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한국고대사 정립을 위해 연구 하시는 박동박사님의 숭고한 정신은 가히, 역사광복운동이라 할것입니다. 박사님 강의중 일본서기 신공기 49년 기사를 들을때 마다 의문이 생겨, 자료 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올리오니 노여워 마시고 살펴 보아주십시요🙏 침미다례 ruclips.net/video/yFPyw7gVxYs/видео.html 강의를 감사하게 잘들었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십시요.♡사랑합니다♡
대부여,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가 멸망한 뒤에도 만주에는 그 잔존 세력이 부여를 칭하며 오랜기간 존속되었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한지 오래된 뒤에도 연개소문 아들의 묘지명에는 자신을 조선인이라고 칭하였죠...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후고구려가 나왔고 백제가 멸망한 후에 후백제가 나왔습니다... 중국에서도 그런 사례는 무수하게 많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한반도 남부지역에 있던 마한이 백제에 멸망하였던 것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한은 기원전 2천여년 전에 생긴 나라였고 마한이라는 명칭은 처음 나라이름이 아니라 고조선의 연맹 제후국 수장의 명칭이었죠... 한은 신라의 간, 몽골의 칸과 같은 개념입니다... 2천여년이 지나면서 마한은 나라이름과 같은 의미로 사료에 기록되어졌을 뿐입니다... 마한은 한반도 내의 수십개 소국들을 다스린 고조선의 제후였습니다... 고조선 멸망후 만주와 한반도 수십개 소국들이 정치적으로 분열되었으나 한반도 내에서는 여전히 마한의 위세가 강하였으므로 만주,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고조선 유민들과 백제 등 세력이 마한에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만주의 진한의 유민들도 역시 마한에 의탁하여 경상도 지역에서 터전을 잡아 진한이라 칭하였던 것이죠... 즉, 만주, 발해만의 진한과 번한이 한반도로 내려와 초기에는 마한에 의지하였으나 서서히 세력을 키워 주변 소국들을 통합하면서 마한은 유명무실하게 되거나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사료 기록과 신라 최치원은 마한은 고구려다 라고 하였습니다... 초기 마한의 중심지였던 지금의 평양지역을 차지하였던 고구려를 마한의 후계국으로 봤던 것이죠...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극히 단편적인 정보만 기록된 중국사료에 의지하여 마치 그것인 사실인양 일반화시키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중국 사서를 믿을게 아니라 한국 사서를 믿는게 우선이 되어야겠죠... 중국사서를 우선한다면 뭘 근거로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의 잘못을 말할수 있을까요... 마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나라였고 중국사서 그 어디에도 마한의 성립과 그 계보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모든 중국 사료에 나오는 한반도, 만주에 대한 기록은 그들이 그 땅에서 살면서 직접 보고 들은것을 기록한것이 아니라 주워들은 이야기를 기록한것에 불과합니다... 한국의 고대사를 논하고자 한다면 한국사료에 근거하여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에 가장 근접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마한세력과 열도세력이 한집안이기 때문에 백제가 멸망할 당시 열도에서 백제부흥군을 파병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성백제가 지배하는 구조였다면 쉽지 않았을텐데 전라도 지역 마한계열 백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다 생각되네요. 당군과의 전쟁에서 왜 열도에서 그렇게 까지 무리해가면서 백제부흥군을 파병한것에는 본가가 망하게 생겼으니 위기의식에서 파병한것으로 봐야겠지요
늘 좋은 말씀 많이 듣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으 입장에서 볼 때, 우리 한반도나 만주에 원래부터 사는 원주민은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지 배우고 싶습니다. 왕과 세력 수장들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이주(수만 또는 수십만)케하여 정착 시킬 수는 없을 건데, 기존의 원주민들이 유전자 풀로 보았을 때,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어서 입니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과 대담영상 중 황씨가 7만 5천명이 이주 했다는 애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수의 이주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 --.
환단고기를 봐도 이렇게 자세히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마한백제 연구의 선구자십니다! 연구 많이 해주시고 널리 알려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
올바른 한국고대사 정립을 위해 연구 하시는 박동박사님의 숭고한 정신은
가히, 역사광복운동이라 할것입니다.
박사님 강의중 일본서기 신공기 49년
기사를 들을때 마다 의문이 생겨, 자료
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올리오니 노여워 마시고 살펴 보아주십시요🙏
침미다례 ruclips.net/video/yFPyw7gVxYs/видео.html
강의를 감사하게 잘들었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십시요.♡사랑합니다♡
신공기는 200년대에서 400년대까지 기사가 뒤섞여 있는 짜집기 사서입니다. 신공은 비미호를 포장한 것입니다.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탁순이 창원이라는 근거와 고해진이 강진이라는 근거는 일본서기 어디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혹 식민사학자의 농간에 놀아 나는 것입니까 궁금합니다.
저는 일본서기 가야7국 전쟁은 삼국사기 포상팔국전쟁을 가리키므로 그에 입각해 비정합니다. 일본서기는 백제기를 짜집기한 사서입니다.
일본서기는 기년이 가장 문제입니다. 광개토왕에게 쫓겨난 응신을 신공의 아들이라고 왜곡해서 왕통공백을 숨겼죠. 신공은 3세기 사람이고 응신은 5세기 사람입니다.
어제 토론에서도 나타났지만 지명으로 변죽만 울리다 식민사학자들에게 크게 당한 것 보셨잖습니까? 신공기 비판 한 번 못하더군요
마한이 서기 9년에 멸망했다는 것은 김부식의 어처구니 없는 왜곡입니다.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에는 백제 멸망시 소정방의 직책이 우이 마한 정벌 총사령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여융묘지명에는 백제가 멸망하자 마한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마한도안무대사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여,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가 멸망한 뒤에도 만주에는 그 잔존 세력이 부여를 칭하며 오랜기간 존속되었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한지 오래된 뒤에도 연개소문 아들의 묘지명에는 자신을 조선인이라고 칭하였죠...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후고구려가 나왔고 백제가 멸망한 후에 후백제가 나왔습니다... 중국에서도 그런 사례는 무수하게 많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한반도 남부지역에 있던 마한이 백제에 멸망하였던 것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한은 기원전 2천여년 전에 생긴 나라였고 마한이라는 명칭은 처음 나라이름이 아니라 고조선의 연맹 제후국 수장의 명칭이었죠... 한은 신라의 간, 몽골의 칸과 같은 개념입니다... 2천여년이 지나면서 마한은 나라이름과 같은 의미로 사료에 기록되어졌을 뿐입니다... 마한은 한반도 내의 수십개 소국들을 다스린 고조선의 제후였습니다... 고조선 멸망후 만주와 한반도 수십개 소국들이 정치적으로 분열되었으나 한반도 내에서는 여전히 마한의 위세가 강하였으므로 만주,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고조선 유민들과 백제 등 세력이 마한에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만주의 진한의 유민들도 역시 마한에 의탁하여 경상도 지역에서 터전을 잡아 진한이라 칭하였던 것이죠... 즉, 만주, 발해만의 진한과 번한이 한반도로 내려와 초기에는 마한에 의지하였으나 서서히 세력을 키워 주변 소국들을 통합하면서 마한은 유명무실하게 되거나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사료 기록과 신라 최치원은 마한은 고구려다 라고 하였습니다... 초기 마한의 중심지였던 지금의 평양지역을 차지하였던 고구려를 마한의 후계국으로 봤던 것이죠...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극히 단편적인 정보만 기록된 중국사료에 의지하여 마치 그것인 사실인양 일반화시키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우이가 어딘지 아십니까 산동반도에 있습니다 우이 레이 거기 다 있죠
@@쭌-e4w 그렇습니다
중국 사서를 믿을게 아니라 한국 사서를 믿는게 우선이 되어야겠죠... 중국사서를 우선한다면 뭘 근거로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의 잘못을 말할수 있을까요... 마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나라였고 중국사서 그 어디에도 마한의 성립과 그 계보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모든 중국 사료에 나오는 한반도, 만주에 대한 기록은 그들이 그 땅에서 살면서 직접 보고 들은것을 기록한것이 아니라 주워들은 이야기를 기록한것에 불과합니다... 한국의 고대사를 논하고자 한다면 한국사료에 근거하여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에 가장 근접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마한세력과 열도세력이 한집안이기 때문에 백제가 멸망할 당시 열도에서 백제부흥군을 파병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성백제가 지배하는 구조였다면 쉽지 않았을텐데 전라도 지역 마한계열 백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다 생각되네요. 당군과의 전쟁에서 왜 열도에서 그렇게 까지 무리해가면서 백제부흥군을 파병한것에는 본가가 망하게 생겼으니 위기의식에서 파병한것으로 봐야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열도는 영산강 세력과 혈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죠.^^
늘 좋은 말씀 많이 듣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으 입장에서 볼 때,
우리 한반도나 만주에 원래부터 사는 원주민은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지 배우고 싶습니다.
왕과 세력 수장들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이주(수만 또는 수십만)케하여 정착 시킬 수는 없을 건데,
기존의 원주민들이 유전자 풀로 보았을 때,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어서 입니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과 대담영상 중
황씨가 7만 5천명이 이주 했다는 애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수의 이주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
--.
@@휴림-f3n 김수로 세력 7만5천이 이주한 것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근데 일본백제는 천황의 능이 피라미드급인데 백제 본진 무령왕릉은 어째 이리 후진가요?
@@gsyoo755 미개국을 다스릴 때는 엄청난 규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령왕 시기는 공주에 도읍해서 물자가 풍부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서기에 마한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일본내에 한반도에서 이주해온 가야 신라 고구려계와
뚜렷이 구분하기 위하여 백제라 한 겁니다
걍 일본은 백제의 제후국의 제후국인 식민지였지뭐
선생님,
마한을 '쿠다라'(큰나라)로 보면 어떨까요?
왜(작은나라),
백잔(온조의 남은 잔당들)..'백'의 우리말 '온'.
네 마한을 구다라 백제로 부른 것입니다^^
@@박동-h4p 일본내에서도 한반도로부터 이주한 여러 세력중에서 고구례계 마한있었기에 가야계와 신라계와 구분하기위해
백제계 마한을 그냥 백제라 자칭한겁니다
서울가면 전라도 경상도 등 자기들의 출신 지역을 쓰지않읍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지 합니다
감사합니다 ^^
1인칭 아따 성님 =와따 시오니, 2인칭 안나 먹어라 =아나타. 오사카 영상강 모국어, 아시타와 빵=축제날 홍어
@@bebest8298 네 영산강 부여족이 일본의 고대 지배세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라도 마한은. 한족 남방계이고
북방계 백제세력이 병합한게 되는거 아닌가요?
옹관묘가 없어진것도 그걸 얘기해주는거 아닌가요?
마한이 백제입니다.^^
최치원은 마한을 고구려라 하지않았나요?
래이백제+마한백제+왜백제 연방국가로 봐도 될는지요?
네 모두 마한백제 연방에 속한 나라들입니다.^^
한국의료기술이좋아진것을믿읍니다
네 한국이 최고져
목소리 좀더 크게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