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은 누가 잡을까 | 예수는 화목제물인가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30 сен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1

  • @Calidaddy-x1p
    @Calidaddy-x1p 16 дней назад

    3:25 에서의 화목제물은 문맥적, 원어적으로 힐라스테리온이 더 적절할것 같고요..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구약 대속죄일에 지성소, 언약궤 위 시은좌(은혜의 보좌)에 속죄의 피가 뿌려짐으로 하나님이 죄를 사하신것처럼 예수님의 피로, 예수님이 대제사장 되셔서, 예수님이 하늘성소에서 단번에 영원한 속제를 완성하신 것으로 보면 예수님의 피가 뿌려진.. 시은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삼으셨다 라는 표현이 더 나은것 같고요.. 하지만 구약의 제사제도, 그리고 언약궤의 뚜껑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잘못하면 예수님보다 높아지고 더욱 관심이 기울여질수 있는 문제도 생각되네요.. "화목제물"이라는 것이 예수님께 더 집중시키는 이점도 있어 보입니다.
    바울이 피와 믿음을 함께 제시한 것도 구약적 한계와 율법의 강조가 아니라 예수님과 믿음의 강조점이 있어 보이고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 @Joshua09103
    @Joshua09103 18 дней назад +4

    찬송가를 성경처럼 받드는 사람들이 꼭 봐야할 영상 1위

    • @maeilchurch
      @maeilchurch 4 дня назад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말하기에는 개역개정 성경에 화목제물이 죄사함의 기능이 있다고 요한1서에 있어서요...

    • @Joshua09103
      @Joshua09103 3 дня назад

      @@maeilchurch 오역이요

  • @maeilchurch
    @maeilchurch 4 дня назад

    우선 저는 박철현 교수님께 배워 화목제에 속죄의 기능이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긴 합니다.화목제 중 하나인 감사제는 고백제로도 번역이 되는데 물론 하나님의 자비의 측면이 더 강조되는 제사이긴 하지만 죄를 고백하는 측면에서 충분히 속죄의 기능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단독으로 드릴 수 있는 제사라는 것이 속죄의 기능을 갖는다고 보시는 이유가 혹시 있다면 무엇인가요?(이건 진짜 몰라서 여쭤보는 거에요^^)
    기본적으로 이츠학님은 3, 7장에 "속죄한즉"과 같은 표현이 없기 때문에 속죄의 기능에 있어서 번제나 속죄제, 속건제와 같이 속죄의 기능이 있다고 분명히 말하기에는 애매하니까 찬양에 쓰면 안된다라는 주장이신거죠?
    흠.. 저는 사실 요한 1서에 등장하는 두 구절은 화목제물로 번역하는게 맞고, 로마서의 경우에는 죄를 간과하셨다 지나치셨다는 표현이 있어서 죄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덮고 있는 시은좌 속죄소로 번역하는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었는데..

    • @aqedah
      @aqedah  4 дня назад

      속죄제와 속건제는 단독으로 드릴 수 있고, 그 자체로 속죄의 기능이 있습니다(레 4-6장). 그리고 놀랍게도 제사 외에도 속죄가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시 51편).
      구약의 속죄 본문, 신약의 진술은 아직도 연구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 연구는 성기문 박사가 깊은 관심을 두고 수행하고 있습니다.

  • @나무-q6d
    @나무-q6d 18 дней назад +2

    안녕하세요. 흥미롭고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propitiation이 일반적으로 속죄제를 의미한다면 그게 왜 개역개정까지도 화목제로 번역이 된 것인지 아시는 바가 있으신가요? 개역개정이 나올 때 까지는 이 단어에 대해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propitiation 자체의 의미가 화목에 가까워 그냥 그 느낌을 살리고자 화목제로 쓴 것일까요? 말씀하신 것을 보면 진작 바뀌었어야할 것 같은데 개역개정에서도 안 바뀐 것이 흥미롭기는 하네요.ㅎㅎ
    여담으로 언급하신 찬송가의 경우 속죄 제물로 번역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영어 가사에서는 reconcile을 써서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다 정도의 의미라 그냥 화목(하게 하는) 제물 정도의 의미로 번역한 것 같네요. 다른 언어를 번역하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ㅠㅜ

    • @aqedah
      @aqedah  18 дней назад +1

      개역개정 번역자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습니다. 화목의 의미를 살릴 의도였다면, 이미 번역한 '화목 제물'이라는 용어 대신에 화해제물과 같은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게 나았을 겁니다. 혹은 개역성경이 처음 번역될 때 신학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죠. 한 번 정착된 용어는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공자는 슬픕니다🥲

  • @uni-oneforce8333
    @uni-oneforce8333 18 дней назад +3

    예배와 찬양에 관한 구분과 정리가 필요합니다
    1. 예배시간에 찬송가만 가능하다 vs 복음성가도 가능하다
    2. 찬송의 끝에 '아멘' 있고 없는 이유

    • @kgurwns
      @kgurwns 18 дней назад +3

      총신신대원을 졸업하고 교회음악대학원에와서 배워보니, 1번의 경우 둘 다 가능하지만 둘 다 가사의 적합성을 따져봐야한다. 그리고 아마 말씀하신 복음성가는 CCM혹은 경배와 찬양음악을 말씀하시는듯하고,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는 복음성가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2번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차이가 좀 있는데, 저희 학교 교수님은 옥스포드운동의 영향으로 아멘종지의 관습을 가지고와서 없는 아멘도 만들어붙인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봐서 굳이 부를필욘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는 또 그렇다고 뗄 필요도없다고 봐요. 또 찬송가 편집위원회에서도 이것에 대한 일관성있는 지침 없이 편집한 것으로 되어있어요.

    • @uni-oneforce8333
      @uni-oneforce8333 18 дней назад

      @@kgurwns 먼저 답변 감사합니다 :)
      저는 장로, 성결, 감리교까지 여러 교회를 섬겼는데
      나이가 있으신분들은 복음성가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있고 오직 찬송가에 있는 찬송만이 '아멘' 으로 끝맺음을 하기에 예배시에 할 수 있는 찬송이라 구분하고 있어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답답함에 질문 드렸습니다.

    • @aqedah
      @aqedah  18 дней назад +3

      1. 예배시간에 사용되는 노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찬송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CCM이나 복음성가도 가능합니다. 21c 찬송가가 편찬되면서 복음성가로 쓰이는 곡들이 편입된 것도 있습니다.
      2. 찬송가 끝의 '아멘'은 후렴이 없는 찬송에 붙이는 것이 원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가가 편찬되면서 후렴이 있는 찬송에도 아멘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IV-I로 끝나는 아멘 종지는 그레고리오 성가에도 나타나는 유서깊은 종지로, 찬송가를 마치는 전통처럼 여겨집니다.

    • @uni-oneforce8333
      @uni-oneforce8333 18 дней назад

      @@aqedah 제가 알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찬양 & 영광 돌리는것'
      구분을 하려면 정확히 알고 해야 하는데
      찬송가에는 복음성가와 오케스트라, 민요곡조 등이 있는건 모르는건지
      찬송가만 '아멘'이 있어 때문에 예배시간에 찬송가만 불러야한다고 찬송가에 있는 찬송 외 복음성가와 찬양은 부르면 안된다는 주장을 하고있어서 답답합니다.

  • @sipfyyochan82
    @sipfyyochan82 18 дней назад +2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해석과는 조금 다르네요. 일단 지금 책이 없어서 댓글만 남기고 나중에 보충해보겠습니다.^^; 예전에 장신대 배정훈 교수님과 이문제를 논의했을때, 화목제의 의미가 축제의 성격을 갖더라도, 화목제물 자체는 두 존재의 화목을 위한 죄해결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의견을 말씀하셨더라고요.

    • @aqedah
      @aqedah  18 дней назад +5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5대 제사의 속죄 성격에 대해서는 통일된 견해가 없습니다. 박철현 교수는 5가지 모두 속죄기능이 있다고 봅니다(박철현 2018, 112). 그러나 레위기 본문(3장, 7장)에서 속죄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화목제에 속죄기능이 없다고 봅니다(김경열 2016: 129; 기동연 2019: 111).
      화목제는 속죄제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1. 화목제는 감사의 성격이 강하고, 속죄제는 회개의 성격이 강합니다.
      2. 화목제물은 서원제/자원제의 경우 흠 있는 짐승을 바칠 수 있으나(레 22:23) 속죄제는 흠 없는 짐승만 바쳐야 합니다.
      또한 성경에는 화목제를 단독으로 드려 속죄행위를 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인구조사 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용서를 받았고, 간음 후에는 오히려 속죄제 대신 깊은 회개로 갈음했습니다(시 51:16-17).
      번제의 경우 속죄기능이 있다고 보는 경우가 절대다수입니다(레 1:4). 저 또한 이를 크게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번제의 기능이 속죄보다는 헌제자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포기에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속죄를 목적으로 하는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기 때문에 번제와 화목제는 그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영상에서 말하는 핵심 내용은 찬송가에 나오는 '화목제물'은 오해의 여지가 크니 '속죄제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겁니다.

    • @sipfyyochan82
      @sipfyyochan82 17 дней назад

      @@aqedah 정성어린 답신에 감사합니다! 찬송가는 그렇다고 볼때, 로마서에서 화목제물로 번역한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로마서 강해 1장에서 시온좌로 번역하면 안된다고 굉장히 강조하시더라고요. (자꾸 질문드려 시간을 뺏는거 같아 죄송합니다만..;;)

    • @aqedah
      @aqedah  17 дней назад +2

      @@sipfyyochan82 시은좌(힐라스테리온)에 대해서는 따로 다룬 영상이 있습니다.
      ruclips.net/video/KRuasqqudAU/видео.html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언약궤 뚜껑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2. 포로기 때 하나님의 임재는 귀환하지 않음(언약궤가 없기에)
      3. 하나님의 임재는 예수의 도래와 함께 귀환함
      4. 따라서 예수는 걸어다니는 언약궤 뚜껑임
      또한 언약궤 뚜껑은 대속죄일에 피를 뿌리는 장소이지요. 히브리서 저자에 따르면 언약궤 뚜껑이자 대제사장인 예수는 그 자체로 속죄를 완성한 존재입니다. 왜 로이드존스가 예수를 언약궤 뚜껑으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지는 모르겠네요.

    • @sipfyyochan82
      @sipfyyochan82 13 дней назад +1

      @@aqedah 로이드존스 목사님도 예수를 시은좌로 봅니다. 다만, 로마서 1장에서의 그 구절이 시은좌로 보지 말고, 화목제물로 봐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여기서의 화목제물이 화해제물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책이 지금 한국에 있는지라, (해외장기체류중입니다) 다음에 또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실하신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 @항상웃자-b1i
    @항상웃자-b1i 18 дней назад

    화목제와 화목제물을 구분하여 사용하면 될텐데
    문자적 해석보다는 문맥적 해석을 하시는게

    • @aqedah
      @aqedah  18 дней назад +2

      문자적 혹은 문맥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입니다. 영어찬송가 가사는 'He reconciled And pardoned from his sin'입니다. 'reconciled'는 마 5:24; 롬 5:10; 고전 7:11; 고후 5:18; 골 1:22 등(NIV, KJV, NASB)에서 사용되었고 헬라어 '카탈라쏘'를 번역할 때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단절되었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이는 구약의 화목제의 기능인 친교의 기능과 유사해보이나, 구약의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친교의 잔치입니다. 따라서 'reconciled'는 화목제(peace offering)보다는 속죄제(propitiation)와 더 가깝습니다.
      찬송가 번역자가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알았다면 화목제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화해제물'과 같은 단어를 선택했어야 마땅합니다.

    • @Calidaddy-x1p
      @Calidaddy-x1p 16 дней назад

      레위기 5대 제사는 단독으로 죄와 관련 있고 없고 보다 함께 연합되어 사용된거 같습니다. 번제역시 죄와 상관 없을 때는 전적인 헌신을 위한 제사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레위기 1자에서조차 죄가 사함받는 것을 나타내고 있고요, 다른 속죄제, 속건제등에 번제, 소제, 화목제등이 이어진(?) 형태로 나옵니다.
      번제만, 소제만, 속죄제만 드리지 않고 번제 다음 속죄제 다음 속건제가 필요하면 드려지고 그다음 화목제가 나타나는 형태도로..
      찬송가의 화목제물 삼으셨다 라는 부분은 일정부분 목사님의 의견에 동의하고 적절한 지적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루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케 하신 대제사장적, 그리고 완전한 흠없는 유월절 양되심을 보면
      문자적인 해석보다는 전체적, 큰 그림에서의 결과로서도 이해가 되는 부분인거 같습니다.
      이미 노래로 가사가 익숙해져서.. 바꾸기에는 정말 정말 어려워 보이고요😂..
      암튼 정확하고 질높은 설명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