를 멸망시킨거죠
십년도 넘은거 같은데 KBS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에서도 다뤘던 내용이 생각나네요. 백두산 폭발이 멸망 원인 하나의 설로 제기했는데. 일본 훗카이도에서 백두산의 흙이 발견되었고 그만큼 백두산 대폭발이ㅡ있었다. 때문에 발해가 암청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라는 설이었죠. 미국도 참 대단하네요. 그걸 밝혀내다니
발해가 3대 문왕 이후 6명의 왕이 교체가 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배권 싸움으로 죽었을 수도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통치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0대 선왕이 요동을 정벌한 것도 단합을 위해서 일수도 있고 대인선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거기다가 대인선 때는 백두산 대폭발 징후가 있었을 것이고 그 당시에는 이런 현상은 하늘이 노했다고 생각 것이니 이 때문에 요동 정벌로도 단합을 하려 했지만 단합이 아닌 배신의 용기를 줬거나 오랜 갈등 중에 단합이 깨졌을지도 모릅니다 3만군을 이 끌고 갔던 제상?이란 자가 후에 동란국을 세우는 걸 봐서는 권력 욕이 심했던 인물인 것 같습니다
별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하지 않았어도 . 몽골 , 여진에 의해 멸망했을겁니다. 사실상 발해는 극동지역의 척박한 땅이라 농경사회를 형성하기 매우 어려운 지형이였고 생각보다 산악지형이 많아 중국 , 한국 , 일본 역사처럼 왕과 지방이 연결되는 길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부족사회가 서로 고립되어 독자적인 노선이 많았을 겁니다. 물론 발해가 이런 여러 상황들을 극복하고 현대까지 발해라는 국가가 존속했다면 지금의 중국 동북공정과 같은 고구려 , 발해 역사를 두고 한국과 역사분쟁이 있었을것이고 발해 스스로 우리는 한반도와 다른민족 다른국가 다른체제다 라며 아마 한국와 외교적으로 일본보다 더 분쟁적인 관계가 지속되었을 겁니다.
@@자이-e6c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말씀하신대로 사전징후의 지진이 27%밖에 안 되고, 실제로 화산이 폭발했던 고려도 그 폭발로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을 봐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이네요. 그래서 그 보다는 요사에 나오는 힘을 들이지 않고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심상치 않은 기록과 노상이라고 기록된 발해의 이완용이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발해가 중간에 대조영 동생의 후손이 왕위를 차지하면서 계파가 완전히 둘로 나뉘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발해 말기에 가서는 왕이 계속 바뀌었고 중앙 정권에서 밀려난 노상이 배신을 한 것 같아요. 내부 분열이 자연재해 보다도 무섭다는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백제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멸망원인은 배신이라고 봐야죠. 화상터져서 망했다면 요나라가 오히려 그 지역에 안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화산폭발 알려진거보다는 별로 위력 없는거 같은데, 세계 여러 곳에서 터진후 상황보면... 아직 제대로 임자 못만나서 그런걸수도 있지만.
지구과학적으로밝혀진 사실은 서기 900년대 백두산화산이 폭발했고. 이 화산폭발이 지난 2000년간 일어난 지구화산 폭발중 가장 컸다는것입니다,이폭발로인해 전지구적으로 극심한 기근이 들었다는것입니다. 최근 유럽에서 그당시 대기근의 원인을 규명하기위해 연구하다가 나온 결론입니다
최치원이 발해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은 이유는 발해 3대왕인 대흠무가 일본에 보낸 서신을 보면 알 수 있을듯. 대흠무는 일본에 보낸 서신에 "고려국왕 대흠무가"라고 자신을 고려, 즉 고구려의 왕이라고 자창함. 신라 조정으로서는 고구려를 멸망 시켰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왕성만 고씨에서 대씨로 바뀌어 고구려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듯..
발해 멸망에 대해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풀리지 않고 있지만, 발해가 급작스럽게 망조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거 같습니다. 거란의 침입이 결정적인 사건(고려 태조가 '우리와 같은 민족의 국가를 멸망시킨 야만족' 이라 부르며 화친 맺기를 거부하고 거란이 선물로 보내온 낙타를 다리 밑에 묶어 놓고 굶겨 죽였다 하죠)이긴 하겠으나, 거란이 발해를 침입해 갔을때 '많은 수의 발해인들이 상복을 입고 저항없이 스스로 나와서 항복했다' 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해 발해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편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백두산의 화산폭발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어찌되었든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내부적 요인으로 발해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었겠는가 생각됩니다. 어느 학자의 말에 의하면 10세기 지구에 소빙하기가 살짝 왔었다고 합니다. 발해 역시 이시기에 자연재해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결정적인 거란족의 침입으로 발해가 결국 멸망한게 되었던거 아닌가 합니다.
그냥 발해 지배층만 쓸려나가서 멸망으로 보는거지만... 발해부흥운동이.....요나라 멸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라는 기록과 금나라가 요나라 점령 후 발해인에 대해 민족복속 행위를 했던 점... 즉 조선시대 말기 조선왕가만 일본에 항복하고 민중은 일본에 대해 항복을 아니해서 독립운동이 미친듯이 일어난거 처럼...
발해라는 나라는 고구려인부터 뿐만아니라 말갈이나 여진까지 시작부터가 다민족국가였던 나라였음 그런데 이런나라들의 제일문제점이 통합도 안될뿐더러 한번 통치 잘못하면 내부분열 시작되어서 돌이킬수 없는 상황까지와버림 아마 발해가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도 이런이유때문이라 생각함 백두산 폭발은 그냥 발해멸망의 트러거중에 하나일꺼고
946년에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 이미 땅이 흔들리고 소규모의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났다고 봐야죠. 활화산의 활동은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걸로 압니다. 발해의 쇠퇴원인에는 자연재해가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아마도 말을 기르고 기마병을 양성하는데 큰 제약이 있었을 겁니다.
백성은 먹고 사는 문제와 후손을 이어가는 것이 본능적 핵심이고 이것을 지켜 나가는 것이 나라인데, 이 두가지가 어려운 나라는 망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민생 어렵고 출산율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나라가 유지된다고 봅니다. 지금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 선택은 국민들이 윤석열 끌어 내리고 이재명 대표에게 권리를 주는 것입니다. 황현필 선생의 훌륭한 역사강의에 이런 댓글 올려 죄송합니다만 요즘 정부 하는 일 보면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습니다.
그런데 그 설이 나온 이후에 과학적 연구가 계속 진행되서 백두산 폭발은 발해가 멸망된 후에 발생했다더군요. 고려 역사서에도 946년에 개성 하늘에 어마어마한 천둥 소리가 들렸다는 일치하는 기록도 나오고요. 그냥 가장 유력한건 고조선, 고구려, 백제 등이 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부분열과 그로 인해 발생한 배신이 컸던 것 같습니다. 요서에도 발해 내부의 배신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요.
그 거란장수 비석이 발견된거보니.. 이미 발해와 거란(요)는 요동에서 밀고밀리는 전투가 수십차례였다고 나왔음. 거란이 요동이 아니라 부여성쪽으로 직공해서 상경성이 함락.. 발해수도가 고구려처럼 평양같은 한반도 내부에 있었으면 한방에 안망했음. 솔직히 고구려가 연남생 이 배신자가 국내성등 40개성이 당에 항복해서 비교적 쉽게 망함.
역사를 가르쳐 주시는 분께 감사와 고마운 맘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발해에 대해 정말 관심이 있고 궁금했는데 해결해 주시네요~ 앞으로도 많은 지식 부탁드립니다.
벨렉계 농경유대민족이
동북아로 이주해서 초기에는
비옥한 농경지[심양~벧산~
평양]에서 발상했죠.
3조선+예맥+일본+서국+부여
이렇게 초창기에는 농경생활
이 중심이다가 봉건영주제의
발전으로 시베리아까지 영토가
확장되면서 그 지역의 기후상
목축생활을 하면서도 문명인의
기치는 계속 이어져서 그 문명을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에 1천여년 먼저선착했던
욕단계 흉노(몽골)족이 우리[중국
원주민은 *객가*라 칭함]가 동방에
후착했을 때에도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했고 목축생활도 재래
식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보더라도 문명의 우리민족은 시베
리아에 살아도 문명인이었죠.
감사합니다.
발해 땅 어마무시했구나..너무 안타깝다 저 땅 다 우리거였는데 ㅠㅠ
한글이 없었을수도있음 ㅋ
저거 갖고있어봤자 징기스칸때 다 뺏겼을거임
저 땅들 차피 농사도 안되고 춥기만 ㅈㄴ춥고 개무쓸모땅덩어리임...
@@peuri546 멍청하네.. 거기 지하자원이 어마어마한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sunglass-sunglias 멍청하네.. 거기
지하자원이 있는건 생각 못하냐?
선생님 명강의 항상 감사 드립니다!
발해는 농경국가 유목국가도 아닌 애매한 처지여서 남쪽 중원의 농경국가와 북방의 유목국가간에 유대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포지션으로 인해 나라가 발전의 목표를 잡기 어려웠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게 왜 갑작스러운 멸망으로 이어지죠??
@@HexaLee 발해가 차지한 만주 연해주 지역은 농업생산성이 적은 준 냉대기후이고 그나마 한반도 이북에서 곡창지대가 될수있는 황해도 지역을 잃어버리니 농업으로 인구를 부양할수가 없음
@@HexaLee 그렇다면 거란, 몽골처럼 무역을 하거나 대규모 목축업, 약탈을 하는 기마대가 발달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닌 농경국가를 추구하는 정책을 했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경제력이 취약한 국가가 되었고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됨
@@HexaLee 그래서 백성들이 중국 중원이나 고려로 이주하게 되어서 가뜩이나 인구가 적은 발해의 국력이 쇠퇴하게 되고 이때 자연재해나, 전란이 발생하면 한방에 훅가게 됨
그당시는 반농반목이었다라고 하지만
지금은 전세계 최고 곡창지대
우크라이나가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그걸능가하는곳이 만주지역
오늘도 감사합니다~
발해의 멸망은 정말 아리송 하다
한중연에서 멸망후 발해인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연구한 박사논문이 나왔데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황선생님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동영상 보면서 역사가 재미있음을 느꼈습니다
바빠서 일단 좋와요 누루고 낮에 볼게요^^
발해사는 참 많이 궁금한 역사중 하나죠.
개인적으로도 많이 궁금합니다.
와.. 완벽한 강의에 소름이! 전율이! 너무 재밌고 감동적이에요❤
발해는 당나라가 망해가고 신라가 후삼국시대에 접어들었을 때도 해동성국으로 건재했었음. 멸망하기 2년 전에는 거란의 요주에 선빵 날린 적도 있었음. 그러니 발해가 망한 게 ㄹㅇ 허무하다고 할 수밖에. 고구려 망했을 때처럼 지배층의 내분이 아니고서는 부여성이 한방에 뚫리고 상경까지 하이패스가 만들어졌을 리 없다고 봐야 함.
하지만 알아야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10대 선왕은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후손이었습니다.
갑자기 왕계가 방계로 바뀐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면?
어떤 왕위 다툼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 대동강변의 나라가 신라에 투항을 하는 일이 12대 왕 정도부터 나타나게 됩니다.
그 지배층의 내분은 생각했던것보다 더 이른 10대 선왕 정도 이후 부터 보는게 맞겠죠
좋은 추론입니다
백두산 화산폭발설도 있어요 그것때문에 발해가 망했다는 그것
@@deusexmachina8160 해외 연구팀이 백두산 폭발시기를 추적했는데 940년 이후에 터졌다고 하고 고려사에도 북쪽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낫다고 기록되어있어서 백두산 화산폭발설은 힘을 잃었어요. 라고 썻는데 영상보다보니 그 내용이 나오네요
@@deusexmachina8160 영상 좀 보다 댓좀 달자
역사를 이렇게 집중하고 귀에속속 들어오게 강의하시는 황현필님 현대판 역사책이라고 부르고싶네요
항상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
책보고 라고 영상 한번 보세여..진짜우리 역사를 실감하실겁니다..
5:13 100년이면 나라가 20번쯤 망할 수도 있을거 같네요.
요새보면 2년만에도 나라가 망해가는 것 같고 5년이면 완전 들어먹을 것 같기도 하니까......
일단 거란이 전통적인 루트인 요동이 아닌 부여쪽으로 침공루트를 정한걸 보면
아마 발해 요동쪽에 발해의 대군이 집중되있었고
그래서 거란이 요동을 피해 상대적으로 병력 집중이 덜된 발해의 부여부로 정해서 갔을 가능성도 큼
거란침공 2년전까지 요동을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싸웠기에 발해입장에서
요동을지키기위해 요동쪽에 병력을 집중했을 것이고 거란은 그 점을 노려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여부쪽으로 노리고 바로 상경쪽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음
감사합니다 ~~~~쌤
감사합니다🙆♂️
재미나는 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요사에 보믄 발해에 공격하러 들어가니까 발해쪽에서 높은 관직을 가진 이가 대적하러 군사를 이끌고 나왔는데 그 발해 관리가 항복을 했고 그대로 수도에 쳐들어가니까 왕이 흰색옷을 입고 항복을 하러 나왔다라고 되어있음
감사합니다
발해 고구려 거란 여진 말갈 돌골 티벳 신장위구르 몽골인들을 이해할수 있는 정보등 중요질듯 합니다 대고구려 제국을 건설한다면 같은 뿌리의 나라들을 이해할 필요 하겠지요
발해멸망2년전에 요동을공격했으면 요동에대한지배권을 상실해서되찾으려했다고볼수있지않을까요?
그이전부터 내부다툼으로요동에대한지배권을 조금씩잃어가다가
역사에 IF라는건 없다지만 안타까운 기회가 너무 많죠ㅜㅜ 발해가 정벌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영토가 얼마나 되어있었을까요??
@@알로에-m9o 사투리가 더 늘어났겠져.
존경합니다..선생님
제 생각은 지금처럼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화산 폭팔 전조현상으로 인해.
이제 발해는 끝이난나는 세기말현상처럼, 지배층이 혼란과 타락으로 인해 당시 거란은 새로운 땅의 주인이라는 신앙이란게 생겨서.
자연스레 내,외부적으로 무너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공포는 조금씩 마음쏙에서 커지니깐요
저도 같은 생각 입니다
여러가지가 시기적으로 엎친데 덮친격의 결과가 아닐까 싶네요. 화산폭발로 인한 민중 혼란과 재반된 여러사건사고들, 거란족의 발흥과 급속한 진격, 민족구성의 다분화에 따른 결집실패, 지도층의 분열, 척박한 국토에 의한 기본적인 자원/인구의 부족 등...
@@깔끔정리-h4o 생각해보시면.
그래도 과학이 있던 ..
1997 휴거사태나 2000년 밀레니엄버그사태만 보더라도,
그냥 대재앙의 믿음과 공포가 사회를 싶게 무너트린것 같습니다.
20년 후에 폭발했는데 전조 증상이 나타났을까요?
@@청화수님팬 백두산 정도 화산이면 폭발하기 전부터 계속 전조증상 있을 수 밖에 없음
지금 시대에 생각해볼 점이 많은 영상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황현필 선생님
중국은 심각한 흉년이 질때 왕조가 교체되었고 그건 농사가 주력이기때문
요동도 반농반목이기때문에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클수밖에 없음
유목민이 많앗기때문에 통합되지 못한게 가장 컸을테고
고구려의 멸망이상으로 너무 허무한 발해의 멸망 ㅜㅡ
제가 구독하고 있는 채널중에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채널 .. 제 아이들에게 역사인식과 한국에 대해 알려줄때 많이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발해가 위대하지만 기록이 많지 않은건 정말 아쉽네요.. 역사는 승자의기록이니, 요나라에 의해 멸망 된것도 다른 의미가 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고구려 망한후에 당나라 놈들이 고구려 역사 기록들을 모아서 전부 태웠는데 하도 방대해서 3일밤낯을 태웠다는 설도...
엉터리 식민역사입니다,,,,버리세요
책보고 한번 봐보세요. 이런분 강의보다는 훨 나은듯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합리적 추측과 주변 정세에 따른 해석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선생님의 노고에 크게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책에서 볼 수 없는 합리적이고 객관적 시각으로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유투버 책보고 영상 보면 진짜 역사를 아실겁니다.
@@pae4451 어쩔수없습니다 . 식민사학자들이 교과서 만들었으니 ㅠ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피지배층이라는거 자체가 말이 안됨..
정말 재미있게 잘보고있습니다 이런 역사강의를 유투브에서만 보는게 안타깝네요 이런 강의는 TV에서 방영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설민석이 경력을 속여서 그렇지 국민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게 만든건 사실이고 훌륭했다 생각함.쥴리는 잘보이고 싶어서 경력속이고 조작하고.
거란의 진격로를 보면 수,당이 평양으로 진격 할때와는 다르게 북쪽 평야지대로 진격했고, 발해의 성은 고구려의 산성과는 다르게 평야의 낮은 읍성형식의 성들이 주로 이루어졌으니, 방어력이 약하긴 했던듯 합니다.
게다가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수심이 깊은 강들도 많아서 이걸 이용해서 천연요세를 구축하기에도 좋았어요 수나라나 애를 먹었고 당나라도 애를 먹어서 이점 때문에 보급이나 고구려 여러차례 침공에 실패했던것도 이러한점 때문이죠 신라하고 협공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방어선을 무너트리는게 가능해지고 게다가 보급문제도 해결되서 고구려를 멸망시킨거죠
@@정도전-x9w 청천강이 우리가 아는 그 천청강이 아닌데~~~
@@정도전-x9w 고구려 연개소문 사 후 연남생이 권력 투쟁에서 밀려서 당나라로 투항하면서
국내성 주 변 성들과 함께 당나라로 투항해버림...
즉 평양성 주변의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이 방어적 요소가 사라져요~~
발해 건국이 됐을때 요동 요서 먹고 최전성기때의 고구려 북쪽 영토까지 점령했었어야함
자막이 있어 너무 좋습니다
강의를 듣고 편집하는데 참 편합니다
계속 자막 부탁드립니다
황선생님.지금의 정말 많은 국민들이 딱 그 심정입니다.걱정입니다! 늘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 주는 황현필 화이팅!
깃발부대 틀딱충과 일베들 빼고요...
선생님 파이팅~~~^^ 감사합니다...
황쌤이 계셔서 넘 감사해요♡
파이팅!!
감사합니다.강의
몇년전 것도 잘 찾아보고 있습니다~
좌도 우도 아닌 역사적 팩트를 공부합니다~
감사합니다!
십년도 넘은거 같은데 KBS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에서도 다뤘던 내용이 생각나네요. 백두산 폭발이 멸망 원인 하나의 설로 제기했는데. 일본 훗카이도에서 백두산의 흙이 발견되었고 그만큼 백두산 대폭발이ㅡ있었다. 때문에 발해가 암청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라는 설이었죠. 미국도 참 대단하네요. 그걸 밝혀내다니
발해 멸망 후 20년 후에 폭발했습니다.
미디어 약자분들을 위한 자막 감사드립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실을 배웠네요..
전적으로 백두산 화산 폭발로 멸망 했다고
믿고 있었는데...
문왕 대흠무가 일본에 보낸 친서에 '고려국왕'이라 칭하고 있으니 당이 지어준 발해라는 이름말고 중기고려시대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전기고려 : 장수왕 이후 고구려
중기고려 : 대조영 나라
후기고려 : 왕건 나라
후기 고려 때도 중기고려가 존재 하면 의문인데요. 그냥 왕씨 고려 대씨고려 등등 이런걸로 바꿔야할듯 또
@@내말이틀림 그것도 좋네요 고려라는 국명으로 정통성을 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수_김성민 고려라는 명칭이 예로부터 있었으나 광개토태왕비에 태왕을 '고려태왕'이라 칭하였으니 장수왕 시절부터 공식적이라 봐야겠지요. 공식적으로 말이죠.
발해가 3대 문왕 이후 6명의 왕이 교체가 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배권 싸움으로 죽었을 수도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통치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0대 선왕이 요동을 정벌한 것도 단합을 위해서 일수도 있고 대인선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거기다가 대인선 때는 백두산 대폭발 징후가 있었을 것이고 그 당시에는 이런 현상은 하늘이 노했다고 생각 것이니 이 때문에 요동 정벌로도 단합을 하려 했지만 단합이 아닌 배신의 용기를 줬거나 오랜 갈등 중에 단합이 깨졌을지도 모릅니다 3만군을 이 끌고 갔던 제상?이란 자가 후에 동란국을 세우는 걸 봐서는 권력 욕이 심했던 인물인 것 같습니다
멸망할땐 다 이유가 있었겠지요..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곧 그 이유와 원인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포기하진 않겠지만 많이 우울하고 안타깝네요
그러게요 문재인 윤석열 둘이 짝짜꿍하고 말아먹는중
잘 봤습니다.
행님 개멋있습니다 따봉입니다 !!
유목민족중심의 국가가 막 부흥했다가 갑자기 없어진 약사가 믾아요. 고구려 발해는 유목민의 국가였기에 부흥하고 확 무너지죠.
감사합니다♡
발해도 역사서를 만들기는 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멸망하는 과정에서 소실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되죠
계속 우리나라 영토였던 백제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서가 소실된 마당에 여진족의 영역에서 천년이면 모든 발해 자료가 없어지기 충분한 시간이죠
역사서가 나오면 뭐합니까? 발견돼자마자 위서네 거짖말이네 라고 해댈텐데요
삼국사기도 국보됀지 4~5년밬에 않됐어요 이해가 돼시나요? 본영상의 고려지도 보세요. 고려사. 북쪽의 경계는 공험진까지 라고 나오는데 저지도는. 일제감정기때 쓰다 쏘끼치가 그어논 지도를 그대로 쓰고 있네요
너무 재밌당...❤
요즘 나라 돌아가는 거 보면, 하루 아침에 망하는 게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촌철살인
군부독재가 검새독재로 탈 바꿈했습니다.
진짜 강의 전달력 최고
요즘 대조영 다시 보기로 재밌게 보는 중인데 발해사 재밌게 볼게요 감사합니다.
다른 역사유튜버인 청화수님이 제기한 의심사례로 '노상' 의 행보를 좀 추적해야한다고 봤어서 흥미가 좀 생겼습니다.
다시한번 발해를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청화수님도 재미있죠 ㅋ 요즘은 영상을 잘 안올리네요
@@고마해라-d7f아예 안오네요 이제
사실 역사적 사료가 많이 안남은데에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 영토에 나뉘어있는데다 왜정시대 거칠적 만주국 거치며 없어진것도 꽤 될거라봅니다
몇몇 역사학자들 기록보면 저 위 러시아 툰드라지역 인근에서도 발해고분이 나왔다던데..어이구 속터져 ㅎ
선생님 감사합니다 화이팅
정말 발해의 멸망이 없다거나 혹은 고구려의 패망이 없었고 그 힘의 균형이 유지되었다면 어떻게 또 현재의 역사가 흘러갔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통일을 이루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곤했었죠
별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하지 않았어도 . 몽골 , 여진에 의해 멸망했을겁니다. 사실상 발해는 극동지역의 척박한 땅이라 농경사회를 형성하기 매우 어려운 지형이였고 생각보다 산악지형이 많아 중국 , 한국 , 일본 역사처럼 왕과 지방이 연결되는 길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부족사회가 서로 고립되어 독자적인 노선이 많았을 겁니다. 물론 발해가 이런 여러 상황들을 극복하고 현대까지 발해라는 국가가 존속했다면 지금의 중국 동북공정과 같은 고구려 , 발해 역사를 두고 한국과 역사분쟁이 있었을것이고 발해 스스로 우리는 한반도와 다른민족 다른국가 다른체제다 라며 아마 한국와 외교적으로 일본보다 더 분쟁적인 관계가 지속되었을 겁니다.
땅만 넓다고 강대국이 아닙니다.그 넓은땅을 지키고 일궈낼 인구가 많아야져.
@@gggg33333ee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네요..
그럴려면 제일 큰 전제가 중국에 통일왕조가 나오면 안되요..
지금 현대사회에서도 아직 자연재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죠 자연의 힘은 위대한거 같습니다
백두산 화산 폭발은 20년 후에 발생한 것이라서 연관성은 희박하다고 하네요. 내부분열이 자연재해 보다 무서운 것 같습니다. 자연재해를 겪어도 튀르키예처럼 어떻게든 힘을 합쳐 극복해나갈 수 있지만 내부분열이 심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죠..
황쌤. 땡큐
백두산 폭발이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어도 징조 증상이 나타날 때 민심이나 내부가 흔들려서 단합이 되지 못한건 사실일거 같네요... 전근대 시대이다보니 자연재해에 더 민감했을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발해 멸망 후 20년이나 지나서 폭발한걸 보면 징조 증상도 관련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아니라고는 단정지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대폭발 사전징후의 지진이 27프로밖에 안된다지만 폭발 전 징후로의 대지진이 17-18년 전에도 발생한 기록이 있으니 가능성은있으나 기록적 문서가 없다보니 만약이라는 말밖에 못하는게 아쉬울뿐이죠
@@자이-e6c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말씀하신대로 사전징후의 지진이 27%밖에 안 되고, 실제로 화산이 폭발했던 고려도 그 폭발로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을 봐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이네요. 그래서 그 보다는 요사에 나오는 힘을 들이지 않고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심상치 않은 기록과 노상이라고 기록된 발해의 이완용이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발해가 중간에 대조영 동생의 후손이 왕위를 차지하면서 계파가 완전히 둘로 나뉘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발해 말기에 가서는 왕이 계속 바뀌었고 중앙 정권에서 밀려난 노상이 배신을 한 것 같아요. 내부 분열이 자연재해 보다도 무섭다는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꼭 들어보세요
이 이야기를 듣고 바로 들어 보시는걸 추천 합니다 ~~~!!!
이런 가수는 다시 안나올꺼에요
발해를 꿈꾸며
👍
피가되고 살이되는 싸라있는 역사이야기! 오늘도 잘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백제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멸망원인은 배신이라고 봐야죠.
화상터져서 망했다면 요나라가 오히려 그 지역에 안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화산폭발 알려진거보다는 별로 위력 없는거 같은데, 세계 여러 곳에서 터진후 상황보면...
아직 제대로 임자 못만나서 그런걸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멸망원인은 거란침략이고요 간접적인영향이 배신이죠
한국도 한국사 시간 좀 늘려요ㅜㅜ수학만 미친듯함ㅜ
학생들은 싫어요.. 시험쳐야하거든요ㅠ
사실 수학 그렇게 가르친다고 잘하는것도 아님 ㅋㅋㅋ
국사나 수학이나 강사가 누군지가 중요합니다
현필샘같은 교사가 어디든 있진 않습니다
@@박징9 중학교때 역사쌤이 참좋았는데 ㅎㅎ
수학해야죠. 수학이 우주 만물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인데요... 단순히 공식 외우고, 문제 푸는 학문이 아닙니다..........전 지금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다민족 제국이라는게 내부 결속력의 붕괴로 한순간에 멸망하는건 역사에서 흔한 일이었죠.
어디? 미국요? 로마제국?어디말씀 하시는지
흥망성쇠 한번이죠~ 거듭은 아닌듯 합니더~
발해 이으려했던 정안국과 홍요국 등의 이야기도 참 찾기어렵죠
발해도 고구려 에서 이어져온 국가라 다민족 국가였는데 지배층인 고구려 계통과 피지배계층인 말갈족과 여인족등과의 갈등도 심했읓거라 봅니다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강의한다고 자부하는 황현필입니다!
오늘도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대조영을 죽이려는 위웃 나라 왕들이 없애겠지요 대조영 황제 울 나라 젤 휼륭한 진심으로 백성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평등하게 여기는 분이죠 후손 분들 대대로 복받으시길 맘모아 기도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채널
내가 어렷을때도 이렇게 설명해주는
것이 있었다면 너무 좋앗을텐데
시대가 변하니 이렇게 보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지구과학적으로밝혀진 사실은 서기 900년대 백두산화산이 폭발했고. 이 화산폭발이 지난 2000년간 일어난 지구화산 폭발중 가장 컸다는것입니다,이폭발로인해 전지구적으로 극심한 기근이 들었다는것입니다. 최근 유럽에서 그당시 대기근의 원인을 규명하기위해 연구하다가 나온 결론입니다
최치원이 발해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은 이유는 발해 3대왕인 대흠무가 일본에 보낸 서신을 보면 알 수 있을듯. 대흠무는 일본에 보낸 서신에 "고려국왕 대흠무가"라고 자신을 고려, 즉 고구려의 왕이라고 자창함. 신라 조정으로서는 고구려를 멸망 시켰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왕성만 고씨에서 대씨로 바뀌어 고구려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듯..
황쌤 강의의 장점은 '명쾌함'...들으면 '딱' 정리가 됩니다
일단 발해는 명칭부터 수정을 좀 해야하지 않을까.....발해는 중국의 지역명이고 발해 스스로는 고려의 국왕이라고 하는 등 고려라고 불러야 할것 같은데... 물론 우리가 고려라고 부르는 나라와 구분을 해야하니 북고려 정도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황선생님...팬입니다.
오늘 헤어스탈 좋으십니다.^^
백두산 화산폭팔로 발해인들이 엄첨죽었다고 함 공포와 동요로 삶이 힘들어서 사실상 전쟁포기했음
발해멸망 후 20년 뒤라고ㅡㅡ
@sunglass-sunglias 난독인가 화산폭발이 발해 멸망 후 20년뒤에 터진거라고ㅜㅜ
국력은 땅만 넓다고 세지는건 아니기때문에 그 시절 발해의 정확한 호구수를 파악해야할듯.
발해 멸망에 대해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풀리지 않고 있지만, 발해가 급작스럽게 망조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거 같습니다. 거란의 침입이 결정적인 사건(고려 태조가 '우리와 같은 민족의 국가를 멸망시킨 야만족' 이라 부르며 화친 맺기를 거부하고 거란이 선물로 보내온 낙타를 다리 밑에 묶어 놓고 굶겨 죽였다 하죠)이긴 하겠으나, 거란이 발해를 침입해 갔을때 '많은 수의 발해인들이 상복을 입고 저항없이 스스로 나와서 항복했다' 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해 발해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편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백두산의 화산폭발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어찌되었든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내부적 요인으로 발해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었겠는가 생각됩니다. 어느 학자의 말에 의하면 10세기 지구에 소빙하기가 살짝 왔었다고 합니다. 발해 역시 이시기에 자연재해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결정적인 거란족의 침입으로 발해가 결국 멸망한게 되었던거 아닌가 합니다.
Бохай пал потому что в нём захватили власть корейцы и уничтожили хрупкое равновесие.
그 빙하기가 백두산 폭발로 인한 빙하기임....
@@문카아님 소빙하기가 8~9세기 소빙기론이있음
바이킹의 남하
당나라.신라의 몰락
마야 문명의쇠퇴등을 연결짓는 이론도있음
실제 통일신라시대 효공왕과 신덕왕때 음력 3~4월달에 서리가내렸다는 기록도있음
음력이니 4월~5월달에 서리가내렸다는거임
신라에서 4~5월달에 서리가내렸다면
훨씬 북쪽인 발해는 한파였을거임
정치.경제적으로 운신의폭이 적어질수밖에없고
백성들의 불만은 극에달했을수도있음
발해 인구 구성상 말갈족들이 대부분인데
발해 조정에대한 불만이 극에달한 상황에서
거란이 말갈족들을 포섭하고
침략했다면
큰 전쟁없이 무너질수도있음
여기서 주목해야될점은 방사능연대 측정기는 어디까지나 산술상의 계산이라는겁니다
오차가 분명히 있습니다
옛날에 이 분야에 대한 견해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근데 좀 의문이 드는 이유는
고구려 동천왕 고국원왕은 수도를 빼앗겨서 피난가고 나서 적군을 물리치고 물러가게해서 멸망하지않았다 고려 현종도 그랬고 공민왕도 선조 도 그랬는데 발해왕 대인선은 피난도 못가고 왜 가만히 있다가 전쟁 발발 13일만에 멸망했는지 알수가 없내
백두산 폭발전 수십년전부터 전조증상들로 엄청난 지진들이 있었다는 주변국 기록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백두산에 마그마방이 확장대면 전조증상들이 조금 있는데 주변국에서 관심을 기울입니다. 하물면 그옛날에는 국가 흥망에 큰역할로 다가왔을 거란건 자명합니다.
식민사관………….
백두산 폭팔까지는 아니더라도 폭팔 전조 현상인 지진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함...
그냥 발해 지배층만 쓸려나가서 멸망으로 보는거지만...
발해부흥운동이.....요나라 멸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라는 기록과
금나라가 요나라 점령 후 발해인에 대해 민족복속 행위를 했던 점...
즉 조선시대 말기 조선왕가만 일본에 항복하고 민중은 일본에 대해 항복을 아니해서
독립운동이 미친듯이 일어난거 처럼...
발해라는 나라는 고구려인부터 뿐만아니라 말갈이나 여진까지 시작부터가 다민족국가였던 나라였음 그런데 이런나라들의 제일문제점이 통합도 안될뿐더러 한번 통치 잘못하면 내부분열 시작되어서 돌이킬수 없는 상황까지와버림 아마 발해가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도 이런이유때문이라 생각함 백두산 폭발은 그냥 발해멸망의 트러거중에 하나일꺼고
마한=말갈=발해
946년에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 이미 땅이 흔들리고 소규모의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났다고 봐야죠. 활화산의 활동은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걸로 압니다. 발해의 쇠퇴원인에는 자연재해가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아마도 말을 기르고 기마병을 양성하는데 큰 제약이 있었을 겁니다.
백성은 먹고 사는 문제와 후손을 이어가는 것이 본능적 핵심이고 이것을 지켜 나가는 것이 나라인데,
이 두가지가 어려운 나라는 망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민생 어렵고 출산율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나라가 유지된다고 봅니다.
지금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 선택은 국민들이 윤석열 끌어 내리고 이재명 대표에게 권리를 주는 것입니다.
황현필 선생의 훌륭한 역사강의에 이런 댓글 올려 죄송합니다만 요즘 정부 하는 일 보면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습니다.
당시의 자연재해는 과학적으로 해석하는게 아니고 종교적으로 해석가능 했기에 민심이 동요하고 단합력이 약해질대로 약해지고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거기다 하필 요나라 전성기 초기라.
ㅠㅠ. 통일신라와의 관계는 동맹인지 적국인지
많은 자료가없어 궁금하네요.
나라는 만들기가 어렵지...멸망은 한순간...정예군 10만 대군이 있어도 멸망합니다.
당시 백두산이 분화해서 그로 인한 국력쇠퇴도 한 원인이었을거라는 견해도 있더군요.
그런데 그 설이 나온 이후에 과학적 연구가 계속 진행되서 백두산 폭발은 발해가 멸망된 후에 발생했다더군요. 고려 역사서에도 946년에 개성 하늘에 어마어마한 천둥 소리가 들렸다는 일치하는 기록도 나오고요. 그냥 가장 유력한건 고조선, 고구려, 백제 등이 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부분열과 그로 인해 발생한 배신이 컸던 것 같습니다. 요서에도 발해 내부의 배신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요.
근데 한 겨울에 전쟁을 한건 좀 이상하네요. 그것도 한참 북방에서.
화산폭발 멸망추측은 이미 오래전에 지질연대 측정으로 시기가 안맞아서 안맞는 설이다라고 결론이 났죠
발해만.. 이 성립되려면 저 지도로는 설명이 안되죠…
선조들이 역사서를 많이 남기지 않은게 아니라 많은 전쟁때문에 많이 불타서 없어졌죠.
강해진 거란의 기습 공격때문에 발해가 멸망했겠죠.
그 거란장수 비석이 발견된거보니.. 이미 발해와 거란(요)는 요동에서 밀고밀리는 전투가 수십차례였다고 나왔음. 거란이 요동이 아니라 부여성쪽으로 직공해서 상경성이 함락.. 발해수도가 고구려처럼 평양같은 한반도 내부에 있었으면 한방에 안망했음. 솔직히 고구려가 연남생 이 배신자가 국내성등 40개성이 당에 항복해서 비교적 쉽게 망함.
오늘역시 영상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