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은 양반들은 유배를 가도 현지에서 첩거느리거나 관기와 사흘이 멀다하고 빠구리하고 노비부리고 가족들과 자주 편지연락하고 아주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잘먹고 잘살았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정약용) 다만 그 고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야하니까 답답하긴 했겠죠 경우에 따라 10~30년 가까이 유배를 산 경우도 있고 죽을때까지 유배를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조선은 지금의 북한 보다도 훨씬 더 지옥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래도 북한은 최소한의 법치의 형식이라도 갖추기라도 하지만 전형적인 고대노예제국가로서 서기50년 경의 중국후한보다도 훨씬 수준이 낮았던 조선은 법치의 법자도 모르고 야만적인 통치를 하던 나라였기에 노비도 마음대로 때려죽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않았고 노비세습제가 1885년까지 유지되었기에 (노비제도 자체가 폐지된 것은 1894년 노비가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은 1950년대) 후기가 되면 면세계층인 노비숫자가 차고 넘쳐서 재정이 파탄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징세수입으로 관료들의 봉급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덕분에 관료가 백성을 직접 등처먹는 현실인데 나중에는 등처먹을 백성이 없어서 같은 양반끼리 등처먹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1862년에 일어난 진주민란인데 퇴직한 전직 관료가 현직관료의 과도한 수탈을 참지 못하고 난을 주도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처럼 오랜시간이나 엄청먼 타지가는거 진짜 큰잘못이나 진짜 정권에 찍힌거 빼고는 거이다 멀리 교도소 가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근신정도라고 하던대;;;심지어 한양에서만 살짝 벛어난 자기 친가나 외가로 가서 한달정도 쉬다가 다시 복직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심지어 그냥 넘어가기 머하고 그렇다고 큰벌주기 머한 경우도 그냥 유배시키고 얼마후에 복직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다섯 형벌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 유형을 받은 죄인에게 장형을 먼저 집행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영상을 보면 원래 대명률 규정은 그런지 몰라도 조선에서는 유배형을 받은 죄인에게 따로 장형을 집행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관료 중에 유배형을 받는 사람이 많아서 대부분은 영상에 나온대로 귀양길에 올랐겠지만 조정에 찍혀서 삼엄한 감시하에 사극의 장면과 비슷하게 끌려가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선 자체가 멜서스트랩(땅은 그대로인데 인구는 증가해서 일할수록 더 가난해짐 이걸 타파하려면 무역이나 전쟁 공업인데 훈구파가 사림선비들한테 밀려나면서 무역 공업 다 x가 되버림) 이것때문에 월급 자체를 아전급한테는 10원도 돈이 없어서 못줌 한마디로 감시시키고 싶어도 돈도 밥도 못주니 감시 시킬수가 있나 ㅋㅋㅋ 사또들조차도 연봉잉 쌀한가마 땡이고 나머지는 수탈해서 먹든가 굶어죽던가 하는 쓰레기나라가
동서고금 막론하고 관직숫자는 정해져있고 하고싶어하는 사람은 많으니 같은 나라안에서도 끊임없이 지도층들은 암투를 벌이게 되어있다.역사속에 수많은 내전,모략,음모가 거의다 이런 이유에서 벌어지지.민주주의 국가에 선거가 단순히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수있어서 좋은 제도가 아니고 바로 이런 정해진 관직을 두고 벌이는 엘리트들에 투쟁이 쓸데없이 인재를 피로 소모시키는 결과를 보지않고 평화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엘리트중 15퍼센트만이 사형도 아닌 유배경험이 있다는건 그 시대치고 상당히 온건한거다.동시대 서양에선 귀족중 집안에 장남을 제외한 아들들은 성직에 몸을 담지않은한 거의다가 전쟁터에서 죽어나갔다.
22:13 저게 그렇게 별미라고 하지요.. 무슨 죄인이 먹는 밥처럼 묘사해놨는데 실제로 정말 맛있는 메뉴입니다. 당시의 전통식으로 담근 장 한종지는 지금하고는 비교할수없는 감칠맛이 있었어요. 간장게장 같은거 좋아하시는 분은 아마 전통식 장 한종지면 그냥 몇그릇 드실정도고. 덜 쓰른 보리밥도 가마솥으로 지은 밥이라서 지금 먹는 밥보다 훨씬 맛이 있습니다.
요즘으로 해석하면 정치적인 적을 제거하는 목적이었지요 당시에는 민주주의란게 없었으나 이긴자가 권력을 잡고 정치하려다 보니 반대파는 철저히 응징하는 방법의 하나이지요 그리 생각해 보면 유배자의 뼈아픈 맘이 어떻했을까요 세상이 민주주의로 잘 바꿨다, 다행중 다행이다. 하긴 지금도 정권을 잃은자에게는 무슨 죄를 물어서라도 처벌하고 있다. 사람사는 곳이란게 다 이런건가 인간이란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할수 없는것인가? 원래부터 인간은 파벌을 만들어야만 살수 있는 것인가
광해군은 유배생활 동안 아랫것들이 윗목을 차지하고 자신은 아랫목에서 지냈으며 나중엔 종들조차 어이 영감이라고 부르며 막 대했죠. 왕이었던 사람도 그러할진대 일반인이너 낮은 벼슬아치나 돈 없는 자들은 진짜 지옥같은 생활이었겠죠. 조선시대 통털어 수천명은 유배를 갔을텐데 그나마 유배지에서 대접받고 산 사람운 소수겠죠. 예를 들자면 선조대의 정철이나 순조대의 정약용 등 몃명이나 될까요.
말이 유배형이지.. 😅
압송관한테 뭔가를 많이주면
죄인이 아니라 그냥 귀빈급의
고객처럼 대접을 받아가면서
유배생활은 그냥 유람생활같이
되는 시스템이었군요 ~ 😁
참으로재미나네요.
타향만리서 구걸하면서 지내다니 참으로 고난으 세월이었군요.
지금의 정치인들도 싹다 조사해서 유배를 보내야 되는데~
싹다 유배를 보내면 그 자리는 누가 채우고요? 대안은 있으신지요?
굳이 보낼 필요가 뭐가있어요 투표로 싹 갈아 엎을수있는데
너도 분명 죄가 적지 않을 것이니
어서조사해 보자
@@STARGATE_SGC그만큼 정치인이나 고급관료 공무원들이 썩어 문들어젔다는 의미지요,,,
비리부패에 연관된 자들을 험한길만 골라서 6,000리, 걸어서. 선고받은 유배자 빈자리는 해당지역 선거에서 2등한 사람이 대타로 등판.
7:39 의금부 서리 최세홍이는 당시 알고 있었을까... 지가 몇 백년 후 다큐로 야리돌림 당할 거라는 걸 ㅋㅋ
😁
나도 진도섬에서 태어나고본니
고조할아버지 3형제가 각각 한명씩 다른섬에다 퍼놓아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것이 가장 힘든데 ㅎ
국왕 근처에 있다가 동냥이라니 ㅎㅎ
포르쉐타다 자전거도아닌 리어카 끄는거네 ㅎㅎ
전에 일등연예인이
순위가내려왔다고
고민고민하는게
이해할만해요
@@서성인-y1z 그거하고는 영 다른거죠 유배란 기한이 없다는 위 사례처럼 빽도 없으면 죽을때까지 유배라는 한마디로 반대로 권력을 잡고있는 집안에 하나 유배가면 그지역 유지들이 모셔가는
@@남케리안6
자살한연예인들
지금까지추모한다는
말을들어서 한자올렸어요
돈이 많은 양반들은 유배를 가도 현지에서 첩거느리거나 관기와 사흘이 멀다하고 빠구리하고 노비부리고 가족들과 자주 편지연락하고 아주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잘먹고 잘살았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정약용) 다만 그 고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야하니까 답답하긴 했겠죠 경우에 따라 10~30년 가까이 유배를 산 경우도 있고 죽을때까지 유배를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통영-y9v 정약용이란늠이 그런늠이었소 나쁜늠
우리나라에서 1리는 393미터 반올림해서 400미터입니다 삼천리는 1200킬로미터입니다..
저때도돈있는것들은 편해~~~~뿌리가 깊네
어색한 아ㅡㅡㅡ라는 놀라는 듯한 반응은 어찌 없앨 수 없나
제 말이 바로. 필요없는 반응을 넣어 좋은 다큐의 질을 떨어뜨리네요.
유배인들은 당대 최우수 엘리트들로서 수많은 유배가사를 남겼지요.
조선시대 벼슬아치 노릇도
못 해먹을짓
조선=북조선 똑같음.
한양외엔 다 유배지
평양외엔 다 수용소
후조선 김씨왕조
뇌절하네 유배형 당하면 기본적으로 활동 범위가 제한되는데 보부상은 양반이라서 자유롭게 조선 8도를 돌아다녔나 내가 살다살다 한양 외 유배지 논리는 처음 본다 ㄹㅇ 그랬으면 세금도 못 걷어서 나라 파산했다 그 논리면 전국에 교도소가 있는 미국도 수용소냐
조상을 모독하지 말거라. 광인 마적단과 조선을 비교하냐?
솔직히 말해서 조선은 지금의 북한 보다도 훨씬 더 지옥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래도 북한은 최소한의 법치의 형식이라도 갖추기라도 하지만
전형적인 고대노예제국가로서 서기50년 경의 중국후한보다도 훨씬 수준이 낮았던 조선은 법치의 법자도 모르고 야만적인 통치를 하던 나라였기에
노비도 마음대로 때려죽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않았고
노비세습제가 1885년까지 유지되었기에 (노비제도 자체가 폐지된 것은 1894년 노비가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은 1950년대)
후기가 되면 면세계층인 노비숫자가 차고 넘쳐서 재정이 파탄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징세수입으로 관료들의 봉급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덕분에 관료가 백성을 직접 등처먹는 현실인데 나중에는 등처먹을 백성이 없어서 같은 양반끼리 등처먹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1862년에 일어난 진주민란인데 퇴직한 전직 관료가 현직관료의 과도한 수탈을 참지 못하고 난을 주도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처럼 오랜시간이나 엄청먼 타지가는거 진짜 큰잘못이나 진짜 정권에 찍힌거 빼고는 거이다 멀리 교도소 가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근신정도라고 하던대;;;심지어 한양에서만 살짝 벛어난 자기 친가나 외가로 가서 한달정도 쉬다가 다시 복직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심지어 그냥 넘어가기 머하고 그렇다고 큰벌주기 머한 경우도 그냥 유배시키고 얼마후에 복직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압송관은 무슨죄고! ㅋㅋㅋ
삼천리 km 표기 잘못 되어 있네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있어야 편한건 똑같네
KBS 수준이 삼천리를 어처구니 없이 12000Km 라고? 10리가 4Km 인데. 3천리 = 1200Km
미친 기록 보통은 처참 했다 ! !
그래
유배보냈다가 복권시켜주면 충성이 하늘을 찌르니까....공산당법과 똑같음...
눈물난다
23년동안 유배지 생활이라..
소달구지 함거를 타는 경우는 처형장에 끌려갈때죠..... 유배는 말이나 도보로 갔다고 합니다...
자세히조사해서다시보고해라
잡범들은 가두었는데 그레도 오두막집이라도 그안에 살면서 기간을 보냈다는것은 엄청배려했다는거를 느낀다
도형의 도는 칼도 인가?
목에다 널판지 같은 것 쓰고 꼼짝 못하게 앉아 있도록 하는 형인 것 같습니다.
연기 쩐다
유배지는 지금 어느지역일까
성주라...경북 성주...
10리가 4Km이고, 천리는 400Km이니, 3천리는 12,000Km가 아니라, 1,200Km인 것임.
남북거리 3000리 1200키로 금수강산...
서울 부산 500키로
서울 개마고원 700키로 정도 될려나요.
관리하다가 왕 눈에 어긋나면 그냥 유배가는건데.. 어이쿠..
시간이 아깝지 않고 역사공부도 하네요
예나 지금이나ㅜ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다섯 형벌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 유형을 받은 죄인에게 장형을 먼저 집행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영상을 보면 원래 대명률 규정은 그런지 몰라도 조선에서는 유배형을 받은 죄인에게 따로 장형을 집행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관료 중에 유배형을 받는 사람이 많아서 대부분은 영상에 나온대로 귀양길에 올랐겠지만 조정에 찍혀서 삼엄한 감시하에 사극의 장면과 비슷하게 끌려가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선 자체가 멜서스트랩(땅은 그대로인데 인구는 증가해서 일할수록 더 가난해짐 이걸 타파하려면 무역이나 전쟁 공업인데 훈구파가 사림선비들한테 밀려나면서 무역 공업 다 x가 되버림) 이것때문에 월급 자체를 아전급한테는 10원도 돈이 없어서 못줌 한마디로 감시시키고 싶어도 돈도 밥도 못주니 감시 시킬수가 있나 ㅋㅋㅋ 사또들조차도 연봉잉 쌀한가마 땡이고 나머지는 수탈해서 먹든가 굶어죽던가 하는 쓰레기나라가
권력있고 돈있으면 사약만 안내려오면...유배가 아니고 팔도 유람이네...호랑이만 안만나면...
👍
비리부패에 연관된 의원 & 고위 공직자들을 외진 산골 또는 작은섬으로 유배시키고 죽지 않을만큼 2틀에 한끼씩 먹게하고, 농사를 짓던 그물 던지고 물고기를 잡던, 인생 밑바닥을 맛보게 해야 합니다. 교도소 징역형보다 더 고되야 합니다.
옛날역사가 이지경이니 현대역사가개판이어꾼
그때는 포퓰리즘은 약했는데 지금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퓰리즘도가세 그래서 더욱위선적 변모
당신 맞춤법부터 개판이다
당시 무인도로 유배 보냈는데 사람 살기 좋아 무인도가 지금 유인도 되어 산다.
유배는 잠시 쉬었다 오라는 것이지 형벌도 이니다.
하루에 33키로 이동했네... 대략 걸어서 8시간
동서고금 막론하고 관직숫자는 정해져있고 하고싶어하는 사람은 많으니 같은 나라안에서도 끊임없이 지도층들은 암투를 벌이게 되어있다.역사속에 수많은 내전,모략,음모가 거의다 이런 이유에서 벌어지지.민주주의 국가에 선거가 단순히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수있어서 좋은 제도가 아니고 바로 이런 정해진 관직을 두고 벌이는 엘리트들에 투쟁이 쓸데없이 인재를 피로 소모시키는 결과를 보지않고 평화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엘리트중 15퍼센트만이 사형도 아닌 유배경험이 있다는건 그 시대치고 상당히 온건한거다.동시대 서양에선 귀족중 집안에 장남을 제외한 아들들은 성직에 몸을 담지않은한 거의다가 전쟁터에서 죽어나갔다.
맞는 말씀입니다.
22:13 저게 그렇게 별미라고 하지요.. 무슨 죄인이 먹는 밥처럼 묘사해놨는데 실제로 정말 맛있는 메뉴입니다.
당시의 전통식으로 담근 장 한종지는 지금하고는 비교할수없는 감칠맛이 있었어요.
간장게장 같은거 좋아하시는 분은 아마 전통식 장 한종지면 그냥 몇그릇 드실정도고.
덜 쓰른 보리밥도 가마솥으로 지은 밥이라서 지금 먹는 밥보다 훨씬 맛이 있습니다.
7:02 유배지는 성주라고 했는데 단자에는 상주라고 써있는...뭐가 맞는걸깡
2:25
문과급제 가 정치관여 당연하지
그러나 죽거나 유배 성상문 은
거혈형 으로 사라지다 다 역모
권력 이간질 정치는 지금 에도 마찬가지 형벌은 사라졌지만 ㅋㅋ
산에 들에 가면 일거리 없나 구걸을 하게 바다에 가서 고기라고 잡고 해물 조개라고 캐고
그거도 하던사람이나 하지 글만읽은 양반이 조개잡고
고기잡아 넌 무인도 보냄 할수 잇것나?
고기가 널 데리고 놀겟다
주로 섬이나 함경도의 산수갑산이 유명했고 고위직이나 왕족은 위리안치 를 시켰다
삼수갑산
우리 조상은 유배형 쳐맞고 정치 지겹다며 그냥 관직때려치고 유배지에 땅사고 가족데려와 눌러살면서 마음편하게 자손들도 열심히 많이 낳아서 지금은 집성촌됨ㅋㅋ
삼천리가 12000키로? 택도없는 말입니다. 750키로 정도라고 알고있습니다.
10리가 4킬로미터이니, 3000리는 1200킬로미터네요. 제목이 잘못됐음
시간탐험대 봐서 대충 아는 내용이네ㅋㅋ
젤 멀리 유배간 예)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들.... 즉 인조가 손자를 유배보낸건데, 제주도로 보내버려서 그중 둘은 풍토병으로 죽고 막내만 살았다고 합니다.
Dog' s training until who was a master.
비슷한 시기에 다른 나라는 어땠는지를 좀 따져보길.
수레에 실려가는 것은 사형수가 사형장에 끌려갈때 뿐이었습니다 ㅎㅎ
근데 젊은 유배인들은 잘해줘야 되지 않나요 나중에 복권될수도 있고
조선이나 북한이나 별 다를바없다
조선이 반도 이상이 안여을까 만주포함
ㅋㅋㅋ 첨 알았네.이럴줄 알았다.세상사 딸랑이지
유배 지금도 필요하다
3000리=3000x0.4km=1200km입니다
영상이 토막이라ㅠ
23년 ㅎㅎ
엘리트? 성리학 중국책 달달외면 다냐.
조선은 돈이면 다 되네
요즘으로 해석하면 정치적인 적을 제거하는 목적이었지요
당시에는 민주주의란게 없었으나 이긴자가 권력을 잡고 정치하려다 보니
반대파는 철저히 응징하는 방법의 하나이지요
그리 생각해 보면 유배자의 뼈아픈 맘이 어떻했을까요
세상이 민주주의로 잘 바꿨다, 다행중 다행이다.
하긴 지금도 정권을 잃은자에게는 무슨 죄를 물어서라도 처벌하고 있다.
사람사는 곳이란게 다 이런건가 인간이란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할수
없는것인가? 원래부터 인간은 파벌을 만들어야만 살수 있는 것인가
황당하고 하찮게 유배되었지. 줄타기에 실패해서 유배되고 뒷담화 하다가 쳐발리고
안경썼다고 쳐발리고 다양한 이유로 쳐발렸지.
좁은 국토 한반도를 제대로 써보지 못한 지금의 한국민들. 조선시대 국토는 지금 남한의 두배 이상입니다.
뇌물 이 오가는 세상, 예나 지금이나 돈 을 좋아 하는것, 요즈음 공무원, 검사, 판사, 관리 등 , 이것은 나라 가 망하는 지름길, 힘없는 일반 평민들 죽도록 고생, 아마 이것이 조선 의 멸망 의 원인중 하나일것
지들은 깨끗한지 뻑하면 참형하라 상소질 하더만
요즘 범죄자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함.. 운동도 시켜주고 기술도 가르켜주고 재워주고 밥도주고 하잖아
배타고 고기잡았으면 배부를테네
3천리가 어떻게 12000킬로야 1200킬로지
Km
중국의10분의일
조선의 10리 중국의100리
삼천리가 만이천키로??? 천이백키로 아닙니까???
역적행위는 어떻게 사형시켰을까?
중국같은 경우는 ㅈ존나 잔인하게 죽임
조선의 정치인 안식년 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선비들은 대부분 그 귀양시절에 저술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아무리 엘리트라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지요 법이 엄격한건 좋으면 좋았지 나쁠건 없죠
이런 사람들 중 무자비한 데다 변명능수 심지어
내로남불 많아 보여 악인도 대놓고 악하면 밟혀
선을 가장하며 특히 구세주인 양이 가장 위험하
며 정치권 당국자들에 그런 사람들이 넘쳐 나는
현재 북한이랑 똑같음..
정치투쟁 패배한거지 죄는 무슨
권력있고 재력있는 양반이나 가능한 유배네..
허구헌날 당쟁만 했으니...
15%면 생각보다 적네.
하긴 나머지는 서로 다 죽였으니...
유배가는길인데
웃고들 하고 있네 수준들 하고는
5:05 조선시대에 수레 없었어요. 이거 역사왜곡임 ㅋㅋ 조선말 박제가가 청나라 갔다와서 수레 도입하자고 상소까지 올렸는데 씹혔어요ㅋㅋ
상고사
15%밖에안되? 생각보다적은데
15% 확률로 유배라니 살벌하구먼
이름께나 있는 지식인들 중에서 ~
기왕 제작에 리얼리티를 위해 말도 조랑말로 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입니다.
❤❤❤뇌물 없인 하루 2끼도 못 먹고...100냥쯤 챙겨가야지❤❤❤
삼천리는1200킬로미터
그래서 전라남도 사람들이 똑똑한 갑네요
이렇게 유배가는 양반이 얼마나 되겠나
고문도 공개적으로 하는 조선에서, 자정도 유배길은 복받은거지
대부분은 인권도 없이 갔을텐데
광해군은 유배생활 동안 아랫것들이 윗목을 차지하고 자신은 아랫목에서 지냈으며 나중엔 종들조차 어이 영감이라고 부르며 막 대했죠. 왕이었던 사람도 그러할진대 일반인이너 낮은 벼슬아치나 돈 없는 자들은 진짜 지옥같은 생활이었겠죠. 조선시대 통털어 수천명은 유배를 갔을텐데 그나마 유배지에서 대접받고 산 사람운 소수겠죠. 예를 들자면 선조대의 정철이나 순조대의 정약용 등 몃명이나 될까요.
그래도 사형보단 훨 나음
간신배들부터유배보내야 언젠가는 간신배놈도 배신하게되지 ㅋㅋㅋ
가서 놀고 쉬었다 오는거지 뭘~~~
근데 23년이면. 넘길다.~~~
문제는 유배지로 보내주는 데 유배에 잇따라 바로 사약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아 유배는 죽음을 의미했다.
안죽고복권된 선수들역시많앗던게 팩트
머래 그건 극히 일부임
@@박형민-i3t 어허 이녀석이
긱키키키키키기키기ㅣ기끼키ㅣ4ㅣㅣㅣ긱1ㅣ끼긱1ㅣㅣㅣㅣㅣㅣ기기ㅣㄱ1ㅣㅣㅣㅣㅣ긱ㅋ키ㅣㄱㅋㄱ기ㅣ긲키ㅣㄱ4ㅣㅣㅣㅋ1ㅣ4ㅣ4기ㅣ기ㅣㅣ411ㄱ4ㅣ끼4기ㅣ기ㅣㅋ끼ㅣ기긱ㄱ키기기키긱ㄲㅋ기4
뭔 헛솔이냐 이건
유배가서 사약 받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중국 후한시대에는 수도 낙양에서 만삼천리 떨어진 교주 일남(현재 베트남 중부 후에/다낭 일대)까지도 유배를 갔는데, 거기 비하면 조선의 유배는 애들 장난이지 ㅋ
가난하고 정치적 뒷배가 없는 양반은 끔찍한 시련이었지만 부유하고 세력 있는 양반은 유람이었다. 간신 송강 정철을 보면 알 수 있음
삼천리 1,200km인데 12,000km리니
지금의반도사관시점에서는 이해할수가 없습니다.중국산동지방과 우리나라 지역명이 중첩되는부분을 예의주시할부분입니다...
서양말이 왜나와
북한이네...툭 하명 탄광 보내잖아
원문:정견망
귀양이야, 귀향이야? 누가 풀이한 말이야? 추석,설귀향은 벌받은 거야?
상소 올리면 유배보낸다니
중국가 북한 국경이 3천가 넘는다우
김정은왕국은 수용소가는데 가족
모두가
한국는 교도소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