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점혈, 영릉은 과연 조선 최고의 명당인가?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51

  • @김세형-u2i
    @김세형-u2i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지조있는 말씀 감사합니다!

  • @益壯老翁
    @益壯老翁 2 года назад +8

    지도로 보니 영릉의 좌청룡으로 쓰고있는 곳이 힘이 뭉친 곳으로 보이네요. 대단하신 안목입니다.

  • @동주-j6x
    @동주-j6x 2 года назад +5

    선생님 영상 잘 보고있습니다.
    역시 명쾌하고 알기쉬운 해설!
    감사합니다.

  • @陽友堂
    @陽友堂 2 года назад +6

    멋진 석물과 조경으로 치장된 묘전경!
    점혈이 제대로 되ㅓ지못하면
    허수아비에 양복입혀 놓은거임을 알겠군요!
    점혈의 중요함!!
    잘 보고갑니다

  • @우용운-i4q
    @우용운-i4q 2 года назад +5

    선생님 안목 감동 헸어요 감사 수고 하십니다

  • @양애정-e1j
    @양애정-e1j 2 года назад +3

    안녕하세요 ~
    선생님 덕분에 세종대왕 영릉을 편히 앉아 보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역사공부까지요.
    설명 듣다보니 현장에 있으면 더 생동감 있게 느낄수 있었겠단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요? ㅋ 선생님 말씀처럼 기감도 궁금해지구요.
    강의 감사히 잘 듣고 있습니다😁

  • @김광수-z4q
    @김광수-z4q 2 года назад +3

    영릉이 왜 흉지인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영상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서진욱-i8e
    @서진욱-i8e 2 года назад +1

    얼마전 영릉을 살펴보고 이곳이 과연 명당인가? 의심했는데 오늘 이런 의견을 들으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특히 릉 뒷능선이 푹 꺼진 것 같더군요.

  • @문지기-z5o
    @문지기-z5o 2 года назад +1

    진심어린 말씀 잘 들었습니다 ~

  • @다니엘-l9z
    @다니엘-l9z 2 года назад +2

    감동 일여선생님 행복하세요

  • @소나무-r9l3q
    @소나무-r9l3q 2 года назад +1

    일여 선생님의 설명 잘 들었습니다.

  • @TheKimjinman
    @TheKimjinman 2 года назад

    설명하신 내용으로 수긍은 가나
    산의 형세로보아 당시 지관들이 알면서도 지금의 자리에
    묘를 쓸수 밖에 없었던 같습니다
    저라도 저 자리리가 진혈인줄 알면서도 현재의 자리에 묘자리를
    잡았을 것 입니다
    왜냐면 마무리 진혈이 좋다한들
    사람의 심리는 좀더 안정적인곳을 쫓아가기 마련입니다

  • @병호윤-f7s
    @병호윤-f7s 2 года назад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님께서는 혈 종류를 몇가지나 알고계신지요?
    내용 공유해주시면 감사드립니다

  • @중배전
    @중배전 2 года назад

    생각이 참많이다르네요

    • @정재삼의만복가
      @정재삼의만복가  2 года назад

      풍수에 대한 제 논리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석천-f9q
    @제석천-f9q 2 года назад

    세종대왕 영릉이 명당이라면 세조가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충직한 신하를 죽이는 반역이 일어났을까요 어떤 근거에서 조선왕조가 100년 갈 것인데 500년 갔다는 말인가요. 무덤의 위치가 후손들에게 발복을 해주는 거요 그 후손들이 혈통이 좋거나 시대의 운 때문인가요

  • @유재구-q5x
    @유재구-q5x Год назад

    화장실 뒷편의 진혈을 누가 쓸 수는 없습니까?

  • @청포도-f9c
    @청포도-f9c 2 года назад

    세종의 여러 자식들이 세조에게 비명횡사했고
    손자인 단종이 살해됐는데 무슨 명당이 되겠는가?

    • @정재삼의만복가
      @정재삼의만복가  2 года назад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산마니-c7s
      @산마니-c7s Год назад +1

      그때는 내곡동에 모셔져 있있는데, 무덤에서 붉은 물이 계속 나오자 상서롭지 못하다하여 다시금 지관들로 길지를 찾으라 분부한다, 어명을 받든 지관들이 여러달동안 헤매고 다니다 지친 나머지 어느 작은 마을에 들르게 듸어 미지막 희망을 걸고 연을 만들어 하늘 높히 띄운다음 연줄을 끊어버린다,연은 통북향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데 지관들은 연을 놏칠세라 부리나케 뒤쫒아 가는데 이윽고 연이 떨어진곳을 찾게된다, 헌데 그곳엔 허름한 무덤이 잡초속에 자리잡고 있는게 아닌가,지관들은 무덤 주인을 찾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장을 명한다, 무덤 주인이 말하길, 이 무덤의 주인은 광주 이씨인 본인의 아버지로써 돌아가실때 유언이 "무덤을 호화롭게 하지말고 보잘것없는 집안 무덤모양 벌초도 하지마라,이 무덤 자리는 후손에게서 정승 판서가 나❤올 명당 자리이니 호화롭게 꾸미면 빼앗길 염려가 있으니 절대로 내가 한말을 지키도록 하라,"하셨다며 곤란한 표정을 지워보이니 지관들이 하는말이 위에 잘 말하여 다른 좋은 자리를 알아주고 후히 보상해주겠다,하여 이장키로 하였는데, 이런일이 있을줄 미리알고 무겁고 큰돌로 관을 만들어 놨는지 힘쎈 여러 장정들이 힘을 합쳐 관뚜껑을 열려 하나 꿈쩍을 하지 않는다,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열려해도 옴짝달싹앉하자 지관 한명이 무덤 주인 아들이 한 말중 정승 판서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곰곰히 생각하다, 조정에 여차저차하여 이지경까지 왔는데 죽은 무덤 주인에게 벼술을 내려보는게 어떨까, 하는 상소를 올리고 왕의 윤허를 받아 금부도사가 몸소 내려와 무덤속 꼼짝달싹 안하는 석관을 향해 소리친다, "어명이요ㅡ! 광주 이씨 아무개는 주상 전하로부터 영의정에 제수하노니 어명을 바틀지어다 ㅡ" 하니, 그동안 꽁짝않던 석관문짝이 절로 움직이더라, 그 연을 날리던 고을 이름은 과거 연날리에서 지금 연라리로 현재해 있다,이 이야기는 나의 2년 선배인 광주 이씨로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예기를들은 것이고 그분은 아마 지금도 여주시 삼교 1동에 살고 계실것이다,또한 그분 아버지께서는 일제치하당시 강제 징병으로 유황도에 끌려가 만기 복무하고 왔는데 밑에 동생이 또 징병 되자 부친께서, 얘야 큰애야 아무래도 한번 갔다온놈이 나을테니 니가 동생대신 갔다와라 해서 두번 갔다 오셨다는 황당한 사실이 있습니다.

  • @cosmosenternity
    @cosmosenternity 2 года назад

    조선이 518년간 존속하였는데, 그러면 어느 묘가 발복을 하여 그리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십니까? 조선 왕릉 중에 명당에 점혈된 릉은 몇 퍼센트 정도 된다고 보시나요? 땅을 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는데, 조선 왕릉 전체가 엉터리로 점혈되었다는 것처럼 들려서 질문드리는 것입니다. 518년간 유지된 이유가 풍수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정재삼의만복가
      @정재삼의만복가  2 года назад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리며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선이 500여년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임금 한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성리학의 논리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에 의해 왕조가 유지되고 굴러갔으며 조선이 망한 것은 시스템 붕괴가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선 왕릉을 모두 답사하지 않아 뭐라 말씀드리는 곤란하지만 현재까지 답사한 곳에서 적확하게 점혈이 된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 @cosmosenternity
      @cosmosenternity 2 года назад

      @@정재삼의만복가 답변 감사합니다. 조선의 유교 시스템이 조선을 존속시킨 사회적 원인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조선을 518년 동안 전주 이씨 한 가문이 통치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세계사에서 한 가문이 그토록 오래 왕조를 이어간 경우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희귀합니다. 명당이 없는데도 그러한 가문의 번영을 누렸다면 풍수라는 학문이 쓸모가 없거나, 혹은 조선 왕조에 명당이 드물거나 없다는 견해가 틀린 것이겠지요. 현재 대한민국에 전주 이씨의 숫자는 대략 260만명입니다.

    • @정재삼의만복가
      @정재삼의만복가  2 года назад +2

      @@cosmosenternity 조상의 묫자리 때문에 나라를 창업하고 또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단지 일정 부분 일조를 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명당 때문에 조선 500년이 유지됐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조선 왕조의 흥망성쇠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의 운명이 있었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이 따로 존재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idmankim6152
    @idmankim6152 Год назад

    단종이 비참한 최후를 마친걸보면
    멧자리소리 필요없음

  • @하닷사-s2q
    @하닷사-s2q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뺏었으니 후손은 안되는 ...거 였제

  • @블루마운틴-k4j
    @블루마운틴-k4j Год назад

    세종대왕이 성군이 된것은
    다 좋와하는데ᆢ
    이방원이태종이 성군을
    되게 환경을 만든었기때문인데
    이방원은 욕하죠
    아주 이기적인 사고죠
    풍수방송은 잘봤습니다

  • @어린왕자-h8r
    @어린왕자-h8r 2 года назад

    모든 사람이 명당이라고 하는 곳을
    아니라고 하니 참~~~

    • @정재삼의만복가
      @정재삼의만복가  2 года назад +2

      명당은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윤영근-v7n
    @윤영근-v7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선백성들에 피와땀으로ᆢ 파묘해야함ᆢ

  • @특기술사사무소
    @특기술사사무소 2 года назад

    정혈 맞아요
    7미터 *7미터 짜리

    • @정재삼의만복가
      @정재삼의만복가  2 года назад

      영릉이 명당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누구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