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교법문】 삼승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흰 소가 끄는 수레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10 фев 2025
  • 삼승은 무엇을 닦는가? 그리고 흰 소가 끄는 수레
    소승과 중승 대승을 합해서 삼승이라고 부릅니다. 성문 연각 보살을 삼승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때로는 소승과 대승을 합해서 이승(二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소승은 곧 성문과 연각을 합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성문과 연각이 비록 다르지만 때로는 이처럼 합해서 소승으로 묶기도 하는 것입니다.
    [취산스님의 전자책도서]
    search.kyobobo...
    지금부터 소승과 대승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성문과 연각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고, 다시 연각과 보살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문이란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오정심관 사념처 등을 닦아서 총상념주 별상념주를 얻고, 다시 성문사과에 나아가서 견혹(見惑)과 수혹을 차례로 타파하고 아라한의 열반에 나아가는 것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이 견혹을 타파하는 것은 수다원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수혹을 타파하는 것은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수행을 통해서 성취하게 됩니다.
    견혹이란 곧 현생에서 이루어진 아상 아집을 가리킵니다. 이 견혹은 그저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도 타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혹은 무량한 전생에서부터 축적된 아집의 업식입니다. 오직 수행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녹여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수행이란 곧 사성제를 닦는 것을 말합니다. 고집멸도의 열여섯 가지의 모습을 욕계와 색계무색계 가운데에서 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견혹과 수혹을 타파해서 얻는 결과가 바로 아라한의 열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취를 얻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닦아가게 됩니다.
    참고로 사념처란 신·수·심·법(身受心法)을 네 가지 대상으로 삼고 관찰함으로 결과적으로 깨끗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영원하지 않고,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통달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몸을 관찰하여 이 몸이란 깨끗하지 않음을 통달하고, 몸으로 느끼는 감각 대상들이 결국 고통이라는 것을 통달하고, 마음이란 영원하지 않음을 통달하고, 마음의 대상이 되는 일체에는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통달하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오정심관이란 곧 부정관(不淨觀), 자비관(慈悲觀), 연기관(緣起觀), 계분별관(界分別觀: 내지는 析界觀, 無我觀), 수식관(數息觀)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곧 범부가 닦는 수행법을 말합니다.
    연각(緣覺)이란 부처가 없는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의 지혜로 12인연법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문득 꽃이 떨어지고 나뭇잎이 날리는 것을 보거나,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서 곧 인연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고서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인연법을 떠난 그 자리가 곧 연각의 깨달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각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대지도론》에서는 말하였습니다.
    “연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독각(獨覺)이고 둘째는 인연각(因緣覺)이다.”
    (중략)
    合掌
    -------------------------------------------------------------------------------
    취산스님과 함께 초심으로 돌아가기: 카카오톡 ID: taoindra
    -------------------------------------------------------------------------------

Комментари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