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으로 살펴본 조조의 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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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сен 2024
  • 발굴된 조조의 무덤으로 살펴본 조조의 사람됨은 우리가 소설 삼국지를 통해 알던 조조와는 사뭇 달랐다. 조조는 실용적인 태도와 따듯한 마음을 가진 대장부였다.

Комментарии • 6

  • @내마음의노래-k5e
    @내마음의노래-k5e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래서 조조를 재평가 한답니다

    • @turtleman1tv
      @turtleman1tv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조조는 재정적으로 힘겨운 상황에서 사방에 적을 두고도 결국 중원을 거머쥔 패자가 됐습니다. 역시 사방에 적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는 주변 사강외교에 임하여 조조의 경영전략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이웅-s1y
    @이웅-s1y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유비, 관우, 장비 = 마윈 = 오스트랄로이드 / 중국어 = 태국어, 배트남어 = 주동목 어순의 남방계 성조언어 / 유전학에서도 중국인은 태국, 베트남, 필리핀과 함께 동남아 그룹 / 한국, 일본, 몽골, 만주족은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이면서 유전학에서 동북아 그룹

    • @turtleman1tv
      @turtleman1tv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중국의 13억 6천만명의 인구중 98%가 한족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대부분의 이민족, 특히 호남 운남 귀주 광동성의 남만족 계열의 사람들을 신분증을 발급할때 대부분 한족으로 편입시켰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장강 이북지역의 사람들 중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과 비슷해 보입니다. 이유는 많은 북방 기마민족의 후예들과 혼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방언을 포함하여 한족의 어순은 님의 말씀대로 주어 동사 목적어의 순서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북방유목민족들의 어순은 우리말과 같은 주어 목적어 동사의 순서이죠. 그들이 쪽수가 더 많았기 때문에 유목민족들이 중국을 점령한 적은 많았어도 말 자체는 바꾸어 놓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구려 백제 멸망 후 고구려에서만 20만이 넘는 사람들이 포로로 당나라에 잡혀가 중국의 여러 오지로 배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오지에는 지금의 남경 아래 양조우, 까오요우도 있습니다. 당시에도 회하와 장강은 늘 범람을 했으니 사람살기 어려운 곳이었겠죠. 그래서그런지 우리말의 흔적은 찾기 어렵습니다.

    • @이웅-s1y
      @이웅-s1y 2 месяца назад

      @@turtleman1tv 한족은 원래 남쪽에서 올라온 종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