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당시 70년도 부터 80년대까지 단국대 법대는 정원을 20명 정도 뽑아서 학교에서 1학년때부터 4년동안 지원을 많이 했었다고 들었어요 단국대하면 "사법단대"로서 유명세가 있었던게 사법고시합격자가 작은 정원에도 불구하고 많이 나왔대요 서울대 다음으로 합격자가 많았던적이 많았었대요 어떻게 아냐고요? 내가 아는 지인들중에 단국대출신 합격자가 있어서요 그후로 각종고시 합격자도 많이 배출되었다는 군요 아는 지인이ᆢ 신림동고시촌에서 고시원을 운영해서 귀동냥으로 정보도 듣고요
서울대가 많은 이유는 사법고시는 정말 천재나 합격할 정도로 어려웠다 서울대법대 졸업자중에서도 정말 수없이 떨어졌고 지금도 그렇고... 앵간한 머리와 실력으론 2차합격은 힘들었지...1차만 붙은사람 수만명일듯 노무현 대통령이 왜 대단하냐면 서울대생처럼 도서관에 편하게 공부만한 사람이 아닌게다.. 직장인두 아니였고 하물며 노가다꾼으로 합격한것은 불가사의하다 고졸도 심지어 인문계도 아니였다 더 대단한것은 성적대로 판검변인데 판사가 되었다는것이다.. 다만 학벌차별등으로 7개월만에 벗고서 변호사로 전직한... 거기에 고졸 대통령까지 한 분인데 정말 대한민국엔 크나큰 손실이다.. 생존시 국민들에게 많은 위로와 조언이 되엇을텐데....ㅠㅠ😢
@@Riverside-u8w ㅎㅎ 횽님이 연세가 몇이 시온지 모르겟사오나.. 횽 1960년대만 하드라도 고졸만해도 대단한거고.고졸도 명석해야 진학할수잇엇음...국졸도 흔치않은 세상이유.. 더구나 개화기때와 노무현시대는 사법고시가 질적으로 달라서...서울법대생들도 하루15시간씩 공부를해도 대부분 낙방하는 난이도엿다는거죠... 그당시 설법대생은 지방에 도에서 한명나오는 수재들임에도... 건평씨가 무한으로 지원해준것도 아니고 틈틈히 알바하면서 패쓰한것은 믿기 힘든겁니다... 머 태클걸 생각은 없고... 중요한것은 그런 인재를 일찍 잃었다는건 한국가로써 매우 불행한... 나라의 방향타를 제시할 인물이엇는데... 아마 다시는 그런 인물은 한국에선 없을듯합니다... 머 국정을 잘한것만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애국자였슴은 외치고싶습니다..
60년대학번(사시로보면70년초랑 겹침) 특이점이 정치학과가 법대보다 센 적이 여러번임. 이유는 박정희 행태보고 정치를 하려는 초일류학생들이 법관 검사보다 정치인으로 진로를 바꿔서임. 경기고 탑급성적 손학규나 사시수석 강지원은 정치학과로 갔는데 강지원은 점수가 많이 남아 서울법대 안가고 정치학과 갔다고 할 정도..
@@Riverside-u8w 나도 그 사실 알고 있으나 그건 해방직후 ~50학번대 초반이야기임..내가 말한 시기보다 10년전이야기임. 정치학붐이 일어난건 6.3항쟁임..이때 학생들의 진로1순위는 정치인 연고대 정외과도 같이 버프받음 경성제대 정치학과 그것은 사실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메인선택도 아님. 이유는 학부졸업하면 강사자리 얻으려면 결국 법학과 선택해야함. ..게다가 경성제대 출신이 고려대법대로 많이 갔는데 선배 유진오가 경성제대출신 빠르게 모으던시기라 경성제대출신이 서울대법대로 잔류하지 강사TO적은 정치학과나 고려대법대로 굳이 갈 이유가 없기에
6년동안 고졸1명 그리고 대통령..
진짜..서울대는..급이다르다ㅋㅋㅋ
서울대가 고시준비 많이해서 그럴수도있지만 고시합격자 절반은 서울대 먹고시작ㅎㄷㄷ
사시 단대 시절이군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대단하냐... 그냥 서울대 갈 수준이었는데.. 후애 대통령 됐으니까.. 대단하지..고졸출신으로
단국대 생각보다 왤케 많이나오노
저의 지인, 단대출신...
장학금+생활비까지 지원하면서, 성적우수자들을 입학하게함..
그당시 70년도 부터 80년대까지 단국대 법대는 정원을 20명 정도 뽑아서 학교에서 1학년때부터 4년동안 지원을 많이 했었다고 들었어요 단국대하면 "사법단대"로서 유명세가 있었던게 사법고시합격자가 작은 정원에도 불구하고 많이 나왔대요 서울대 다음으로 합격자가 많았던적이 많았었대요 어떻게 아냐고요?
내가 아는 지인들중에 단국대출신 합격자가 있어서요 그후로 각종고시 합격자도 많이 배출되었다는 군요
아는 지인이ᆢ 신림동고시촌에서 고시원을 운영해서 귀동냥으로 정보도 듣고요
단대가 이제 로스쿨 유치를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ㅜㅜ
71년 경희대 4명72년 중대 2명 73년 경희대 2명 중 앙대1명74년 한양대 최초배출 1명 75년. 한양대 5명 고졸 노무현 배출 76년 단국대 6명 한양대 5명임 경희대 75년76년 1명
경북 부산 전남 전북대가 2-1명 매년 있는 수준이었네. 수도권 선호 현생으로 충남대가 올라온거지 옛날부터 항상 전북대가 위였음.
불ㆍㆍ교만세 화이팅!!! 사법고시 부활시켜라!!!!!
대단한 단대!
로스쿨은 왜 탈락했을까?
노무현은 난 인물이구나
고졸로 사법시험 통과하고 대통령
커리어 미쳤네
일도 하면서 공부해 합격한 게 레전드
본인은 그렇게 출세하고 남은 못하게 사시없앰
노무현 / KimIlsung"s scholar ship
난 인물이니 대통령까지 했겠죠
서울대가 많은 이유는 사법고시는 정말 천재나 합격할 정도로 어려웠다
서울대법대 졸업자중에서도 정말 수없이 떨어졌고 지금도 그렇고...
앵간한 머리와 실력으론 2차합격은 힘들었지...1차만 붙은사람 수만명일듯
노무현 대통령이 왜 대단하냐면
서울대생처럼 도서관에 편하게 공부만한 사람이 아닌게다..
직장인두 아니였고 하물며 노가다꾼으로 합격한것은 불가사의하다
고졸도 심지어 인문계도 아니였다
더 대단한것은 성적대로 판검변인데
판사가 되었다는것이다..
다만 학벌차별등으로 7개월만에 벗고서
변호사로 전직한...
거기에 고졸 대통령까지 한 분인데
정말 대한민국엔 크나큰 손실이다..
생존시 국민들에게 많은 위로와 조언이 되엇을텐데....ㅠㅠ😢
@@Riverside-u8w ㅎㅎ 횽님이 연세가
몇이 시온지 모르겟사오나..
횽 1960년대만 하드라도 고졸만해도 대단한거고.고졸도 명석해야 진학할수잇엇음...국졸도 흔치않은 세상이유..
더구나 개화기때와 노무현시대는 사법고시가 질적으로 달라서...서울법대생들도 하루15시간씩 공부를해도 대부분 낙방하는 난이도엿다는거죠...
그당시 설법대생은 지방에 도에서 한명나오는 수재들임에도...
건평씨가 무한으로 지원해준것도 아니고
틈틈히 알바하면서 패쓰한것은 믿기 힘든겁니다...
머 태클걸 생각은 없고...
중요한것은 그런 인재를 일찍 잃었다는건
한국가로써 매우 불행한...
나라의 방향타를 제시할 인물이엇는데...
아마 다시는 그런 인물은 한국에선
없을듯합니다...
머 국정을 잘한것만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애국자였슴은 외치고싶습니다..
형 노건평씨가 세무공무원으로 수뢰형의로 파직됐고.
그 여파로. 판사로 계속 일하는 게 쉽지 않았겠죠.
@@4seasonsactive 네 그것두 잇엇지만
워낙 학벌위주라 고졸판사를 무시해서
한직으로만 돌렷지요...
판사도 부장못달면 실패판사로 낙인찍죠..
@@영상구멍가게
네. 맞는 말씀입니다.
@@Riverside-u8w 에휴
정말 쥐뿔도 모르네..
지금도 그런게 잔존하지만..
80년대엔 사법부 역시 모든게 학연과 학벌위주임
글고 내가 글에도 적엇듯이
판사임용받앗으니 연수원성적마저 최상이라고!!
멋져부러 !!!
75년도는 왜 수석 합격자 언급이 없나유
1975 년도 수석합격자는 서울공대 기계과 출신으로 현대중공업 대리였던 유성수 씨 입니다.. 대단한 거죠.. 공대출신으로 회사 다니면서.. 당시에는 서울공대 인기과와 물리과가 서울대 전체에서 탑티어였으니...
서울대학교 너무 압도적인데;;;;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청년인재들이 판검사 의사 전문직에 올인하는 모습에 감동받았어요! 미국영국등 유럽의 인재들이 it 엔지니어에 진출하여 빌게이츠 저크버크 머스크같은 엔지니어들로 쇠락쇠퇴하는모습에 .대한민국 인재들이 공무원시험에 올인했기에 ..지금의 선진국대한민국이 있습니다!
??????
조선시대의 연장선이죠?
한양대의 등장74넨부터 임 위대한 한앙대 대한민국 서열 5위대학 등장
한양대가 공대뿐만아니라 문과에서도 명문이네
74년 사시 첫 등재 한양대의 길을 열음
그 이전에는 한대법학과는 형식적으로만 두고 있었고, 이후 육성해서 1975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사법고시등 각 분야에서 한동안 고대법대를 제치고 서울법대 다음의 두각을 나타냄
역시 사시단대가 헛말이 아니었네
역시 동네힘센사람 노무현
역시 경부전 수장 국립대 1위 경북대
판검사 제도 철폐하고 AI 로
60년대학번(사시로보면70년초랑 겹침) 특이점이 정치학과가 법대보다 센 적이 여러번임. 이유는 박정희 행태보고 정치를 하려는 초일류학생들이 법관 검사보다 정치인으로 진로를 바꿔서임. 경기고 탑급성적 손학규나 사시수석 강지원은 정치학과로 갔는데 강지원은 점수가 많이 남아 서울법대 안가고 정치학과 갔다고 할 정도..
@@Riverside-u8w 나도 그 사실 알고 있으나 그건 해방직후 ~50학번대 초반이야기임..내가 말한 시기보다 10년전이야기임. 정치학붐이 일어난건 6.3항쟁임..이때 학생들의 진로1순위는 정치인
연고대 정외과도 같이 버프받음
경성제대 정치학과 그것은 사실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메인선택도 아님. 이유는 학부졸업하면 강사자리 얻으려면 결국 법학과 선택해야함. ..게다가 경성제대 출신이 고려대법대로 많이 갔는데 선배 유진오가 경성제대출신 빠르게 모으던시기라 경성제대출신이 서울대법대로 잔류하지 강사TO적은 정치학과나 고려대법대로 굳이 갈 이유가 없기에
와 단국대 대단하네
개교초에도 정치학과가 커트라인 높았지만 정원이 몇배나 차이 나서 의미없음 개교초에도 서울대 문과수석은 거의 법대였고 동문들 파워 성대가 안됨 서울법대 11회 한 기수 배출 장관수가 서울대 정치학과 누계 장관수보다 많음
박정희 덕에 밥먹고
사는데 개소리하는 놈들은
경희대가 70년대 사법시험 5위권 대학이었네요
김일성 장학생은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