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1] '말자상속'에 대한 설명이 다소 미흡하였습니다. 구독자님들이 댓글로 언급해주신대로 유목사회에서 형들이 재산을 1도 안 떼어 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지막에 남은 막내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대부분의 재산을 상속받았다고 합니다. 넘나 똑똑한 전만이들..🙄
말자상속이란 용어 자체가 어폐가 있음. 사실 유목민족의 상속은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면 바로 부모와 분가를 하는데 이렇게 순서대로 나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 자식은 부모 슬하에 있다가 부모가 죽을때 남는 재산을 받는건데 이걸 정주민족들이 보기엔 막내가 부모를 잇는걸로 착각해서 생긴 오해입니다. 유목민족도 보통 장자가 계승권을 행사했음. 칸의 아들들이 주루룩 있어도 보통 장자가 다음 칸이 되는경우가 많았음.
공주님을 구한 왕자님이 공주님과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내용 아시죠? 거기서 공주님은 중세시대에 아주 희귀한 계승권상속권을 가진 상속녀였고 왕자님은 상속을 받지 못해 무일푼 떠돌며 상속은 물 건너가고 성직자는 성에 안차서 떡상을 꿈꾸던 차남이나 삼남이던 기사, 용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데 계승권을 가진 공주님이 그냥 결혼 안하고 왕자님을 부리면 될 걸 왜 결혼까지 했겠어요. 왜냐하면 여자 혼자서는 권리를 지킬 수가 없어서 유능하고 강한 남자가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지켜낼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보통 차남삼남하고는 결혼을 안하죠. 쉽게 급같은 장남상속자랑 결혼을 하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만 판타지면 좋겠는데 그들의 결혼조차도 판타지였던거 알고 완전 재밌었다
보통 그런 공주는 직접적인 작위 계승은 안되도 영지를 지참금으로 들고 가기 때문에 발언권은 강했음. 역사상 프랑스 왕비와 영국 왕비를 다해본 여자도 살리카법 때문에 계승을 못해서 문제였지만 가진 영지가 워낙 커서 프랑스 왕하고 결혼 했다가 이혼하고 영국왕이랑 재혼 한거 때문에 나중에 100년 전쟁의 씨앗이 된것만 봐도....
여자니까 자질을 의심받고 얼마든지 휘두를 수 있다고 여겨지는 자신을 대신해 호시탐탐 재산과 지위를 노리는 방계를 쳐내고, 여자에게는 충성할 수 없는 가신들에게 복종을 받아내고, 왕에게 환속 당하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여자인 자신도 가문을 이어갈 수 있다는걸 증명할 훌륭한 후사를 보기 위해 등등 자신의 안전과 증명, 가문의 존속을 위해 떠돌이 기사용병이던 귀한 가문의 정통상속자던 사촌남자들 다 제치고 상속녀가 된 순간부터 모든걸 내어줄테니 모든걸 지켜낼 '강한 남자'가 필요하죠. 18-19세기도 아니고 후사만 본다고 끝날 문제가 못됨...
와 이런 영상 너무 좋아요 한국의 조선 역사 정보들도 좋았지만 로판이 유행하는 시점이고 원래 서양 쪽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너무 유용한 영상... 글 쓸 때 요긴하게 참고할 것 같아요 로판 남주들 중에 장남 아닌 애들 많던데 다 저렇게 불쌍하게 사는 게 현실이라니...
유목민의 말자 상속에는 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유목민족의 삶이란 피, 전투, 약탈과 뗄 수 없는 위험하고 거친 생활이었고, 가축들은 일정 두수를 넘는 순간 목초지의 황폐화로 인해 다음해부터 가축을 먹이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죠. 따라서 유목민의 가족들은 일부러 자식들을 분가시키며 일정 숫자의 가축만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말자에게 '신성한 화로의 불' 과 함께 부모님의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한 것입니다. 재산은 마지막까지 두 분의 곁을 지켜드리는 대가였던 거고요.
18세기 조선 후기에 장자상속 일반화 된 것도 사실 제사보다 토지 때문입니다. 현재의 모내기인 이앙법 보급화 된게 그 무렵인데, 보리랑 쌀 심는 이모작으로 1인 생산량 증가하면서부터 토지를 최대한 넓게 갖고 있는게 집안 재산 늘리는데도 유리해졌죠. 균분상속을 하면 토지 위치가 분할되다보니 생산량에 영향줬고요. 그래서 균분상속 사라지고 제사권을 토지 하나에 묶어서 장자에게 물려줬습니다. 제사는 그저 명분이고 결국 돈이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유목생활은 대부분 안 하지만 말자상속 문화의 잔재는 남아 있습니다. 집은 꼭 막내아들(옛날만큼 애도 많이 안 낳기 때문에 대부분 차남 내지는 삼남)에게 물려주려고 한다거나 막내아들들은 부모님 모시고 살아야 하니까 장가가기 힘들다거나.. 한국의 예전과 비슷하면서 장자냐 말자냐만 다르죠
저렇게 성직자(딸이라면 수녀)가 된 사람들 때문에 중세 교회는 부패에 물들기 쉬웠습니다 내 의지로 가도 참고 또 참아야 하는 것이 성직자 혹은 수도자인데 내 의지랑 상관 없이 밀어넣어졌으니 ... 그래서 개신교는 성직자에게 결혼과 일정의 재산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틀었고 가톨릭은 커리큘럼을 매우 엄하게 만들어 못 버틸 인간들은 성직으로 입문하지 못하게 만들었죠
다만 둘째아들이라면 본가 상속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옛 시대에는 귀족들의 조기 사망률도 꽤 되었기에 운이 좋으면 막내아들까지 순번이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12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보면,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위로 두 형이 있었으나 큰형은 3살에 요절해서 실제적으로는 둘째아들로 자랐는데, 형 헨리가 아버지 헨리 2세보다 먼저 사망하자 아버지 사후에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는 데 성공했고, 그 동생 존 왕의 경우에도 위로 형 제프리가 있었으나 제프리 역시 아버지 헨리 2세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에 다섯째 아들이자 막내였지만 승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또한 리처드의 경우 형인 헨리가 사망하기 전에도 어머니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의 아키텐, 푸아투, 가스코뉴 영지들의 상속자이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 왕국의 아모리 왕 역시 형인 보두앵 3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둘째아들이지만 왕이 되었던 사례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왕국 내 영지인 야파와 아스칼론의 백작이었습니다.
조선 후기까지도 자녀들의 상속지분을 나타내는 분재기를 보면 적자의 경우 여자 남자 구분없이 같은 상속분을 받았습니다 여성 자녀가 결혼을 한 경우는 사위가 상속합니다 그리고 제사에 해당하는 봉사분은 적자녀 상속의 4분의 1정도 입니다 따라서 장자나 차녀나 상속분의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은 경상도 안동지방의 분재기에 나온 것이고 경국대전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상속권이 있다고 해도 그 상속자가 장애인이라면 그 작위까지도 다른 형제 등에 넘어갔다고 하죠. 심지어 20세기 초 스페인 왕실에서도 첫째는 결혼 규정 위반(귀천상혼) 문제로 계승권 탈락이었지만 둘째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상속권을 포기하는 형식만 취하고 실질적으로는 박탈되어 셋째가 작위 계승을 했는데, 이 분의 아들이 훗날 스페인 왕이 되는 후안 카를로스 1세, 즉 지금 스페인 국왕에게는 이 셋째 분이 할아버지인 셈입니다. 참고로, 요즘은 나아졌지만 지금도 있는 왕실 가정에서 장애 자녀가 태어나면 꽁꽁 숨겨놓습니다.
5:10 칭기스칸이 배다른 아우에게 말관리직을 맡겼는데 우리에겐 천한 것이라고 볼 것이지만 재산인 말을 관리하는 것은 엄청난 믿음을 받는다는 뜻으로 유목민들에겐 엄청나게 대우하는 거였죠 이 아우랑 친형제못지 않게 우애가 좋았다고 합니다.(다른 아우는 칭기스칸에게 반란 일으키려다가 걸려서 죽었지만)
몽골의 말자상속이 마지막 자식이 모든 걸 가져간다는 것은, 과거 몽골에 대해 잘 모르던 외부인의 시각이 이야기로 전승된거라 들었습니다. 실제로는 몽골이나 유목사회에서는 가장 능력있는 자식이 부족을 이끌거나 형제간 상잔을 치뤄서 승리한 사람이 가독을 이어가기도 한다더군요. 그리고 재산 또한 독립하는 형제들은 모두 각자의 몫을 받고 마지막에 남아있는 말자는 남은 재산을 갖는 식이라고 합니다. 외부인이 볼 때는 마지막 자식이 재산을 물려받는 것을 보고 막내가 집안 재산 전부를 받는다고 충분히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특정 연도나 시기에 따라 다를 순 있는데, 과거 십자군에 참여한 귀족에 대해서도 대체로 상속을 받지 못한 차남이나 서자라고 봤는데, 최근에는 차남이라 해도 형의 영지에서 일부 부를 받기에, 굳이 십자군에 참여해 부를 창출할 필요가 없었다는 연구가 있다네요
지키 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겁니다.. 조선 중기에 성리학 이념이 굳어진 것도 한몫 했고요.저도 어쩌다 어른에 조선시대 사학 전문가 말씀보고 알았어요 그리고 중세시대 장남에겐 영지와 작위를 내린건 맞습니다만 나머지 자식들 에게도 영지 대신 돈을 주었 습니다.이렇게 돈 가지고 나간 2남 3남이 부루주아 계층이 되어서 산업혁명에 물질적 바탕이 되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대부분 은화 금화의 가치 변동에 대한 보고가 나옵니다. 매우 지루하죠... 그런데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죠. 길드 이야기도 거기에 나오는데요, 아담 스미스가 쓴 길드 이야기는 동영상의 길드와는 좀 달랐던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서 모자 직공 길드가 나오는데요, 이 길드의 길드회원(?)이 아니면, 모자를 생산하고 판매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답니다... 면허증이라고나 할까요... 길드와 뗄 수 없는 게 바로 도제 개념입니다. 길드의 신규 회원이 되려면 먼저 도제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도제는, 한국인의 이미지처럼, '기술을 다 익혔으니 이제 하산하여라'라는 식의 스승+제자 개념이 아니었던 겁니다. 먼저 선배 길드회원에게 가서 몇 년 간 무료로 봉사를 하고, 그 기간이 다 차면 신규 길드회원으로 등록이 되는 개념이었다는 거죠. 길드 종류 중에 university라는 길드가 있었답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학의 선조가 되는 길드였다고 해요... 교수님에게 몇 년 간 봉사하면서 배우면, 학위를 받고, 학위를 받으면 귀족이나 부자의 자제를 가르치는 일을 얻을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담 스미스는 장자상속제에 대해서 아주 맹비난을 합니다... 장자를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을 거지로 만드는 상속제도라고 하죠... ㅎㅎㅎ 하지만 가문을 후대로 이어지게 하면서 규모를 계속 유지하려면, 분할하여 상속하면 안 되거든요....
제사도 있지만 조선 후기 인구가 늘어나면서 균등 상속제로 할 경우 자손들이 모두 같이 가난헤 지기 떄문입니다. 가문을 잇는다는게 제사 뿐만 아니라 가문의 수준을 유지 한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대신에 부유한 집안의 경우 한집안에 대략 4촌에서 많게는 8촌까지 함꼐 사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토지가 없는데 독립하라는건 굶어 죽으라는 소리니까 대신 모두 같이 살면서 진짜 대가족이 된거죠. 이 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조선 후기에는 상속에서 배제된 가난한 양반인 잔반이 넘쳐나게 되었죠.
조선 후기도 장자상속제였죠. 그래서 저희 할아버지는 가난했고.. 할머니도 딸이라 상속을 받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양반가라 두 분 다 일본에서 유학하다 만났고.. 할아버지는 귀국후 교직생활.. 할머니는 이대 교수가 될 만했는데 8남매를 낳아 포기하신 거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8남매 모두 대학 졸업시킨 걸 보면.. 유산을 아주 못 받은 건 아녔나 싶어요
상관은 없지만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도 친자냐 서자냐에 따라서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도 했죠.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정실부인이 아니였기에 어떠한 혜택은 없이 살다가 군인으로 경력을 쌓고 남미 정벌에 나섰죠. 오늘도 영상 재밌게 잘봤습니다 ^^
몽골의 경우는 얘기한대로 토지소유개념이 발달한 정주농업사회가 아니었기에. 상속하여 부동산등의 중요 자본을 가문에 묶어두는 개념이 없다보니.. 첫째가 어느정도 크면 가축 떼어주고 보내고. 다음 자식도 그런식으로 보내고 보내다 남은 막내에게 마지막남을걸 남기는식이라 말자상속처럼 보일뿐. 완전 말자에게 모든걸 몰아주는 개념은 아니죠.
먼소리하는건지 잘 알고 영상 올리셔야 할것같네요 일단 중세시대에는 크게 3가지로 나눠져있습니다. 중세 초기 중세 중기 중세 후기 (학자에 따라서 4단계로 나누기도합니다. 보통은 3단계로 나눠집니다.) 중세 초기에는 일반분할제로 모든 남성자녀가 균등하게 봉역(영지가)분배되는 법입니다. 따라서 영상에 나오는것처럼 판타지같은것이나 해당되는 일입니다. 중세 중기에 넘어오면서 고등 분할 개념이 들어옵니다. 이것도 장자에게 유리하지 결코 둘째 셋째한테도 충분히 머 형이니깐 이정도까지 느낌이지 막 장자가 다가진다는 느낌은 아닙니다. 알짜배기 땅 한두개 더받는거고 둘째나 셋쨰는 알짜배기 땅대신 쏘쏘한 땅 더가진다 생각하시면 됍니다. 그 외 연합분할도 있긴한데 이건 남자뿐만아니라 여성에게도 동등하게 영지상속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상에 나오는것처럼 장자상속제랑 고등분할이랑 완전히 다른개념이므로 영상이랑 고등분할이랑 장자상속제랑 같이 시행될 수 없습니다. 그 이후에 고등분할보다 한명한테 몰아주자는 의견이 강하게 생기면서 흔히말해 장자상속제가 곳곳에서 도입합니다. 머 폴란드였나.. 기억이 잘안나는데 연장자 상속제를 했던곳도 있었구요. 프랑스같은경우는 중세초기부터 장자상속제를 했습니다. 그 당시 왕들도 자식두명있으면 동등하게 50:50나눴는데 그러다보니 백작 3~4개 합쳐진 권력이 둘째한테 나오기도 했습니다. 중세 후기가면 아예 말자 상속세라는 개념도 나오고합니다. 머 중세초기 영국 같은곳은 이런 법기준이 아니라 선거 기준이라 통치자 및 두 계급 아래의 규범 상 직속 봉신들이 선거권을 가진다. 통치자의 자녀, 가장 강력한 봉신, 기타 상속권자 중에서 상속자를 선출한다. 다른 선거들과 달리 가장 강력한 봉신이 피선거권을 가집니다. 그 외에 중세초기 영지선거는 스칸디나비, 타니스트리 선거가 존재하고 그 이외에는 선제후 선거가있습니다.
@@D.H.D_Mandu 가장 이해하기 쉽게 예시를 들면 영국의 처칠가문생각하면됨. 유서깊은 공작가+군인총리집안이지만 왕족 제외하고 유일한 '성'을 하사받은 돈없는 공작가라서 보수비용때문에(성이니 맘대로 허물지도 못하고 강제로 문화제급 보수공사를 자비로 해야함ㅋㅋㅋ) 돈에 쪼들려서(영국 귀족들의 재산이 부동산인데 현대화되면서 농지의 가치가 떨어짐. 게다가 식민지에서 저렴하게 농산물 유통되서 소작할 농부도 줄고 집안 금고가 마르게됨) 차남을 미국 재벌상속녀와 결혼(영국법상 지참금은 남편재산임ㅋ). 그돈으로 형(결혼한 차남은 작위없는 평귀족. 공작은 장남) 숨통 틔였으나 조카가 상속받을때되니 또 남은돈이 없어서 이번엔 더 비싼 적장자인 조카 본인을 팔아서 미국 상속녀돈으로 유지 공사. 대를 걸쳐서 돈떨어질때마다 하는중임ㅋㅋㅋㅋ(미국 상속녀들이 유럽 귀족들 결혼하려고 눈에 불켰던 ㅋㅋㅋ옛날 기사도 있는게 웃픔ㅋㅋ 그리고 돈떨어진 귀족들 생명유지 결혼장사의 시초가됨. 현재도 진행형) 그 유명한 20대 공작위 잇고 15조 상속받은 영국 공작도 원래 명예만있는 그지공작 가문이었는데 미국 상속녀가 지참금으로 가져온 런던 부동산을 개발하고 대박터져서(위치선정 최고 집안) 런던의 집 반이 그 공작 소유다 이런 소리 듣게된거임 ㅋㅋ 귀족들은 우리나라 양반마냥 상업등 일하는것을 터부시해서(영국은 지금도 그냥 귀족은 경험쌓는수준이거나 백수임.) 기반사업이 없었고 영지들은 근대화되면서 개방되서 이젠 영주도 아니고 품위유지비는 더 드는데(노예 폐지되었으니 돈줘야지) 대지주로서 농사밖에 안남는데 농사는 위의 이유로 토지 빌려줄 소작농도 줄어듬. 그래서 귀족들이 전체적으로 돈이 없어서 땅팔고 별장팔고 저택팔고 결혼판거에요. 그러니 돈없는 귀족가 장남=천한 졸부집 딸 부인으로 맞아서 문화차이 감당해야함. 당연히 귀족사회 조리돌림도 감내... 둘째이하 아들들은 형이랑 사이 안좋으면 니일임. ㅅㄱ 하면되지만 형이랑 사이 좋으면 외면할수도 없고 해서 위의 처칠가문처럼 자기 팔아서 형주고 자기는 조금 남은 재산으로 아내 바가지들으면서 연명해야함. 그에반해 막내 여동생이면 그럴 의무도 없고 시집이나 오빠가 좋은 가문에 보내주던지 아니면 오빠에게 돈나올구석(상속녀 부인) 생길거 같으면 눌러앉아서 오빠에게 이쁨받으면서 사교계생활 ㅆㄱㄴ
주로 동양에서 첩의 자식이었던 서자는 물론 정실의 자식인 적자에 비해서는 신분적으로 하위에 있었으나, 가족 구성원으로써의 지위가 인정이 되었던 데 비해서 일부일처제가 종교에 의해 강제된 유럽에서는 서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정실에게서 나지않은 혼외자식인 사생아들의 입지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낮았죠. 상속권이 부정되었고, 입적해주지 않거나 쌩 까버리면 성씨도 물려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추가로 우리나라같은 경우, 여성을 포함한 균분상속이 전통이었지만 조선 후기에 갈수록 부농의 증가와 족보를 산 양반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향촌사회에서 기존 양반들은 힘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집성촌을 꾸리고 장자상속을 통해 가문의 재산을 보호하는 양상이 강화되었다고 알고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사생아야~라고 욕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영어에선 bastard 라는 욕이 아주 심한 욕이죠. 교회에서 인정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애들은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말 그대로 없는 자식이었음 ㅠ 심지어 본처가 자식이 없어도 자식의 권리는 인정받지 못했음
교양만두님 영상 정보가 매우 유익했습니다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부디 이 댓글을 보게 되신다면, 정보를 알고 계신다면 꼭 좀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기사나 성직자가 되기 위해 떠난다고 했는데 이 때는 가문의 성을 버렸나요? 2. 영국의 경우 젠트리라하여 작위 없는 귀족, 평귀족으로 살았다고 알고있는데 맞나요? 3. 작위 귀족의 집사장, 시녀, 시종이 되는 일도 있었나요?
제사 부분은 오류라고 애매한게 조선 초기 성리학이 덜 발달할 때는 제사 지낼 조상이 몇명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만 넘어가도 일반적인 양반가의 제사를 살펴보면 우선 직전 3대전 조상 제사 및 공훈이 있는 조상 제사(이건 이 성씨를 물려받은 후손 전부가 지냄) 그리고 자손 없이 죽은 조상 제사등 1년 내내 제사가 있습니다. 돌아가면서 지내려야 지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손 니가 전담해라는 의미로 집안 재산 몰빵해 준겁니다. 여기서 집안 재산은 문중 재산 포함이라서 집안이 클수록 재산이 헉소리나죠.
크킹하면서 느낀 내용들이 그대로 나와있네요 균분상속으로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장자상속제로 가려고 애쓰던 나날ㅋㅋㅋㅋㅋ 부모 마음도 모르고 장남 질투하는 둘째 이하들 보면 너무 답답하고, 장남이 모지리면 그것도 너무 답답하고...! 모계결혼이나 말자상속 부분도 너무 재밌었어요 유난히 집중해서 봤던 화였어요!
0:11 꾸러기수비대 헤라 어릴 적 삘~ 귀엽네요~ 1:09 배가 아니라 ω에서 나온 거지만... 흥부전 지은 사람도 아마 차남 또는 그 미만 아들 아니었을까? 차남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장남에 대한 저주로 흥부전을 지은 것 같다. 저 당시에도 제사 지내기 귀찮아서 서로 떠넘기는 일이 예사였구만 ㅋㅋㅋㅋㅋㅋㅋ
몽골의 말자 상속은 영상의 내용과는 좀 다릅니다. 말자 상속이라 해서 막내가 모든 걸 가지는 것처럼 설명을 하지만 실상은 장남이 성인이 되고 하나의 무리를 이끌 능력이 되면 아버지의 재산에서 일정 부분을 미리 상속 해서 분가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자식들을 모두 분가 시키고 나서 막내가 분가할 때 쯤 되면 아버지의 임종이 멀지 않은 나이가 되기에 남은 재산은 전부 막내가 가져갔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자 상속은 몽골이 정주 국가인 대몽골 울루스 체제로 전환된 이후에는 오히려 제국을 통째로 물려 받는 상황으로 바뀐 것입니다.
2:00 이 분할 상속으로 망하는 테크의 대표격이 신성로마제국의 바이에른과 팔츠의 비텔스바흐 가문, 작센의 베틴 가문이죠.. 차남 삼남에게도 영지를 주니 방계로 갈라져서 또 갈라지고 바이에른계는 아예 본가 단절되니 방계 남자 친척이 상속받고 같은 비텔스바흐 가문인데 서로 사이 안 좋아 전쟁도 나고 ㅋㅋ
복합적인 원인이 있지만 조선 후기 장자우대상속이 보편화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17세기 양란 이후 조선의 가경지가 급감했기 때문이예요. 경작 가능한 경제성 있는 토지가 절반으로 줄었는데 상속 예비군은 그대로...토지 분할로 인한 영세화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점차 장자상속제로 바뀝니다. '경국대전'의 경우 남녀 균분상속이죠. 그것이 17세기 중기부터 형제균분상속으로 바뀌고 18세기 후반에 가서야 장자우대상속이 일반화되죠. 이에 따라 제사 역시 바뀌구요. 17세기까지만 해도 아들 딸 모두 돌아가며 제사를 지냈어요. 성리학 보급 정도도 후기보다 덜해서 집안마다 불교 원찰에 7대조상까지 제사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경우 아들의 존재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죠. 제사를 지내는 주체가 승려니까요. 이후 상속제가 바뀌면서 이를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성리학의 유용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장자에 의한 제사전답의 비중도 커지죠. 결국 경제적 요소>제사지요.
유목사회는 말자 상속제라기보단 균등상속에 더 가깝습니다. 부모가 독립하는 자식에게 상속분을 미리 떼어 쥐어주며 독립시켰어요. 결과적으로 막내가 마지막까지 부모를 돌보다 부모가 죽으면 남은 자기몫의 유산을 받게 된 것에서 말자가 상속받는다는 오해가 생긴 겁니다. 교양만두님 예전부터 이런 잘못된 지식을 영상으로 올리시던데 좀만 더 신중하게 조사하고 올리셨으면 합니다
[04:51] '말자상속'에 대한 설명이 다소 미흡하였습니다. 구독자님들이 댓글로 언급해주신대로 유목사회에서 형들이 재산을 1도 안 떼어 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지막에 남은 막내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대부분의 재산을 상속받았다고 합니다. 넘나 똑똑한 전만이들..🙄
유목상속은 말자상속제가 아니라 큰아들 순으로 재산을 떼어주고 남은 찌끄레기를 막내에게 남겨주는 상속제였습니다.이게 정주민들이 보기에 말자상속제처럼 보인거죠.
찌끄레기까지는 좀. 그래도 몽골은 화로를 물려받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
말자상속이란 용어 자체가 어폐가 있음.
사실 유목민족의 상속은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면 바로 부모와 분가를 하는데 이렇게 순서대로 나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 자식은 부모 슬하에 있다가 부모가 죽을때 남는 재산을 받는건데 이걸 정주민족들이 보기엔 막내가 부모를 잇는걸로 착각해서 생긴 오해입니다.
유목민족도 보통 장자가 계승권을 행사했음. 칸의 아들들이 주루룩 있어도 보통 장자가 다음 칸이 되는경우가 많았음.
@@JPSAy 그건 그런데 애초에 칭기스칸이 정한 후계자는 오고타이 셋째였죠.주치의 출생문제나 차가타이의 그 성격이 아니었으면 제국은 장자에게 물려 주었을 테죠
@@이재홍-k1n 잘 모르니 말이 조심스러워지는데 다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의견을 개진해본다면,
찌끄레기라는 표현은 말자의 상징성을 과도하게 폄하하는 듯 합니다
말자가 이어받는 것이 권력의 중추가 아니라 해도 상징성은 가볍게 여길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주님을 구한 왕자님이 공주님과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내용 아시죠? 거기서 공주님은 중세시대에 아주 희귀한 계승권상속권을 가진 상속녀였고 왕자님은 상속을 받지 못해 무일푼 떠돌며 상속은 물 건너가고 성직자는 성에 안차서 떡상을 꿈꾸던 차남이나 삼남이던 기사, 용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데 계승권을 가진 공주님이 그냥 결혼 안하고 왕자님을 부리면 될 걸 왜 결혼까지 했겠어요. 왜냐하면 여자 혼자서는 권리를 지킬 수가 없어서 유능하고 강한 남자가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지켜낼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보통 차남삼남하고는 결혼을 안하죠. 쉽게 급같은 장남상속자랑 결혼을 하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만 판타지면 좋겠는데 그들의 결혼조차도 판타지였던거 알고 완전 재밌었다
헉
보통 그런 공주는 직접적인 작위 계승은 안되도 영지를 지참금으로 들고 가기 때문에 발언권은 강했음. 역사상 프랑스 왕비와 영국 왕비를 다해본 여자도 살리카법 때문에 계승을 못해서 문제였지만 가진 영지가 워낙 커서 프랑스 왕하고 결혼 했다가 이혼하고 영국왕이랑 재혼 한거 때문에 나중에 100년 전쟁의 씨앗이 된것만 봐도....
아ㅋㅋㅋ 지나가다가 엘레오노르 아키텐 하니까 급문명하고싶다
강한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후손을 낳으려면 정자가 필요해서 결혼하는 겁니다...
여자니까 자질을 의심받고 얼마든지 휘두를 수 있다고 여겨지는 자신을 대신해 호시탐탐 재산과 지위를 노리는 방계를 쳐내고, 여자에게는 충성할 수 없는 가신들에게 복종을 받아내고, 왕에게 환속 당하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여자인 자신도 가문을 이어갈 수 있다는걸 증명할 훌륭한 후사를 보기 위해 등등 자신의 안전과 증명, 가문의 존속을 위해 떠돌이 기사용병이던 귀한 가문의 정통상속자던 사촌남자들 다 제치고 상속녀가 된 순간부터 모든걸 내어줄테니 모든걸 지켜낼 '강한 남자'가 필요하죠. 18-19세기도 아니고 후사만 본다고 끝날 문제가 못됨...
몽골 말자상속은 부족장의 장남, 차남 등 나이많은 아들들이 아부지가 이끄는 부족에서 어느정도 재산을 받고 독립하고 막내 아들이 남은재산을 물려받는거라 들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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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자 상속이 문제가 된 게 몽골 제국이라는 정주 제국이 세워진 이후였죠.
그나마도 기존의 몽골 내부의 체제인 울루스 체제로 말자 상속의 형태는 갖추었으나 그게 제국 붕괴의 큰 원인이 되었죠.
중세유럽 차남 이하 적자 2:11
1. 기사 2:23 2.성직자 2:32 3.부잣집 사위 2:57
적녀, 이복형제 3:17
서자 4:05
몽골 말자상속 4:52
송나라 공동상속 5:22
조선 양반 5:40
상속은 물질만 x 6:22
길드 6:26
와 이런 영상 너무 좋아요 한국의 조선 역사 정보들도 좋았지만 로판이 유행하는 시점이고 원래 서양 쪽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너무 유용한 영상... 글 쓸 때 요긴하게 참고할 것 같아요 로판 남주들 중에 장남 아닌 애들 많던데 다 저렇게 불쌍하게 사는 게 현실이라니...
유목민의 말자 상속에는 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유목민족의 삶이란 피, 전투, 약탈과 뗄 수 없는 위험하고 거친 생활이었고, 가축들은 일정 두수를 넘는 순간 목초지의 황폐화로 인해 다음해부터 가축을 먹이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죠. 따라서 유목민의 가족들은 일부러 자식들을 분가시키며 일정 숫자의 가축만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말자에게 '신성한 화로의 불' 과 함께 부모님의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한 것입니다. 재산은 마지막까지 두 분의 곁을 지켜드리는 대가였던 거고요.
18세기 조선 후기에 장자상속 일반화 된 것도 사실 제사보다 토지 때문입니다. 현재의 모내기인 이앙법 보급화 된게 그 무렵인데, 보리랑 쌀 심는 이모작으로 1인 생산량 증가하면서부터 토지를 최대한 넓게 갖고 있는게 집안 재산 늘리는데도 유리해졌죠. 균분상속을 하면 토지 위치가 분할되다보니 생산량에 영향줬고요. 그래서 균분상속 사라지고 제사권을 토지 하나에 묶어서 장자에게 물려줬습니다. 제사는 그저 명분이고 결국 돈이죠.
차남들이야 억울하지만 지금과 달리 당시는 가문이 운명공동체였던 때...
가문 전체가 균분으로 망하느니 장자를 확실히 밀어주자가 될수 밖에 없죠.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물을 도입하시다니 ㅋㅋㅋㅋ 설명이 더 쏙쏙 들어오네요~
나는 개똥 같아도 깨끗한 변기와 치약, 시원한 거품 있는 맥주의 세상에서 살겠다.
이세계물 유행 지난지가... 쫌 되지 않음?
@@mightyYeo 근데 아직도 개많이 나오고 개많이 읽음..
@@locomotif 유행이라기보단 클리셰이며 하나의 장르임(10년도 더 전에 계속 나오던 장르였음). 어쨌든 댓글 작성자의 의도는 '이세계물' 이라는 걸 써서 친절하게 설명해놓은 영상을 칭찬하려는 것이기에.
딱히, 문제 없음.
@@mightyYeo 윗분 말처럼 클리셰의 하나로 정착되어 장르화 되어서 장르물로 계속 나오고 있음. 신데렐라 클리셰가 드라마판에서 사라진 것처럼 진부하게 여겨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넘쳐남..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유목생활은 대부분 안 하지만 말자상속 문화의 잔재는 남아 있습니다. 집은 꼭 막내아들(옛날만큼 애도 많이 안 낳기 때문에 대부분 차남 내지는 삼남)에게 물려주려고 한다거나 막내아들들은 부모님 모시고 살아야 하니까 장가가기 힘들다거나.. 한국의 예전과 비슷하면서 장자냐 말자냐만 다르죠
귀족들 처럼 각국의 왕이 되지 못한 왕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하네요
왕은 간단함 숙청 아니면 유배 아니면 보좌관 아니면 그냥 지방에 귀족작위 받고 조용히 삶 ㅋㅋ
근세에는 작위를 받고 지방귀족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국 같은 경우는 왕의 남동생이 요크공이 되고 프랑스는 오를레앙공이 되고 그런식.
유럽은 용돈받으며 왕족이나 귀족할 걸
성직자가 되어 추기경이 되거나
공작작위를 많이 받았습니다
왕좌에 대한 야망만 없으면 호의호식 했습니다.
찢고 나가도 어느정도 품의 유지 시켜줬었는걸요. 윈저공만 봐도...
생각보다 상속이 되게 다양하네,,, 재밌게 보고 갑니당!
저렇게 성직자(딸이라면 수녀)가 된 사람들 때문에 중세 교회는 부패에 물들기 쉬웠습니다
내 의지로 가도 참고 또 참아야 하는 것이 성직자 혹은 수도자인데 내 의지랑 상관 없이 밀어넣어졌으니 ...
그래서 개신교는 성직자에게 결혼과 일정의 재산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틀었고
가톨릭은 커리큘럼을 매우 엄하게 만들어 못 버틸 인간들은 성직으로 입문하지 못하게 만들었죠
앗!오늘은 화요일의 남자가되신교양만두님
선 댓글 후 감상 입니다.
오늘도 잘보겠습니다.
한파경보가 내려진 오늘 내일..건강하게 보내시고 감기 조심 하세요.
교양만두님 뿐 만 아니라 관계자 여러분 모두요!♡
다만 둘째아들이라면 본가 상속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옛 시대에는 귀족들의 조기 사망률도 꽤 되었기에 운이 좋으면 막내아들까지 순번이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12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보면,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위로 두 형이 있었으나 큰형은 3살에 요절해서 실제적으로는 둘째아들로 자랐는데, 형 헨리가 아버지 헨리 2세보다 먼저 사망하자 아버지 사후에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는 데 성공했고, 그 동생 존 왕의 경우에도 위로 형 제프리가 있었으나 제프리 역시 아버지 헨리 2세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에 다섯째 아들이자 막내였지만 승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또한 리처드의 경우 형인 헨리가 사망하기 전에도 어머니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의 아키텐, 푸아투, 가스코뉴 영지들의 상속자이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 왕국의 아모리 왕 역시 형인 보두앵 3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둘째아들이지만 왕이 되었던 사례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왕국 내 영지인 야파와 아스칼론의 백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자가 상속을 받은 이후에도 형제들에겐 명분이란게 주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영지가 있다면 전쟁해서 장자의 영지를 먹어도 반발이 적다는 메리트가 있었지
@@김도현-d2g 혹시 크루세이더킹즈 하시나요?
wow…
덮어두면 아무도 모르는 시대라 가족간 살인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사망률이 높은 건 순번하고 관계가 없으니 이 시대의 가치관으로 볼 때 행복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의 수 생각 안하고 장자나 유력 후계자 외에 다른 아들들을 배제하는 극단적인 수 쓰다가 망한 케이스가 오스만 제국
교양만두 채널이 구독자가 벌써 70 만을 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
감쟈합니다🙏 덕분이예요💜
@@smartmandoo 감자합니다(?)
@@smartmandoo ㅋㅋ
@@smartmandoo 이에요
상속 방식이 그런 줄은 몰랐네요... 오늘도 좋은 정보 배우고 갑니다
👆 👆 아침부터 🐾노🐾뺀🐾티🐾 로 걷고있으니까 🐾 👆 👆
시선들 보소 ㅋㅋㅋ ↖ ↖ 삭제 되기전 스피드하게 👆 보.예.노.지 👆 검색 ㄱ ㄱ
교양만두님 덕에 이것저것 많이 알아가네요
차남,삼남이고 장남이 살아있어도 계승할수있는 방법은 있었습니다.”방원”하면 되거든요.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킬방원
ㅋㅋㅋ
아놬ㅋㅋ
인간백정 킬방원ㅋㅋㅋㅋ
팀장님 눈이 두개가 되니까
눈이 휘둥그레 해지게 잘 생겨지셨네요
그러니 앞으로 눈한개만 합시다
그래서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 둘째, 셋째 아들들이 새 땅을 빼앗기 위해 십자군 전쟁에 많이 참여했다는... 공식 기록을 보면 장남들도 많이 가기는 했습니다만...
만두형님 오늘 아주 재밌었습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왕자도 둘째 이하일 거라고 하죠. 생존 해야하니 눈 딱감고 100년 묵은 입냄새도 견디고 입박치기를 하는거니까요.
조선 후기까지도 자녀들의 상속지분을 나타내는 분재기를 보면 적자의 경우 여자 남자 구분없이 같은 상속분을 받았습니다 여성 자녀가 결혼을 한 경우는 사위가 상속합니다
그리고 제사에 해당하는 봉사분은 적자녀 상속의 4분의 1정도 입니다
따라서 장자나 차녀나 상속분의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은 경상도 안동지방의 분재기에 나온 것이고 경국대전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크루세이더 킹즈해보면 압니다.
분할상속이 얼마나 거지 같고 힘든 지...
나중엔 능력치 보고서 아들 하나 남기고 남은 자식들은 숙청까지해야 할 수도 있고요.
웃음, 아니 눈물을 머금고 나머지 자식을 강제로 기사임명해서 '죽을 때까지' 전쟁터로 몰아넣는건 크킹의 미풍양속이죠^^
잘못하면 동군연합이 모두 해체되니까 ㅠㅠ
장남 능력치가 별로인데 손자 능력치가 좋다? 바로 뒤주로 보내버림
@@jacobji753 영조 등장 ㅋㅋ
괜찮은 넘으로 후계구도 마련해놨는데 갑자기 죽어버림;; 그러면서 가주 나이가 넘 많아서 몇년 안남은거 같을때 서자라도 억지로 만드는 경우도 생김
그리고 만약 상속권이 있다고 해도 그 상속자가 장애인이라면 그 작위까지도 다른 형제 등에 넘어갔다고 하죠. 심지어 20세기 초 스페인 왕실에서도 첫째는 결혼 규정 위반(귀천상혼) 문제로 계승권 탈락이었지만 둘째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상속권을 포기하는 형식만 취하고 실질적으로는 박탈되어 셋째가 작위 계승을 했는데, 이 분의 아들이 훗날 스페인 왕이 되는 후안 카를로스 1세, 즉 지금 스페인 국왕에게는 이 셋째 분이 할아버지인 셈입니다.
참고로, 요즘은 나아졌지만 지금도 있는 왕실 가정에서 장애 자녀가 태어나면 꽁꽁 숨겨놓습니다.
0:14 냥미 개입흐다.....
옛날로 안가고 그냥 지금 부모님한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ㅎ
그래도 중세 초기 유럽이라면 능력만 되면 그래도 기회가 많았죠 ㅋㅋ 잦은 전투 등으로 후계자가 전사하는 일이 비교적 흔했으니까요
전투 중에 몰래 암살하기 ㅋㅋㅋ 어차피 누가 죽인지 모르잖아 전쟁에선ㅋㅋ
솔직히 차남들은 전쟁이 일어나길 오히려 바랄수도..
근대에서도 이는 비슷해서 차남의 경우 머리가 좋으면 의사나 변호사를 했지만 머리가 나쁘면 육군장교나 해군장교로 입대해서 생업을 꾸리거나 전사해서 가문의 명예를 지켜야했습니다
아니면 겨울왕국 한스같이 딸부잣집 여자를 잘꼬실려고 노력해야함
5:10 칭기스칸이 배다른 아우에게 말관리직을 맡겼는데 우리에겐 천한 것이라고 볼 것이지만 재산인 말을 관리하는 것은 엄청난 믿음을 받는다는 뜻으로 유목민들에겐 엄청나게 대우하는 거였죠
이 아우랑 친형제못지 않게 우애가 좋았다고 합니다.(다른 아우는 칭기스칸에게 반란 일으키려다가 걸려서 죽었지만)
자신의 야망을 주체 못하고 싸우다 죽은 자무카........
몽골의 말자상속이 마지막 자식이 모든 걸 가져간다는 것은,
과거 몽골에 대해 잘 모르던 외부인의 시각이 이야기로 전승된거라 들었습니다.
실제로는 몽골이나 유목사회에서는 가장 능력있는 자식이 부족을 이끌거나 형제간 상잔을 치뤄서 승리한 사람이 가독을 이어가기도 한다더군요.
그리고 재산 또한 독립하는 형제들은 모두 각자의 몫을 받고 마지막에 남아있는 말자는 남은 재산을 갖는 식이라고 합니다.
외부인이 볼 때는 마지막 자식이 재산을 물려받는 것을 보고 막내가 집안 재산 전부를 받는다고 충분히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특정 연도나 시기에 따라 다를 순 있는데, 과거 십자군에 참여한 귀족에 대해서도 대체로 상속을 받지 못한 차남이나 서자라고 봤는데,
최근에는 차남이라 해도 형의 영지에서 일부 부를 받기에, 굳이 십자군에 참여해 부를 창출할 필요가 없었다는 연구가 있다네요
아니면 방계 귀족으로 본가 귀족을 섬기는 형태로도 갈 수 있죠.
중앙 아시아에는 막내가 부모 부양을 하는 문화를 가졌다 들었어요.
지키 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겁니다..
조선 중기에 성리학 이념이 굳어진
것도 한몫 했고요.저도 어쩌다 어른에
조선시대 사학 전문가 말씀보고 알았어요
그리고 중세시대 장남에겐 영지와
작위를 내린건 맞습니다만 나머지
자식들 에게도 영지 대신 돈을
주었 습니다.이렇게 돈 가지고
나간 2남 3남이 부루주아 계층이
되어서 산업혁명에 물질적
바탕이 되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대부분 은화 금화의 가치 변동에 대한 보고가 나옵니다.
매우 지루하죠... 그런데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죠.
길드 이야기도 거기에 나오는데요, 아담 스미스가 쓴 길드 이야기는 동영상의 길드와는 좀 달랐던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서 모자 직공 길드가 나오는데요, 이 길드의 길드회원(?)이 아니면, 모자를 생산하고 판매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답니다...
면허증이라고나 할까요...
길드와 뗄 수 없는 게 바로 도제 개념입니다. 길드의 신규 회원이 되려면 먼저 도제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도제는, 한국인의 이미지처럼, '기술을 다 익혔으니 이제 하산하여라'라는 식의 스승+제자 개념이 아니었던 겁니다.
먼저 선배 길드회원에게 가서 몇 년 간 무료로 봉사를 하고, 그 기간이 다 차면 신규 길드회원으로 등록이 되는 개념이었다는 거죠.
길드 종류 중에 university라는 길드가 있었답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학의 선조가 되는 길드였다고 해요...
교수님에게 몇 년 간 봉사하면서 배우면, 학위를 받고, 학위를 받으면 귀족이나 부자의 자제를 가르치는 일을 얻을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담 스미스는 장자상속제에 대해서 아주 맹비난을 합니다...
장자를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을 거지로 만드는 상속제도라고 하죠... ㅎㅎㅎ
하지만 가문을 후대로 이어지게 하면서 규모를 계속 유지하려면, 분할하여 상속하면 안 되거든요....
제사도 있지만 조선 후기 인구가 늘어나면서 균등 상속제로 할 경우 자손들이 모두 같이 가난헤 지기 떄문입니다. 가문을 잇는다는게 제사 뿐만 아니라 가문의 수준을 유지 한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대신에 부유한 집안의 경우 한집안에 대략 4촌에서 많게는 8촌까지 함꼐 사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토지가 없는데 독립하라는건 굶어 죽으라는 소리니까 대신 모두 같이 살면서 진짜 대가족이 된거죠.
이 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조선 후기에는 상속에서 배제된 가난한 양반인 잔반이 넘쳐나게 되었죠.
조선 후기도 장자상속제였죠. 그래서 저희 할아버지는 가난했고.. 할머니도 딸이라 상속을 받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양반가라 두 분 다 일본에서 유학하다 만났고.. 할아버지는 귀국후 교직생활.. 할머니는 이대 교수가 될 만했는데 8남매를 낳아 포기하신 거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8남매 모두 대학 졸업시킨 걸 보면.. 유산을 아주 못 받은 건 아녔나 싶어요
상관은 없지만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도 친자냐 서자냐에 따라서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도 했죠.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정실부인이 아니였기에 어떠한 혜택은
없이 살다가 군인으로 경력을 쌓고 남미 정벌에 나섰죠. 오늘도
영상 재밌게 잘봤습니다 ^^
서자도 친자 입니다 바보인가
그땐 자식이 한둘도 아니어서 한명정도는 희생 당하는 찬밥이 있었죠. 그게 보통 서자일뿐
나의 작디작은 귀여웠던 교양만두는 어느 순간 점보만두가 되어버렸어...ㅜㅜ 늘 재밌게 보고있어요~~!!!🤗 추운데 감기조심하세오!
역시 이해 쏙쏙 잘되는 교양만두 굳
몽골의 경우는 얘기한대로 토지소유개념이 발달한 정주농업사회가 아니었기에. 상속하여 부동산등의 중요 자본을 가문에 묶어두는 개념이 없다보니.. 첫째가 어느정도 크면 가축 떼어주고 보내고. 다음 자식도 그런식으로 보내고 보내다 남은 막내에게 마지막남을걸 남기는식이라 말자상속처럼 보일뿐. 완전 말자에게 모든걸 몰아주는 개념은 아니죠.
이래서 클리셰중에 형제들끼리 정치질,암살, 이런 스토리가 괜히 널리고널린게 아니였구만
오프닝부터 그림체에 감탄하고 갑니다 :)
짠미님 목소리 늘 느끼지만 좋네요
우와아 이거 진짜 궁금했는데! 항상 유익하고 재밌게 영상 만들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4:24 불륜은 부모가 지어놓고 왜 자식에게 죄를....😡😡
물론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듯 예외도 있고 동서고금 막론하고 부모 마음이라는 건 대부분 똑같다 보니 장남 이하에게도 콩고물이 아예 안 떨어지는 건 아니었죠
사실 차남이하가 받는 저 조그마한 영지도 귀족 기준에서 적지 현대로 치면 건물 몇채 건물주 일지도요 ㅋㅋ
@@_white_moon_ 근데 그것도 형의 자비심따라 달라서 가주가 된 형의 맘대로 재산나눠주는거라 사이나쁜 형제면 무일푼으로 쫒아내서 떠돌이 기사나 하라고도 가능했었음
장자상속제가 다른 형제들에게 불리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오히려 형제간의 혈투를 막을수있는 방안이기도해서 되려 가족구성원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중세시대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앗! 교양만두~ 주제가 상속이네요 잘보고갈게요~ 😄
그렇다. 인트로는 요요님에 전생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그러므로 만두,아리,짠미,워니,추추 분들은 악덕 팀장 밑에서 제작했다.
오늘 오프닝 긂체 이뿌당
딸로 태어난다고 잘 살지는? 공작딸이건 뭐건 10살~15살 즈음이면 돈많고 나이많은 아저씨한테 결혼 명목으로 팔려갈텐데
먼소리하는건지 잘 알고 영상 올리셔야 할것같네요 일단 중세시대에는 크게 3가지로 나눠져있습니다. 중세 초기 중세 중기 중세 후기 (학자에 따라서 4단계로 나누기도합니다. 보통은 3단계로 나눠집니다.) 중세 초기에는 일반분할제로 모든 남성자녀가 균등하게 봉역(영지가)분배되는 법입니다. 따라서 영상에 나오는것처럼 판타지같은것이나 해당되는 일입니다. 중세 중기에 넘어오면서 고등 분할 개념이 들어옵니다. 이것도 장자에게 유리하지 결코 둘째 셋째한테도 충분히 머 형이니깐 이정도까지 느낌이지 막 장자가 다가진다는 느낌은 아닙니다. 알짜배기 땅 한두개 더받는거고 둘째나 셋쨰는 알짜배기 땅대신 쏘쏘한 땅 더가진다 생각하시면 됍니다. 그 외 연합분할도 있긴한데 이건 남자뿐만아니라 여성에게도 동등하게 영지상속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상에 나오는것처럼 장자상속제랑 고등분할이랑 완전히 다른개념이므로 영상이랑 고등분할이랑 장자상속제랑 같이 시행될 수 없습니다. 그 이후에 고등분할보다 한명한테 몰아주자는 의견이 강하게 생기면서 흔히말해 장자상속제가 곳곳에서 도입합니다. 머 폴란드였나.. 기억이 잘안나는데 연장자 상속제를 했던곳도 있었구요. 프랑스같은경우는 중세초기부터 장자상속제를 했습니다. 그 당시 왕들도 자식두명있으면 동등하게 50:50나눴는데 그러다보니 백작 3~4개 합쳐진 권력이 둘째한테 나오기도 했습니다. 중세 후기가면 아예 말자 상속세라는 개념도 나오고합니다. 머 중세초기 영국 같은곳은 이런 법기준이 아니라 선거 기준이라 통치자 및 두 계급 아래의 규범 상 직속 봉신들이 선거권을 가진다. 통치자의 자녀, 가장 강력한 봉신, 기타 상속권자 중에서 상속자를 선출한다. 다른 선거들과 달리 가장 강력한 봉신이 피선거권을 가집니다. 그 외에 중세초기 영지선거는 스칸디나비, 타니스트리 선거가 존재하고 그 이외에는 선제후 선거가있습니다.
조선도 비슷한 흐름으로 갔죠.
구독하고 아림설정 좋아요 박앗습니다! 만두행님!
ㅋㅋㅋㅋㅋㅋㅋ 오프닝 뭐얔ㅋㅋㅋ 잘 보고 갈게요
장자도 장자나름이지 물려줄 재산따위없는 가난한 집안의 장자는 제일 불행합니다. 부잣집은 막내딸이 최고예요...
왜죠
@@D.H.D_Mandu 가장 이해하기 쉽게 예시를 들면 영국의 처칠가문생각하면됨. 유서깊은 공작가+군인총리집안이지만 왕족 제외하고 유일한 '성'을 하사받은 돈없는 공작가라서 보수비용때문에(성이니 맘대로 허물지도 못하고 강제로 문화제급 보수공사를 자비로 해야함ㅋㅋㅋ) 돈에 쪼들려서(영국 귀족들의 재산이 부동산인데 현대화되면서 농지의 가치가 떨어짐. 게다가 식민지에서 저렴하게 농산물 유통되서 소작할 농부도 줄고 집안 금고가 마르게됨) 차남을 미국 재벌상속녀와 결혼(영국법상 지참금은 남편재산임ㅋ). 그돈으로 형(결혼한 차남은 작위없는 평귀족. 공작은 장남) 숨통 틔였으나 조카가 상속받을때되니 또 남은돈이 없어서 이번엔 더 비싼 적장자인 조카 본인을 팔아서 미국 상속녀돈으로 유지 공사. 대를 걸쳐서 돈떨어질때마다 하는중임ㅋㅋㅋㅋ(미국 상속녀들이 유럽 귀족들 결혼하려고 눈에 불켰던 ㅋㅋㅋ옛날 기사도 있는게 웃픔ㅋㅋ 그리고 돈떨어진 귀족들 생명유지 결혼장사의 시초가됨. 현재도 진행형)
그 유명한 20대 공작위 잇고 15조 상속받은 영국 공작도 원래 명예만있는 그지공작 가문이었는데 미국 상속녀가 지참금으로 가져온 런던 부동산을 개발하고 대박터져서(위치선정 최고 집안) 런던의 집 반이 그 공작 소유다 이런 소리 듣게된거임 ㅋㅋ 귀족들은 우리나라 양반마냥 상업등 일하는것을 터부시해서(영국은 지금도 그냥 귀족은 경험쌓는수준이거나 백수임.) 기반사업이 없었고 영지들은 근대화되면서 개방되서 이젠 영주도 아니고 품위유지비는 더 드는데(노예 폐지되었으니 돈줘야지) 대지주로서 농사밖에 안남는데 농사는 위의 이유로 토지 빌려줄 소작농도 줄어듬. 그래서 귀족들이 전체적으로 돈이 없어서 땅팔고 별장팔고 저택팔고 결혼판거에요. 그러니 돈없는 귀족가 장남=천한 졸부집 딸 부인으로 맞아서 문화차이 감당해야함. 당연히 귀족사회 조리돌림도 감내... 둘째이하 아들들은 형이랑 사이 안좋으면 니일임. ㅅㄱ 하면되지만 형이랑 사이 좋으면 외면할수도 없고 해서 위의 처칠가문처럼 자기 팔아서 형주고 자기는 조금 남은 재산으로 아내 바가지들으면서 연명해야함. 그에반해 막내 여동생이면 그럴 의무도 없고 시집이나 오빠가 좋은 가문에 보내주던지 아니면 오빠에게 돈나올구석(상속녀 부인) 생길거 같으면 눌러앉아서 오빠에게 이쁨받으면서 사교계생활 ㅆㄱㄴ
좋은영상 봤습니다. 저때 상속자라 해서 잘나가는것도 아닌경우가 어마어마한 빚이 있거나 무능하면 휘둘리는 경우가 있어서 독이 될때가 있었음
장남이하의 자식들이 상속받을수 있는 어둠의 루트:상속받은 손윗형제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는 경우(자연,인위 포함)
아니면 먼저있던 장자가 원인불명으로죽고 이후부모님이 죽으면 받는거쌉가능
형만 없으면...! 내가 장남이야!
주로 동양에서 첩의 자식이었던 서자는 물론 정실의 자식인 적자에 비해서는 신분적으로 하위에 있었으나, 가족 구성원으로써의 지위가 인정이 되었던 데 비해서 일부일처제가 종교에 의해 강제된 유럽에서는 서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정실에게서 나지않은 혼외자식인 사생아들의 입지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낮았죠. 상속권이 부정되었고, 입적해주지 않거나 쌩 까버리면 성씨도 물려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추가로 우리나라같은 경우, 여성을 포함한 균분상속이 전통이었지만 조선 후기에 갈수록 부농의 증가와 족보를 산 양반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향촌사회에서 기존 양반들은 힘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집성촌을 꾸리고 장자상속을 통해 가문의 재산을 보호하는 양상이 강화되었다고 알고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사생아야~라고 욕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영어에선 bastard 라는 욕이 아주 심한 욕이죠.
교회에서 인정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애들은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말 그대로 없는 자식이었음 ㅠ
심지어 본처가 자식이 없어도 자식의 권리는 인정받지 못했음
@@tracygrace6866
전통적으로 사생아라 하면 약간 측은하게 보는 시선도 있죠.
얼마나 못 배워 먹은 부모를 만났으면 가족으로서 누려야 할 것도 못 누렸나 생각 하면서.
@@tracygrace6866 기독교에서 사생아는 공식적으로 세례도 안해줬음... 평민도 하던걸..
서자들이야 중앙정치에 못끼는것뿐 일반백성들 기준에선 서자도 나름 귀족나으리로 대우받았죠. 그래서 우리나라는 차라리 첩욕은 있어도 서자야~이런 욕은 없는듯
후레자식은 중국 오랑캐 호란 뜻이고
교양만두님 영상 정보가 매우 유익했습니다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부디 이 댓글을 보게 되신다면, 정보를 알고 계신다면 꼭 좀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기사나 성직자가 되기 위해 떠난다고 했는데 이 때는 가문의 성을 버렸나요?
2. 영국의 경우 젠트리라하여 작위 없는 귀족, 평귀족으로 살았다고 알고있는데 맞나요?
3. 작위 귀족의 집사장, 시녀, 시종이 되는 일도 있었나요?
아니 이런 존잘남 잘 그릴수 있으면서 왜 이상한 침장님 얼굴 그려주냐구요 ㅠㅠ
웹툰에서 배경이 되는 중세와 실제 중세는 많이 다르죠... 길가에 널린 말똥 좋지않은 위생... 머리없는 수도승.. 깡통 로봇기사.... 로판의 판타지가 중세판타지인듯
네? 실제 중세에 마법사랑 닌자 있는건 상식 아닌가요?
그러니까 '판타지'죠
로판 속 배경은 중세보다는 바로크.로코코 시대에 가까운 듯
현실의 중세는.. 암흑기였죠.
로판은 중세라기보단 르네상스죠
제사 부분은 오류라고 애매한게 조선 초기 성리학이 덜 발달할 때는 제사 지낼 조상이 몇명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만 넘어가도 일반적인 양반가의 제사를 살펴보면 우선 직전 3대전 조상 제사 및 공훈이 있는 조상 제사(이건 이 성씨를 물려받은 후손 전부가 지냄) 그리고 자손 없이 죽은 조상 제사등 1년 내내 제사가 있습니다.
돌아가면서 지내려야 지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손 니가 전담해라는 의미로 집안 재산 몰빵해 준겁니다. 여기서 집안 재산은 문중 재산 포함이라서 집안이 클수록 재산이 헉소리나죠.
조선 후기 및 말기의 양반 가문들의 재산을 보면 임난 당시 기준으로만 봐도 반 이하로 떨어진 경우가 많이 보이죠.
일부 가문은 그 이전보다 재산이 늘었지만 대부분의 양반 가문들은 당장에 각종 가문의 제사나 후학을 가르치기 위한 비용을 대는 것도 힘든 경우가 많았죠.
가면 갈 수록 스토리텔링이 재밌어지네용!!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5:21 야굽의 축복
동서양 공통으로 서자 책임 안 질 거면 왜 낳아놓냐고
피임방법이 없었어서
미개한 시절이라 잘못 됐다는 생각자체를 못 함
못배운 사람처럼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 쳐다보네
능력은 없고 번식용만 있는 남자들 때문에
개소리하네
일부분 잘못 설명 하고 계시네요...조선시대 제사
때문에 장자 상속이 굳혀진게 아니라
조선후기에 서민계급 즉 양인 계급이
경제적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자
위협을 느낀 양반계급이 장자에게
재산을 몰아주면서 자기 가문 이라도
근데 흥부와 놀부는 놀부가 장자라서 재산을 거의 상속 받은게 아니라 놀부가 부잣집에 대릴사위로 들어가서 그런거라고 알고 있는데요...
2:18 큰형한테 빌붙어 살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되나요?
유목사회에서 말자상속이 흔해진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장자가 생업에 미숙하면 곤란한데 그게 왜 막내가 재산을 물려받는걸로 이어지죠?
먼저 태어난 아들들은 유목하는 방법을 빡세게 공부시켜서 독립시켜야 스스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가 빠진 듯.
장자부터 몫을 가자고 독립하고 나중에 남은 말자가 부모재산을 가짐... 유목민은 목초지가 필요한데 먼저독립할수록 좋은 모초지를 얻을수 있습니다. 즉 말자는 이미 부모세대에서 다 뜯어먹은 목초지를 가진다는의미
그래서 칭기즈칸의 첫째아들과 둘째아들이 가장 먼 곳에 칸국을 세우는거죠
막내에게 몰아주자 - X
형들이 독립하면서 이미 재산 분배 받아 갔고, 마지막 남은 막내는 남은거 주기 - O
어우 둘째라서 서럽고 더럽고 치사하고... 어우 ㄷㄷ
공작이나 왕족만 되어도 후작위나 백작위를 받을수 있었다고는 하는데
크킹하면서 느낀 내용들이 그대로 나와있네요 균분상속으로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장자상속제로 가려고 애쓰던 나날ㅋㅋㅋㅋㅋ 부모 마음도 모르고 장남 질투하는 둘째 이하들 보면 너무 답답하고, 장남이 모지리면 그것도 너무 답답하고...! 모계결혼이나 말자상속 부분도 너무 재밌었어요 유난히 집중해서 봤던 화였어요!
0:11 꾸러기수비대 헤라 어릴 적 삘~ 귀엽네요~
1:09 배가 아니라 ω에서 나온 거지만...
흥부전 지은 사람도 아마 차남 또는 그 미만 아들 아니었을까? 차남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장남에 대한 저주로 흥부전을 지은 것 같다.
저 당시에도 제사 지내기 귀찮아서 서로 떠넘기는 일이 예사였구만 ㅋㅋㅋㅋㅋㅋㅋ
몽골의 말자 상속은 영상의 내용과는 좀 다릅니다.
말자 상속이라 해서 막내가 모든 걸 가지는 것처럼 설명을 하지만 실상은 장남이 성인이 되고 하나의 무리를 이끌 능력이 되면 아버지의 재산에서 일정 부분을 미리 상속 해서 분가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자식들을 모두 분가 시키고 나서 막내가 분가할 때 쯤 되면 아버지의 임종이 멀지 않은 나이가 되기에 남은 재산은 전부 막내가 가져갔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자 상속은 몽골이 정주 국가인 대몽골 울루스 체제로 전환된 이후에는 오히려 제국을 통째로 물려 받는 상황으로 바뀐 것입니다.
왜 빙의된꼬라지가 더 꽃남이라뉘 요요님의 미모의 끝은? ㅋㅋ
0:33 명문가 둘째 아들이 되면서 팀장님의 눈도 두 개 되는거 실화?
3:49 천사소녀 네티(세인트 테일)와 세인트(미모리 세이라)가 묘하게 패러디 됐군요. ㅎㅎ
솔직히 중세때 영지나 나라가 대대로 번창하려면 한명한테 몰아주는 장자상속제가 짱이긴한듯
밥먹듯이 역사왜곡 ㄷㄷ
레이디 퍼스트 때도 그렇지만 정말 꾸준하네요
콜롬버스가 서자였다는거 처음 알았네 처음👀
장자상속제라는 것이 무작정 장자한테만 몰빵해서 준다는것은 아닙니다. 예컨데 장자에서 전재산의 한70%정도 주고 나머지 차남이하 아들에게 분배하는 방식도 존재했습니다.
2:00 이 분할 상속으로 망하는 테크의 대표격이 신성로마제국의 바이에른과 팔츠의 비텔스바흐 가문, 작센의 베틴 가문이죠.. 차남 삼남에게도 영지를 주니 방계로 갈라져서 또 갈라지고 바이에른계는 아예 본가 단절되니 방계 남자 친척이 상속받고 같은 비텔스바흐 가문인데 서로 사이 안 좋아 전쟁도 나고 ㅋㅋ
비텔스바흐는 그 미남미녀 집안 으로 유명한덴가..씨씨왕후..
메디치는 그때는 귀족 아니였어용 후대에 작위를 받은 거라.. 귀족은 아니고 돈 많은 평민
0:30 눈 감아보니 검술명가 둘째아들이죠 ㅋ
유럽 둘째 3대 테크 = 덤불기사(강도귀족), 공무원, 수도원
장자상속 말자상속은 있지만 불쌍한 둘째는..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기 떄문에 그렇게나 뭔가를 벌인 사람들이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래도 와닿지 않는 어른이들이라면.. 게임 크루세이더킹즈3을 플레이 해 봅니다. 어금니뿐만 아니라 앞니까지 갈려나가는 상속문제를 아주 생생하게 실감 쌉가넝-★
아니 오프닝 빌드업 뭐냐고 ㅋㅋㅋㅋㅋㅋ 진짜 개웃겨
혹시 강력팀 형사에 관한 영상도 가능하신가요..?
썸네일 보고 최대한 아껴보려했는데 하루밖에 못버텼네요,.,..카×페 광인인 저로서는 이 오프닝.'완벽'합니다 기대했던 바입니다.... 음미하면서 영상 즐기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차남이고 막내고 뭐가 중요합니까 레볼루쑝 한방이면 가능합니다???
인트로 편집이랑 제목 나오면서 따라란 브금 미쳤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27 아진짜 눈썹이랑 눈 하나만 있는거 진짜 너무웃기고골때림
1:21 저거 팁 꼭대기 그땐 뭘로 어떻게 올렷지 뼈족하고 높은데 비행기로올린건가
1950년 이전의 과거... 항생제와 현대적인 수술개념이 없던 시절 감염, 역병 사고의 위험이 상시 도사리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지만 조선 후기 장자우대상속이 보편화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17세기 양란 이후 조선의 가경지가 급감했기 때문이예요. 경작 가능한 경제성 있는 토지가 절반으로 줄었는데 상속 예비군은 그대로...토지 분할로 인한 영세화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점차 장자상속제로 바뀝니다.
'경국대전'의 경우 남녀 균분상속이죠. 그것이 17세기 중기부터 형제균분상속으로 바뀌고 18세기 후반에 가서야 장자우대상속이 일반화되죠. 이에 따라 제사 역시 바뀌구요. 17세기까지만 해도 아들 딸 모두 돌아가며 제사를 지냈어요. 성리학 보급 정도도 후기보다 덜해서 집안마다 불교 원찰에 7대조상까지 제사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경우 아들의 존재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죠. 제사를 지내는 주체가 승려니까요. 이후 상속제가 바뀌면서 이를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성리학의 유용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장자에 의한 제사전답의 비중도 커지죠. 결국 경제적 요소>제사지요.
아이러브니키 배경 올만이네여..
유목사회는 말자 상속제라기보단 균등상속에 더 가깝습니다.
부모가 독립하는 자식에게 상속분을 미리 떼어 쥐어주며 독립시켰어요. 결과적으로 막내가 마지막까지 부모를 돌보다 부모가 죽으면 남은 자기몫의 유산을 받게 된 것에서 말자가 상속받는다는 오해가 생긴 겁니다.
교양만두님 예전부터 이런 잘못된 지식을 영상으로 올리시던데 좀만 더 신중하게 조사하고 올리셨으면 합니다
막내에게 몰아주자 - X
형들이 독립하면서 이미 재산 분배 받아 갔고, 마지막 남은 막내는 남은거 주기 - O
상속은 사망한 후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부모가 사망하기 전 자식들에게 재산을 떼어주는 것은 상속이 아닌 증여로 본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말자 상속이 맞으니까요
@@성이름-j9g6s 그렇다기엔 영상에서는 형들이 아무것도 못 받는식으로 묘사한게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교양만두 진짜 고증 다 틀리고 되도않는 헛소리만 늘어놓음 ㅋㅋㅋ 아무것도 모르는 모지리들은 좋다고 빨아 재끼겠지 ㅋㅋ
좀더 빨리 장자상속제를 했다면 크킹이 좀 더 쉬웠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