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안다. 그러나 벨치떼는 모른다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25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9

  • @juanna7854
    @juanna7854 28 дней назад +6

    스페인 내전의 일화를 잘 들었습니다.
    게르니카의 폭격과 함께 이곳 벨치떼도 기억을 해야할 도시이네요.
    T34 전차의 전신이 이곳에서 활약을 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역사적인 얘기를 잘 풀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aiquantum
      @aiquantum  28 дней назад +4

      고야의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인근의 벨치떼를 방문했습니다.
      1937년부터 2024년까지...87년간 전쟁의 비참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소련은 내전 기간 중 스페인 좌파인민전선 정부에 대규모 군사고문단과 막대한 전쟁물자를 제공하는 한편,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35,000 명의 국제의용군을 내세워 스페인 공산화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무게 9.6 톤에 불과한 소련제 T-26 전차는 나름 맹위를 떨쳤고, 소련은 이때의 경험을 살려 보병과 전차의 합동전술을 구체화하면서 장갑의 두께와 주포 성능을 대폭 개량한 T-34 탱크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6.25 전쟁에 앞서 북한에 무려 85mm 의 주포와 32톤의 무게를 지닌 T-34/85 중형 전차를 북한에 공급했습니다.
      개전 초기 T-34/85 에 맞설 대전차무기가 없는 국군은 의정부, 서울, 대전까지 순식간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러시아의 침략 위협을 받고 있는 폴란드에까지 방산 무기가 진출하고, 트럼프 2기 정부가 중국 해군에 맞설 미해군의 전력 강화를 위해 한국조선산업에 러브콜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1950년 6월 25일...미아리 고개를 넘어오는 육중한 북한군 전차에 수류탄을 안고 육탄 돌진했던 국군과 105밀리 야포를 맞고도 거침없이 전진하는 T-34 전차를 보면서 전쟁의 공포를 그대로 느꼈을 미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의 고귀한 희생을 떠올려 봅니다.
      그날 한반도에는 외교안보전략도 없었지만 T-34/85전차를 막을 대전차지뢰 한 발 없었고 오직 6발의 대전차고폭탄이 한반도 억제무기의 전부였습니다.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Hope is Not a Strategy)! 2008년 뉴욕시장 쥴리아니가 남긴 명언입니다.
      오늘 자유 대한민국이 더욱 더 자랑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