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비사에 대한 총독부 발행시집까지 찾아내신 노고를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서경천도와 연루되어 김부식에 의하여 처향된 정지상의 시의 가운데 두줄 입니다. 정지상이 서경 출신으로 나오고 이 시에서는 남포와 대동강이라는 지금의 평양 지명이 언급되는 바 정리가 쉽지는 않군요.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임 보내는 남포는 슬픈 노래 가득하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국사 중에 의문이 생기던 구절 중 하나가 강동 6주이고 다른 하나는 서경의 위치입니다. 압록강은 비스듬히 남서쪽으로 흐르는 강인데 지도상 6주가 강 남쪽에 있더군요. 그다음은 서경인데, 서경이라면서 개성 바로 북쪽에 있으니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나는 군요
고려사 해당 부분을 봐도 묘청의 서경은 요양쪽에 있습니다. ---서경(西京)의 용언궁(龍堰宮)의 연회[大宴]에서 올린 치어(致語)[西京龍堰宮大宴致語]병신년(1116) 김부일(金富佾) 기자(箕子)의 풍습을 싣기에는 오늘이 적당하옵고, 요양(遼陽)의 땅이 다시 우리의 강역으로 들어옴을 보게 될 것이오니 실로 만고에 없는 보기 어려운 일인지라 마땅히 사람들과 더불어 즐겨야 할 것이옵니다. (載與箕子之風, 適當今日, 行見遼陽之地, 復入我疆, 實曠古之難逢, 宜與人而共樂. )
"평양(平壤)이라는 신경(神京)은 실로 주몽의 옛 도읍으로 장성(長城)의 한 면에는 힘차게 흐르는 푸른 물이 제후가 천자를 뵙는 듯 하고, " 주몽(고추모 성제)의 옛 도읍이 지금의 북한 평양은 당연히 아니겠죠. *동인지문사륙 권8(東人之文四六 卷之八) > 악어(樂語) > 서도(西都)에서의 군신연회에서 올린 치어(致語)[西都君臣大宴致語] 윤인첨(尹鱗瞻) 1168년 4월 9일(음) 서도(西都)에서의 군신연회에서 올린 치어(致語)[西都君臣大宴致語]무자년(1168) 4월 9일 윤인첨(尹鱗瞻) 선왕께서 순수(巡狩)하실 때 나라의 재정을 소비하지 않아서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시었고, 군자의 잔치는 검소로써 가르치시고 은혜로써 보여 주셨으니 훌륭하도다! 아름다운 자취여. 우리의 창성한 조정에 속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성지(聖智)의 자질을 몸에 지니시어 가득 차게 이루어진 왕업을 어루만지시고, 교화가 상하에 두루 미치시어 솔개와 물고기가 각기 그 마땅함을 얻었고, 가르침은 남북에 미치어 예물[玉帛]이 자연히 이르렀사옵니다. 문장(文章)은 삼대의 성세에 견줄만하고, 예악(禮樂)은 백년을 기다려 일어났사옵니다. 모든 업적은 그것이 이루어짐에 구공(九功)이 펼쳐졌으나 오히려 정사에 임하심에 근심하고 부지런하시어 매양 겸손하게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시었습니다. 한번 놀고 한번 유람하는 것은 제후의 법도가 되는 바로, 〈봄에〉 밭갈이를 살피시고 〈가을에〉 거두는 것을 살피신 연후에 왕자의 어짊을 베푸시나이다. 돌아보건대 평양(平壤)이라는 신경(神京)은 실로 주몽의 옛 도읍으로 장성(長城)의 한 면에는 힘차게 흐르는 푸른 물이 제후가 천자를 뵙는 듯 하고, 쌍궐의 동쪽 머리에는 점점이 푸른 산이 빙 둘러 읍하는 듯합니다. 아득함은 봉래(蓬萊)와 영주(瀛洲)의 모습이 있사옵고, 규모는 호경(鎬京)과 낙양(洛陽)의 법식과 같사옵니다. 왕기(王氣)가 더욱 증가하니 큰 기틀은 오래도록 단단할 것이옵니다. 더구나 탕(湯)임금의 백성은 임금님이 오시면 우리가 살아날 것[后來其蘇]이라는 희망을 일으켰고, 또 하(夏)나라 속담에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받겠는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침 중년(仲年)을 맞이하여 특별히 길한 달을 골랐습니다. 천둥소리 같은 한 소리가 거동을 알리니 천자께서 백치(百雉)의 도성[서경]에 오셨습니다. 임금님[元首]은 밝으시고 신하[股肱]들은 어질어 함께 도와 그 질고(疾苦)를 없애고, 호위병은 적고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적으니 모든 이로 하여금 집에서 기쁘게 하였사옵니다.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구름이 하늘에 오르는 수괘(需卦)의 상(象)을 취하였으니 은혜가 흠뻑 젖은 이슬에 고루 내리옵고, 임금님의 안색[玉色]을 지척에서 우러러 뵈오니 성관(星官)은 모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생황과 경쇠의 소리가 잘 조화를 이루고, 대그릇과 나무그릇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이미 술에 취하였으나 위의(威儀)가 있음을 보이시고, 그 마음을 다 하게 하니 법칙으로 본받을만하기에 이르렀사옵니다. 이때에 훈풍이 비로소 불고 태평성대[化日]가 바야흐로 길어지니 만 가지 궁궐의 꽃은 족족 붉은 꽃송이를 터뜨리옵고 천 가지의 대궐의 버드나무는 푸른 띠를 드리워 바람에 부드럽게 한들거리옵니다. 누가 아름다운 경치와 호시절이 동시에 있기 어렵다고 말하였나이까? 이제 충신 및 가빈(嘉賓)과 더불어 즐기시니 일시의 장관이요 후세의 성대한 이야기꺼리입니다. 신등은 외람되게도 천공(賤工)이 함부로 법부(法部)에 참여하여 억지로 구호(口號)를 올리어 위로 맑으신 기쁨을 돕고자 하옵니다. 구호는 잃어버렸다.
제가 찾은 "명사"와 "원사"의 기록에도 고려의 서경은 지금의 요양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의 역사학계는 역사 기록 다 무시하고 서경을 평양이라고 고집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참고로 그 요양쪽의 서경이 후대에 지금의 평양쪽으로 옮겨오는데 이를 밝혀야 하는 우리의 강단사학계는 무얼 하고 있는지...
신지비사* 단군조선을 노래. - 마치 저울대, 저울추, 저울그릇과 같아 백아강(평양)은 저울그릇이요, 소밀랑(하얼빈)은 저울대요, 안덕향(당산)은 저울추이니 머리와 꼬리가 평형을 이루어 나란히 있고 덕은 神精을 지키어 나라를 일으켜 태평을 이루게 하시니 조정에 칠십(70)개국이 항복을 시키시어 영원히 삼한의 뜻을 보전케 하시도다. - . 6대 달문*단군 재위시 신지 발리*가 기록. 고려사, 청구풍아집(김종직), 청구시초(조선총독부).
오늘도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노고가 많으십니다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최고십니다 진실을 밝혀내고 역사 회복만이 살길입니다 💞
쓰레기는 언제든지 불태워야 합니당 💥💥
인제를제도권으로 들어가셔서 역사를 바꿔야겧네요 30명이상 제도권 진입해서 해결책은 그것뿐이네요💥
옛날에는 외워서 공부했는데 지금은 여러가지 자료를 찾아볼수 있어서 좋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감사합니다.
나는 오늘뉴스를 보고 경악 했다 민주당 대표가된 송모가 이승만 묘를 찿아가서 건국어쩌고 하는 방명록 을썼다는 이놈은 임시정부를 인정하는지?( 헌법) 의심스럽고 걱정스럽습니다 강하게 항의해야됩니다
신지비사에 대한 총독부 발행시집까지 찾아내신 노고를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서경천도와 연루되어 김부식에 의하여 처향된 정지상의 시의 가운데 두줄 입니다.
정지상이 서경 출신으로 나오고 이 시에서는 남포와 대동강이라는 지금의 평양 지명이 언급되는 바 정리가 쉽지는 않군요.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임 보내는 남포는 슬픈 노래 가득하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국사 중에 의문이 생기던 구절 중 하나가 강동 6주이고 다른 하나는 서경의 위치입니다. 압록강은 비스듬히 남서쪽으로 흐르는 강인데 지도상 6주가 강 남쪽에 있더군요. 그다음은 서경인데, 서경이라면서 개성 바로 북쪽에 있으니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나는 군요
감사합니다. 👍
늘 좋은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늘 구멍 뚤린 것처럼 허한 고대사였는데.. 영상을 보면 볼 수록 구멍이 메워지는 느낌입니다. 고맙습니다!!!
점심시간에 봤는데요,아침에 올리시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죄송, 피곤하시고 바쁘신데...
감사합니다.
외로운길 가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십니다.항상 응원합니다.
묘청이 주장한 서경은 지금의요양 이나 심양 이라는 ( 고구려후기평양) 것이 중국 사서에 .....
고려사 해당 부분을 봐도 묘청의 서경은 요양쪽에 있습니다.
---서경(西京)의 용언궁(龍堰宮)의 연회[大宴]에서 올린 치어(致語)[西京龍堰宮大宴致語]병신년(1116) 김부일(金富佾)
기자(箕子)의 풍습을 싣기에는 오늘이 적당하옵고, 요양(遼陽)의 땅이 다시 우리의 강역으로 들어옴을 보게 될 것이오니 실로 만고에 없는 보기 어려운 일인지라 마땅히 사람들과 더불어 즐겨야 할 것이옵니다. (載與箕子之風, 適當今日, 行見遼陽之地, 復入我疆, 實曠古之難逢, 宜與人而共樂. )
북벌을 하려는 서경천도는 최소한 압록강은 넘어야 되겠네요.
단군조선 진짜라고 믿고 있습니다.
선생님 마한의 부단군 이름도 존재하나요?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편을 살펴보십시오.1대 웅백다 부단군으로부터 33대 맹남 부단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평양(平壤)이라는 신경(神京)은 실로 주몽의 옛 도읍으로 장성(長城)의 한 면에는 힘차게 흐르는 푸른 물이 제후가 천자를 뵙는 듯 하고, "
주몽(고추모 성제)의 옛 도읍이 지금의 북한 평양은 당연히 아니겠죠.
*동인지문사륙 권8(東人之文四六 卷之八) > 악어(樂語) > 서도(西都)에서의 군신연회에서 올린 치어(致語)[西都君臣大宴致語] 윤인첨(尹鱗瞻) 1168년 4월 9일(음)
서도(西都)에서의 군신연회에서 올린 치어(致語)[西都君臣大宴致語]무자년(1168) 4월 9일 윤인첨(尹鱗瞻)
선왕께서 순수(巡狩)하실 때 나라의 재정을 소비하지 않아서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시었고, 군자의 잔치는 검소로써 가르치시고 은혜로써 보여 주셨으니 훌륭하도다! 아름다운 자취여. 우리의 창성한 조정에 속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성지(聖智)의 자질을 몸에 지니시어 가득 차게 이루어진 왕업을 어루만지시고, 교화가 상하에 두루 미치시어 솔개와 물고기가 각기 그 마땅함을 얻었고, 가르침은 남북에 미치어 예물[玉帛]이 자연히 이르렀사옵니다. 문장(文章)은 삼대의 성세에 견줄만하고, 예악(禮樂)은 백년을 기다려 일어났사옵니다. 모든 업적은 그것이 이루어짐에 구공(九功)이 펼쳐졌으나 오히려 정사에 임하심에 근심하고 부지런하시어 매양 겸손하게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시었습니다. 한번 놀고 한번 유람하는 것은 제후의 법도가 되는 바로, 〈봄에〉 밭갈이를 살피시고 〈가을에〉 거두는 것을 살피신 연후에 왕자의 어짊을 베푸시나이다. 돌아보건대 평양(平壤)이라는 신경(神京)은 실로 주몽의 옛 도읍으로 장성(長城)의 한 면에는 힘차게 흐르는 푸른 물이 제후가 천자를 뵙는 듯 하고, 쌍궐의 동쪽 머리에는 점점이 푸른 산이 빙 둘러 읍하는 듯합니다. 아득함은 봉래(蓬萊)와 영주(瀛洲)의 모습이 있사옵고, 규모는 호경(鎬京)과 낙양(洛陽)의 법식과 같사옵니다. 왕기(王氣)가 더욱 증가하니 큰 기틀은 오래도록 단단할 것이옵니다. 더구나 탕(湯)임금의 백성은 임금님이 오시면 우리가 살아날 것[后來其蘇]이라는 희망을 일으켰고, 또 하(夏)나라 속담에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받겠는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침 중년(仲年)을 맞이하여 특별히 길한 달을 골랐습니다. 천둥소리 같은 한 소리가 거동을 알리니 천자께서 백치(百雉)의 도성[서경]에 오셨습니다. 임금님[元首]은 밝으시고 신하[股肱]들은 어질어 함께 도와 그 질고(疾苦)를 없애고, 호위병은 적고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적으니 모든 이로 하여금 집에서 기쁘게 하였사옵니다.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구름이 하늘에 오르는 수괘(需卦)의 상(象)을 취하였으니 은혜가 흠뻑 젖은 이슬에 고루 내리옵고, 임금님의 안색[玉色]을 지척에서 우러러 뵈오니 성관(星官)은 모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생황과 경쇠의 소리가 잘 조화를 이루고, 대그릇과 나무그릇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이미 술에 취하였으나 위의(威儀)가 있음을 보이시고, 그 마음을 다 하게 하니 법칙으로 본받을만하기에 이르렀사옵니다. 이때에 훈풍이 비로소 불고 태평성대[化日]가 바야흐로 길어지니 만 가지 궁궐의 꽃은 족족 붉은 꽃송이를 터뜨리옵고 천 가지의 대궐의 버드나무는 푸른 띠를 드리워 바람에 부드럽게 한들거리옵니다. 누가 아름다운 경치와 호시절이 동시에 있기 어렵다고 말하였나이까? 이제 충신 및 가빈(嘉賓)과 더불어 즐기시니 일시의 장관이요 후세의 성대한 이야기꺼리입니다. 신등은 외람되게도 천공(賤工)이 함부로 법부(法部)에 참여하여 억지로 구호(口號)를 올리어 위로 맑으신 기쁨을 돕고자 하옵니다. 구호는 잃어버렸다.
西都君臣大宴致語戊子四月九 尹鱗瞻
先王巡狩, 國不費而民不勞, 君子燕敖, 訓以儉而示以惠, 偉歟! 美躅. 屬我昌朝. 恭惟, 聖上躬聖智之資, 撫盈成之業, 化周上下, 鳶魚各得其宜, 敎曁朔南, 玉帛自然而至. 文章比三代之盛, 禮樂待百年而興. 庶績其凝, 九功攸敍, 尙憂勤於莅政, 每謙遜以檢身. 謂一䂊一遊, 所以爲諸候校勘 001之度, 而省耕省斂, 然後施王者之仁. 眷平壤之神京, 實朱蒙之舊邑, 長城一面, 溶溶綠水之朝宗, 雙闕東頭, 點點靑山之環拱. 縹渺有蓬瀛之況, 規模同鎬洛之儀. 王氣彌增, 洪基永固. 況湯民起后來其蘇之望, 或夏諺有吾何以助之言. 適値仲年, 特涓令月. 雷動一聲之蹕, 天臨百雉之都. 元首明股肱良, 共相除其疾苦, 兵衛少徵求寡, 使胥慶於室家. 取象需雲, 均恩湛露, 玉色仰瞻於咫尺, 星官僉被於招呼. 笙磬同音, 籩豆有楚. 旣醉以酒, 示有威而有儀, 得盡其心, 至可則以可效. 于時熏風始至, 化日方長, 萬朶宮花, 綻紅葩之蔟蔟, 千株禁柳, 垂翠帶以依依. 誰言美景良辰之難幷? 今與忠臣嘉賓以偕樂, 一時壯觀, 後世盛談. 臣等猥以賤工, 叨參法部, 强呈口號, 上助淸歡.失口號
校勘 001 서울대학교 규장각본 『동문선』에는 ‘候’가 ‘侯’로 되어있다.
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517
서경은 한반도 평양에 있었습니다. 위 링크는 기경량이 쓴 글입니다.
이 시대의 참 지식인
제가 찾은 "명사"와 "원사"의 기록에도 고려의 서경은 지금의 요양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의 역사학계는 역사 기록 다 무시하고 서경을 평양이라고 고집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참고로 그 요양쪽의 서경이 후대에 지금의 평양쪽으로 옮겨오는데 이를 밝혀야 하는 우리의 강단사학계는 무얼 하고 있는지...
요양은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수도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마세요.
ko.m.wikipedia.org/wiki/%EC%9A%94%EC%96%91%EB%B6%80
조선이 고조선의 사서를 두려워 한 이유 : 중공의 본토 남경에서 건국한 고려가 북경과 심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한반도의 땅을 다스리는 등 국운이 기울어 질 때 명의 주원장과 결탁하여 고조선의 후예인 고려를 패망시켜 삼한의 옛땅을 버렸기 때문.
묘청*은 개경에서 서경*으로 천도하여 대륙공략 주장. 서경은 어디일까?
신지비사* 고려 조선시대, 조선총독부도 알고 있었다.
신지비사* 단군조선을 노래. - 마치 저울대, 저울추, 저울그릇과 같아 백아강(평양)은 저울그릇이요, 소밀랑(하얼빈)은 저울대요, 안덕향(당산)은 저울추이니 머리와 꼬리가 평형을 이루어 나란히 있고 덕은 神精을 지키어 나라를 일으켜 태평을 이루게 하시니 조정에 칠십(70)개국이 항복을 시키시어 영원히 삼한의 뜻을 보전케 하시도다. - . 6대 달문*단군 재위시 신지 발리*가 기록. 고려사, 청구풍아집(김종직), 청구시초(조선총독부).
단군조선의 삼한*( 진한, 마한, 번한. ) 단군은 진한* 다스림. 부단군 2명은 마한* 변한* 다스림.
신지비사*의 일부. (首尾均平位 )*: 머리와 꼬리가 균형. 조소앙*의 삼균제도.
임시정부*의 국호* : 대한민국* . [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의 시발점은 임시정부*로 규정 ] . 대한민국 건국 강령(임시정부)*. 홍익인간 ! 1941년(민국23년) 11월 28일. - 1945년 12월 20일. 조선교육심의회 -.
홍익인간 :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
이스탄불에서 유적이 발견되면 사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