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되는 말씀입니다^^ 시장에 남아서 자신들이 불려갈수있길 기다리고있었던 일꾼들의 마음은 종일 얼마나 초조하고... 빈손으로 집엘 들어가야한다는 힘든 마음이었을까요ㅠㅠ 갑자기 울컥😅 주인에게 선택되어져 갔을때 감사함으로 얼마나 열심으로 일을 했을까요~~ 저도 가끔~~아니 자주ㅋㅋ 누군가의 자랑거리나 잘됨을 들었을때 축하를 하면서도 묘~~하게 제맘속엔 좋지않은 무언가가 꿈틀거리거든요ㅠㅠ 순간 저와 비교를 했던거였어요 열등감과 교만함!!!!!! 더많은자를 보며 열등감이 생기고 없는자를 보며 교만함이 생기고... 아직도 너무나 멀었음을 회개 하게되며 제자신을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됩니다 감사한게 얼마나 많은데... 부끄럽네요😭 제게 주어진거에 많이 많이 감사하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금 깨달음주신 목사님 감사드려요❤
부자인 청년도 아닌, 그저 먹고 사는 중 늙이도 이같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교회의 직분이나 가끔씩 베품이 나의 신앙의 반석의 표현처럼 교만하여 가슴을 내미는 어리석음에 이순간이나마 말씀을 깨달아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좀더 힘찬 걸음으로 나아가며 메마르지 않는 손길과 치솟는 교만을 다스려지기를 원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 부분의 성경 말씀을 이해하려면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의 포도원 일꾼 비유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세상적인 우리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의 큰 아들과 같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말하고자 하시는 요점 (여러가지가 있지만) 중의 하나가 하늘나라에서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불공평한 듯 보이고 수고하고 애쓴 사람이 좀 억울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남들 보다 더 많이 애쓰고 노력한 사람 (탕자 비유에서 큰 아들, 포도원에서 일찍부터 일한 사람) 은 조금도 아버지 또는 주인이 하시는 일에 불만이 없습니다. 불만이나 불평이 아니라 그렇게 하시는 (탕자 비유의) 아버지 또는 (포도원 비유의) 주인을 더 좋아 합니다. 왜냐구요? 우리는 우리 아버지 그리고 우리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다 좋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좋아하고, 우리는 그런 일을 하시는 주님의 마음도 좋아합니다. 그것이 천국의 원리이자 천국의 삶입니다. 돌아온 둘 째 아들을 환대하는 아버지에 대해 분노하는 첫 째 아들, 늦게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에게도 같은 보수를 주는 주인에 대해 불만과 원망하는 일꾼 - 이것은 모두 아버지, 주인에 대한 “사랑”이란 눈꼽만치도 없음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는 첫 째 아들, 먼저 일한 일꾼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자, 판단자가 되어 공평과 정의를 외치며 하나님의 원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 주인으로 모시면 새로운 세상, 새로운 가치, (지금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본말이 전도된 듯한)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천국의 삶, 거듭난 사람의 삶을 예수님은 돌아온 탕자, 포도원 일꾼 같은 비유로 설명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천국의 비유, 거듭남의 원리의 숨겨진 열쇠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두가 이해되고 하나님이 가지신 마음을 같이 갖게 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큰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했다면 둘째 아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같이 했을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기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즐겁게 나누었을 것입니다. 아침부터 열심히 일한 포도원의 일꾼이 그 포도원 주인을 사랑했다면 느지막히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일꾼에게 같은 보수를 주는 것도 즐겁게 생각하고 그런 주인의 처사에 대해 기뻐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비밀의 열쇠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일, 노력, 수고, 애씀의 의미입니다. 아버지를 위해 땀흘려 일한 큰아들의 마음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했다면 그동안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애쓰고 수고한 일들이 즐거웠을 것입니다. 행복했을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을 일꾼들이 사랑했다면 아침부터 땀흘려서 일한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주인을 ”사랑“했다면 오히려 아버지와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오래 가지지 못한 돌아온 탕자, 느지막히 일 시작한 일꾼에 대해 “좋은 시간을 많이 못 가져서 안되었네” 하고 불쌍히 여겼을 것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 (성령의 조명이 없는 시대의) 사람들에게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예수님이 하신 비유가 적절합니다. 오늘날도 여전해 인간의 머리로 그 말씀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잘 아귀가 맞지 않은 듯 들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추가로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돌아온 탕자를 환대하시는 아버지가 더욱 존경스럽고 그런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면 느지막히 포도원에 들어와 일하는 일꾼에게도 일찍부터 일한 일꾼만큼 보수를 주시는 주인을 더욱 좋아하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가 최고야! 우리 주인이 최고야!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아버지, 우리 주인, 우리 하나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천국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나요? 우리 아버지를 알면 그냥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고 받아들여 집니다. 탕자 이야기의 큰아들, 포도원 이야기의 일찍부터 일한 일꾼의 마음으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뭔가 억울하고 찜찜한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의 말슴을 너무 과하게 알아들으면 않됩니다. 예수님은 너무 어려운 요구를 하고 계시는데 곧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과연 속옷까지 벗어주고 십리를 데려다 주고 돈을 빌려주고 뺨을 내어주나요? 예수님은 원리를 알려주시고 계시는 겁니다. 원리가 그러하다는 겁니다. 할수있다면 그리고 빠른 속도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더 세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인데 굳이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깨닫는 속도를 이야기 하시는 겁니다. 나중된자도 얼마든지 빠르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깨달았나요? 먼저된 자는 당시 유대인들 그리고 게으른 자들을 얘기한 것입니다. 포도원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와서 일했다고 일의 질까지 높은 것이 아닙니다. 그 질은 예수님이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측정할 수 잇는 것이었습니다. 예를들어 학교도 일찍 들어가도 늦게 들어온 자에게 뒤쳐질 수 있듯이 깨달음도 얼마든지 그와 같기에 이것을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지요..... 먼저 와서 예수님 말씀을 들었어도 (먼저온자) 깨달음에는 그 순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디서 이런 귀한 깨달음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은혜가되는 말씀입니다^^
시장에 남아서 자신들이 불려갈수있길 기다리고있었던 일꾼들의 마음은 종일 얼마나
초조하고...
빈손으로 집엘 들어가야한다는 힘든 마음이었을까요ㅠㅠ
갑자기 울컥😅
주인에게 선택되어져 갔을때 감사함으로 얼마나 열심으로 일을 했을까요~~
저도 가끔~~아니 자주ㅋㅋ
누군가의 자랑거리나 잘됨을 들었을때 축하를 하면서도 묘~~하게 제맘속엔 좋지않은 무언가가 꿈틀거리거든요ㅠㅠ
순간 저와 비교를 했던거였어요
열등감과 교만함!!!!!!
더많은자를 보며 열등감이 생기고
없는자를 보며 교만함이 생기고...
아직도 너무나 멀었음을 회개 하게되며 제자신을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됩니다
감사한게 얼마나 많은데...
부끄럽네요😭
제게 주어진거에 많이 많이 감사하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금 깨달음주신 목사님 감사드려요❤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이지요 ㅎㅎ 저 또한 늘 교만함과 열등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답니다 ㅠㅠ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길 소원합니다.
다들 살아가면서 어떤것이 옳고 어떤것이 나쁜것인지 알면서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모든게 변하는것 같기도 하네요 현재나 과거나 참 사람 살아가는게 녹록지 않음을 다시한번 느끼네요
오늘도 영상 잘보고 갑니다
목사님 얼굴이 넘 편해보이시고
행복해보여요.ㅎ
오늘도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을 계속 듣게됩니다
끌림이 있어요
목사님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 여기서도 아재개그를...ㅋ
감사합니다 😊
부자인 청년도 아닌, 그저 먹고 사는 중 늙이도 이같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교회의 직분이나 가끔씩 베품이 나의 신앙의 반석의 표현처럼 교만하여 가슴을 내미는 어리석음에
이순간이나마 말씀을 깨달아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좀더 힘찬 걸음으로
나아가며 메마르지 않는 손길과 치솟는 교만을 다스려지기를 원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
목사님...❤❤❤❤❤❤❤
오~
새로운각도에서조명해주시네요
하나님아버지
그은혜의영광에합당하게
감사드리길원합니다!
저희모두에게그리해주시길!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최고!!
저도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 넘 좋습니다
아재개그도 좋아요 ㅋㅋㅋ😅
이 말씀을 이렇게 풀어주시니
감사가 넘치네요~~
할렐루야~~~!!
열등감
교만함 두가지만 있는 남과의비교 절대 하지말고
나를 돌아보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사모님 유트브를 통해 목사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새깁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깨달아지는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명쾌하고선명한말씀 고맙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목사님 오늘 어머님 발인끝났는데 엄마 생각에 숨을 쉴수가 없어요 . 어떻게 해야하지요 너무 힘들어서 몇자적어봅니다. 코로나 폐렴으로 중환자실에서 2주일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셨군요..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저 또한 제가 군대있을 때 갑자기 어머니 소천 소식을 듣고 삶의 모든 소망이 끊겼던 경험이 있어서 .. 더욱 그 아픔이 공감됩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목사님 @@유튜브하나교회
한국사회가 참 비교를 잘하지요 자녀에게도 성취의 비교 ..남편의 승진 재물의 비교 ...
오늘 하나님이 줄로 재어주신 나의 환경을 감사하게 받아드리겠습니다 먼나나먼 ㅋㅋ이목사님 썰렁 유머감각 여전하세요😂
혹시 제가 아시는 분 아니신가요? ㅎㅎ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 부분의 성경 말씀을 이해하려면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의
포도원 일꾼 비유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세상적인 우리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의 큰 아들과 같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말하고자 하시는 요점 (여러가지가 있지만) 중의 하나가 하늘나라에서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불공평한 듯 보이고 수고하고 애쓴 사람이 좀 억울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남들 보다 더 많이 애쓰고 노력한 사람 (탕자 비유에서 큰 아들, 포도원에서 일찍부터 일한 사람) 은 조금도 아버지 또는 주인이 하시는 일에 불만이 없습니다. 불만이나 불평이 아니라 그렇게 하시는 (탕자 비유의) 아버지 또는 (포도원 비유의) 주인을 더 좋아 합니다. 왜냐구요? 우리는 우리 아버지 그리고 우리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다 좋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좋아하고, 우리는 그런 일을 하시는 주님의 마음도 좋아합니다. 그것이 천국의 원리이자 천국의 삶입니다. 돌아온 둘 째 아들을 환대하는 아버지에 대해 분노하는 첫 째 아들, 늦게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에게도 같은 보수를 주는 주인에 대해 불만과 원망하는 일꾼 - 이것은 모두 아버지, 주인에 대한 “사랑”이란 눈꼽만치도 없음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는 첫 째 아들, 먼저 일한 일꾼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자, 판단자가 되어 공평과 정의를 외치며 하나님의 원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 주인으로 모시면 새로운 세상, 새로운 가치, (지금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본말이 전도된 듯한)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천국의
삶, 거듭난 사람의 삶을 예수님은 돌아온 탕자, 포도원 일꾼 같은 비유로 설명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천국의 비유, 거듭남의 원리의 숨겨진 열쇠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두가 이해되고 하나님이 가지신 마음을 같이 갖게 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큰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했다면 둘째 아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같이 했을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기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즐겁게 나누었을 것입니다. 아침부터 열심히 일한 포도원의 일꾼이 그 포도원 주인을 사랑했다면 느지막히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일꾼에게 같은 보수를 주는
것도 즐겁게 생각하고 그런 주인의 처사에 대해 기뻐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비밀의 열쇠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일, 노력, 수고, 애씀의 의미입니다. 아버지를 위해 땀흘려 일한 큰아들의 마음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했다면 그동안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애쓰고 수고한 일들이 즐거웠을 것입니다. 행복했을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을 일꾼들이 사랑했다면 아침부터 땀흘려서 일한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주인을 ”사랑“했다면 오히려 아버지와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오래 가지지 못한 돌아온 탕자, 느지막히 일 시작한 일꾼에 대해 “좋은 시간을 많이 못 가져서 안되었네” 하고 불쌍히 여겼을 것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 (성령의 조명이 없는 시대의) 사람들에게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예수님이 하신 비유가 적절합니다. 오늘날도 여전해 인간의 머리로 그 말씀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잘 아귀가 맞지 않은 듯 들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추가로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돌아온 탕자를 환대하시는 아버지가 더욱 존경스럽고 그런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면 느지막히 포도원에 들어와 일하는 일꾼에게도 일찍부터 일한 일꾼만큼 보수를 주시는 주인을 더욱 좋아하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가 최고야! 우리 주인이 최고야!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아버지, 우리 주인, 우리 하나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천국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나요? 우리 아버지를 알면 그냥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고 받아들여 집니다. 탕자 이야기의 큰아들, 포도원 이야기의 일찍부터 일한 일꾼의 마음으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뭔가 억울하고 찜찜한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의 말슴을 너무 과하게 알아들으면 않됩니다. 예수님은 너무 어려운 요구를 하고 계시는데 곧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과연 속옷까지 벗어주고 십리를 데려다 주고 돈을 빌려주고 뺨을 내어주나요? 예수님은 원리를 알려주시고 계시는 겁니다. 원리가 그러하다는 겁니다. 할수있다면 그리고 빠른 속도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더 세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인데 굳이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깨닫는 속도를 이야기 하시는 겁니다. 나중된자도 얼마든지 빠르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깨달았나요? 먼저된 자는 당시 유대인들 그리고 게으른 자들을 얘기한 것입니다. 포도원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와서 일했다고 일의 질까지 높은 것이 아닙니다. 그 질은 예수님이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측정할 수 잇는 것이었습니다. 예를들어 학교도 일찍 들어가도 늦게 들어온 자에게 뒤쳐질 수 있듯이 깨달음도 얼마든지 그와 같기에 이것을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지요..... 먼저 와서 예수님 말씀을 들었어도 (먼저온자) 깨달음에는 그 순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