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삼국지 영상은 예전에 올린 영상들 두세편씩 복사 붙이기 한거에요. 즉, 역사돋보기 채널에서 영상제작은 잠시 쉬어가면서 업로드는 해야하니 예전영상을 묶어서 다시 만든거죠. 예전에 우리나라 후삼국 영상 통합본 전례도 있고요. 물론 우려먹기이니 안좋게 보실 수도 있지만, 전 그냥 좋아서 일종의 변호 댓글 남깁니다.
유표가 우유부단해서 관도대전때 조조 뒷치기로 중원공략 못했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인데, 어찌보면 유표는 형주에 아무 기반이 없던 외지인이었고 형주호족들한테 옹립된 듯한 상황이었는데 다가, 조조의 남방정벌때 형주호족들이 조조한테 아무 저항없이 항복한거 보면, 애초에 유표가 중원공략이라는 승부수를 띄우고 싶어도 형주에서 할거하고 안정을 추구하던 실권자들이었던 형주호족들이 소극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임. 유표가 유비를 받아준 것도, 형주호족들은 조조와 대척점에 있던 유비때문에 형주가 혼란해질까봐 심하게 반대했지만 이런 형주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발버둥으로 유비를 받아줬고, 유기를 강하에 주둔하게 한거도 유기를 보호함과 동시에 강하의 군세를 유표의 영향력 하에 두려고 했던 포석이라고 봄.
참고로 유표가 관도대전때 조조 뒷치기를 못한 건 두 가지 이유였다. 1 손권의 존재. 유표가 조조를 뒷치기하러 가면 손권은 유표를 뒷치기하러 간다. 애초에 황조가 손견을 암살한 일로 손씨 가문은 유표를 이를 갈며 증오하고 있었고 유표는 그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길 저경까지 갔음. 실제로도 황조가 손견을 암살했다는 걸 알게 된 유표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손책의 분노를 살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환계가 손견의 영구를 찾으러 오자 아무 댓가 없이 그냥 내줌. 손견은 당대 최강의 장수로 손책 역시 그 아비를 닮아 엄청난 싸움꾼이며 오호대장 전부 덤벼도 손책한테 패배할 정도로 손책은 무예가 어마어마하게 강했음. 손책이 죽었어도 손책이 구축해 놓은 손씨 가문의 군대는 엄청나게 막강했고 결국 나중에 풍칙이 황조를 잡아다가 구타로 살해한 뒤 목을 베어버렸음. 2 채모의 존재. 일찌기 채모는 조조와 거의 친형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친분을 자랑하는 사이였음. 유표가 조조를 뒷치기하러 간다고 하면 이런 채모가 가만히 있었을까? 아마 유표를 암살해서라도 막았을 것이다. 채모는 유표가 조조에게 진격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막았던 것이다. 조조와 채모의 친분이 엄청 깊었다는 일면은 유표가 사망한 이후에 나오는데 채모는 문빙, 괴량, 괴월 등 유표의 부하 대부분을 이끌고 조조에게 귀순하고 문빙이 위나라 장수로 맹활약한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조조와 채모의 깊은 친분에 대한 증거임.
유표가 유비를 받아준 것도, 형주호족들은 조조와 대척점에 있던 유비때문에 형주가 혼란해질까봐 심하게 반대했지만 이건 옳은 거고 그 중 가장 심하게 반대한 인물은 채모다. 왜냐 하면 채모는 조조와 친형제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분이 너무 깊은데 조조와 대척점에 있던 유비? "조조와 대척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비와 채모가 불구대천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옼케발 이게맞음..가후가 언제 틀린말 한적 있던가.. 다들 무력으로 휩쓸어라 하고 적무시 하고 박장대소 치고 있을때 진지하게 가후가 한마디 하고 정욱도 같은말하는데.. 조조 반응이 미지끈하자 가후 는 발을 빼버리고 정욱은 재차 간언합니다만.. 조조는 닥돌... 조조의 한계가 느껴지는 대목이며 , 적벽패배후 한중을 차지할때도 유엽, 사마의 가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손권과 익양대치 중일때 지금 성도를 공격하면 함락할수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말을 안들음..유엽이 재차 간언하나.. 이때 사마의는 가후가 그랬듯 발을뺍니다...
유비는 지극히 삼국지의 득을 본 인물임 솔직히 진짜 승리자는 조조지 현세에 조조가 야비하다 잔인하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 난세에 내가 안죽이면 내가 죽는데 안잔인할수있을까? 조조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으며 진짜 현세에 조조가 사업가 였다면 정말 대단한 재벌이 되었을거다 물론 정치가로도 큰 이름을 남겼을터
주유의 촉정벌은 말이안되는 시나리오임 보급도 못하고 가운데 유비가 지먹을땅을 그대로 먹히는걸볼리가없지
저 당시엔 유비랑 손권이 혈맹상태고 조조라는 큰 적 앞에 유비랑 손권이 다툴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가능했음
아무렴 주유가 너보다 멍청했을까 ㅋㅋ
서주 대효도
팩트삼국지라고해서 정사인줄 알았는데 연의이야기네요
팩트와 연의가 섞였어요
사실 최근까지 유비가 고우영 작가님 말대로 쪼다인 줄 았았습니다. ㅋㅋ
자들끼리 치고박고싸우고 만주족 몽고족에게 수백년간 식민지에다가 다른나라와 전쟁에서 별로 이겨본적없는 한족 무협역사가 뭐가그리 중요하다고.
중요치도 않은 무협역사는 뭐하러 보러 왔음??ㅋㅋ
주유가 적벽대전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당신을 믿습니다.
항상 재미있게보고있어요
우리야 역사의 뒷페이지를 아니까 유비를 견제하는게 맞다하지만
당시에 오나라는 확장성없는 호족중심의 나라에서 유비를 방파제겸 제후와같이 부리면서 써먹는 정도로 생각했을듯. 내가 당시 손권, 주유였어도 그정도로 생각했을것같은데
이점에서 인물알아보는 조조가 진짜 대단한거
너무 영상 올리는데 집중하시다보니 이전과 다르게 최근 영상들은 타영상 참고한 감이 커보이고 깊이가 이전에 비해 낮아보여집니다
영상 올려야하는 수익성도 이해하지만 한번쯤 내실다잡는것도 권하고 싶네요
이거 삼국지 영상은 예전에 올린 영상들 두세편씩 복사 붙이기 한거에요. 즉, 역사돋보기 채널에서 영상제작은 잠시 쉬어가면서 업로드는 해야하니 예전영상을 묶어서 다시 만든거죠. 예전에 우리나라 후삼국 영상 통합본 전례도 있고요. 물론 우려먹기이니 안좋게 보실 수도 있지만, 전 그냥 좋아서 일종의 변호 댓글 남깁니다.
연의랑 정사랑 너무 뒤죽박죽...
전염병… 하니까 코로나가 생각나는…
삼국지관해서만 해줫음좋긋네요 잘봣습니다
와... 출근길 듣고있는데 너무 재밌어요~~
유표가 우유부단해서 관도대전때 조조 뒷치기로 중원공략 못했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인데,
어찌보면 유표는 형주에 아무 기반이 없던 외지인이었고 형주호족들한테 옹립된 듯한 상황이었는데 다가, 조조의 남방정벌때 형주호족들이 조조한테 아무 저항없이 항복한거 보면,
애초에 유표가 중원공략이라는 승부수를 띄우고 싶어도 형주에서 할거하고 안정을 추구하던 실권자들이었던 형주호족들이 소극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임.
유표가 유비를 받아준 것도, 형주호족들은 조조와 대척점에 있던 유비때문에 형주가 혼란해질까봐 심하게 반대했지만 이런 형주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발버둥으로 유비를 받아줬고, 유기를 강하에 주둔하게 한거도 유기를 보호함과 동시에 강하의 군세를 유표의 영향력 하에 두려고 했던 포석이라고 봄.
너무 우유부단해서 형주자사 치소가 원래 무릉인데 지멋대로 양양으로 옮기고 손견이 동탁을 토벌하러 간 사이에 빈집을 털었으며 동탁이 죽자 칭제를 해서 경나라 황제가 된 거였구나.
이게정답
덕분에 그 양양이 원나라로부터 몇년동안 항쟁할수있는 최고의 요새가되죠
참고로 유표가 관도대전때 조조 뒷치기를 못한 건 두 가지 이유였다.
1 손권의 존재. 유표가 조조를 뒷치기하러 가면 손권은 유표를 뒷치기하러 간다. 애초에 황조가 손견을 암살한 일로 손씨 가문은 유표를 이를 갈며 증오하고 있었고 유표는 그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길 저경까지 갔음. 실제로도 황조가 손견을 암살했다는 걸 알게 된 유표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손책의 분노를 살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환계가 손견의 영구를 찾으러 오자 아무 댓가 없이 그냥 내줌. 손견은 당대 최강의 장수로 손책 역시 그 아비를 닮아 엄청난 싸움꾼이며 오호대장 전부 덤벼도 손책한테 패배할 정도로 손책은 무예가 어마어마하게 강했음. 손책이 죽었어도 손책이 구축해 놓은 손씨 가문의 군대는 엄청나게 막강했고 결국 나중에 풍칙이 황조를 잡아다가 구타로 살해한 뒤 목을 베어버렸음.
2 채모의 존재. 일찌기 채모는 조조와 거의 친형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친분을 자랑하는 사이였음. 유표가 조조를 뒷치기하러 간다고 하면 이런 채모가 가만히 있었을까? 아마 유표를 암살해서라도 막았을 것이다. 채모는 유표가 조조에게 진격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막았던 것이다. 조조와 채모의 친분이 엄청 깊었다는 일면은 유표가 사망한 이후에 나오는데 채모는 문빙, 괴량, 괴월 등 유표의 부하 대부분을 이끌고 조조에게 귀순하고 문빙이 위나라 장수로 맹활약한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조조와 채모의 깊은 친분에 대한 증거임.
유표가 유비를 받아준 것도, 형주호족들은 조조와 대척점에 있던 유비때문에 형주가 혼란해질까봐 심하게 반대했지만
이건 옳은 거고 그 중 가장 심하게 반대한 인물은 채모다. 왜냐 하면 채모는 조조와 친형제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분이 너무 깊은데 조조와 대척점에 있던 유비? "조조와 대척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비와 채모가 불구대천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다 아는척이지 망해라 한국
다만 서주의 유민이 형주에 많았다는 점에는 박수
중국 뻥
가후 말대로 형주 존버 했으면 천하통일
충분히 근거 있다고 봄.
탁고대신 장소가 주화파 최선임이었으니...
@@옼케발 이게맞음..가후가 언제 틀린말 한적 있던가.. 다들 무력으로 휩쓸어라 하고 적무시 하고 박장대소 치고 있을때 진지하게 가후가 한마디 하고 정욱도 같은말하는데..
조조 반응이 미지끈하자 가후 는 발을 빼버리고 정욱은 재차 간언합니다만..
조조는 닥돌... 조조의 한계가 느껴지는 대목이며 , 적벽패배후 한중을 차지할때도
유엽, 사마의 가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손권과 익양대치 중일때 지금 성도를 공격하면 함락할수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말을 안들음..유엽이 재차 간언하나.. 이때 사마의는 가후가 그랬듯 발을뺍니다...
@@개망함-t1p 가후 곽가는 진짜 저평가된거같아요 재평가해야할듯해요 조인도그렇고
@@조남일-k6i 조인은 진짜 나관중이 사람 죽였다봐도 무방함
다른건 몰라도 사람보는 눈은 정확했던 유비가 비록 자신의 아들이었던 유선이 탐탁치 않아보인건 확실한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유비가 그저 제갈량이 대신 황제의 자리에 서달라고 한것에 그냥 한번 떠 본것아니냐고 반박하지만 이건 진심인것 같다
유비는 지극히 삼국지의 득을 본 인물임 솔직히 진짜 승리자는 조조지 현세에 조조가 야비하다 잔인하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 난세에 내가 안죽이면 내가 죽는데 안잔인할수있을까? 조조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으며 진짜 현세에 조조가 사업가 였다면 정말 대단한 재벌이 되었을거다 물론 정치가로도 큰 이름을 남겼을터
서주학살?????? 유부녀들 냠냠 ㅋㅋ 야비하고 잔인한것도 맞는데 뭘 ㅋㅋ 능력있어서 성공했으니 포장받는거지 ㅋㅋ 그것까지 미화시킬려고함 ㅋㅋ
맞는 말이긴 한데 서주대학살 하나로 모든 업적 인물됨 다 깎아먹을 만한 초초초병크임.그거만 아니었어도...
@@푸른이리-n1h +원소군 생매장
아저씨, 정사는 제갈량이 오나라에 가지도 않았어요, 팩트라고 하지말고 현실적은 추론 삼국지라하세요
공부를 더 해라, 조운의 무쌍은 역사무근, 사실무근이다.
시끄러워서 못 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