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엘지가 진정한 언더독 이였다. 정말 낭만이 있는 야구를 한거지. 엘지의 전성기가 90년대 중반이였다면 엘지야구의 낭만은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2001년 중반부터 김성근이 해임된 2002년 까지라고 본다.9승25패 막장팀 맡아서 6위까지 올려놓고 그 다음해에 남들 예상 다 비웃으면서 파이널까지 간걸로 모자라 당시1위팀을 코너까지 몰아넣었으니까. 제대로된 용병 한명만 있었어도 이때 엘지가 업셋했다
저 당시 기아팬들은 진짜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줄만 알았다. 2002년에 삼성이랑 정규시즌 우승을 다투다가 아쉽게 2위에 그치고 플레이오프 상대가 LG였다. 그때 13승 5패였나? 아무튼 기아가 압도적으로 LG에게 우세해서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를 기대했지만 PO에서 2승을 먼저 거둬놓고도 LG에게 한국시리즈 티켓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에는 LG도 삼성에게 끝내기 패배를 당하면서 준우승에 그쳐버리는 등 기아나 LG나 2002년은 정말 아쉬웠던 해인 것 같다
저 당시 기아는 8월까지 삼성과 정규시즌 1위를 다투던 팀이었죠. 시즌 중에는 기아가 1위를 달리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LG가 대단했던 거죠. (썰 좀 풀게요) (그냥 길게 쓴 글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보시고 아니면 패스 부탁드립니다) 삼성팬으로서 2002년 시즌은 많은 생각이 든 시즌이에요 우선 만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꼬리를 뗀 시즌이기도 했고 또한 LG는 말도 안 되게 4강 진출하고 한국시리즈까지 오른 시즌이기도 했죠. 저는 역대 준우승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팀 세 팀을 꼽으라면 2004년 삼성, 2009년 SK 그리고 2002년 LG를 선택하고 싶네요. 2004년 삼성이나 2009년 SK는 강팀이었어요. 시즌 막판까지 1위 싸움을 했고, 그 당시 남은 경기에 따라 1위가 될 수 있었던 여지가 있었던 팀이었고요. 그런데 2002년 LG는 전혀 그런 수준의 팀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2002시즌 직전 예상 전망에서 LG는 4강은 커녕 꼴찌 후보였어요. 왜냐하면 2001년 LG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죠. 2001년 이미 9승 1무 25패던가 그 상태에서 이광은 감독이 사임하고 나가버렸거든요. 그 당시에 하도 볼넷이 많고 그래서 언론에서는 김민기라는 투수는 포볼대장이라는 별명을 언급했고 그리고 이 추세로 가면 '한 시즌 최다볼넷 허용 신기록 달성이 예상된다'는 기사도 났었죠. 그런 팀을 당시 김성근 감독대행이 어떻게 붙잡고 끌어올려서 2001년 6위로 마감했던 거죠. 팀이 그 꼴이 나면 구단이 선수를 보강해줘야 하는데 2002년 용병도 그렇게 신통치 않았다는 겁니다. 만자니오, 케펜에다 삼성이 한 시즌 쓰고 버린 마르티네스 이런 선수들이 고작이었거든요. 더구나 2002년인가에는 김성근 감독 싫어하던 어윤태가 LG 스포츠단 사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사실상 김성근 감독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죠. 삼성팬이지만 김성근 감독 너무 안 됐었습니다. 2002년 우승하고 나서 기분이 너무 좋았고 한참 그것에 취해 있었지만 얼마 지나서 다시 우승 장면을 보니 약간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준우승했던 LG 선수단과 김성근 감독을 보니 살짝 안 됐다는 감정도 생기더라고요. 그만큼 LG는 처절하고 끝까지 하는 야구를 선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졌잘싸는 정말 이럴 때 쓰는 말이죠. '도련님 야구', '겉멋에 취한 선수들' 이런 비아냥대는 수식어가 LG에 있곤 했는데 적어도 2002년 시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LG가 성적을 올리기에 여건이 너무 안 좋았어요. 사장은 "김성근 야구는 신바람 LG 야구가 아니다" 이딴 소리나 해대질 않나? 좋지도 않은 용병인데, 그마저 교체도 잘 안 해주고. 그렇다고 타고투저 시대에 LG가 장타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선발 10승을 확실히 맡아줄 투수도 없었어요. 그런 팀 갖고 한국시리즈를 갔으니.. 이건 기적에 가까운 거죠. 우승하고 말고는 하늘이 점지해주는 건데, 그 당시 LG는 150%는 한 거였어요. 준우승했다고 놀릴 수 없는 팀이었습니다. 꼴찌후보팀이 전년도 우승팀인 두산을 제치고 4위에 올라서 강팀인 현대, 기아를 차례로 물리치고 비록 삼성에 패했지만 삼성도 결코 쉽지 않은 우승이었습니다. 그 자체가 드라마였던 2002년 LG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래는 여담입니다. 2002년 김성근 감독 해임되고 LG 어윤태 사장이 그토록 좋아하던 이광환 감독을 데리고 왔지만 도리어 성적이 폭삭 망했죠. (이미 2002년 5월에 내정설이 떠돌았죠. 그래서 김성근 흔들기 기사도 났고 그런데 여름부터 LG가 치고 나가니까 그런 기사가 별로 안 나왔어요) 잘 모르는 사람은 LG 투수진들 혹사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만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2002년 김성근 체제에서는 훈련량이 많았기 때문에 팀 전력이 약해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는데 비해 2003년 이광환 체제에선 훈련량이 대폭 줄어들어버렸기 때문이죠. OB시절부터 김성근-이광환은 서로 앙숙관계이고 야구관도 완전히 반대입니다. 훈련량 차이로 치면 극과 극입니다. 2001년 삼성에 김응룡 감독이 와서 삼성 훈련한 것과 한화 당시 이광환 감독이 훈련한 것에 대한 비교 보도도 있었을 정도죠. (그 기사 후반에 과연 시즌 끝나면 누가 더 많이 웃게 될까? 뭐 이런 내용도 있었던 기억이..) 자율야구를 추구한 이광환 감독은 1993~1995년까지가 전성기였는데, 문제는 그것 빼곤 아무 것도 없는 감독입니다. 나머지 꼴찌 OB 때나 한화, 다시 돌아온 LG, 그리고 훗날 히어로즈에서나 잘하지 못했습니다. 오비가 꼴찌한 것도 지도자의 훈련스타일에 길들여 온 선수들에게 갑자기 바이오리듬표 붙여놓곤 "자.. 니들이 알아서 해라"라고 하니, 선수들도 뭐 어떻게 해야 할 지 당황했죠. 자율야구를 뒷받침할 방법과 분위기는 없이 덜렁 제도만 도입해서 선수들은 자율을 십분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말이야 미국식 자율야구다라고 해서 좋았지만, 도입에 맞는 현실적 대안이 없었던 탓에 아마 이광환 감독 때 OB(현 두산)가 2년 연속 꼴찌했을 거에요. 그리고 이광환 감독에겐 1994년과 함께 전성기였던 1995년도. 사실 해태 이후에 나온 최초의 연속 우승을 기대할 수 있었던 시즌이었습니다. 실제로 LG가 OB를 무려 6경기 차이나 앞섰지만 결국 1위를 지키지 못하고 막판에 뒤집혔는데 그 당시 LG가 팀 성적이 급전직하로 떨어졌죠. (유지현 등 일부 주축 선수들 방위복무로 홈 경기만 출전했던 문제도 있긴 합니다만) 이광환이 맡은 팀들의 특징은 그렇습니다. 말은 자율인데... 나중에 가면 시즌 후반에 뒷심 부족으로 성적이 뒤쳐지는 현상들이 많았죠. 그 당시 야구인들이나 팬들도 자율야구의 문제를 지적했었죠. 그때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보강 운동도 잘 안 하던 때여서 더 그랬죠. (이광환 감독이 자율야구는 도입한 건 잘했고 외형은 그럴 싸 했는데...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한국적 요소, 현실적 요소가 결여된 느낌이었습니다) .
2002년에 LG 전력이 꼴찌 후보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더 한심한 롯데가 있었구요. 그리고, 2003년 이광환 감독님이 다시 왔을때, 자율야구로 인한 훈련 부족도 있을 수도 있지만, 2002년에 김성근 감독 특유의 벌떼 야구로 인한 혹사로 투수 마운드는 이미 만신창이 상태였고, 류지현은 이른 노쇠화로 타격 부진, 김재현, 이병규는 부상으로 전체적인 타격 침체도 원인이죠. 김성근 감독이 성적 잘 낸건 인정하지만 대다수 김성근 감독님이 거쳐간 팀들은 투수, 타자들 피로 누적과 혹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침체기 거쳤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2003, 2013 시즌 준우승 팀(sk/두산)들도 포스트 시즌에서는 나름 멋진 활약을 했지만, 아쉬운 준우승 팀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LG에게 가장 아쉬웠던 시즌은 95, 97 시즌이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rudebox0629 뭘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요. 제가 제대로 설명해드릴게요. 2002년 LG 전력은 명백히 꼴찌 후보급 맞습니다. 그건 뒤에서 확실히 설명해드릴 거고요. 우선 롯데부터 롯데가 4년 연속 꼴찌의 시발점인 2001년 꼴찌를 기록하며 한심했던 건 개인 성적에 비해 팀 경기로 갔을 때 발휘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호세 : 타율 4위, 홈런 2위, 타점 3위 조경환 : 타점 3위, 26홈런 102타점 손민한 : 다승왕 롯데 팀 타율 1위 : 0.280 롯데 팀 득점 3위 : 718득점 이런 선수들이 있었다는 말씀드리고요. 무엇보다 2001년 롯데의 팀 타율은 전체 1위였습니다. 그 팀 전력을 갖고 꼴찌를 한 것이 신기한 거죠. 왜 그랬냐? 에이스였던 문동환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2000년에 그럭저럭 막았던 강상수가 방화범이 되었기 때문이죠. 가뜩이나 불펜이 강하지 않던 롯데인데 접전에서 패하는 경기가 많았고 뒤에서 무너지는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그게 꼴찌의 원인입니다. 게다가 시즌 중간인 7월말쯤 롯데 김명성 감독까지 갑자기 하늘 나라로 가시게 되면서 팀이 완전 엉망이 되어버리죠. 그리고 그 당시 5~8위 팀 승률이 별 차이 안 납니다. 5위 기아 0.469 6위 LG 0.464 (0.5게임차) 7위 SK 0.458 (1.0게임차) 8위 롯데 0.457 (동률인데 무승부가 많아서 꼴찌) 5위 기아와 꼴찌 롯데가 1.5경기차 밖에 안 났단 말이죠. 그리고 2001년 야구를 잘 안 보신 것 같은데요. 2001년 초반에 압도적으로 꼴찌를 달린 팀은 9승 1무 25패의 엘지였죠. 그 당시 LG가 볼넷 공장으로 소문이 나서 꼴찌하던 그 추세대로 가면 볼넷 허용 신기록 세운다는 말까지 나왔죠. 그 정도로 엉망이었던 LG였는데요. 2001년 당시는 타고투저시대였어요. 앞서 언급한대로 LG 투수력은 무너졌는데, 당시 LG는 20홈런 타자도 하나 없는 팀이어서 홈런 30위 안에 단 1명도 없었고요 2001년 당시 타점 역시 10위 양준혁, 12위 이병규 빼면 타점 올릴 선수도 없었어요. 한화에서 데려온 로마이어와 해태에서 온 홍현우는 먹튀가 되었고, 김재현도 61타점에 불과했던 시즌이었죠. 점수 날 구석이 없었으니 팀 득점 6위에 그칩니다. 더구나 2002년을 앞두고 LG프런트는 전력보강도 제대로 안 해주고 삼성이 버린 말티나 줏어다 쓰고 그랬죠. 만자니오, 케펜이 어떤 투수인지는 아십니까? 오히려 전력 누수가 생기기 시작했죠. 2001년 타율 0.355로 타격왕인 양준혁마저 LG를 떠나 삼성으로 이적합니다. 팀 내 최고 타율, 최다 홈런, 최고 타점 선수가 이적한 거죠. 그런데 어떻게 LG가 꼴찌 전력이 아닙니까? 그 전력으로 김성근 감독대행이 부임한 뒤 LG 성적은 5할이 넘습니다. 그래도 꼴찌 롯데와 1.5경기차 밖에 안 납니다. 김성근 감독대행 부임 이후 성적 아니면 LG는 그대로 꼴찌였던 팀이라는 명백한 증거죠. 그 다음 시즌 역시 전력 보강이 제대로 안 됐으니 당연히 꼴찌 전력이었던 거고요.
@@째즈카페-s2o 2001시즌에 제가 스무살때라 야구 많이 봤습니다. 그 시즌에 4~8위 까지 게임차 얼마 안난 것도 알고 있고, 엘지 투수진들 무너지고, 연패하며 이광은 감독 해임되고, 김성근 감독대행이 잘 추스려서 신윤호를 중심으로 시즌 6위로 마쳤고, 좀 더 일찍 잘 추스렸다면 4위는 하지 않았을까..아쉬움이 남았던 시즌이죠. 2001시즌에 롯데 라인업 좋았던 것도 기억합니다. 투타 엇박자에 강상수 불지르고, 문동환, 주형광은 주상으로 없고, 그나마 손민한, 박석진으로 꾸역꾸역 메꾸고, 2002시즌에는 호세도 없고, 유격수 김민재도 sk로 이적하고, 롯데 역시 뚜렷한 전력 보강도 없었죠. 뭘 잘 모르신다는 말씀은 약간 기분이 안좋네요.
@@rudebox0629 롯데가 2002년을 앞두고 암담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분명히 롯데도 꼴찌 후보였죠. 그걸 모를 리 없고요. 그리고...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은 것은 롯데는 구단 그렇게 운영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2002~2003년은 타팀팬이 봐도 "롯데가 너무한다" 싶은 두 시즌이었죠. 좀처럼 나오지 않을 90패 이상 연속 두 시즌이었으니까요. 심지어 시범경기까지 합치면 거의 200패 전후였을 겁니다. 그 당시 롯데는 기본적인 지원도 안 해주는 팀이었어요. 선수 스파이크도 제대로 지원을 안 해줘서 롯데 선수들이 삼성, 엘지 같은 구단 아는 선수들에게 스파이크 구해달라는 기사가 났을 정도였죠. 게다가 엘지에서 우승시키고, 삼성에서 타선 리빌딩 성공시킨 백인천이 롯데에 가서 시원하게 말아먹은 게 롯데가 꼴찌를 한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죠. 다만 엘지도 암담하긴 마찬가지였다는 말씀 다시 한번 드립니다. 그 이유는 앞서 댓글에서 이미 설명했고요. 이건 여담인데, 제가 그 당시에 지인 덕분에 모 구단 코치분과 2002시즌 전에 식사 자리를 같이 한 적 있었는데요 엘지에 대해 물으니 바로 나온 대답이 "롯데하고 꼴찌 다툼할 팀이잖아요"였습니다. 그만큼 엘지도 형편 없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는 대목이죠. 다만 롯데 사정이 더 안 좋았을 뿐. 엘지도 충분히 꼴찌할 여지가 있었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실제로 엘지도 2002년 시즌 초반에 성적이 안 좋았어요. 오죽하면 2002년에 새로운 사장이 부임하는데 어윤태라는 양반이었죠. 그 양반은 당시 한화 이광환 감독과 가까운 사이여서 (90년대 엘지 중흥기 때 단장-감독 사이, 같은 고대 출신) 5월쯤 되니 김성근 경질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죠. 구단 요청으로 계약하고 시즌 2달도 안 치른 감독한테...
@@째즈카페-s2o 자세하고 정성스러운 답변 감사합니다. 2002시즌 이후로 한번도 한국시리즈 못간게 너무나 안타깝네요. 사실, 7차전까지 갔었으면…오히려 삼성이 더 부담감을 느껴서 엘지가 우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도 듭니다. 2002 이후로 10년간 암흑기 거치고, 2013시즌 부터는 그나마 듬성듬성 포스트 시즌에 나갈 전력은 갖췄는데…뭔가 아쉬워요. 과거로 복기하면 적어도 95, 97시즌 정도는 페넌트레이스 1위 할수 있었는데 말이죠. ^^
깃발에 불내던가 그랬던 기억이,,,경기장 안에서
부도나서 빚 갚느라 야구를하는지도 모르던시절 남들은2002년 월드컵을 추억하지만 저때는 잠들고 깨지않았으면하는생각이들던때네요
지금은 아픈것도 추억이라고 생각할수있는 여유가있네요 한극시리즈6차전때 최원호가 끝내기맞고울때 같이 울었던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저는지금이나 저때나 사는게힘든건 마찬가지네요 힘내세요 휴 제나이가41인데 저시절이그립네요
이때 엘지가 진정한 언더독 이였다. 정말 낭만이 있는 야구를 한거지. 엘지의 전성기가 90년대 중반이였다면 엘지야구의 낭만은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2001년 중반부터 김성근이 해임된 2002년 까지라고 본다.9승25패 막장팀 맡아서 6위까지 올려놓고 그 다음해에 남들 예상 다 비웃으면서 파이널까지 간걸로 모자라 당시1위팀을 코너까지 몰아넣었으니까. 제대로된 용병 한명만 있었어도 이때 엘지가 업셋했다
지금 LG가 저때처럼 역스윕해서 진출하길 바랍니다.
박용택은 데뷔시즌에 한국시리즈갔네...ㅎㄷㄷ
현역생활 마지막 코시ㅠㅠ
저 당시 기아팬들은 진짜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줄만 알았다. 2002년에 삼성이랑 정규시즌 우승을 다투다가 아쉽게 2위에 그치고 플레이오프 상대가 LG였다. 그때 13승 5패였나? 아무튼 기아가 압도적으로 LG에게 우세해서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를 기대했지만 PO에서 2승을 먼저 거둬놓고도 LG에게 한국시리즈 티켓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에는 LG도 삼성에게 끝내기 패배를 당하면서 준우승에 그쳐버리는 등 기아나 LG나 2002년은 정말 아쉬웠던 해인 것 같다
구장에 관중도 없네요 이런 두 팀이 인기팀 개드립 치죠
@@dydcjs61 뭔소리?
기아가 해태처럼 될 수있었던 기회가 날아가버린 아쉬운 시즌 (저 때 기아가 코시갔으면 삼성은 또 우승못했을듯)
@@dydcjs61 븅신이 개소리하죠
@woori woo 그렇게 인기팀 드립이나 좀 치지마
비인기팀들에게 쳐발리지나 말고
박용택 선수가 은퇴를 앞두고 있네요 시간 빠르다 ㅎㅎ
이당시 여기서 엘지응원하고 있었는데 경기끝나고 기아 깃발들고 나왔어요^^ 무서워서^^
4:10초쯤 보면 박용택이 홈런치고 선수단이 마중 나오는데 뭐 집어던지나? 관중석쪽 쳐다보고 피하는 행동을 하네
그때 1루 외야 쪽 관중석에 방화가 있었음.
여기에있던
이병규와박용택이...
낼 다시 기아와만나는데..
이런자리에서 이병규를
못본다니 ㅜㅜㅜ
6:05 라벵 클러치능력 크으~~~
저 당시 기아는 8월까지 삼성과 정규시즌 1위를 다투던 팀이었죠.
시즌 중에는 기아가 1위를 달리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LG가 대단했던 거죠. (썰 좀 풀게요)
(그냥 길게 쓴 글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보시고 아니면 패스 부탁드립니다)
삼성팬으로서 2002년 시즌은 많은 생각이 든 시즌이에요
우선 만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꼬리를 뗀 시즌이기도 했고
또한 LG는 말도 안 되게 4강 진출하고 한국시리즈까지 오른 시즌이기도 했죠.
저는 역대 준우승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팀 세 팀을 꼽으라면
2004년 삼성, 2009년 SK 그리고 2002년 LG를 선택하고 싶네요.
2004년 삼성이나 2009년 SK는 강팀이었어요.
시즌 막판까지 1위 싸움을 했고,
그 당시 남은 경기에 따라 1위가 될 수 있었던 여지가 있었던 팀이었고요.
그런데 2002년 LG는 전혀 그런 수준의 팀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2002시즌 직전 예상 전망에서 LG는 4강은 커녕 꼴찌 후보였어요.
왜냐하면 2001년 LG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죠.
2001년 이미 9승 1무 25패던가 그 상태에서 이광은 감독이 사임하고 나가버렸거든요.
그 당시에 하도 볼넷이 많고 그래서 언론에서는 김민기라는 투수는 포볼대장이라는 별명을 언급했고
그리고 이 추세로 가면 '한 시즌 최다볼넷 허용 신기록 달성이 예상된다'는 기사도 났었죠.
그런 팀을 당시 김성근 감독대행이 어떻게 붙잡고 끌어올려서 2001년 6위로 마감했던 거죠.
팀이 그 꼴이 나면 구단이 선수를 보강해줘야 하는데
2002년 용병도 그렇게 신통치 않았다는 겁니다.
만자니오, 케펜에다 삼성이 한 시즌 쓰고 버린 마르티네스 이런 선수들이 고작이었거든요.
더구나 2002년인가에는 김성근 감독 싫어하던 어윤태가 LG 스포츠단 사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사실상 김성근 감독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죠.
삼성팬이지만 김성근 감독 너무 안 됐었습니다.
2002년 우승하고 나서 기분이 너무 좋았고 한참 그것에 취해 있었지만
얼마 지나서 다시 우승 장면을 보니 약간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준우승했던 LG 선수단과 김성근 감독을 보니 살짝 안 됐다는 감정도 생기더라고요.
그만큼 LG는 처절하고 끝까지 하는 야구를 선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졌잘싸는 정말 이럴 때 쓰는 말이죠.
'도련님 야구', '겉멋에 취한 선수들' 이런 비아냥대는 수식어가 LG에 있곤 했는데
적어도 2002년 시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LG가 성적을 올리기에 여건이 너무 안 좋았어요.
사장은 "김성근 야구는 신바람 LG 야구가 아니다" 이딴 소리나 해대질 않나?
좋지도 않은 용병인데, 그마저 교체도 잘 안 해주고.
그렇다고 타고투저 시대에 LG가 장타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선발 10승을 확실히 맡아줄 투수도 없었어요.
그런 팀 갖고 한국시리즈를 갔으니.. 이건 기적에 가까운 거죠.
우승하고 말고는 하늘이 점지해주는 건데, 그 당시 LG는 150%는 한 거였어요.
준우승했다고 놀릴 수 없는 팀이었습니다.
꼴찌후보팀이 전년도 우승팀인 두산을 제치고 4위에 올라서
강팀인 현대, 기아를 차례로 물리치고
비록 삼성에 패했지만 삼성도 결코 쉽지 않은 우승이었습니다.
그 자체가 드라마였던 2002년 LG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래는 여담입니다.
2002년 김성근 감독 해임되고
LG 어윤태 사장이 그토록 좋아하던 이광환 감독을 데리고 왔지만
도리어 성적이 폭삭 망했죠.
(이미 2002년 5월에 내정설이 떠돌았죠. 그래서 김성근 흔들기 기사도 났고
그런데 여름부터 LG가 치고 나가니까 그런 기사가 별로 안 나왔어요)
잘 모르는 사람은 LG 투수진들 혹사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만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2002년 김성근 체제에서는 훈련량이 많았기 때문에
팀 전력이 약해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는데 비해
2003년 이광환 체제에선 훈련량이 대폭 줄어들어버렸기 때문이죠.
OB시절부터 김성근-이광환은 서로 앙숙관계이고 야구관도 완전히 반대입니다.
훈련량 차이로 치면 극과 극입니다.
2001년 삼성에 김응룡 감독이 와서 삼성 훈련한 것과
한화 당시 이광환 감독이 훈련한 것에 대한 비교 보도도 있었을 정도죠.
(그 기사 후반에 과연 시즌 끝나면 누가 더 많이 웃게 될까? 뭐 이런 내용도 있었던 기억이..)
자율야구를 추구한 이광환 감독은 1993~1995년까지가 전성기였는데,
문제는 그것 빼곤 아무 것도 없는 감독입니다.
나머지 꼴찌 OB 때나 한화, 다시 돌아온 LG, 그리고 훗날 히어로즈에서나
잘하지 못했습니다.
오비가 꼴찌한 것도 지도자의 훈련스타일에 길들여 온 선수들에게
갑자기 바이오리듬표 붙여놓곤 "자.. 니들이 알아서 해라"라고 하니,
선수들도 뭐 어떻게 해야 할 지 당황했죠.
자율야구를 뒷받침할 방법과 분위기는 없이
덜렁 제도만 도입해서 선수들은 자율을 십분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말이야 미국식 자율야구다라고 해서 좋았지만,
도입에 맞는 현실적 대안이 없었던 탓에
아마 이광환 감독 때 OB(현 두산)가 2년 연속 꼴찌했을 거에요.
그리고 이광환 감독에겐 1994년과 함께 전성기였던 1995년도.
사실 해태 이후에 나온 최초의 연속 우승을 기대할 수 있었던 시즌이었습니다.
실제로 LG가 OB를 무려 6경기 차이나 앞섰지만
결국 1위를 지키지 못하고 막판에 뒤집혔는데
그 당시 LG가 팀 성적이 급전직하로 떨어졌죠.
(유지현 등 일부 주축 선수들 방위복무로 홈 경기만 출전했던 문제도 있긴 합니다만)
이광환이 맡은 팀들의 특징은 그렇습니다.
말은 자율인데... 나중에 가면 시즌 후반에 뒷심 부족으로 성적이 뒤쳐지는 현상들이 많았죠.
그 당시 야구인들이나 팬들도 자율야구의 문제를 지적했었죠.
그때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보강 운동도 잘 안 하던 때여서 더 그랬죠.
(이광환 감독이 자율야구는 도입한 건 잘했고 외형은 그럴 싸 했는데...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한국적 요소, 현실적 요소가 결여된 느낌이었습니다)
.
2002년에 LG 전력이 꼴찌 후보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더 한심한 롯데가 있었구요. 그리고, 2003년 이광환 감독님이 다시 왔을때, 자율야구로 인한 훈련 부족도 있을 수도 있지만, 2002년에 김성근 감독 특유의 벌떼 야구로 인한 혹사로 투수 마운드는 이미 만신창이 상태였고, 류지현은 이른 노쇠화로 타격 부진, 김재현, 이병규는 부상으로 전체적인 타격 침체도 원인이죠. 김성근 감독이 성적 잘 낸건 인정하지만 대다수 김성근 감독님이 거쳐간 팀들은 투수, 타자들 피로 누적과 혹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침체기 거쳤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2003, 2013 시즌 준우승 팀(sk/두산)들도 포스트 시즌에서는 나름 멋진 활약을 했지만, 아쉬운 준우승 팀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LG에게 가장 아쉬웠던 시즌은 95, 97 시즌이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rudebox0629 뭘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요.
제가 제대로 설명해드릴게요.
2002년 LG 전력은 명백히 꼴찌 후보급 맞습니다.
그건 뒤에서 확실히 설명해드릴 거고요. 우선 롯데부터
롯데가 4년 연속 꼴찌의 시발점인 2001년 꼴찌를 기록하며 한심했던 건
개인 성적에 비해 팀 경기로 갔을 때 발휘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호세 : 타율 4위, 홈런 2위, 타점 3위
조경환 : 타점 3위, 26홈런 102타점
손민한 : 다승왕
롯데 팀 타율 1위 : 0.280
롯데 팀 득점 3위 : 718득점
이런 선수들이 있었다는 말씀드리고요.
무엇보다 2001년 롯데의 팀 타율은 전체 1위였습니다.
그 팀 전력을 갖고 꼴찌를 한 것이 신기한 거죠.
왜 그랬냐?
에이스였던 문동환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2000년에 그럭저럭 막았던 강상수가 방화범이 되었기 때문이죠.
가뜩이나 불펜이 강하지 않던 롯데인데
접전에서 패하는 경기가 많았고
뒤에서 무너지는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그게 꼴찌의 원인입니다.
게다가 시즌 중간인 7월말쯤 롯데 김명성 감독까지
갑자기 하늘 나라로 가시게 되면서 팀이 완전 엉망이 되어버리죠.
그리고 그 당시 5~8위 팀 승률이 별 차이 안 납니다.
5위 기아 0.469
6위 LG 0.464 (0.5게임차)
7위 SK 0.458 (1.0게임차)
8위 롯데 0.457 (동률인데 무승부가 많아서 꼴찌)
5위 기아와 꼴찌 롯데가 1.5경기차 밖에 안 났단 말이죠.
그리고 2001년 야구를 잘 안 보신 것 같은데요.
2001년 초반에 압도적으로 꼴찌를 달린 팀은 9승 1무 25패의 엘지였죠.
그 당시 LG가 볼넷 공장으로 소문이 나서
꼴찌하던 그 추세대로 가면 볼넷 허용 신기록 세운다는 말까지 나왔죠.
그 정도로 엉망이었던 LG였는데요.
2001년 당시는 타고투저시대였어요.
앞서 언급한대로 LG 투수력은 무너졌는데,
당시 LG는 20홈런 타자도 하나 없는 팀이어서 홈런 30위 안에 단 1명도 없었고요
2001년 당시 타점 역시 10위 양준혁, 12위 이병규 빼면 타점 올릴 선수도 없었어요.
한화에서 데려온 로마이어와 해태에서 온 홍현우는 먹튀가 되었고,
김재현도 61타점에 불과했던 시즌이었죠.
점수 날 구석이 없었으니 팀 득점 6위에 그칩니다.
더구나 2002년을 앞두고 LG프런트는 전력보강도 제대로 안 해주고
삼성이 버린 말티나 줏어다 쓰고 그랬죠.
만자니오, 케펜이 어떤 투수인지는 아십니까?
오히려 전력 누수가 생기기 시작했죠.
2001년 타율 0.355로 타격왕인 양준혁마저 LG를 떠나 삼성으로 이적합니다.
팀 내 최고 타율, 최다 홈런, 최고 타점 선수가 이적한 거죠.
그런데 어떻게 LG가 꼴찌 전력이 아닙니까?
그 전력으로 김성근 감독대행이 부임한 뒤 LG 성적은 5할이 넘습니다.
그래도 꼴찌 롯데와 1.5경기차 밖에 안 납니다.
김성근 감독대행 부임 이후 성적 아니면 LG는 그대로 꼴찌였던 팀이라는 명백한 증거죠.
그 다음 시즌 역시 전력 보강이 제대로 안 됐으니 당연히 꼴찌 전력이었던 거고요.
@@째즈카페-s2o 2001시즌에 제가 스무살때라 야구 많이 봤습니다. 그 시즌에 4~8위 까지 게임차 얼마 안난 것도 알고 있고, 엘지 투수진들 무너지고, 연패하며 이광은 감독 해임되고, 김성근 감독대행이 잘 추스려서 신윤호를 중심으로 시즌 6위로 마쳤고, 좀 더 일찍 잘 추스렸다면 4위는 하지 않았을까..아쉬움이 남았던 시즌이죠. 2001시즌에 롯데 라인업 좋았던 것도 기억합니다. 투타 엇박자에 강상수 불지르고, 문동환, 주형광은 주상으로 없고, 그나마 손민한, 박석진으로 꾸역꾸역 메꾸고, 2002시즌에는 호세도 없고, 유격수 김민재도 sk로 이적하고, 롯데 역시 뚜렷한 전력 보강도 없었죠. 뭘 잘 모르신다는 말씀은 약간 기분이 안좋네요.
@@rudebox0629 롯데가 2002년을 앞두고 암담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분명히 롯데도 꼴찌 후보였죠.
그걸 모를 리 없고요. 그리고...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은 것은
롯데는 구단 그렇게 운영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2002~2003년은 타팀팬이 봐도 "롯데가 너무한다" 싶은 두 시즌이었죠.
좀처럼 나오지 않을 90패 이상 연속 두 시즌이었으니까요.
심지어 시범경기까지 합치면 거의 200패 전후였을 겁니다.
그 당시 롯데는 기본적인 지원도 안 해주는 팀이었어요.
선수 스파이크도 제대로 지원을 안 해줘서
롯데 선수들이 삼성, 엘지 같은 구단 아는 선수들에게
스파이크 구해달라는 기사가 났을 정도였죠.
게다가 엘지에서 우승시키고, 삼성에서 타선 리빌딩 성공시킨 백인천이
롯데에 가서 시원하게 말아먹은 게
롯데가 꼴찌를 한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죠.
다만 엘지도 암담하긴 마찬가지였다는 말씀 다시 한번 드립니다.
그 이유는 앞서 댓글에서 이미 설명했고요.
이건 여담인데, 제가 그 당시에 지인 덕분에 모 구단 코치분과
2002시즌 전에 식사 자리를 같이 한 적 있었는데요
엘지에 대해 물으니 바로 나온 대답이
"롯데하고 꼴찌 다툼할 팀이잖아요"였습니다.
그만큼 엘지도 형편 없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는 대목이죠.
다만 롯데 사정이 더 안 좋았을 뿐.
엘지도 충분히 꼴찌할 여지가 있었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실제로 엘지도 2002년 시즌 초반에 성적이 안 좋았어요.
오죽하면 2002년에 새로운 사장이 부임하는데
어윤태라는 양반이었죠.
그 양반은 당시 한화 이광환 감독과 가까운 사이여서
(90년대 엘지 중흥기 때 단장-감독 사이, 같은 고대 출신)
5월쯤 되니 김성근 경질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죠.
구단 요청으로 계약하고 시즌 2달도 안 치른 감독한테...
@@째즈카페-s2o 자세하고 정성스러운 답변 감사합니다. 2002시즌 이후로 한번도 한국시리즈 못간게 너무나 안타깝네요. 사실, 7차전까지 갔었으면…오히려 삼성이 더 부담감을 느껴서 엘지가 우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도 듭니다. 2002 이후로 10년간 암흑기 거치고, 2013시즌 부터는 그나마 듬성듬성 포스트 시즌에 나갈 전력은 갖췄는데…뭔가 아쉬워요. 과거로 복기하면 적어도 95, 97시즌 정도는 페넌트레이스 1위 할수 있었는데 말이죠. ^^
킬성근이 능력은 좋았어도 혹사 오지게 시키긴 했네 6점차인데 굳이 이상훈을 올렸어야 했나 저렇게 굴려대니 결국 한국시리즈 가서 결정적일 때 맞은듯
엘지트윈스 명승부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한국시리즈 보고 싶습니다 ㅠㅠ
이것은 20년 넘게 엘지의 마직막 한국시리즈 진출로 우려먹히고 있다
아직도 기억난다.
02년도인데 경기 졌다고 관중석에서 불났던거.
ㄹㅇ 딴 나라 인줄 알았음
저때 갸빠들 빡쳐서 관중석에 불내고 장난 아니었지ㅋ
이때 박용택 체형이나 방망이치는거보니 지금의 구자욱이네요 ㅎ
기아가 관중석에 불낸 그 시즌이군..
02:48 이 영상의 숨은 킬포는 2분 48초~49초에 셀리오 치어리더 춤 따라하는 KIA 선수....
이 게임 내기억으로 9회에 관중석에서 방화한 게임 아닌가요?
2002년의PO는 엘지에게는 마지막으로 치른 플레이오프가 아닐까싶음
준PO와KS 또한 마찬가지임
번외로 2016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대결이 있네요
관중석에 불지르는건 편집됐네 그야말로 역대급 가관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2분56초 유지현 타구가 13플옵3차전 이대형 홈보살당할때랑 타구가 똑같네 소름 저때 좌익수는 못잡았고 임재철은 잡았고
권상준 진짜 거의 똑같네 ㅋㅋㅋㅋㅋㅋ
무적 엘지 박용택 오오오호 오오오오호오
...마지막이 될줄 몰랐던 한국 시리즈 진출... 그립습니다. 야구뿐만아닌 그 때가
엘지화이팅!!!!!
10년 전 댓글인데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입니다...
2위 KIA 78승 51패
4위 LG 66승 61패
이 경기의 하일라이트는 관중석 방화 인데 없네 ㅋㅋ
진짜 딴 나라 인줄 알았음..ㄷㄷ
딴 나라맞음 저기
2000년대 초반까지 관중 문화가 참 거시기했지
아버지와 당시 오만원내기해서 결국 방에서 좋아서 날뛰던 내가 생각나네
수틀리면 오물투척 및 방화 그짝 특 ㅉㅉ
이때 불내고광끼 라도 술병집어던지고 개난동
9회말에 페트병 던지는거보소 극혐이다
권상준 역시 그지역답네 ㅉㅉㅉ
조엠 통구이의 명물 통구?
@@조엠-l5f 98년 머구 잊으셨나 ㅋㅋㅋㅋㅋ
@@코푼젤 98년이 아니라 99년
저 영상에 없는데, 기아팬들이 박용택 홈런 보고 빡쳐서 관중석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짝짝짝 짝짝 무적LG가 아니라 짝 짜작 짜작 무적LG였네
올해만약에코시진출하면몆년만이예요
18년만인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