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시 낭송] - 木具(목구) 낭송 - (낭송 - 물처럼 김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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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мар 2020
  • 백석 시 낭송 모음 - 木具(목구)
    국민대학교 글로벌인문대학장님이시자,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서 마을 훈장으로서, 지식의 나눔을 활발발하게 펼치고 계시는 정선태 교수님께서 '마을훈장 정선태 시인 백석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백석의 시 40여편에 대하여 일대 사자후를 토하신 것을 토대로,
    이를 수강한 제자들과 훈장님께서 직접 낭송한 백석시를 영상으로 편집한,
    백석 시 낭송 재생목록입니다.
    마을훈장 정선태 시인 백석을 만나다.
    제 4강 서정시가 역사를 만날 때
    4-1 서정시가 역사를 만날 때 - 서론
    4-2 '山宿(산숙)' - 시, 개인의 역사를 만나다
    4-3 '木具(목구)'
    4-3-1 '木具(목구)' - 시, 가문의 역사를 만나다
    4-3-2 시의 역사적 시점 -백석의 만주시절
    4-4 '北方(북방)에서'
    4-4-1 '北方(북방)에서' - 시, 민족의 역사를 만나다
    4-4-2 시의 정치적 저항
    4-5 '許俊(허준)'
    4-6 ' 杜甫(두보)나 李白(이백)같이
    4-7 '女僧(여승)'
    4-8 '八院(팔원)'
    4-9 '절망'
    木具(목구)
    시 - 백석
    낭송 - 물처럼 김란경
    五代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다 찌그러진 들지고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옛적과 또 열두 데석님과 친하게 살으면서
    한 해에 몇 번 매연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지르터 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의 우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촛불 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 위에 떡 보탕 식혜 산적 나물 지짐 반봉 과일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에 하고 그리고 합문 뒤에는 흠향 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줌 흙과 한 점 살과 먼 옛 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룩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水原 白氏 定州 白村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목구'란 시 분석
    1. 五代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백석의 시 목구를 시장하는 저 문장, '오대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을 다음 두가지 중 어찌 해석하는 것이 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까요?
    뼈다구 해장국 발라 먹듯이 낱낱히 살펴봅시다.
    1-1 '크나큰 집'을 House의 개념으로 보는 경우
    백석이 '크나큰 집'을 House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썼다면 이 이야기에 대하여 어른으로부터 뭔가 주워들은 얘기가 있다는 거죠.
    본인이 누군가로부터 주워 듣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백석이 ‘하우스로서의 집’에 대한 내력을 알게 된 계기의 대화를 가정하여 예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시1)
    어린 백석 - ‘아바지, 그런데 우리 집은 언제부텀, 어느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집이야요?’
    아바지 - ‘어 우리 집은 그라니까니 고저 뭐이냐 5대조 큰아바지 때 부텀 내려온 집이다야’
    어린 백석 - ‘ 아~ 고렇구만요...오대조 큰아바지 때부터 살고 물려받아 내려 온 집이고만요....’
    자 언젠가 아바지로 부터 하우스로서의 집에 대하여 들어 알게 된 백석이 후에 시를 쓸 때에 어떻게 쓸까요?
    아무리 시적 표현을 위해서 문법이나 형태등의 파괴를 할 수 있다 손 치더라도
    오대나 '나린다’ 는 크나큰 집 이런 표현 보다는
    오대나 '나렸다는' ((물려) 내려 왔다는) 크나큰 집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요?
    ‘나린다’는 어떤 행위가 종결된 것이 아니고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거나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만 나부가 설명한다면 물론 ‘하우스로서의 집을 5대째 물려 받아 왔고 그 대물림이 거기서 끝날지 아닐지를 모르므로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거 아니냐’ 이렇게 반박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린다’라는 것은 과거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하다는 확실한 진행형입니다
    집을 대물림하는 것은 현재까지 시점까지는 그렇게 이어져 온 행위의 종결이므로
    '나린다는'이란 표현보다는 ‘나렸다는((물려)내려 왔다는)’이라는 종결형 표현으로 말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1-2 '크나큰 집'을 Home의 개념으로 보는 경우
    백석이 자신의 가문(Home)에 대하여 '제사'라는 것을 통하여 알게 된 대화를 가정하여 예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시2)
    어린 백석 - ‘엄매야 근데 우리 집(가문)은 제사를 몇 대조 큰아바지 제사까지 지내나?
    백석엄매 - ‘ 아 간나새끼 거 참 궁금한 거도 많다야, 니는 쪼꼬만한 녀석이 고까이거가 와 그리 궁금하기나 하더란 말이다냐? 우리집(가문)은 고저 때꺼리가 없어도 오대조 제사까지 다 지낸단 말이다야, 아 그래서 이 엄매가 거저 제사 때만 되면 지랄이 벌벌 난다 안하드나 말이다.
    어린백석 -‘ 아 고렇고만요, 우리집이 찢어지게 가난은 할 망정 참으로 뼈대는 있는 집안이구만요...'
    자 언젠가 엄매로부터 홈(가문)으로서의 집에 대하여 들어 알게 된 백석이 후에 시를 쓸 때에 그것에 대하여 쓸 때는 어떻게 쓸까요?
    '오대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 오대조 큰아바지 제사까지나 지낸다는 뼈대있는 가문
    이 해석이 더 그럴듯한 해석일 것이라는 나부 주장의 근거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1) 여기서 '나린다'는 '내리다'에서 온 말로 보이는데, 이 때 '내리다' 는 제사를 지낼 때 '귀신을 내리다' '조상신을 내리다'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 듯 싶습니다.
    (2) 그렇다면 오대조 제사까지 지내는 것이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그것을 '크나큰 집'이라고 표현하여 엄청나게 뼈대있는 집안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주장하느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야 모두들 양반의 후예입네하고 주장들을 하기도 하거니와, 제사를 지낸다는 것에 대하여 별다른 경제적 형편의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 시대이지만,
    백석이 살았던 시대, 또 그 이전의 시대에도 그러했을까요?
    사실 지금이야 모두들 자기들의 선조나 가문을 얘기할 때 누구 누구 몇 대손이니 하면서 몇 대 조 할아버지가 무슨 벼슬을 했다는 둥 하며 양반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사실 옛날에 뼈대 있는 집안에 태어나, 방귀 꽤나 꾸면서 살던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이름도 없이 살아온 상놈들이 훨씬 많이 살았을 세상이었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끼 먹는 것 조차도 근심 속에서 살던 어렵던 시절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웬만큼 살던 집안 아닌 다음에야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예 자기 아버지 어머니의 제사 조차도 못 지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을 터이고, 어려운 속에서도 성의를 내어 겨우 아버지 어머니의 제사까지야 지내는 사람이 있었겠으나, 웬만큼 넉넉하지 않으면 할아버지대, 증조부대, 고조부대의 제사까지 지낸다는 것은 엄두도 못냈을 것입니다.
    부계를 중심으로 위로 2대조는 할아버지, 3대조는 증조할아버지, 4대조는 고조할아버지라고 별도의 호칭이 있지만 5대조 할아버지부터는 별도의 호칭이 없습니다.
    4대봉사라 하여 4대조까지만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지요.
    왕가에서 종묘에 제사를 지내는 것 이외에는, 아무리 잘 살고 뼈대 있는 집안이라 해도 오대조 이상의 제사는 나라에서 금지를 하였던 시절이 있었고, 조선조 어느 시기부터 특별히 나라에서 인정해 준 사람에게만 소위 ‘불천위제사’라고 해서 5대조 이상의 선조가 되었다 하더라도 제사를 지내는 것을 허락해 줬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를 나라에서 허락하였다하여 '국불천위'라 합니다.
    후에 '국불천위'를 본 떠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한 '향불천위' 또 가문에서 발의하여 정한 '사불천위'가 생기기도 합니다만, 여하튼 5대조 이상의 제사는 형편상 지내기도 어려웠겠으나 제도적으로도 함부로 지낼 수 없던 것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부는 '오대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이 '오대조 제사까지도 지낸다는 뼈대있는 집'이라고 자꾸 해석이 되는데, 나부의 해석이 과도한 것일수도 억지스러운 것일 수도 있을 수도 있긴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군요.
    2. 무엇이 무엇을 꾸며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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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 무엇이 무엇을 꾸며주는 말인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참으로 복잡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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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를 낭송하신 물처럼 김란경님의 완벽한 낭송을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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