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효과성에는 병사 수뿐만 아니라 전략과 전술, 무기 기술, 군사 규율, 병사의 전투 경험과 전투 의지(용기)도 포함됩니다. 인적자원을 평가해보면 사실상 북한과 남한의 현지군이 인적자원이 가장 많은 군대다. 전쟁 전반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군은 유엔군에 비해 수적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군의 전술은 우월한 병력을 집중시켜 고립된 적들을 포위하고 섬멸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중국군은 무기와 화력 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지만, 다른 면에서는 인류 역사상 경보병 최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장진호전투에서는 중국군은 미리 정해진 전장에 도달해 후퇴하는 미군을 포위하기 위해 14시간 만에 북한 북부 산길 72.5km를 달려 결국 10분 만에 전장에 도착했다. 퇴각하는 미군보다 차로 몇 분 일찍. 평지가 아닌 북한의 산길이었고, 중국군은 무기와 식량을 싣고 14시간 연속 도보로 달렸고, 적군이 전장에 도착하자 곧바로 퇴각을 막기 위한 전투 준비에 나섰다. 이에 비해 당시 한국군의 장교들은 일본이 퇴각하고 남은 보조병이나 신병들에 불과했고, 대부분 전투 경험과 전투 의지가 전무해 중국군과의 대결이 전혀 불가능했다.
금성전투가 맞는지 아닌지는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현재 부산 UN기념공원(구 UN묘지)에 71년째 잠들어 계시는 영국군베테랑 할아버지들의 청동으로 된 묘석을 보면 전사하신 날짜가 휴전협정 약 1달전인 1953년 6월사이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 이때 전투로 돌아가신게 아닌가하는 강한 추측이 드네요 (묘석을 보며 제가 가장 눈물나는게... 그 당시 돌아가신분들중에는 17세도 있었다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전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컨텐츠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진격나팔과 함께 돌진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돌격은 공포스러웠습니다. 6사단 2연대는 아군이 후방에 방어선을 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얼마나 중공군의 공격이 거셌으면 아군 피해를 생각하지 않고 6차례나 진내사격을 요청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그렇습니다. 중공군은 사실 몇번이나 서울을 다시 뺏으려고 했었고 집요하게 국군만 팼습니다. 국군이 뚫리면 미군이 막거나 다른 유엔군 부대가 막은 사례가 무척 많습니다. 그나마 금성전투에서 다시 반격을 하여 어느 정도 땅을 탈환한 것은 밴 플리트 장군의 특별훈련으로 국군의 전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군의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 2부 ruclips.net/video/agvNMsb64yI/видео.html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채널에서 밴 플리트 장군에 대한 거의 모든 에피소드를 다 다뤘습니다. 막판까지 중공군을 때려잡고 한치라도 한국의 영토를 넓히고자 했던 밴 플리트.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도 100%의 궁합을 과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금강산을 탈환하기 위해 신명나게 작전계획을 짰던 일과 ruclips.net/video/R8PVjkC8sXA/видео.html 군대를 그만두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를 주한미국대사에 임명하려고 하자 거절한 일입니다. ruclips.net/video/ZIX4zkys39Y/видео.html 그런데 그 거절사유가 정말로 감동적입니다. "내가 주한미국대사가 되면 나는 미국의 이익을 한국에 관철시켜야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아마 한국사람이었어도 이렇게까진 안했을 것입니다.
@@김성태-i6b6j 네 옵니다 반드시!하지만 우선은 단순한 남북통일보단 서쪽을 먼저 쳐서 중원을 확보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선 옛 치우천황의 시대처럼 우리의 옛 민족들과의 연방을 확립해야 합니다.그러면 북쪽은 자연스레 지도부가 정화되고 우리쪽으로 흡수될것입니다. 다들 경제..경제거리는데 그건 정복전쟁으로 해결될겁니다.이건 프로이센의 명재상이던 비스마르크가 쓰던 전략입니다.
밴 플리트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워싱턴이 대규모 공격작전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뺏긴 영토를 다시 찾자는 명분에는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했을 것입니다. 리지웨이와 멕스웰 테일러 두 사람의 장군은 알아서 워싱턴의 비위를 맞춰주는 스타일이었기에 밴 플리트와는 격이 다른 인물들입니다. 전후 밴플리트는 자신이 금강산을 공격하여 동쪽으로 전선을 올리려고 했는데 아예 합참에 올라가기도 전에 커트한 사람이 리지웨이였다고 두고두고 한탄했습니다. ruclips.net/video/R8PVjkC8sXA/видео.html (휴전이전에 금강산을 탈환하라) 리지웨이가 자신의 육사 후배였기 때문에 기분이 더 나빴을 것입니다.
이 금성전투는 그 동안 국군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역설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금성전투는 미군이 화력지원만 해주고 개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불과 2년전이었다면 국군은 중공군이 공격만하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후퇴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금성전투에서는 국군이 자체적으로 반격까지 성공시켰습니다.
전쟁은 첩보 전 이다 적군이 아군으로 변장해서 침투했는데 멍 때리다가 후방 연락망 두절 요인 암살 당하면 주력 부대는 손도 못써보고 괘멸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훈련 각 부대와의 치밀한 협력 작전 전쟁 에서의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위가 높을수록 그 두려움을 이겨 낼수 있도록 솔선수범 해야 한다
특히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당시 국군 스스로가 그렇게 불렀던 밴 플리트 장군의 도움은 정말로 컸습니다. 그는 마치 히딩크 감독처럼 국군에 대한 명확한 처방을 내렸고 직접 처치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밴 플리트는 국군이 중공군만 보면 도망치는 이유를 훈련부족과 지휘관 자질부족으로 결론내리고 전선 옆에 훈련장을 만들어국군을 맹훈련시켰습니다. 또한 최초의 4년제 육사인 육군사관학교가 그의 손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밴 플리트 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다음해에 벌어지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됩니다. 한국군의 아버지 밴 플리트 (ruclips.net/video/agvNMsb64yI/видео.html)
용문산전투 직전에도 국군 6사단은 중공군에게 수치스런 패배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패배 후 절치부심하여 국군 6사단은 보복에 성공하여 파로호에 수많은 중공군을 수장시킬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성전투가 용문산 전투 (파로호 전투)에 대한 중공군의 보복 성격이 짙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원래 중공군의 목표는 화천 수력발전소가 있는 파로호까지 밀고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중공군 계획대로 되었다면 정말로 국군으로서는 지금까지도 치유할 수 없는 굴욕적인 패배가 될 뻔했습니다
고지전이 생각하면 할 수록 안타까운 싸움입니다. 고지전은 정확하게 51년 7월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그 유명한 파로호 전투가 51년 5월에 있었죠. 이게 통쾌한 승리의 마지막입니다. 싸울 의미도 없고 드라마틱함도 없는 그런 기간입니다. 왜냐하면 전선 변화는 없고 사람만 갈려나갔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이 때부터 국군이 강력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 ruclips.net/video/agvNMsb64yI/видео.html (한국군의 아버지 밴 플리트) 바로 밴 플리트 장군의 특훈이 이때부터 빛을 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강해진 국군은 실질적으로 땅을 넓히는데 전혀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잘 봤습니다. ^^ 역시 그야 말로 기동방어의 정석이네요 ^^ 적의 공세종말점 까지 끌어 들인 후 포위 섬멸 전과확대 ㄷㄷ 명장은 알렉산더 같은 타고난 명장도 있겠지만 공부 분석 훈련 무엇보다도 실전 경험을 통해 이뤄짐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리고 이때 올라갔으면 글세 또 고생 했을 거라 봅니다. 잘 막았다고 봐요 ㅠㅠ 그나저나 중공군은 보면 볼수록 무섭네요 ㅠㅠ 저렇게 전술 전략적 다양성을 지닌 군대이니 ㅠㅠ 진짜 한미동맹이 아니라면 고구려처럼 어느 정도 승리는 할 수 있어도 결국 말라죽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ㅠㅡㅠ
이 역사는 오히려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진행형이기에 더욱 각별합니다. 중공군은 끝까지 국군을 승리의 제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휴전체결은 어짜피 기정사실이었고 막판에 국군을 크게 격파하고 휴전을 하려고 했던 것이 마오쩌둥의 복안이었습니다. 결국 국군은 패배했고 그렇게 휴전이 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은 반공포로를 석방하며 휴전회담을 방해합니다. 때문에 마오쩌둥은 또 국군을 공격했고 그래서 우리가 아는 그 금성전투의 막이 오르게 됩니다. 금성전투에서 국군이 달라진 점은 반격을 했다는 점입니다. 완전한 영토회복엔 실패했지만 미군의 도움이 없이 반격을 했다는 것이 대단했습니다.
이렇게 대영토 대인구 국가와 싸우는 게 어려운데 거의 혼자 힘으로 없는 자원 끌어모아 최대한 국토의 지리 기후를 이용해서 싸워 나름 독립을 만들어낸 핀란드 참으로 대단 합니다. 그리고 독립을 민족에게 선물하고 모든 책임을 진체 스위스로 망명한 만네르하임 원수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ㅠㅠ
@@김민규-e3d4i 사실 수오미 기관단총은 소련이 먼저 생산한 파파샤 기관단총을 카피한 것 이었죠 ^^ 근데 투하제프스키 원수가 추진 하던거라 스탈린이 대숙청하면서 창고에 쳐박아 버렸는데 겨울전쟁때 핀란드 군이 밤에 스키타고 와서 드르륵 갈기고 도망가면 소련군이 허둥지둥 하는게 반복되었죠 ㅋㅋ 근데 이차대전 부터는 이걸 대량 생산해서 제파전술때 드르륵 드르륵 갈겨 대니 독일군은 ㅠㅠ
전투효과성에는 병사 수뿐만 아니라 전략과 전술, 무기 기술, 군사 규율, 병사의 전투 경험과 전투 의지(용기)도 포함됩니다. 인적자원을 평가해보면 사실상 북한과 남한의 현지군이 인적자원이 가장 많은 군대다. 전쟁 전반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군은 유엔군에 비해 수적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군의 전술은 우월한 병력을 집중시켜 고립된 적들을 포위하고 섬멸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중국군은 무기와 화력 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지만, 다른 면에서는 인류 역사상 경보병 최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장진호전투에서는 중국군은 미리 정해진 전장에 도달해 후퇴하는 미군을 포위하기 위해 14시간 만에 북한 북부 산길 72.5km를 달려 결국 10분 만에 전장에 도착했다. 퇴각하는 미군보다 차로 몇 분 일찍. 평지가 아닌 북한의 산길이었고, 중국군은 무기와 식량을 싣고 14시간 연속 도보로 달렸고, 적군이 전장에 도착하자 곧바로 퇴각을 막기 위한 전투 준비에 나섰다. 이에 비해 당시 한국군의 장교들은 일본이 퇴각하고 남은 보조병이나 신병들에 불과했고, 대부분 전투 경험과 전투 의지가 전무해 중국군과의 대결이 전혀 불가능했다.
@테스트 지금 상태로는 북진통일은 힘들다고 봐요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봐도요 북한의 빚을 우리나라가 탕감해주기 위해서라던가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 최악으로 가고 있는 군 지휘의 문제를 미국의 능력으로 커버쳐줘야 하는데 주한미군은 반 정도는 우리나라 군을 지휘해주기 싫다 이런 눈치고요 아직 러시아가 싸지른 병마가 안끝났다고 봐요 우리나라는 정말 이럴 때일수록 전투훈련 전술모의는 잘해야 할텐데요
그래도 한때는 백암산, 적근산까지 빼앗기고 더 밀려났지만 이들을 탈환한 채로 금성천까지 다시 올라온 채로 휴전하게 된 것은 천만 다행입니다. 지형을 보면 춘천-화천-금성 축이 백암산을 정점으로 남쪽,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고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백암산을 빼앗겼으면 화천은 물론 춘천 분지까지 다 위험해지고 조양IC근처까지 쭉 밀려났을 위험이 너무 컸습니다
바보야 재명이가 대통령 안된게 대한민국에 큰 영광이고 하늘이 도운거다 바보 또라이야 넌 재명이를 신처럼 떠받드는 골수 좌빠리냐? 친북 공산주의자의 대표적인 놈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놈 자기의 말에 반기를 드는놈은 어떻게 해서든 잔인하게 보복을 하는 이재명이다 정신 차리고 살아라 피흘려서 목숨바처 싸운 선열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공산화 되어 지금의 북한처럼 굶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테스트 님 말도 맞습니다. 북한이 38선으로 원상복귀를 주장한 이유들은 1. 38도선 시절에 비해 더 잃어버린 영토 면적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38도선 이남 공산측 점유면적 = 2500제곱킬로미터 임진강 이남으로 인민군이 내려온다는 것 자체가 방어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 5. 경기도 북동부와 강원도에서 방어와 공격에 유리한 여러 고지들과 산맥들을 선점 6. 개성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돌려주지만 어차피 송악산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다 그대로 북한 영토라 우린 개성 개발과 방어 불가능하고 북한은 산 위에서 일방적으로 개성 감제하고 도발할 수 있습니다 7. 연백평야와 옹진반도를 포기하지만 강과 바다로 격리된 지형인데다 멸악산맥 라인이 다 북한 땅이라 전선이 길어져도 북한은 방어가 수월한 반면 우리는 방어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합니다 8. 철원과 김화를 다시 찾아 영서지방과 경원선 라인에서 황해도 동부 (토산,신계,수안)을 거쳐 평양으로 직으로 가는 통로를 다시 찾고 황해도-강원도 간 동서 연결이 매우 유리해집니다
사실 금성전투는 말씀하신 것처럼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중공군에게 당하기만 했던 국군이 그나마 중공군을 저지해내고 자체 반격까지 가해서 어느정도 영토를 회복한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이 전투는 만슈타인이나 롬멜, 구데리안과 같이 지휘관의 전술이 빛났던 전투도 아니었고 국군 병사 개개인의 노력이 빛을 발했던 전투였으니까요.
지휘통제권이 없어 한국군이 중공군의 밥이 된것이 아니라 한국군 자체가 사병에서 부터 장교에 이르기까지 완전 인간쓰레기들이었다고 하잔아요. 미군 보급품만 빼돌려 암시장에 팔아 먹을려고 날뛰는 인간쓰레기에 불과한 한국군에게 먼 독자적인 지휘권 통제권을 맞기나요. 만약 미군이 한국군을 컨트롤 하지 않았다면 미군은 완전 똥바가지 뒤집어 썻겠지요
밴 플리트 장군은 미군의 장군들 중 유일하게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간 장군입니다. 사실 그가 군을 아예 떠난 이유도 자신의 원산상륙작전 계획을 당시 트루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는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미 8군 사령관직에 더 이상 있어봤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밴 플리트 장군 최종회에서 지루한 고지전에서 벗어나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대해 다뤘습니다. 한국군의 아버지 밴플리트 장군 최종회 ruclips.net/video/agvNMsb64yI/видео.html 그 후임으로 온 장군이 멕스웰 테일러 장군인데 당연히 워싱턴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Do you still believe in the myth of “human wave”? The so-called human wave tactic proved completely useless in World War I, when the weapons were only rear mounted rifles and water-cooled Maxim machine guns. In the first battle, the number of Chinese troops participating in the war was only over 350000, less than the total strength of the United Nations army, but they also swept through the United Nations army.
At the beginning of the CCP's intervention, even the world's most powerful military was unfamiliar with the CCP's tactic. But the U.S. military is about to find out that the Chinese army only had a maximum of eight days of supply. The U.S. military then learns that the Chinese will retreat on their own after eight days of firepower interdiction.
그것은 반공포로 석방의 의미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이승만의 진짜 목적은 포로 때문이 아닙니다. 휴전을 하기 싫어서 미국과 공산측의 협상을 망쳐놓으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또한 맘대로 휴전을 하려는 미국에게 한방을 먹이는게 목적이었습니다. 단순하게 포로를 빼내려는 것이 아닌데 그걸 다들 모르더군요. 이것은 이념과 관계없이 팩트를 얘기한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반공포로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이승만에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제안합니다. ruclips.net/video/H9NHwqvJyX8/видео.html (한미 상호방위조약 비하인드 스토리)
금성전투는 2번에 걸쳐 일어난 셈이었습니다. 1953년 6월, 그리고 7월입니다.
04:56 부분에 실제 중공군의 진격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ㅛㅛㅆ
상감령 전투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해 주세요!! 북한은 대승이라고 하고 있고, 남한은 저격능선전투라고 하면서 정신승리 하고 있고...
연합군은 나라의 평화와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 해야 이세상이 안전할 것입니다.
전투효과성에는 병사 수뿐만 아니라 전략과 전술, 무기 기술, 군사 규율, 병사의 전투 경험과 전투 의지(용기)도 포함됩니다. 인적자원을 평가해보면 사실상 북한과 남한의 현지군이 인적자원이 가장 많은 군대다. 전쟁 전반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군은 유엔군에 비해 수적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군의 전술은 우월한 병력을 집중시켜 고립된 적들을 포위하고 섬멸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중국군은 무기와 화력 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지만, 다른 면에서는 인류 역사상 경보병 최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장진호전투에서는 중국군은 미리 정해진 전장에 도달해 후퇴하는 미군을 포위하기 위해 14시간 만에 북한 북부 산길 72.5km를 달려 결국 10분 만에 전장에 도착했다. 퇴각하는 미군보다 차로 몇 분 일찍. 평지가 아닌 북한의 산길이었고, 중국군은 무기와 식량을 싣고 14시간 연속 도보로 달렸고, 적군이 전장에 도착하자 곧바로 퇴각을 막기 위한 전투 준비에 나섰다.
이에 비해 당시 한국군의 장교들은 일본이 퇴각하고 남은 보조병이나 신병들에 불과했고, 대부분 전투 경험과 전투 의지가 전무해 중국군과의 대결이 전혀 불가능했다.
금성전투가 맞는지 아닌지는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현재 부산 UN기념공원(구 UN묘지)에 71년째 잠들어 계시는 영국군베테랑 할아버지들의 청동으로 된 묘석을 보면 전사하신 날짜가 휴전협정 약 1달전인 1953년 6월사이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 이때 전투로 돌아가신게 아닌가하는 강한 추측이 드네요
(묘석을 보며 제가 가장 눈물나는게... 그 당시 돌아가신분들중에는 17세도 있었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금화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셨단 말을 들었습니다. 다리관통상을 입고 평생 고통스럽게 사시고 자식들 먹여살리느라 고생하신 우리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
6사단 2연대의 희생은 처음 알았네요...한번 전투에 6번의 진내사격 요청이라니 믿어지질 않습니다...선배님들의 고귀한 희생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컨텐츠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진격나팔과 함께 돌진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돌격은 공포스러웠습니다.
6사단 2연대는 아군이 후방에 방어선을 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얼마나 중공군의 공격이 거셌으면 아군 피해를 생각하지 않고 6차례나 진내사격을 요청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토끼다니?전략상 후퇴라고 하는겁니다! .전 청성 출신은 아닙니다.
@@WHCAV-u5p 유개호라니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극한 상황 속에서 그런 방어진지 구축이 가능 하다고 생각 하시나요?
@@WHCAV-u5p 조국을 지켜낸 선배들의 노고를 네 잡지식이 무조건 옳다는 착각으로 매도하지 마라
6사단 2연대 2대대 필승
생각하면 끔찍한데 죽음을 각오하고 눈물흘리면서 싸웠을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매입니다 피로지킨 이 나라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방력을 강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귀하게 산화한
6사단 2연대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이래저래 6.25전쟁에서 6사단의 활약이 컸죠.
중공군의 선봉이었던 조선족에게 각종 혜택을 주면서 6.25참전 용사는 홀대하는 미친 나라
조선족이라는 호칭은 1953년에 만들어진건데 무식한 티를 내네. 그게 조선인들이지 조선족이냐. 중국땅에서 일본군하고 싸우던 항일투사, 독립군들인데 이상한 소리하네
@@팩트폭격-r9g ? 만주살던 사람 99%는 그냥 기회찾아간사람들임 일본이 만주에 영향력 높이려 보낸거고
@@Junhodkim 김일성.방호산 같은 사람들은 중국에서 항일하던 독립투사들이엿음.알아 먹었음?
@@팩트폭격-r9g 마적떼 였다니깐 ㅉ
@sjk3898 이런 무식한놈
또 6사단 2연대야? 대단하다 용문산에서도 금성에서도
휴전직전에 중공군 총공세로 생각보다 여러곳에서 북한에 영토를 많이 뺐겼네요 ㅠㅠ
그렇습니다. 중공군은 사실 몇번이나 서울을 다시 뺏으려고 했었고 집요하게 국군만 팼습니다.
국군이 뚫리면 미군이 막거나 다른 유엔군 부대가 막은 사례가 무척 많습니다.
그나마 금성전투에서 다시 반격을 하여 어느 정도 땅을 탈환한 것은 밴 플리트 장군의 특별훈련으로 국군의 전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군의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 2부 ruclips.net/video/agvNMsb64yI/видео.html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망하지 않은것만 해도 천만다행 이라 생각해야죠
@@만물상자TV전쟁의신 남조선군 아버지 외국인인가요??? 괴뢰군 맞네
뼈아픈 사실 하나는 우리가 휴전이후 돌려받은 국군 포로가 8천여명에 불과하다는 사실. 수만명으로 추산되는 포로들이 영원히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함
빨갱이놈들은 태생이더러움. 6,25를생각하며 국력이약하면 우리맘대로되는게없음,멸공.
북한에 영원히 억류된 국군포로 대다수가 탄광노역에 시달렸으며 일부는 소련으로 보내지기도 함
남한도 반공포로27000명 무단 석방함. 북한이 여기에 열받음.
6:51 이승만의 깡패 기질에서 나온 반공 포로 독단 석방 때문에 국군포로 수만명 석방 거부함
전승!!!...선배님께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벤플리트 장군에 대한 기억이 크게 남네요. 이런 중요한 위인을 이제서야 알게된게 부끄럽네요
본 채널에서 밴 플리트 장군에 대한 거의 모든 에피소드를 다 다뤘습니다.
막판까지 중공군을 때려잡고 한치라도 한국의 영토를 넓히고자 했던 밴 플리트.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도 100%의 궁합을 과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금강산을 탈환하기 위해 신명나게 작전계획을 짰던 일과
ruclips.net/video/R8PVjkC8sXA/видео.html
군대를 그만두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를 주한미국대사에 임명하려고 하자 거절한 일입니다.
ruclips.net/video/ZIX4zkys39Y/видео.html
그런데 그 거절사유가 정말로 감동적입니다.
"내가 주한미국대사가 되면 나는 미국의 이익을 한국에 관철시켜야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아마 한국사람이었어도 이렇게까진 안했을 것입니다.
와.. 미국한테는 몰라도 한국에게는 영웅이시네요
21년전 오늘 전역 했는데 딱 좋은 타이밍에 올려 주셨네요
아 저 때 열등한 하등생물들을 싸그리 처치해 버렸어야 했는데 등신 약소국 신세라 못 했던게 아쉽습니다
속시원한 단어선택입니다.저희 조상님들처럼 제게도 기회가 온다면 저또한 공을 세울텐데...
아직 주인을 못찾았으니...
통일되고 우리에게는 고토 회복의 날이 오겠지요.
@@김성태-i6b6j 네 옵니다 반드시!하지만 우선은 단순한 남북통일보단 서쪽을 먼저 쳐서 중원을 확보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선 옛 치우천황의 시대처럼 우리의 옛 민족들과의 연방을 확립해야 합니다.그러면 북쪽은 자연스레 지도부가 정화되고 우리쪽으로 흡수될것입니다.
다들 경제..경제거리는데 그건 정복전쟁으로 해결될겁니다.이건 프로이센의 명재상이던 비스마르크가 쓰던 전략입니다.
북쪽을 먼저 우선시하면 슬라브넘들까지 상대해야 하니 더 힘이 들것입니다.
본인의 선친같은분들이 죽기로싸워기때문에오늘날대한민국이있는것이여 그러므로 6ㆍ25참전국가유공자는 대한민국의 초석이여!
맥스웰이 아니라 벤플리트였으면 한국군 금성천 이북수복 암암리에 모른척 봐줬을것같군요. 벤플리트는 자기가 키운 한국군이 달라진모습에 대견해하며 돌격을 은근허락했을듯
밴 플리트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워싱턴이 대규모 공격작전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뺏긴 영토를 다시 찾자는 명분에는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했을 것입니다.
리지웨이와 멕스웰 테일러 두 사람의 장군은
알아서 워싱턴의 비위를 맞춰주는 스타일이었기에 밴 플리트와는 격이 다른 인물들입니다.
전후 밴플리트는 자신이 금강산을 공격하여 동쪽으로 전선을 올리려고 했는데
아예 합참에 올라가기도 전에 커트한 사람이 리지웨이였다고 두고두고 한탄했습니다.
ruclips.net/video/R8PVjkC8sXA/видео.html (휴전이전에 금강산을 탈환하라)
리지웨이가 자신의 육사 후배였기 때문에 기분이 더 나빴을 것입니다.
당대표라는 인간이 우리북한 우리 김일성 그러는데...미치고 환장하겠다
전쟁이라도 하려고?
윤석열이 푸틴처럼 해 주길 바라는구나
오늘도 좋은 동영상 잘보고갑니다 만물상자 TV [전쟁의신]운영자님 오늘도 좋은 하루 잘보내세요 화이팅입니다 ^^🥰🥰🥰🥰
매번 신화와 같은 승전 내용만 듣고 배우다가 이렇게 전쟁사 전반을 들어보니 참으로 졸전한 적이 많군요. 뼈에 새겨 다시는 이땅에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확실히 댓글보다보면 우리나라 분열을 노리는 종자들이 있다는걸 알게됨
교묘히 녹아들어 분열을 야기함
마치 625때 그런것처럼
6,25때한국국민대다수가 휴전을반대햇음. 왜냐 이왕전쟁나서 많이죽고 다뿌서저초토화된
이마당에 휴전은무슨휴전이냐 끝장을봐야한다는생각이 충만해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의의지는 국민의절대적지지를 받은것으로알고있다
잘 싸웠죠 그러나 지도를 보세요? 중동부전선은 조금 위로 올라 갔지만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은 약간 내려왔어요 휴전 막바지까지 싸웠지만 그렇게된거죠.
후방의 화력지원이 있었으니 힘이 났던게지요.
잘봤습니다
우리는 미군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유를 민주주의 를 지켜준 고마운 나라 미국
@@coinwhere미국때메 공산화 못시켜 아쉬운사람의 댓글
@@Bjhakikjin 요즘 저런 중공댓글부대들이 유튜브에서 활게를침
휴전협상 진행하면서 대대적인 공격으로 치명타를 입히는게 공산군의 전술이기도 하지요 예견하고 긴장을 했더라면 땅을 빼았기지 않았을텐더~ 어쨌든 그만해도 다행입니다
이 금성전투는 그 동안 국군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역설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금성전투는 미군이 화력지원만 해주고 개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불과 2년전이었다면 국군은 중공군이 공격만하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후퇴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금성전투에서는 국군이 자체적으로 반격까지 성공시켰습니다.
역시 5사단 대단해
내가 11사단 나왔는데 친구들 군대 얘기들어봐도 나만 왜그리 빡센 군생활했나 했더니 이래서그랬구나 그리고 11사단기를 뺏겨서 부대 깃발이 없다는데 여기서 빼겼는지도 궁금 해결해주시면 감사^^
4키로 뺏긴게 아쉽네요
중국예나 지금이나 악당 ㅡㅡ^
장렬 했던 우리 선조들,,,언제까지나 잊지못할거,,,
괴뢰군 주제에 장렬하기는 개뿔
@@khcxtvczjb8300 북조선 빨갱이?
전쟁은 첩보 전 이다 적군이 아군으로 변장해서 침투했는데 멍 때리다가 후방 연락망 두절 요인 암살 당하면 주력 부대는 손도 못써보고 괘멸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훈련 각 부대와의 치밀한 협력 작전 전쟁 에서의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위가 높을수록 그 두려움을 이겨 낼수 있도록 솔선수범 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무지했던 국군이 엄청난 변화를 갖게 된 것은 미국의 지원 때문이죠.
특히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당시 국군 스스로가 그렇게 불렀던 밴 플리트 장군의 도움은 정말로 컸습니다.
그는 마치 히딩크 감독처럼 국군에 대한 명확한 처방을 내렸고 직접 처치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밴 플리트는 국군이 중공군만 보면 도망치는 이유를 훈련부족과 지휘관 자질부족으로 결론내리고 전선 옆에 훈련장을 만들어국군을 맹훈련시켰습니다.
또한 최초의 4년제 육사인 육군사관학교가 그의 손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밴 플리트 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다음해에 벌어지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됩니다.
한국군의 아버지 밴 플리트 (ruclips.net/video/agvNMsb64yI/видео.html)
전후세대의지금군은튼튼하려나
완전군장에1Km의행군가능한지?
개인총기의0점조준슨잘되있는지?
분대및소대단위의공격위치와방위위치는숙지했는지?
생사가 달린 문제엔,....
지휘관 판단이 중요하고 . 보듯이 자주적인 행동 . 사고하는 용기가 반듯이 필.
스스로 판단하는 생을 즐기자.
아버지 모습보는것같아마음이 쨍하내요. . 제5사단 창립 념 사진속 ..
스탈린은 2차대전때부터 포로송환협상은 항상 저런 고집이었죠. 니것은 내꺼 내것도 내꺼
국군이 예전과달리 훈련이 돼있었지만 그래도 중공군은 상대적으로 만만하다 여기고 시도한
마지막전투!! 중공군들을 도륙하고 묻어버린 파로호 용문산전투도 전설이죠^^
용문산전투 직전에도 국군 6사단은 중공군에게 수치스런 패배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패배 후 절치부심하여 국군 6사단은 보복에 성공하여 파로호에 수많은 중공군을 수장시킬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성전투가 용문산 전투 (파로호 전투)에 대한 중공군의 보복 성격이 짙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원래 중공군의 목표는 화천 수력발전소가 있는 파로호까지 밀고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중공군 계획대로 되었다면 정말로 국군으로서는 지금까지도 치유할 수 없는 굴욕적인 패배가 될 뻔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저녁에 파로호의 경치를 보셨나요?참으로 아름답죠!행군하며 보는 맛이란...크~
@@만물상자TV전쟁의신 노도부대의 주둔지였습니다.
@@user-mz3ho4cm8v 이 계절에 가보면 멋질 것 같네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오늘 유튜브 관리자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얼마전 제가 조선족의 댓글을 신고한적이 있었는데 확인후 조처해 준다더군요.아마 제 댓글을 항시 봐준듯.ㅋ
10만명을 넘겨야할 채널이 아직 1만78만이라니.... 빨리 10만 가즈아~
알아봐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어느 곳에서도 말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많은 주제를 다뤄왔습니다.
시청자와 구독자 여러분의 더 큰 성원이 필요합니다.
이런 채널은 죽었다 깨어나도 5만넘지 않는다 쓰레기채널.....
필승!!!
육군 제3513부대!!!
포대?
7393-3513- 반갑습니다.
연합군이 더 강해져야 겠지요!
잘보있습니다 혹 성우분이세요? 목소리 들을때마다 생각나는 성우분이계셔서요
배우 분도 생각나네요^^ 신세계에서 고국장 역할 하시는 분
@@유유-v7z 배우 주진모 님~말이쥬?ㅎㅎㅎ
영화 고지전 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죠.. 휴전협정이 이루어졌슴에도 그 사이에 한뼘이라도 더 많은 영토를 얻어내기 위해서 무고한 생명들이 갈려가는 모습들...그들은 그저 장기판의 "졸"에 지나지 않았다..
고지전이 생각하면 할 수록 안타까운 싸움입니다.
고지전은 정확하게 51년 7월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그 유명한 파로호 전투가 51년 5월에 있었죠. 이게 통쾌한 승리의 마지막입니다.
싸울 의미도 없고 드라마틱함도 없는 그런 기간입니다.
왜냐하면 전선 변화는 없고 사람만 갈려나갔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이 때부터 국군이 강력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
ruclips.net/video/agvNMsb64yI/видео.html (한국군의 아버지 밴 플리트)
바로 밴 플리트 장군의 특훈이 이때부터 빛을 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강해진 국군은 실질적으로 땅을 넓히는데 전혀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브로큰 애로우
정말로 힘든 결단입니다
우리나라 너무 불쌍해여😢😢😢
@테스트 그래도 우리나라는 불쌍해요ㅠㅠ
멸공!!!
멸남 통일 🇰🇵🇨🇳🇷🇺
잘 봤습니다. ^^
역시 그야 말로 기동방어의 정석이네요 ^^
적의 공세종말점 까지 끌어 들인 후
포위 섬멸 전과확대 ㄷㄷ
명장은 알렉산더 같은 타고난 명장도 있겠지만 공부 분석 훈련 무엇보다도 실전 경험을 통해 이뤄짐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리고 이때 올라갔으면 글세 또 고생 했을 거라 봅니다.
잘 막았다고 봐요 ㅠㅠ
그나저나 중공군은 보면 볼수록 무섭네요 ㅠㅠ
저렇게 전술 전략적 다양성을 지닌 군대이니 ㅠㅠ
진짜 한미동맹이 아니라면 고구려처럼 어느 정도 승리는 할 수 있어도 결국 말라죽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ㅠㅡㅠ
한족이 아니라 조선족이 대단했던것입니다.
6사단2연대2중대.반갑다.다안죽었제.연락하며살자
세상 국가들이 모든 국가들이 꿈과 희망으로 사는 평화주의 시대인데 유독 인권과 자유가없는 공산국가에게 속지 맙시다.
빼앗낀 우리땅 목숨바처 찼아 놓으니 부동산 투기꾼들이 다 차지 해 버렸네
1.2천 찍고 멸공에 횃불 노래와 함께 시작 합시다
멸공으로 다스려라 ❤😂
감사드립니다. 큰 힘이 되네요.
절대로 물러서지마!!!!!!!! 죽기살기로 싸워!!!!!!!!!! 도망친곳에는 낙원은 없다!!!!!
총한번 안쏴본 국군들 대부분이니 총은 하늘에 쏘고 더덜 떨다 도망가고 국군때문에 유엔군 어마어마하게 죽었다 나중에야 정신차리고 정신이 돌아와 결사항전했으니 다행
우리 50년대에 부르던 노래
공산오랑캐의 침략을 받아
공산오랑캐의 침략을 받아
싸우는 국민들 피를 흘린다
동포야 일어나자 나라를 위해
손잡고 백두산에 태극기 날리자
이런 역사는 배운적이없다는게 매우 안타깝네요 일제 역사만 교과서고 티비고 정신쇄뇌수준으로 보고듣는데 625사변 역사는 잊혀지고있다는
이 역사는 오히려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진행형이기에 더욱 각별합니다.
중공군은 끝까지 국군을 승리의 제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휴전체결은 어짜피 기정사실이었고 막판에 국군을 크게 격파하고 휴전을 하려고 했던 것이 마오쩌둥의 복안이었습니다.
결국 국군은 패배했고 그렇게 휴전이 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은 반공포로를 석방하며 휴전회담을 방해합니다.
때문에 마오쩌둥은 또 국군을 공격했고 그래서 우리가 아는 그 금성전투의 막이 오르게 됩니다.
금성전투에서 국군이 달라진 점은 반격을 했다는 점입니다.
완전한 영토회복엔 실패했지만 미군의 도움이 없이 반격을 했다는 것이 대단했습니다.
무슨 개소리냐! 좌빨놈들이 625사변 역사를 잊혀지게 할려고 온갖 짓을 했는데..
적의 약점을 이용한 선제공격만이 승리의 지름길
테일러 장군 얼굴이 에로아호 라는 핀란드 배우랑 얼굴이 비슷하군요 이배우는 언노운 솔저라는 영화에 안티로카를 맞기도 햇죠 언노운 솔저는 배경이 겨울전쟁다음에 핀란드에 카렐리야를 위한 복수극인 게속전쟁이기도 하죠
이렇게 대영토 대인구 국가와 싸우는 게 어려운데 거의 혼자 힘으로 없는 자원 끌어모아 최대한 국토의 지리 기후를 이용해서 싸워 나름 독립을 만들어낸 핀란드 참으로 대단
합니다.
그리고 독립을 민족에게 선물하고 모든 책임을 진체 스위스로 망명한 만네르하임 원수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ㅠㅠ
실제 맥스웰 테일러 장군 사진입니다. 1944년 9월 그 유명한 마켓 가든 작전에도 참여한 인물이죠.
밴 플리트가 떠난 이후 후임으로 미 8군 사령관에 앉은 인물입니다.
@@유유-v7z 수오미 기관단총이 핀란드군에 전투능력이 향상 시키기도 햇죠 겨울전쟁때도 사용돼긴햇으나 보급양이 적엇기 때문에 게속전쟁때 거이 주력으로 사용하기도 햇습니다 겨울전쟁때도 잘싸웟지만 독소전쟁과 함께 이어간 게속전쟁에서도 핀란드군에 전투능력은 굉장히 능숙하기도햇죠 소련이 대숙청으로인해 지휘체계가 박살나 겨울전쟁보다 수월해지긴하나 히틀러에 삽질로 독일군이 쇠퇴하면서 게속전쟁은 물거품이 돼기도햇죠 약소국이긴해도 열강급이상으로 잘싸우는 나라이기도햇죠
@@만물상자TV전쟁의신 구글에서 보면 얼굴이 다르게 보엿습니다 만물상자님 보여주신 테일러장군 얼굴은 에로아호라는 핀란드 배우와 굉장히 닮앗습니다 우연이긴합니다
@@김민규-e3d4i 사실 수오미 기관단총은 소련이 먼저 생산한 파파샤 기관단총을 카피한 것 이었죠 ^^
근데 투하제프스키 원수가 추진 하던거라
스탈린이 대숙청하면서 창고에 쳐박아 버렸는데 겨울전쟁때 핀란드 군이 밤에 스키타고 와서 드르륵 갈기고 도망가면 소련군이 허둥지둥 하는게 반복되었죠 ㅋㅋ
근데 이차대전 부터는 이걸 대량 생산해서 제파전술때 드르륵 드르륵 갈겨 대니 독일군은 ㅠㅠ
아ㅠㅠ 14000명이나 돌아가셨네
雖死不敗(수사불패)
靑星鬪魂(청성투혼)
비록 죽을 지언정 패하지는 않는다!
조국을 위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1950년대여서 그런거지...요즘은 안통함.. 아쉬울뿐입니다
요즘은 당연히 안통하겠지 ㅂㅅ아
젓가락.오뚜기.열쇠.
간도지방도 되찾아야합니다. 우리의 영토입니다. 입진왜란 전에 이순신 장군께서 주둔하셨던 곳도 우리의 영토입니다.
그 똥땅 먹어서 뭐함? 꽃게나 잡을려나?
@@namchangp.1721 거기가 기름등 자원이 풍부하죠.그리고 한족다음 슬라브를 치는데 꼭 필요한 보급기지가 될겁니다.
서울 =중국 의 영토 (한사군)
서울 반환
힘도없으면서 무시기꿈꾸는소리여! 힘을기르시오 힘을…
전투효과성에는 병사 수뿐만 아니라 전략과 전술, 무기 기술, 군사 규율, 병사의 전투 경험과 전투 의지(용기)도 포함됩니다. 인적자원을 평가해보면 사실상 북한과 남한의 현지군이 인적자원이 가장 많은 군대다. 전쟁 전반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군은 유엔군에 비해 수적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군의 전술은 우월한 병력을 집중시켜 고립된 적들을 포위하고 섬멸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중국군은 무기와 화력 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지만, 다른 면에서는 인류 역사상 경보병 최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장진호전투에서는 중국군은 미리 정해진 전장에 도달해 후퇴하는 미군을 포위하기 위해 14시간 만에 북한 북부 산길 72.5km를 달려 결국 10분 만에 전장에 도착했다. 퇴각하는 미군보다 차로 몇 분 일찍. 평지가 아닌 북한의 산길이었고, 중국군은 무기와 식량을 싣고 14시간 연속 도보로 달렸고, 적군이 전장에 도착하자 곧바로 퇴각을 막기 위한 전투 준비에 나섰다.
이에 비해 당시 한국군의 장교들은 일본이 퇴각하고 남은 보조병이나 신병들에 불과했고, 대부분 전투 경험과 전투 의지가 전무해 중국군과의 대결이 전혀 불가능했다.
백마고지전투는?
중공군이 그렇게 무서우면 남은 채피랑 셔먼으로 구획방어를 하면서 자기 참호 바깥을 잘 구축했어야지
너같으면 잘도 그렇게 하겠냐 ㅂㅅ아
@테스트 방어에서 진격까지 제대로 도와줬으면 좋았을텐데
@테스트 야로나 걸린 땅이랑 스탈린도 죽고 연방도 죽은 단체덕분에 우리나라와 미국은 50년 이상을 당장 바로 앞에 보이지 않는 적을 두고 긴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테스트 지금 상태로는 북진통일은 힘들다고 봐요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봐도요 북한의 빚을 우리나라가 탕감해주기 위해서라던가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 최악으로 가고 있는 군 지휘의 문제를 미국의 능력으로 커버쳐줘야 하는데 주한미군은 반 정도는 우리나라 군을 지휘해주기 싫다 이런 눈치고요 아직 러시아가 싸지른 병마가 안끝났다고 봐요 우리나라는 정말 이럴 때일수록 전투훈련 전술모의는 잘해야 할텐데요
북한은 버리고 중원을 노려야 합니다.옛 백제방식으로! 북쪽은 포위만 하면 내부적으로 바뀌게 되어 있어요.
그래도 한때는 백암산, 적근산까지 빼앗기고 더 밀려났지만 이들을 탈환한 채로 금성천까지 다시 올라온 채로 휴전하게 된 것은 천만 다행입니다. 지형을 보면 춘천-화천-금성 축이 백암산을 정점으로 남쪽,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고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백암산을 빼앗겼으면 화천은 물론 춘천 분지까지 다 위험해지고 조양IC근처까지 쭉 밀려났을 위험이 너무 컸습니다
백암산
부디 우리 조국의 리더들이 여기 애국자들의 고견들을보고 써주어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국군은 평양 황해도전부 경기도북부까지 모조리 빼앗기고 나서야 정신차린
625전쟁❤❤❤ ■ 중공군130만명 VS 유엔군16국 240만명 .... 중공군 알보병들 살벌하네❤❤❤❤
중공군 냄새가 심하지
조선족이네 . . 우리나라에서 빨리 쫒아내야된다.
저런 많은 희생으로 일으킨 나라인데.. 우리 김일성주석님께옵서 노력하신... 이런 색기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기어 나오고 지지를 하고 있다
시끄럽다 극우새끼야 민주당 대통령 후보 빨갱이 만들지 마라.
@@sangmoohwang9565닥쳐라! 따지고보면 윤석열 같은 함량미달을 대통령 만든건 다 혜경궁 남편새끼, 준용이 애비놈, 애미추 그리고 국이새끼다!
바보야 재명이가 대통령 안된게 대한민국에 큰 영광이고 하늘이 도운거다 바보 또라이야
넌 재명이를 신처럼 떠받드는 골수 좌빠리냐?
친북 공산주의자의 대표적인 놈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놈 자기의 말에 반기를 드는놈은 어떻게 해서든 잔인하게 보복을 하는 이재명이다 정신 차리고 살아라 피흘려서 목숨바처 싸운 선열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공산화 되어 지금의 북한처럼 굶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식퍼주기정권은 다시나오면안됨 남북관계는 지난50년간변화없이적대적임
이재명 지지하면 무뇌지
금성전투는 타이밍이 참 안좋았죠. 딱 휴전 직전에 하는 바람에 영토 탈환도 못하고, 무엇보다 많은 국군 포로가 이때 발생함. 느그가 반공포로 2만6천명을 석방했으니 그 숫자 만큼 포로를 더 만들면 되애~~ 이러면서 벌인 전투가 금성지구 전투임.
교육안되고 경험적은 어린 지휘관들도 큰 문제이긴 했어요
그게가장큰문제임. 중국은8년 항일전쟁 국공내전을 껵은 경험이 풍부함 군대임. 한국군은 아무경험없는 군대임. 오죽하면 북한이 통일할뻔했음. 전쟁이든 스포츠든 실전경험이 가장중요함. 미국이 지구최강인이유임. 한국군도 경험이 쌓이면서 중국군을 박살냈음. 중국인들은 항상물량빨임. 개인전투력은 아시아 최하위임.
이 설명이 바로 중국영화 The sacrifice 다음 부터군
전쟁영웅 맥아더장군 밴클리프징군 백선엽장군
그러나 셋 다 중국한테 패한 머저리들임 ㅋㅋㅋ특히 백선엽은 더함
38도선으로 분단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불리하고 북한에게 더 유리했던 이유들이 많지만 그 중 하나가 백암산을 포함한 화천이 높고 험한 고지들이 많아 분지 형태의 춘천이 화천의 북한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감시당하는 형세였기 때문입니다
@테스트 님 말도 맞습니다.
북한이 38선으로 원상복귀를 주장한 이유들은
1. 38도선 시절에 비해 더 잃어버린 영토 면적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38도선 이남 공산측 점유면적 = 2500제곱킬로미터 임진강 이남으로 인민군이 내려온다는 것 자체가 방어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
5. 경기도 북동부와 강원도에서 방어와 공격에 유리한 여러 고지들과 산맥들을 선점
6. 개성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돌려주지만 어차피 송악산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다 그대로 북한 영토라 우린 개성 개발과 방어 불가능하고 북한은 산 위에서 일방적으로 개성 감제하고 도발할 수 있습니다
7. 연백평야와 옹진반도를 포기하지만 강과 바다로 격리된 지형인데다 멸악산맥 라인이 다 북한 땅이라 전선이 길어져도 북한은 방어가 수월한 반면 우리는 방어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합니다
8. 철원과 김화를 다시 찾아 영서지방과 경원선 라인에서 황해도 동부 (토산,신계,수안)을 거쳐 평양으로 직으로 가는 통로를 다시 찾고 황해도-강원도 간 동서 연결이 매우 유리해집니다
@@게딱지-x3i 38선 복귀
70년 지난 지금도 한국 군 작전 지휘권은 타국에 있으며, 이는 한국의 자주국방의 수호 의지를 꺽는 약한 고리를 의미한다.
이제는 찾아 와야 된다.. 대한민국의 자주 국방 완결을 위해..
한국땅에서 미군과 함께 싸울때의 작전권이 미국에 있는것입니다.
한국군 단독으로 싸울경우 작전권은 한국에 있습니다.
좌파의 선동에 놀아나지 말아주세요
군대는 갖다 왔는지 의심 스럽네 내 군대생활 당시 30mm이상 경기관총 발사도 미8군 사령관 허가가 있어야 했다 교전규칙에 의거... @@박시영-g5t
금성돌출부를 53년 6월 초까지 유지하고 잇엇는데 6,7월 대공세로 인해 총 332km^2 면적의 영토를 잃게 되었습니다. 서울특별시 면적의 절반 조금 넘습니다
난 6사단 7연대
짱꺠들이야 뭐 지들 나름대로는 변두리 오랑캐 하나 잡는 거에 국력을 올인하고도 지는 게 비일비재했으니;
변두리 오랑캐라뇨?우리 5대 연방 민족은 한족들과 비교해서 크고 높습니다.
베트남은 등소평이 보낸 중공군 50만명 혼자 격퇴했는데 유엔 16개국이 도와준 것에도 썰린 국군보면 변명이 안됨
단지 소문만 꾸며낸다면... 다음 전쟁에서는 패하게 될 것입니다.
마오쩌둥 같은걸 지도자로 뒀던 중국도 딱하다
이 영상=남괴뽕
사실 금성전투 = 중국군이 남괴군을 학살한 전투.
중공군 인해전술 안했죠
쥔장님 갑작스럽지만 철혈 재상 BISMARCK 의 이야기는 들려 주시지 않으시겠는지요?...왜 국내 모든 밀리터리 유튜버들이 그 사람의 이야기는 빠트리는지...참으로 궁금합니다.우리에겐 명장들과 뛰어난 용사들은 넘쳐납니다.단지 위대한 재상이 없을뿐입니다.
이 충무공도 무인이지만 문으로써 지략으로써 국가를 살렸던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있긴 합니다. 제대로 평가를 못하니 문제이지. 이승만의 진가를 알아보려면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해야만 가능하죠. 10중 89는 그저 독재자 생각만 뽝!!! 박혀 있습니다.
갑작스럽지 않습니다. 제안은 언제나 참고하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괴뢰군
남괴군
@@dprkno.1 미국똥개 일본주구 괴뢰군💩
금성돌출부를 잃어서 사실상 중공군의 승리로 끝나버린 ;;;;;; 😢
말씀하신대로 6월 공격때 이미 금성돌출부를 잃어서 4킬로나 물러났죠.
그러나 국군이 반격에 나서 중공군의 7월 공격이후 빼앗긴 영토는 거의 탈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의 휴전선이 정해졌습니다.
작고하신부친 5사단역습.일부수습
촌 에서 농사 짓다가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 대부분
애국심 이런게 없지
인간도, 국가도 근본은 안변한다는 사실,,,한미동맹은 더욱 중요...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박살내주길 기원합니다
아!하! 치닐패거리드릐 영웅담!안경끼고 두 눈이이 아닌 네눈으로 봐야 할 듯,,,,ㅠ~ 건전하게 시청 할 수 있는 환경이 아쉽네,,,
사실 금성전투는 말씀하신 것처럼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중공군에게 당하기만 했던 국군이 그나마 중공군을 저지해내고 자체 반격까지 가해서 어느정도 영토를 회복한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이 전투는 만슈타인이나 롬멜, 구데리안과 같이 지휘관의 전술이 빛났던 전투도 아니었고 국군 병사 개개인의 노력이 빛을 발했던 전투였으니까요.
지휘통제권이 없는 국군이 정말 화 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결국. 지원을 받는 나라가 아닌
지휘를 받는 나라 ㅠㅠ
최소한 지켜야 할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가?
실력이너무없어서,지금은엄청좋아젓지만 그래도못믿어서…ㅋㅋ
시끄럽다.....잘알지도못하면서.....6.25 50년도...초반부터..중공군과 전투를한국군상황을정확하게..파악하고.야기해.......
지휘통제권이 없어 한국군이 중공군의 밥이 된것이 아니라 한국군 자체가 사병에서 부터 장교에 이르기까지 완전 인간쓰레기들이었다고 하잔아요. 미군 보급품만 빼돌려 암시장에 팔아 먹을려고 날뛰는 인간쓰레기에 불과한 한국군에게 먼 독자적인 지휘권 통제권을 맞기나요. 만약 미군이 한국군을 컨트롤 하지 않았다면 미군은 완전 똥바가지 뒤집어 썻겠지요
막판에 다 못이겻네. 아쉽다
검사라는 새끼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땐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이름없는 민초들이 목숨 바쳐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으면 슬그머니 기어나와 주인 노릇 하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날까지 검사들 중에 한마리라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중공군하고는 참전해야지 나머진 집에서..
너무너무 잘 만든 소중하고 멋진
리뷰같아요
허나. 구간마다
구독
좋아요
구걸하듯이 계속 그러시는것보다
좋은 영상은 구독 구걸보다
더많은 구독자를 모을수 있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컨텐츠 중간에 구독, 좋아요는 사실 숨가쁘게 진행되는 컨텐츠 내용 상
구독자들이 숨좀 돌리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렇치 않아요.
숨돌리는것보다 맥이 끄너지고
좋으면 당연구독하죠. 또 고고 싶으니깐요.
모양만 빠지세요
@@정의로운N 남 영상에 훈수질이여 ㅋㅋ 틀딱 아니랄까봐 나이 똥으로 처먹었네
우리가 왜 포방부가 된것인지 알것 같습니다. 밴플리트 후임 맥스웰 테일러장군은 그냥 휴전 회담 도장찍으로 온놈이였군요 저딴게 군인이라고
밴 플리트 장군은 미군의 장군들 중 유일하게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간 장군입니다.
사실 그가 군을 아예 떠난 이유도 자신의 원산상륙작전 계획을 당시 트루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는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미 8군 사령관직에 더 이상 있어봤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밴 플리트 장군 최종회에서 지루한 고지전에서 벗어나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대해 다뤘습니다.
한국군의 아버지 밴플리트 장군 최종회 ruclips.net/video/agvNMsb64yI/видео.html
그 후임으로 온 장군이 멕스웰 테일러 장군인데 당연히 워싱턴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쨋든 쏘련은 붕괴하고. 중국은
사유재산재를 인정하는 일당 독재이니 됀것 아닙니까.
유튜브 똑바로 정책 집행하시길!
유튜브 똑바로 정책 집행은 무슨 의미인지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아!ㅋ 사실은 전에 몇번이나 유튜브에 경고먹고 정지당해서요.발언이 과격하다더구요.글고 낙지 찬양한다구...;;;중꿔를 욕한다등등.요.아니 나의 조국을 사랑하는것이 뭔 잘못인지...
@@만물상자TV전쟁의신 솔직히 조선족들에겐 별다른 제제가 없는듯 해서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글고 전 낙지를 찬양하는게 아니라 이용하고자 할뿐인데...
@@user-mz3ho4cm8v 애국자시군요.
Do you still believe in the myth of “human wave”? The so-called human wave tactic proved completely useless in World War I, when the weapons were only rear mounted rifles and water-cooled Maxim machine guns.
In the first battle, the number of Chinese troops participating in the war was only over 350000, less than the total strength of the United Nations army, but they also swept through the United Nations army.
At the beginning of the CCP's intervention, even the world's most powerful military was unfamiliar with the CCP's tactic.
But the U.S. military is about to find out that the Chinese army only had a maximum of eight days of supply.
The U.S. military then learns that the Chinese will retreat on their own after eight days of firepower interdiction.
긍성지구 전투에서도 개박살났지
아니 2만5천 반공포로를 종전도 안된 그시기에 왜 뜸금없이 석방을 하냐고?
그래서 종전후 꼴랑 1만도안되는 국군포로 돌려받았나?
나머지 포로들은 어디갔어?
이승만의 정치적쑈일 뿐이지.
그것은 반공포로 석방의 의미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이승만의 진짜 목적은 포로 때문이 아닙니다.
휴전을 하기 싫어서 미국과 공산측의 협상을 망쳐놓으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또한 맘대로 휴전을 하려는 미국에게 한방을 먹이는게 목적이었습니다.
단순하게 포로를 빼내려는 것이 아닌데 그걸 다들 모르더군요.
이것은 이념과 관계없이 팩트를 얘기한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반공포로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이승만에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제안합니다.
ruclips.net/video/H9NHwqvJyX8/видео.html (한미 상호방위조약 비하인드 스토리)
@@만물상자TV전쟁의신그럼 못돌아온. 10만명의 국군포로들은 어쩌고 꼭 이런 개넘들이 문제임
편들걸 편들어야지
맨날 전쟁에서 이긴 소리만 하는데 전쟁에서 이기기만 했으면 진작 북진 통일 했지 휴전선 근처에서 2년 동안 고지전 했겠냐고 ㅋㅋㅋㅋ
한국도 자기 입맛에 맞는 소리만 하는게 중국이나 일본 역사왜곡, 은폐한다고 욕할게 아니지
무슨 삽소리야. 너무나 당연한걸 승만이의 위대한 업적? 민주진영의 국민을 북으로 송환해 탄광으로보내 강제노동으로 생을 마치게 한단말인가?
힘 없는거 조나게 수치스럽구만 뭔 자랑스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