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내가사랑한책들 50/28*]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헬렌 니어링 3-1 융은 이렇게 썼다. “두 개성의 만남은 두 화학물질의 결합과 같다. 반응이 이루어지면 둘은 변화한다." 우리도 그와 같았다. 스물여섯 살이던 헬렌 니어링은 스물한 살 위인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서로 존경하는 동반자로 반세기 동안 그들만의 조화로운 삶을 살았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추구하고 실천한 삶의 철학은 적게 갖되 충만하게 살고, 최대한 욕구를 줄이는 데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 것이었다. 모든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이 되어 살다가 준비해 온 죽음을 맞아들인 그들의 삶은 귀한 깨달음을 준다. 스코트는 100세 생일을 앞두고 더 이상 육체가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힘에 부침을 깨닫고 스스로 음식을 끊음으로써 헬렌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삶에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최후였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는 말을 화두처럼 삼으며 살아온 두 사람. 영혼의 동반자인 스코트가 세상을 떠나자 헬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로 살다간 스코트의 생각과 삶을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한다. 헬렌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이야기한다. "내 삶에서 태양은 오직 하나다." 그 태양이었던 스코트와의 첫 여행을 헬렌은 이렇게 기억한다. "우리는 채식주의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 사람 역시 도살한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그 사람은 자신이 평화주의자이고 사람, 새, 짐승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가장 끌린 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가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더라면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이 분명히 지적이고 생각이 깊으며, 유머가 있고 솔직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 호응했다. 그 사람은 참으로 분별 있고 확고하며, 균형 잡힌 훌륭한 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우리의 첫 여행에서 느꼈으며, 그 사람에게 끌렸다." 이상적인 삶은 어떤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그 이상이 관례에서 멀어질수록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당신의 이상이 정신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정직하고 진리에 따라 살고자 하면,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의식주마저 희생할 수 있다. 헬렌이 처음 스코트를 만났을 당시 그는 대학교수였다. 가르치는 일은 그에게 천직이었으며, 특히 사회문제에 있어 지식인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갖고 이에 대한 견해를 제기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반역적인 인물이었기에 결국 11년이나 몸담고있던 대학에서 해임당하고, 학계에서 추방당했으며, 종래엔 자신의 소신에 동의하지 않았던 가족들에게서도 떨어져 나와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에 대해 스코트는 말한다. "사람은 대중의 생활 습관, 도덕 기준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규범을 만들어 가야 하는가? 자신의 규범에 의해 살고 그것을 지키면서 그에 반대되는 사회에 대항하여 거슬러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무저항의 길을 따를 것인가? 나는 나에게 닥친 일들을 불행하게 여기지 않으며 조금의 후회도 없다." 그는 사회 경제적으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빈자였고 어떠한 지지 기반도 없는 불우한 지식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헬렌을 만나 그의 삶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으며, 비록 대학 강단에는 서지 못했지만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강연을 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다. 헬렌과 스코트는 나이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른 개성과 많은 상이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삶을 통해 그 모든 것들을 훌륭히 조율해 내었다. 차이는 조화로운 관계와 삶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융화되었으며,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었다. 서로를 존중하였고, 보완하였으며, 서로에게 최고의 벗이자 연인이며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헬렌은 이야기한다. "나는 늘 어떤 예술도 삶과 비교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는데, 스코트는 예술은 그 삶에 있다고 대답했다. 스코트는 내가 일찍이 만난 이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며 그 이상 좋은 동반자는 없다. 내 온갖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는 현명한 연장자와 사는 일은 끊임없는 즐거움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 내 개인의 성질과 습관을 참을성 있게 받아 주고 이해하는 선생을 가졌다." 헬렌은 스코트의 비서 역할을 하며 가난한 뉴욕 생활을 하다가,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사탕단풍농장을 일군다. 그들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들어간 것은 세상에서 달아나려거나 사회에 관심을 덜갖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 길은 생계를 꾸리면서도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하기 위한 그들만의 생활 방식을 찾으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그들은 땅과 그 위의 모든 존재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기 바랐으며, 검소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자립하는 삶을 살고자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이마에 땀을 흘려 생계를 꾸리고, 고용주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먹을 양식을 기르고, 살집을 지으며, 필요한 나무를 베고, 자신의 생활 수단을 제 손으로 마련하였다. 또한 필요 이상의 돈을 벌지 않고, 물건을 소유하지 않으며, 남는 시간에는 글을 읽고 연구하고 대화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여행을 하는 등 여가 생활을 즐겼다. 헬렌은 말한다. 우리는 조화로운 우리 생활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모범이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그릴 수 있는 가장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든 훌륭한 진취적인 정신과 함께 앞서 가는 삶의 물결에 합류하는 데 기쁜 책임감을 느꼈다. 이것은 긍정하고 기여하는 삶이며, 모든 행위와 나날의 삶에 목적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최선의 삶이란 어떤 주어진 여건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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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내가사랑한책들 50/28*]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헬렌 니어링
3-1
융은 이렇게 썼다.
“두 개성의 만남은 두 화학물질의 결합과 같다. 반응이 이루어지면 둘은 변화한다."
우리도 그와 같았다.
스물여섯 살이던 헬렌 니어링은 스물한 살 위인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서로 존경하는 동반자로 반세기 동안 그들만의 조화로운 삶을 살았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추구하고 실천한 삶의 철학은 적게 갖되 충만하게 살고, 최대한 욕구를 줄이는 데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 것이었다. 모든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이 되어 살다가 준비해 온 죽음을 맞아들인 그들의 삶은 귀한 깨달음을 준다.
스코트는 100세 생일을 앞두고 더 이상 육체가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힘에 부침을 깨닫고 스스로 음식을 끊음으로써 헬렌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삶에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최후였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는 말을 화두처럼 삼으며 살아온 두 사람. 영혼의 동반자인 스코트가 세상을 떠나자 헬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로 살다간 스코트의 생각과 삶을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한다.
헬렌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이야기한다.
"내 삶에서 태양은 오직 하나다."
그 태양이었던 스코트와의 첫 여행을 헬렌은 이렇게 기억한다.
"우리는 채식주의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 사람 역시 도살한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그 사람은 자신이 평화주의자이고 사람, 새, 짐승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가장 끌린 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가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더라면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이 분명히 지적이고 생각이 깊으며, 유머가 있고 솔직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 호응했다. 그 사람은 참으로 분별 있고 확고하며, 균형 잡힌 훌륭한 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우리의 첫 여행에서 느꼈으며, 그 사람에게 끌렸다."
이상적인 삶은 어떤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그 이상이 관례에서 멀어질수록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당신의 이상이 정신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정직하고 진리에 따라 살고자 하면,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의식주마저 희생할 수 있다.
헬렌이 처음 스코트를 만났을 당시 그는 대학교수였다. 가르치는 일은 그에게 천직이었으며, 특히 사회문제에 있어 지식인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갖고 이에 대한 견해를 제기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반역적인 인물이었기에 결국 11년이나 몸담고있던 대학에서 해임당하고, 학계에서 추방당했으며, 종래엔 자신의 소신에 동의하지 않았던 가족들에게서도 떨어져 나와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에 대해 스코트는 말한다.
"사람은 대중의 생활 습관, 도덕 기준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규범을 만들어 가야 하는가? 자신의 규범에 의해 살고 그것을 지키면서 그에 반대되는 사회에 대항하여 거슬러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무저항의 길을 따를 것인가? 나는 나에게 닥친 일들을 불행하게 여기지 않으며 조금의 후회도 없다."
그는 사회 경제적으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빈자였고 어떠한 지지 기반도 없는 불우한 지식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헬렌을 만나 그의 삶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으며, 비록 대학 강단에는 서지 못했지만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강연을 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다.
헬렌과 스코트는 나이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른 개성과 많은 상이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삶을 통해 그 모든 것들을 훌륭히 조율해 내었다. 차이는 조화로운 관계와 삶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융화되었으며,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었다. 서로를 존중하였고, 보완하였으며, 서로에게 최고의 벗이자 연인이며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헬렌은 이야기한다.
"나는 늘 어떤 예술도 삶과 비교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는데, 스코트는 예술은 그 삶에 있다고 대답했다. 스코트는 내가 일찍이
만난 이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며 그 이상 좋은 동반자는 없다. 내 온갖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는 현명한 연장자와 사는 일은 끊임없는 즐거움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 내 개인의 성질과 습관을 참을성 있게 받아 주고 이해하는 선생을 가졌다."
헬렌은 스코트의 비서 역할을 하며 가난한 뉴욕 생활을 하다가,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사탕단풍농장을 일군다. 그들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들어간 것은 세상에서 달아나려거나 사회에 관심을 덜갖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 길은 생계를 꾸리면서도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하기 위한 그들만의 생활 방식을 찾으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그들은 땅과 그 위의 모든 존재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기 바랐으며, 검소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자립하는 삶을 살고자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이마에 땀을 흘려 생계를 꾸리고, 고용주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먹을 양식을 기르고, 살집을 지으며, 필요한 나무를 베고, 자신의 생활 수단을 제 손으로 마련하였다. 또한 필요 이상의 돈을 벌지 않고, 물건을 소유하지 않으며, 남는 시간에는 글을 읽고 연구하고 대화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여행을 하는 등 여가 생활을 즐겼다. 헬렌은 말한다.
우리는 조화로운 우리 생활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모범이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그릴 수 있는 가장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든 훌륭한 진취적인 정신과 함께 앞서 가는 삶의 물결에 합류하는 데 기쁜 책임감을 느꼈다. 이것은 긍정하고 기여하는 삶이며, 모든 행위와 나날의 삶에 목적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최선의 삶이란 어떤 주어진 여건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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