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것도 마냥 쉽지가 않은데 사회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 단순한 통합만은 또다른 분열의 서막을 알립니다... 당시 왕건의 사후에 지독한 권력투쟁이 일어난 것도 그렇고요.,.. 이걸 수습한게 광종인데 광종은 피도 눈물도 없는 대 숙청을 감행해서야 겨우 국가가 수습되었습니다. 한 국가가 시작을 할때 피를 제대로 흘리지 않으면 그 국가는 그리 오래 못갑니다,.. 중국 통일 왕조들도 통일을 한번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게 공신 숙청 혹은 지역 유지 숙청입니다. 통일을 한 태조 시절에야 제압이 가능해도 사후엔 문제가 되닌깐요... 참 정치라는 건 어려운거 같습니다. 관용과 베품이 필요한 것도 맞는데 숙청과 결단도 필요하죠. 모순된 이 행위들이 모두 필요한게 정치니깐...
포용적이었으나 흡수 융화는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 후에 산발젙으로 흩어져있던 호족세력들이 자기들의 권력을 위해서 싸우면서ㅠ 많이 혼란스러웠죠. 곁국 그 포용을 통해 통일을 이루어냈지만 안정화시키고 나라의 초석을 다진 것 다시 일정부분 무력 힘에 의지했던 광종의 정치력이아니었나싶습니드.
고려의 왕건은 온건책을 쓰는 통합의 황제였습니다. 다만 후백제의 견훤은 강경책을 쓰는 분열의 황제 였지요. 그래서 신라을 포용하는 것에 있어서 왕건은 신중하게 결정을 했지만 견훤은 그저 공격하여 신라를 망친 원흉이였습니다. 왕건은 진짜 모든 세력을 통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견훤의 강경책보다 더욱 도움이 되는 삼국 통일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견훤이 자신의 아들인 신검에게 강제적으로 왕위를 뺏기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견훤은 실패한 황제로 기억이 됩니다. 이리하여 왕건의 온건책이 통하게 되면서 왕건이 결국 삼국 통일을 하게 되는 주인공이 됩니다. 하지만 집안 단속을 못해서 결국 고려의 황자끼리 싸우는 결과를 가지고 오지만 그래도 한민족 역사에서는 최고의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고려의 왕건은 온건책을 쓰는 통합의 황제였습니다. 다만 후백제의 견훤은 강경책을 쓰는 분열의 황제 였지요. 그래서 신라을 포용하는 것에 있어서 왕건은 신중하게 결정을 했지만 견훤은 그저 공격하여 신라를 망친 원흉이였습니다. 왕건은 진짜 모든 세력을 통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견훤의 강경책보다 더욱 도움이 되는 삼국 통일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견훤이 자신의 아들인 신검에게 강제적으로 왕위를 뺏기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견훤은 실패한 황제로 기억이 됩니다. 이리하여 왕건의 온건책이 통하게 되면서 왕건이 결국 삼국 통일을 하게 되는 주인공이 됩니다. 하지만 집안 단속을 못해서 결국 고려의 황자끼리 싸우는 결과를 가지고 오지만 그래도 한민족 역사에서는 최고의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이런 귀한 곳에 귀한 분이..
역사는!!!! 최태성!!!!! 이얍!
요즘 시대에 중요한 메세지를 던져주시는 것 같습니다.
왕건 사후 외척이 된 호족ㆍ공신ㆍ무장세력들의 외손자를 왕위에 올리려고 했던 것을 보면 혜종ㆍ정종의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오른 광종의 노비안검법ㆍ과거제ㆍ공복제정과 이에 반발한 세력에 대한 숙청이 없었다면 왕권강화를 통한 고려의 통일ㆍ중앙집권화로 수성을 할 수는 없었죠.
역시 한국사는 최태성
역사는 큰별쌤^^
왕건이야말로 한국사 탑클래스에 들어가는 영웅이며 둘도 없는 창업군주이다. 왕건이 아니였다면 한반도가 빠른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면
몇 십년 후 쳐들어온 거란의 침략을 막기 어려웠을테고.. 우린 거란이나 여진의 노예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택도 없다...
역시 큰별쌤♡
훌륭하시네요
우오오... 태성선생님!!!
앗 큰별쌤 💕💕💕💕
사실 저것도 마냥 쉽지가 않은데 사회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 단순한 통합만은 또다른 분열의 서막을 알립니다... 당시 왕건의 사후에 지독한 권력투쟁이 일어난 것도 그렇고요.,.. 이걸 수습한게 광종인데 광종은 피도 눈물도 없는 대 숙청을 감행해서야 겨우 국가가 수습되었습니다. 한 국가가 시작을 할때 피를 제대로 흘리지 않으면 그 국가는 그리 오래 못갑니다,.. 중국 통일 왕조들도 통일을 한번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게 공신 숙청 혹은 지역 유지 숙청입니다. 통일을 한 태조 시절에야 제압이 가능해도 사후엔 문제가 되닌깐요...
참 정치라는 건 어려운거 같습니다. 관용과 베품이 필요한 것도 맞는데 숙청과 결단도 필요하죠. 모순된 이 행위들이 모두 필요한게 정치니깐...
문제는 너무많이 죽여서 광종사후 노비안검법같은 개혁도 후퇴하게됨
좋은 영상이네요
한반도가 빨간색으로 물들어 오염되냐....파란색으로 흡수 시켜 적응 시키느냐.....
그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이 해봅니다.
소중한 역사강의를 무료로 재밌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수종 .. 대단한 왕.,,
고구려 -> 고려(장수왕?), 그래서 왕건이 세운 나라 이름이 고려(918).
포용적이었으나 흡수 융화는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 후에 산발젙으로 흩어져있던 호족세력들이 자기들의 권력을 위해서 싸우면서ㅠ 많이 혼란스러웠죠. 곁국 그 포용을 통해 통일을 이루어냈지만 안정화시키고 나라의 초석을 다진 것 다시 일정부분 무력 힘에 의지했던 광종의 정치력이아니었나싶습니드.
관심법이니, 내가 미륵이니 하는 미친 왕 궁예때매라도, 운이 좋앗죠~ 대운을 타고난 왕이구요~
8:37 우리는 '패밀리'? 영어 쓰면 뭔가 있어 보이나요?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우리 말을 안 쓴 저의는 무엇입니까?
참 피곤하게 산다
대화로 모든 것을 순리대로 해쳐나간 조광윤도 한번 다루어봤으면
발해유민을 사람이 좋아서 그런거 였나요?공산전투이후에 병사들이 갈려나라서 발해유민을 환대한거 아니었나요?부인과 애들이 많아서 추후 왕위 쟁탈전이 생기지 않았나요?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더불어 살아야 하니까 그렇지 마음에 들어서 그런건 아니잖아요. 애초에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어딨음
다른세력을 받아들이는건 늘 양날의검입니다 그걸감수하고도 받은거죠
왕건은 어느지역사람인가?
송악 출신이에요.
왕건은 패서 지역 중에 하나인 지금의 개성인 송악의 고구려계 해상세력ㆍ호족 이었죠.
어허 무엄하다-! 어찌 그런 불손한 말투로 대답하는가? 왕건이는 송악 개성 출신이옵니다 (굽신)
권행
근데 후고구려의 힘이 쌔기 때문에 관용과 포용이 됐지 않았을까요.
고려의 왕건은 온건책을 쓰는 통합의 황제였습니다. 다만 후백제의 견훤은 강경책을 쓰는 분열의 황제 였지요. 그래서 신라을 포용하는 것에 있어서 왕건은 신중하게 결정을 했지만 견훤은 그저 공격하여 신라를 망친 원흉이였습니다. 왕건은 진짜 모든 세력을 통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견훤의 강경책보다 더욱 도움이 되는 삼국 통일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견훤이 자신의 아들인 신검에게 강제적으로 왕위를 뺏기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견훤은 실패한 황제로 기억이 됩니다. 이리하여 왕건의 온건책이 통하게 되면서 왕건이 결국 삼국 통일을 하게 되는 주인공이 됩니다. 하지만 집안 단속을 못해서 결국 고려의 황자끼리 싸우는 결과를 가지고 오지만 그래도 한민족 역사에서는 최고의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고려가 후삼국 통일한 이유는 간단하다 고구려랑 다르게 그 당시 중국이5대10국
분열된 시기고 북쪽에 발해가 거란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했기 때문제 후백제에 국력을 쏟아내서 집중하느라 가능했다.
설민석이 없어지니 이분이 이젠 그차례인가ㅎㅎ
배신의 아이콘 왕씨가 어떻게 왕이 될수있었을까? 어머니가 백제공주였던게 아닐까?
우리는 역사를 다시 배워야한다 과거엔
백제의 공주와 혼인하면 왕이 될수있었다
중국의 왕들도 백제공주와 혼인을했고
일본천왕도 백제공주와 혼인했다
호족이 왕이되도 되는가?
족보가 개족보야
이때 왕씨도 상으로 내렸는데 상받을 사람 인근지역 왕가 성도 상으로 내려서 족보 많이 꼬였죠. 박씨 김씨
신라말은 개판이여서 호족들이 들고일어나는일이 많아졌음
선생님:너무이상화말씀하셔씁니다.현실은아님이다.중국에선우리는조선족대한민국에선우리는교포.너무虚伪아님이까?
통합.화합.지금 문재인테 필요한 정신이네요,
되도 않는 적폐청산 어쩌고 분열시키더니
지들이 다 걸리고.내로남불 어후...
진심 이분 역사이야긴 역사 축소를 밥 먹듯 하네..
아니 후삼국이 남한에서만 있었다고 버젓히 지도를 그려서 올리나?
그럼 수도를 변경에 두나?
말이 되는 소릴해야지...
뻔하죠....궁예가 쌓아놓은 대업을 강탈했지....주원장도 자기의 주군을 배반하고 황제가 됐음....
고려의 왕건은 온건책을 쓰는 통합의 황제였습니다. 다만 후백제의 견훤은 강경책을 쓰는 분열의 황제 였지요. 그래서 신라을 포용하는 것에 있어서 왕건은 신중하게 결정을 했지만 견훤은 그저 공격하여 신라를 망친 원흉이였습니다. 왕건은 진짜 모든 세력을 통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견훤의 강경책보다 더욱 도움이 되는 삼국 통일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견훤이 자신의 아들인 신검에게 강제적으로 왕위를 뺏기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견훤은 실패한 황제로 기억이 됩니다. 이리하여 왕건의 온건책이 통하게 되면서 왕건이 결국 삼국 통일을 하게 되는 주인공이 됩니다. 하지만 집안 단속을 못해서 결국 고려의 황자끼리 싸우는 결과를 가지고 오지만 그래도 한민족 역사에서는 최고의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