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지만, 막상 조선에 계속 있었다면... 저게 온전하게 제자리에 남아있었을까 싶은게 문제임.. 돈이 궁해서 돈받고 판 것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 혹은 숱한 침략으로 온전히 살아남았을지 알수도 없고. 되려 행방도 묘연해 질수도 있음.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가 많지만.. 그 상황에서도 저들이 대단한 부분은 그만큼 대대로 보존도 잘하고 있고, 심지어 특정 지역에 자손들은 조상계보까지 고대로 다 가지고 있고, 후손들이 아직도 그 고을에서 잘 살고있고 흔적도 많고,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 문화와 핏줄을 잊지않고 살고 있다는 거... 만약 한국이었음 저런 거 대대로 잇지도 않고 존재할지도 모르겠음.. 그게 통탄한 거고.. 되려 일본은 저런 쪽에서는 대단한 거 같음.
1945년이후로 일본이 한국에 한 만행들 1.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원조 1위 미국 2위 일본 2. 구로공단 초기 자본금과 기술력의 70%가 일본에서 옴 3. 1960년대 개 가난해서 굶어 죽는 한국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일본 인스턴트 라면 사장이 라면 제조 기계값만 받고 기술전수비용과 로열티 무료 한국에 라면 공급할 수 있게 도와줌 4. 1960년대 한국이 개 가난해서 박정희가 철공업으로 국가 일으키고 싶다고 하니까 박태준과 일본제철기업 협회 회장 만나게 해줌 그 회장이 빈곤한 한국에 연민을 느껴서 철강 기술 전수해주고 철강 장비 판매해줌. 한국도 최근에는 후진국 지원을 많이하지만 기술은 절대 안주는거 다 알고 있을거야. 그리고 그 기술 없으면 진짜 아무것도 못해 일인당 gdp가 8800달러인 태국이 지하철을 뚫기 위해서 지금도 일본 기업을 부른다는건 말 다한거지 한국은 지하철 뚫는 기술을 어디서 얻었을까? 한국이 얻어 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것들이 사실은 자유주의 동맹하에서 미국과 일본이 지불해준거야. 1962년 한국의 빈곤율이 40%고 실업율이 38%이고 가계 저축율이 -4%인 곳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어
임란 조선이 자처함.세계 최초 은제련기술을 발명한 양인.지들집권당때일 아니라 왜인전수한 양반 은은 그시대 세계 화폐라 큰 부자된 니뽕은 조총을 사서 조선 침략 끌고간 도공들이 청화백자를 만들어 니뽕은 유럽과우역으로 또벼락부자되어 한반도 강탈 우리조상이 나라까지세워 줬고 문화는 거의 건너간 도래인것 사용.문자도 신라것임 우린 다잊고 역수입중 한반도에서 쫓겨난 도래인들이 섬 원주민 믹서가 오늘날 니뽕인인데 중요자리차지는도래인 인구의 대부분 차지도 도래인들이라 함!!!
@@sungminkim6309 같은 노예라도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문화가 통하는게 편하겠냐,아무것도 안통하는게 편하겠냐? 안통하면 그만큼 더 구박 받고 힘든거지,생각 좀 해라! 평생 단무지나,피클만 먹고 살수 있겠냐? 배추김치,총각 김치,깍두기,김치 찌개 먹고 사는게 낫지 않겠냐? 그리고,천민이 양반 되기도 하고 양반이 천민이 되기도 하는것이 세상 사는 이치야,이 양반아~
There is the CC on the bottom right side of the screen which give you the Korean subtitle. Netflix Korean movies, you do have the choices to watch it in Korean, English, and others with choices of your subtitle in other languages. It is also located at the bottom right side of the screen. Netflix movie "Mr. Sunshine" is about History of the Japan occupancy of the Korean during early 1900.
심지어 단단한 두부는 국내에 있긴 있어도, 저런식으로 만든 볼 형태의 단단한 두부는 한국에도 없는 거 같은데 ㅋㅋ 저걸 포장지에 어디서 부터 유래했다고 그려놓고 상품화 잘해서 아직도 팔고 있다는 자체가 ㅋㅋ 걍 한국에선 볼수가 없는 장면임.. 저런 것만 봐도 마음은 아프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우리 문화재가 일본에 있었기에 아직도 보존도 대대로 잘 되고 있는 거 같음.. 우리는 돈이 궁해 돈 받고 판 것도 많고, 숱한 침략으로 인해 소실이나 행방이 묘연해지는 경우도 많았을 거 기에.. 옛 우리의 문화재는 되려 북한, 중국이나 일본에서 더 진하게 알아볼 수가 있는 거 같아서 씁쓸하면서도, 조선에 없었기에 저런 문화재가 아직도 건재히 존재하는 거 같음...
좋은방송 잘 보고 있어요~ 독도문제 동북공정등 워낙 역사왜곡이 심한 세상에 살다보니 이웃에 믿을만한나라 없는 세상이 되었네요. 추가로 일본과 중국을 비교해서 같이 다루는 방송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의 만행공부도 중요하지만 시기상으로 지금 당장 요소수로 사드로 일종의 인구(비율,댓글,중국송금액1인당외노자평균3배등..)침략 일종의 영토침략(제주도,대림동등..부동산가격교란에일조함...)등이 어느정도인지 우리를 겁박하는 중국의 만행공부도 절실합니다. 1,850여 품목이 중국에 종속된 산업가치사슬입니다 요소수나 사드문제는 그냥 조그만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국가 사활이 걸린 중국과의 가치사슬문제를 다루어 주세요 방심하면 또 당합니다. 병자호란~ 수십만명 끌고갔지요 추가로 국내외의 다양한 시각도 궁금하고 현실대책이 철실합니다
조선인 포로 전부를 대우해준 건 아니었습니다. 우선 포로 중 일부만이 기술자로 이루어졌는데, 나머지 대다수는 일반적인 농민이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에 가서 농노가 됩니다. 그러나 일본의 악명높은 세율(50~70%) 때문에 노예로 전락해 팔려 나가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기술자들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 않았다면,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일부는 밥을 주지 않아 굶어죽기도....
귀국독촉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을 지 생각해봐라. 일반 농민들한테 까지 그렇게 할 수 있었겠나. 그나마 기술자들한테나 독촉을 한거지. 그런데 그런 기술자들은 위에서 말한대로 후한 대접을 받고 이미 십 수 년의 기간에 걸쳐 자리를 잡아 적응했으니 대부분이 귀국을 고사한 거지.
그건 좀 이상하네요. 일본에서는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으며, 기존의 농민의 잡역을 폐지하고 계약에 의한 봉공제도를 도입하는 등 노동에 관한 시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와 마찬가지로 '계약에 의한 노동'입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노예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란 때 조선의 기술자는 대부분 천인 혹은 노비들이라서 일본에 끌려가서 기술자 대우받는게 훨씬 명예로운 대접이었음 훗날에 양반은 많이 조선에 돌아왔지만 기술자는 거의 안돌아와서 임란 후에 조선의 모든 산업기반이 파멸적으로 붕괴되었다는 걸 임란 전후의 무덤 부장품을 보면 알수 있다 ....
일본과 우리의 차이를 만든건 태도에 있다고 본다. 조선은 중국이 세상의 전부인줄 믿고 자신들보다 우월한 서양인이나 주변민족들을 오랑캐로 폄하하는 오만한 태도를 견지했고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 단점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낮추며 비록 그들도 서양인들을 경멸하기는 했지만 열린태도로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며 해외로 인재들을 꾸준히 보내며 힘을 축척했다. 이것이 동북아에서 중국이나 조선에게 멸시받던 섬나라라는 단점을 마음껏 앞선문물을 수용할수있는 지리적 장점으로 승화시킬수 있었던 요인 같다.
심지어 도쿄 북쪽에 고마라고.. 고구려 마을도 있음.... ㅋㅋ 아직도 고구려의 고약광 60대손이 있고 조상계보도 가지고 있고, 고구려 음악 악보도 있어서 고구려 음악을 축제때 연주함 ㅋㅋ 고구려식 복장도 갖춥니다. 코우마, 고마 등의 성씨는 고구려 조상이라더군요. 최근에 한국에 아이돌 데뷔한 일본 여성이 코우마란 성을 가짐. 고구려 후손입니다.. 몇몇 파생된 성씨가 있는데,, 이노우에란 성씨도 고마에서 파생된 거라고 하던데.. 슬램덩크의 작가도 이노우에 다케이코이고, 일본 복싱계의 천재 이노우에 나오야도 이노우에 성씨죠... 그들 조상을 파면 혹여나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더라구요.
@@노네임-x5z 백제는 한국인의 조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오히려 백제의 멸망에 손을 빌려 문화를 강탈했다는 것이 한국의 조상이 되는 신라의 역사인 셈이죠. 고구려도 마찬가지로 한국과 관계가 없고 신라에 문화 강탈을 당했지요. 고구려 신사는 고구려에서 도망쳐 온 왕족들을 보호한 곳이지요. 일본에서는 성씨도 그 유래나 조상을 알 수 있는 성씨가 고구려 유래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코마』는 다케우치 슈쿠네 후손의 거세씨 자손. 후세에는 세이와 천황의 후손으로 겐(源)이라는 성을 받은 다케다씨(武田氏)류도 볼 수 있는 이름입니다. '고마'는 도쿠가와 가문 등을 배출한 현 아이치현 동부에 있는 미카와국 하타즈군 고마무라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anonanonym9872 님아 그 판단은 그 때 당시에 이름도 모르고 조상 분들 몫입니다. 어느 분은 고향에 가길 원했고 어느 분은 일본에 남길 원했고 그건 조상 분들 판단한 몫이고 조상 분들이 선택에 비판하지 말라는 겁니다. 기술이 있는 조상 분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안 그런 조상 분들도 있겠지요. 누구한테는 환대이고 누구한테는 망향의 아픔일수도 있습니다. 님 생각또한 틀리지 않았습니다. 항상 세상은 에이가 나오면 비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단순한 일직선이 아닙니다.
누가 돌아가고싶었을까. 어디가 고향이라 할 수 있는가... 내 과거 땅은 날 천하고 업신여겼지만. 여기서는 잘하는 것 하나만 있어도 그것을 우대해주고 특별 대우해줬는데.. 슬프게도 이러니 일본이 발전했다 싶네 기술이란 것을 천하게 여긴 나라와 우대한 나라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었다.
저 불화는 우리나라에 오면 무조건 국보인데..일본이 저걸 가지고 있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단지 약탈품인걸..빨리 돌려주길 바란다. 자기네 나라 사람이 만든것도 아닌데..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개인이 돈으로 주고 매입한게 아닌 약탈품은 원 국가에 돌려주는게 맞다.
국방은 조선시대때도 중요했다. 국방만 강조한다고 국방이 강화되는게 아니다. 구한말 중국과 조선은 서구의 기술과 무기만 도입했지만, 일본은 서구의 제도와 시스템도 함께 도입했다. 민주주의제도, 신분제도, 교육제도, 군사제도 등..... 과학기술과 경제가 되면 국방은 자연히 함께 따라온다. 이것은 현대도 마찬가지.
안타깝지만, 막상 조선에 계속 있었다면... 저게 온전하게 제자리에 남아있었을까 싶은게 문제임.. 돈이 궁해서 돈받고 판 것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 혹은 숱한 침략으로 온전히 살아남았을지 알수도 없고. 되려 행방도 묘연해 질수도 있음.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가 많지만.. 그 상황에서도 저들이 대단한 부분은 그만큼 대대로 보존도 잘하고 있고, 심지어 특정 지역에 자손들은 조상계보까지 고대로 다 가지고 있고, 후손들이 아직도 그 고을에서 잘 살고있고 흔적도 많고,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 문화와 핏줄을 잊지않고 살고 있다는 거... 만약 한국이었음 저런 거 대대로 잇지도 않고 존재할지도 모르겠음.. 그게 통탄한 거고.. 되려 일본은 저런 쪽에서는 대단한 거 같음.
전쟁은 우리에게 최악의 참상이자 재앙이였지만 일본에게는 늘 최고의 산업이였다. 노예와 문화재들은 넘쳐났고, 전쟁배상금과 식민지가 일본을 부유하게 만든다. 내부의 불만은 외부의 전쟁이라는 축제를 통해 해결된다. 이 행사는 돈과 사람이 많이 들지만 그것은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온다. 일본에게 언제나 전쟁은 최고였다. 핵 두발을 맞기전까지는…
일본의 반도체와 조선소에 근무하던 최고의 기술자들이 실직하여 한국의 울산과 김해의 조선소에서 (조선족로동자들을 몰아내고) 일당직으로 하루 12시간씩 근무하고 겨우 5만원을 벌고 있답니다, 일본여자들은 한류를 동경하여 김포와 의정부 포천의 봉재공장에서 인형에 눈알붙이기와 눈섭그리기를 하여 일당 3만원을 벌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암담한 현실을 탈출하고자 재한일본여자들이 틈만나면 한국남자를 만나 원나잇으로 임신하여 결혼하려는 풍조가 만연하여 최근에 한일커플이 급증하는 실정이라던데..아뭍튼 한국남자들은 일본여자들을 조심하세요.. 대다수의 약은 한국남자들이 여기에 넘어가지않자,한국영주권을 취득한 조선족형님에게로까지 마수를 펼치는 실정이라고 하네요.. 추가로 재한일본남자들은 한국영주권이나 취업비자를 가진 조선족누님과 (한국남자와 이혼한) 동남아 흑인여자와 중앙아시아 백인여자를 만나 결혼하려는 추세라고 합니다. 보수언론에서는 이런 사실을 전혀보도하지않고, (압력을 행사하여) 진보언론은 입도 뻥긋못하게하고 있다더군요..죽일*들~!
안타깝지만, 막상 조선에 계속 있었다면... 저게 온전하게 제자리에 남아있었을까 싶은게 문제임.. 돈이 궁해서 돈받고 판 것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 혹은 숱한 침략으로 온전히 살아남았을지 알수도 없고. 되려 행방도 묘연해 질수도 있음.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가 많지만.. 그 상황에서도 저들이 대단한 부분은 그만큼 대대로 보존도 잘하고 있고, 심지어 특정 지역에 자손들은 조상계보까지 고대로 다 가지고 있고, 후손들이 아직도 그 고을에서 잘 살고있고 흔적도 많고,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 문화와 핏줄을 잊지않고 살고 있다는 거... 만약 한국이었음 저런 거 대대로 잇지도 않고 존재할지도 모르겠음.. 그게 통탄한 거고.. 되려 일본은 저런 쪽에서는 대단한 거 같음.
@@gracekyungpark3631 한국에서 태어난 놈이 외국인들보다 한국 역사도 더모르네 ㅋㅋㅋ어디서 이상한거 보고 이상한 사상만 물들어갖고는 ㅉㅉ 조금만 찾아봐도 일본이 문화재 뭐뭐 태웠는지 나온단다 니도 일본처럼 날조라고 우길거냐? 꼭 못배운 것들이 사실 확인도 안하고 지 뇌피셜을 사실이라 믿지
@@billyjean2905너야말로 정신 차려라! 전란 중에 생포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망쳐 소속 부대로 복귀한 병사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 지 사료 찾아보고 공부해본 적 있기나 하냐? ㅉㅉ 병졸에 대한 대우가 그랬는데 수년 간 일본에 억류되었던 저 사람들이 운좋게 조선에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 뇌가 안 돌아가니? 심지어 조선 조정에서는 포로 송환 노력을 안 했다! 그런 나라다! 일본 욕할 게 아니라 조선을 비판하고 볼 일인거다! 이 글러먹은 것아!
조선엔 도공이 흔하니 특별히 대우해줄 이윤 없었지만. 굳이 천하게 대할 이윤도 없었음 ... 일본 도공으로 유명한 심수관의 조상은 고려때부터 조선까지 대대로 영의정 판서 지낸 유명한 집안입니다. 조선에서 천대라니요 ? .. 이후 일본은 판로를 개척해 도공이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조선은 내수용으로만 제조한게 문제일순 있겠지만...
문화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한국이 일본보다는 좀 더 뛰어났던것같다 그러다 일본은 서양문물에 문을 더 일찍열고 한국은 폐쇄적이었다가 덕분에 여러 아픔을 거치고 kpop이나 영화로 문화적으로 뛰어났던 면이 이제야 나타나는듯 .. 요리도 보면 일본보다 한국이 종류도 훨씬 많고 덜 단순함
아무리 일본 간악하다 간악하다 해봐야 일본이 여전히 강대국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 유일한 복수는 더 강대국이 되는거지 맨날 천날 일혐해봐야 또 침략당함. 왜 침략을 당했는지 반성하는게 나아가는 길 아닌가? 세계사는 어짜피 침략과 전쟁의 역사임. 지금 강대국들은 수많은 침략을 했고 전쟁에서 승리한 강대국인데 세계에 아무리 호소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 당시에 도자기는 지금의 반도체와 같은 물품이었다 완벽하게 만들수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 그다음이 조선이다 얼마나 도자가가 중요하면 중국의 영어명이 차이나가 되었을까 대부분 나라에서 만드는 그릇은 완벽한 방수가 안되어 쓰다 보면. 물이세지만 도자기 처럼 만들면 그러한 염려가 전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기술 장인 들은 기술쟁이 취급을 당했으나 먼나라 일본에서는 그만큼 대우를 받았으니... 그생에 불편함은 없었으리.. 만약 조국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죄인 취급을 당했을태니 돌아갈수도 없었을태고..부모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1세대 가 지나고 2세대 부터 잊혀질것이고.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구나.
미안한데 그저 몇가지 기술만 조선이 앞서있었고 많은 부분에서 일본이 이미 그 당시 조선을 압도했음 그게 임진왜란의 결과고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일본은 조선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선을 다시 침략하지 설마 교과서에서 본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신문물을 전했다는 국뽕적 측면만 믿는건 아니지?
저 당시(임진왜란)때에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코 베이고 귀 베이고 그리고 일본으로 끌려가서 국외로 노예로 팔려 나가거나 죽어갔고 근대 일제강점기에도 수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끌려가 전쟁에 동원되어 전사하거나 전쟁물자를 만드는 곳에 투입되어 모진 수난을 겪어야 했었다. 역사는 정말 반복되는 것인가?
그건 좀 이상하네요. 일본에서는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으며, 기존의 농민의 잡역을 폐지하고 계약에 의한 봉공제도를 도입하는 등 노동에 관한 시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와 마찬가지로 '계약에 의한 노동'입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노예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다큐 너무좋다 흔하지않은 주제라 너무좋고..
수신료의 가치는 이렇게 해야지
👍
저 한글로된 불화는 정말 상상이상으로 엄청난 자료이지 싶은데... 우리나라의 중세국어 연구에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임진왜란 포로에 대해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현지에 살아남은 후손분들께는 영원한 오늘의 일이니 저도 잊지않고 늘 기리겠습니다.
수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를 올려주는 마을주민들에게 감사하네요
분명 가슴 아픈 일임에는 틀림 없으나 저들의 정성에 마음이 따듯해졌습니다
나머지는 비참하게 살았대잖아... 뭐가 마음이 따뜻해지냐? 가슴속에 마그마가 있냐?
살아있을때 잘해야지 제 올려준다고 고맙? 에공
@@lucparox 비참하게 산 사람이나 잘 살다 죽었을지언정 타지에 끌려간 사람이나 전부 가슴 아픈 일이죠;;
그러나 한 명뿐이라 해도 마을사람들이 대대손손 제를 올려주고 있다는 것에 마음 따듯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감정이란 게 존재하는지?
@@carelesswp2740 그럼 타임머신이라도 개발해보든가~
@@lucparox 좀 웃기노 ㅋㅋ
요도강에 ’주쇼지마‘란 섬이 있는데 진주사람들 살던 데가 거기일 것 같네요. 진주성시마에서 앞글자 진이 탈락하고 일본식으로 음차하면 주쇼지마가 되는 게 자연스러울거 같고.
역사의식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시대의 사람들. 폭넓은 역사를 알게되어 기쁘다.
이런 아픈 역사에
몇십부작이라도
실화에 근거를 한
픽션 논픽션 드라마라도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들 합동으로라도 ᆢ
전쟁은 사람 손실이 가장 타격이 크다
일본은 포로들 잡아가서 오히려 성장하고 조선은 더욱더 쇠약해져 갔음
조선이 쇠약해진 건 송시열 같은 사대부들 탁상공론에 정조 이래 일부 벌열가문의 권력욕 때문이었음. 스스로 역량을 갉아먹고 허송세월 한 것임. 포로로 사람 뺏긴 것 때문이 아님. 조정 차원에서 송환 노력조차 없었는데.. 뭘.. ㅋㅋㅋㅋㅋ
한글로된 불화가 일본에 존재한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네요.
그러니까요ㆍ
저걸 돌려받아야하는데
구만점이 넘는 우리문화재가 일본에 있다는데ㆍㆍㆍ
착하게 마음먹고 제발 돌려줬으면 좋겠네요ㆍ
안타깝지만, 막상 조선에 계속 있었다면... 저게 온전하게 제자리에 남아있었을까 싶은게 문제임.. 돈이 궁해서 돈받고 판 것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 혹은 숱한 침략으로 온전히 살아남았을지 알수도 없고. 되려 행방도 묘연해 질수도 있음.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가 많지만.. 그 상황에서도 저들이 대단한 부분은 그만큼 대대로 보존도 잘하고 있고, 심지어 특정 지역에 자손들은 조상계보까지 고대로 다 가지고 있고, 후손들이 아직도 그 고을에서 잘 살고있고 흔적도 많고,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 문화와 핏줄을 잊지않고 살고 있다는 거... 만약 한국이었음 저런 거 대대로 잇지도 않고 존재할지도 모르겠음.. 그게 통탄한 거고.. 되려 일본은 저런 쪽에서는 대단한 거 같음.
정말 유익한 프로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로 연결되어있지..
넷플릭스에 이런 이야기들 드라마로 만들면 반향이 어마어마 할거다
이탈리아에 가면 조선인 외모에 조선 옷을 입은 안토니오 코레아 초상화가 있지요. 당시에 조선 포로들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우와~~역사 정보 감사합니다 ^^
그 그림은 명나라 사람으로 판명났습니다...
유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늑대인간-n9y 그것은 또 거짓으로 판명 되었습니다. 님아 아무리 중국이 우긴다고 한들 고구려가 중국 역사가 되고, 김치가 파오차이가 됩니까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책에 나옴
참으로 가슴 아파서 볼수가 없네요 이런것을 우리는 가슴깊히새기고 새겨서 꼭 그 한을 풀어야 합니다 무슨기술 이래도 좋아요 꼭 배워서 일고 기록으로 남기고 일본을 미래에는 넘어서야 합니다
1945년이후로 일본이 한국에 한 만행들
1.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원조 1위 미국 2위 일본
2. 구로공단 초기 자본금과 기술력의 70%가 일본에서 옴
3. 1960년대 개 가난해서 굶어 죽는 한국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일본 인스턴트 라면 사장이 라면 제조 기계값만 받고 기술전수비용과 로열티 무료 한국에 라면 공급할 수 있게 도와줌
4. 1960년대 한국이 개 가난해서 박정희가 철공업으로 국가 일으키고 싶다고 하니까 박태준과 일본제철기업 협회 회장 만나게 해줌 그 회장이 빈곤한 한국에 연민을 느껴서 철강 기술 전수해주고 철강 장비 판매해줌.
한국도 최근에는 후진국 지원을 많이하지만 기술은 절대 안주는거 다 알고 있을거야. 그리고 그 기술 없으면 진짜 아무것도 못해 일인당 gdp가 8800달러인 태국이 지하철을 뚫기 위해서 지금도 일본 기업을 부른다는건 말 다한거지 한국은 지하철 뚫는 기술을 어디서 얻었을까? 한국이 얻어 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것들이 사실은 자유주의 동맹하에서 미국과 일본이 지불해준거야.
1962년 한국의 빈곤율이 40%고 실업율이 38%이고 가계 저축율이 -4%인 곳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어
@@AF-qk8ty 역시 일본인답다!! 🤣 조금만 기달려봐 한국인은 니들이 한대로 그대로 갚아주는 정이 있으니까? 기대~~해🤣 거절하기없기?😂
뭔 400년 전 일까지 그러노
깊이
임란 조선이 자처함.세계 최초 은제련기술을 발명한 양인.지들집권당때일 아니라 왜인전수한 양반 은은 그시대 세계 화폐라 큰 부자된 니뽕은 조총을 사서 조선 침략 끌고간 도공들이 청화백자를 만들어 니뽕은 유럽과우역으로 또벼락부자되어 한반도 강탈 우리조상이 나라까지세워 줬고 문화는 거의 건너간 도래인것 사용.문자도 신라것임 우린 다잊고 역수입중 한반도에서 쫓겨난 도래인들이 섬 원주민 믹서가 오늘날 니뽕인인데 중요자리차지는도래인 인구의 대부분 차지도 도래인들이라 함!!!
어쩐지 교토 나라를 가면 지금 우리랑 넘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더니만 ….😅😅
오랜만에 재미난 다큐멘터리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진주시마 후예들도 오래 오래 전통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금 느낍니다
다시는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며 근원적인 해결이라고.
조선인 노예 때문에 국제 노예가격이 폭락했다니 씁쓸하다
당시 아프리카 흑인노예 국제 시세가 170스쿠도, 페루 노예가 400스쿠도 였는데 일본이 조선인 노예를 한명당 2.4스쿠도(쌀 두가마니급)에 팔았죠 .. 이렇게 덤핑을 치니 폭락을 안 할 수가
놀라운 사실이네요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조선에서 천민으로 사는 것보다 일본에서 노예를 사는 것이 더 대접 받앗다는 사실은 죽어도 이야기를 안하지!
@@sungminkim6309
같은 노예라도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문화가 통하는게 편하겠냐,아무것도 안통하는게 편하겠냐?
안통하면 그만큼 더 구박 받고 힘든거지,생각 좀 해라!
평생 단무지나,피클만 먹고 살수 있겠냐?
배추김치,총각 김치,깍두기,김치 찌개 먹고 사는게 낫지 않겠냐?
그리고,천민이 양반 되기도 하고 양반이 천민이 되기도 하는것이 세상 사는 이치야,이 양반아~
@@sungminkim6309잡혀간 포로가 십만명이야.
대접받은 소수의 기술자 빼면
일본 건너간 근래 우리 조선인들이 겪은 핍박보다 더했으면 더했겠지.
당연한거 아닌가
잘 알지못하는 외국인의 조선의 소녀를 마을사람들이 기억해주고 무덤을 지켜주는 모습이 감사하네요. 역사는 과거이고 바꿀순없지만 현재 삶에서 그 역사를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이런 다큐도 좋은거같아요.
공감합니다.
전쟁포로 중 특별한 기술자는 보통 대우를 해주죠. 약탈 품목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항목이죠. 자만심이 많은 세력은 여자만 약탈하지만...
저 여인이 조선에 살았으면 묘도 찾아보기 어렵고 기록도 없었을텐데... 맘 아프지만 아이러니함...
어떻게 보면. 유교와 정치질의 영향으로 상.공업을 천직으로 무시한 조선의 관습도 슬픈 현실이긴 함.
아시아가 옛날엔 다 그런 경향이 있지 않았음?
본인은 그런 경향이 없나요 ?
@@에라이-t9r 저는 없음.
그게 더 문제죠 일본보다는
@@에라이-t9r 난 없음.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때 경제침체돼고 막노동자 줄어드니 건설.조선.설비 올스탑 되던거 보면 알잖음.
못배웠고. 기술이 없어서 막노동을 한다지만
저 사람들 없으면 산업이 안굴러가는 나라임.
꼭 알아야하고 잊으면 안되는 역사다
눈물 납니다. ^*^
우리나라 백정들은 북방유목민 출신들이 많았음
진정한 수신료의 가치입니다. 고맙습니다.
A wonderful, but sad, historical documentary. I wish it had English subtitle for children born outside of Korea. I am learning so much. Thank you.
There is the CC on the bottom right side of the screen which give you the Korean subtitle.
Netflix Korean movies, you do have the choices to watch it in Korean, English, and others with choices of your subtitle in other languages. It is also located at the bottom right side of the screen.
Netflix movie "Mr. Sunshine" is about History of the Japan occupancy of the Korean during early 1900.
@@young-soonkim6730 Thank you for the information.
KBS는 적자본다고 말만하지말고, 노력좀하자 영문자막 넣으면 세계인이 보는 다큐가되고 그만큼 수익이 늘어나는데 뭐하는건지...
@@young-soonkim6730 TYVM!
도자기 전파는 아는데
두부, 유학까지 전파되었다니 !!!
👏👏
은 제련기술(그 은으로 조총수입함)
유학 까지 전파됨.
심지어 단단한 두부는 국내에 있긴 있어도, 저런식으로 만든 볼 형태의 단단한 두부는 한국에도 없는 거 같은데 ㅋㅋ 저걸 포장지에 어디서 부터 유래했다고 그려놓고 상품화 잘해서 아직도 팔고 있다는 자체가 ㅋㅋ 걍 한국에선 볼수가 없는 장면임.. 저런 것만 봐도 마음은 아프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우리 문화재가 일본에 있었기에 아직도 보존도 대대로 잘 되고 있는 거 같음.. 우리는 돈이 궁해 돈 받고 판 것도 많고, 숱한 침략으로 인해 소실이나 행방이 묘연해지는 경우도 많았을 거 기에.. 옛 우리의 문화재는 되려 북한, 중국이나 일본에서 더 진하게 알아볼 수가 있는 거 같아서 씁쓸하면서도, 조선에 없었기에 저런 문화재가 아직도 건재히 존재하는 거 같음...
좋은방송 잘 보고 있어요~
독도문제 동북공정등 워낙 역사왜곡이 심한 세상에 살다보니
이웃에 믿을만한나라 없는 세상이 되었네요.
추가로 일본과 중국을 비교해서 같이 다루는
방송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의 만행공부도 중요하지만
시기상으로 지금 당장 요소수로 사드로
일종의 인구(비율,댓글,중국송금액1인당외노자평균3배등..)침략
일종의 영토침략(제주도,대림동등..부동산가격교란에일조함...)등이 어느정도인지
우리를 겁박하는 중국의 만행공부도 절실합니다.
1,850여 품목이 중국에 종속된 산업가치사슬입니다
요소수나 사드문제는 그냥 조그만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국가 사활이 걸린 중국과의 가치사슬문제를 다루어 주세요
방심하면 또 당합니다. 병자호란~ 수십만명 끌고갔지요
추가로 국내외의 다양한 시각도 궁금하고 현실대책이 철실합니다
불교 향을 샀는데 설명서에 신라때 전수받은 기술로 만든 향이라고 친절하게 적혀져있는거 보고 놀랐음
안녕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향인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일본인들 양심 있네! 한국 같았으면 일절 없었을텐데! ㅋㅋㅋㅋㅋ
@@김선생-y2r ㄹㅇㅋㅋㅋ
눈물납니다
진주출신 어느지인분 말씀이
임진외란때 진주인구의 대부분이 죽거나 사라졌다고. 그래서 선조대대로 내려오는 진주토박이는 극소수라고...
진주성에서 몰살당했죠
외란-->왜란
몰살이라기보다장렬히전사했죠!!@@물소추적-j6c
그만큼 강력하게 저항했을
도망간 사람은 살았겠지. 그리고 장손들은 대를 이어야하니 내보냈겠지.
조선인 포로 전부를 대우해준 건 아니었습니다.
우선 포로 중 일부만이 기술자로 이루어졌는데, 나머지 대다수는 일반적인 농민이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에 가서 농노가 됩니다. 그러나 일본의 악명높은 세율(50~70%) 때문에 노예로 전락해 팔려 나가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기술자들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 않았다면,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일부는 밥을 주지 않아 굶어죽기도....
지들도 먹고살기힘들었을테니 하물며 조선인을
황당한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비참한 삶을 살았으면 왜 귀국하지 않았나. 몇번의 귀국독촉에도 돌아오겠다는사람들은 극소수였다. 당시 일본의 생산력은 조선의 10배정도 되었다.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을 함부로 대우하지 않았다.
귀국독촉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을 지 생각해봐라. 일반 농민들한테 까지 그렇게 할 수 있었겠나. 그나마 기술자들한테나 독촉을 한거지. 그런데 그런 기술자들은 위에서 말한대로 후한 대접을 받고 이미 십 수 년의 기간에 걸쳐 자리를 잡아 적응했으니 대부분이 귀국을 고사한 거지.
근거는요? ㅋㅋㅋㅋㅋ
그건 좀 이상하네요.
일본에서는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으며, 기존의 농민의 잡역을 폐지하고 계약에 의한 봉공제도를 도입하는 등 노동에 관한 시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와 마찬가지로 '계약에 의한 노동'입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노예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맛있는 두부 만들줄 안다고 넓은 땅도 주고 집도 준거보면 기술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귀하게 대접받네
굶어 죽는 사람도 많은데
산에 널린 도토리를 안 먹고 있어서 도토리묵을 만들어 지금도 토사(현고치)에선 도토리묵 만들고 곤약도 조선인이 만들었고, 마늘 많이 먹는 지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이라서 가능
정작 저런 기술자들이 조선에선 상놈 취급 받았으니...
@@username59121 일본에서도 기술자가 상류층은 아니었다.
@@username59121 개방적이었던 고려시대가 끝나고 고리타분한 유교국가 조선이 들어선 것부터가 이미 한반도의 몰락이었지
왜란 때 조선의 기술자는 대부분 천인 혹은 노비들이라서
일본에 끌려가서 기술자 대우받는게 훨씬 명예로운 대접이었음
훗날에 양반은 많이 조선에 돌아왔지만 기술자는 거의 안돌아와서
임란 후에 조선의 모든 산업기반이 파멸적으로 붕괴되었다는 걸 임란 전후의 무덤 부장품을 보면 알수 있다 ....
연은분리법, 도자기기술, 유학... 근대 일본의 근간이 되는 기술의 전승
조선에서 훔쳐온 종을
훔쳐갈까 걱정하다니...
도둑이 다른 도둑걱정이라
참으로 어불성설아자.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걱정 엄청 많을 겁니다
임진왜란이 아픈 기억이기도 하지만 저렇게 적의 문물의 받아드리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의 유무에 따라 400년 후 두 나라의 운명.. 다시 바뀌는군...
약 300년후 임진왜란 : 1592년 을사늑약 1905년
받아들이는
그게돈이고 지들은 만들줄 몰르거든 뺏아가 무역해 큰 부자됨 뭘 받아드려?돈이니까 훔친거지!
일본은 침략을 당하지 않았고 한국은 침략이 끊이질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함 일본이야 침략으로 성장하니 개방되어야 발전하는걸 알았겠지 물론 지금은 일본에서 태어나 다행이다 같은 말이나 하는 현실이지만 ㅋ
일본과 우리의 차이를 만든건 태도에 있다고 본다. 조선은 중국이 세상의 전부인줄 믿고 자신들보다 우월한 서양인이나 주변민족들을 오랑캐로 폄하하는 오만한 태도를 견지했고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 단점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낮추며 비록 그들도 서양인들을 경멸하기는 했지만 열린태도로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며 해외로 인재들을 꾸준히 보내며 힘을 축척했다. 이것이 동북아에서 중국이나 조선에게 멸시받던 섬나라라는 단점을 마음껏 앞선문물을 수용할수있는 지리적 장점으로 승화시킬수 있었던 요인 같다.
그것도 가문 케바케임. 종교는 얄짤없이 다 죽여서 지금까지도 기독교도가 거의 없는게 일본임.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이였습니다. 외교권이 없었고 조공무역으로만 권력층들이 경제를 지배하고 백성과 노비들에게 이윤을 얻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이런분들이 정말 살아있는 참됨인 일본인이지.. 엉뚱한거에 심취해서 진실을 잊어버린 일본인들은 이런걸 좀 배웠으면 한다.
것에
이런 것을
괜히 진주혈전이라 부르는게 아니였네
귀중한 영상 잘 보았습니다
보면서 참 씁쓸한 마음이...^^;
얼마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셨을까요...ㅜ
그런데 쇄환사가 조선으로 돌아가자니까 놀랍게도 대부분이 귀환 거절함. 실록에도 이 얘기 나놔요
@@KennyJang-t6c 일본이 헬조선보다 한참 앞섰으니까
누가 더 나은 나라 놔두고 후진국으로 돌아가고싶겠냐
시마즈 요시히로가 납치해간 조선인 도공 이삼평은 아리타 도자기 , 도공 심수관은 사쓰마 도자기를 꽃피움 둘다 일본의 국보급 도자기가됨.
기술있는 분들은 일본으로 가서 잘 사셨고 오히려 조선으로 돌아가길 거부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국인 후손도 엄청 많네. 건너간 사람도 많고 백제 왕실도 그렇고 이후로는 전쟁으로 섞이고. 한국인 같이 생긴 일본인들 종종 있는데 위에 조상에 조선인이 섞여서 그런거 같다. 본인은 모를 뿐
심지어 도쿄 북쪽에 고마라고.. 고구려 마을도 있음.... ㅋㅋ 아직도 고구려의 고약광 60대손이 있고 조상계보도 가지고 있고, 고구려 음악 악보도 있어서 고구려 음악을 축제때 연주함 ㅋㅋ 고구려식 복장도 갖춥니다. 코우마, 고마 등의 성씨는 고구려 조상이라더군요. 최근에 한국에 아이돌 데뷔한 일본 여성이 코우마란 성을 가짐. 고구려 후손입니다..
몇몇 파생된 성씨가 있는데,, 이노우에란 성씨도 고마에서 파생된 거라고 하던데.. 슬램덩크의 작가도 이노우에 다케이코이고, 일본 복싱계의 천재 이노우에 나오야도 이노우에 성씨죠... 그들 조상을 파면 혹여나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더라구요.
@@노네임-x5z
백제는 한국인의 조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오히려 백제의 멸망에 손을 빌려 문화를 강탈했다는 것이 한국의 조상이 되는 신라의 역사인 셈이죠. 고구려도 마찬가지로 한국과 관계가 없고 신라에 문화 강탈을 당했지요.
고구려 신사는 고구려에서 도망쳐 온 왕족들을 보호한 곳이지요.
일본에서는 성씨도 그 유래나 조상을 알 수 있는 성씨가 고구려 유래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코마』는 다케우치 슈쿠네 후손의 거세씨 자손. 후세에는 세이와 천황의 후손으로 겐(源)이라는 성을 받은 다케다씨(武田氏)류도 볼 수 있는 이름입니다.
'고마'는 도쿠가와 가문 등을 배출한 현 아이치현 동부에 있는 미카와국 하타즈군 고마무라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임란당시의 조선 정치상황은
지금의 국민vs민주의 상황과
남녀 갈등상황.. 그 무엇도 다를바가 없네요
국민이 만든거라 원망할 필요도 없지!
@@sweetfan3250 민주당 떄문이죠.
역사는 반복되므로 일본 중국의 만행을 결코 잊으면 않된다..
그래도 저때 끌려간 장인들은 좋았을수도 있지... 조선에선 공자왈맹자왈 하는놈들이 대접받고 물건만드는 사람들을 홀대 했지만 일본에선 신기술을 가진 기술자대접을 해줬을 테니까
그 결과가 포로를 몇 차례에 데려왔는데. 나중엔 조선인 포로가 된 조상 분들이 소극적이게 되었지요. 그 때 당시에 기술을 가진 이들이 조선에 있을 때 누리지 못하는 일본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니.. 누가 돌아가길 원해요.
그런 식으로 도매급으로 넘기지 마세요.
망향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진 않을 겁니다.
@@anonanonym9872 님아 그 판단은 그 때 당시에 이름도 모르고 조상 분들 몫입니다. 어느 분은 고향에 가길 원했고 어느 분은 일본에 남길 원했고 그건 조상 분들 판단한 몫이고 조상 분들이 선택에 비판하지 말라는 겁니다.
기술이 있는 조상 분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안 그런 조상 분들도 있겠지요. 누구한테는 환대이고 누구한테는 망향의 아픔일수도 있습니다. 님 생각또한 틀리지 않았습니다. 항상 세상은 에이가 나오면 비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단순한 일직선이 아닙니다.
초기엔 포로환송하면 나라에서 집에갈 돈도주고 먹을것도 줬는데 나중에 안주니까 일본에 소문나서 올사람도 안왔음
기록에 의하면. 힘좀 있는 영주한테 끌려가면 대우 좋았는데. 말단에 끌려가면 윗선에 뇌물로 준다고 착취당했다는 기록도 있었던거 같음.
병자호란때 50만 포로로 끌려가고,, 임진왜란, 정유재란때도 20만 끌려갔다지,
전쟁의 책임은 왕에게 있는데
백성들만 피해를 입고
임진왜란은 왕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저 히데요시의 일방적인 야욕이었죠.
@@자유한-d2k 대비를 해야줘
히데요시야망이 실현되지 않게
@@자유한-d2kㅡ 바보같은 소리 ...집권자의 책임이다.
당시에도 왜란 예상하고 요지마다 성 쌓으려고 하니까 백성들이 무슨 얼어죽을 놈의 전쟁이냐고 우리 쥐어짜지 말라고 난리쳐서 성 못 쌓고 끝났습니다. 그냥 왕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다 썩어있었습니다
누가 돌아가고싶었을까. 어디가 고향이라 할 수 있는가... 내 과거 땅은 날 천하고 업신여겼지만. 여기서는 잘하는 것 하나만 있어도 그것을 우대해주고 특별 대우해줬는데.. 슬프게도 이러니 일본이 발전했다 싶네 기술이란 것을 천하게 여긴 나라와 우대한 나라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었다.
뭔 개소리를 장황하게도 써놨네 세상을 비관하고 IS에 합류했다가 미군 폭격에 사망한 모 군도 이런 생각이었을까?
@@vhqlems21 바보야 비유를 하려면 중국 ,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과학자, 공학자들 얘기해야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김군을 왜 예시로 드냐 너 좀 많이 무식하다?
@@aksh18378 일본 끌려간 사람중에 뭐 기술지만 있냐?
@@vhqlems21 김군이랑 저기 끌려갔다가 융숭한 대접받은 도공이랑 어떤 공통점이 있어서 비유를 하는 거야?
저 불화는 우리나라에 오면 무조건 국보인데..일본이 저걸 가지고 있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단지 약탈품인걸..빨리 돌려주길 바란다. 자기네 나라 사람이 만든것도 아닌데..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개인이 돈으로 주고 매입한게 아닌 약탈품은 원 국가에 돌려주는게 맞다.
두부에 관해서 고치에는 카시토후가 있습니다. 두부가 아니고 도토리묵인데 이것도 조선포로가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일본에서 도토리묵을 만드는 유일한 곳. 만들어 판매하는 곳 찾아가봤지만 지금은 팔지 않네요.
박호인 경북 경주 출신 봉록 60석정도 받았던 사무라이이며 칼을 차는거까지도 허가 받은 진퉁 사무라이
비슷한 시기에 끌려간 심수관 같은 도자기 장인들도 칼을 차지 못했죠.
박호인은 당시 끌려간 조선인 기술자 포로중에서 최고로 대접 받았습니다.
막부에서 보내주지도 않았지만 설사 도망쳐서 귀국한다 해도 첩자라고 고신이나 받다 죽어 들판에 버려졌을텐데 안 돌아가고 남길 잘 한 거지요.. 왜군에 끌려간게 신의 한 수였던 게지요. ㅎㅎ
최고란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서울 출신
와키타 나오카타(김여철) 1500석 마치부교(지금의 시장급)
강원도 강릉시 출신
리노이에 모토히로(이성현) 500석
야규 검술 면허개전자 검객이고 그 아들은 의사로 활약했다.
일본국 두부상인들 가운데 포로 조상과 관련된 분이 있었네요~~
시코쿠 ~~
거의 시코쿠 특집이네요. 와이프가 시코쿠 출신이라 가게 되면 한번 찾아가서 술이라도 한잔 올리고 와야겠습니다.
님은 미국인이신가요?
엄청 놀랍고 자세하고 안타까운 역사 다큐네요. 일본이 조선에 학살을 일으켰지만 다른 한 편으론 일본과 우리는 많은 교류와 피가 섞여 있는데 앞으로 서로 화합하고 발전해가며 살면 좋겧네요.
저 포로 숫자의 80~90퍼센트는 원균의 칠천량전투 패배의 결과라고 합니다.(해행총재의 포로일기중에서)
출처
해행총재 중 1597년~9년까지 3년간 포로생활을 하신 정득신의 '월봉 해상록'입니다.
한편 전후 조선에 남겨진 일본인은 1만여명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최악의 바이러스 이름이 '원균'
하늘은 최고의 명장 이순신을 만드셨고, 그를 드러내기 위해 원균을 만드셨다.
하지메 사토루 장군님을 욕하지 마시죠. 그분은 일본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물소추적-j6c일본의 입장에서 일본인을 대변하는 역지사지의 나쁜 사례, 덕분에 잘 들었음.
국방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만드네요
앞선 기술과 나라가 평온하다고 자주국방을 게을리하면
야만에게 침략 받아 수많은 민초가 고통 받는다는 사실은 큰 교훈 삼아야 함(포로, 코와귀 베이고 죽음)
국방없이는 빈껍데기 나라
꼭 대비한다고 전쟁이 안일어나는건 아니지 않나요?
@@--1754 그 대신 민초의 고통에 대비할 수 있겠지
국방은 조선시대때도 중요했다. 국방만 강조한다고 국방이 강화되는게 아니다. 구한말 중국과 조선은 서구의 기술과 무기만 도입했지만, 일본은 서구의 제도와 시스템도 함께 도입했다. 민주주의제도, 신분제도, 교육제도, 군사제도 등..... 과학기술과 경제가 되면 국방은 자연히 함께 따라온다. 이것은 현대도 마찬가지.
서구건우리처지에 맞게 개량해야 뭔 그애들이 진리느냐!아닌것은 아니지
일본 후쿠이 현 해변에 가면 섬유 박물관이 있는데 여기는 신라시대에 한반도 도래인이 직물을 처음으로 짜고 가르친 곳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직물을 제직한 것을 기념하여 후일 그곳에 섬유박물관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피로인들 이야기를 역서저널 그날에서 보고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강항이 쓴 간양록 같은 기록을 더 알려야한다
저들의 조상들이 나빴지만 조선의 왕실과 관리들 에게도
못났고 무능 하다는 책임은 있다 오늘날에도 국가의문제는
정부만이 아니라 투표권을 행사한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일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뽑아줬더니.
지들 배만 불리는데...
옛날 같았으면 봉기일어나도 할 말없음
@@미숫가루찌개그렇게 매번 거짓말한 후보, 정당을 또 찍어주는 유권자니 응당 그런 유권자들이 으뜸가는 죄인이죠!
안타깝지만, 막상 조선에 계속 있었다면... 저게 온전하게 제자리에 남아있었을까 싶은게 문제임.. 돈이 궁해서 돈받고 판 것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 혹은 숱한 침략으로 온전히 살아남았을지 알수도 없고. 되려 행방도 묘연해 질수도 있음.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가 많지만.. 그 상황에서도 저들이 대단한 부분은 그만큼 대대로 보존도 잘하고 있고, 심지어 특정 지역에 자손들은 조상계보까지 고대로 다 가지고 있고, 후손들이 아직도 그 고을에서 잘 살고있고 흔적도 많고,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 문화와 핏줄을 잊지않고 살고 있다는 거... 만약 한국이었음 저런 거 대대로 잇지도 않고 존재할지도 모르겠음.. 그게 통탄한 거고.. 되려 일본은 저런 쪽에서는 대단한 거 같음.
6:47 일본인이 조선인의 코를 절취한 수량 ㄷㄷㄷㄷ
전쟁은 우리에게 최악의 참상이자 재앙이였지만 일본에게는 늘 최고의 산업이였다. 노예와 문화재들은 넘쳐났고, 전쟁배상금과 식민지가 일본을 부유하게 만든다. 내부의 불만은 외부의 전쟁이라는 축제를 통해 해결된다. 이 행사는 돈과 사람이 많이 들지만 그것은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온다. 일본에게 언제나 전쟁은 최고였다. 핵 두발을 맞기전까지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드라마로 만들어주면
보고싶다
공돌이들은 일본 취업 성공. 조선엔 유교탈레반만 남았다...
당시 중국만도 못한 미개한 나라에서 강제로 살게 된게 얼마나 착잡했노
일본의 반도체와 조선소에 근무하던 최고의 기술자들이 실직하여 한국의 울산과 김해의 조선소에서 (조선족로동자들을 몰아내고) 일당직으로 하루 12시간씩 근무하고 겨우 5만원을 벌고 있답니다,
일본여자들은 한류를 동경하여 김포와 의정부 포천의 봉재공장에서 인형에 눈알붙이기와 눈섭그리기를 하여 일당 3만원을 벌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암담한 현실을 탈출하고자 재한일본여자들이 틈만나면 한국남자를 만나 원나잇으로 임신하여 결혼하려는 풍조가 만연하여 최근에 한일커플이 급증하는 실정이라던데..아뭍튼 한국남자들은 일본여자들을 조심하세요..
대다수의 약은 한국남자들이 여기에 넘어가지않자,한국영주권을 취득한 조선족형님에게로까지 마수를 펼치는 실정이라고 하네요..
추가로 재한일본남자들은 한국영주권이나 취업비자를 가진 조선족누님과 (한국남자와 이혼한) 동남아 흑인여자와 중앙아시아 백인여자를 만나 결혼하려는 추세라고 합니다.
보수언론에서는 이런 사실을 전혀보도하지않고, (압력을 행사하여) 진보언론은 입도 뻥긋못하게하고 있다더군요..죽일*들~!
@@백마업고뛰는왕자 조현병인가
도자기만 알고있었지 두부는 처음 알았네 두부 역사를 포장지에 표시한것도 신기하네 양심은 있다고 해야될까
재밌게 잘봤습니다
일본 본토는 침략을 안당해서 그런지 사료가 굉장히 많이 남아있네... 부럽누
외부 침략이 적었을뿐 내전은 많았죠.
원나라때도 그렇고 섬나라의 이점이죠~~
안타깝지만, 막상 조선에 계속 있었다면... 저게 온전하게 제자리에 남아있었을까 싶은게 문제임.. 돈이 궁해서 돈받고 판 것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 혹은 숱한 침략으로 온전히 살아남았을지 알수도 없고. 되려 행방도 묘연해 질수도 있음.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가 많지만.. 그 상황에서도 저들이 대단한 부분은 그만큼 대대로 보존도 잘하고 있고, 심지어 특정 지역에 자손들은 조상계보까지 고대로 다 가지고 있고, 후손들이 아직도 그 고을에서 잘 살고있고 흔적도 많고,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 문화와 핏줄을 잊지않고 살고 있다는 거... 만약 한국이었음 저런 거 대대로 잇지도 않고 존재할지도 모르겠음.. 그게 통탄한 거고.. 되려 일본은 저런 쪽에서는 대단한 거 같음.
25:33 세상에 이런건 처음보네
좋은 다큐네요.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이 전쟁에서 납치해간 기술을 가진 조선인들 덕분에 에도시대가 문화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때가 오면 복수도 하고 다 찾아 오고 수치의 기록을 보관해서 널리 알려야하죠
이조 500년은 백성들에게 악몽이었다.
다나카 두부공장 사장님도 대단하시네요!
다들 왜곡하기 급급할텐데, 고치두부의 근원을
제대로 바르게 알리려는게 ...
직접가서 먹어보고 싶네요.... 아직도 저걸 가공해서 상품화 잘해서 팔고.. 대단합니다
아이러니한건 저런 기술을 잘 보존하고 내려오게 한건 일본쪽임
한국에 있었음 일제시대 때 불태워버렸죠
@@slfppjk-0134 일제시대땐 오히려 다 쓰러져 간 우리 문화재 재건해줬는데 그 예시가 석굴암
@@aksh18378 개소리고 일제 시대때 석굴암 옮긴다고 해체하고 제대로 복구도 안해놓고 튄것들인데 아무리 니가 친일파여도 똑바로 알고 팩트를 말해야지
@@gracekyungpark2143 책한권만 읽은 놈이 무섭다더니 팩트도 없이 개소리도 길게 늘어놓노 ㅋㅋㅋ 출처 가져와
@@gracekyungpark3631 한국에서 태어난 놈이 외국인들보다 한국 역사도 더모르네 ㅋㅋㅋ어디서 이상한거 보고 이상한 사상만 물들어갖고는 ㅉㅉ 조금만 찾아봐도 일본이 문화재 뭐뭐 태웠는지 나온단다 니도 일본처럼 날조라고 우길거냐?
꼭 못배운 것들이 사실 확인도 안하고 지 뇌피셜을 사실이라 믿지
일본에 끌려간 도공등 기술있는 조상들은 나중에 돌려보낸다 해도 돌아오기를 포기했다. 왠지 아나? 다 조선에서는 천민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본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으니 누가 오고싶었겠나 ?
천민취급을 받은 게 아니라 천민 취급을 받는다고 왜에서 유언비어를 유포해서 못가게 한건데...
@@billyjean2905 야 생각을 해봐라 천민취급을 받는다고 유언비어를 유포해서 못가게 한거라면 그들이 끌려오기전부터 어떤취급을 받았는지 다 알고있는데 그게 유언비어냐 생각을좀 해봐 어린애도아니고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사람이
천민취급을 받고살았지 양반대접 받고있었는데 돌아가면 천민취급받는다는 뻥이 먹힐것같냐?
@@까고보니진주나옴 뭘 조선인들 끌고가서 노예로 부려먹은 놈들 그렇게 옹호해주냐?
임진왜란 이후 조선인들이 온갖 곳에 노예로 팔려가서 한동안 국제 노예시세가 뚝 떨어졌어
제정신이나 좀 차리렴
저렇게 기술자 대우 해준 사례가 엄청 흔했던걸로 생각하나뵈?
@@billyjean2905너야말로 정신 차려라! 전란 중에 생포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망쳐 소속 부대로 복귀한 병사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 지 사료 찾아보고 공부해본 적 있기나 하냐? ㅉㅉ 병졸에 대한 대우가 그랬는데 수년 간 일본에 억류되었던 저 사람들이 운좋게 조선에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 뇌가 안 돌아가니? 심지어 조선 조정에서는 포로 송환 노력을 안 했다! 그런 나라다! 일본 욕할 게 아니라 조선을 비판하고 볼 일인거다! 이 글러먹은 것아!
조선엔 도공이 흔하니 특별히 대우해줄 이윤 없었지만. 굳이 천하게 대할 이윤도 없었음 ... 일본 도공으로 유명한 심수관의 조상은 고려때부터 조선까지 대대로 영의정 판서 지낸 유명한 집안입니다.
조선에서 천대라니요 ? .. 이후 일본은 판로를 개척해 도공이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조선은 내수용으로만 제조한게 문제일순 있겠지만...
감사
문화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한국이 일본보다는 좀 더 뛰어났던것같다
그러다 일본은 서양문물에 문을 더 일찍열고
한국은 폐쇄적이었다가 덕분에 여러 아픔을 거치고
kpop이나 영화로 문화적으로 뛰어났던 면이 이제야 나타나는듯 ..
요리도 보면 일본보다 한국이 종류도 훨씬 많고 덜 단순함
日本料理の事をあまり知らないようですね。日本料理だって沢山の種類があるんですよ。料理やその他の指標で文化の優劣を定めようとするのは韓国人特有の悪い癖だと思います。
도래인 시절부터 이어진 문화전파...
야마토민족 대다수가 한반도계 원주민과 일본 본토 원주민의 혼혈이라는 학설도 있으니까요.
단지 학설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일본 본토 원주민들도 오래 전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임;;;;
@@이승헌-r4i 야요이 문명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았고 빙하기 때 서해는 육지였음 순다랜드 검색. ㄱㄱ
서로 왔다갔다 했겠지... 옛날엔 한국 일본이 땅으로 연결 됐을거란 소리도 있고.. 실제로 울나라 서해쪽은 중국이랑 땅이 연결 됐었을 거라고 하던데.. 실제로 서해가 물깊이가 낮기도 낮고..
한마디로 로또맞은게지..
일본인의 간악함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민족성이 변하지않는다.
간악한건 타국을 침략하지도 못하는
방구석호랑이에다가 자국민의 60%를
노비로 만든 이씨조선아닐까?
일본은 강제로 데려가는거, 명나라와 청나라는 공녀제도로 여자를 바치라는 거..... 러시아 연해주 강제이주는 일본에 가까운것같음
일본이 한국보다 사기죄, 무고죄가 훨씬 적습니다 😂😂😂😂😂😂😂😂😂
아무리 일본 간악하다 간악하다 해봐야 일본이 여전히 강대국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 유일한 복수는 더 강대국이 되는거지 맨날 천날 일혐해봐야 또 침략당함. 왜 침략을 당했는지 반성하는게 나아가는 길 아닌가? 세계사는 어짜피 침략과 전쟁의 역사임. 지금 강대국들은 수많은 침략을 했고 전쟁에서 승리한 강대국인데 세계에 아무리 호소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이걸 보면 일본인 대부분은 3 ~19세기 초까지 신라, 고구려, 백제, 조선에서 온 조상님이 아닌가 싶다. 문화 전파도 그렇고.. 그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일본인들은 참..
일본에서 처음 농경시대를 연 야요이인부터가 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임. 토착민인 조몬인들을 몰아내고 열도를 차지했는데 이건 삼국시대보다 훨씬 이전
그런식으로 따지면 애초에 한반도에서 쫓겨간 놈들이니 우리와 사이가 안좋을 수밖에 없음.
다 얽히고 섥힌거지 뭐... 그리따짐 일본에서도 임진왜란 일으키기 전에 강경파랑 온건파가 있었는데.. 심지어 항왜들도 있었는데... 경북쪽에 김씨 성 하사받고 자손들 대대로 다 퍼졌을텐디? ㅋㅋ
그 당시에 도자기는 지금의 반도체와 같은 물품이었다 완벽하게 만들수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 그다음이 조선이다
얼마나 도자가가 중요하면 중국의 영어명이 차이나가 되었을까
대부분 나라에서 만드는 그릇은 완벽한 방수가 안되어 쓰다 보면. 물이세지만
도자기 처럼 만들면 그러한 염려가 전혀 없었다
잉?
임진왜란때 끌려간 사람이 10만여명이나 되었어요?
그 당시 인구상황 고려한다면, 10만여명이면 거의 인구유출 수준 아닌가요?
그것도 능력자들 위주로 데려갔을거 아니여...
그 능력자들 사람취급 안한 조선과 그 능력자들 기술자 대우 해준 일본
@@gggg33333ee 잘 보존한건 지지츠
그 능력자들 있어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상놈 취급하던게 조선인지라...
밑에 일뽕들 댓글 보소,,,미친 놈들 ,,,밑에 친일파 매국노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위기다 위기
단순히 취급 차이라고 할 게 아니라 생각해봐야 할 게
일본은 전국시대라 앞서라려면 기술자 우대 할 수 밖에 없고
조선은 안정된 사회라 유출을 걱정함
조선도 임진왜란 이후 상업이 어느정도 발전하기 시작함
전쟁이 미치는 영향
일본 인 들인데 착하네.
희한함.
왜 침략 당했는지에 대한 반성은 없고 침략자들만 악마 만드니 발전은 없고 역사는 반복된다.
그렇다고 침략자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면 안되지요.
@@ganda21moon 팩트는 팩트로 쳐야지.
당시 조선인구 절반이상이 노예렸는데 그건 반성하냐? ㅋㅋㅋ
@@ganda21moon 맞는말인데 저분말은 왜 침략당했는지에 대한 복기와 반성 그리고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네요
@@ganda21moon 몽골이랑 중국은 뭐 어쩔건데 ㅋㅋ 우리도 고구려든 뭐든 부강할때 다른데 침략하지 않았나? 걍 서로 먹고 먹히는 시대였는데 어쩔 수가 있나..
중국에 조공 보내고 공녀 징발 등등 보내진 역사도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상보는 내내 울컥울컥하는건 나만 그런건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씁새들 확마~~
우리나라에서 기술 장인 들은 기술쟁이 취급을 당했으나 먼나라 일본에서는 그만큼 대우를 받았으니... 그생에 불편함은 없었으리.. 만약 조국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죄인 취급을 당했을태니
돌아갈수도 없었을태고..부모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1세대 가 지나고 2세대 부터 잊혀질것이고.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구나.
뭔 개소리냐? 왜 죄인 취급을 받냐, 아주 일본인 대변인 같은 소리만 삥삥하고 자빠져 쌌네
조선인을 노예로 팔아서 그 시대떄 노예시장 물가가 낮아졌다는 오프닝 영상을 못 봤냐?
와전 개 일뽕 이네
화쟁이나
노래쟁이나
춤쟁이나
돈만보면 들고 뜁니다
먹고튀고
그래서 쟁이라고 벌레같은 명칭을준거죠
@@HaJungWoo7 노비로 팔렸다는데 그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꽃노래만 하네!포로 삶이 어떻겠어!
저는 에히메현에서 대학을 다녔던 사람인데요 그때 한국인 유학생끼리 이런이야기를 한적이있어요愛媛 에히미의 앞에 에자가 원래는 愛아이라고 읽죠 근데 유일하게 에라고 발음하는건 시코구의 에히메현이죠 그래서 한국의 영향이 많았겠다 라고 약 20년전에 이야기했던 기억이납니다
일본이 기술자를 우대하고 조선은 천시했으니 조선이 일본에 먹히는것은 당연한 결과였음
와 중세일본은 무슨 동북아버전 바이킹인가
물론 대륙으로 진출한다는 더 큰 야망이 있었겠지만
약탈과 기술공 납치만으로도 꿀 엄청빨았네;;
최신기술들 조선에서 다 파밍해감 ㅁㅊ;;
그런데 바이킹은 서유럽에 거의 동화되고 기독교인이 되죠
미안한데 그저 몇가지 기술만 조선이 앞서있었고 많은 부분에서 일본이 이미 그 당시 조선을 압도했음 그게 임진왜란의 결과고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일본은 조선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선을 다시 침략하지 설마 교과서에서 본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신문물을 전했다는 국뽕적 측면만 믿는건 아니지?
훔쳐서 절에 준걸 '봉납' 이라고 하면, 지금 저걸 훔쳐서 다시절에 보내도 ' 봉납' 이 되는 겁니까? 하고 물어봤으면 하네요 ㅋ
역사를 잊지맙시다!
도대체 지금 태어난 세대가 왜 무능한 조상인들의 역사를배우면서 잊지말아야되는거임??
심지어 인종차별이나 해대면서 일본비난하는 586들이 전파하는 반일을
@@smzkswo8011 신채호 선생 모르삼? 역사를 배우면서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거임! 아~ 참 일본은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더라~
@@smzkswo8011 625 우리세대 아니니 잊어도 되겠노 ㅋㅋ
멍청하니깐 이런 소리를 당당하게 하는거지 ㅇㅇ
일본 도자기는 한국 영향 엄청 크지 ㅇㅇ 한국 도자기 발전에 중국 영향이 큰것처럼
참 친절하시다 일본 분들
興味深い番組でした。
흥미롭다고? 일본인인 당신은 흥미롭지만 한국인이 보면 흥미롭지 않다. 여기서 사라져라.
ㅠㅠ 눈물나
두부 관련한 얘기는 알고 있었는데 한글이 적혀진 불화는 처음 보네요
저 당시(임진왜란)때에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코 베이고 귀 베이고 그리고 일본으로 끌려가서 국외로 노예로 팔려 나가거나 죽어갔고 근대 일제강점기에도 수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끌려가 전쟁에 동원되어 전사하거나 전쟁물자를 만드는 곳에 투입되어 모진 수난을 겪어야 했었다. 역사는 정말 반복되는 것인가?
그건 좀 이상하네요.
일본에서는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으며, 기존의 농민의 잡역을 폐지하고 계약에 의한 봉공제도를 도입하는 등 노동에 관한 시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와 마찬가지로 '계약에 의한 노동'입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노예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 : 오답노트 안함(치욕의 역사를 정신 승리하고 승자를 악마로 만들어 자신의 패배를 합리화하고 정신승리함) 일본 : 오답노트 함(치욕스럽게 패배하면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를 바탕으로 성장하여 복수함)
조선 도공들이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은 이유ㅡ일본에서는 최고 대우, 조선에서는 천시
베틀이 아니라 비단을 만드는 틀이었네요.
임진왜란때 끌려갔던 도공들 임진왜란끝나고 조선에서 데려올려고 갔는데 거의다 안돌아온다고 했음. 왜? 일본에서 훨씬 좋은 사무라이계급으로 대해주고 좋은 대우를 해주니까 안온거지
그리고 그 조선도공 후손들이 조선을 침략함.
데려오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