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 이천리 1942년 이해연 노래. 가사에 압록강 2000리. 북한 압록강은 700리. 진짜는 어디일까요? 거문도는 여수 섬이 아니고 중국 해남도 =하이난섬 이광수 김소월. 최남선 윤동주.김동환 등 유명 시인 독립군들 대부분 중국 대륙에서 태어남. ,초혼, 시는 나라가 멸망하여 한반도로 쫒겨오는 설움을 노래한시. 김소월의 ,새나라로, 시도 마찬가지. 1920년 중국에서 동아일보 창간 우리 영토는 5대양 6대주 라고 보도. 간도협약 무효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 제기 시나 신라 지나 차이나는 같은말? ㅡ 검 색
의자왕에 대한 정말 관심이 컸던지라 의자왕 관련 서적들은 다 읽어봤었는데 황현필 선생님이 의자왕에 대한 오해를 다 설명해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의자왕은 한강유역 수복이 우선순위였고 그래서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과 신라에 대적하려고 하였으나 고구려의 힘이 약해져가고 있었고 끝까지 나당에 대항하려했으나 예식진의 배신으로 포로로 잡혀가죠. 의자왕이 정말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사치와 향락을 일삼던 폭군이었다면 의자왕이 포로로 당나라에 끌려갈때 백성들이 다 나와서 눈물을 흘렸을까요? 삼국사기의 기록은 승자인 신라가 백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자왕에 대해 왜곡했디고 봅니다
임진 전쟁 병자 전쟁이 아니고 난으로 기록햇을까요? 전쟁과 난을 구분하면 역사조작을 알수잇음. 중국땅이 1800년대까지 전부 우리땅. 국력이 약해져서 영토가 줄어들었지만 1909년까지 간도지역(동북삼성.만주포함.연해주까지 공식적으로 우리땅) 이때 한반도를 지배하던 가짜 일본이(진짜 일본은 유럽에서 건너간 미국) 대한제국 군벌인 청나라에 넘겨줌. 그래서 100년만기인 2009년 과거 지도와 사료를 모아 국제사법 재펀소에 반환 접수. 재판만 열리면 국제법으로 남북한 땅. 2030년 되면 우리땅이 될거라고 봄. 간도협약 무효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 제기 시나 신라 지나 차이나는 같은말? ㅡ 검 색 인류언어의 뿌리는 우리말 사투리다 ㅡ 검 색
학생때부터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라는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말하면 대부분 선생들이 가르쳐준 내용인데 왜 너는 믿지 않느냐...라는 반응이였죠 ㅋㅋ 조금만 의심해보면 삼천명이라는 궁녀가 가능하지 않다는걸 알 수 있는데... 지금에라도 그 이야기가 밝혀지는거 같아 반가운 마음입니다.
황현필 선생님 정학원 역사적 진실을 알려 주셔셔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자왕에 대해서 향략과 색을 밝혔다고 알고 있는데 이 영상을 보고 의자왕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같의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도 벌거벋은 한국사를 보고 의자왕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유투브 영상을 보고 다시 한번 배우고 갑니다
신라가 다 지워서 거의 없어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 의 역사를 제대로 안써서 찾기도 힘들어요 무령왕릉과 비슷한 무덤은 진짜로 요서지방인가에서 나옵니다 진짜로 백제가 대륙진출을 햏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노무 역사계는 모든걸 한반도 안에넣은 일본이 건든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니 아무리 국력이 강해도 그들이 만든 고려지도상으로는 이게 요나라와 몽골과 대 전쟁을 하긴 어려워 안보임? 천리장성이 어디있음? 고려지도는 아주 잘못된거임 고려는 분면 요도믜 일부를 가지고 있었음 그래야 설명이 가능하지 그게 아니면 뭔 철령 이북이니 하는게나오는지 지도를 봐라 저거 남한 플러스 알파정도 아니냐 그럼 강원도가 철령이북이냐 그럼 그리가지 뭐하러 요동을 가냐
의자왕이란 군주는 포부와 야망이 넘쳤던 사람 같습니다. 태자 생활을 오래했고 효심이 깊으면서 형제들과의 우애가 깊었다고 하는데 이는 어머니쪽 집안이 약해서 꾹 참고 인내하며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며 왕이 되고 싶었던 것 같네요.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하는데 여기서말하는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 사택씨인 정실왕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뒤따라서 나오는 내용이 40여명을 추방했다는 내용인데, 그 사택씨 왕후가 죽자 왕후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면서 후환을 제거한 것은 물론 백제 권력의 중심을 사택씨에서 되찾아 온 것 같네요. 그리고 태자가 부여융에서 부여효로 바뀐 내용이 나오던데 이는 자신의 처가, 즉 외척세력을 견제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로인해서 나중에 부여융이 당나라의 장수가 되서 백제를 배신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것 같습니다. 아들의 배신, 예식진의 배신도 그렇고, 귀족들과의 갈등도 그렇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너무 무리하게 칼을 빼들어 몰락한 왕이 아닌가 싶네요. 태종 이방원과 비슷한 유형의 군주이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해서 배신을 당하고 처첨한 말로를 걸은 것 같습니다. 야망이 넘치고, 능력이 있었던 왕이지만 인복이 없었던 것인지 리더쉽의 한계인 것인지 아들과 신하에게 배신을 당해 몰락한 아쉬운 군주라 생각하네요.
저는 백제의자왕은 그 어던군주보다 도 현명하고 영특한 왕 였습니다 쳐음에 자기 반대파들 제거하고 성층과 흥수와 그리고 계백 신흥 같은 등용 해지만 의자욍은 왕귄강화 를 하여지만 신흥세력들이 강성해 지면 왕권강화 이였 되어서 성층과 흥수 같은 제거 한것이 의자왕의 큰 실책 였습니다 하지만 의자왕 은푹군이 안이에요 백제 백성을 사랑하는 현명성군 입니다
제 생각에 가야가 배출한 최고의 인재인 김유신이 김춘추의 신하가 아니라 의자왕의 신하였으면 의자왕의 개혁이 성공하고 역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을 것 같습니다. 김유신에 관한 정사와 야사를 모두 보면 뛰어난 첩보전의 1인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더군요. 김유신에게 포섭된 상좌평 임자는 물론이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의자왕이 믿은 무녀도 김유신이 첩자로 보낸 여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죠. 예식진도 김유신에 의해서 포섭된 사람일 수 있다는 설도 있고요. 하필 김유신이라는 당대 최고의 첩보전의 달인이 적국에 있어서 자신이 행했던 왕권 강화의 부작용인 귀족과의 갈등, 태자와의 갈등을 김유신이 이용해서 멸망을 당한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고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일단 고구려 시조의 이름부터 주몽에서 추모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네요. 중국 사서에는 전부 주몽이라 기록하고,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추모라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는 주몽 혹은 추모라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있고요. 그렇다면 여기서 고구려인들 스스로는 추모라 불렀고, 중국에서는 멸칭으로 주몽이라고 썼을 가능성을 우리는 왜 생각하지 못할까요? 지금도 우리나라와 중국간에는 나라 이름부터 지도자의 이름까지 다양한 멸칭이 존재합니다. 신나라의 왕망이 고구려를 하구려라고 부르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만 봐도 적국을 하대하는 멸칭은 그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또 후한서 고구려전에 구려 후 추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만약 그 추가 추모라면 당시에는 중국에서도 주몽이 아닌 추모 혹은 줄여서 추라고 불렀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역사서를 기록하면서 고구려의 시조를 비하하는 목적으로 주몽으로 고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네요. 아니 적어도 고구려인들 스스로가 추모라고 기록해 놨으면 추모라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면서 시조의 이름을 고구려인들의 기록이 아닌 중국인의 기록대로 주몽이라 부르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의자왕이 배신을 당하지 않고 왕권 강화를 이룬채 아들에게 바톤터치를 했으면 역사가 완전 바뀌었을 것 같아요. 의자왕은 이방원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태자도 중간에 바꿨던데 그 바뀐 태자가 세종대왕과 같은 뛰어난 인재였으니 바꾸지 않았을까요? 그 태자가 왕이 되었으면 분명히 백제를 강국으로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못한 것이 예식진과 폐태자 부여융 등의 배신 같아요.
@@user-mb1kt9eu5y 어떤 역사학자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식진이 배신만 안 했으면 충분히 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더군요. 당나라군의 식량이 바닥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배신한 예식진이 받은 직위가 이완용 같은 명예직도 아니고 좌위위대장군이라는 황제의 최측근인 매우 높은 벼슬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식진의 공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겠죠. 당시에 한신이나 장량에 비견되기도 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역사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에 박제된 삼천궁녀 ㅜㅜ 진짜 가사 쓴 분 백제 혐오가 심한거 같아요. 역사를 빛낸 위인들이라고 하면서 의자왕을 집어넣고, 사치 향락의 상징인 삼천궁녀라고 하고... 건국왕도 신라는 건국설화를 설명한 반면,백제는 이름만 언급하고 대충 넘기고 5성장군급의 계백과 신임소위급의 관창을 동급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이죠.
@호롤롤로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만,신라는 좀 뺐으면 좋겠네요.. 이건 나라를 위하기 보단 가문과 자기 자신의 영달에 더 가깝다 생각합니다. 삼국의 뛰어난 인물들 다수가 큰 뜻을 위해 달렸으나 이상하게 김유신과 김춘추는 가진 능력에 비해 뜻이 너무 작습니다. 그래서 참 별로에요.
@호롤롤로 동의합니다 신라김춘추 특히 김유신은 삼한멸통.이런것과는 다른 귀화한 가야계진골 가문의 부흥과 영달이 우선한 인물이었다 봅니다 삼한일통은 그럴듯한 대의명분인거고 사실은 우리가 하는 모든일들은 개인의 영달에서 시작 하지요 김춘추는 개인의 복수심.즉 대야성전투에서 딸인 고타소의 죽음 김유신은 귀화한 가야계진골 귀족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한 개인의 욕망의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 봅니다
실제로 예식진 후손이 자기 조상이 백제왕을 바쳤다라고 기록한 무덤이 발견되어 의자왕에 대한 모든 오해가 풀렸죠. 끝까지 항전한 군주를 삼천궁녀에 빠진 멍청한 왕으로 묘사한 한국역사학자들과 그걸 믿은 사람들은 반성해야합니다. 고구려가 백제를 못도와준게 여기에 있음.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미 멸망한 뒤.
승자의 기록이 어떻게 왜곡 될 수가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입니다. 개인적으로 신라라는 나라와 김춘추, 김유신에 대한 혐오심을 가지는 1인으로서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니 다시한번 신라라는 나라에 대한 혐오심과 빡침이 다시 피어 오르네요. 능력도 안되는 것들이 외세의 힘을 빌어 반의 반쪽짜리도 안되는 통일을 했으니... 의자왕의 바람대로 고구려, 백제가 연합을 해서 신라와 당에 맞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뭐... 역사에 if는 없다고 하지만 정말 아쉬울 따름입니다.
해동증자,, ~ 사마천의 사기에 이르기를 바다는 하, 즉 바다는 강이다. 하였으니 황하강을 이야기 하는 것이며, 과거에는 태행산맥의 오른쪽을 산동이라 하였으니 개봉부터 황하 하류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백제의 수도를 옥토의 중심에서 보아야 하고, 태산의 왼쪽을 유심히 찾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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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을 기억하면 할수록 지리산을 썼던 이병주 작가님께서 남긴 명언이 생각납니다.
승자의 기록은 햇빛을 받아 역사가 되지만, 패자의 기록은 달빛을 받아 신화와 전설이 된다.
황현필 선생의 명 강의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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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도 원숭이가 열대과일이? ㅡ 검 색
뗏목 이천리
1942년 이해연 노래.
가사에 압록강 2000리.
북한 압록강은 700리.
진짜는 어디일까요?
거문도는 여수 섬이 아니고 중국 해남도 =하이난섬
이광수 김소월. 최남선 윤동주.김동환 등 유명 시인 독립군들 대부분
중국 대륙에서 태어남.
,초혼, 시는
나라가 멸망하여
한반도로 쫒겨오는 설움을 노래한시.
김소월의 ,새나라로, 시도 마찬가지.
1920년 중국에서 동아일보 창간
우리 영토는 5대양 6대주 라고 보도.
간도협약 무효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 제기 시나 신라 지나 차이나는 같은말? ㅡ 검 색
캬 명언이네
ㅊ^
의자왕에 대한 정말 관심이 컸던지라 의자왕 관련 서적들은 다 읽어봤었는데 황현필 선생님이 의자왕에 대한 오해를 다 설명해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의자왕은 한강유역 수복이 우선순위였고 그래서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과 신라에 대적하려고 하였으나 고구려의 힘이 약해져가고 있었고 끝까지 나당에 대항하려했으나 예식진의 배신으로 포로로 잡혀가죠.
의자왕이 정말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사치와 향락을 일삼던 폭군이었다면 의자왕이 포로로 당나라에 끌려갈때 백성들이 다 나와서 눈물을 흘렸을까요? 삼국사기의 기록은 승자인 신라가 백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자왕에 대해 왜곡했디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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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주의 노예 근성이 몸에 배인 원인은 ㅡ 검 색
지금이나 별 다르지않은 상황이었군?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신라왕족직계출신이라서 당연히 신라에 매우 좋게 표현할 수 밖에요
신채호가 이미 저렇게 사실을 잘 알고 기록해 놨는데도 기어이 묘비문이 나올 때까지 의자왕을 왜곡해온 우리 역사학계..
신채호가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는 역적이라고 일갈./
국민들이 신경써야 할 일은 아래
여야 의원 120명 합류 정치개혁 모임 결성 일본처럼 권력 대물림? ㅡ 검 색
친일 🐒🐒🐒 척결
학자라는것들이 사대주의와 친일 사관에 쩌들어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역사학계 특히 강단사학은 그 뿌리부터가 친일로 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반드시 없애야할 적폐중 하나 입니다.
골수 친일파 후손들의 가면 ㅡ 검 색
의자왕을 보면서 국력이 강해야한다고 느꼈습니다 힘이 약하면 진실은 왜곡되니까요 오늘도 뜻깊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먼개소리임 의자왕때 국력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했음
임진 전쟁 병자 전쟁이 아니고
난으로 기록햇을까요?
전쟁과 난을 구분하면 역사조작을 알수잇음.
중국땅이 1800년대까지 전부 우리땅.
국력이 약해져서 영토가 줄어들었지만
1909년까지 간도지역(동북삼성.만주포함.연해주까지 공식적으로 우리땅)
이때 한반도를 지배하던 가짜 일본이(진짜 일본은 유럽에서 건너간 미국)
대한제국 군벌인 청나라에 넘겨줌.
그래서 100년만기인 2009년 과거 지도와 사료를 모아
국제사법 재펀소에 반환 접수.
재판만 열리면 국제법으로 남북한 땅.
2030년 되면 우리땅이 될거라고 봄.
간도협약 무효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 제기 시나 신라 지나 차이나는 같은말? ㅡ 검 색
인류언어의 뿌리는 우리말 사투리다 ㅡ 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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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삼촌-j3i 당나라보다 약해서 당, 신라에게 다굴맞고 망했잖슴 국력은 결국 상대적인거지
@@user-lIlIlllllIIll 국력이 쎄질레면 어떻게 해야됨?
학생때부터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라는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말하면 대부분 선생들이 가르쳐준 내용인데 왜 너는 믿지 않느냐...라는 반응이였죠 ㅋㅋ
조금만 의심해보면 삼천명이라는 궁녀가 가능하지 않다는걸 알 수 있는데...
지금에라도 그 이야기가 밝혀지는거 같아 반가운 마음입니다.
삼천명이나 떨어져 죽기엔 백마강이 너무 작지요ㅎ
백마강은 백마가 부르면서 행군하는곳이지 삼천궁녀말이 안되죠 그냥 군장도 수없이 완전군장도 좀해봤는데 못죽어요 만약 백강이 백마강이면 낙화암에서 몸을던져 쌓이고 쌓여서 일백명도 무리다 싶슴다 백마강에서 수중훈련던가 뭐있었는데 삼천궁녀 사실이라면 말이 안됨다 수심도 안되고 쌓이고 쌓여 높이가 얼마나 될텐데 백마강은 절대 안됨다 해군아니지만 헤엄쳐봤어요 고로 안되요 제생각에 100명도 안되요 또삼천궁녀가 살아야 될 궁궐 숙소 말이 안됨다 거의 따지기가 다구리의 대명사 초딩 고학년 많이 모았다 ufc 에멜리아넨코 표도르 항복할래 3000명의 초딩엉아들에게 맞을래?!똑같은 말입니다 원샷투킬도 될거고 커봤자 표도르 허릿충에 올텐데 이거 거의 무한수×무한수 가앝슴다 답이 없슴다 😮😅
이제서야 의자왕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올바른 역사강의에 감사드립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인물들의 재평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 그니까 일본 것들이 신 라 인 만! 보면 환장 하는 이유! 지 들 그나마 사람? 처럼 살게 해준 백제인들 등진 이유! 그것이...궁굼하다! 아무도 말안해,!
정답이오.
황현필 선생님 정학원 역사적 진실을 알려 주셔셔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자왕에 대해서
향략과 색을 밝혔다고 알고 있는데 이 영상을 보고 의자왕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같의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도 벌거벋은 한국사를 보고 의자왕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유투브 영상을
보고 다시 한번 배우고 갑니다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설멍하신다는 황현필 사학자님 확실히 인정 합니다ㆍ❤❤❤
력사를 가장 력쏴답게 시청하는 구독자입니다.
황쌤은 벌써 봄이 왔네요 ㅎㅎ
오늘도 황쌤 강의 들으며 잼나게 시작 합니다.
백제(의자왕) 역사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황현필 선생님이 감수하고 재밌는 드라마 나오면 좋을듯 ㅋㅋ
신라가 다 지워서 거의 없어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 의 역사를 제대로 안써서 찾기도 힘들어요 무령왕릉과 비슷한 무덤은 진짜로 요서지방인가에서 나옵니다 진짜로 백제가 대륙진출을 햏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노무 역사계는 모든걸 한반도 안에넣은 일본이 건든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니
아무리 국력이 강해도 그들이 만든 고려지도상으로는 이게 요나라와 몽골과 대 전쟁을 하긴 어려워 안보임? 천리장성이 어디있음? 고려지도는 아주 잘못된거임 고려는 분면 요도믜 일부를 가지고 있었음 그래야 설명이 가능하지 그게 아니면 뭔 철령 이북이니 하는게나오는지 지도를 봐라 저거 남한 플러스 알파정도 아니냐 그럼 강원도가 철령이북이냐 그럼 그리가지 뭐하러 요동을 가냐
알고나니 진짜 억울한사람
의자왕이란 군주는 포부와 야망이 넘쳤던 사람 같습니다. 태자 생활을 오래했고 효심이 깊으면서 형제들과의 우애가 깊었다고 하는데 이는 어머니쪽 집안이 약해서 꾹 참고 인내하며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며 왕이 되고 싶었던 것 같네요.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하는데 여기서말하는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 사택씨인 정실왕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뒤따라서 나오는 내용이 40여명을 추방했다는 내용인데, 그 사택씨 왕후가 죽자 왕후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면서 후환을 제거한 것은 물론 백제 권력의 중심을 사택씨에서 되찾아 온 것 같네요. 그리고 태자가 부여융에서 부여효로 바뀐 내용이 나오던데 이는 자신의 처가, 즉 외척세력을 견제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로인해서 나중에 부여융이 당나라의 장수가 되서 백제를 배신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것 같습니다. 아들의 배신, 예식진의 배신도 그렇고, 귀족들과의 갈등도 그렇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너무 무리하게 칼을 빼들어 몰락한 왕이 아닌가 싶네요. 태종 이방원과 비슷한 유형의 군주이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해서 배신을 당하고 처첨한 말로를 걸은 것 같습니다. 야망이 넘치고, 능력이 있었던 왕이지만 인복이 없었던 것인지 리더쉽의 한계인 것인지 아들과 신하에게 배신을 당해 몰락한 아쉬운 군주라 생각하네요.
참모진 부재가 크겟죠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진짜~ 선생님 강의 선택 부터 센스까지 시대를 reading and leading
감사합니다
의자왕의 실존 인물이 효와 가족애 나라를 생각하는 군주 였다니~백제가 멸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간 후손이 한국에 들어와 조상의 제를 올리는 모습과.지금의 현정권 실정은 너무 대비되는 상황이네요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몰랐던 역사를 또한번 배우네요 응원합니다 ✌ ~
배우기만 하세요?
감사합니다.
부여서씨 직장공파28대 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여서씨는 의자왕의 셋째아들이 당나라가서 벼슬을 얻고 성을 받았습니다.
의자왕을 영화로 제조명하면 좋겠네요..
지금까지 왜곡된 역사 선생님덕분에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쉽게 강의 해주시니 귀에 쏙쏙들어옵니다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들었습니다 선생님 언제나 응원합니다 ^^
관심갖지 않으면 잘못된 정보가 사실이 되어버려 그렇게 또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바른 역사를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저는 백제의자왕은 그 어던군주보다
도 현명하고 영특한 왕 였습니다
쳐음에 자기 반대파들 제거하고
성층과 흥수와 그리고 계백 신흥
같은 등용 해지만 의자욍은 왕귄강화
를 하여지만 신흥세력들이 강성해
지면 왕권강화 이였 되어서 성층과
흥수 같은 제거 한것이 의자왕의
큰 실책 였습니다 하지만 의자왕
은푹군이 안이에요 백제 백성을
사랑하는 현명성군 입니다
의자왕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되는 시간입니다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우리 역사학계에 많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익한 강의 감사 드립니다.
저두 낙화암 가봤는데 생각보다 좁아서 의외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진실은 후대에 밝혀지나봐요~
항상 응원합니다
의자왕 말년에 사치와 향락에 빠졋다는게 왜곡인 것을 새롭게 알았네요. 유익한 영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입맛대로 해석되죠. 전 예전부터 의자왕 삼천궁녀 얘기 진실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더라구요. 잘못된 역사교육의 폐해임..........
그러니까요
저도 다른거 다 그만두고
삼천궁녀란게 이해가 안갔는데
역사왜곡으로 인한 폐해가
참 개탄스럽네요
역사왜곡이 어찌 이것뿐이게습니까
ㅠㅜ
언제나 소중하게 듣고 있습니다~
황현필 선생님은 마치 의자왕 같습니다. 멋저요..
영상 잘 봤습니다... 의자왕은 정말 재평가 받아야할 군주입니다
정말 현세대에 들어와서 의자왕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 같아서 참 다행입니다
속이 다 후련합니다. 감사합니다~!!!
경주에도 원숭이가 열대과일이? ㅡ 검 색
역사서는 승리자가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일뿐..
감사합니다!!!!
20여년 전에 노량진에서 재수할 때 국사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길 백제와 의자왕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폄하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근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씀들 하셨죠. 그게 이걸 말씀하셨던건가 봅니다.
유익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역사를역사답게 응원드립니다.
안타까운 역사의 한조각입니다
몇해전 백제의 흔적을 찾아 일본을 여행한적이 잇습니다
이젠 코로나도 풀렷으니 일본과 백제의 관계. 그리고 그 흔적들에 대해서도 썰을 풀어주셧으면 합니다_()_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존경해요
유능한 군주였으나 인재풀의 한계로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버린 비운의 명군...
제 생각에 가야가 배출한 최고의 인재인 김유신이 김춘추의 신하가 아니라 의자왕의 신하였으면 의자왕의 개혁이 성공하고 역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을 것 같습니다. 김유신에 관한 정사와 야사를 모두 보면 뛰어난 첩보전의 1인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더군요. 김유신에게 포섭된 상좌평 임자는 물론이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의자왕이 믿은 무녀도 김유신이 첩자로 보낸 여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죠. 예식진도 김유신에 의해서 포섭된 사람일 수 있다는 설도 있고요. 하필 김유신이라는 당대 최고의 첩보전의 달인이 적국에 있어서 자신이 행했던 왕권 강화의 부작용인 귀족과의 갈등, 태자와의 갈등을 김유신이 이용해서 멸망을 당한 것 같습니다.
황쌤 존경합니다 강의넘 좋아요 ~
제가 알고있는 진정한 국사 선생님입니다~^^
우리 역사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고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일단 고구려 시조의 이름부터 주몽에서 추모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네요. 중국 사서에는 전부 주몽이라 기록하고,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추모라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는 주몽 혹은 추모라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있고요. 그렇다면 여기서 고구려인들 스스로는 추모라 불렀고, 중국에서는 멸칭으로 주몽이라고 썼을 가능성을 우리는 왜 생각하지 못할까요? 지금도 우리나라와 중국간에는 나라 이름부터 지도자의 이름까지 다양한 멸칭이 존재합니다. 신나라의 왕망이 고구려를 하구려라고 부르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만 봐도 적국을 하대하는 멸칭은 그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또 후한서 고구려전에 구려 후 추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만약 그 추가 추모라면 당시에는 중국에서도 주몽이 아닌 추모 혹은 줄여서 추라고 불렀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역사서를 기록하면서 고구려의 시조를 비하하는 목적으로 주몽으로 고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네요. 아니 적어도 고구려인들 스스로가 추모라고 기록해 놨으면 추모라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면서 시조의 이름을 고구려인들의 기록이 아닌 중국인의 기록대로 주몽이라 부르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몽골도 멸칭 몽고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
그럴거면 광개토대왕릉비는 부숴서 없애고 추모라는 말도 삼국사기에 안적었겠지요?
@@부릉부릉-u8w 광개토대왕릉비를 부술 기회가 없었겠죠. 발해가 바로 건국되서 당나라한테는 기회가 없었으니깐요
@@조민수-x5o 그래도 일천년의 공백이 남는데 이걸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어찌 설명하시려고요
@@조민수-x5o 유리왕의 다른 이름도 유류, 누리 , 여해, 여달 등 다양하게 표기되었고 이는 비단 고구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자왕과 두아들들..그리고 예식진과 흑치상지..이렇게 망할 백제가 아니였것만..광산김의 후손이지만 이런거 볼때면 two김's이 너무나 싫으다.. ..황교수님 강의 매번 잘 듣고있습니다..늘 감사한 마음입니다..감기조심하시고 정진해주세요ㅎㅎ
늘 잘보고갑니다 건강하세요
황현필 선생님 감사합니다
2023년 연일 뉴스들을 보며 비통해 하던 차에 이 강의를 보니, 신라의 역사가 결국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기회주의의 역사로 연결되는 듯....
좋은 정보 바른역사강의 감사합니다 ❤❤❤❤
역사는 승자에 의해 다시써지니까요ㅠ
매일매일보고 또봅니다 선생님 영상이요 너무 멋지십니다 감사하고요
황선생님 강의는 빼놀수 없죠 고맙습니다
올바른 역사강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패망은 항상 배신자에 의해서 이뤄지는군요
예식진의 묘비가 발견되지 못했다면 누명이 풀리지 못 할 뻔 했네요
의자왕이 배신을 당하지 않고 왕권 강화를 이룬채 아들에게 바톤터치를 했으면 역사가 완전 바뀌었을 것 같아요. 의자왕은 이방원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태자도 중간에 바꿨던데 그 바뀐 태자가 세종대왕과 같은 뛰어난 인재였으니 바꾸지 않았을까요? 그 태자가 왕이 되었으면 분명히 백제를 강국으로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못한 것이 예식진과 폐태자 부여융 등의 배신 같아요.
@@user-mb1kt9eu5y 어떤 역사학자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식진이 배신만 안 했으면 충분히 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더군요. 당나라군의 식량이 바닥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배신한 예식진이 받은 직위가 이완용 같은 명예직도 아니고 좌위위대장군이라는 황제의 최측근인 매우 높은 벼슬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식진의 공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겠죠. 당시에 한신이나 장량에 비견되기도 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조민수-x5o왜를 빨리 불렀다면 막았을 수도 계백 장군이 졌으면 사실상 힘들었음 당나라 신라를 막기가 힘듬
한국사 왜곡 바로잡기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당장 지난 치하포 사건 영상 업로드 이후 나무위키 내용 엄청 바뀌었습니다 ㅋㅋㅋㅋ
@@HTLM519
안중근은 메이지 천황을 존경했다 윤봉길 선서문 내용 ㅡ 검 색
@@가짜왕의원들천국 찾아보니까 청나라는 조선의 제후국이고 미국은 고종이 다스리던 땅이고 일루미나티가 어쩌고 이딴 글이 뜨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짜왕의원들천국 네다음 이토환생
@@강이식-t2k
아키히토 무령왕 후손 ㅡ 검 색
내 고향 남쪽 부여...
노을진 백마강에 나룻배 둥실둥실
늠름한 계백상은 옛고향 북쪽 대신
신라의 동쪽 말없이 지켜보고 있네...
역사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에 박제된 삼천궁녀 ㅜㅜ
진짜 가사 쓴 분 백제 혐오가 심한거 같아요.
역사를 빛낸 위인들이라고 하면서 의자왕을 집어넣고, 사치 향락의 상징인 삼천궁녀라고 하고...
건국왕도 신라는 건국설화를 설명한 반면,백제는 이름만 언급하고 대충 넘기고
5성장군급의 계백과 신임소위급의 관창을 동급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이죠.
의자왕은 백제왕들 중에서 왕권 강화를 꿈꿨던 왕이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시대적으로 너무 안좋은 시점에 무리하게 왕권 강화를 하려 시도하고 또 나당동맹을 분쇄 하지 못해서 국내정치적 분열과 외세의 양면공격으로 멸망을 당한거 아닌가 싶네요~~
의자왕의 한을 풀어주어서 감사하네요 !
641년 무왕이 의자왕의 동생을 왕으로 올리려다 발생한 내전을 의자왕이 진압하고 동생은 열도로 쫒겨났으나 653년 동생과 화해하고 해동증자로 불리었다...는 썰이 있네요. 내전 이유는 무왕의 천도파 vs 반대파를 등에 업은 의자왕. 결국 무왕의 꿈은 열도에서 실현.
신라의 조미곤 .백제의 임자. 요녀.금화가 백제로서 백제가 망했다. 조선상고사.
저희 아이들이 신라계 김씨여서 저번달에 경주 다녀왔어요. 조만간 공주도 꼭 다녀오려구요😊😊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역사는 다각도로 접근해야하는 것같아요. 의자왕에 대해 잘못 알고있는것도 많았군요
어릴 때는 김유신과 김춘추의 전기를 읽으며 자라났는데..
커서 역사를 배우고 좀 더 알아가니..
이들만큼 대의가 아닌 자기 가문과 신변을 위해서만 살았던
소탐대실한 사람들이 없더라구요.
특히 김춘추.. 할많하않...
@호롤롤로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만,신라는 좀 뺐으면 좋겠네요.. 이건 나라를 위하기 보단 가문과 자기 자신의 영달에 더 가깝다 생각합니다.
삼국의 뛰어난 인물들 다수가 큰 뜻을 위해 달렸으나 이상하게 김유신과 김춘추는 가진 능력에 비해 뜻이 너무 작습니다. 그래서 참 별로에요.
@호롤롤로
동의합니다
신라김춘추 특히 김유신은 삼한멸통.이런것과는 다른 귀화한 가야계진골 가문의 부흥과 영달이 우선한 인물이었다 봅니다
삼한일통은 그럴듯한 대의명분인거고 사실은 우리가 하는 모든일들은 개인의 영달에서 시작 하지요
김춘추는 개인의 복수심.즉 대야성전투에서 딸인 고타소의 죽음
김유신은 귀화한 가야계진골 귀족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한 개인의 욕망의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 봅니다
641년 의자태자 왕으로등극할당시
에 신라에는 김유신만 있서지만
백제 여러 명장들 이었습니다
특히 윤층은 신라의 김유신의
보금 가는 명장 이었습니다
계백은 지략과 군샤들이 사랑을
받는 장군이자 김유신을 능가
하는 백제의 충신 이자 휼용한
장군 이었습니다
😂 늘 잘보고갑니다
우리의 사대외교는 신라의 김춘추때부터였지 싶어요.
조선 때 대명외교로 정점을 찍었고요. 지금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어 사대외교가 지속되고 있죠.
저도 최근에 예식진과 의자왕의 진실을 알고 너무 놀랐습니다. 왜 의자왕이 말년에 갑자기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정사를 포기했는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승자의 역사왜곡이었다니...고대사로 갈수록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꽤 있을 것 같네요!
현필샘 감사합니다
또 배웁니다.
진짜 영웅은 요동성주임...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당의 100만 대군을 홀로 막은게 요동성주임...
요동방어전은 수나라 100만대군 막은거구 요동성주 고사계?? 당나라 20 만 대군을 안시성에서 막은게 양만춘장군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삼천궁녀에 대해서 부여서씨 기록을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당시 의자왕이 돌아가실때 그다음왕을 섬기라했지만
의자왕을 모시던 궁녀들이 자신들은 한명의 왕만 섬긴다고하여 바위에서 떨어지는모습이 연꽃같다하여 삼천궁녀라고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래도 백제 멸망기때 왕이였기에 가짜뉴스가 많이 돌기도 하겠죠.
왜곡된 역사인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면 결국은 교과서에 내용이 바뀌어야하겠죠.
예식진 이란인물 예전에 역사다큐에서도 다뤘던거 본거 같아요
참..욕이 아까운..
삼천궁녀라니?
들을 때 할 말이 없었다.
어찌.... 역사의 왜곡은
꼭 지적해서 바로 잡아야
할것 같아요.
김상님의 삼한사의 재조명1,2,3 추천합니다
실제로 예식진 후손이 자기 조상이 백제왕을 바쳤다라고 기록한 무덤이 발견되어 의자왕에 대한 모든 오해가 풀렸죠. 끝까지 항전한 군주를 삼천궁녀에 빠진 멍청한 왕으로 묘사한 한국역사학자들과 그걸 믿은 사람들은 반성해야합니다. 고구려가 백제를 못도와준게 여기에 있음.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미 멸망한 뒤.
승자의 기록이 어떻게 왜곡 될 수가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입니다.
개인적으로 신라라는 나라와 김춘추, 김유신에 대한 혐오심을 가지는 1인으로서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니 다시한번 신라라는 나라에 대한 혐오심과 빡침이 다시 피어 오르네요.
능력도 안되는 것들이 외세의 힘을 빌어 반의 반쪽짜리도 안되는 통일을 했으니...
의자왕의 바람대로 고구려, 백제가 연합을 해서 신라와 당에 맞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뭐... 역사에 if는 없다고 하지만 정말 아쉬울 따름입니다.
3000 궁녀가 기거할려면 자금성 정도는 돼야 되겠죠. 의식주를 해결할려면 어마 어마한 예산이 들건데
그때 무슨 경제력으로 유지하나요...
굿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라지만 기록자들의 잘못된것은 감추기고 합리화하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에, 앞뒤 맞지않고, 꼬이는 내용들이 많기에 후손들의 역할은 이것을 깊히 연구하여 진실을 알게되고, 미래의 문제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것이 역사학자들의 역할입니다.
학창시절 배웠던 내용들이 새빨간 거짓말이네요...
이래서 역사는 왜곡이 되어선 안됩니다ㅜㅜ
거짓이 진실이라고 믿게되니까요..
백번 양보해서 삼천명이 뛰었다고 해도 성왕의 시신을 가지고 신라가 벌인 일이나 그동안의 원한관계를 생각했을때 나라가 신라에게 망했으니 앞으로 치욕을 당하느니 죽겠다고 왕족, 귀족을 비롯한 고위층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나마 이해할거같네요 ㄷㄷ
해동증자,, ~ 사마천의 사기에 이르기를 바다는 하, 즉 바다는 강이다. 하였으니 황하강을 이야기 하는 것이며, 과거에는 태행산맥의 오른쪽을 산동이라 하였으니
개봉부터 황하 하류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백제의 수도를 옥토의 중심에서 보아야 하고, 태산의 왼쪽을 유심히 찾아 보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대단합니다
역사를 빛낸 100명인가 그 노래 없애버려야 합니다. 삼천궁녀 의자왕….
자동😅
예나지금이나 배신자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네...
삼천궁녀 의자왕~~ 이라는 노래를 외우다 보니 의자왕=삼천궁녀
조선사 후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현대사 쪽에 관심을 갖다 보니 고대사는 좀 이질적이다는 느낌이라 큰 감흥이 없어 멀리했습니다ㅠ
고대사도 공부해 보겠습니다ㅠ
김부식이 왜곡시킨 것임 .
백제관련내용은 너무 악의부정적이고 자신의 출생지인 신라내용은 너무 찬양긍정일색임 .
이건 김부식을 너무 억까하는 것이죠. 승리한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서 왜곡이 됐겠죠.
@@조민수-x5o 김부식도 한몫함 지 조상이 김유신이고 당시 싸우고잇던애가 묘청인데 걔는 고구려 옹호해서 김부식은 신라를 더 부각시킬려고햇지
김부식의 농단이죠 무인시대를연 장본인이나 마찬가지 그아들이 대장군 수염태운일로 맞자 왕을 협박해 대장군을 징계함 그걸보면 자식과 아들이 됨됨이를봐 역사를 자기편한대로 서술함 ᆢ
잔짜 박수입니다! 짝짝짝..!!!!
의자왕 셋째아들 서륭 자손인 부여서씨 입니다
우연히 보게됐는데 감사합니다
의자왕이 너무 강력했던 군주였기에 궁지에 몰린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인 거지.. 생존을 위해서 .... 결국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고 패배한 강력한 군주는 타락한 폐군이였다고 쓰인다.
전북 익산에 가면 무왕묘 옆에 선화공주 묘가 있습니다(의자왕 고집으로 선화공주와 가까이 묘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것이 거짓이라니
아이들도 걱정입니다
첫댓글은 첨이네요
삼국사기 의자왕 본기에
멸망 직전
659년에도 신라를 공격한 기록이 있죠.
이래서 한국사가 어렵죠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왜곡하는것 같습니다.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선생님 영화 영웅 리뷰 부탁드립니다 너무 감명 깊게 봐서 선생님 설명으로 더 느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