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해는 딱 임진왜란까지만 리즈시절입니다. 정작 본인이 왕이 되고 개판을 만들어 버립니다.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똑똑하지는...;; 워낙에 선조가 자식복이 없었던건데 역사를 좋아하시는 찐팬들은 광해군도 인조만큼이나 무능 그자체 군주라는거 다 압니다. 인조가 반란 일으킬꺼 같다는 보고가 계속 들어오는데도 생까버리것도 모자라 심지어 지금의 수도방위 사령관급인 한양도성 맡는 장군이나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장급인 도승지도 인조 반정파에게 돈으로 매수당하는걸 기록으로 통해 알수 있을 정도로 광해군 집권 시절에 얼마나 문란했는지 알수가 있죠
@@Mikoon3326 선조가 여러 왕자들을 모아놓고 "세상에서 가장 으뜸인 반찬이 무엇이냐?"며 묻기를, 다른 왕자들은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댔으나 유독 광해군만은 조미료인 소금이라 답했다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광해군이 이르기를, '소금이 아니면 온갖 맛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선조가 왕자들에게 가장 아쉽게 여기는 점이 무엇이냐 묻자, 다른 왕자들의 답변과 달리 광해군은 생모가 일찍 죽은 것을 가장 아쉽게 여긴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선조가 갖가지 선물을 준비해 왕자들에게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자 다른 왕자들은 앞다투어 보물들을 가져갔는데 광해군만 붓과 먹을 가져가서 선조가 크게 놀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광해군이 왕이 된 이후에 정치적으로 대립세력을 만든 건 사실이나 왕자시절부터 총명함은 남달랐습니다. 분명 성군의 자질이 있었으나 무리한 토목공사로 민심을 잃고 본인이 말한 바를 몇번 뒤집고 하는 실정이 있었지요. 하지만 대동법 시행과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통해 조선의 이익을 추구한 건 재평가해야할 업적입니다. 인조반정세력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전부다 사대주의에 쩔어있는 인간들 뿐인지라, 광해군이 폐위된 결정적인 이유는 균형외교였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김현성-d1l 대동법은 오히려 광해군이 반대했던걸 신하들이 밀고 나간겁니다. 대동법 처음 시행했던 지역은 경기도였던건 잘 아실껍니다. 그것도 신하들이 하도 닥달해서 광해군이 마지못해 경기도에 한해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제도지요. 광해군은 경기도에만 적용시켜서 대동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제도인지 보여주고 싶었던 의도였는데 이게 오히려 반응이 너무 좋아서 경기도 주변지역(강원도,황해도,충청도) 관리와 백성들이 확대 실시요구하는 상소가 계속 올라오는걸 광해군이 한동안 묵살했다는 조선왕조실록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립외교는 진짜 광해군의 의도가 맞는지 사학계에서도 해석이 분분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광해군의 행동이 있거든요. 상식적으로 대의명분을 강조하던 당시 동아시아 문화 특성상 명 지원군 파병은 어쩔수 없었던 선택일수도 있지만 진짜 광해군이 불필요한 전쟁, 후금과 적대관계를 원하지 않았다면 강홍립이 이끌던 조선 파병군이 후금에게 몰살에 가까운 대패를 당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어차피 뒤에서 '우리도 어쩔수 없어서 파병은 했지만 당신네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밀서를 후금에게 전하는 마당에 말이죠.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 있어서 맨날 분주하네...광해군은 풍수쟁이 말 듣고 새로 만든 궁궐이 2개, 개축 보수한 궁궐이 8개입니다. 대원군 때, 궁궐 하나 때문에 나라 재정이 흔들려 당백전을 만드는 등의 일들이 벌어졌는데, 과연 광해군 때 백성들 삶은 어떠했을지... 왜 자꾸 역사 왜곡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지...친일사관이 광해성군론을 주장할 뿐, 광해군은 성군이 아니라 암군 입니다. 잡채 상서등 유명한 용어가 왜 그 왕이 나쁜 왕인지 보여주죠. 심지어, 대북파마저 광해군의 패악질에 등을 돌려 버립니다. 인조가 아니라도 광해군 정권은 끝난 정권이었습니다. 십여년간 역사 왜곡된 드라마 매체 등으로 자꾸 광해군을 성군으로 그리는 사람들 많습니다. 특히 사르후 전투에서 강홍립이 도원수를 맡은 게 통역관 경력이 아니라, 원래 도원수는 문관이 맡는 것 뿐이고, 정말 강홍립이 내통했다면, 사르후 전투에서 1만 5천 조선군 중에 8천명이 사망하는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할 이유도 없고, 청에서 풀려난 조선군이 수백 밖에 안되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겁니다. 광해는 암군입니다. 그가 제대로만 했다면, 중국의 교체기를 잘 타고 우리가 캐스팅 보드를 쥐었을지 모릅니다. 궁궐을 짓는다고 국방비까지 뺴돌리고, 게다가, 화약에 쓸 염초를 푸른 기와 굽는 데 쓴 게 바로 광해입니다. 매번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중립외교 운운하지 마시길...말 몇마디가 전부입니다. 중립은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겁니다. 만약 광해군 때 중립이라면, 구한말은 중립일까요? 결국 힘이 없어 끌려 다니는 건 중립이 아닌데도 많은 역사학자들은 잘못된 주장을 합니다. 진정한 중립외교는 스위스를 보면 됩니다. 나치가 준동하던 2차대전 때에 중립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힘 떄문입니다. -이상 열받은사람입니다.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왕 같으면 죽였겠죠. 하지만, 인조는 폐모살제로 반정했다는 명분 때문에 광해를 죽이지 못합니다. 조선은 원래 그렇게 명분이 있어야 움직이는 겁니다. 광해는 억울한 게 아닙니다. 이미 인조 반정 이전부터 조정이 무너졌습니다. 측근들이 돌아서고,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그게 단지 기득권이 아니라, 제대로 국정 운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게 왜 그럴까요? 이미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 있어서 맨날 분주하네...광해군은 풍수쟁이 말 듣고 새로 만든 궁궐이 2개, 개축 보수한 궁궐이 8개입니다. 대원군 때, 궁궐 하나 때문에 나라 재정이 흔들려 당백전을 만드는 등의 일들이 벌어졌는데, 과연 광해군 때 백성들 삶은 어떠했을지... 왜 자꾸 역사 왜곡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지...친일사관이 광해성군론을 주장할 뿐, 광해군은 성군이 아니라 암군 입니다. 잡채 상서등 유명한 용어가 왜 그 왕이 나쁜 왕인지 보여주죠. 심지어, 대북파마저 광해군의 패악질에 등을 돌려 버립니다. 인조가 아니라도 광해군 정권은 끝난 정권이었습니다. 십여년간 역사 왜곡된 드라마 매체 등으로 자꾸 광해군을 성군으로 그리는 사람들 많습니다. 특히 사르후 전투에서 강홍립이 도원수를 맡은 게 통역관 경력이 아니라, 원래 도원수는 문관이 맡는 것 뿐이고, 정말 강홍립이 내통했다면, 사르후 전투에서 1만 5천 조선군 중에 8천명이 사망하는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할 이유도 없고, 청에서 풀려난 조선군이 수백 밖에 안되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겁니다. 광해는 암군입니다. 그가 제대로만 했다면, 중국의 교체기를 잘 타고 우리가 캐스팅 보드를 쥐었을지 모릅니다. 궁궐을 짓는다고 국방비까지 뺴돌리고, 게다가, 화약에 쓸 염초를 푸른 기와 굽는 데 쓴 게 바로 광해입니다. 매번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중립외교 운운하지 마시길...말 몇마디가 전부입니다. 중립은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겁니다. 만약 광해군 때 중립이라면, 구한말은 중립일까요? 결국 힘이 없어 끌려 다니는 건 중립이 아닌데도 많은 역사학자들은 잘못된 주장을 합니다. 진정한 중립외교는 스위스를 보면 됩니다. 나치가 준동하던 2차대전 때에 중립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힘 떄문입니다. -이상 열받은사람입니다.
임진왜란까지가 정점입니다. 백과사전을 보시기 바랍니다. 광해는 암군입니다. 성리학의 조선에서 임금이 내려졌다면, 그건 억울하게 내려지는 게 아닙니다. 정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오히려 인조는 자신이 내세운 명분인 폐모살제 떄문에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이게 조선이란 나라입니다. 궁궐 2채 새로 짓고, 8채를 증개축 보수를 한다면, 나라 꼴이 어떨까요? 게다가, 잡채상서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인사에 잡채 요리 잘했다고 발탁하는 말도 안되는 일을 바로 광해가 한겁니다. 국정을 개판으로 만든 왕입니다. 많은 분들이 성군이라고 잘못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_James_kim 그러면 뭐하나요?? 광해군이 정치를 못했답니다.. 왜냐하면 광해군이 즉위한 후에 북인들이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서 거짓 역모 고변을 하면 왕이 직접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데 그걸 그대로 믿고 피의 숙청을 해버렸음...그런식으로 남인, 서인과 친형 그리고 배다른 동생까지 전부 죽여버림...정통성이 약한 왕이 이렇게 피의 숙청을 하면 왕권을 잃을 수밖에 없답니다..정조도 항상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왕위에 올랐고 끝임없이 역모고변이 있었지만, 피의 숙청을 거의 하지 않았답니다. 최소한 정조처럼 신하를 다스렸다면 절대 쫓겨나지 않았음
@@주차돈 에효...조선은 기록의 나라입니다. 게다가, 그 당시의 다른 책들도 광해의 폭정을 고발하는 내용 뿐 제대로 국정 운영을 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근거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이런 생각 가진 게 문제죠. 이거야 말로 역사를 부정하는 거니 말입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 아닌가요?
내가 이런 사람들 있어서 맨날 분주하네...광해군은 풍수쟁이 말 듣고 새로 만든 궁궐이 2개, 개축 보수한 궁궐이 8개입니다. 대원군 때, 궁궐 하나 때문에 나라 재정이 흔들려 당백전을 만드는 등의 일들이 벌어졌는데, 과연 광해군 때 백성들 삶은 어떠했을지... 왜 자꾸 역사 왜곡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지...친일사관이 광해성군론을 주장할 뿐, 광해군은 성군이 아니라 암군 입니다. 잡채 상서등 유명한 용어가 왜 그 왕이 나쁜 왕인지 보여주죠. 심지어, 대북파마저 광해군의 패악질에 등을 돌려 버립니다. 십여년간 역사 왜곡된 드라마 매체 등으로 자꾸 광해군을 성군으로 그리는 사람들 많습니다. 특히 사르후 전투에서 강홍립이 도원수를 맡은 게 통역관 경력이 아니라, 원래 도원수는 문관이 맡는 것 뿐이고, 정말 강홍립이 내통했다면, 사르후 전투에서 1만 5천 조선군 중에 8천명이 사망하는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할 이유도 없고, 청에서 풀려난 조선군이 수백 밖에 안되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겁니다. 광해는 암군입니다. 그가 제대로만 했다면, 중국의 교체기를 잘 타고 우리가 캐스팅 보드를 쥐었을지 모릅니다. 궁궐을 짓는다고 국방비까지 뺴돌리고, 게다가, 화약에 쓸 염초를 푸른 기와 굽는 데 쓴 게 바로 광해입니다. 매번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중립외교 운운하지 마시길...말 몇마디가 전부입니다. 중립은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겁니다. 만약 광해군 때 중립이라면, 구한말은 중립일까요? 결국 힘이 없어 끌려 다니는 건 중립이 아닌데도 많은 역사학자들은 잘못된 주장을 합니다. 진정한 중립외교는 스위스를 보면 됩니다. 나치가 준동하던 2차대전 때에 중립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힘 떄문입니다.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peterpen12 뭔소리를 하는 건지...그럼 나라가 망했는데...뭔 병자호한으로 오랑케에게 치욕을 안 당해? 차라리 처음부터 광해군이 왕권을 갖지 않았다면 우리가 제대로 토대를 다져 동아시아의 패권을 자질 수 있던 중요한 기회를 놓친 건데... 광해군이 궁궐 2채를 새로 짓고 8채를 증개축 보수를 했다는 얘기가 뭔지 모르겠냐? 흥선은 경복궁 중건 하나로도 나라가 휘청거렸다. 그런데, 2채나 새로 지었다. 게다가, 푸른 기와를 만든다고 그 비싼 화약의 재료인 염초를 마음대로 썼다. 게다가, 잡채 상서라 하여 왕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해오면 요직에 앉히는 말도 안되는 일을 했고, 그로 인해 정부 요직이 자격없는 사람에 의해 채워졌다. 그런데도 나라가 온전해 진다는 게 이상하지. 결극, 나라가 망조가 든 상태에서 인조에게 넘어 갔는데, 뭔 병자호란이 안 나? 졸라 무식한 소리를 하네. 위에 쓴 글 못 봤냐? 김개시나 광해군의 측근들이 배신을 했을까? 광해군을 지지하던 대북이 왜 등을 돌렸을까? 이미 정부가 결단 났다는 얘기야. 그러니, 아무리 반정 첩보가 들어오면 뭐 할까? 그걸 받쳐줄 사람들이 없는데...광해 혼자 있는데 대체 뭐가 이뤄진다는 얘긴데? 결국, 자격없는 왕이 들어서서 나라를 망쳤다는 얘기야. 알겠냐? 니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바로 확증편향이야. 그러니, 이런 판단이 되는거야. 광해군도 이런데, 과연 정치는 어떨까? 지금의 민주당 지지하는 니들의 생각도 똑같아. 결국, 광해군이랑 같이 쓰레기인데도 계속 좋다고 우기고 있지. 기초부터 전부 나쁜걸 인정해도 그래도 아니라는 괘변을 말하는 거랑 지금의 광해군 논리랑 다를 바가 없어.
조선시대 유배형의 역사 자료를 찾아보면 벼슬 관직에 있던 유배인이 유배형을 선고받으면 그 직급에 따라 유배길에 함께 동행하는 무관들역시 예우상 그 직급이 모두다 달랐고 죄인이라 하더라도 유배인이 자기보다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일경우 공손하게 예를 갖췃다고 나와있음 초반부에 폐위된 광해군의 등짝을 떠미는 무관의 장면은 고증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연출입니다
첨 글쓰신 분은 유배가는 길 무관들이 예우를 갖췄으므로 영상 속 등을 떠미는 식이 아니었으므로 고증이 잘못되었단 말씀이고.. 답글에 쓰여있는 일 돌보는 노비들 얘기는 유배생활이 길어지니 버려진 왕 따위 우습게 보고 무시하고 자기멋대로 했을테죠.. 댓글과 답글을 보니 서로 다른 시점과 상황을 가지고 이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제발, 그 근거좀 들어볼래요? 어느 역사책이 광해를 성군이라고 그린답니까? 그냥 뇌피셜 할꺼면 역사는 왜 배울까요? 궁궐 2채 새로 만들고, 증개축 보수를 8채를 합니다. 1채도 힘들어서 흥선대원군 시절에 당백전 만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는 임진왜란 직후입니다. 이게 말이 될까요? 게다가, 임란 후 2년 때는 대기근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 뒤에 십여년 지난 조선에서 그런 짓을 하는데 백성의 삶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역사가 승자의 기록 운운하는 겁니까?
@@ddobro1242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했다는 것은 완전히 사기이고 거짓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못됩니다 사실은 명나라가 광해군이 세자책봉된 것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적자도 장자도 아닌 두번째 서자인 광해군이 세자가 된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은 그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명의 원병요청에 소극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당해도 싼거죠. 백성들을 좀 괴롭혔어야죠. 자꾸 광해 성군론이라는 친일사관에 빠진 분들 많은데, 광해는 암군입니다. 궁궐 신축2개 증개축보수를 8개를 합니다. 대동법을 막았던 이유도 세수 떄문입니다. 수도권에 한정되게 실시한 것도 선조 밑에서 대동법을 연구하던 체재공 등이 밀어 붙였기 떄문에 가능했습니다.
@@dalgug 그 당시 수탈당한 백성 생각은 안하나? 그거 때문에 대동법 전국실시도 막은 게 바로 광해군이다. 이런 병신 같은 대답을 소신이랍시고 하니? 아님 웃으라고 하는 거냐? 생각하는 마인드는 딱 고삘 마인드네. 세상 다 뒤집어서 생각하는 그 마인드....이런 새끼가 성인이면 그게 진짜 코메디지.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쪽처럼 댓글에 온통 광해 후빨러 들이 설치는데 광해군은 요즘 미디어에서 성군처럼 미화 되는데 사실 광해군 이 양반은 내치에선 아주 암군에 가까울 정도로 빵점임. 광해군은 중증 궁궐병에 걸려서 나라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지가 살아야할 궁궐 짓는다고 얼마없던 백성들의 민가를 헐고 그 백성들을 줘어짜서 궁궐을 만드는데 세금낭비함. 그것도 모자라서 본인이 직접 매관매직을 벌여서 궁궐을 만들 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그 궁궐에 청기와를 사용함. 이게 왜 문제가 되냐고 생각하겠지만 청기와를 만드는데 사용된 유약의 재료가 바로 화약을 만드는데 사용된 염초였음. 그것도 명나라가 공짜로 준 염초를 화약도 아닌 지 궁궐 짓는데 탕진함. 그 결과 화약이 부족해서 결국 병자호란때 화약부족 으로 병사들이 대포와 총도 쏘지도 못함. 광해군의 궁궐병이 얼마나 유명했는지 후금의 청태조 누르하치가 조선의 사신에게 그대의 임금이 궁궐을 계속 짓고 있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볼 정도임. 말이 그렇지 사실상 나라망신 이였음. 그리고 당시 광해군은 오성과 한음 으로 유명한 이덕형과 이항복, 그리고 오리대감 이원익 같은 충신들과 영창대군과 능창군 같은 왕족들을(인간말종 임해군과 순화군 제외) 무슨 스탈린 마냥 죄다 숙청하는데 이게 인조반정의 불씨임. 광해군이 능양군, 즉 인조의 동생인 능창군을 모함으로 죽이면서 능양군이 각성하고 광해군 몰아내려고 반정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을 제공함. 그리고 그 빈 자리를 이이첨 같은 북인들이 차지하는데 문제는 북인 이놈들도 서인급 부패 정치집단에 서인들 못지않게 명나라 후빨하는 친명파임. 그 결과 우리한테 실리외교를 펼쳤다고 칭송받는 광해군과 달리 조정에는 온통 친명파들이 득세하게 되고 그 결과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부름. 더 충격인 사실은 광해군이 김새기 라는 상궁과 무당 복동이, 그리고 승려 성지에게 의존하며 그들이 전횡을 일쌈는걸 방치 했다는 거임.(이거 어디서 많이 본거같다?!) 거기다 자신에게 잡채와 김치, 심지어 산삼등을 바친 사람들에게 벼슬을 줌.(....) 그러면서도 자신을 끝까지 옹호하던 남인과 서인측 인사(예: 허균과 이항복)들을 잔인하게 배척하면서 자기 주변을 죄다 적대 세력으로 만들어 버림. 그러다가 인조반정때 김자점과 내통한 김개시한테 통수 당하고 복동이도 김개시와 같이 참형에 당하고 성지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추가로 실리외교와 같이 광해군의 업적이라고 칭송받는 대동법 반대도, 대동법 전국 환산도 막은 사람이 바로 광해군 본인임. 대동법 승인도 신하들이 독촉해서 겨우 통과했고 강원도에 확산 하자는 신하들의 요구에도 광해는 거부함. 광해군이 성군이라면 왜 기득권 눈치 보면서 경기도 지역에만 대동법을 실행함?! 결국 광해군도 별반 다를게 없었음. 광해군이 얼마나 내치를 못했으면 유배를 갈때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며 조롱함. “돈아비야, 돈아비야 그 많은 돈 두고 어디 가느냐?” 말 그대로 광해군의 매관매직과 축재, 그리고 과도한 궁궐 건설를 비꼰 아주 어울린 노래 였으며 제주도에서 그를 구박하는 계집종에게 질책을 하자 그 계집종 왈 “영감이 이전에 임금 자리에 있을 때 무엇이 부족해 아랫사람들에게 음식까지 부탁해 김치판서, 잡채참판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게 했소? 영감이 임금의 자리를 잃은 건 자업자득이지만 우리는 무슨 죄로 이 가시덩굴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단 말이오?” 라고 팩폭에 가까운 비판을 하자 광해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이 굳게 닫으며 침묵을 했다. 결론: 광해군은 선조와 인조에 가려져 마치 민자영 처럼 성군 마냥 과대포장된 암군임.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흥선대원군 이전에 조선이 너무 개판이었음...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외세가 들어오면 더 혼란함이 있을거 같아 개방을 막고 자기가 직접 조선을 바꿀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오랫동안 개판이었던 조선을 바꾸기엔 쉽지 않았죠. 그래서 흥선대원군 시절이 제일 부패가 없던 시절이라고 할만큼 노력은 했으나 너무 늦은거였죠.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조나 선조가 제일 불쌍한 왕이죠. 지금도 역사왜곡에 시달리니 말입니다.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허리가 아프면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계속해 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허리가 아픈 문제가 생기면 흔히들 불행한 일인 것으로 생각하고,문제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무척 부러워합니다. 걱정스러운 문제없이 지내는 것이 인생의 최고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문제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에서 나의 생명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야말로 나를 키워주는 고마운 재료입니다. 이렇게 고마운 것이 허리 병의 문제이건만 ,문제를 싫어하는 데에는 사람마다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귀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허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머리를 쓰든 몸을 움직이든 여하간 나의 노력이 필요한 것인데, 그 노력이 싫다는 생각에서 문제를 귀찮게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성장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무런 문제없이, 따라서 아무런 노력 없이 세상을 살아가면 그 인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생명의 힘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활력을 키웁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귀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기에게 닥친 문제에 해결책이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허리 통증에 당면하면 사람들은 그 문제의 크기와 자신의 능력을 비교합니다. 허리 통증의 문제의 크기가 자기의 능력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이 되므로, 그 문제해결에- 손을 대기는커녕 우선 공포심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공포심은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그 문제에 압도당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허리 병의 문제해결의 방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를 싫어합니다. 저는 무지와 저잣거리의 뜬 소문을 맹신한 결과 허리디스크가 87%가 파괴되어 없어지고, 척추전방전위로 허리뼈가 앞으로 13mm가 어긋나 있고, 극심한 척추분리증.협착증이 있고, 평행봉을 조급하게 하다가 떨어져 흉추 11번이 압박골절로 30%가 손상되었습니다.허리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몰라 항상 불안하였습니다. 허리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알아서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일부러 역도를 심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허리 2번의 20%를 골절시키고 오직 운동으로 극복하고 70이 넘은 나이에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하고 역도를 하며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나 허리를 부러뜨리고 운동으로 다시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먼저 했을 것입니다. 실험은 위험하고 두렵기 때문에 저와 같이 힘 없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허리 병은 이름이 무엇이건 운동 부족 때문입니다. 허리 병을 스스로 해결 못할 사람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일부러 허리를 골절시켜 운동으로 효과를 증명하였습니다. 지금은 역도를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70이 넘은 나이에 역도를 배워 허리를 단련시킨 것은 큰 행운이며, 허리 통증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재료였습니다. 다른 질병도 우리몸이 70프로가 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응용한다면, 자신에게 닥친 질병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70이 넘은 나이에 허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다시 운동으로 극복해서 역도를 할 수 있듯이 말 입니다, 2021.7 사람은 왜 목,허리,무릎이 아플까? 저자 법무사 이 희 숙(남) 010-5250-4802(무료) 서초동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해군은 외치의1인자로 인조반정이없었으면 치욕스런 정묘호란. 병자호란도 없었다. 진짜진짜재평가되어야한다.
재평가는 무슨....
인조가 븅~이라서 그런거지 광해군도 왕으로 오른 뒤부터는 암군....맞는데....
광해군 재평가 썰은
반대로 친일 사학계가 먼저 꺼내든거....
전쟁을 몸소겪고 유교주의 보다는 실리주의로서 국정을 하니 기득권세력이 엄청난 반발이 생길수 밖에 없지요~
유교는뭐고. 실리는뭐지? 유교듣기는많이. 듣엇는데. 정치를발전이. 있어야지. 하던대로만. 하라는법있나? 기득권이고. 나발이고. 왕이죽으면. 기득권들. 함께따라. 죽어야되. 기득권이면. 왜. 지들이왕하지. 왕이지휘못하면. 무슨의미 이상스런건. 정치가제일. 이상스럽다세상일중에서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해는 딱 임진왜란까지만 리즈시절입니다. 정작 본인이 왕이 되고 개판을 만들어 버립니다.
@@청래-l5q 보수적인게 유교지 변화를 싫어하고 당시 명을 떠받들고 청을 홀대했으니 기득권들은 자기들 앞가림하기 바빴는데
왕이든 서민이든 소소한것에 휘둘리면 이꼴이 되지요.왕으로서 덕으로서 수신,제가를 못하고 분란만 일으켰으니 치국 평천하가 될리가 없지요.광해군은 조선시대 반정에도 살아남아 18년 더 산것도 큰 행운입니다.현대 기준으로 보면 안됩니다.
역시, 세상은 운칠기삼.. 어떻게 전 왕이 선조고, 뒤에 오는 왕이 인조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역사의 비극이네..
@반중자유 앞뒤로 선조인조가 더 씹창이였음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조선이 망하게 된 결정적 라인
와 진짜 앞뒤로 조선 최악의 암군들이 껴있네
@@jw1174영조도 있었고 정조도 있었으니 그건 아님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이 들때까지 아무데도 갈데가 없고 아무도 부르는이 없으며 찾아오는이 없고. 말벗도 없고. 할일도 없는 삶. 생물학적으로만 살아있는 삶. 현대에도 이런 생활을 하는 노인들이 참 많다. 그게 바로 유배가 아니겠는가
와이파이와 휴대폰만 있으면 견딜 수 있어
@@조광래-k1p 그렇지...어느 정도 견딜수 있지
오호 애재라 뉘신지 모르나 과객은 어찌 그리 애간장을 녹이는게요
그힘없고나약한어르신들이한창일때는가족을지켰고 이 사회를 지키며 국가를지켜후손과후대에게 온전히 물려주니그누가
있어서 어르신들을 홀대 할수가 있겠는가 ㅋㅋ
댁은 뉘신데
이리도 뼈때리는 말을 서슴없이 하시는게오
광해가 유배생활을 버틴것은 임란과정란을 통해서 어려운 생활을 버티는 능력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리 생각해보니 슬프네요
@@팀킬-w1q 게다가 임진왜란때 민심을 수습하고 의병들 소집하고 온갖고생 다했었죠
임란때 의병수습해서 게릴라전 하고..없는물자 짜낸다고 고생이란 고생다하시고..
양반들이 유배 생활 오래 못버티는것이 고생이란걸 해본적이 없고 모든 허드렛일을 다 해주는 노비들이 있었는데 갑자기 더러운 환경에서 혼자 해결하려다보니 적응을 못하고 우울증에 병걸려서 죽는경우가 다수임. 그리고 언제 사약 배달올지 모르는 공포증도 있음.
나라를 구한분이 저렇게 생을 마감한것이
안타갑습니다
광해 엄청 없어보이게 나오네요. 광해군 나름 똑똑하고 인조보다 훨씬 나은 왕이 아니었던가 ?
역사에서는 인조가 개쓰레기다 ㅉㅉㅉ 지 아들도 시기해서 죽인 못난놈 인조
똑똑하지는...;;
워낙에 선조가 자식복이 없었던건데 역사를 좋아하시는 찐팬들은 광해군도 인조만큼이나 무능 그자체 군주라는거 다 압니다.
인조가 반란 일으킬꺼 같다는 보고가 계속 들어오는데도 생까버리것도 모자라 심지어 지금의 수도방위 사령관급인 한양도성 맡는 장군이나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장급인 도승지도 인조 반정파에게 돈으로 매수당하는걸 기록으로 통해 알수 있을 정도로 광해군 집권 시절에 얼마나 문란했는지 알수가 있죠
@@Mikoon3326 선조가 여러 왕자들을 모아놓고 "세상에서 가장 으뜸인 반찬이 무엇이냐?"며 묻기를, 다른 왕자들은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댔으나 유독 광해군만은 조미료인 소금이라 답했다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광해군이 이르기를, '소금이 아니면 온갖 맛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선조가 왕자들에게 가장 아쉽게 여기는 점이 무엇이냐 묻자, 다른 왕자들의 답변과 달리 광해군은 생모가 일찍 죽은 것을 가장 아쉽게 여긴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선조가 갖가지 선물을 준비해 왕자들에게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자 다른 왕자들은 앞다투어 보물들을 가져갔는데 광해군만 붓과 먹을 가져가서 선조가 크게 놀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광해군이 왕이 된 이후에 정치적으로 대립세력을 만든 건 사실이나 왕자시절부터 총명함은 남달랐습니다. 분명 성군의 자질이 있었으나 무리한 토목공사로 민심을 잃고 본인이 말한 바를 몇번 뒤집고 하는 실정이 있었지요. 하지만 대동법 시행과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통해 조선의 이익을 추구한 건 재평가해야할 업적입니다. 인조반정세력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전부다 사대주의에 쩔어있는 인간들 뿐인지라, 광해군이 폐위된 결정적인 이유는 균형외교였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아뇨... 덤앤더머에요... 광해군도 폐위당할만했고 인조도 ㅄ인거죠... 광해군이 똥싸놔서 임란 이후 선조때부터 해오던 복구 정책이 겨우 인조때가서야 어떻게 뭐좀 보이게 되는데요
@@김현성-d1l 대동법은 오히려 광해군이 반대했던걸 신하들이 밀고 나간겁니다.
대동법 처음 시행했던 지역은 경기도였던건 잘 아실껍니다.
그것도 신하들이 하도 닥달해서 광해군이 마지못해 경기도에 한해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제도지요.
광해군은 경기도에만 적용시켜서 대동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제도인지 보여주고 싶었던 의도였는데
이게 오히려 반응이 너무 좋아서 경기도 주변지역(강원도,황해도,충청도) 관리와 백성들이 확대 실시요구하는 상소가 계속 올라오는걸 광해군이 한동안 묵살했다는 조선왕조실록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립외교는 진짜 광해군의 의도가 맞는지 사학계에서도 해석이 분분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광해군의 행동이 있거든요.
상식적으로 대의명분을 강조하던 당시 동아시아 문화 특성상 명 지원군 파병은 어쩔수 없었던 선택일수도 있지만 진짜 광해군이 불필요한 전쟁, 후금과 적대관계를 원하지 않았다면 강홍립이 이끌던 조선 파병군이 후금에게 몰살에 가까운 대패를 당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어차피 뒤에서 '우리도 어쩔수 없어서 파병은 했지만 당신네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밀서를 후금에게 전하는 마당에 말이죠.
@@Mikoon3326 그만큼 지지 기반이 부족했던 왕
누가 더 나라를잘다스리는가 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들은 권력이 우선이었다. 오히려 어리버리한왕을세워 자기들의 부와귄력을탐했죠.지금도그때와같다.
지금 북한과 같은맥락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그런데도 일편단심이니 불사이군이니 헛소리를 믿는 사람들 투성이니.
선조.광해군.인조. 두 쓰레기 사이에서 정말 성군이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 있어서 맨날 분주하네...광해군은 풍수쟁이 말 듣고 새로 만든 궁궐이 2개, 개축 보수한 궁궐이 8개입니다. 대원군 때, 궁궐 하나 때문에 나라 재정이 흔들려 당백전을 만드는 등의 일들이 벌어졌는데, 과연 광해군 때 백성들 삶은 어떠했을지...
왜 자꾸 역사 왜곡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지...친일사관이 광해성군론을 주장할 뿐, 광해군은 성군이 아니라 암군 입니다. 잡채 상서등 유명한 용어가 왜 그 왕이 나쁜 왕인지 보여주죠. 심지어, 대북파마저 광해군의 패악질에 등을 돌려 버립니다. 인조가 아니라도 광해군 정권은 끝난 정권이었습니다.
십여년간 역사 왜곡된 드라마 매체 등으로 자꾸 광해군을 성군으로 그리는 사람들 많습니다. 특히 사르후 전투에서 강홍립이 도원수를 맡은 게 통역관 경력이 아니라, 원래 도원수는 문관이 맡는 것 뿐이고, 정말 강홍립이 내통했다면, 사르후 전투에서 1만 5천 조선군 중에 8천명이 사망하는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할 이유도 없고, 청에서 풀려난 조선군이 수백 밖에 안되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겁니다.
광해는 암군입니다. 그가 제대로만 했다면, 중국의 교체기를 잘 타고 우리가 캐스팅 보드를 쥐었을지 모릅니다. 궁궐을 짓는다고 국방비까지 뺴돌리고, 게다가, 화약에 쓸 염초를 푸른 기와 굽는 데 쓴 게 바로 광해입니다. 매번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중립외교 운운하지 마시길...말 몇마디가 전부입니다. 중립은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겁니다. 만약 광해군 때 중립이라면, 구한말은 중립일까요? 결국 힘이 없어 끌려 다니는 건 중립이 아닌데도 많은 역사학자들은 잘못된 주장을 합니다. 진정한 중립외교는 스위스를 보면 됩니다. 나치가 준동하던 2차대전 때에 중립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힘 떄문입니다.
-이상 열받은사람입니다.
ㅇㅈ
아~~~광해의 마음이 어땠을까
광해군은 성군이 아닙니다. 선조,광해군,인조 모두 다 쓰레기들임.
성군은 아니지~ 무슨소리하나? 좌파냐?
조선은 인조 반정 이후로 서인이라는 말기 암판정을 받게 되죠, 잠시 영정조때 암세포를 눌렀지만 대원군때 마지막 명현현상을 보고 역사로 사라집니다, ,
서인이 조선의 암세포 였나요 ??
@@ironman-cr7um 서인이 훗날 노론이 되고
노론의 수장이었던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죠
그 후예들이 아직도 정치권에 남아있죠
@@ironman-cr7um 아니요. 이성계와 정도전이 우리민족의 암세포죠. 이씨조선은 귀태죠
실제로 나라를 말아먹은 새끼는 민자영이년 하고 고종였죠, 고종놈도 신하들에게 떠밀었었죠,그리고 그자식새끼들은 일본정부로부터 작위 칭호와 엄청난 돈을받고 호의호식했죠 ㅋㅋ
@@폴볼커-b5m 그래도 세종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런 댓글들도 한문으로 쓰고 있어야 했음.
가족 모두를 잃고 제주에서 죽은 광해군보다 삼전도 굴욕을 당한 인조가 더 불쌍하고 한심한 인생이다 국제 정세도 모르는 인간이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살피지 못했으니 어찌 그 죄가 광해군만 못하단 말인가!
광해군이라 칭함도 죄가 아닌것을 죄인 취급한 것도 인조를 비롯한 사대주의에 쩔은 인간들이 날조한 것 전쟁을 막기위해 친금을 주장했던 것인데 인조반정 이후 인조는 스스로 오랑캐라 여긴 금나라에 삼배구고드레를 한 미친넘..
네 인조새끼가 더 무능한 것였죠
인조 자체가 서인 노론 바지사장이라 거역할 힘도 명분도 지력도 없었듬
인조때문에 개혁이 뒤쳐졌소
바지
아비를 잘못 만난....
희생양..미치지 않고..
살았슴이 고통이겟죠..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애닯습니다 광해왕~
한 많고 애처로운 삶에 가슴이 미여집니다.
인조가 나라를 망쳐버린 반정이 없었어야 조선이 흥했을턴데
응 광해군은 그냥 폭군이야 ㅋ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 무리한 토목 공사 ㅋㅋㅋ 그리고 무슨 외교왕? ㅋㅋㅋ
@@Silla_Gates5 그래서 인조는 잘했고?
@@김성동-i8l
광해군보다는 그나마 낫지 ㅋ
폭군은 아니였으며 후금 청나라 팔기군이 너무나 강해서 못 당함 ㅋ
@@Silla_Gates5인조는 그냥 벼엉신 …..
@@freesoul3476
중국인인 인조는 그냥 뵹신이였는데 광해군은 폭군 그 자체였음 ㅋㅋㅋ
보통 왕이나 정승 들은 유배들가면 오래 못 사는대 광해군은 18년이나,,,아마 임진왜란때 분조로 백성들과 동고동락해서 하도 많이 고생해서 갑자스러운 환경에 잘 ㅓㄱ응한듯
유배는 암것도 아니라구~~~~ㅋㅋ
후손이 무슨 할말이 있겠오
그냥 눈물만 흘릴뿐이요
다른 왕 같으면 죽였겠죠. 하지만, 인조는 폐모살제로 반정했다는 명분 때문에 광해를 죽이지 못합니다. 조선은 원래 그렇게 명분이 있어야 움직이는 겁니다. 광해는 억울한 게 아닙니다. 이미 인조 반정 이전부터 조정이 무너졌습니다. 측근들이 돌아서고,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그게 단지 기득권이 아니라, 제대로 국정 운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광해임금도 재평가 되야하고 인조임금은 이마찍으며 청태종에게 치욕당했으면 자결함이 옳았다 일국의군왕이 한때는 오랑캐라 업신여긴 여진족장에게 그 수모 당하고도 명줄을 끊지못하고 ㅉㅉ 삼전도비는 없애버려라 두고두고 창피해서 후손들이 어찌살겠는가?
그렇네요. 그 놈의 사대주의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면 자결하는게 진정한 사대주의 거늘. 겉으로만 사대주의 한 척. 뒤지기는 싫은가 봅니다. 자식인 소현세자도 죽이고. 참으로 쓰레기중에 쓰레기.
웃기는 소리하시네
그럼 프랑스 드골은 뭐냐
나라 버리고 토꼈다가 미국 덕에 나라 되찾은 드골놈은 세기의 영웅이라고 빨아대면서
나라 버리고 도망도 안간 선조는 무조건 나쁜놈이래
ㅋㅋ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해왕의 복귀를 위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게 너무 안타깝다 광해왕이 계속 집권 했다면 병자호란같은 조선 최고의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 났겠는가
그게 왜 그럴까요? 이미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어 일어났어~ 정묘/병자호란은 필연이였고 전쟁수행능력도 광해의 대북정권들이 더 노답이였어
@@kmsg816 전쟁이 일어났어도 역사에 기록된 정도로 참혹하지 않아을 꺼야,,,,,,
광해군은 재평가되어야한다.
내가 이런 사람들 있어서 맨날 분주하네...광해군은 풍수쟁이 말 듣고 새로 만든 궁궐이 2개, 개축 보수한 궁궐이 8개입니다. 대원군 때, 궁궐 하나 때문에 나라 재정이 흔들려 당백전을 만드는 등의 일들이 벌어졌는데, 과연 광해군 때 백성들 삶은 어떠했을지...
왜 자꾸 역사 왜곡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지...친일사관이 광해성군론을 주장할 뿐, 광해군은 성군이 아니라 암군 입니다. 잡채 상서등 유명한 용어가 왜 그 왕이 나쁜 왕인지 보여주죠. 심지어, 대북파마저 광해군의 패악질에 등을 돌려 버립니다. 인조가 아니라도 광해군 정권은 끝난 정권이었습니다.
십여년간 역사 왜곡된 드라마 매체 등으로 자꾸 광해군을 성군으로 그리는 사람들 많습니다. 특히 사르후 전투에서 강홍립이 도원수를 맡은 게 통역관 경력이 아니라, 원래 도원수는 문관이 맡는 것 뿐이고, 정말 강홍립이 내통했다면, 사르후 전투에서 1만 5천 조선군 중에 8천명이 사망하는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할 이유도 없고, 청에서 풀려난 조선군이 수백 밖에 안되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겁니다.
광해는 암군입니다. 그가 제대로만 했다면, 중국의 교체기를 잘 타고 우리가 캐스팅 보드를 쥐었을지 모릅니다. 궁궐을 짓는다고 국방비까지 뺴돌리고, 게다가, 화약에 쓸 염초를 푸른 기와 굽는 데 쓴 게 바로 광해입니다. 매번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중립외교 운운하지 마시길...말 몇마디가 전부입니다. 중립은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겁니다. 만약 광해군 때 중립이라면, 구한말은 중립일까요? 결국 힘이 없어 끌려 다니는 건 중립이 아닌데도 많은 역사학자들은 잘못된 주장을 합니다. 진정한 중립외교는 스위스를 보면 됩니다. 나치가 준동하던 2차대전 때에 중립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힘 떄문입니다.
-이상 열받은사람입니다.
올려치기 너무 심하긴해~ 아직도 광해군이 잘한 왕이라고 착각하는 구태의 역사교육잔재로 인해 그런 인식이 남아있는거보면
@@kmsg816
너의 역사인식이야말로 무지랭이구나
@@kmsg816 착각은 본이이 하고 있구만,,,,,,,,,,,승자의 역사를 진실로 믿는 아둔함 ㅋㅋ
광해기 올려치기 심하긴함
저렇게 될줄 🤷♂️ 몰랐다니
안타깝다
광해군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임진왜란 때 고생고생 수습을 잘 한 왕인데...참 안타깝다
임진왜란까지가 정점입니다. 백과사전을 보시기 바랍니다. 광해는 암군입니다. 성리학의 조선에서 임금이 내려졌다면, 그건 억울하게 내려지는 게 아닙니다. 정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오히려 인조는 자신이 내세운 명분인 폐모살제 떄문에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이게 조선이란 나라입니다.
궁궐 2채 새로 짓고, 8채를 증개축 보수를 한다면, 나라 꼴이 어떨까요? 게다가, 잡채상서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인사에 잡채 요리 잘했다고 발탁하는 말도 안되는 일을 바로 광해가 한겁니다. 국정을 개판으로 만든 왕입니다. 많은 분들이 성군이라고 잘못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반정이 있을거라고 그렇게 상소가 많이 올라왔는데도 무시한 광해군 본인 잘못이 200% 입니다
그게 논리적으로 말이여 똥이여
틀린 말은 아니죠
맞아요 도둑놈들은 잘못 없어요 사람들을 믿고 문단속을 안한 집주인이 잘못한겁니다.
그러니 도둑말고 집주인들을 수사해서 교도소로 보내야 합니다.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호랑이 사냥을 이해못함. 상궁 그 여자 김개똥도 변절하였고
나름 전쟁 영웅에 깨어있는 군주였는데ㅜㅜ
광해군 폐위 안됫으면 이괄의난도 안일어났을꺼고 병자호란때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았겠죠
@@_James_kim
그러면 뭐하나요?? 광해군이 정치를 못했답니다..
왜냐하면 광해군이 즉위한 후에 북인들이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서 거짓 역모 고변을 하면 왕이 직접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데 그걸 그대로 믿고 피의 숙청을 해버렸음...그런식으로 남인, 서인과 친형 그리고 배다른 동생까지 전부 죽여버림...정통성이 약한 왕이 이렇게 피의 숙청을 하면 왕권을 잃을 수밖에 없답니다..정조도 항상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왕위에 올랐고 끝임없이 역모고변이 있었지만, 피의 숙청을 거의 하지 않았답니다.
최소한 정조처럼 신하를 다스렸다면 절대 쫓겨나지 않았음
@@버랑이 아니, 능양군세력은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광해임금님을 끌어내렸을 겁니다. 이미 중립외교할때부터 수구세력은 광해임금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상황이었음. 수구세력에 있어서 임금은 명나라 충성하는 푸들이어야 하는 데 광해임금님은 그게 안됐거든요?
@@gomanaru222 양어머니 인목대비유폐시킨것도 서인측에 명분을 제공한거고
깨어있는 군주라서 ㅁ사르후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 위로하라고 준 은자 다 쳐먹음?
광해군보다 인조가 쓰레기인건 후손들이 다 알지..인조 쓰레기가 삼전도의 굴욕은 자손 만대에 회자 대고 그럴건데..광해군은 너무 억울해 하지마소..~~광쌔군 폭정 역시 승자의 역사라 인정해주는 학자도 많이 없을거고..~~
폭정만 적당히 했어도......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광해군의폭정은 왜곡되었을거요! 역사는 승자의기록이니까!
허준 드라마의 광해군을보면~
@@주차돈 에효...조선은 기록의 나라입니다. 게다가, 그 당시의 다른 책들도 광해의 폭정을 고발하는 내용 뿐 제대로 국정 운영을 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근거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이런 생각 가진 게 문제죠. 이거야 말로 역사를 부정하는 거니 말입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 아닌가요?
역사는 승자의기록인데!
아직까지 유교근본주의나라 조선을 제대로 이해못하네요!
시발인조......대동법 시행한 광해왕 위대하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사람은 말년운이 좋아야하는데...
이세끼 광해놈 말년에 힐링했네 췟!
가진자들 기득권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고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백성을 전쟁의 고통에 보내 자들 인조는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당시 사대부는 역적의로 불리어야 하며 교육 시켜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결과를 알기 때문에 명과 청의 힘의 충돌에서 쉽게 선택할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ㅡㅡㅡ지금 미국을 생각해 보면 ㅡㅡㅡ
지금 윤석열추대한거랑 어쩜그리 딱 상황이 맞는지
내가 이런 사람들 있어서 맨날 분주하네...광해군은 풍수쟁이 말 듣고 새로 만든 궁궐이 2개, 개축 보수한 궁궐이 8개입니다. 대원군 때, 궁궐 하나 때문에 나라 재정이 흔들려 당백전을 만드는 등의 일들이 벌어졌는데, 과연 광해군 때 백성들 삶은 어떠했을지...
왜 자꾸 역사 왜곡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지...친일사관이 광해성군론을 주장할 뿐, 광해군은 성군이 아니라 암군 입니다. 잡채 상서등 유명한 용어가 왜 그 왕이 나쁜 왕인지 보여주죠. 심지어, 대북파마저 광해군의 패악질에 등을 돌려 버립니다.
십여년간 역사 왜곡된 드라마 매체 등으로 자꾸 광해군을 성군으로 그리는 사람들 많습니다. 특히 사르후 전투에서 강홍립이 도원수를 맡은 게 통역관 경력이 아니라, 원래 도원수는 문관이 맡는 것 뿐이고, 정말 강홍립이 내통했다면, 사르후 전투에서 1만 5천 조선군 중에 8천명이 사망하는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할 이유도 없고, 청에서 풀려난 조선군이 수백 밖에 안되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겁니다.
광해는 암군입니다. 그가 제대로만 했다면, 중국의 교체기를 잘 타고 우리가 캐스팅 보드를 쥐었을지 모릅니다. 궁궐을 짓는다고 국방비까지 뺴돌리고, 게다가, 화약에 쓸 염초를 푸른 기와 굽는 데 쓴 게 바로 광해입니다. 매번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중립외교 운운하지 마시길...말 몇마디가 전부입니다. 중립은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겁니다. 만약 광해군 때 중립이라면, 구한말은 중립일까요? 결국 힘이 없어 끌려 다니는 건 중립이 아닌데도 많은 역사학자들은 잘못된 주장을 합니다. 진정한 중립외교는 스위스를 보면 됩니다. 나치가 준동하던 2차대전 때에 중립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힘 떄문입니다.
@@joesmithszczerbiak 지랄한다 ㅎㅎ 그렇다고 재명이를? 지금 나오는것만 봐도 지난 정권은 기본도 안됨.
@@joesmithszczerbiak 선거로 뽑았는데,무슨 추대? 지금이 왕조시대인가?
불쌍한 광해임금ㅠ 송나라 세뇌 무기 주자학에 미친 서인 노론 반역 도배들에게 조선의 실리•자주성과 함께 희생당한 사람
불쌍하지 않아 죄없는사람을 마구 죽였음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SWLee-dc9op 그 당시에는 어쩔수 없었음
킬방원이 세종대왕 만들라고 사돈댁 다 킬 했음
세종대왕 이 중전 을 얼마나 미안하고 사랑했었음
외척세력 없었음
@@SWLee-dc9op 이방원과 수양대군을 착각하는건가,,,,,,,,,,
내가 이러려고 왕이되었는지 자괴감 들겠다
그래도 임진왜란때 나가서싸운 왕이였는데 쿠테타로 한순간인생 망
내가 과거로 조선시대로 갈수있다면 인조반정부터 막아서 광해군을 계속 왕으로 유지시키고 싶다
왕이말만. 왕이지. 하나의직업같다. 내가과거로. 조선시대로. 갈수있다면. 왕이다면. 절대지존으로해서. 태종의뜻을. 이어. 외척들은. 다유배부터보낸다. 법으로만든다. 중전만남기고. 정치를잘하는. 왕은. 그대로봐야된지. 광해가. 뭘그리정치. 못햇나? 신하는. 아니. 내가유능한. 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ㆍ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ㆍㅇ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ㆍㅇㅇ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ㆍㅇㅇㆍ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군왕군왕ㅇ군왕군왕ㅇㅣㄴㄴㅣㆍㅇㅇㆍㆍ면. 신하는. 그냥형식이고. 모든걸내가. 결정하겟다. 애민주의로 철통같은법을. 만들필요성이있다. 그외. 신하는. 필적으로. 의견내놓게하고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성이름-f4e5m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오랑케한태 당한 치욕보단 나을듯
@@peterpen12 뭔소리를 하는 건지...그럼 나라가 망했는데...뭔 병자호한으로 오랑케에게 치욕을 안 당해?
차라리 처음부터 광해군이 왕권을 갖지 않았다면 우리가 제대로 토대를 다져 동아시아의 패권을 자질 수 있던 중요한 기회를 놓친 건데...
광해군이 궁궐 2채를 새로 짓고 8채를 증개축 보수를 했다는 얘기가 뭔지 모르겠냐? 흥선은 경복궁 중건 하나로도 나라가 휘청거렸다. 그런데, 2채나 새로 지었다. 게다가, 푸른 기와를 만든다고 그 비싼 화약의 재료인 염초를 마음대로 썼다.
게다가, 잡채 상서라 하여 왕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해오면 요직에 앉히는 말도 안되는 일을 했고, 그로 인해 정부 요직이 자격없는 사람에 의해 채워졌다.
그런데도 나라가 온전해 진다는 게 이상하지. 결극, 나라가 망조가 든 상태에서 인조에게 넘어 갔는데, 뭔 병자호란이 안 나? 졸라 무식한 소리를 하네.
위에 쓴 글 못 봤냐? 김개시나 광해군의 측근들이 배신을 했을까? 광해군을 지지하던 대북이 왜 등을 돌렸을까? 이미 정부가 결단 났다는 얘기야. 그러니, 아무리 반정 첩보가 들어오면 뭐 할까? 그걸 받쳐줄 사람들이 없는데...광해 혼자 있는데 대체 뭐가 이뤄진다는 얘긴데?
결국, 자격없는 왕이 들어서서 나라를 망쳤다는 얘기야. 알겠냐? 니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바로 확증편향이야. 그러니, 이런 판단이 되는거야.
광해군도 이런데, 과연 정치는 어떨까? 지금의 민주당 지지하는 니들의 생각도 똑같아. 결국, 광해군이랑 같이 쓰레기인데도 계속 좋다고 우기고 있지. 기초부터 전부 나쁜걸 인정해도 그래도 아니라는 괘변을 말하는 거랑 지금의 광해군 논리랑 다를 바가 없어.
@@성이름-f4e5m 그럼 님은 어캐 생각하심?? 광해 보다는 인조가 그래도 더 나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제가 당시 백성이었다면 광해군 비판? 정도는 했을지라도 백성들 생각 전혀 안하고 🐕 같은 사대주의, 의와 명분만 외치는 인조를 지지하지는 않았을듯...
조선시대 유배형의
역사 자료를 찾아보면
벼슬 관직에 있던 유배인이 유배형을
선고받으면 그 직급에
따라 유배길에 함께 동행하는
무관들역시 예우상 그 직급이
모두다 달랐고 죄인이라
하더라도 유배인이
자기보다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일경우 공손하게 예를
갖췃다고 나와있음
초반부에 폐위된 광해군의
등짝을 떠미는 무관의 장면은
고증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연출입니다
아닌데요... 광해군 시중들던 시녀들한테도 무시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카누-d8w 몰라서 그러는데요 그기록은 누가 한건가요?
맞습니다. 유배의 후반부라면 몰라도 초반에는 저랬을리 만무하죠. 후에는 영감소리들으면서 시녀한테도 무시당했다고 하더라구요
첨 글쓰신 분은 유배가는 길 무관들이 예우를 갖췄으므로 영상 속 등을 떠미는 식이 아니었으므로 고증이 잘못되었단 말씀이고..
답글에 쓰여있는 일 돌보는 노비들 얘기는 유배생활이 길어지니 버려진 왕 따위 우습게 보고 무시하고 자기멋대로 했을테죠..
댓글과 답글을 보니 서로 다른 시점과 상황을 가지고 이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seoul-countryman
정확한 지적
감사합니다 ^^
무덤을 좋은 곳으로 이장해서 편히 지낼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들이 없어
그나마 나서준 사람이있어서 남양주에 이장되어 있는데 그것도 영락교회묘지 올라가기전 우측 그늘아래에 묻혀있네요 차지철이도 그근처에 묻혀있고!
착한놈 나쁜놈 구분하여 생각하는 발상은 초등학생때 하던 습성인데 아직도 하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을줄이야..
인간 말종들만아요 ㅎ
영상 잘봤읍니다 우리삶을 뒤돌아보게 하는군요😊
선조나 인조 저 무능한 왕들이후 정권이 바꼈어야했음 아님 기사회생할수있는기회는 효종이 오래살어서
다시기틀을 세웠으면...
얼마나 왕놈들이 무능했으면 평타인 영.정조놈까지 대왕이라 부르더라
@@jaehoonha6
얼마나 역사 공부를 안했으면, 폐위된 왕들 빼고, 모든 왕들을 대왕으로 추존되는 것을 모르더냐
@@진리는나의빛-d6y 무식은 때려도 못 고치는 중병이지요
@@풍각쟁이-t6j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중병이지요.
@@진리는나의빛-d6y 무슨 모든 왕이 대왕이야,,,,,,니가 공부좀 해
무명의 배우가 비운의 왕 광해군역 연기 잘 하셨네
그러게요 ㅎㅎ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분이신데 유배 초창기의 아직 의지가 있을때와 막판까지 잘 연기를 하심
광해군은 너무나안타까운임금이엿다
뭐가 안타까워? ㅋ 폭군이였든데 말이지 ㅋㅋㅋ
응 광해군은 그냥 폭군이야 ㅋ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 무리한 토목 공사 ㅋㅋㅋ 그리고 무슨 외교왕? ㅋㅋㅋ
아무리 안타까워도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뺏기고 15살 나이에 죽임을 당한
6대왕 단종에게 비하겠습니까?
단종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황희경-z8j
응 광해군은 그냥 폭군 ㅋㅋㅋ
역사공부좀 제대로하고와라 정치력으로는 조선왕중 최악의 능력치인 암군of암군이구만. 명종중종보다 아래고 철종이랑 고르라고하면 철종이 더 나은 수준이였지
광해는 훌륭한 군주였다
외교왕
인목대비가 인정하고 자식으로 생각했더라면
영창도살고 광해가 효도했을걸
갓태어난 영창대군에게 왕을 만들고자했던 욕심이 되도 않게 인조를
탄생시켰으니
응 광해군은 그냥 폭군이야 ㅋ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 무리한 토목 공사 ㅋㅋㅋ 그리고 무슨 외교왕? ㅋㅋㅋ
뭔 광해가 명군 ㅋㅋㅋㅋ 세자 때나 좋았지 군주 땐 걍 폭군이었는디
@@청나라황제-q8r 연산군보단 덜했지
@@김성동-i8l
응 똑같다 ㅋ
아니지 연산군보다 사람들을 더 죽였을거야 ㅋ
봉산 옥사만해도 사람들을 열나게 죽였지 ㅋ
@@Silla_Gates5 광해가 폭군이어야 인조반정에 명분이 서니까 폭군으로 과장한거지. 조선 왕들의 잔혹함을 보면 광해는 양반아닌가. 이방원만 하더라도 대체 몇명을 죽인거야. 그런데 역사는 태종을 폭군으로 기록했나? 아니잖음.
광해군의 선견지명 '중립외교' 우리나라의 지형상 중립을 지키는게 가장 현명. 조선때나 지금이나 똑같음.
아닌데~
광해군의 중립외교론은 일제시대때
일본 사학자들에게서 만들어져서
친일 사학자의 거두,이병도의 '광해군의 대후금정책' 이라는 논문으로 완결시킴.
그걸 노무현 정권때 미국 - 중국 패권에 잘 써먹자는 분위기에 갑자기 광해군 이미지가 수식간에 바뀜.
조선왕조실록이나 여러 야사를 보면
'진짜 저게 중립외교랍시고 하는 액션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던데....
@@Mikoon3326 조선왕조 실록은 읽어 보았냐,,,,ㅋㅋ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고 왕으로 활약했다면 조선의 역사도 달라졌겠지... ㅜ
가장 불우한 우리나라 영운의 희생 역사
중앙로 국민은행앞과 인천문화당앞
광해군 푯말 있음.
임진왜란때 생사를 같이한 백성들이 광해군을 유배지로 보낸 인조를 봤다면 어땠을까?
이미 궁궐공사로 민심 잃어버린지 오래였음
광해군 유배가는데 백성들이 다 나와서 욕하고 조롱하고 손가락질 오지게 해댔는데
그게 광해군을 보던 당시 백성들의 민심이었음
아 죄송합니다 ^^제 글삭제 할께요
세자로서의 광해군은 높이 평가할만한데 왕으로선 폭군 맞음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라 일에 너무 고심하다가 역모의 조짐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네 부디 명복을 빕니다 광해대왕님
반정 당일 술먹고 놀다가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급보도 무시하다가 진압의 골든타임 놓치고 저항한번 못해보고
당했죠
광해군 궁녀랑 썸 타다가 궁녀 치마폭에서 ㅈ된 겁니다. 이게 정사에요
ㅋㅋㅋㅋㅋ 이런 인간들이 조선을 그리워 하는구나 노비 상것 주제에
후궁들이랑 술처먹다가 도망친건데 무스 개소리야
나라일에 고심하긴했지 ㅋㅋㅋㅋ 궁궐병 도져서 민가허물고 국방물자도 갈아마시면서 백성들 강제노동시켰지 ㅋㅋㅋㅋ
그러기에 리더를 잘 뽑아야 한다.
문재앙도 인,선조와 같은 넘~!!!
지금은 외교 강국.
굥 ㅋㅋㅋㅋㅋ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SUNFAMILY2000 호구 강국이지 ㅋㅋ
그냥 세종 이나 성종 시대에 촌부로 태어나
먹고 살만큼 농사지으며 오손도손 사는게 최고였을듯
내가 역사를 살펴보면서 느낀점이 있다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 인조반정은 결코 우연이 아님. 결국 앞에 원인이 있었는데 그 원인을 해결하거나 해소하지 못하고 가볍게 여기거나 어떠한 이유로 방치하면 이에 따른 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남.
광해군 말년이 이랬구나 아내와 자식 먼저 보내고 타들어가는 마음 억누르면서 이리 비참한 생이라니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광해군이 진짜 ㅡㅡ;;너무 안이하게 대신들을 너무 경계를안했으!!광해군이 인조보다 훨~~~괜찮은 군주인데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편에서 ~~
제발, 그 근거좀 들어볼래요? 어느 역사책이 광해를 성군이라고 그린답니까? 그냥 뇌피셜 할꺼면 역사는 왜 배울까요? 궁궐 2채 새로 만들고, 증개축 보수를 8채를 합니다. 1채도 힘들어서 흥선대원군 시절에 당백전 만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는 임진왜란 직후입니다. 이게 말이 될까요? 게다가, 임란 후 2년 때는 대기근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 뒤에 십여년 지난 조선에서 그런 짓을 하는데 백성의 삶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역사가 승자의 기록 운운하는 겁니까?
병자호란까지 보고 죽었는데 그 심정 어땟을까 ㄷㄷ
광해군께서 계속 왕이었다면 인조 삼전도 굴욕은 없었겠지.. 아ㅅㅂ 인조
그랬으면 조선이 사라졌겠죠...
@@JohnDoe-qe3fb 역사공부 좀 하시오. 광해군 중립외교도 모르고 ㅋㅋ
@@ddobro1242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했다는 것은 완전히 사기이고 거짓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못됩니다 사실은 명나라가 광해군이 세자책봉된 것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적자도 장자도 아닌 두번째 서자인 광해군이 세자가 된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은 그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명의 원병요청에 소극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ddobro1242멍청아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했다는 것은 완전히 사기이고 거짓말입니다
아아 광해여 광해여
광해와 연산군은 다른가요?.누가 더 나쁜가요?
둘다 똑같음. 차이라면 광해군은 노무현 좌파 정권이 신분세탁해줘서 모질이들이 억울하게 쫓겨난 왕으로 알고 있음
명분론을 앞세운 기득권층의 고집이 국가를 어떤 꼴로 만드는지 보여준 사례
이미 김개시등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dhb1101 역사책 제대로 보고 말하는 건지...광해군이 성군이라고 착각한다면 백과사전 확인하시길
@@kelsen1975 광해군이 성군은 아니라고 해도 당시 권신들이 벌인짓의 결과는 너무 한심할 지경 ㅉ
@@Hyuchan1002 뭔 소리를 하는지...당시 역사를 알고 하는건지...
임진왜란 1등 공신은 이순신, 2등 공신은 광해이거늘... 세상이 어찌....
임진왜란 승리의 1등공신은 명나라 군대였지요 이순신은 수군이라서 전체판세에 끼친 영향은 미미합니다 625때도 유엔군이 해상을 다 장악했지만 승패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통영-y9v 섬나라 일본인 납시었네,,,,ㅋㅋ
@@dalgug 중국 뙤늠이 납시었네
@@dalgug 중국 뙤늠이 납시었네
인조반정은 선조가 죽을때까지도
광해군을 세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란때문에 임시로 세자로 임명했으나 전란이 끝나자 선조와 서인세력들은 폐위 시킬 명분만 찾았다.
조선은 선조가 거의 말아 먹었다.
정치란...참 ~~우리의 지금 현실과 무엇이 다른가?
이 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
What is this tv series title???
선조가 진정으로 광해군을 인정했다면
정묘호란 병자호란같은거 생기지 않았을텐데
실록에 기록을 보아도
인조보단 광해가 임금 으로써의
자질은 더 뛰어났음
조선 건국이래 임금으로써
최대의 수모 ㆍ병자호란ㆍ
주역 인조.....
감탄사 리엑션은 옥의 티
실리외교로 나라을 구하려 하신 천제 광해군 ㅜㅜ
조선 임금 중에 가장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
그야 말로 하늘과 땅을 모두 경험한 인물
임진왜란 영웅 중 한사람인.광해군이 저리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다니...
광해군은 딱 임진왜란 떄만 잘했죠. 왕 되고는 개판칩니다.
그리 고생스런삶을 살다 가셨네요
당해도 싼거죠. 백성들을 좀 괴롭혔어야죠. 자꾸 광해 성군론이라는 친일사관에 빠진 분들 많은데, 광해는 암군입니다. 궁궐 신축2개 증개축보수를 8개를 합니다. 대동법을 막았던 이유도 세수 떄문입니다. 수도권에 한정되게 실시한 것도 선조 밑에서 대동법을 연구하던 체재공 등이 밀어 붙였기 떄문에 가능했습니다.
@@kelsen1975채제공은 영정조시대사람...
@@지나가던사람-g7m 제가 실수했네요. 이원익 김육이네요. 큰 실수를 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kelsen1975 광해군이 궁궐 복구 하지 않았으면 지금 서울의 궁궐 구경이나 했겠냐,,,,,,
@@dalgug 그 당시 수탈당한 백성 생각은 안하나? 그거 때문에 대동법 전국실시도 막은 게 바로 광해군이다.
이런 병신 같은 대답을 소신이랍시고 하니? 아님 웃으라고 하는 거냐? 생각하는 마인드는 딱 고삘 마인드네. 세상 다 뒤집어서 생각하는 그 마인드....이런 새끼가 성인이면 그게 진짜 코메디지.
항상 언제든지 어디서나 고위관직자들과 정치인들이 문제가 많다~!!!
선조, 인조는 왕 자격미달!!!
경제적 공동체, 묵시적 청탁이라는 발명까지 하여 판결하는 대한민국 법원
과거와 하나도 달라진게 없는,,,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임진왜란을 막고자 고군분투한 광해에게 아아..정말 일어나서는 안될일이 일어났으니..그로부터 400년후에 또 조선은 일본에 먹힌다..한심한 정치가들 땀시
그쪽처럼 댓글에 온통 광해 후빨러 들이 설치는데 광해군은 요즘 미디어에서 성군처럼 미화 되는데 사실 광해군 이 양반은 내치에선 아주 암군에 가까울 정도로 빵점임. 광해군은 중증 궁궐병에 걸려서 나라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지가 살아야할 궁궐 짓는다고 얼마없던 백성들의 민가를 헐고 그 백성들을 줘어짜서 궁궐을 만드는데 세금낭비함.
그것도 모자라서 본인이 직접 매관매직을 벌여서 궁궐을 만들 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그 궁궐에 청기와를 사용함. 이게 왜 문제가 되냐고 생각하겠지만 청기와를 만드는데 사용된 유약의 재료가 바로 화약을 만드는데 사용된 염초였음. 그것도 명나라가 공짜로 준 염초를 화약도 아닌 지 궁궐 짓는데 탕진함. 그 결과 화약이 부족해서 결국 병자호란때 화약부족 으로 병사들이 대포와 총도 쏘지도 못함.
광해군의 궁궐병이 얼마나 유명했는지 후금의 청태조 누르하치가 조선의 사신에게 그대의 임금이 궁궐을 계속 짓고 있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볼 정도임. 말이 그렇지 사실상 나라망신 이였음. 그리고 당시 광해군은 오성과 한음 으로 유명한 이덕형과 이항복, 그리고 오리대감 이원익 같은 충신들과 영창대군과 능창군 같은 왕족들을(인간말종 임해군과 순화군 제외) 무슨 스탈린 마냥 죄다 숙청하는데 이게 인조반정의 불씨임. 광해군이 능양군, 즉 인조의 동생인 능창군을 모함으로 죽이면서 능양군이 각성하고 광해군 몰아내려고 반정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을 제공함. 그리고 그 빈 자리를 이이첨 같은 북인들이 차지하는데 문제는 북인 이놈들도 서인급 부패 정치집단에 서인들 못지않게 명나라 후빨하는 친명파임. 그 결과 우리한테 실리외교를 펼쳤다고 칭송받는 광해군과 달리 조정에는 온통 친명파들이 득세하게 되고 그 결과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부름. 더 충격인 사실은 광해군이 김새기 라는 상궁과 무당 복동이, 그리고 승려 성지에게 의존하며 그들이 전횡을 일쌈는걸 방치 했다는 거임.(이거 어디서 많이 본거같다?!) 거기다 자신에게 잡채와 김치, 심지어 산삼등을 바친 사람들에게 벼슬을 줌.(....)
그러면서도 자신을 끝까지 옹호하던 남인과 서인측 인사(예: 허균과 이항복)들을 잔인하게 배척하면서 자기 주변을 죄다 적대 세력으로 만들어 버림.
그러다가 인조반정때 김자점과 내통한 김개시한테 통수 당하고 복동이도 김개시와 같이 참형에 당하고 성지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추가로 실리외교와 같이 광해군의 업적이라고 칭송받는 대동법 반대도, 대동법 전국 환산도 막은 사람이 바로 광해군 본인임. 대동법 승인도 신하들이 독촉해서 겨우 통과했고 강원도에 확산 하자는 신하들의 요구에도 광해는 거부함. 광해군이 성군이라면 왜 기득권 눈치 보면서 경기도 지역에만 대동법을 실행함?! 결국 광해군도 별반 다를게 없었음. 광해군이 얼마나 내치를 못했으면 유배를 갈때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며 조롱함. “돈아비야, 돈아비야 그 많은 돈 두고 어디 가느냐?” 말 그대로 광해군의 매관매직과 축재, 그리고 과도한 궁궐 건설를 비꼰 아주 어울린 노래 였으며 제주도에서 그를 구박하는 계집종에게 질책을 하자 그 계집종 왈 “영감이 이전에 임금 자리에 있을 때 무엇이 부족해 아랫사람들에게 음식까지 부탁해 김치판서, 잡채참판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게 했소? 영감이 임금의 자리를 잃은 건 자업자득이지만 우리는 무슨 죄로 이 가시덩굴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단 말이오?” 라고 팩폭에 가까운 비판을 하자 광해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이 굳게 닫으며 침묵을 했다.
결론: 광해군은 선조와 인조에 가려져 마치 민자영 처럼 성군 마냥 과대포장된 암군임.
왕이무능하면
죽어서도 평생욕처먹는
인조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
11년동안 내 맴과 같네요. ㅎㅎ ㅎㅎ
인조 무덤 파내서 해골 부셔버리고 그 자리에 광해군 뼈 옮겨 묻고 거대하게 지어줘라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조선의 왕권은 선조에서 부터 무너졌고 광해에서 끝난듯...영조,정조는 그것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일뿐 결말을 보면 알 수 있다.
광해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네..
광해군에게 연민을 품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광해는 연산 같이 나라 망친 암군인데 말입니다. 역사적 근거도 없으면서 승자의 기록 운운하시려면 그만두시고 말입니다. 그 당시 광해군을 성군으로 그린 문헌은 단 한개도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세자에 올랐고 임란 당시 분조를 아끌며 전국을 다니며 국난극복를 위하여 큰 일을 하였은데 ...
안타깝다. 선조가 노년에 어린 중전을 들인 것이 불행의 씨앗이다
근데 저같애도 어린여자 들이겠어요. 수컷이잖아요.
광해대왕으로 명하노라
성군을 폭군으로 만든 역사쿠데타….
또 또 드라마보고 난리친다
궁궐병 걸린 궁궐맨을 어떻게 성군이라고 합니까
대동법 시행했던 유일한 군주… 부자증세로 부국강병하려니 기득권들이 끌어내린것
@@edwardkim1652 팩트: 광해는 대동법 시행안하려했다가 밑에 신하들이 하도 하자하자 밀어붙여서
어쩔수없이 경기도에만 겨우 시행한것.
증세는했지 전후 죽어나가던 백성들 마른수건 쥐어짜듯이 아주 쥐어짜냈으니 ㅎㅎ
@@edwardkim1652미루고 미룬게 광해군 아닌감?ㅋ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지저분하고 더러은 것이다
당시에는 광해군이 불쌍해 보였겠지만 대대손손 영원히 욕을먹을 인조가 가장 불쌍하다.
광해군 폐위안됐으면,병자호란도 없었을듯
ㄴㄴ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혐오한 홍타이치가 집권해서 광해가 정묘호란은 없었을 지언정 병자호란을 막지못함.
@@이동연-c6d 그래도 삼전도의 굴욕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꺼라 확신합니다
@@Peter-ij5wu ㄴㄴ 오히려 광해가 인조 대신에 삼전도의 굴욕을 받아야 했음.
찌질이 인조와 반정 사대부가 광해가 이룬 균형외교의 틀을 깨트린 결과는 참혹했죠. 한마디로 편향된 외교로 대가리 처박을 짓을 자초한거임.
@@솔매-k2w 글쎄?? 저때 후금은 혐한 성향을 띈 홍타이치가 집권을 했는데 광해가 계속 집권을 해도 전쟁이 안 일어났을까?? 오죽하면 광해가 반 홍타이치 세력과 접촉을 시도하려고 할 정도임.
단언컨데 광해군이 군주로 계속있었으면,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다.(사대부가 명나라를 섬겼기에 병자호란이 일어난거다)
인조나 선조나 흥선대원군이나 이런 족속들이 한국에 있었던게 한국으로써는 대형 악재였다
역사공부 하세요. 흥선 대원군 아니었음 강화도령 철종이 마지막 임금이었음. 쇄국 정책이란 것도 흔히 무식하게들 아는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따위가 아니었고.
흥선대원군 이전에 조선이 너무 개판이었음...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외세가 들어오면 더 혼란함이 있을거 같아 개방을 막고 자기가 직접 조선을 바꿀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오랫동안 개판이었던 조선을 바꾸기엔 쉽지 않았죠. 그래서 흥선대원군 시절이 제일 부패가 없던 시절이라고 할만큼 노력은 했으나 너무 늦은거였죠.
우리나라 극우가 문제인데 ㅋㅋ 우리나라 극우는 이상하게 조선시대부터 명나라 만세->미국.일본 만세로 이어졌지. 나라 망하던 말던 돈 벌고 권력 유지에만 몰두함. 국방은 강국에 기댈려하고 ㅉㅉ
@@sayrt177 격하게 공감합니다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조나 선조가 제일 불쌍한 왕이죠. 지금도 역사왜곡에 시달리니 말입니다.
인조가 왕이되고 오랑캐한테 머리 조아린거 볼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노 인조나 선조나 비슷한듯
광해군이 성공했으려면 이이첨 이나 유희분같은 썩은간신배들을 멀리했어야죠
아무리 그래도 전직 임금이 었는데 '어서 들어가시오' 하면서 밀어버린다고? ㅎㅎㅎ
아무리 죄인신분이었다고 해도 왕이었는데...혹시라도 복권이라도 되는 날에는 그렇게 대했던 사람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상황이 될텐데...저렇게 함부로?
광해군 부부 서로 애틋하게 표현했네요.. 실제로 폐비 유씨도 중전시절 광해군 편이 아니었다던데.. 철저히 외로운 왕 광해군... 오죽하면 유언도 엄마 곁에 묻어달라고...
광해군이던 어떤왕이든 명에 사대를 안하는 왕이었으면 그 잘나신 사대부가 끌어 내렸을거임. 임진왜란 그 많은 백성이 고통을 받았어도 결국엔 사대부들 지 밥그릇 챙기다가 또 터지고..저 때는 그냥 두번째 이방원 캐릭터 나와서 다 갈아 쳤어야...
인조보다도 오래산 광해군은 자기관리를 잘 했던듯^^
인조가 더 오래살았는데;;
광쌔군의슬픈역사네요ᆢ
단종 이후로 젤 불쌍한 임금. 광해..,....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허리가 아프면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계속해 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허리가 아픈 문제가 생기면 흔히들 불행한 일인 것으로 생각하고,문제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무척 부러워합니다. 걱정스러운 문제없이 지내는 것이 인생의 최고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문제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에서 나의 생명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야말로 나를 키워주는 고마운 재료입니다.
이렇게 고마운 것이 허리 병의 문제이건만 ,문제를 싫어하는 데에는 사람마다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귀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허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머리를 쓰든 몸을 움직이든 여하간 나의 노력이 필요한 것인데, 그 노력이 싫다는 생각에서 문제를 귀찮게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성장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무런 문제없이, 따라서 아무런 노력 없이 세상을 살아가면 그 인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생명의 힘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활력을 키웁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귀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기에게 닥친 문제에 해결책이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허리 통증에 당면하면 사람들은 그 문제의 크기와 자신의 능력을 비교합니다. 허리 통증의 문제의 크기가 자기의 능력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이 되므로, 그 문제해결에- 손을 대기는커녕 우선 공포심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공포심은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그 문제에 압도당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허리 병의 문제해결의 방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를 싫어합니다.
저는 무지와 저잣거리의 뜬 소문을 맹신한 결과 허리디스크가 87%가 파괴되어 없어지고, 척추전방전위로 허리뼈가 앞으로 13mm가 어긋나 있고, 극심한 척추분리증.협착증이 있고, 평행봉을 조급하게 하다가 떨어져 흉추 11번이 압박골절로 30%가 손상되었습니다.허리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몰라 항상 불안하였습니다.
허리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알아서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일부러 역도를 심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허리 2번의 20%를 골절시키고 오직 운동으로 극복하고 70이 넘은 나이에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하고 역도를 하며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나 허리를 부러뜨리고 운동으로 다시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먼저 했을 것입니다. 실험은 위험하고 두렵기 때문에 저와 같이 힘 없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허리 병은 이름이 무엇이건 운동 부족 때문입니다. 허리 병을 스스로 해결 못할 사람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일부러 허리를 골절시켜 운동으로 효과를 증명하였습니다.
지금은 역도를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70이 넘은 나이에 역도를 배워 허리를 단련시킨 것은 큰 행운이며, 허리 통증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재료였습니다.
다른 질병도 우리몸이 70프로가 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응용한다면, 자신에게 닥친 질병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70이 넘은 나이에 허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다시 운동으로 극복해서 역도를 할 수 있듯이 말 입니다,
2021.7
사람은 왜 목,허리,무릎이 아플까?
저자 법무사 이 희 숙(남)
010-5250-4802(무료) 서초동
세조 선조 인조는 조선역사에
패를 끼친 임금들
역사 바로잡기운동
광해군을 임금 을 햇으면 좋겟습니다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위협적인 사람이었으면 정변직후에 즉시 죽였겠지 18년동안 살려놨으면 별 위협이 안된 사람이었음이 뻔하고 뻘짓도 너무 많이함
나도 강화도로 군대 유배되었는데…강화는 유배의 성지구나
왜 순간 웃음이 ㅋ
군대를 유배지로 비유
@@최고요-c8h 그러게요 ㅋㅋㅋ 그냥 “감옥”인데
광해군 몇살에 죽음으로 갔는지요
1641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송명진-h9r그런데 왜 광해군 죽이지 않고 유배보내는이유가 뭔가요?
그이유는 광해군의 업적 때문입니다 임진왜란때 백성들을 돌보아줄뿐만 아니라 동의보감을 편찬했었지요 명과 청나라의 중립외교에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보관을 위해 사고을 정비했던점이 인정되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슬프다 ㅜㅠ
김개시등 측근이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왕을 지지하던 대북파도 돌아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데, 반정을 함부로 하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라를 개판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측근과 지지세력에게 외면 당한 왕이 과연 제대로 국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궁궐 2채를 새로 만들고, 8채를 증개축 보수하면 나라가 결단 납니다. 대동법도 그렇게 막았던 이유가 제대로 세수를 못 걷기 떄문입니다. 그는 오직 궁궐 짓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잡채상서등 인재발탁도 개판으로 해버립니다.
사르후 전투도 청과 결탁한 게 아니고 강홍립은 도원수가 된 게, 그가 통역관이라 청와 결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관이라 도원수 자리에 올른 겁니다. 만약 결탁했다면 1만5천의 조선 병사 중에 8천이 사망하는 그런 일은 없겠죠. 게다가, 조선으로 돌아간 병사도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함부로 왕을 내리지 못 합니다. 결국 광해군이 연산군급의 국정농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광해성군론은 친일사관입니다. 이광조가 쓴 소설을 통해 이순신이 압슬형을 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와 함께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입니다. 그저 우리 국민이 자격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일제가 역사 왜곡을 합니다. 왜 최근에 드라마등에서 이런 역사 왜곡이 비일비재한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중립외교도 힘이 있어야 되는 일이죠. 광해군은 말만 했을 뿐 계속해서 끌려 다닙니다. 결국, 궁궐에 재원을 몰빵하고 국방비까지 궁궐 공사에 유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 시대가 중립외교라면 구한말도 중립인 겁니다. 둘다 그냥 힘없이 끌려 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병헌 광해가 광해군이에요?
그러게
있을때 잘하지...
명언임 ㅠㅠ
승자가 쓴 역사 인조가 승자기에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인조가 당한 수모들이 진실이라면 아마도..
광해군이 보기에는
조선이 너무 한심하고
썩은거지
인간같은게 하나 없었으니까
마지막에는 자포자기
조선은
광해군같은 현명한왕을 담을 그릇이 아니었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