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초 노란색 잠바입은 꼬마가 접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노란잠바입고가서 이기는 순간 홈런서에서 넘어와(그때는 그랬답니다. 무등경기장) 김성한아저씨 어깨잡고 운동장돌았던 기억이 있고 그날 뉴스에서도 처음으로 저도 TV 나온날이라 기억하는데 오늘 코리안시리즈 V12를 앞두고 우연히 유투브로 찾아봤는데 어렸을때 제 모습이 있어 가슴이 뭉클하네요! 아 저는 이제 50살 밖에 안되었어요
1987년 한국시리즈는 전 년에 빈병 투척과 버스 방화를 한 팀이 다시 만났고, 특히 16년 만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영호남간에 극심한 지역 감정으로 대립하던 시기여서 불상사가 우려 한국시리즈 사상 전 경기가 주간 경기로 진행 한국시리즈 사상 첫 스윕 삼성은 4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실패를 하자 분노한 모기업은 그룹 비서실에서 야구단 감사를 진행하고 현장갑섭이 시작하며 팀이 몰락합니다 88년 부터 삼성이 중위권으로 추락 하고 김영덕을 영입한 3년차 신생팀 빙그레가 삼성 대신 해태와 우승 경쟁을 하며 삼성 해태 시대에서 해태 빙그레 시대를 열게 됩니다
삼성도 좀 억울했던게 원래는 해태가 플레오프 5차전 치르면 하루 쉬고 바로 붙었어야 했는데 광주에서 전국체전하는 바람에 PO5차전 끝나고 무려 9일을 휴식하고 한국시리즈가 시작되죠 해태는 경기감각 + 상승세에 체력까지 회복했는데 삼성은 오히려 경기감각이 돌아오지 못해서 최초의 전패준을 당합니다 87후기리그 막판 해태와의 2연전을 사실상 져주기를 하며 해태의 플레이오프 막차를 도와줬던 삼성이 제대로 부메랑을 맞아버렸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해태와 불과 1게임차로 떨어진 팀이 롯데였습니다
@@mickymouse80 휴식기간을 무시못하는게 예전방식으로 플레이오프 끝나고 하루 쉬고 붙는 일정이었다면 해태로서도 체력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이 해에는 해태가 오비랑 5차전까지 접전 치르고 9일간이나 휴식을 취했는데 이정도 기간이면 경기감각은 유지하면서 어지간한 체력소모는 다 회복할 충분한 시간이었죠 김시진이 못던진 것도 있지만 해태가 체력적인 불리함이 전혀 없었던 것도 꽤 컸습니다
@@mickymouse80 밑에서 부터 올라온 팀은 하루라도 더 쉬는게 무조건 유리합니다 특히 투수들에겐 말이죠 92롯데만 해도 플레이오프때 맹활약 했던 염종석이나 윤학길은 한국시리즈에서는 상당히 고전했습니다 반면 체력적 여유가 있었던 박동희가 잘 해주었고 특히 플레오프때 거의 등판이 없었던 윤형배가 깜짝 호투해준데다 빙그레가 실책과 폭투로 자멸하며 롯데가 우승할 수 있었죠 (89해태도 비슷한 과정으로 우승했습니다) 아마 롯데가 9일 휴식 취하고 한국시리즈 했으면 4게임만에 시리즈 스윕했을겁니다
@@soridaizin79 무슨 1992년에 롯데가 4게임만에 스윕해요? 1992년에는 해태 아니면 빙그레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던 해였는데... 그리고 최동원 염종석 없었으면 롯데는 프로야구 창단 40년동안 우승을 1번도 못했던 팀이라고 놀림받았을걸요? 투수들 팔을 갈아서 코시우승한 팀이 롯데인데
큰 경기에 약했다기보다는 실력에 비해 표면적 성적이 좋았던 투수였을 뿐이었습니다. 리그 평균 이상의 구위와 다양한 구종 그리고 최상위급 이닝 소화력을 갖춘 투수였지만 골고루 잘 던지는 반면 위력적인 구위나 확실한 주무기가 없어 공격적 피칭이 힘들었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 처럼 같은 팀과 매일 계속 붙는 경기에서는 한계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빅3로 인정받았지만 실제 피칭 능력은 동시대 투수들 중 최일언이나 이상윤보다도 약간 아래였고 임호균보다 살짝 나은 수준 그나마 리그 최상위급 이닝 소화력과 꾸준함 덕에 비교적 많은 경기에 등판이 가능했고 김영덕 감독의 기록관리로 100승을 가장 먼저 달성하기도 했고 요즘야구로 치면 그래도 박세웅이나 원태인 상위 버전은 되는 투수
4:22초 노란색 잠바입은 꼬마가 접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노란잠바입고가서 이기는 순간 홈런서에서 넘어와(그때는 그랬답니다. 무등경기장) 김성한아저씨 어깨잡고 운동장돌았던 기억이 있고 그날 뉴스에서도 처음으로 저도 TV 나온날이라 기억하는데 오늘 코리안시리즈 V12를 앞두고 우연히 유투브로 찾아봤는데 어렸을때 제 모습이 있어 가슴이 뭉클하네요!
아 저는 이제 50살 밖에 안되었어요
37년만에 다시 홈우승 🏆
87년 고3때네
김준환 선수 카리스마 짱이였음요~~
이 당시에는 문희수 투수가 완투 완봉을 동시에 했고 김준환 선수의 타율 5할의 활약으로 우승을 하였네요
1. 특이하게 모든 경기가 낮경기로 치러진 시리즈
2. 현재까지 광주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던 유일한 시리즈
이제 올해가 어쩌면 두번째가 될지도
올해 2번째가 되었네요 ㅋ
5:40 프로필 조각미남으로 각인된 김준환 선수. 전설에서 한번 뵙고 싶네요~~
조만간 김준환 전설을 만날 예정입니다 ㅎㅎ 기다려 주세요🥰
0:27 중견수 이순철 위원이 빠르긴 정말 빨랐네요 ㄷㄷ 정말 외야사령관인 중견수 아무나 볼수있는것이 아님 ㅋㅋ
2:25 3:57 역시 명장다운 멘트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하지만 우승은 내 손 안에 있다는 ㅋㅋ
5:19 가을야구 운 지지리도 없던 시진옹 ㅜㅜ
대박입니다
멋저부러 !!!
그떄 당시 1987년 광주 홈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의 맛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1987년 한국시리즈는 전 년에 빈병 투척과 버스 방화를 한 팀이 다시 만났고, 특히 16년 만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영호남간에 극심한 지역 감정으로 대립하던 시기여서 불상사가 우려
한국시리즈 사상 전 경기가 주간 경기로 진행
한국시리즈 사상 첫 스윕
삼성은 4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실패를 하자
분노한 모기업은 그룹 비서실에서 야구단 감사를 진행하고 현장갑섭이 시작하며 팀이 몰락합니다
88년 부터 삼성이 중위권으로 추락 하고
김영덕을 영입한 3년차 신생팀 빙그레가
삼성 대신 해태와 우승 경쟁을 하며
삼성 해태 시대에서 해태 빙그레 시대를 열게 됩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
대구에서 평일에 했던 경기인데
왜 낮에 했는지 지금도 의아했는데
궁금증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접 만져보지는 않았지만,
화염병, 최루탄 시대였던 건 기억납니다.
김준환 감독님이 저당시 패넌트레이스 타율은 2할4리에 그쳤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제 몫을 했네요.
해태.기아는 혼의야구다
기아는 아닌 걸로~
삼성도 좀 억울했던게 원래는 해태가 플레오프 5차전 치르면 하루 쉬고 바로 붙었어야 했는데 광주에서 전국체전하는 바람에 PO5차전 끝나고 무려 9일을 휴식하고 한국시리즈가 시작되죠 해태는 경기감각 + 상승세에 체력까지 회복했는데 삼성은 오히려 경기감각이 돌아오지 못해서 최초의 전패준을
당합니다
87후기리그 막판 해태와의 2연전을 사실상 져주기를 하며
해태의 플레이오프 막차를 도와줬던 삼성이 제대로 부메랑을
맞아버렸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해태와 불과 1게임차로
떨어진 팀이 롯데였습니다
김시진이 못던져서 패한것이에요.
1,4차전 선발에선 삼성이 유리했어요.
해태 1,4차전 선발투수 : 프로통산 16승 김대현
삼성 1,4차전 선발투수 : 에이스 김시진
삼성은 꼭 잡아야했었던 1,4차전에서 졌었던것이 컸지(사실 삼성 준우승 주역은 김시진임...김시진이 코시에서만 5패했었음)휴식기간때문에 진것이 아닙니다.
@@mickymouse80 휴식기간을 무시못하는게 예전방식으로 플레이오프 끝나고 하루 쉬고 붙는 일정이었다면 해태로서도 체력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이 해에는 해태가 오비랑 5차전까지 접전 치르고 9일간이나 휴식을 취했는데 이정도 기간이면 경기감각은 유지하면서 어지간한 체력소모는 다 회복할 충분한 시간이었죠 김시진이 못던진 것도 있지만
해태가 체력적인 불리함이 전혀 없었던 것도 꽤 컸습니다
@@soridaizin79 하루 쉬고하면 경기 감각은 살아있을텐데요?(1992년 롯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도리어 9일 쉬는것이 더 안좋아요. 잘못하면 경기감각이 떨어질수있습니다.
@@mickymouse80 밑에서 부터 올라온 팀은 하루라도 더 쉬는게 무조건 유리합니다 특히 투수들에겐 말이죠 92롯데만 해도 플레이오프때 맹활약 했던 염종석이나 윤학길은 한국시리즈에서는 상당히 고전했습니다 반면 체력적 여유가 있었던 박동희가 잘 해주었고 특히 플레오프때 거의 등판이 없었던 윤형배가 깜짝 호투해준데다 빙그레가 실책과 폭투로 자멸하며 롯데가 우승할 수 있었죠 (89해태도 비슷한 과정으로 우승했습니다) 아마 롯데가 9일 휴식 취하고 한국시리즈 했으면 4게임만에 시리즈 스윕했을겁니다
@@soridaizin79 무슨 1992년에 롯데가 4게임만에 스윕해요?
1992년에는 해태 아니면 빙그레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던 해였는데...
그리고 최동원 염종석 없었으면 롯데는 프로야구 창단 40년동안 우승을 1번도 못했던 팀이라고 놀림받았을걸요? 투수들 팔을 갈아서 코시우승한 팀이 롯데인데
전 경기가 낮시간에 치러진 유일한 한국시리즈이자 해태 V 11가운데 유일하게 광주 홈에서 우승을 확정했던 시리즈
과거 해태타이거즈는 타격이 공포 타선인데 2ㅇ21년지금은 방망이가 솜+물방망이 10구단가운데 꼴찌 팀 전체홈런도 다른팀 혼자치는 홈런수 보다 적다 창피한줄 알아야지 타격코치 월급만 받아먹고 뭐하삼
34년전 기아의 전신 해태가 6월 항쟁을 벌인 1987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스윕 승리를 거둔 날입니다.
34년전이었겠죠
@@joonpyochang 네, 수정했습니다.
진행자 님 ~ 87년 해태 타이거즈 한국 시리즈* 몇번째 🏆우승 인가요 ?
1983년 1986년에 이은 3번째 우승입니다
[씨알의 꿈] 이라는 분의 동영상도 이곳 전설의 타이거즈 만큼 값집니다.,
역시나 김대중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했군요.
너 같으면 살인마 전두환 군사반란의 주역 박정희를 연호하리?
김시진은 이상하게 큰 경기에 약하네요.
1984년 코시때도 그렇고 김시진이 코시에서 이긴것을 보지못했습니다.
김시진 포스트시즌 성적 : 무승 9패 방어율 : 5점대
큰 경기에 약했다기보다는 실력에 비해 표면적 성적이 좋았던 투수였을 뿐이었습니다.
리그 평균 이상의 구위와 다양한 구종 그리고 최상위급 이닝 소화력을 갖춘 투수였지만
골고루 잘 던지는 반면 위력적인 구위나 확실한 주무기가 없어 공격적 피칭이 힘들었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 처럼 같은 팀과 매일 계속 붙는 경기에서는
한계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빅3로 인정받았지만 실제 피칭 능력은
동시대 투수들 중 최일언이나 이상윤보다도 약간 아래였고 임호균보다 살짝 나은 수준
그나마 리그 최상위급 이닝 소화력과 꾸준함 덕에 비교적 많은 경기에 등판이 가능했고
김영덕 감독의 기록관리로 100승을 가장 먼저 달성하기도 했고
요즘야구로 치면 그래도 박세웅이나 원태인 상위 버전은 되는 투수
상대투수가 최동원-선동열
87프로야구한국시리즈
삼성라이온즈 대 해태타이거즈
1에서3차전까지성적
1차전 10.21 대구시민운동장
입장관중 1만4000
해태 5 : 3 삼성
아나운서 이규항 해설 하일성
2차전 10.22 1만500
해태 2 : 1 삼성
캐스터 양진수 해설 이호헌
3차전 10.24 광주무등운동장
1만3000
아나운서 정도영 해설 하일성
해태 4 : 2 삼성
삼성에 당시 재일교포 김일융 선수가 한국무대 마지막해였고 같은 재일교포 김성길 투수가 한국무대 첫해 였습니다.
김일융 선수는 86년이 마지막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