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전 겨울에 다녀왔습니다. 공주에서 무령왕릉 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해남까지 전역 기념으로 도보 일주 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친구들과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음료와 요기거리 사주고 공주 유명한 순대국밥집 가서 밥이라더 먹고 가라고 밥값 챙겨준 일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 친구들 서울로 돌아와서 잘 다녀왔다고 연락을 해주더군요.
반면 조작의 증거. 1. 높은 언덕위에 일반 무덩과 함께 있어 왕릉의 위치가 아니댜. 게다가 규모도 작은 편이다. 2. 입구가 왕릉답지 않게 대충 벽돌로 막혀 있어 도굴이 의심된다. 3. 처음 열었을 때 이미 도굴의 흔적이 보이나 유물이 무사한편이라 무시했다. 4. 지석이 가운데 구멍이 뚫린 전형적인 공시장 석재다. 왕릉 지석으로 쓰기에는 이상하다. 5. 토지를 땅 주인에게 매입했다. 왕이? 우리 풍습이 아니다... 여러 증거들이 조작이 의심되는 정황이고 왜,일본과 백제가 서로 친밀한 국가였으니 일본서기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은 굳이 부정할 것 까진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더 많은 사료들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고구려 것도요
북한 고분들 발굴이 무척 요원하네요🤔
공주 다녀왔습니다 9월말에 갔는데 백제 문화제 기간 이죠 공주 부여 익산에서 열립니다 공산성 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보고 왔네요 무령왕릉을 지키는 진묘수도 보고 왔고 삼성 이건희 회장님이 공주박물관에 기증한 것도 보고왔습니다
오 공주박물관도 알차지요😄
두 해 전 겨울에 다녀왔습니다. 공주에서 무령왕릉 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해남까지 전역 기념으로 도보 일주 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친구들과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음료와 요기거리 사주고 공주 유명한 순대국밥집 가서 밥이라더 먹고 가라고 밥값 챙겨준 일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 친구들 서울로 돌아와서 잘 다녀왔다고 연락을 해주더군요.
오 뜻깊은 일이네요😮 그러고보니 공주에 맛집도 많...
영상 잘 봤습니다.
장묘에서 '지석'과 '묘지석'은
어떤 차이 인지요?
혼용해서쓰는듯합니다만 묘지석은 현대에들어 외부에배치하는 것을의미하는듯합니다😮
@사적돌 비석(외부)과 묘지석(내부)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묘지석과 지석에서 쓰는 '지' 한자가 달라
질문 남겼습니다.
대박인게 일본 서기에 기록 된 출생일과
일치 한다는 것이, 큰 파장 까지는 아닐 수 있어도 엄청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하는데
저도 지금 알았고 많이 알려져 않은 것 같네요 ?? 일반인은 몰라도 학계 내 에서는 큰 파장이 있었을거 같은데..
그래서 일본서기를 백제인이썼다 백제사서를 참조했다 얘기가나오지요, 가야가 백제와 가까웠다면 그의견이 맞는거구요🤔
신기하네요😮
글씨가 가지는 힘이네요😌
잘
보구
가내유...^^
항상 감사드립니다😄
중국에는 지석(흑치상지, 연남생 등)이 많이 나오는데 우리는 거의 없는 것은 전란이 많아서 인가요? 일본서기도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네요.
신라도 그렇고 지석이 꽤 나오는 편인데요, 도굴이 워낙심한데다,
결정적으로 글씨를 새기지 않고 염료로 쓴 경우가 많습니다.. 공기와 접촉하는순간😞
백제 무덤은 머,,,무령왕릉이 특별한 경우도 싹 다 도굴되서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는 편이죠. 고구려는 북한, 중국때문에 접근도 안되고. 그나마 신라 고분들은 차후 발굴들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수학여행때 저기를 코스로 댕겨왓네여.
필수 방문지지요😄
공산성이 왕궁이라면 너무 작지 않나요?
급한 피난에 사용할수 있는 몇안되는 성이었지요, 그와중에 백제 특유의 도성 기준을 지킨것이 흥미롭습니다. 방위하려고 성들도 많이 건설했고
고구려도 쫓아와서 인근에 성 세우지요.
물론 475~538 단기간 머물다 사비에 도시를 건설하여 천도합니다😌
윗사람한테 잘보일려고 문화재를 갈아엎다는거를 보니 충격이기는했음
경직되어있던 시절이네요 😞
다른 무덤들도 이러했다는건데!
일본의 악행이 얼마나 컸는지
이루 말할수없이 많이 가져갔지요😞
지석이 낙서같은 느낌. 다른 지석들도 저 정도 퀄리티인 지 궁금.
삼국시대 왕름 지석이 없다죠.
삼국사기에선 무령왕이 동성왕의 아들로 나오는데 무령왕릉 지석에선 개로왕 혹은 곤지의아들로 나오죠
동시대의 기록이니 지석에 무게를 더 주고 싶네요😮
@@사적돌 지석의 기록이 정확하죠
지석의 내용이 아니라 일본서기 내용 아닌가요?
@정우형-h5x 아 맞네요 착각했네요
한국 고대사에서 최고의발견이지만 발굴사면에선 역대 최악이었죠.. 하루만에 도굴하듯이 빗자루로 발굴..
지금이었다면 무령왕릉 발굴에만 최소 3년이었을겁니다.
심지어 유물을 밟고 다녔다고 하지요😞
@@사적돌 밟는건 기본.. 서울로 올라가니 대통령이 분지르려고했다고 ㅎㅎ
왜?@@백제근초고왕-o3t
@@shdj1hshs1shshs1 궁금해서요
@@shdj1hshs1shshs1 궁금해서요
최악의 발굴
이제 그런일 없어야겠지요😌
이것 조차도 위조라 우기는 사람이 있고
날짜가 일본 서기랑 같다고
왜정 때 위조한거라 우기고 있는 상태
참 씁쓸합니다
왜 양나라에서 준 관작 영동대장군을 사용했느냐 딴지를 걸기도 합니다
역사적 객관화도 꼭 필요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의심하고 철저히 맥락을 따져봐야 한답니다.
삼국사기 화랑세기 이런거 읽어보라 한문병기한 해석본 읽어라
왜 엉터리인지 알게 될것
@@mjK-q5g 이미 원문으로 다 읽었고
역사 전공이라 발굴 현장도 가 보고
명문 와편도 다 보고
삼국사기와 대조도 해보고
중국 사서 열전도 다 봤으니
걱정마세요
@@mjK-q5g헛소리 좀 작작 하시지!
어디서 그럴듯하게 헛소리 해대는 애들한테
귀동냥 한게 고작인거 같은데 옛 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ㅎㅎ
삼국사기를 부정하는 자들이 저 지석하나로 ko
기록과 문화유산도 거부하시니 안타깝습니다😌
반면 조작의 증거. 1. 높은 언덕위에 일반 무덩과 함께 있어 왕릉의 위치가 아니댜. 게다가 규모도 작은 편이다. 2. 입구가 왕릉답지 않게 대충 벽돌로 막혀 있어 도굴이 의심된다. 3. 처음 열었을 때 이미 도굴의 흔적이 보이나 유물이 무사한편이라 무시했다. 4. 지석이 가운데 구멍이 뚫린 전형적인 공시장 석재다. 왕릉 지석으로 쓰기에는 이상하다. 5. 토지를 땅 주인에게 매입했다. 왕이? 우리 풍습이 아니다... 여러 증거들이 조작이 의심되는 정황이고 왜,일본과 백제가 서로 친밀한 국가였으니 일본서기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은 굳이 부정할 것 까진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겜논ㅋㅋㅋㅋㅋ아가멤논 ㅎㅎ
시청 감사합니다😌
아. 국보
명문의 힘!
'이거 진짜 은인가?' 하며 왕비 팔찌를 꾸욱 눌렀던 일본인 다카키 마사오.. 심지어 그 팔찌도 유물 수습하는 와중에 전 박물관장이었던 모 양반이 자기 맘대로 빼다가 대통령 보여준다고 바로 서울 올라와서 보여준 것 ㅋㅋ 개판도 이런 개판이 어딨냐고.
시청 감사드립니다😌
일본 앞잡이 도요다다이쥬 창씨개명하고 천황폐하만세 부른 악질 친일파
너희들도 모두 의심스럽다.
일본사기가 맞지않은 기록이 많은데 어찌 무열왕의 태어난날이 딱맞는지...
증거로 삶으려고 누가 만든거지
ㅋㅋㅋ
@@mjK-q5g 증거를 삶아요?
무령왕릉 지석,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모두루총 명문, 북한산 순수비 등등 삼국대륙설을 부정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고고학 자료가 있음에도 여전히 '지명'만을 끼워맞추기만 하며 대륙설 주장하는 한심한 족속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고지할 수 밖에 없다...
고고학적 자료가 너무많아서 도저히 부정하기가불가능하지요🤔
고고학적 자료 뿐만 아니라 문헌을 통해서도 백제의 본토가 한반도 서부 지역임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책보고는 사기꾼입니다.
충청.호남이 백제면 반일선동 호남은 일본인하고 같은 혈육이되니까 발짝할 수 밖에 ㅋ
@@huijungkim-b9c 언어학적, 유전학적으로 만주인과 일본인이 한국인과 가장 가깝습니다.
반면, 중국 본토인들은 한국인과 가깝지 않습니다.
그냥 세뇌된 좀비들입니다!ㅎㅎ
탄소동위원소 년대측정부터 하고나면 믿지... 왜 안하는건데?
오 무령왕릉은 이미 시료가오염됐지요 근래 발굴할때는 하고있습니다 유해가남은경우 유전자분석도합니다😌
가짜란 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