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후에 민인생은 유배가 끝난뒤 다시 관직에 복귀하긴 했으나 태종에게 미운털이 정말 단단히 박혔던지라 다시 한양으로 복귀는 하지못하고 지방 관직이나 변방의 수령직들을 전전하며 커리어를 이어갔음 비록 왕을 지척에서 모시는 1티어 유망주 관리에서 변방의 관리로 좌천되긴 했지만 어쨌든 뭐 관직 생활도 계속 이어갔고 자식들도 잘낳고 잘 살다 갔음
다른 일화를 봐도 평민들한텐 걍 자비로운거 맞는데 잘못 들어왔다곤 해도 왕의 침소까지 흘러 들어온 사람을 아무런 처벌없이 보낸 것도 애들이 공에다가 왕자이름 써놓고 발로차 이지랄하는데도 허허 애들이 그럴수도 있지 뭘 그런거 가지고 하면서 또 아무런 처벌도 안함 태종 몇개 일화 보면 힘없는 백성들한텐 자비로운거 맞음 또 하나 일화를 말해주자면 태종 말년에 관절염으로 존나 고생해서 궁녀들이 맨날 마사지 해줘야 잠들었음 근데 궁녀 중 한명 보고 다리 주무르라고 했더니 존나 시원찮게 하는거 그래서 태종이 아니 시발 제대로 좀 하라고 뭐라 한 뒤에 어찌어지 잠이 듬 근데 무릎이 너무 아파서 으악 하고 꺳는데 이 궁녀가 미쳐가지고 태종 무릎에 매콤펀치 날리고 있었음 태종이 자기한테 한소리 했다고 그 지랄 떤거...이게 얼마나 중죄인지는 다들 알거임 근데 걍 궁궐 밖으로 내쫓고 말음 물론 2년 뒤에 궁녀, 내시 할 거 없이 존나 궁내 예절이고 뭐고 하도 개판 치니깐 이 일 들춰서 존나게 벌을 주긴 했는데 연대책임으로 문거지 개인책임을 물진 않음
말에서 떨어진 태종 태종: 야 민인생 너 나 말에 떨어진거 쓸꺼지? 민인생: 넴 태종: 그거 쓰지마 쪽팔리니까. 민인생: ㅇㅋ 그거도 쓴다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종실록에는 민인생이 어찌나 맘에 안들었는지, 태종이 그에게 유배형을 내린지 10년이 지난 뒤에도 민인생이 병풍 뒤에 숨어서 몰래 기록했다는 둥 사냥을 나갈때 얼굴을 가리고 따라나섰다는 둥을 거론하며 이를 매우 음흉한 짓이라 욕을 대차게 한 것까지도 기록되어있더군요...
민인생은 이후 복직하여 금성현령과 한성부판관까지 했는데 한성부는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청으로 서울시청에서 4급공무원 업무를 하고있었다고 볼 수 있음 근데 눈치가 없고 고집이 있어서 세종대왕때 또 문제가 되서 곤장 맞음 이후 그래도 가족 덕에 어찌어지 버티었던걸로 보임 일단 민인생이 집안의 장님이기도 하고 둘쨰인 여동생은 정2품(장관)의 며느리로 가고 셋째인 여동생은 병마사(투스타)의 며느리로 시집가고 넷째인 차남은 마지막을 예조판서(장관)을 지냈을 만큼 엘리트고 다섯쨰 여동생은 판안동부사(안동시장) 며느리로 가고 여섯째 삼남은 평산부사(평산시장)을 지냈고 일곱째 여동생은 사간원 사간(2급 공무원)의 며느리의 시집갔음 그런만큼 어느정도 관직은 보장받았을 싶음
임금이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으나 사관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다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태종실록 7권, 태종 4년 2월 8일 기묘 4번째기사 1404년 명 영락(永樂) 양력은 1404년 03월 18일 이고 화요일
@@Johyeongjin 유일은 아님 태조 실록은 태조와 후에 태종이 되는이방원이 어느정도 확인하긴 함 물론 그때는 사관과 실록이라는 체계가 아직 확립되기 전이기도 하고 태조가 왕에 오르기 전의 일은 오롯이 당사자들의 기억에 의존해야했기에 반쯤은 어쩔수 없던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확인 하긴 함 그래서 태조실록은 선조 수정실록 등과 함께 실록임에도 교차검증이 필수인 실록임
중국의 황제가 개판인 이유는 툭하면 역사를 날조해서 아무리 좋게 수정해도 본인들이 개판이라 중국의 각왕조가 200년이상 버틴곳이 없을정도록 부정부패와 흑역사가 난무했는데, 조선도 흑역사 천지지만, 저 실록때문에 개판치고 싶어도 개폼잡는다고 권력균형이 유지되서 장기집권이 가능했죠.
중국 사마천이 생각나네요 과연 나라면 끝가지 신념으로 왕의 권위에 맞서 직책을 우선적으로 끝까지 완수할수 있었을까 그러고보니 사관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난 그냥 권위에 충분히 무너지듯 그런 평범한 인간인거에 반면 그분들은 신념을 품은 고급스러운 존재였다. 나또한 앞으로 승화할 여지가 더 있겠지 하찮은 인간이지만 영혼의 승화를 원한다
No, 역사는 사실의 기록. 그것이 유교의 역사관임. 이 세상엔 더러운 자들이 평생 잘 먹고 잘 살순 있어도 그것을 기록하면 후세엔 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임. 승자는 늘 고치려 하지만 꿋꿋이 안고친 자들이 있기에 우리가 폭군들이나 무능한 왕들을 기록에서 보는 것임.
왕과 신입사관 찰떡같이
연기를 잘하신다~ ㅋ
태종역 넘 코믹 ㅋㅋㅋㅋ 잼
있어요
"태종이 말에서 떨어졌다. 사관에게 일러 기록하지 마라고 하셨다."
라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음
ㅋㅋㅋ
???:아~ 이 새끼 말에서 떨어졌다네ㅋㅋㅋㅋㅋ 거리면서 적었을듯ㅋ
난 이게 젤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사관이 프로정신임...저렇게 다 적을 정도면..... 누군가 기억이 안나는데... 사관이 일일히 다 적으니 왕이 "야 이런것도 적냐??" 물어볼정도였음...
저 신입사관 보면서 예전에 제 동생이 항상 일기장에다가 절 일일이 감시해서 적었었는데 그게 너무 생각나서 태종대왕님 마음 어땠을지 정말 공감가요.
왕.........왕이신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생분 너무 귀엽네요.ㅋㅋㅋㅋㅋ
@@jameskim87182007년에 동생이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학교에서 일기를 적어오라는 숙제가 있으면 처음에는 언니, 오빠, 저 이렇게 세 명 차례대로 돌려가며 적는 것같다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저를 위주로 쓰기 시작하더라고요ㅠㅠ
동생이 중2때 여친 생기면서부터 그거 그만 둬서 전 세상 다 가진것마냥 정말 행복했어요ㅋㅋ 그만큼 그 일기장때문에 피해 당한게 한 두번이 아니라서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귀여움 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생에 민인생이엇나봐오,.
참고로 후에 민인생은 유배가 끝난뒤 다시 관직에 복귀하긴 했으나 태종에게 미운털이 정말 단단히 박혔던지라
다시 한양으로 복귀는 하지못하고 지방 관직이나 변방의 수령직들을 전전하며 커리어를 이어갔음
비록 왕을 지척에서 모시는 1티어 유망주 관리에서 변방의 관리로 좌천되긴 했지만 어쨌든 뭐 관직 생활도 계속 이어갔고 자식들도 잘낳고 잘 살다 갔음
해피엔딩으로끝나긴했네..
이렇게 후세에 이름 남긴거 자체가 대성공한거임
태종 사후 세종때는 서울로 들어와 한성부판관 자리 맏으면서 일하다 관직을 마치긴 했음 근데 그 성질 어디안간다고 세종떄도 저러다 곤장 몆대 맞았다는 기록이 있음
제발 옛날 천일야사로 돌아와줘 ㅠ ㅠ
민인생 들어오자마자 말투 급변하는거 너무 웃기네 ㅋㅋㅋㅋㅋ 그래도 민인생 덕분에 이런 재밌는 에피들도 후세까지 남았넼ㅋㅋㅋㅋ
실제로 태종은 사관을 엄청 너무 극혐해 민인생 유배보내놓고 생각날때마다 두고두고 뒷담을 깠데요 ㅋㅋㅋㅋ
@@ZaiKerizm그것도 기록됐네ㅋㅋㅋㅋ
@@choec1072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킬방원을 이렇게 상대한게 너무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킬방원의 진정한 적수네 ㅋㅋㅋㅋ
태종이 민인생을 안 죽이고, 유배 보낸 거만 봐도
힘없는 사람들한테는 자비로웠다는 거...
여론에 민감한 군주가 사형을?
@@bookgold8347 그럼 나머지 왕들은 뭐가 되냐
@@user-du3ps7so2x 여론을 신경쓰지 않은 임금이 없었다는 얘기. 연산군도 두려운건 역사뿐이라고.
자비롭다기 보다 만약 그랬다가는 나중에 뭐라고 기록될지 두려웠겠죠
다른 일화를 봐도 평민들한텐 걍 자비로운거 맞는데 잘못 들어왔다곤 해도 왕의 침소까지 흘러 들어온 사람을 아무런 처벌없이 보낸 것도 애들이 공에다가 왕자이름 써놓고 발로차 이지랄하는데도 허허 애들이 그럴수도 있지 뭘 그런거 가지고 하면서 또 아무런 처벌도 안함 태종 몇개 일화 보면 힘없는 백성들한텐 자비로운거 맞음 또 하나 일화를 말해주자면 태종 말년에 관절염으로 존나 고생해서 궁녀들이 맨날 마사지 해줘야 잠들었음 근데 궁녀 중 한명 보고 다리 주무르라고 했더니 존나 시원찮게 하는거 그래서 태종이 아니 시발 제대로 좀 하라고 뭐라 한 뒤에 어찌어지 잠이 듬 근데 무릎이 너무 아파서 으악 하고 꺳는데 이 궁녀가 미쳐가지고 태종 무릎에 매콤펀치 날리고 있었음 태종이 자기한테 한소리 했다고 그 지랄 떤거...이게 얼마나 중죄인지는 다들 알거임 근데 걍 궁궐 밖으로 내쫓고 말음 물론 2년 뒤에 궁녀, 내시 할 거 없이 존나 궁내 예절이고 뭐고 하도 개판 치니깐 이 일 들춰서 존나게 벌을 주긴 했는데 연대책임으로 문거지 개인책임을 물진 않음
저런 사연보면 조선의 왕들이 자신의 흑역사 같아서 기록을 지우고 싶었을 텐데 용케 안 봤다는게 대단하다ㅋㅋㅋㅋㅋㅋ
실록은 임금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열람할수가 없음.. 즉 열람 자체가 불가능 했지...
유일하게 열람했던게 연산군
연산군이 유일하게 그걸 열림했고... 그거 떄문에 무오사화가 일어나죠.
@@Johyeongjin 맞아요
제 기억상으로는 민인생은 유배이후로 유배안풀리고 여생보냈다던데
조선시대 극한직업: 임금.. 개인이 가질 자유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없음. ㅋㅋㅋㅋㅋㅋ 역시 왕은 아무나 하면 안되는 거임. ㅋㅋㅋㅋㅋ 사람은 그냥 평범한게 나음. ㅋㅋㅋㅋㅋㅋ
그러게요.
이렇게 자유롭게 유튜브 보면서 유유자적하게 사는게 최고죠ㅋㅋㅋㅋ
왕 스케쥴 보면 세조는 3D직업 사서하려는 마조키스트로 의심됨ㅋㅋㅋㅋ
@@turksaie1550 없는 폭력 만들어내려고 아주 열일했지
말에서 떨어진 태종
태종: 야 민인생 너 나 말에 떨어진거 쓸꺼지?
민인생: 넴
태종: 그거 쓰지마 쪽팔리니까.
민인생: ㅇㅋ 그거도 쓴다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임 실록에 다있음
천일야사재밌다
조선초 사관 민인생이
조선왕조실록
틀을 잡았네요.
정치범을 처리하는 방식
중국: 역사에서 이름을 지워버린다
한국: 두고두고 까이게 기록해서 역사에 박제해버린다.
그리고 명나라 어떤 황제는 고자라고
이장면은 항상 바도 재미있어요 👍👍👍
7:26 개웃기네 진짜ㅋㅋㅋㅋㅋㅋ 아 민인생 너무 귀여운데 저게 컨셉이 아니고 아 ㅋㅌㅋㅋㅋ 조선시대 찐광기.. 배우님 눈빛이 넘 맑아서 더 몰입되네요ㅋㅋㅋㅋㅋㅋ ㅜ
정말 훌륭하신 분이구만요
와 사관패기보소 ㅎㅎ
정말 심장이 10개 있어도 못할 일인거 같습니다. ㅋㅋ
태종이 사냥을 나갔다 말에서 떨어졌는데
쪽팔려서 사관에겐 절대 비밀이라고
했는데 그것까지 기록
세종은 맘에 안드는 상소를 찢어버리라고 했는데 사관눈치에 아임 쏘리 취소해
근데 이것도 기록
암튼 왕한테 달라붙은 조선판
디스패치
태종실록에는 민인생이 어찌나 맘에 안들었는지, 태종이 그에게 유배형을 내린지 10년이 지난 뒤에도 민인생이 병풍 뒤에 숨어서 몰래 기록했다는 둥 사냥을 나갈때 얼굴을 가리고 따라나섰다는 둥을 거론하며 이를 매우 음흉한 짓이라 욕을 대차게 한 것까지도 기록되어있더군요...
민인생은 이후 복직하여 금성현령과 한성부판관까지 했는데 한성부는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청으로 서울시청에서 4급공무원 업무를 하고있었다고 볼 수 있음 근데 눈치가 없고 고집이 있어서 세종대왕때 또 문제가 되서 곤장 맞음 이후 그래도 가족 덕에 어찌어지 버티었던걸로 보임 일단 민인생이 집안의 장님이기도 하고 둘쨰인 여동생은 정2품(장관)의 며느리로 가고 셋째인 여동생은 병마사(투스타)의 며느리로 시집가고
넷째인 차남은 마지막을 예조판서(장관)을 지냈을 만큼 엘리트고 다섯쨰 여동생은 판안동부사(안동시장) 며느리로 가고 여섯째 삼남은 평산부사(평산시장)을 지냈고 일곱째 여동생은 사간원 사간(2급 공무원)의 며느리의 시집갔음 그런만큼 어느정도 관직은 보장받았을 싶음
그걸 어떻게 아신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순히 엘리트 또라이 직진남이었을뿐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종이 악덕업주로 유명한데 민인생을 황희처럼 끝까지 즙을짤쩡도로 일을 안시키는 것을 보니까 대단한 분이네 ㄷㄷ
@@즐겜러-p7c 너무 사람이 외골수라 마지막에 파직되고 복직한 자리가 주부인데 지금으로 치면 일하다 너무 외골수라 왕한테도 거침없이 말하고 그래서 서울시청 4급 공무원에 짤리고 귀향가서 다시 5급공무원으로 복직한 것으로 볼 수 있음
봤도봤도재밌다ㅎㅎㅎ
봐도봐도너무재밌다ㅎㅎㅎㅎㅎ
존나 멋있어
저시대의 유일한 태종의 카운터
덧붙이자면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실록만 인정하는데 이유는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당시 일제의 억압으로 일본인이 왜곡해서 기록하고 완성시켰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일단 볼 수는 있음
사극판 시트콤 보는거 같네 ㅋㅋ
천일야사 겁낭 잼있또욤~^^
저건 진짜 있는일임 ㅎㅎ
사관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고 함
태종역너무재밌다🤣🤣🤣🤣🤣😁😁😁😁😁
사관 융통성 진짜 없네 조선 태종 성격에
살려둔것만 해도 기적이다
태종실록을 꿀잼으로 만든 희대의 저자 아닐까… 진짜 직업정신은 본받아야 함
@@user-aahdhdc9 융통성이 없어야할 직 중에 하나가 사관이긴 함.
ㅈ같아서 속에서 천불나도 자기자신이 조선왕조 처음으로 피바람을 일으키고 왕이 된 케이스라서 정통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참고살음
그래서 세종을 세자로 임명할때도 엄청 고민하다가 세자로 세움
임금이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으나 사관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다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태종실록 7권, 태종 4년 2월 8일 기묘 4번째기사 1404년 명 영락(永樂)
양력은 1404년 03월 18일 이고 화요일
킬방원이 사형 안내린게 신기하네 ㅋㅋ
태종은 능력있고 자신이 신임하는 신하들에겐 관대했다고 합니다. 형제랑 외척들 싹 갈아버린게 너무 임팩트가 커서 그럴뿐...
사관이 역사 기록해서 죽은경우 있었지 김일손이라고
연산군 떄 일이죠. 유일하게 실록을 열람한 왕...
@@Johyeongjin 유일은 아님 태조 실록은 태조와 후에 태종이 되는이방원이 어느정도 확인하긴 함
물론 그때는 사관과 실록이라는 체계가 아직 확립되기 전이기도 하고 태조가 왕에 오르기 전의 일은 오롯이 당사자들의 기억에 의존해야했기에
반쯤은 어쩔수 없던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확인 하긴 함 그래서 태조실록은 선조 수정실록 등과 함께 실록임에도 교차검증이 필수인 실록임
진정 노빠꾸 인생이구나 ㅎ 그런덕에 유례없는 기록이 남았지 감사합니당
이 일화는 태종 이방원 드라마에도 나왔으면 좋겠다
민인생 선조께서는 노빠꾸 상남자셨군요..ㅋㅋㅋ
중국의 황제가 개판인 이유는 툭하면 역사를 날조해서 아무리 좋게 수정해도 본인들이 개판이라 중국의 각왕조가 200년이상 버틴곳이 없을정도록 부정부패와 흑역사가 난무했는데, 조선도 흑역사 천지지만, 저 실록때문에 개판치고 싶어도 개폼잡는다고 권력균형이 유지되서 장기집권이 가능했죠.
개폼잡는다곸ㅋㅋ말웃기다😂
안죽고 귀향간게 기적이군ㅡㅍㅎㅎ
저 사람 사관이 아니라 첩보원으로 활동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니, 저렇게 끈질기게 추적할 정도면 사관이 아니라 거의 첩보원급이다;; 만약, 민인생이 사관이 아니라 첩보원으로 임명했다면 태종에게 극진히 대접을 받았을텐데 아까비;;
자주 들킬정도면 첩보원 안하고 사관한게 다행인듯
저렇게 자주 들키는데
이런 기개가 있어 지금 전통 문화가 꽃 피우는것. 양쪽에서 따라하려고 난리지만
가짜는 표가 날 수밖에.
민인생 넘 귀여워~
그런데 이방원에게도 저런 면이 있으니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거지.
그래도 민인생 최고다.
ㅋㅋㅋㅋㅋㅋㅋ 태종께서 유일하게 겁낸 존재라는게 너무 웃긴대 ㅋㅋㅋㅋㅋㅋ
중국 사마천이 생각나네요 과연 나라면 끝가지 신념으로 왕의 권위에 맞서 직책을 우선적으로 끝까지 완수할수 있었을까 그러고보니 사관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난 그냥 권위에 충분히 무너지듯 그런 평범한 인간인거에 반면 그분들은 신념을 품은 고급스러운 존재였다. 나또한 앞으로 승화할 여지가 더 있겠지 하찮은 인간이지만 영혼의 승화를 원한다
민인생같은 사관이 있었으니 지금의 우리들이 조선역사에 대하여 알 수 있었던 것.
파파라치에 내몰리는 셀리브리티의 심정이셨을 듯 - 왕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
왕들도 자기 하고픈말도 못하고 스트레스 받으셨을듯..
민인생은 자기 인생을 밀었군. 민 인생. 눈치 없이 민 인생.
근데 민인생 이후의 사관들도 또라이인게 태종이 몇년 뒤에 민인생을 떠올리면서 치를떨고 뒷담을 깠는데 그것도 박제를 시켜버림.ㅋㅋㅋ
솔직히 저건 사생활 침해지. 대전에서의 언행만 기록해도 충분한걸 쉬지도 못하게 변장까지 하고 방안에 숨어서 까지 자신을 감시한다고 하면 미칠 노릇이지.
잠자리까지 스케줄과 형식이 있었는걸요.
근데 사관이 1명이 아니에요 60명이 돌아가면서 기록했습니다
@@양지욱-s6s 그리고 보통 2명이 기록해서 대조를 했음 혹시 빼먹은거있나
조선왕에게 사생활을 논하는 건 좀 너무 현대적인 시각임. 똥싸는 것조차도 무슨 똥인지 체크를 받고, 잠자리 체위까지 문 밖에서 보고 받았던게 왕인데 무슨..
우리 조상님 중에서 사관이 있었다니
대단합니다^^
아직도 구라 족보를 믿으시는 당신은 ㅋㅋㅋ
왕의스토커 ㅋㅋㅋ
유일하게 태클 걸 수 없는 ㅋㅋㅋㅋ
근데 왕......아휴 못할 짓이지.
어떻게 보면 시대 분위기만 완만하면
종친이 대박인데
그 사이코 연산군은 과연 가만있었을까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관을 능지처참하고 직계까지 다 죽였다던데..아휴
저민인생역을 맡은배우 태종역을 많이 맡은 배우인데 여기서는 민인생역을 맡았네요 만약에 태종을 맡은 실제배우들이 이스토리에서 연기하면은 제일 위엄이 넘치게 민인생을 귀양을 보내는 대사를 하는 배우는 유동근 아님 안재모요
민인생 이후 새로 들어온 사관들도 태종이 민인생을 떠올리면서 뒷담 깐거
기록에 적지 않았나요?
09:25 갑자기 현대극으로 바뀌는 분위기 ㅋㅋㅋ
저 맑은 눈을 봐. 예삿놈이 아니야
융통성 드럽게 없는게 넘 웃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벽한 공무원일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그 킬방원도 사관은 차마 죽이지 못하네 몇번 죽여도 할말 없는데 ㅋㅋㅋㅋ
눈치도 없는 사관...ㅋㅋㅋ
민인생 일화 유명하죠ㅋ
아니 근데ㅋㅋ 중전역할 하신분 연기가 어색해서 중간에 몰입이 확 깼음..ㅇㅅㅇ
ㅋㅋ 잘뽑았네 사관
오늘보니 천일졸잼 ㅋ🙇♀️🍜🕺💥👍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적인 역사서입니다
칼방원이 의외로 ㅋㅋ
근데 그분 유배간? 보내지고 어떻게 됬나요?
민인생 유배간게 태종1년인데 8년뒤인 태종9년에 금성현령으로 기록에 나타남. 유배갔다 다시 관직에 돌아온 듯. 후에 1남 2녀 남기고 그럭저럭 살다감
@@Ruka77-e2x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이러니까 조선왕조실록의 신빙성이 대단하지
사관이 모두 민인생이 아니라서 민인생이 진짜 사관으로 대단한 거 같음.
drama name pls
'Cheonil Yasa'
대왕세종의 김영철할아버지 데려와서 저거 드라마로 만들어서 연극시켜보고 싶다ㅋㅋㅋㅋㅋ
근데 태종 귀엽노 그 잔인한 이방원 맞나 싶을 정도로
의외로 관리의 비판은 수용하는 왕이었던게 깔거면 대놓고 까라고 문화부 낭사를 아예 사간원으로 따로 분류시켜서 임금 견제용 집단을 만든 왕임.
민인생 ㅈㄴ유명하지ㅋㅋㅋㅋㅋ
왕의 모든것은 개인의 것이 아니기는 함.. 왕이 아프면 나라가 흔들리는 거고 그런식이라...
조선왕조실톡1 봤는데 거기도 민인생 사관 이야기 나와요, 개꿀잼 이니 강추!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이 472년 역사서 라는 것은 좀 아닙니다.
조선왕조가 518년 인데, 고종•순종 실록은 일제강점기 때 써진 거라 25대 철종 까지만 묶은 겁니다.
지나가던 역덕후입니다만 극중 민인생의 조복에 호랑이가 그려져있습니다. 문관은 학이 그려진 조복을, 호랑이가 그려진 조복은 무인들의 조복을 입습니다. 민인생이 무과급제자인가요? 애초에 무과 급제자가 사관이 될 수 있는 루트가 존재하나요?
세종때 사관은 어땠을지 궁금하네...
사관들이 ㅈㄴ 피곤해할듯 ㅋㅋㅋㅋㅋㅋㅋ
모든 걸 설명하는 썸네일ㅋㅋㅋㅋ
다시 봐도 재밌네ㅋ
안 죽인것도 용하다... ㅁㅊ
태종:적당히 해야 할것 아냐!!!!
민인생:차라리 죽여주시지요
궁궐 안에서는 누구도 사생활을 누릴 수 없다 모두가 서로를 감시하여 권력이 법도를 어지러히 하는 일이 없게 한다
작금의 정치인들이 조선시대왕들의 반 만 해도 이나라가 제대로 굴러 갈터인데.. ㅜ
속마음으로 제기랄ㅋㅋㅋㅋㅋㅋ
연산군이었다면 그냥 저건 참수형 때릴거같은데?
참수형이 아니라 능지처참시킬것같음..
연산군:그래서 해드렸습니다~
왜 고구마 천개 먹은기분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하의 킬방원을 엿먹인 사내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진짜 돌아버리겠네
여담으로 몇 년 뒤에 태종이 민인생을 떠올리면서 치를 떨고 뒷담을 하자 그 때의 사관은 그걸 기록하여 실록에 박제를 하였다고 합니다.ㅋㅋㅋ
사기를 고치고도 발각돼지않은 왕이 많았을것같은데
조선이 유일하게 잘한 것 하나 유일무이한 "조선왕조실록" 이거는 뿌리부터 기록의 민족임을 ......
사실 진정한 유교국가는 조선인지라....중국은 기본적으로 법가국가쪽에 가깝고...
예저에는 목숨보다 명예가 중요했으니 사관이 무섭긴했겠네. 국제관계조차 명예가 1순위였었는데 아쉬움이 많다.
민인생 = 사생팬
대쪽사관
개꼴통 고문관 ㅋㅋ 근데 저런 사람 있어서 기록 남음 ㅋㅋ
민인생 귀향가고나서 다시 본인 부임지로 기생데리고 가다 관찰사한테 걸려서 탄핵 당했다고 하든데. 민인생 본인이나 똑바로 처신잘하지...😊
전하의 말을 사관이 알아듲지 못하는데~~~
ㅋㅋㅋ
ㅈㄴ웃기네
현정부도 사관이 있나요?
대통령기록물을 관리하는 기관이 있습니다.
제발의복좀바꿨으면좋겠다.
어휴 .ㅋㅋ
역사는 승자의기록.써진대로 다 믿으면 안된다.타이머신을 타고가야 역사의진실,누가 억울하게 기록되었는지 알수있다.
No, 역사는 사실의 기록. 그것이 유교의 역사관임. 이 세상엔 더러운 자들이 평생 잘 먹고 잘 살순 있어도 그것을 기록하면 후세엔 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임. 승자는 늘 고치려 하지만 꿋꿋이 안고친 자들이 있기에 우리가 폭군들이나 무능한 왕들을 기록에서 보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