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노아를 오해했다 (창세기 6장 5-9절) 꿈의교회 김을수 목사 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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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0 фев 2025
- 창세기 6장 5-9절
5.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아담(아담 후손)의 악[라]이 그 땅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라] 뿐임을 보시고
6. 그 땅에 그 아담 지으셨음[아싸]을 한탄하사(위로받으사)[이나헴(수동) - 나함]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그 사람(영이 없는 창조 인간)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지만[아싸]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노아흐]는 여호와의 눈에서 은총[헨]를 발견하였더라[마짜]
9. 이것들[엘레]이 노아의 내력이니라 노아는 의롭고[짜띠크] 흠 없는[타밈] 남자가 되었고[하야] 당대에 노아는 그 하나님과 (스스로) 동행케 하였더라[이트할레크]
아담은 셋이 에노스를 낳은 235세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에 관하여 부르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창 4:26). 그는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내포된 뜻을 스스로 깨달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여호와는 성취하실 분이라는 뜻입니다(출 3:14, 렘 33:2).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을 이루시는 분입니다(창 2:24, 엡 5:31-32).
아담의 10세손 노아는 아담이 930세로 죽고 나서 126년 후에 태어났지만, 그는 아담과 243년을 함께 살던 조부 므두셀라를 통하여 아담이 여호와의 이름을 알았고 그에 관하여 부르다가 죽은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태초 이래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으니 영 없이 생육 번성용으로 창조된 인간과 영을 넣어 제조된 아담입니다. (창 5:1) 그리스도는 아담에게 넣어진 영을 통해 오셨습니다. 말 2: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하나님의 씨(그리스도)를 얻고자 하심이라”
중간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창 6:1-2. “그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영 있는 남자와 영 없는 여자가 혼인하여 영 없는 네피림을 낳아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창 6:5.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아담의 악이 그 땅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여기서 악은 아담의 후손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을 소멸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아담에게 아내가 없는 것이 하나님께 선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므로 교회가 혼인 준비를 안 하는 것이 하나님께 악입니다.
이 선과 악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심판 기준입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사도들)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성도들) 각각 선악 간에 그 몸(교회)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그 아담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의 날들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120년의 유예기간을 주셨습니다. 노아가 600세 때의 홍수를 감안하면 그때 노아의 나이는 480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한 그 아담(그의 후손) 대신에 창조한 그 사람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합니다. 사람은 물론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쓸어버리시기로 하신 것입니다(7절). 그런데 여기 예외가 있었습니다. 창 6:9.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은혜를 만났더라[마짜]” 노아가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결정적 이유입니다.
창세기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는 ‘내력’이라는 키워드가 있습니다(창 2:4, 창 5:1). 노아의 내력을 볼까요? 창 6:9상. “이것들이 노아의 내력[톨레토트]이니라” ‘이것들’은 앞에 기술된 창 5:3~창 6:8입니다. 그 배경이 있었기에 노아는 이런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창 6:9하. “노아는 의롭고[짜띠크] 흠 없는[타밈] 남자가 되었고[하야] 노아는 당대에 스스로를 하나님과 동행케 하였더라[이트할레크]”
‘그가 되었다[하야]’는 표현은 노아가 선천적으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노아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가인과 아벨에게도 동일한 표현이 쓰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땅에 일에 몰두할 때 노아는 하나님의 눈을 응시한 결과 은혜를 받았고 그래서 의로워졌고 스스로를 하나님과 동행케 한 것입니다.
동행은 어떨 때 가능할까요? 암 3: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노아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산 사람입니다.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의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라서 의[디카이오쉬네]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늘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살았던 것입니다.
노아는 의로운 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의를 선포했습니다. 벧후 2: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선포하는 노아, 여덟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하나님께 무심한 것이 경건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노아가 산에서 방주를 짓는 자체가 하나님의 의를 선포한 행위입니다.
의는 정해진 바른길을 걷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우쳐주시는 의는 무엇일까요? 요 16:9.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초곡절 다음은 오순절이었습니다.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오순절 날)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일곱 절기를 주셨습니다. 골 2:17. “이것들은 장래 일들의 그림자이나 그 몸(실체)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오순절 다음은 나팔절과 속죄절과 장막절입니다. 우리 기독인은 믿음으로 말마암아 의롭게 된 이스라엘 열두 지파입니다(마 19:28).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세상에 의를 선포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선이 그리스도의 혼인이라면 악은 그것에 무심한 것입니다. 의롭게 된 노아가 산에서 방주를 지으므로 패역한 세상에 의를 선포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는 성도들이라면 혼인을 위해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말세를 향해 치닫는 세상에서 의를 선포하는 일 아닐까요?
하나님께 의가 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하나님의 의를
선포하길 원합니다
귀한 말씀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목사님 ❤❤❤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목사님 😊
아멘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포하신 은혜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습니다 목사님 ❤❤❤
따끈따끈한 말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