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 속 숨겨진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소름 돋는 미스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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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1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479

  • @thereal8134
    @thereal8134 Год назад +40

    태국친구가 있는데, 자기들끼리 말할때 우리나라보고 까우리 라고 하더라구요. 고구려를 가우리 라고도 불렀다고 배웠는데 신기했습니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가 위태한데, Korea가 고려/고구려이듯, 이렇게 다른나라에서 알게모르게 구전되어 내려온 우리를 보는 정체성이 고구려 인걸보면, 억지로 왜곡한다고 하늘을 다 가릴순 없나봅니다. 우리역사를 잘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 @yeeunjo8929
      @yeeunjo8929 Год назад +3

      로마 기록에는 무크리 라고 기록한게 있습니다 (맥고리)
      코리아의 근원적 명칭인 (고리 )
      고리를 해당 민족들이
      자신들이 소리낼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발음 한것이
      태국 에선 가우리 (고리)
      였을 거라고 추정 합니다
      우린 고리 / 코리 아 입니다

    • @user-jc62a7v28
      @user-jc62a7v28 Год назад

      고리 귀엽 당

    • @yeeunjo8929
      @yeeunjo8929 Год назад

      @@user-jc62a7v28 맥고리.몽고리
      .불가리.헝가리
      고구려 라는 국명은
      고서에 구이 (나라.종족)
      구루 (구이의 성체)
      일본 사학자가
      이 두가지를 유사 단어라
      판단하고
      고구려 라고
      짱뽕한 괴단어 입니다
      고려만 해도 분명 고리 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코리.고리.코리아 입니다
      페르시아는 무굴 이라고 불럿고
      먼 이후 징기스칸 방계 후손이
      티무르 제국을 세웠을때
      주변국들은 다시 무굴 제국
      이라고 불렀습니다
      페르시아 인접 동로마는
      무크리 라고 불렀습니다
      무크리 = 무굴 = 맥고리

    • @user-jc62a7v28
      @user-jc62a7v28 Год назад

      @@yeeunjo8929 머리아프당

    • @hehe-ts7gg
      @hehe-ts7gg Год назад

      中国可以直接看懂古代的文献,你们可以吗???
      古代文献已经证明了高句丽不是你们历史,你们非要乱认祖宗,只会丢人现眼

  • @davidfincher4118
    @davidfincher4118 Год назад +48

    가우리 가리 꼬리 코리 쿠리 모쿠리 고려 구려 여러이름으로 불렸지요.
    각 지방마다 그지역의 특색언어에 맞게 부르는 발음이 당연히 다르지요.
    우린 중국식 기록에맞게 써온걸 익숙하게 부르고 있는 거죠 “고구려”

    • @강형준-n1m
      @강형준-n1m Год назад

      무릎을 탁칩니다!

    • @irari0
      @irari0 Год назад +1

      어디서나 발음의 차이가 있죠!
      우리 한반도만 봐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함경도 사투리가 있듯이요

    • @로갓-i8w
      @로갓-i8w Год назад +7

      장수왕때 국명을 고려로 확정했습니다. 사실상 정식 국명은 "고려"가 맞고 구분을 위해 고구려라고 부를 뿐입니다.

    • @daug_jang
      @daug_jang Год назад +4

      "가우리"는 고구려를 현대 중국 보통화로 발음한 것입니다. 당연히 고대에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 기록에 고구려의 성읍을 "구려" 혹은 "구루"로 불렀고, 우리 "고을"와 연관되는 발음이기에 고구려의 어원은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중국식 기록이 아닙니다. 고구려의 구(句)의 중국 발음은 "즈"와 가깝지만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발음할때만 "커우"로 발음합니다. 그러니 "고구려"는 처음부터 우리가 그렇게 불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gino8018
      @gino8018 Год назад

      태국도 태국어로 까오리라고 부르던데

  • @강철룡-e7p
    @강철룡-e7p Год назад +17

    오호, 교과서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역사를 알게되니까 참 좋네요.

  • @사이비타파
    @사이비타파 Год назад +62

    반드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구려의 역사서가 남아 있길!

    • @zZ38PYB50guA9PUuDhAI
      @zZ38PYB50guA9PUuDhAI Год назад +11

      수험생: 안돼!

    • @Grenzerkompanie
      @Grenzerkompanie Год назад +6

      @@zZ38PYB50guA9PUuDhAI 근데 어차피 고대사는 비중이...

    • @irari0
      @irari0 Год назад

      수서령때 대부분이 소실되었네요 안타깝습니다

    • @erasmooth
      @erasmooth Год назад +2

      일본이 많이 가져갔대요

    • @user-jc62a7v28
      @user-jc62a7v28 Год назад

      @@erasmooth일본한테 돈주고라도 가져와야되는거 아니냐

  • @haneul_iyagi
    @haneul_iyagi Год назад +11

    알타이어계 계통 고대어 중에 케래이 라는 말이 있는데요 우리말에 겨레 라는 말과 뜻이 같다는데 요즘 우즈벡 카자흐등의 고대어 연구가 우리말과의 동질성 여부도 진행된다는데 고려가 여기서 기원한건 아닌지 의심되네요

  • @제임스본드3세
    @제임스본드3세 Год назад +11

    고구려 역사서가 남아잇지 않는게 넘 아쉬울따름

  • @Turkiye.Prince
    @Turkiye.Prince Год назад +32

    가장 미스테리한 부분이 태조왕이 94년동안 통치한거고 그것도 동생 차태왕에게 밀려나서 20년동안 지내다가 120살넘어서 죽은건데
    요즘시대에도 120살까지 사는 사람은 전세계에 한두명 있을까 말까인데 과거 그것도 2000년전엔 현재보다 영양섭취도 어렵고 위생적으로도 안좋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오래살았는지 의문이 되네요
    또다른 미스테리한 부분은 확실하지 않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같은 민족이라는 말을 얼핏들은것 같은데 당시에 그 삼국의 언어가 같은지도 궁금하고 또한 그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했고 그게 현대국어와 얼마나 다른지도 의문이 생기네요

    • @iaiao12345
      @iaiao12345 Год назад +17

      그래서 일부 학자들이 태조왕과 차대왕 사이에 기록에서 삭제되었거나 소실된 왕이 있을거란 추측도 하고있죠~ 그게 아니라면 정말 장수왕도 울고갈 정도로 장수한 왕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S921qq
      @S921qq Год назад +14

      기록상으로 보아 고구려와 백제는 확실하게 말이 통했다고 생각하고, 중국 역사서에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 말이 통하엿다는 기록도 있죠 고구려 백제같은경우는 백제 위덕왕이 태자시절 부여창으로 전장에 나갔을때 고구려 장수와 벌인 설전에 대한 기록으로 한층 더 덧대어 지는거구요

    • @홍이-k5y
      @홍이-k5y Год назад +4

      그때의 나이계산법이 지금이랑 다른게 아니었을까?

    • @Young2smine
      @Young2smine Год назад +10

      백제의 온조가 주몽의 아들이었으니 고구려와 백제는 같은 민족이라 볼 수 있죠 세력이 갈라진거 뿐이었으니 같은 말을 썼을거 같네요

    • @청년문재인
      @청년문재인 Год назад +2

      저시절엔 나이를 6개월에한번씩먹엇죠 120살이면 지금나이로 60살

  • @꾸숑-r6x
    @꾸숑-r6x Год назад +25

    이런 미스터리 너무 좋아~
    감사합니다.

  • @venusjung9638
    @venusjung9638 Год назад +1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Hey.HoneyBee
    @Hey.HoneyBee Год назад +32

    원래 고구려에도 사기나 조선왕조실록처럼 이것저것 역사들 적어놓은 책들 모아놓은 서고가 있었는데 당나라가 멸망시키면서 다 태워버렸다고 들었습니다.
    역사가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지만 너무 아쉽네여.. ㅠ

    • @뭐가중헌디-g9c
      @뭐가중헌디-g9c Год назад +1

      승자의 기록이니 은폐 축소 됐죠
      하지만. 이방송. 근본이 승자의 기록과도
      맞이 아니 합니다

    • @dyounglee7675
      @dyounglee7675 Год назад

      668년 고구려 평양성 함락후 당 대총관 이적에 의해 고구려 사서? 서고? 보관소가 발견됐는데 일개 소국의 문헌이 어찌 이리도 간결하고 양 또한 이렇게나 많을수가 있느냐면서 이걸 그냥 두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것이니 모조리 불태워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합니다 당나라 아니 그 시대까지의 중국 역사보다 유서깊고 빛나는 가치있는 외국 문화유산은 꼴보기도 싫고 인정도 하지 않으려하니 저지른 만행이죠 자기네 나라보다 잘난 역사는 인정 않으려는 것이지요 문화대혁명 시절에 티베트에 있는 천년고찰도 그러한 이유로 돼지우리로 만들어버렸다는 일도 있었음

    • @osm514
      @osm514 Год назад

      ​@@뭐가중헌디-g9c😊😮ㄱ

    • @스뎅깡통
      @스뎅깡통 Год назад

      일부 삼국시대 사서들이 조선까지도 전해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사서들이 왕조실록 보관하던 사대 서고중 일부에 있었다는데 이들이 임진왜란때 소실되면서 사라졌고 민간에 전해지던 것들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수집되어 일본 궁내성의 서고에 있으며 이들 자료는 한국 학자들에게 일절 열람이 금지되고 있다고 하던
      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도 이 궁내성 서고에서 일하고 있던 재일 한국인이 필사본으로 베낀거라고 하죠

  • @Same-z4v
    @Same-z4v 3 месяца назад

    7:10초때 331~371년에 고국천왕이 아니라 고국원왕으로 알고있는데 오타인지는 모르겠네요

  • @울주특공대
    @울주특공대 Год назад +1

    고구려 장수왕보다 오래 살앗다고 나온 태조왕도 미스테리네여 사실이 아닐수도 잇겟지만말입니다

  • @brk5810
    @brk5810 Год назад +24

    1. 예전에 KBS 역사스페셜에도 나왔는데, 중국측 어는 사서에 고구려는 왕의 아들이 태어나면 다음 왕의 무덤을 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장수태왕의 장군총은 광개토태왕때 만들어진 셈이죠.
    그래서, 국내성에 장수태왕의 묘 장군총이 있습니다.
    2. 안원왕은 적장자가 없어서 후궁의 두 아들 세력들이 왕위 계승권을 놓고 싸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 @k.2046
    @k.2046 Год назад +5

    1. 구리라는 곳에서 남으로 내려와 부여가 되었다 여기서 구리는 9개의 부족이라는 뜻으로 고구려의 조상에 가깝지만 고구려와는 결이 다릅니다. 연맹부족에 가깝죠. 고구려현이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추모(주몽)의 설화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고구려를 개국한 주몽의 탄생시기보다 많이 앞서있습니다. 조금의 오차는 있지만 탄생시기 보다 앞서있다는것 팩트로 보입니다. 아마 주몽은 선대의 주몽의 영광을 이으려고 했던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결론적으로 주몽이 고구려의 계루부를 세웠다고 추측해서는 안됩니다. 주몽은 연맹왕국에 불과했던 부여에서 떨어져 나와 중앙집권의 왕국으로 만든 업적을 달성한 인물로 보아야 합니다. 이게 꽤나 크거든요 광개토태왕릉비에서도 보면 주몽이 나라를 세웠다 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무리 광개토태왕릉비에 논란적인 부분이 많다해도 당대의 비문이니 가장 팩트인 증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외에는 좀 덜 확실한 가설들이 즐비하는터라 넘어가기로 하구요
    낙랑국과 낙랑군은 별개일것이라는 추측에는 맞아보여용

  • @안진수-k6v
    @안진수-k6v Год назад +76

    태조왕이 요서지방에 성 10개를 쌓았다는기록이 가장이상하네요. 고구려의 시호를 정할때는 묻힌곳을시호로하고 기록에도 광개토태왕을 광개토왕이라표현하는데 왜 태조왕만 태조대왕으로기록하는지모르겠네요

    • @Lucas-HH
      @Lucas-HH Год назад +12

      해씨 고려에서 고씨 고려로 바뀌어서 태조태왕이 아닐까 싶음

    • @outerlevi6254
      @outerlevi6254 Год назад +10

      이 당시 요서가 하북성 서쪽 산서성.
      중국 산서성에 고려, 고려산성, 고려촌이라는 지명이 많아요.

    • @고목나무-w5x
      @고목나무-w5x Год назад +6

      책보고님 영상들 참고하십시오~

    • @Hangul_love
      @Hangul_love Год назад

      171

    • @gombo35
      @gombo35 Год назад

      그땐 성이 지금처럼 성벽있고 수만명을 수용하는 그런개념이 아니었어요. 작은 요새정도의 크기도 성이라 불렀습니다.
      책보고라는 사람은 환단고기 맹신자이니 무시하기바랍니다.

  • @zerodark_
    @zerodark_ Год назад +1

    3:20 낙랑군과 낙랑국은 전혀 다른 개념으로 낙랑군은 요동쪽이라고 봐야한다고 합니다(전자는 식민사관인거 같다고 봐야할거 같아요)

    • @springbeom9439
      @springbeom9439 Год назад

      평양이 정설 아닌가요? 유물이 거기서 많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 @SG_327
    @SG_327 Год назад +1

    주인장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유튜버 책보고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일리가 있는 것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 @고등어자반
    @고등어자반 Год назад +4

    11:08 당나라식 작명이 정착되기 전은 보통 훈차와 음차를 해서 이름에 관한 설은 웬만하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13:11 형사취수는 보통 유목민, 수렵민에서 두드러진 현상이고 고구려는 아마 산상왕이었나 동천왕이었나 그쯤 이후부터는 취수혼에 대한 기록이 없어집니다. 소수림왕~광개토대왕대에 고구려가 대대적으로 집안정리를 했는데 그 때쯤 없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miya0714
    @miya0714 Год назад +2

    큰데 넘재밌게 설명 해주신다 이거 한다고 쿡카에서 돈주는거 아니죠??근데 계속 만들어 주시고 재밋게 해주셔서 코맙습니다 진쫘 일케 재밋어서 오또카지 넘채미따😊

  • @csy1226
    @csy1226 Год назад +2

    재미있어요
    신라, 고려, 백제 같은 나라들도 보고 싶어요

  • @seoyoung1633
    @seoyoung1633 Год назад +1

    새로운 수면영상을 찾았다 💜

  • @TeamAteutSJY
    @TeamAteutSJY Год назад +2

    어릴 때 국사 관련 서적 보면서 태조왕 부분 보며 이상한데 싶었는데 이런 비밀이 있었군요

  • @jerzunhanl
    @jerzunhanl Год назад +5

    유리가 칼 반쪽을 가져오자 칼에서 피가 흘렀다.
    추모성왕이 유리에게 신력을 증명하라 하자 솟구쳐올라 창문의 햇빛을 모두 가렸다.
    성왕은 하늘로 승천하였고 유리가 왕조를 이었다.
    추모성왕은 고씨이고 유리왕은 해씨이다.
    6대 태조왕이 즉위하기 전까지 고구려 왕조는 해씨왕조였고 태조왕부터 다시 고씨이다.

    • @홀씨-m6z
      @홀씨-m6z Год назад +1

      청화수 유튜브 보나요

  • @준호이-p2z
    @준호이-p2z Год назад +7

    만약 낙랑의 위치가 한반도내가 아니라면 현재 우리나라 고대사는 상당부분 잘못됐을수도 있다(즉 현재 중국의 영토가 우리 고대사의 활동무대일지도모른다는..)는 일부 사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moonjae246
      @moonjae246 Год назад

      아이고 환빠야ㅋㅋㅋㅋㅋㅋㅋㅋ

  • @YJKim-lx6zu
    @YJKim-lx6zu Год назад +83

    광개토태왕이 백제를 멸망시키지 않은게 더 신기해요

    • @노네이
      @노네이 Год назад +19

      멸망시키지않은 -> 못한

    • @fffoooxxxx7063
      @fffoooxxxx7063 Год назад +28

      그때 백제땅을 보통 개성이남쯤 부터 해서 경기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인데
      이 땅은 한반도에서 최고로 값진 땅임
      식량생산량이 바로 인구증감으로 이어지는 시대이고
      구라 좀 보태서
      백제랑 고구려랑 인구차이가
      별로 크지 않았을 수도 있음
      고작 강원도/경상북도 정도인 신라보다 몇배는 강력했을거임
      다만 고구려가 차지하고있던 만주지방이
      철강생산량과 좋은 품종의 말들이 많기 때문에
      훗날 고구려의 또다른 후예들 이였던
      유목부족들이 세력을 키워 만주를 통합하자마자 중국을 2차례나 정복한 전적도 있었고
      고구려의 힘의 원동력은 이거지 않을까 싶음

    • @fffoooxxxx7063
      @fffoooxxxx7063 Год назад +5

      고당전쟁 당시 중기병(고구려로 치면 개마무사)이 중국보다 많았을 거라는 추측도 많음

    • @이관호-f7t
      @이관호-f7t Год назад +1

      @Angry Sexen 백제 신라가 담합즉 동맹을 체결한건 고구려장수왕때부터임

    • @이관호-f7t
      @이관호-f7t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통일했음 지금우리는 조선족 중공자치구이거나
      아님 황해도이남부터 삼한의 반란으로 또다른. 국가공동체가 생겼을거임

  • @마테호른-w9f
    @마테호른-w9f Год назад

    소리가 안나유

  • @irari0
    @irari0 Год назад +3

    온달 장군 같은 경우, 몽골을 보면 됩니다. 몽골에는 지금 현재에도 '온달'이라는 성씨가 존재합니다.

    •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3

      그렇게 따지면 미국에도 LEE 성씨가 있다 끼워맞추는것도 작당히해야지

    • @saryanglee3752
      @saryanglee3752 Год назад

      몽골에서 현재 자주 쓰이는 '온다르'는 칭기스 칸 이후에 사용된 것이라 고구려 시대 온달하고는 애초에 관련이 없습니다.

    • @박루나-o3q
      @박루나-o3q 2 месяца назад

      온달은 성씨가 온씨 였고, 몽골계의 온다르씨와는 관련없습니다

  • @kephas7772
    @kephas7772 Год назад +13

    없어졌다는 고구려의 역사서인 유기100권이나 신집 5권이 갑자기 발견되지 않는 한 자세한 것은 모르겠죠...

    • @안드로이드-g2q
      @안드로이드-g2q Год назад +2

      근데 삼국사기에 이미 신집5권이 실렸을거라 추측된다고 하네여

    • @brk5810
      @brk5810 Год назад +2

      @@안드로이드-g2q 그러면 모를리가 없을 겁니다.

    • @안드로이드-g2q
      @안드로이드-g2q Год назад +2

      @@brk5810 추모왕부터 소수림왕까지 딱 5권이 나온데요 ㅋㅋㅋ

    • @hyugi-papa
      @hyugi-papa Год назад +2

      그 역사책은 한반도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몽골지역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죠.

    • @초이-p6k
      @초이-p6k Год назад

      있어도 못찾습니다 그게 있으면 지금 짱개땅에 있지 한반도에 있겠음? 광계토태왕비도 못보게하는것들인데 뭐가 나오면 숨기지 잘도 보여주겠다 그냥 중국이 망해야 희망이 있음

  • @유나비-g3o
    @유나비-g3o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안녕하세요 다름이아니라
    저도 이 영상처럼 고구려백제신라가 이렇다고 알고있었는데
    유튜브에 고구려백제신라 실제영토 쳐보면 제가 여태 배운것과 너무나도 다른 내용이라 혼란스럽습니다..
    북경 즉 베이징도 고구려의 영토였다는데
    실제 2대 유리왕의 묘도 북경 근처에 있더라구요
    역사가 왜곡이 된걸까요???
    뭐가 맞고 뭐가 틀린건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 @Morethananythingyouwant
      @Morethananythingyouwant 3 месяца назад

      말씀하신게 맞습니다. 영락대제 광대토태왕의 궁과 진영이 산서성지역에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삼국사기록들을 볼수 있어요. 지명들을 중국 동부 본토에서 찾아보세요.
      고구리는 북경 위쪽, 백제는 산둥반도, 신라는 양자강에서 각종 지명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일식기록의 중심지도 그 지역입니다.

  • @honeyfunzip
    @honeyfunzip Год назад +1

    측천무후를 본 이후 관련 동아시아 역사 2천년을 쭉 훑어 보며 상상력이 풍부해졌는데, 이런 예측을 해봅니다. 두로는 모본왕을 시해하고, 태후를 섭정했는데, 이때 태조왕의 나이가 7세 였습니다. 결국 태자가 있었지만 두로가 왕을 시해한 것은 민생보다 태후의 환심을 사기위해 했거나, 태후의 사주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이미 태자가 있음에도 조정에서 반대를 했기 때문인데, 태후가 이미 자신의 사람들로 가득채웠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 @batisttwota3223
    @batisttwota3223 Год назад +10

    우리가 역사서가 없어서 기록이 없는게 아니라 수많은 역사서가 있었는데 고구려 멸망과 함께 고구려영토에 있던 모든 사서는 불타고 사라져버렸다.나중에 통일되면 북한 개발하다 땅파고 그러면 새로운 유적,유물들이 나와 사라진 기록들을 보충해 줄 것이다.

    • @코어-f2c
      @코어-f2c Год назад

      그럼 신라와 백제는 왜 역사서가 없나요?

    • @역시는역시군-s9b
      @역시는역시군-s9b Год назад +1

      @@코어-f2c 이씨조선에서 정통성 문제로 대대적으로 역사를 지웠죠. 대일항쟁기때 일제가 또한번 지우고 조작했고. 우리역사서가 많이 없더라도 주변국 역사서를 통해 우리 선조의 영토나 위상등은 충분히 가늠해볼수 있습니다.

    •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역시는역시군-s9b일제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누굴 시켜서 어느 정도의 역사서를 지우고 조작했는지 좀 적어주실래요? 궁금해서 그래요

    • @역시는역시군-s9b
      @역시는역시군-s9b Год назад +2

      @@Werner4voss 궁금하믄 찾아보세요.
      언제 어디서 는 취조할때나 쓰는 문법이고요. 궁금하다고 그리묻지 않는답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무슨일을 했는지 찾아보세요. 아무것도 안하고 본인이 무지성으로 배우고 알고있는게 다라고 착각 마시고. 진짜 궁금해서 물으셨으리라 생각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역시는역시군-s9b dbpia나 kiss에 아무리 검색해도 결과가 안뜨니까 그렇겠죠...? 그리고 본인은 얼마나 유식하길래 상대방을 무지성이라 하는지 참 궁금하네용 ㅎㅎ

  • @질문빌런-f5i
    @질문빌런-f5i Год назад +3

    중국은 친왕제라고 황제 다음에 왕이 존재하고 이 왕들은 황제의 친족들이며 지방으로 내려가 봉건영주의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잘은 모르겠는데 왕도 그러한 맥락이 아닐까 함

    • @simhong
      @simhong Год назад +5

      한고조 유방이 유씨 외에는 왕이 될 수 없다고 한 이래 왕망 제외하면 유씨 외에 왕이 된건 조조가 처음임. 낙랑국 최리는 한나라 군현의 제후왕이라고 본다면 시대가 안 맞음

  • @ojl307
    @ojl307 Год назад

    고국원왕 고국천왕 등의 고국은 고구려 입장에서 조상들이 살았던 지금은 없는이전 국가를 의미하고 따라서 고국원왕, 고국천왕은 이전 국가의 원, 이전 국가의 천이라는 지역이라고하죠.
    여기서 고구려 입장에서 옛국가는 어떤나라를 의미할까요? 고조선을 의미하는건 아닌가 싶습니다

  • @남진혁-v6s
    @남진혁-v6s Год назад +2

    +1차 2차 고당전쟁 당시 신성에서 고구려랑 당나라가 격돌하는데, 그당시 규모 및 성주에 대한 기록이 전무합니다.

    • @Morethananythingyouwant
      @Morethananythingyouwant 3 месяца назад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은 중국 동부에 집중적으로 찾아집니다… 석성(신라당과과의전투지역).. 석문, 석가장(고구리 당 전투장소) 다 북경지역입니다..

  • @davidmlee9097
    @davidmlee9097 Год назад +3

    몽골 땅에도 고구려 양식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데 고구려의 무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었을지도

  • @최상건-c9c
    @최상건-c9c Год назад +2

    추모의 성씨는 고씨인데
    부여에 놓고 온 아들 유리는 해씨다...
    뭘까요
    유리가 왕위를 이양 받을 때 주몽의 상태를 보면 매우 기이함
    부자관계 이면서 왕위 관련 이해하기 힘든 상태가 기록에 보임

    • @서태정-f9i
      @서태정-f9i Год назад +1

      아빠가 해모수라 그런가

    • @Sancho25
      @Sancho25 Год назад

      유리가 고구려에 오자마자 추모가 승하하는것도 이상하긴하죠

  • @에듀가힘
    @에듀가힘 Год назад +8

    책보고 님하고 같이 방송하시면 좋은 결과가 나올듯해요 영상 너무 잘보고있습니다

    • @Fit_Performance
      @Fit_Performance Год назад

      책보고님껄보면...지도와 위치따라서 다른게느껴집니다

    •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1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꺼지라

  • @worldbestriven
    @worldbestriven Год назад +1

    국내성에 장수왕 재위시절 무덤 고분이 있는 이유는 그냥 단순하죠. 답은 `우리가 알고있는 국내성과 평양의 위치가 틀렸다` 입니다.

  • @안진수-k6v
    @안진수-k6v Год назад +6

    나중에나오는 후백제의 신검의 반란이 가장이상합니다. 아마능환의반란을 신검과 그의형제들과의반란으로바꿔기록한것같습니다

    • @왕태자
      @왕태자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신검은 이미 불효자 누명은 벗은 것 아닌가요? 아마 조선 정종이랑 비슷한 사례 같은데요. 아버지한테 효심이 깊었으나 반대 세력에 도움을 준 것 말이죠.

    • @왕태자
      @왕태자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애초에 신검은 그 때 어딜 가나 죽은 목숨이라 금강 반대파를 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걸 거절할 시 형제들한테 죽은 목숨이고 금강을 도와줘도 형제들한테 죽은 목숨이라

  • @okidoki1718
    @okidoki1718 Год назад

    연개소문이 소서노 핏줄인가요?

  • @술빤傀儡굥石劣
    @술빤傀儡굥石劣 Год назад +1

    재야 사학 방송을 보면 학교 역사가 이상하단 걸 알 수 있죠
    그렇다고 진짜 역사를 알긴 어렵지요
    다 하는 소리가 다르니까
    온달, 을지는 몽골계 성씨에요

    • @usersuperdopa
      @usersuperdopa Год назад

      따지고 보면 먼지 배신을 한것도 있지 챙겨줄줄알았는데 쩝

    • @술빤傀儡굥石劣
      @술빤傀儡굥石劣 Год назад

      @@usersuperdopa 뭔 소리인지....

  • @doublejoker5019
    @doublejoker5019 Год назад +5

    그리고 미스터리중 평양을 빠뜨렸네요. 평양의 위치 그리고 정확히 어디였는가

    •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고구려 멸망 당시의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맞음 그 이전의 평양은 오히려 중국 학계에서 논의가 더 활발함

  • @kazeohto1
    @kazeohto1 Год назад

    고구려는 왕이라고 해봤자 가장 큰 힘을 지닌 파벌수장 정도의 개념이죠. 특히 고구려는 그런 유력 파벌이 기록에만 5개 이상 나오니.. 모순점이 많이 나올수 밖에 없구요. 유력 파벌이 돌려가며 .. 내가 정통이다 를 주장하려고 기록을 워낙 뒤집어 놔서...모순점이 많을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삼국 사기 자체가 고려시대에 나온 물건이라..그 당시의 문화를 고려인의 시각으로 다시 짜맞추기도 해서...ㄷㄷ .더 오류가 나올수 밖에 없기도 하죠.

  • @Cute_Joyuri
    @Cute_Joyuri Год назад +1

    내가 궁금한것...
    1. 주몽이 40세에 사망했는데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수가 없음.
    2. 광개토대왕은 39세에 사망 했는데 주몽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수가 없음.
    3. 살수대첩때 을지문덕이 이끌던 고구려군의 규모
    4. 안시성주의 이름. 열하일기인가? 거기에서 안시성주의 이름은 양만춘이라고 들었다는 기록이 있음.

  • @Hell-Bovine
    @Hell-Bovine Год назад +1

    여기 저기 둘러본 결과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없었음이 맞는듯
    한반도 평양 말입니다...간단히 생각해 봐도 어떤 왕이 수도를
    적진 코앞에 이전 할까 -_-;; 한반도에 그 당시 백제 신라 가야가
    멀쩡하게 버티고 있는데...그 코앞에 수도를 이전한다?? 코미디죠.

  • @김동석-w3y3e
    @김동석-w3y3e Год назад +2

    이 인간은 또 한4군의 하나인 낙랑군을 대동강유역에 설치하였다고 하는구나...
    정확히 말하면 라고ㅠ 할 때
    두 가지를 먼저 검토하여야 한다.
    1. 낙랑국과 낙랑군이 처음 기록으로 등장한 때와 그 시점에서의 낙랑위치와
    ....그것이 낙랑국의 위치에 세워진 낙랑군 혹은 낙랑현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2. 대동강을 그위치로 비정해야 한다. .
    이제 다음의 논거를 보게 되면 한4군의낙랑이
    한반도내에 있었던 낙랑이 아님을명백히 알 것이다.
    ================
    《요사》〈지리지〉를 비롯한 일부 기록에
    ....... 낙랑군이 만주 서부(요동 혹은 요서)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사》38권 지 제8 지리지2
    ..........동경도 동경요양부 : 遼陽縣, 本渤海國金德縣地. 漢浿水縣. ... 紫蒙縣, 本漢鏤方縣地.
    ..........동경도 흥주 : 興州, 本漢海冥縣地.
    ..........동경도 숭주 : 崇州, 本漢長岑縣地.
    중국의 고대 하천의 지리를 기록한 《수경》이 있다.
    .....《수경》은 중국의 고대 하천 지리를 기록한 것이지
    .....................한반도의 하천지리를 기록한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에는 패수(浿水)가 동쪽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고 하여
    .....서쪽으로 흘러 황해로 이어지는 대동강과 흐름이 다르게 묘사되었다.
    .... 이를 근거로 하면 패수가 대동강이 아닌 베이징 근방의 다른 강임이 틀림이 없다
    후한서’(後漢書)의 ‘광무제본기’ 주석에는
    .... “낙랑군은 옛 (고)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在遼東)”라고 말한 것을 비롯해서
    ......낙랑군이 고대 요동에 있었다는 중국 사료가 숱하기 때문이다.
    출처 : 경남연합일보(www.gnynews.co.kr)
    ....중략....
    그러나 그들 중국인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중국역사서 에는
    한사군이란 말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후기에 편찬된 조선전에
    비로소 진번(辰番), 낙랑(樂浪), 임둔(臨屯), 현토라는 이름이 등장 하는 걸 보면
    한사군은 후대에나 있었던 것으로,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나마 오래가지 않아 폐지되거나 축소된 것 같다.
    낙랑이 현 하북성에도 있었다는 전거는 여럿 있다.
    그 가운데 명나라 이현(李賢)등 1461년 편찬한 명대의 중국전역과
    조공국들의 지리를 기술하고 있는 지리책 의
    낙랑에 대한 기록을 보자.
    ‘조선의 성이 영평부 경내에 있다.
    옛날에는 군의 명칭이 고죽이었고 진나라 때에는 북평이라 했다.
    북연 때에는 평주와 낙랑군이라 했으며. 후위 때 다시 개정하여 낙랑을 북평이라고 하였다 (朝鮮城在永平府境內(...) 郡名孤竹爲古名 北平爲秦名 北燕爲平州及樂浪郡
    後魏改樂浪爲北平).’
    고죽군은 현 하북성 북경 일대에 있었으며
    후에 나라가 바뀌면서 북평과 평주 그리고 낙랑이라 했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명나라 때는 이곳을 영평부라 했던 것이다.
    북평은 원래 산서성과 하북성 서쪽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 이었으며
    원(元), 명(明)을 거치면서 비로소 현재의 북경을 북평(北平)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밖에 조선전에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王儉城在 樂浪郡浿水之東也)’라는 기록도 있고
    하본기(夏本紀)에는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樂浪遂城縣 有碣石山)’라는 기록도 있다.
    그렇다면 우선 갈석산(碣石山)은 어디에 있었을까?
    하본기(夏本紀)라고 하면 에 적혀진 하(夏)나라 역사다.
    그러므로 오래된 역사이니 고지도에서 갈석산의 위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갈석산은 예부터 세 군데에 그 명칭이 있었는데
    아마 그 산 주위에 살았던 사람들이 동진 하면서
    그곳 산의 지명도 동쪽으로 가지고 이동 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일봉의 297 페이지 그림 45
    ‘고대 습수(濕水)로 불렀던 상건하(桑乾河) 일대의 지명들’에서
    하북성 당하 유역 수성부근의 현 백석산을 갈석산이라 한 것이 첫 번째이며
    현 계운하와 난하 사이 난하의 서쪽 발해만 연안에도 갈석산이 있는데 이것이 두 번째이고
    세 번째는 난하의 동쪽 창려 가까이에 있어 이것이 현재의 갈석산이다.
    그러나 하본기의 갈석산은 당하 유역 수성부근이라 했으므로
    하북성의 갈석산을 말하는 것으로
    그러니까 낙랑은 하북성에 있다는 말이 된다.
    또한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왕검성이 있다’는 조선전의 기록도
    패수의 위치만 파악되면 그곳이 바로 낙랑이므로
    패수가 낙랑의 위치를 말한다.
    패수(浿水)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한반도의 대동강이 아니며
    대륙에 두 개가 있다.
    그 하나가 현재의 난하 서쪽, 북경(北京) 서북쪽
    조백신하(潮白新河)의 서지류(西支流)인 백하(白河)를 말한다.
    또 한곳의 패수는
    압록수(현 遼水)의 동지류(東 支流)가 시작되는 곳을 말하므로
    패수가, 두 곳 가운데 그 어느 것이건 간에,
    모두가 대륙에 있으며
    낙랑 역시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패수는 조백신하의 백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낙랑은 하북성에 있었다.
    ===============================================================

  • @하우그레잇
    @하우그레잇 Год назад +4

    고씨랑 해씨랑 같은 성이라고 들었습니다 해씨가 백제의 귀족인것과 관련이 있는 거 같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성은 왕족 외에는 없었고 이후에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백제에는 부여씨(왕족) , 해씨가 가장 영향력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백수현-k1p
      @백수현-k1p Год назад

      해씨가 맞을 거임.주몽의 아비가 해모수라는 썰이 있어서.

    • @youngjunlee3939
      @youngjunlee3939 Год назад

      성, 씨, 족은 다 다른 뜻이죠. 금석문 시절에는 왕과 귀족도 성이 없었어요. 온조 비류만 봐도 알 수 있죠. 심지어 통일신라 이후 고려 태조 왕건도 원래는 성이 없습니다. 성은 후에 삼국이 중국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받아드린 문화이고, 후에 후손들이 족보정리를 하면서 선조의 이름 앞에 갖다붙인 거에요.

    • @QQWW565
      @QQWW565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구려 건국부터 삼국시대까지 역사의 기록이 이 때보다 훨씬 나중의 고려때 만든 삼국사기 빼고는 국내에 없어서 미스테리 입니다. 중국측 기록과 삼국사기 기록 , 광개토대왕 릉비 기록이 초기역사가 서로 내용이 안 맞는 게 많아요 ㅋㅋ 서로 자신들이 유리하게 역사를 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침략당하고 전쟁 , 내분으로 인해 기록들이 사라진게 큽니다

  • @김백준-b7y
    @김백준-b7y Год назад +4

    조금 더 연구해 보세요.
    (1) 졸본부여지역은 요동반도지역이 아님다.
    상나라 당시 부여족이 거주하였던
    산동성 부유현에서 황하지역을 지칭하는 학
    자도 계시고, 주나라 무왕 당시 무왕의 정벌전
    쟁으로 인한 폐해를 피하여 하북성 방향으로
    이주한 부여족의 일파가 거주하였던 하북성
    계주지역을 졸본부여로 보는 학자가 았슴다.
    졸본(홀본)이라는 의미는 본향 또는 터전이라
    는 의미가 강합니다.
    (2) 요동반도상 환인시를 고구려 수도 졸본으
    로 보시는데, 이 또한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창업은 산골짜
    기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마도 유네스코 등재감이며, 일본인들이
    고구려를 산적이나 비적세력으로 비하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일 수 있습니다.
    (3) 고구려 5부는 5개의 부족국으로 고구려는
    이들 5개 부족국가들의 연합체 입니다.
    (4) 고구려 요동성은 황하의 인근(산서방향)
    에 소재합니다. 잘 찾아 보세요.
    (5)수. 당이 출병한 곳은 황하 아래쪽 입니다.
    (6) 고구려군에 패한 후 도망간 당태종 이세
    민이가 목숨을 구한 몽룡우물이 강소성에 소
    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행기와 헬기
    도 없던 시절, 현 사학계가 주장하는 요령성
    에서 전쟁을 치루었다면 무려 2 내지 3천여
    리를 어떡게 도망할 수 있었을까요?
    (7)현재 한국사학계가 엉터리로 가르치고 있
    는 살수는 과연 청천강일까요? 만약 주장대
    로 청천강이라면, 살아돌아간 적군은 1명도
    없을 듯 합니다(고구려 청야작전으로 인해
    살아서 도망하더라도 모두 굶어 죽습니다).
    (8) 아 참 누락된 것 하나. 고구려 초기 평양
    은 어디였을까요? 고구려 초기왕이
    었던 유리왕 묘와 대무신 왕의 묘가 현 북경
    인근에 소재합니다.
    오늘은 요기까지. ㅎ.ㅎ.ㅎ.

    • @Werner4voss
      @Werner4voss Год назад

      혼자 글쓰지 말고 논문들이랑 유물발굴 보고서 링크나 올리쇼

    • @moonjae246
      @moonjae246 Год назад

      아이고 환빠야

    • @김백준-b7y
      @김백준-b7y Год назад

      @@moonjae246 환빠란 만주중심사관에 매몰된 사람을 이르는 지칭입니다. 똥과 오줌을 구분합시다.

    • @김백준-b7y
      @김백준-b7y Год назад

      @@moonjae246 일본 전 수상 아베신조(安倍晉三)의 조부인 “아베 노브유기(安倍信行)” 왈.
      일본은 조선국민에게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사람들로 살 것이다.

  • @하인즈-l1j
    @하인즈-l1j 3 месяца назад

    5:56 신상왕 즉위 아님?

  • @godlys
    @godlys Год назад +1

    자명고가 적국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기관 을 형상화 한거 아니였나 생각하네요

  • @sung1982
    @sung1982 Год назад +2

    옛날 해씨가 현재의 고씨라던데 고씨나 해씨나 둘다 맞는거 아니에요?

    • @user-d65d1dn89
      @user-d65d1dn8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주몽은 고구려로 와서 고씨로 변경. 유리가 왕위찬탈 해씨 유지. 주몽의 후손인 태조왕이 다시 찬탈.

  • @드라비다두다
    @드라비다두다 Год назад +2

    고구려의 후예라던 묘족 출신 연예인이 있다는데 누구였죠?

  • @동동-s6c
    @동동-s6c Год назад

    나무위키 보니깐 주몽이가 고구려 건국한 나이가 12살이라고 뜨는데 그것도 사실인가요??

    • @Morethananythingyouwant
      @Morethananythingyouwant 3 месяца назад

      고 박창화 선생님이 일본 왕실서고에서 필사하신 “고구리초략”을 읽어보세요

  • @한사람-x9g
    @한사람-x9g Год назад +5

    식민사관 강단사학자 교수들이 엉터리 논리로 계속 뭉개고 있으니 똘똘한 유투버가 문제를 제기하네. 국내 강단 국사학 교수들아 부끄러운줄 알아라.
    너희들은 학자가 아니야.

  • @khw3653
    @khw3653 Год назад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가 너무 옛날이라서..
    각 나라별 사서를 대조해서 진짜 역사를 찾아내야하는데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 과거 나라들.
    이 두개를 놓고 비교를 해야하는데.. 우리나라 기록이 너무 부족함..
    중국에게 져서 에휴..

  • @user-aup0204
    @user-aup0204 3 месяца назад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다르네요 첫째도 발기 세째도 이름이 발기인데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르다는 말이 있던데요

  • @arcyoon
    @arcyoon Год назад

    평양이 지금 평양이 아니니까. 현 투바공화국엔 온달씨가 널려 있음. 추군,세군은 열도의 삼국 분국들 간 전쟁.....
    미스터리 상당 부분은 팩트나 해설이 다 나와있는 것들이네요...

  • @johnjal2525
    @johnjal2525 Год назад +5

    해씨고씨교체설은 신빙성이 있어보이네요

  • @로토-u9d
    @로토-u9d Год назад

    제 생각이 틀릴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말씀 드린다면 성은 고씨가 맞지 않을까요? 해씨는 고조부로 해모수로 알고있고 추모성왕(고주몽)의 아버지가 고모수로 알고있거든요... 그러면 아버지 성을 보자면 고씨가 맞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고구려의 의미는 한자의 뜻을 풀어보면 높을고, 글귀구, 고울려에서 고는 높다라고도 하고요. 구는 글귀나 문장도 있지만 땅의이름의 의미도 있는거로 알고있고요. 려는 곱다나 아름답다이지만 (활시위를)당기다, 잡아당기다라는 의미도 있는거로 알고 있거든요. 의미를 이어보면 높게 (활시위를)잡아당기는 땅의나라!! 한마디로 추모성왕은 신궁이셨으니 활을 높게 쏘는 나라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보아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요...^^;;;)

    • @고등어자반
      @고등어자반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구려는 따로 글자가 없기에 훈차 음차를 많이 했습니다. 해씨성이냐 고씨성이냐가를 나누는게 아니라 당대에 해씨와 고씨발음 사이 어딘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고씨가 훈차이며 부여어족 발음으로 해씨로 발음된다거나

  • @모자거북이
    @모자거북이 Год назад +2

    주몽이 아니라 추모가 맞다던데 옛날에 엠비씨 느낌표 프로그램에서 봣습니다

    • @이대순-v4k
      @이대순-v4k Год назад

      주몽은 지나족이 그렇게 부른거라구 합니다. 그러니 추모가 맞죠.

  • @hyugi-papa
    @hyugi-papa Год назад +4

    지금의 관점으로 먼 옛날 일을 해석하면 안됩니다.
    지금처럼 나라의 경계를 국경선으로 한 것은 현대에 와서입니다. 조선시대까지는 국경지대였습니다. 지금의 휴전선처럼 서로 침범하지 않는 지대를 만들어 경계로 삼았습니다.
    고려시대까지는 국경선이나 국경지대 개념이 없었습니다. 성을 중심으로 한 세력권이 있었습니다. 왕성이 있고, 왕성에 충성하는 작은 성들이 있었습니다. 왕성의 왕을 태왕, 혹은 황제라고 했고, 작은 성의 왕을 왕, 또는 성주라고 했습니다. 왕 또는 성주가 왕성의 태왕 혹은 황제에게 충성서약을 하고 볼모(인질)을 보냅니다. 볼모들은 왕성에서 나라안의 여러인사들과 사귀면서 나라의 풍슥과 제도, 예의들을 배우고 왕 또는 성주가 죽으면 돌아가 왕이 됩니다.
    태왕 또는 황제의 직할지를 경기지역이라 하는데 이 지역의 성들은 태왕 혹은 황제가 직접 임명합니다. 이 경기지역의 규모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나라의 힘이 결정됩니다.
    미드 욍죄의 게임이 중세 이전 상황을 제대로 검증했다고 봅니다. 그 드라마를 보시면 고대에서 중세까지의 국가 경영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당시에는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수도를 점령했다고 하여 그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방 성의 왕이나 성주의 항복을 받아내야 합니다. 보통 왕성이 무너지면 지방의 성들은 대부분 항복합니다. 게중에는 항복하지 않는 성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려가 고구려가 망하고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것입니다. 발해는 대외적으로 스스로 고려라고 했습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지방 성주 대중상의 아들입니다.
    발해를 건국한 이는 사실 대중상이었고, 대당전쟁에서 대중상은 사망하고 대조영이 동쪽으로 달아나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완전한 독립에 성공했습니다.
    댓글 중에 광개토태왕이 백제를 멸망시키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는데요,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멸망시킨 게 맞습니다. 백제 왕의 지위가 태왕에서 성주급 왕으로 격하되고 고구려에 볼모를 보냈으니 백제는 고구러 속국이 됩니다. 그러다 성왕 때에 독립합니다.
    관점을 달리하면 미스테리가 다 풀립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학계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미스테리로 남는 것입니다. 백제가 망하고 의자왕이 시안으로 압송되는데 소요된 시간은 채 한달도 안 걸립니다. 당시 항해 기술과 교통상황으로 보면 지금 충청도에서 중국 시안까지 가려면 최소 3개월 이상이 소요됩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나라 역사교과서를 믿지 마십십요. 의심에 의심을 해야 합니다. 우라나라 사학계는 학문을 하는 데가 아니라 그야말로 조폭집단입니다.

    • @라라공방-m4k
      @라라공방-m4k Год назад +1

      이 나라 사학계는 학문이아니지요
      이익추구집단일뿐~ 러시아학자가 그랬죠.. 한국사학계는 이상하다구요
      찬란한 자기네역사를 러시아학자가 밝혀주는 부분도 부정을 한다구요

    • @bul4816
      @bul4816 Год назад

      삼족을멸해야되는족속들
      친일파들보다천배만배나쁜놈들임
      오천만국민들을속이고있늕죽일놈들

  • @김병석-r7s
    @김병석-r7s Год назад +2

    역사서가 타버린게 너무 아쉬워요 ㅠㅠ

  • @hyuneo2929
    @hyuneo2929 Год назад

    좋은컨텐츠네요 근데 출처는 틀린게많은거같아요 드라마 연개소문 띄어놓고 출처는 KBS라하고 영화 평양성인데 안시성으로 쓰신거같더라고요ㅋ

  • @무사뎀벨레-h7u
    @무사뎀벨레-h7u Год назад

    별개의 생각인데 중국 지명하고 우리나라 지명이 동일한 곳이 종종 나오는거 봐선 북부터 남하한 세력들이 본인들이 알던 지명들 그대로 붙힌건가 궁금하네요
    유럽도 보면 본 지명이 있고 그쪽 사람들이 정벌을 하거나 이주하면 지명을 그대로 붙히는 경우들이 있다보니 그런 비슷한 연관이 있는건가..

  • @마초마초-k8j
    @마초마초-k8j Год назад

    주몽은 고주몽 , 주몽 아버지는 해모수 , 아버지와 성이다른 이유는 ?? 주몽이 부여 금와왕 밑에서 자라서인가 ?? 기록이 없다보니 을지문덕 장수도 그렇고 ??

  • @마법사-p1b
    @마법사-p1b Год назад +1

    우리 민족의 시원은 한인 한웅 단군이죠. 한인은 12연방이 하나의 중심을 주축으로 큰 나라를 형성하였는데 중심이란 한인이 계신 곳이죠. 한웅은 12연방에서 9연방으로 규모가 축소되였고요 9개의 연방이란 뜻입니다. 한웅시대는 9연방이였죠. 그러다가 계속 축소되여왔습니다. 그런 전통을 잘 알고 있던 분들이 나라를 세우면서 옛날 9연방을 되실린다는 뜻으로 복원시킨다는 뜻으로 고구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뜻을 거슬리지 않고 순응하며 따른 보기 드문 민족이고 그만큼 기상이 남달랐고 전해오던 전통도 지금은 상상도 안되는 것들이 즐비했다고 하죠. 그 하나가 유불선의 시원이 되는 풍류도라고 하고 수행하는 전통도 있었고 성통공완의 전통도 있었죠. 나 잘난 놈이야 내가 신이야 나에게 복종해 갈 아니고 우리 모두는 이란 공통체 정신이 있었죠. 남을 지배하는게 아닌 지도하는 지도자정신이 있었죠.
    현대에 와서 그런 전통들이 모두 사라지긴 했지만 아는 이들은 아는, 아는 이들은 조금이라도 아는 전통이 있죠. 그래서 그 자긍심이 너무 남달라서 그 기상을 꺽으려고 단군은 신화다 라고 세뇌시키는 겁니다. 역사를 잊어야 지배되기 때문이죠. 중공의 동북공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놔두면 언제 또 화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중공과 일본놈들에게는 있죠. 미치 중공놈들이 몽골놈들 언제 다시 일어설지 몰라서 항상 살피는 것과 같지요

  • @진형김-b5t
    @진형김-b5t Год назад +13

    조상님들은 분명 기록을 남겼을건데
    누가 없앤건지

    • @ryan_2568
      @ryan_2568 Год назад +4

      고구려의 역사서들은 당나라놈들이 7일밤낮으로 평양성에서 태워버렸다는 얘기가있습니다.

    • @User-bonjour2000
      @User-bonjour2000 Год назад

      고구려 유기나 신집은 현재 구할수가 없는데
      다만 아이러니한것은 고 박창화선생이 ( 1933년 일제 강점기때 일본 궁내청 임시직원 역임 )
      고구려 유기와 같은 서적을 일본 궁내청 서고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나올수 없으니 열람과 필사를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 고구리 사초 - 유기 추모경 " 입니다.
      이 추측이 타당한 이유로
      1. 일본이 쳐들어오기 이전 1890년 초
      이씨 왕실이 살아있는한
      벽두산간 절간에 위치한 외부 4대 사고지
      (오대산 사고지, 태백산 사고지 , 적상산 사고지 , 정족산 사고지 )
      사고지에 숨긴 역사 책들을 아무나
      접근할수 없었다 생각되어집니다.
      1910년 국권 피탈과 동시에
      수많은 책들은 수탈되어 반출되었고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난리통에 훼손되고
      일본에서 실종되었습니다.
      이후 1990년 일본의 정창원이라는 ( 고구려의 창고 부경과 매우 흡사한 건물 ) 절간 창고에는
      신라 지방지역에 세세한 기록이 남아있는걸로
      (실제 사실) 봐선 일본인들이 무언가를 숨긴것이 분명하고
      이 기록을 숨긴이들은
      근대에 유일하게 침략해온
      외세인 일본인들이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 @outerlevi6254
      @outerlevi6254 Год назад +2

      일제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없앴습니다

    • @dyounglee7675
      @dyounglee7675 Год назад

      668년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 함락후 당 대총관 이세적이 고구려 사서창고를 발견했는데 일개 소국의 문헌이 어찌 이리도 간결하고 양 또한 이렇게 방대할 수 있느냐 이것을 그냥 두면 두고두고 당나라에 해악이 될것이라면서 모조리 불태워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음 자기네 나라보다 오래되고 유서깊은 문화유산은 인정하기도 싫고 꼴보기 싫으니 저렇게라도 해서 지워버리려고 한듯

    • @초이-p6k
      @초이-p6k Год назад +2

      이래저래많이 없어지고했지만 결정적으로 일본이 아주 다 지워서 안그래도 찾기힘든데 역사학자들이란 사람들이 조선상고사 같은 역사서는 인정을 안하는 친일행적을 보이니 못찾을 수 밖에

  • @윤옥희-h2i
    @윤옥희-h2i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전에 그래도 발해있으니까요 다시고구려 뒤를이어서 역사를 기록했니까요 책을 없어지지 않아요 다만 너무1000년씩이나 있으니까 오류가상당하고 이집트역사도 대단하게 5000년동안 기록을저장해는데 그것도정확히 컴퓨터가있는거도아닌데

  • @쌀떡볶이
    @쌀떡볶이 Год назад

    5:51 혹시나 해서 사람이름이라고 한번더 말씀해주신건가요 ㅋㅋㅌㅋ

  • @캡틴후크-h2v
    @캡틴후크-h2v Год назад

    광개토 대왕의 성이 아씨라는 말도 있던데
    조합해보면
    고대 유럽의, 로마의 왕들이 장자계승을 원칙으로 하지 않은점을 보아..
    장자계승의 원칙은 한족의 원칙임을 알 수있다
    고대중원 역시 다른 성씨가 돌아가면서 했고, 이들의 풍습이 현 한족의 풍습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이 우리 조상이라는 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한족외 다른 민족들은 다소의 개념 차는 있지만 한 성씨가 독점해서 나라를 지배하지 않았다는것이다
    신라나 로마처럼 시스템으로 돌기도 했을것이고 연개소문처럼 힘으로 가져가기도 했을것이다
    그러나 이웃 한족이 장남상속을 했고, 강대국이었으니 주변국들이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서양은 황제를 하려면 자격을 갖춰야 하는데 동양의 황제는 힘만 있으면된다 장자와 파워게임의 환장 콜라보일것

  • @shurike37
    @shurike37 Год назад +2

    장군총 자체가 장수왕 무덤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백제 무령왕릉처럼 무덤내에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라 문무왕릉처럼 삼국유사에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 @이향규-u1y
    @이향규-u1y Год назад +2

    온달은 사마르칸트 왕자

  • @이신-d4i
    @이신-d4i Год назад +6

    소서노계와 유리왕계의 싸움은 그야뭐.
    어느쪽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으니, 상당한 물자와 사람들을 가지고 갈라서기로 한거 뻔하지 않나요?
    저당시는 고구려 초기이고 대-무신왕의 학반령 전투가 있기 이전에는 대소가 어지간히 고구려를 노리고 있고
    말입니다. 서로 뚝배기를 깰 상황이 아닌건 뻔하지요. 상당한 정치적 군사적 대립이 있었고
    소서노계가 밀린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유리왕계가 100%재압이 힘드니 적당히 갈라선 거죠뭐..
    설마 옛신화 나부랭이 처럼 허허 거리며 남쪽으로 내려올리가 없지요.

  • @eye399
    @eye399 Год назад

    바이킹 이라고 하시죠~

  • @윤상호-y4c
    @윤상호-y4c Год назад

    온달이 외국인이라는 썰은 나도 들어보긴 했는데 아니지 않을까?? 고구려는 반농반목으로 동북방의 중심제국이었음. 여러민족이 모인다는 소리고 외국인이 흔함. 사실 고구려인이란것도 사실 구별이 애매하고

    • @Morethananythingyouwant
      @Morethananythingyouwant 3 месяца назад

      다민족 연방국가 였습니다. 동이민족은 사실 단일 민족은 아니었습니다.

  • @천아뜨
    @천아뜨 Год назад +1

    지명과 위치가 엉터리니 당연 미스터리가 나올 수 밖에....

  • @voicetone10000
    @voicetone10000 Год назад +1

    ㅅ비역사책이지만 고구려사초략 참고바랍니다.

  • @mintzoayo
    @mintzoayo Год назад +1

    발기가 풀발해서 발란 일으켯뉴

  • @daug_jang
    @daug_jang Год назад

    해추모(고주몽)의 성은 해씨가 아닐겁니다. 그리고 고씨도 아닐거라 생각됩니다.
    동아시아의 성씨는 중국으로부터 온 것이고, 중국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도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중국보다 천년은 후의 일입니다. 한반도도 보편적인 세계사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한반도는 고려시대 이전까지 성을 사용하지 않았거나 성을 사용해도 이걸 항상 이름에 붙여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신라왕족 김궁예라고 부르지 않고 궁예로 불렀고, 아자개의 아들은 아훤이 아니라 견훤입니다. 고려건국이전까지 성씨가 그렇게 강조되지 않았을 겁니다. 추모의 성씨도 고구려말기 고구려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고씨 혹은 해씨로 추존했을 겁니다. 이 "추존"은 중국의 역사에 흔하게 나타나는 거지요.
    그리고 미아오족(묘족)은 고구려멸망이후에 나타난 민족이 아닙니다. 춘추시대부터 기록에 나타나는 민족이며, 고구려=묘족을 엮다보면 어느새 "사해동포주의"가 됩니다. 고구려와 묘족보단 고구려와 중국이 더 가까울 것이고, 이러다 진짜 동북공정의 근거를 우리가 만들어주는 꼴이 될 겁니다.

  • @uhmmaa3
    @uhmmaa3 Год назад +3

    낙랑군이 어디 있었다고요?
    ruclips.net/video/shw30dHfgL4/видео.html

  • @여을-f2u
    @여을-f2u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본래 고구려는 구려라는 옛나라에서
    주몽에의해 고짜를붙여 고구려가 된것입니다 또한 구려는 배달국 신시 시대에 14대 치우께서 배달국 왕이 되기전에 구려국 왕이었다고도 전해집니다

  • @travis5795
    @travis5795 Год назад

    송일국 한혜진이 나오니 이해가 더 쏙쏙 됩니다!!

  • @뿌에엥-i4d
    @뿌에엥-i4d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억지로 한반도에 집어넣으니 혼란스러운거
    대륙까지 확장하면 대부분 이상한점이 해소됨
    참고로 삼국사기는 조선때 편집된 버전 즉 원본이 따로 있단 소리이고 기록상 원본은 조선때 왕실에서 소각한게 아닌가 싶음
    원본기록중 일부가 시로써 내려오고있음

  • @Imperator_no.1
    @Imperator_no.1 Год назад

    나중에 타임머신 상용화되면 역사학 때문에 알바천국에 고액 알바로 '고구려군에서 1년 복무자 찾습니다(한자 가능자 우대)' 이런거 나올듯

  • @홀씨-m6z
    @홀씨-m6z Год назад +1

    발해가 아니라 고구려였다는걸 알려주세요

  • @icanstillhearyoursound7405
    @icanstillhearyoursound7405 Год назад +1

    을지문덕은 볼때마다 외계인 같음…

  • @seongsujeong9665
    @seongsujeong9665 Год назад

    우리 고대사는 학계가 완전 망쳐 놨으며 학계의 엉터리 주장을 따르기 보다 역사서를 읽는 게 더 낫습니다.
    1.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건국되었으며 '구려'라고 별도의 나라가 또 있습니다. 고구려 구려 모두 압록강에 있지 않습니다.
    2. 연노부에서 계루부로 왕권이 바뀌었다고 중국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왕계가 바뀌었다는 것이 아니라 왕이 있던 곳 즉 수도를 옮긴 것을 말합니다. 발기 난 이후 수도를 환도성으로 옮기는 데 이곳이 계루 지역입니다.
    3. 태조는 후대에 그 나라의 건국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했지만 고구려 당시는 큰 할아버지란 그 이름 그대로 입니다. 후대에 사용된 이름을 고구려까지 소급한 오류인 것이죠.
    4. 성은 부모 성을 모두 쓰는 경향이 있어서 고와 해 모두 고구려 왕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성입니다.
    5. 주몽이 계루부를 세웠다는 엉터리 주장도 있었나? 처음부터 나라 이름이 고구려였죠. 역사서에 명확히 기록된 것을 부정하다뇨.
    6. 주몽에서 유리로 왕계가 이어졌는데 왜 소서노가 반발하지 않았나? 물론 했지만 주몽이 화해를 시켰죠. 그리고 온조는 더 큰 꿈이 있어 한반도에 와서 백제를 건국한 것이구요. 온조와 비류 모두 주몽의 아들입니다. 주몽은 장자 우선을 내세운 것이고 신하들은 주몽의 뜻을 따른 것이구요. 온조도 유리도 뛰어난 인물로 생각됩니다.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있다면 싸움이 벌어지겠죠. 온조는 무척 현명합니다.
    7. 치희는 한나라에서 유리왕에게 온 여자가 아닙니다. 중국에 난리가 나서 만주 한반도로 이주한 사람이 많습니다. 외국인이 고구려에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치희는 고구려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당시 선조가 한나라 계통인 것이죠.
    8. 낙랑국은 낙랑군과 다르고 낙랑국은 두만강 위 연해주에서 있었습니다. 호동과 낙랑공주는 혼인한 사이는 아니고 미남계를 사용한 것입니다. 낙랑군은 조양시 일대에 있고 평양은 광무제에 의해 점령되어 한인 낙랑국으로 건국되고 독립된 나라인데 미천왕 때 고구려에 의해 점령됩니다.
    9. '고국'은 '옛나라'란 뜻이니 북부여를 말하며 북부여 건국지를 말합니다. 고국이란 왕들은 부여 건국지에 매장된 것이죠.
    천이란 이름은 하천이며 특정 지역입니다. '노'의 뜻은 땅입니다. 동천은 고구려의 동쪽 서천은 고구려의 서쪽입니다. 중천은 고구려의 중앙입니다. 집안현은 고구려 수도가 아니라 귀족의 무덤터입니다. 위치를 보십시요. 전혀 수도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죠.
    동수묘는 미천왕이 아니라 동수의 무덤이 맞습니다. 황해도는 대방국으로 대방과 관련된 사람이라 거기 묻힌 것이죠. 공손씨가 만든 대방군과 다릅니다. 대방은 요동반도 개주시와 관련이 있습니다. 동수 고향도 그곳이죠.
    10. 광개토대왕비문에서 지워진 부분은 후연과의 승리 부분이 지워진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강제로 지운 것이죠.

  • @하나의불꽃-r3n
    @하나의불꽃-r3n 4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인물들 이름을 들어보면 몽골사람들이름임 대무신왕👈테무친 을지문덕👈올지모던 온달👈온다르 한자로 글을 적다보니 발음이 저래된거지 원래 발음은 몽골사람들임~

    • @Morethananythingyouwant
      @Morethananythingyouwant 3 месяца назад

      몽골사람이 아니라. 같은 나라입니다.
      유라시아 전역에 영토가 워낙에 넓어서 가한(칸)제도를 두었구요. 대연방제국이었습니다. 골, 구리, 쿠리, 고리, 모두 같은 말이고. 넓게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 @안용호-u2i
    @안용호-u2i 4 месяца назад

    청화수님 애청자 시구나

  • @user-hu7ci3rn9o
    @user-hu7ci3rn9o Год назад

    주몽은 해씨가 맞고 중간에 한번 권력이 바뀐게 맞는듯

  • @짱돌-x7w
    @짱돌-x7w Год назад +1

    신라가 역사의 승자!만약이라는 생각은 그냥 망상!

  • @hotalsocold
    @hotalsocold Год назад +1

    잘나갔으나, 결국 연개소문 아들들이 말아먹고 신라하고 당나라 연합군에게 폭망함

  • @김동주-u6s
    @김동주-u6s Год назад

    어? 묘족이 숭상하는 조상신이 치우 아니었던가요?

  • @ymj2934
    @ymj2934 Год назад

    중국 문화대혁명때 지워진 기록이 워낙 많아서 불투명한게 많네여

  • @김형민-v7j
    @김형민-v7j 4 месяца назад

    책보고 검색해서 영상 보면 미스터리 다풀림...

  • @gha7362
    @gha7362 Год назад

    을지문덕. 한국사의 명장.
    오죽하면 을지무공훈장, 을지로가 있을까.

    • @krauskim7662
      @krauskim7662 Год назад

      후대의 명칭은 선대의 역사해석에 따른것이기에 무의미
      뭐가 오죽하면이냐
      그럼 테헤란로는 뭐 옛날옛날부터 이란과 교류했던 흔적이냐?

    • @gha7362
      @gha7362 Год назад +1

      @@krauskim7662 뭔소리야?
      그만큼 한국사에 의미있는 사람이고 기리는 경우가 있는 거지.
      그래서 그 사람 이름을 훈장과 지명에 붙인거지.
      충무공을 따서 충무무공훈장, 충무로 있어.
      테헤란로는 이란과 우호기념으로 한거고

    • @gha7362
      @gha7362 Год назад

      @@krauskim7662 '오죽하면'이 무슨 뜻인줄 알고 되묻는 거니?
      얼마나 한국사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면,
      후손인 우리가 그걸 크게 평가했으면
      군인이 공을 세우면 주는 무공훈장의 이름과
      구리개라는 지역에 차이나타운이 세워져서 중국인들의 기세를 꺾겠다는
      46년에 시행된 일본식 동명 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을지'를 땄겠니?

    • @gha7362
      @gha7362 Год назад +1

      @@krauskim7662 테헤란로는 1977년 6월 27일 방한한 골람레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이 구자춘 서울특별시장과 서울-테헤란 간 도로명 교환에 합의하여 도로 이름을 테헤란로로 바꾼거야.

    • @intothe75
      @intothe75 Год назад

      여기저기 일본 추종하는 일베들이랑 한국 깍아내리는 중국 댓글알바들이 보이는구나 ㅋㅋ

  • @myoungchellee6013
    @myoungchellee6013 Год назад +1

    역사를 추론할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개인적 소견으로 추론하면 독자들에게 해악을 줍니다. 대표께서는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lyongduc9361
    @lyongduc936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고구려중심을 북한이나 만주로 보는가요 ? 그것은 일본놈들이 만든 역사왜곡입니다

  • @zse260
    @zse260 4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의 자료가 한국내 영토에서 대거 출토되지 않는한 제대로 된 추적은 어렵지 ㅋㅋ

  • @dgdrwweqwq
    @dgdrwweqwq Год назад

    신라서는 경주 어딘가에 반드시 묻혀있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