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이후에는 사실상 구분이 무의미해진게, 임란 이전에는 조선이 날병기를 경시하고 활은 선비들의 덕목이라 할 정도로 높게 쳐서 사실상 한참동안 날병기의 발전이 없었음. 특히 환도는 활 쏘는데 거추장스럽다고 50~60cm 정도까지 길이가 줄어들었다가, 임란때 일본인들이 들고 온 우치가타나, 오오타치 같은 긴 칼들이랑 리치싸움 자체가 안되는걸 알자 극한의 효율을 중시하던 민족답게 바로 흡수해서 일본의 오오타치를 채용한 '쌍수도' 명나라의 언월도를 채용한 '월도' 같은 장병기들을 정식 채용하고 군사훈련을 개편함. 그리고 일본군한테 칼을 노획하거나 검신만 떼오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용도 많이 했고 길었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날병기 자체의 발달이 잘 되어있던 일본이라 당시의 선진기술이었던 일본의 날병기 제작기술도 많이 채용했다고 들음. 해서 양식만을 가지고 임란 이후의 도를 구분하는건 어렵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영상에서도 나왔듯 검집에 달린 띠돈의 유무임. 기본적으로 검과 활을 수시로 스왑해서 쓰던 조선군이라 직접 쏴보면 알겠지만 검집에 검이 들어가 있을 때에는 검자루와 활이 자꾸만 부딪혀서 활을 쏘기가 힘듬. 그래서 띠돈의 결합부를 회전하게 만들어서 활을 쏠 때에는 검자루 방향을 등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도록 만듦. 우리것을 보존하자는 마음은 당연히 기껍고 훌륭하지만 무조건 우리나라는 고유하고 일본은 무조건 별로고 하는 자세는 아니다싶음. 무예도보통지에도 왜검류라고 하여 일본의 검술을 정규 훈련에 편성시켜놓았음. 그만큼 당시의 일본 검술자체는 많이 발전되어 있었고, 효율을 최고로 여기던 조선에게 사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음. 그러니 우리것을 사랑한다면 정확한 사실부터 먼저 알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임.
영상에서 소개하는 일본도는 우치카타나에 해당합니다. 일본은 전쟁이 잦은 만큼 그 무기체계가 복잡하고 한가지로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타치의 경우 기마무기인 관계로 우치카타나보다 곡선이 더 굽어 있으며 검신이 아래로 가게하여 벨트에 차고 다닙니다. 곡도의 굽이는 보병용이냐 기마용이냐에 차이가 있지 나라마다 특색이 있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손잡이 부분은 설명이 조금 틀렸네요ㅇㅇ 조선 환도나 일본도나 마감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일본도는 그 마감방법이 환도에 비해 훨씬 다양했습니다. 환도처럼 끈을 감지 않고 어피로만 말아서 마감하는 경우도 흔했고, 옻칠위에 금이나 은으로 상감하는 방식이나, 홈을파고 그안에 맞춰서 어피를 잘라 붙이는 방식등 환도에 비해 그 다양성이 어마어마 했죠. 뭣보다 일본도는 손잡이를 금이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굳이 손잡이 부분을 비교하려면 길이로 비교 했어야 정확한 내용이었을 것 입니다. 조선인들은 활쏘는대 방해된다는 이유로 손잡이가 짧은 칼을 선호했고, 임란 직후 환도가 길어지는 현상을 보였을때도 손잡이 만큼은 크게 변화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임란직후 조선인들은 일본도에 매우 큰 인상을 받고 적극적으로 수입해썼지만 손잡이 만큼은 꼭 잘라서 사용 했습니다.
일본도 코등이 구멍에 꽂는건 머리손질 도구가 아니라 검신과 손잡이를 분리할때 사용하는 도구를 끼워넣습니다. 검신과 손잡이를 나무못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그 나무못을 쳐서 빼내기 위해 비녀처럼 생긴 도구를 이용합니다. 조선 환도도 일본도의 영향을 받으면서 사용할 일도 없는 코등이 구멍을 그대로 따라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래봐야 장식품! 실전에서는 어땠을까요? 아무리 날이 잘서고 열처리를 잘 해도 싸움에서 코등이 싸움(서로 칼을 맞대고 힘겨루기)이라도 하거나 몇번 서로 맞부딪히면 날 다빠집니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날이 좀 무뎌도 두께가 좀 있고 글래디우스나 서양기사도 처럼 생긴 칼이 좋은거에요. 우리나라 박물관에 가보면 자세히 보면 칼이 처음보다 가늘고 숮돌에 많이 갈았던 자국이 역력합니다. 전투때마다 날이 망가지면 그때마다 갈아서 날을 세웠던거죠. 만약 정성들여 제작한 일본도를 실전에서 쓸까요? (미쳤냐? 이게 얼마짜린데. 날 빠지면 그거 수선하는데 얼마나 힘든데) 조선도는 적당히 실전에서 부담없이 쓰는 실용적인 칼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쓰던 왜검도 지금처럼 고급지게 만든게 아니었습니다. 지금어 일본도는 장군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실제 사용해도 하위병사들처럼 막쓰는 칼은 아닌거죠. 실제 일본의 일도류(칼을 두자루로 싸우는게 아니라 칼 한자루로 익히는 검술)의 최고 검도사범이 한 말이 있습니다. "실전에서 칼을 맞부딪힐때는 칼을 거꾸로 맞부딪혔습니다. 그래서 검의 칼등에 흉터가 많았죠. 그렇게 싸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칼날을 사용해서 일격에 베는거죠.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반 병사들의 칼은 단단한 단순한 단조칼이었습니다"
일단 딴건 그렇다 쳐도 코등이 싸움은 진검에는 없는 형태입니다 죽도 검도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생긴거라 유술기가 제외 되고 죽도를 사용하면서 서로 얽힌경우에도 오직 검으로 해결해야 하니 생긴거죠 그리고 영상에 나온 일본도는 우치카타나로 하급 도보 무사들이 실전에서 사용된 도검입니다 그리고 도검은 실전용-장식용 이렇게 나뉘고 고위층을 위한 도검은 장식성이 강하지만(주로 타치에서 보여지듯)도검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기본적으로 실전성을 염두에 두죠 실전용 도검에 장식을 붙이는 거죠 x대 명검 이러면서 대대로 전해지는 물건들이라면 님 말씀이 맞지만 절대 다수의 일본도는 실전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습니다
윗 분 말씀이 맞습니다 오죽하면 임란 당시 조선군도 일본도를 고평가 할 정도였습니다 전후 조정에서는 김체건을 필두로 한 무인들을 일본으로 보내 왜검의 시스템을 들여왔으니 이 말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중 근세의 재련기술은 상당히 급이 낮을 수 밖에 없지만, 그 당시에 조선 환도나 일본도나 철의 품질은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체계적인 검술 시스템과 검 규격의 차이로 조선군이 단병접전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차피 칼날이 목숨보다 소중할리도 없기 때문에 일본검술이나 조선검술이나 똑같이 칼을 흘리고, 엮거나 날을 맞대는 기술이 존재합니다 선생님도 무인이시라면 잠시 국가감정은 내려놓으시고 국적은 다르더라도, 같은 무도가들에게 존중을 표하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1미터 내외 라면 큰 문제가 없어요 띠돈 패용법은 허리 아래에 도검이 위치하는 방식이라 어지간한 도검류는 다 사용할만합니다 길이가 120센티가 넘는 롱소드들도 잘만 뽑고 그랬어요 다만 띠돈은 덜렁거림이 심해서 도검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일반적인 소드벨트보다 더 불편하다고 합니다 검도 배울때 고증에 맞는 띠돈은 아니지만 대충 흉내내서 사용해보니 길어질 수록 덜렁임이 심하더라구요 ㅋㅋㅋㅋ
근데 일본도도 갑옷을 입으면 칼날이 땅을 바라보게 해서 착용하기도 합니다데 일본도도 갑옷을 입으면 칼날이 땅을 바라보게 해서 착용하기도 합니다 좀더 정확하겐 고전적인 사무라이 계층이 사용한 타치가 칼날이 땅을 바라보게 해서 착용하고 일반 보병들이 사용한 칼- 우치카타나는 그냥 보병들이 사용했던 도검이라 허리띠에 그냥 찔러넣었고 이에 따라 칼날이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죠 게다가 일본도라 하면 대충 떠오르는 이미지가 헤이안 시대의 타치 부터 무로마치 막무 시대의 우치카타나 까지 여서 ㅋㅋㅋㅋㅋㅋ
일본은 철기술이 한반도와 중국에 한참 뒤쳐져 일본산 철은 매우 약해 금방 부러져서 사무라이들은 항상 일본도를 3,4개씩 차고다녔었던게 기록에도 나오는 팩트임. 단단하고 묵직해서 잘 부러지지도 않는 튼튼한 조선검이 우월한건 팩트임. 단지 세계적으로 더 알려져있는게 일본도일 뿐이지.
@@leedonghyeon7781 철 기술이 뒤쳐진 게 아니라 철의 품질이 안 좋았던 거임 그래서 발전한게 제철 기술이고 그렇게 가공된 철은 중국과 한국이랑 비슷한 품질이었음. 그리고 칼을 만드는 기술 자체가 일본이 한,중 보다 뛰어났기에 칼의 성능은 일본이 월등이 높았음. 칼을 여러 개 들고 다닌 거는 칼의 용도가 달랐음. 장도,중도(와키자시),소도 를 들고 다니는데 싸우는 장소에 따라 골라서 씀.
위 영상은 일반론적 관점에서 말해서 그럽니다 보통의 환도류는 어피 마감 내지는 옻칠 나무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일본이나 중국의 방법이 참조된 도검류도 있다는 거죠 말씀하신 거대한 이순신장군님의 검은 명나라 일본 조선의 양식이 가미된 도검입니다 매우 국제적 도검이죠 ㅋㅋㅋ
칼만 봐도 전투방식의 차이를 알수있지 일본은 창과 칼이주무기 칼은 양손으로 내리치기때문에 손잡이가길고 칼날도길음 조선군은 활이 주무기 보조무기로 환도가있고 병과에 따라 팽배수라 불리는 중장보병이 칼과 방패로 또는 활과 길이 60cm 의 환도로 무장 또는 창으로 무장등 다양한 병과로분류 띠돈 착용시 칼의 발도방식은 한손으로 칼집을 잡고 한손으로 칼손잡이를 잡아뒤에서 빼는 방식 북방민족이 이런식의 발도 하는데우리도 그들과 비슷한 방식을 씀 조선초기만해도 이런 군제가 살아있어세조는 1만7천의 군사를 동원해 여진족을 토벌해 4군6진을 완전히 우리영토로 편입했는데이런 조선이 후대에 가서는 유교의 허세와명나라만 찾다 나라가 개차반된꼴
일본도와 한국의 검은 딱히 다른점이 얼마 없습니다 검의 옵션마다 검은 단른 맛이되지요 현실에서는 코등이와 손잡이 등 여러가지를 바꾸어서 전투 상황에 맞게 바꾸어서 사용 함니다 그리고 역사를 아주 잘 뒤지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일본이 신라에게 와서 검 만드는 법, 검 다루는 법을 배워습니다.] 그리고 저는 검도 6년차 임니다
검도요? 검도 5년차인데 검도도 약점 있습니다. 그리고 종조국인 일본조차도, 현대검도하면 고류했던분들이 비웃으십니다. 검도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하진 않죠. 공격이 전부 치명적이니까요. 어떤부분에서 고류했던분들이 비웃으시냐면, 칼이란게, 생존에의해 여러기술이 만들어졌는데. 검도는 그 여러기술을 삭제시킨후에 스포츠화 했기 때문입니다. 검에 무슨 높은단계가 있니 없니 하는건 의미없는게 총이면 끝나기때문입니다. 한국의 검도에서도 북진일도류 카타 하면, 알아보지 못하는게 그 증거입니다. 현대검도가 어디에서왔는지도 모르는 이가 태반인데, 검도가 진정 무도이겠습니까?
@@제국전기 지가 뭘 쓴지도 모르나? 기억 안나면 다시 보던가. 국보로 지정해야 마땅하다며.? 선물받아서 장식용으로 집에 걸어둔걸 국보로 지정하냐? 멍청한 놈아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 들고 나갔던 검이면 충분히 국보가 될 수도 있지. 장식용이다. 멍청한 놈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가면 이순신 장군 전투에서 쓰던 지휘용검 따로 있다. 게다가 장수들 검이 대장장이 한테 선물 받은거? 대가리에 총맞았나? 넌 돈주고 산것도 선물받았다고 하냐? 거기다 조선에서 도검은 국가 대장간에서 만들어 지급하는 군수품이다.
우리는 북방 기마민족 입니다 조선에 와서 이모양 이꼴이 됬지만 고려때만 해도 적어도 규슈 까지는 직접 영향권에 두고 통치 했습니다 고려사에도 나오며 규슈에 고려 유물도 나옵니다 따지면 고려 유물만 나오는게 아니지요 신라유물도 나오며 당연히 신라 경순왕이 신하를 자처하고 고려에 흡수 됬으니 신라의 기반들을 모조리 고려가 흡수
임진왜란때 왜구들 칼솜씨때문에 충격먹어서 전쟁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 박살내고 새로 자리에 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에 칼선생들 보내달라고 요청까지 해서 실제로 왔습니다 이게 실제 역사입니다.. 물론 활솜씨는 한국이 한중일중 최고였습니다 이것도 물론 역사가 보증하는사실이죠 하지만 인정하고 갈건 인정해야 합니다 칼 하나만큼은 쟤들이 나았습니다
일본은 철 생산 가공 기술이 한반도와 중국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서 일본도는 약하고 잘 부러지기로 유명했고 전투하러 가는 사무라이들은 항상 3-4개의 일본도를 소지했던게 기록에도 나오는 팩트임 너무 잘 부러지니까. 그래서 비교하자면 우직하고 튼튼한 조선도가 우월한건 사실임. 단지 세계적으로 더 잘 알려진게 일본도일뿐.
반은 맞고 반은 틀린말이네요. 일본도는 접쇠로 만듭니다. 이론상 접쇠 공법은 저질재료로도 준수한 소재를 만들 수 있는 꽤 괜찮은 공법입니다. 먼 옛날 초강법이 널리 전파되기전엔 중국이던 한국이던 일본이던 다 접쇠로 철을 제련 했습니다. 다만 접쇠의 가장 큰 문제는 품질이 들쭉 날쭉 하다는 것이죠ㅇㅇ 초강법 전래 이후 중국이나 한국이 접쇠를 안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에 기인합니다. 다만 일본은 철광석이 나질않는 곳이라 초강법을 적용할수가 없었고, 접쇠를 할수밖에 없었죠... 이론상으로는 단조로 두드려 만든 칼이나 접쇠로 접어 만든 칼이나 강도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만, 접쇠는 접어 붙인 단면이 제대로 붙어야 이론상의 강도가 나옵니다. 만약 접은면이 제대로 붙질 않아서 미세한 균열이라도 생기면 강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수없이 두드려 접은 단면이 제대로 붙었는지 확인하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만든 물건을 잘라서 단면을 확인해 보는 것 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애써 만든 물건을 버리는게 되니... 접쇠가 이론적으로는 강도가 나온다 할지라도 그 이론에 근접한 품질을 뽑는건 또 다른 이야기이며,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만든 물건을 부셔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접합이 되었는지 알수 없기에 접쇠공법은 만드는 장인의 손빨과 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 하게됩니다. 일본도의 품질은 전적으로 만드는 장인의 경험에 달렸다고 봐도 틀린말은 아니었다는 것 이죠. 그렇기에 일본도는 품질이 매우 들쭉날쭉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새로 만든칼을 바로 쓰진 않고 다다미나 대나무를 계속해서 베어보며 품질을 확인했고 심지어 죄인을 참수하거나 시체를 토막내며 칼의 강도를 시험했습니다. 거기서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와야 전쟁터에 갖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무라이가 3-4자루의 칼을 찼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 무근입니다. 당시 사무라이의 장비들은 하나같이 무거웠습니다. 갑옷인 요로이만 해도 몇십킬로를 넘기는 중장비이며, 카부토라 불린 투구는 그 특유의 화려한 장식 때문에 꽤 무거운 투구였죠ㅇㅇ 그런 상태에서 칼 두자루와 유미라는 꽤 길고 거추장스러운 장궁에 화살도 수십대를 지녀야 했죠. 그때 당시 다른 민족에 비해 굉장히 작고 왜소했던 일본인이 위와 같은 중무장을 하고 무게만 1.5kg 가량되는 카타나를 몇자루씩 가지고 다닐만한 체력이 있었을지 의문이네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님은 완전군장하고 k-2를 3-4자루 들고 싸울수 있나요? 사무라이들은 보통 장궁 1자루에 칼2자루 정도만 지니고 전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마저도 다이쇼코시라에 라고 하여 긴칼과 그보다 짧은 칼을 소지하였는대. 이는 용도에 따라 주무장과 부무장을 나눈 것 이지 칼이 부러질 것을 대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강철은 아무리 저열하게 만들어도, 휘어질지언정 부러지는 철이 아닙니다. 부러지거나 깨지는건 주철의 특성이죠. 구한말 일본에서 전통 일본도에 대한 강도 실험이 있었는대 1톤의 압력으로 7분간 비틀어야 겨우 날부분이 찢어졌다고 하죠 그럼에도 도신은 비틀어지기만 할뿐 부러지거나 찢어지지 않았다고 하죠. 즉 일본도는 품질이 들쭉 날쭉하며 균일한 품질로 만들기가 어려웠을뿐, 잘 부러졌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라는 것 입니다. 애초에 그런 물건이라면 시험단계에서 걸려졌을 물건이며 그마저도 휘어질 지언정 부러지는 칼은 없었다고 보는게 옳겠죠.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에 환상이 많으시군요 ㅎ 일본에는 질 좋은 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사철을 쓸 수밖에 없었고, 품질을 보완히기 위해 접쇠를 할 수밖에 없던 것 뿐 그게 더 선진적인 기술이 아닙니다. 이미 고대 중국과 우리나라에는 그 기술이 있었지만 쓸 필요가 없어 사장되다시피 했고, 오히려 일본이 전해 받아 유지한 쪽이었죠. 그렇게 만들어도 품질을 담보할 수 없어서 일본도는 왕왕 깨졌습니다. 그래서 품질이 검증된 중고품들이 훨씬 비쌌다고 합니다. 일본도가 칼에 있어 우월이라고 할만한 것은 품질이 아니라 길이죠. 조선은 백병전을 꺼려하고 활만 고집한 탓에 칼 길이를 점점 줄여 나중에는 거의 장식 수준이 되니 막상 백병전이 되면 많이 불리했습니다. 때문에 왜란을 겪고 바로 칼 길이를 늘리게 되었죠. 여기서 '바로 늘렸다'는 것은 길이를 늘리는 것 자체는 당시에도 제작에 있어 별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가 밀린 것은 100년간 내전으로 다져진 군대와 오랜 평화에 젖어 급하게 소집된 군대가 맞붙은 것이 가장 큽니다. 이웃나라의 정세를 살피지 않고 필요한 것을 배우지 않은 것은 뼈아픈 일이나, 쓸데 없는 부분까지 이상한 열등의식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손잡이 끝 부분도 다름 일본도 = 밋밋함 조선도 = 야구방망이 손잡이 끝처럼 약간 볼록함,,휘두를때 더강한 힘이 가해지고, 손이미끄러져도 손잡이끝에 손이걸려 미끄러져 놓치는 경우가 적음,,끝이 볼록한게 없는것도 있는데 그런경우는 대부분 손잡이에 끈이 달려있어서 그 끈을손에감으며 갈자루를 움켜짐 가끔 칼싸움하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손을다쳐 칼을 못쥘때 손잡이에 손을 끈으로묶는것과 비슷함
소설 멈춰. 손잡이 모양은 환도에 비해 카타나가 훨씬 다양합니다. 휘어진 손잡이부터 각진 손잡이, 곡선이 파여진 것등등 손잡이 끝의 모양도 천차만별이죠ㅇㅇ 그리고 실제 조선환도는 전체길이가 70cm도 안돼는 것들이 대분이었으며 손잡이가 극단적으로 짧아서 휘두르거나 베기에는 불편한 칼이었습니다. 양손검에 가까웠던 카타에비해 환도는 철저히 한손검에 가까웠던 구조였던 것이죠 고로 찌르는 것이 주 사용법이었습니다. 현대에 조선검술이라 주장하는 거의 모든 검술은 개화기때 일본검술의 영향을 받은 창작무술이며, 현대의 환도 또한 카타나를 적극 모방하는 탓에 전통 환도의 형태를 갖는 칼은 사실상 없습니다. 길이부터가 너무 길죠ㅇㅇ 그렇기에 지금 비교 근거로 이야기한 내용은 전혀 신빙성이 없으며 그런 헛소리를 할시간에 검색이라도 더 해보십시요.
임란 이후에는 사실상 구분이 무의미해진게, 임란 이전에는 조선이 날병기를 경시하고 활은 선비들의 덕목이라 할 정도로 높게 쳐서 사실상 한참동안 날병기의 발전이 없었음. 특히 환도는 활 쏘는데 거추장스럽다고 50~60cm 정도까지 길이가 줄어들었다가, 임란때 일본인들이 들고 온 우치가타나, 오오타치 같은 긴 칼들이랑 리치싸움 자체가 안되는걸 알자 극한의 효율을 중시하던 민족답게 바로 흡수해서 일본의 오오타치를 채용한 '쌍수도' 명나라의 언월도를 채용한 '월도' 같은 장병기들을 정식 채용하고 군사훈련을 개편함. 그리고 일본군한테 칼을 노획하거나 검신만 떼오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용도 많이 했고 길었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날병기 자체의 발달이 잘 되어있던 일본이라 당시의 선진기술이었던 일본의 날병기 제작기술도 많이 채용했다고 들음. 해서 양식만을 가지고 임란 이후의 도를 구분하는건 어렵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영상에서도 나왔듯 검집에 달린 띠돈의 유무임. 기본적으로 검과 활을 수시로 스왑해서 쓰던 조선군이라 직접 쏴보면 알겠지만 검집에 검이 들어가 있을 때에는 검자루와 활이 자꾸만 부딪혀서 활을 쏘기가 힘듬. 그래서 띠돈의 결합부를 회전하게 만들어서 활을 쏠 때에는 검자루 방향을 등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도록 만듦. 우리것을 보존하자는 마음은 당연히 기껍고 훌륭하지만 무조건 우리나라는 고유하고 일본은 무조건 별로고 하는 자세는 아니다싶음. 무예도보통지에도 왜검류라고 하여 일본의 검술을 정규 훈련에 편성시켜놓았음. 그만큼 당시의 일본 검술자체는 많이 발전되어 있었고, 효율을 최고로 여기던 조선에게 사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음. 그러니 우리것을 사랑한다면 정확한 사실부터 먼저 알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임.
몽고의 영향이 없었으면 조선칼은 환두대도의
크기가 유지되었을텐데
몽고 기병용 칼이
환도에 큰 영향을 줘버렸음
그게 보병용칼이 아닌데 말타고 활쏘는데 편했고 보병도 활을 많이쓰는 조선특성상 환도가 평균이 되어버림
실제 무사나 장군 호위병용 칼은 일본도 처럼 길었음
왜 군장이 활이랑 검이 x자로 교차되어 있었는지 이해가 가네요
효율성을 중시했다라기엔
일본검술 배우는거 거부함.
그리고 조선후기로 갈수록
다시 칼 짧아짐
효율을 중시해서 해외 무역을 500년금지. 반도 섬을 일본해적에 내주고 본토로 불러모은 300년?
으응? 다시 짧아졌는데요? 병장기에서 효율이라는건 얼마나 잘 죽일수 있나 오로지 이것 뿐인데 짧은 도검이 효율성이 있을리가 없죠 ㅋㅋ
칼날이 위로 오게 하여 허리띠에 꽂아 패용하는 것은 카타나와 와키자시의 경우고, 기마 패용 시에는 띠돈을 사용해 칼등이 위로 오게 패용했습니다.
영상에서 소개하는 일본도는 우치카타나에 해당합니다. 일본은 전쟁이 잦은 만큼 그 무기체계가 복잡하고 한가지로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타치의 경우 기마무기인 관계로 우치카타나보다 곡선이 더 굽어 있으며 검신이 아래로 가게하여 벨트에 차고 다닙니다. 곡도의 굽이는 보병용이냐 기마용이냐에 차이가 있지 나라마다 특색이 있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인 적당한 휨이 있고 양손으로 쓸만큼 적당한 길이의 외날칼 - 일본도 이미지이기에 더욱 그렇죠 이러면 타치나 우치카타나나 그게 그거라(물론 차이는 있지만 언듯 보면)
손잡이 부분은 설명이 조금 틀렸네요ㅇㅇ
조선 환도나 일본도나 마감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일본도는 그 마감방법이 환도에 비해 훨씬 다양했습니다.
환도처럼 끈을 감지 않고 어피로만 말아서 마감하는 경우도 흔했고, 옻칠위에 금이나 은으로 상감하는 방식이나, 홈을파고 그안에 맞춰서 어피를 잘라 붙이는 방식등 환도에 비해 그 다양성이 어마어마 했죠.
뭣보다 일본도는 손잡이를 금이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굳이 손잡이 부분을 비교하려면 길이로 비교 했어야 정확한 내용이었을 것 입니다.
조선인들은 활쏘는대 방해된다는 이유로 손잡이가 짧은 칼을 선호했고, 임란 직후 환도가 길어지는 현상을 보였을때도 손잡이 만큼은 크게 변화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임란직후 조선인들은 일본도에 매우 큰 인상을 받고 적극적으로 수입해썼지만 손잡이 만큼은 꼭 잘라서 사용 했습니다.
얘들이 멀알겟노
그러고보니 이게 정확하네요..칼자루 긴거는 본적없는데..이것도 말탈때 불편해서인가요??
동감합니다
베기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손잡이와 도신의 길이, 도신의 곡선 정도가 조선검과는 다르죠
@@아싸최우철 원래 환도 자체가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타도 보다 기본적으로 짧습니다
원래 칼 자체가 보조병기에 속하는데다 투사무기를 주무기로 쓰는 조선군의 특성상 그리 길게 만들지 않지요
@@아싸최우철조선에서의 주무기가 활이었던거에 기인한거 같습니다 그래서 왜란전까지는 환도는 보조무기적 성격이 강했어서 길이도 짧았던거고요
일본도 코등이 구멍에 꽂는건 머리손질 도구가 아니라 검신과 손잡이를 분리할때 사용하는 도구를 끼워넣습니다. 검신과 손잡이를 나무못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그 나무못을 쳐서 빼내기 위해 비녀처럼 생긴 도구를 이용합니다. 조선 환도도 일본도의 영향을 받으면서 사용할 일도 없는 코등이 구멍을 그대로 따라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녀장은 츠바에 구멍을 내서 사야와 연결해서 쑤셔 넣어져 있는 경우가 많죠
조선환도나 장검의
코등이 구멍은 칼이 빠지지 않게하는 비녀장 잠금장치입니다
@@제국전기 비녀장 잠금 장치와 아무 관계도 없는 구멍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영상잘 보았습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저래봐야 장식품! 실전에서는 어땠을까요?
아무리 날이 잘서고 열처리를 잘 해도 싸움에서 코등이 싸움(서로 칼을 맞대고 힘겨루기)이라도 하거나 몇번 서로 맞부딪히면 날 다빠집니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날이 좀 무뎌도 두께가 좀 있고 글래디우스나 서양기사도 처럼 생긴 칼이 좋은거에요.
우리나라 박물관에 가보면 자세히 보면 칼이 처음보다 가늘고 숮돌에 많이 갈았던 자국이 역력합니다. 전투때마다 날이 망가지면 그때마다 갈아서 날을 세웠던거죠.
만약 정성들여 제작한 일본도를 실전에서 쓸까요? (미쳤냐? 이게 얼마짜린데. 날 빠지면 그거 수선하는데 얼마나 힘든데)
조선도는 적당히 실전에서 부담없이 쓰는 실용적인 칼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쓰던 왜검도 지금처럼 고급지게 만든게 아니었습니다.
지금어 일본도는 장군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실제 사용해도 하위병사들처럼 막쓰는 칼은 아닌거죠.
실제 일본의 일도류(칼을 두자루로 싸우는게 아니라 칼 한자루로 익히는 검술)의 최고 검도사범이 한 말이 있습니다.
"실전에서 칼을 맞부딪힐때는 칼을 거꾸로 맞부딪혔습니다. 그래서 검의 칼등에 흉터가 많았죠. 그렇게 싸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칼날을 사용해서 일격에 베는거죠.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반 병사들의 칼은 단단한 단순한 단조칼이었습니다"
일단 딴건 그렇다 쳐도 코등이 싸움은 진검에는 없는 형태입니다 죽도 검도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생긴거라
유술기가 제외 되고 죽도를 사용하면서 서로 얽힌경우에도 오직 검으로 해결해야 하니 생긴거죠
그리고 영상에 나온 일본도는 우치카타나로 하급 도보 무사들이 실전에서 사용된 도검입니다
그리고 도검은 실전용-장식용 이렇게 나뉘고 고위층을 위한 도검은 장식성이 강하지만(주로 타치에서 보여지듯)도검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기본적으로 실전성을 염두에 두죠
실전용 도검에 장식을 붙이는 거죠
x대 명검 이러면서 대대로 전해지는 물건들이라면 님 말씀이 맞지만 절대 다수의 일본도는 실전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습니다
윗 분 말씀이 맞습니다
오죽하면 임란 당시 조선군도 일본도를 고평가 할 정도였습니다
전후 조정에서는 김체건을 필두로 한 무인들을 일본으로 보내 왜검의 시스템을 들여왔으니 이 말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중 근세의 재련기술은 상당히 급이 낮을 수 밖에 없지만, 그 당시에 조선 환도나 일본도나 철의 품질은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체계적인 검술 시스템과 검 규격의 차이로 조선군이 단병접전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차피 칼날이 목숨보다 소중할리도 없기 때문에 일본검술이나 조선검술이나 똑같이 칼을 흘리고, 엮거나 날을 맞대는 기술이 존재합니다
선생님도 무인이시라면 잠시 국가감정은 내려놓으시고 국적은 다르더라도, 같은 무도가들에게 존중을 표하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고 둘다 애초에 근접전에서 일반 병사들의 주력 무기는 칼이 아니고 창이였음.
손잡이에 어피를 씌우고 무늬를 넣는건 일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추가로 가죽끈을 감아 사용하게 된거죠. 조선 환도도 일본도를 모방하면서 일본도 처럼 손잡이에 가죽끈을 묶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식 띠돈을 사용하면 짧은 환도 문제가 없지만 장검은 휴대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장검은 등뒤로 매기도 했습니다. 패용이야 법이 정해진건 아니죠.
조선의 검은 일본도보다 짧았습니다 그러니 별 상관없었던거죠
1미터 내외 라면 큰 문제가 없어요
띠돈 패용법은 허리 아래에 도검이 위치하는 방식이라 어지간한 도검류는 다 사용할만합니다
길이가 120센티가 넘는 롱소드들도 잘만 뽑고 그랬어요
다만 띠돈은 덜렁거림이 심해서 도검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일반적인 소드벨트보다 더 불편하다고 합니다
검도 배울때 고증에 맞는 띠돈은 아니지만 대충 흉내내서 사용해보니 길어질 수록 덜렁임이 심하더라구요 ㅋㅋㅋㅋ
띠돈 설명한 것이 제일 하이라이트 😊
일본도에도 띠돈식으로 사용해ㅛ음 허리춤에 끼우는건 걔네들도 불편해했음
원피스,현실에서 실전전투에서 사용되는 검에서 무거운 칼 뿐만아니라 또 무엇이 있나요?(무겁다고 다수련용이 아닌이유?)
근데 일본도도 갑옷을 입으면 칼날이 땅을 바라보게 해서 착용하기도 합니다데 일본도도 갑옷을 입으면 칼날이 땅을 바라보게 해서 착용하기도 합니다 좀더 정확하겐 고전적인 사무라이 계층이 사용한 타치가 칼날이 땅을 바라보게 해서 착용하고 일반 보병들이 사용한 칼- 우치카타나는 그냥 보병들이 사용했던 도검이라 허리띠에 그냥 찔러넣었고 이에 따라 칼날이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죠
게다가 일본도라 하면 대충 떠오르는 이미지가 헤이안 시대의 타치 부터 무로마치 막무 시대의 우치카타나 까지 여서 ㅋㅋㅋㅋㅋㅋ
조선은 칼보다는 활을 더 많이 썼기 때문에 조선 후기로 갈수록 칼은 점점 퇴화하기에 이르죠 반면에 일본은 칼을 더 선호하였기에 조선칼보다 더 좋았다고 볼 수있습니다
일본은 철기술이 한반도와 중국에 한참 뒤쳐져 일본산 철은 매우 약해 금방 부러져서 사무라이들은 항상 일본도를 3,4개씩 차고다녔었던게 기록에도 나오는 팩트임. 단단하고 묵직해서 잘 부러지지도 않는 튼튼한 조선검이 우월한건 팩트임. 단지 세계적으로 더 알려져있는게 일본도일 뿐이지.
맞는 말입니다. 왜란직후 조선인들은 왜환도라 하여 일본도를 인정하고 적극 수입해서 썼습니다. 남아있는 환도 유물중 조금만 길다 싶은 것들은 거의 일본도를 개장하거나 개조해 사용 하던 것들이라 합니다.
@@leedonghyeon7781 철 기술이 뒤쳐진 게 아니라 철의 품질이 안 좋았던 거임 그래서 발전한게 제철 기술이고 그렇게 가공된 철은
중국과 한국이랑 비슷한 품질이었음. 그리고
칼을 만드는 기술 자체가 일본이 한,중 보다
뛰어났기에 칼의 성능은 일본이 월등이 높았음.
칼을 여러 개 들고 다닌 거는 칼의 용도가 달랐음. 장도,중도(와키자시),소도 를 들고
다니는데 싸우는 장소에 따라 골라서 씀.
@@leedonghyeon7781 그래서 신미양요때 대장간 칼 가지고싸우다 공장에서 찍어낸 총검에 쨍그랑 부서졌다는 ㅋㅋ
@@leedonghyeon7781근데 진짜 이렇게 허위사실 유포하는애들 Ä미가 없냐?? 구독보니까 국ㅃ튜브만 있네 ㄷㄷ
조선 환도와 일본도 중에 어느게 제일 강도가 높고, 위협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죠???
칼은 일본도가 더 날카롭고 좋았음 그래서 조선도 영향을 많이 받음 대신 조선은 활이 굉장히 좋았음 일본은 습한기후때문에 활이 잘 발달하지 못함 서로 기후가 다르니 발전도 달랐던거임
내전 존나 일어나고 전쟁 일으킨 나라가 칼이 더 안좋을리가
위협적인건 모르겠으나 강도면에서는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고 봐야함. 제작방식상 환도가 좀더 유리한면은 있으나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환도나 카타나나 강도면에서는 고놈이 고놈임.
근접전은 일본이 유리했었습니다
강도가 거기서 거기라니.. 일본 애들은 실전에서 살아남은 애들만 들고다닌건데. 칼도 안 쓰던 사농공상 질하고 장인 천대하던 조선칼이 일본칼보다 좋았겠냐?? 저런 놈들이 제일 최악임..
그러면 이순신 장군님의 검의 손잡이는 뭐죠?
위 영상은 일반론적 관점에서 말해서 그럽니다 보통의 환도류는 어피 마감 내지는 옻칠 나무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일본이나 중국의 방법이 참조된 도검류도 있다는 거죠
말씀하신 거대한 이순신장군님의 검은 명나라 일본 조선의 양식이 가미된 도검입니다 매우 국제적 도검이죠 ㅋㅋㅋ
일본도 노획해서 만든 의장용 검이라 그럼
간지는 확실히 일본도긴 한데 특유의 조선의 아름다움이있네
독일데 쌍둥이 칼이 최고임. 주방에서
칼만 봐도 전투방식의 차이를 알수있지
일본은 창과 칼이주무기 칼은 양손으로 내리치기때문에 손잡이가길고 칼날도길음
조선군은 활이 주무기 보조무기로 환도가있고
병과에 따라 팽배수라 불리는 중장보병이
칼과 방패로 또는 활과 길이 60cm 의 환도로
무장 또는 창으로 무장등 다양한 병과로분류
띠돈 착용시 칼의 발도방식은 한손으로 칼집을 잡고 한손으로 칼손잡이를 잡아뒤에서 빼는 방식 북방민족이 이런식의 발도 하는데우리도 그들과 비슷한 방식을 씀 조선초기만해도
이런 군제가 살아있어세조는 1만7천의 군사를 동원해 여진족을 토벌해 4군6진을 완전히 우리영토로 편입했는데이런 조선이 후대에 가서는 유교의 허세와명나라만 찾다 나라가 개차반된꼴
맞습니다 무기가 문제는 아니었어요
무너진 군이 문제
검 쓰시는 분들이 너무 위축된 거 같아 아쉽네요.
검이 방어 성공하는 장면도 종종 나오는데 들어가며 방어하고, 방어하며 공격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물론 실패 확률이 더 컸겠지만 시도할만 했다고 생각해요.
한국도니 일본도니 무슨 상관이지? 총이 장땡아닌가?장식품 따위에?
-_- 그런식 이면 "돈"이 장땡이죠 조선족 몇명만 불러서 마음에 안드는 사람 바로 담글수 있을테니
전쟁도 용병을 "돈" 으로 사서 하는 판에
조선도의 뭐가 더 우월하느니 이딴 국뽕 포인트 하나 없이 비교만 해줘서 좋다
필요한 비교 영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쓸모있는 정보영상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조선도가 아니라 환도 아닌가요?
일본도 패용 방식이 카타나 처럼 허리 춤에 끼워넣는 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타치"라불리는 일본도는 환도처럼 허리띠에 끈으로 연결해서 패용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환두대도의 영향이 남아있는걸로 보이네요
일본 초기 무기나 갑옷은 거의 가야나 백제 판박이었죠
특히 규슈지역
사실 일본도의 전체적인 날의 형태는 환두대도 판박이죠
@@제국전기 허리띠에 칼을 연결해 패용하는건 환두대도의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동서양 모두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방식이죠.
손잡이 길이가 때문에 쉽게 알수있습니다
조선은 검보다는 화력 즉 활이나 총에 더 의존하였음.
총은 오히려 일본이더 의지했고 조선은 활에 치중했음 일본을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가 어떻게 통일할수 있었는지 검색해보면 알수있음
@@Xbbcs 아니니까 다시한번 알아보고오셈.
조선시대가 무슨 100년밖에 안하는것도 아니고...
@@skyeye8519 그렇죠 왜란 과 호란 을 겪고 그때서야 화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키웠죠. 그전에 화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은 깡그리 무시하고 그래서 "소 읽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는거죠
검 끝은 상관없음
코등이 말고 다른 역할 있습니다.
어느나라나 잠금장치로 코등이 사용했습니다
틀렸음 조선칼에만 코등이에 비녀장을 꽂는 구멍이 있음
코등이는 즉 츠바인 칼방패임 잠금 장치기능 없음. 그밑에 놋쇠가 나무와의 마찰로 잠금장치를 하는거지
바로 댓글확인 ㅋㅋ
비녀장 따위라니.. 비녀를 꽂는게 아니고 비녀모양의 열쇠라서 비녀장이여. 그걸로 칼집에서 칼이 안빠지게 하는용도고
요즘들어 일본도, 조선검, 펜싱검, 바스타드 소드 나눠서 부르지 과거 우리 조상들은 그냥 긴 칼은 환도라 불렀음. 구한말 서양 펜싱검도 그냥 환도로 부름.
일본도가 훨씬 멋있네
일본도와 한국의 검은 딱히 다른점이 얼마 없습니다 검의 옵션마다 검은 단른 맛이되지요
현실에서는 코등이와 손잡이 등 여러가지를 바꾸어서 전투 상황에 맞게 바꾸어서 사용 함니다
그리고 역사를 아주 잘 뒤지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일본이 신라에게 와서 검 만드는 법, 검 다루는 법을 배워습니다.] 그리고 저는 검도 6년차 임니다
역사를 검도로 배우면 그렇게 댑니다. 그 검도 그만두시고 국사 공부할때까지 유튜브 댓글에 역사에 관해 논하지 마세요
지적할게 한두개가 아니네 원참.
조선시대에 일본이 신라에 왔다는건 뭔소리노?
검도요? 검도 5년차인데 검도도 약점 있습니다. 그리고 종조국인 일본조차도, 현대검도하면 고류했던분들이 비웃으십니다. 검도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하진 않죠. 공격이 전부 치명적이니까요. 어떤부분에서 고류했던분들이 비웃으시냐면, 칼이란게, 생존에의해 여러기술이 만들어졌는데. 검도는 그 여러기술을 삭제시킨후에 스포츠화 했기 때문입니다. 검에 무슨 높은단계가 있니 없니 하는건 의미없는게 총이면 끝나기때문입니다. 한국의 검도에서도 북진일도류 카타 하면, 알아보지 못하는게 그 증거입니다. 현대검도가 어디에서왔는지도 모르는 이가 태반인데, 검도가 진정 무도이겠습니까?
@@뚱이응디시간여행 한듯ㅇㅇ
조선시대에 일본이 신라에 갔댘ㅋㅋㅋㅋㅋㅋㅋ어케갔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순신 장검만봐도 크기나 컨셉은 일본 대태도 이나
칼날의 모양과 형태 손잡이 감기방식 코등이
모양 착용법은 전형적인 조선장검임
국보로 지정함이 마땅함
그칼은 그냥 선물 받은 장식용 칼임.
전쟁에 들고 나간적 한번도 없는.
@@pathesiar 뭔 자다가 짜장비비는 소리야??
누가 싸움터에 들고 나갔나 물어봤어?
칼 형태 이야기 하는데
그게 선물이면 이세상 모든 장수들이 대장장이한테 받은 칼은 다 선물임 ㅋㅋ
@@제국전기 지가 뭘 쓴지도 모르나?
기억 안나면 다시 보던가.
국보로 지정해야 마땅하다며.?
선물받아서 장식용으로 집에 걸어둔걸 국보로 지정하냐? 멍청한 놈아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 들고 나갔던 검이면 충분히 국보가 될 수도 있지.
장식용이다. 멍청한 놈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가면 이순신 장군 전투에서 쓰던 지휘용검 따로 있다.
게다가 장수들 검이 대장장이 한테 선물 받은거? 대가리에 총맞았나?
넌 돈주고 산것도 선물받았다고 하냐?
거기다 조선에서 도검은 국가 대장간에서 만들어 지급하는 군수품이다.
의전용 칼이죠
조선도는 패션의 일부
일본도는 실전 무기
누가 그래요 패션이라고 어이가 없다
무기체계에 따라 틀린거지
북방민족들은 이런식으로 활과 검을패용해요
좀 알고서 얘기해요 그리고 찰갑 정도만 입어도 칼 소용없어요 갑옷의 빈틈새를 노려 찔러죽이는거지 갑옷에 아무리 난도질해봐요
짤리나 ㅋㅋㅋ 영화를 너무 믿지신봉하지말아요 일본칼이 총알 두동강내는거 그거
숫가락도 총알 두동강내요 ㅋㅋㅋ
우리는 북방 기마민족 입니다
조선에 와서 이모양 이꼴이 됬지만
고려때만 해도 적어도
규슈 까지는
직접 영향권에 두고
통치 했습니다
고려사에도 나오며
규슈에 고려 유물도 나옵니다
따지면 고려 유물만 나오는게 아니지요
신라유물도 나오며
당연히 신라 경순왕이 신하를
자처하고 고려에 흡수 됬으니
신라의 기반들을 모조리 고려가
흡수
@@user-oc3wb2gd8i 조선인들 그런거ㅠ인정안해요 ㅋㅋㅋ 쌩고집 ㅋㅋ
그러나 일본에 식민지배나 쳐당했지 ㅉㅉ
사무라이들 일본도 2~3개씩 차고 다닌 이유가 내구성이 안좋아서 ㅈㄴ 잘부러져서인데 모르나?
임진왜란때 왜구들 칼솜씨때문에 충격먹어서 전쟁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 박살내고 새로 자리에 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에 칼선생들 보내달라고 요청까지 해서 실제로 왔습니다
이게 실제 역사입니다..
물론 활솜씨는 한국이 한중일중 최고였습니다 이것도 물론 역사가 보증하는사실이죠
하지만 인정하고 갈건 인정해야 합니다
칼 하나만큼은 쟤들이 나았습니다
검 집은 조선도가 더 끌리는데 손잡이는 일본도가 더 끌라내요
일본은 철 생산 가공 기술이 한반도와 중국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서 일본도는 약하고 잘 부러지기로 유명했고 전투하러 가는 사무라이들은 항상 3-4개의 일본도를 소지했던게 기록에도 나오는 팩트임 너무 잘 부러지니까. 그래서 비교하자면 우직하고 튼튼한 조선도가 우월한건 사실임. 단지 세계적으로 더 잘 알려진게 일본도일뿐.
와키자시나 카타나는 몰라도 오다치 같은 건 잘 쓰면 미친 템이긴 함 아니면 나기가타 같은 창에다 칼날 단 무기도 사기템에 속했고 근데 오다치는 길이가 한 3m 정도라 소지 조건 300렙 3대 300 쳐야 휘두르지 뭐ㅋㅋ
반은 맞고 반은 틀린말이네요.
일본도는 접쇠로 만듭니다.
이론상 접쇠 공법은 저질재료로도 준수한 소재를 만들 수 있는 꽤 괜찮은 공법입니다.
먼 옛날 초강법이 널리 전파되기전엔 중국이던 한국이던 일본이던 다 접쇠로 철을 제련 했습니다.
다만 접쇠의 가장 큰 문제는 품질이 들쭉 날쭉 하다는 것이죠ㅇㅇ 초강법 전래 이후 중국이나 한국이 접쇠를 안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에 기인합니다.
다만 일본은 철광석이 나질않는 곳이라 초강법을 적용할수가 없었고, 접쇠를 할수밖에 없었죠...
이론상으로는 단조로 두드려 만든 칼이나 접쇠로 접어 만든 칼이나 강도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만, 접쇠는 접어 붙인 단면이 제대로 붙어야 이론상의 강도가 나옵니다. 만약 접은면이 제대로 붙질 않아서 미세한 균열이라도 생기면 강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수없이 두드려 접은 단면이 제대로 붙었는지 확인하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만든 물건을 잘라서 단면을 확인해 보는 것 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애써 만든 물건을 버리는게 되니...
접쇠가 이론적으로는 강도가 나온다 할지라도 그 이론에 근접한 품질을 뽑는건 또 다른 이야기이며,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만든 물건을 부셔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접합이 되었는지 알수 없기에 접쇠공법은 만드는 장인의 손빨과 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 하게됩니다. 일본도의 품질은 전적으로 만드는 장인의 경험에 달렸다고 봐도 틀린말은 아니었다는 것 이죠.
그렇기에 일본도는 품질이 매우 들쭉날쭉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새로 만든칼을 바로 쓰진 않고 다다미나 대나무를 계속해서 베어보며 품질을 확인했고 심지어 죄인을 참수하거나 시체를 토막내며 칼의 강도를 시험했습니다. 거기서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와야 전쟁터에 갖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무라이가 3-4자루의 칼을 찼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 무근입니다.
당시 사무라이의 장비들은 하나같이 무거웠습니다. 갑옷인 요로이만 해도 몇십킬로를 넘기는 중장비이며, 카부토라 불린 투구는 그 특유의 화려한 장식 때문에 꽤 무거운 투구였죠ㅇㅇ 그런 상태에서 칼 두자루와 유미라는 꽤 길고 거추장스러운 장궁에 화살도 수십대를 지녀야 했죠. 그때 당시 다른 민족에 비해 굉장히 작고 왜소했던 일본인이 위와 같은 중무장을 하고 무게만 1.5kg 가량되는 카타나를 몇자루씩 가지고 다닐만한 체력이 있었을지 의문이네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님은 완전군장하고 k-2를 3-4자루 들고 싸울수 있나요?
사무라이들은 보통 장궁 1자루에 칼2자루 정도만 지니고 전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마저도 다이쇼코시라에 라고 하여 긴칼과 그보다 짧은 칼을 소지하였는대. 이는 용도에 따라 주무장과 부무장을 나눈 것 이지 칼이 부러질 것을 대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강철은 아무리 저열하게 만들어도, 휘어질지언정 부러지는 철이 아닙니다. 부러지거나 깨지는건 주철의 특성이죠.
구한말 일본에서 전통 일본도에 대한 강도 실험이 있었는대 1톤의 압력으로 7분간 비틀어야 겨우 날부분이 찢어졌다고 하죠 그럼에도 도신은 비틀어지기만 할뿐 부러지거나 찢어지지 않았다고 하죠.
즉 일본도는 품질이 들쭉 날쭉하며 균일한 품질로 만들기가 어려웠을뿐, 잘 부러졌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라는 것 입니다. 애초에 그런 물건이라면 시험단계에서 걸려졌을 물건이며 그마저도 휘어질 지언정 부러지는 칼은 없었다고 보는게 옳겠죠.
@트름 전차뚫었는데 왜 미국 방탄하나 못자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식에 맞음??
아닌데 ㅋㅋ
아 ㅋㅋ 그래서 탄지로 검 계속 부러졌구나 ㅋㅋㅋ
일본은 칼 조선은 붓
댓글이 더 전문가
그냥 잘 모르면 올리질 말지 틀린부분이 좀 보이네 알려줄거면 제대로 알고 올리든가 걍 나무위키 보고 그거 요약해서 끄적거린티남
솔직히 사상이념 다떠나서 일본도가 검중에 제일 간지난다
싸울아비는요?
@@namegi7그거 라디오 방송에서 나온 헛소리임ㅋㅋ
검색 해보자~
@@namegi7 싸울아비 현대어임 ㅋㅋㅋ
일본도에게 개발리겠네
원종이들 한트럭이네 ㅋㅋㅋ
활 잘 쏘는 민족은 칼보다는 활...
대포 잘 만들고 쏘고, 미사일 잘 쏘고 만들고, 비행기 잘만들고 잘 날고....하늘을 나는 모든 것은....우리가
일본도는 갓본도
조선칼은 부억칼
이게 제일 큰 차이지
어디다가 비비냐
맞음 노다치인가 존나 큰 칼 이게 짱깨 학살할때 그당시 황제였나 노다치 효과 보고 표절해서 만든게 조선에 넘어왔는데 그게 쌍수도라고 국내에선 부르더라 근데 그게 또 국뽕새끼들이 지들이 독창적으로 만들었다 하네 나무위키랑 검관련 유튭 보면 자세히 나와있는데
어느정도는 맞는말인데 일뽕 원종이들 신났네 ㅋㅋ
임진와란때 장군들이 사용한 칼을 보먼 너무허접해서 창피할정도임
2빠
1빠
일본도 승
조선화이팅!!!
우리나라 조선의 환도는 일본도의 품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만드는 제작과정도 완전히 다름 영화처럼 일당백으로 적을 물리치는 훌륭한 무사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음.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에 환상이 많으시군요 ㅎ
일본에는 질 좋은 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사철을 쓸 수밖에 없었고, 품질을 보완히기 위해 접쇠를 할 수밖에 없던 것 뿐 그게 더 선진적인 기술이 아닙니다. 이미 고대 중국과 우리나라에는 그 기술이 있었지만 쓸 필요가 없어 사장되다시피 했고, 오히려 일본이 전해 받아 유지한 쪽이었죠. 그렇게 만들어도 품질을 담보할 수 없어서 일본도는 왕왕 깨졌습니다. 그래서 품질이 검증된 중고품들이 훨씬 비쌌다고 합니다.
일본도가 칼에 있어 우월이라고 할만한 것은 품질이 아니라 길이죠. 조선은 백병전을 꺼려하고 활만 고집한 탓에 칼 길이를 점점 줄여 나중에는 거의 장식 수준이 되니 막상 백병전이 되면 많이 불리했습니다. 때문에 왜란을 겪고 바로 칼 길이를 늘리게 되었죠. 여기서 '바로 늘렸다'는 것은 길이를 늘리는 것 자체는 당시에도 제작에 있어 별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가 밀린 것은 100년간 내전으로 다져진 군대와 오랜 평화에 젖어 급하게 소집된 군대가 맞붙은 것이 가장 큽니다. 이웃나라의 정세를 살피지 않고 필요한 것을 배우지 않은 것은 뼈아픈 일이나, 쓸데 없는 부분까지 이상한 열등의식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철 가공기술이 약한 일본도는 잘 부러져~ 새칼은 하급무사들이 들고다니고 검증된후에 상급 무사들이 하급무사들의 칼을 사서 지니고 다녔음
개솔ㄴ 일본도는 전장에 나가기전에 먼저 강도실험을 하고 전장에 보내졌음 그당시 품질이 들쭉날쭉이였던건 맞는데 못쓰는걸 내보내진않았음
손잡이 끝 부분도 다름
일본도 = 밋밋함
조선도 = 야구방망이 손잡이 끝처럼 약간 볼록함,,휘두를때 더강한 힘이 가해지고, 손이미끄러져도 손잡이끝에 손이걸려 미끄러져 놓치는 경우가 적음,,끝이 볼록한게 없는것도 있는데 그런경우는 대부분 손잡이에 끈이 달려있어서 그 끈을손에감으며 갈자루를 움켜짐
가끔 칼싸움하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손을다쳐 칼을 못쥘때 손잡이에 손을 끈으로묶는것과 비슷함
소설 멈춰.
손잡이 모양은 환도에 비해 카타나가 훨씬 다양합니다.
휘어진 손잡이부터 각진 손잡이, 곡선이 파여진 것등등 손잡이 끝의 모양도 천차만별이죠ㅇㅇ
그리고 실제 조선환도는 전체길이가 70cm도 안돼는 것들이 대분이었으며 손잡이가 극단적으로 짧아서 휘두르거나 베기에는 불편한 칼이었습니다.
양손검에 가까웠던 카타에비해 환도는 철저히 한손검에 가까웠던 구조였던 것이죠
고로 찌르는 것이 주 사용법이었습니다.
현대에 조선검술이라 주장하는 거의 모든 검술은 개화기때 일본검술의 영향을 받은 창작무술이며, 현대의 환도 또한 카타나를 적극 모방하는 탓에 전통 환도의 형태를 갖는 칼은 사실상 없습니다. 길이부터가 너무 길죠ㅇㅇ
그렇기에 지금 비교 근거로 이야기한 내용은 전혀 신빙성이 없으며 그런 헛소리를 할시간에 검색이라도 더 해보십시요.
국뽕 오지넼ㅋㅋ
국내 쌍수도가 일본 노다치 표절한건 알고 있냐? 그것도 짱깨가 노다치 보고 만들걸 조선놈들이 중국제를 가져온거 ㅋㅋㅋ
조선도가 짱 이라니깐
개 그지같은 도검사이트 제품이네
정신승리하지말자ㅡ
세계적으로 일본도는 가치인정받아도 조선도는 관심도없음.
조선은 애초에 칼 즐겨쓰지도 않았는데 왜 억지도 비교하는지 노이해
역시 칼은 일본인가??
실전 용 칼과 폼을 위한 칼의 차이지.
이따우로 폼만 재고 자빠졌으니 그 옛날에 일주일만에 한양을 뺏기고 왕이라는 쓰레기는 도망이나 다니지...
칼이 주무장이냐 부무장이냐 차이임
폼은 아니지. 쟤들은 타치, 와키자시가 현대의 권총 위치였고 우리는 바요넷 위치였다는거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