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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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0 сен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4

  • @명랑거사
    @명랑거사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성삼문 묘당 앞 동네(양촌리 구르개) 살았던 사람입니다. 제 고향입니다.
    역사 전공하고 보니 새롭네요. 어릴적에는 그냥 지나치는 곳이었는데요. 가끔 갑니다.
    그리고 노량진 사당도 가봤고 우연히 헌재재판소 근처 정독도서관도 가봤는데 정독도관이 성삼문 태어난 곳이라고 표시석이 있더라구요.
    구독 누르고 갑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 @황희경-z8j
    @황희경-z8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생각할수록 정말 안타까운 분이십니다!
    불의에 무릎 꿇지 않은 댓가가 너무
    잔혹하고 잔인했어요 😔
    피의 군주 수양대군도 성삼문 선생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그렇게 자기편으로
    삼으려 회유했다지요?
    그런데도 절대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성삼문 선생의 곧은 절개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소름마저 돋습니다.
    38세란 너무 젊은 나이에 가신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요.
    만고의 충신이라 불려지고 추앙받기에
    결코 아깝지 않은 분이십니다.

    • @인문학여행
      @인문학여행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현대시각에서 보면 처자식과 집안의 멸족까지 당할 필요가 있었는지,,
      군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 @이영옥-x8h
    @이영옥-x8h 2 года назад

    오늘 다녀 왔습니다 부인의 삶은 어떠하셨을까 묘소는 어디에 있는지 참 마음이 애달프고 안쓰러워서 많은 생각 들었습니다

    • @인문학여행
      @인문학여행  2 года назад

      찾아보니 부인과 시집 안 간 딸은 외척인 박종우의 노비가 되었네요.
      역모죄는 가장 강력한 연좌제 적용으로 성삼문의 대가 끊기는 멸문지화를 당했네요

  • @user-rh3bx7ed3z
    @user-rh3bx7ed3z 3 года назад +2

    우연히 참배 동감합니다ㆍ거가 어딩교

    • @인문학여행
      @인문학여행  3 года назад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산60-1번지 입니다.

  • @산초-f3z
    @산초-f3z 3 года назад +1

    사육신 성삼문 작년에 지나다 나도 절하고 왔는데

  • @김민우-p1c
    @김민우-p1c 3 года назад +1

    충신 성삼문께서는 좋은 자리에 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 @황희경-z8j
      @황희경-z8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예! 동료 사육신분들과 함께 좋은 곳에서 영면하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 @peterpandream777
    @peterpandream777 2 года назад

    집현전 학자이자 충신의 상징이신 "성삼문" 님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닫고, 감동을 받습니다.

  • @kwleel5874
    @kwleel5874 3 года назад +2

    황찬은 훨씬 후대의 인물임을 육당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즉 홍무정운이 실록에는 우리가 만든 책임을 말하고 있으나 강단학계에서는 명나라책이라 하면서 황찬을 거론하고 있습니다.더 고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 @조해인-d5z
    @조해인-d5z 3 года назад +4

    성상문은 충신이었읍니다

  • @인문학여행
    @인문학여행  3 года назад +1

    내용수정 ; 조선시대 역모죄는 9족이 아닌 3족을 멸함. 삼족(三族)이 대개 부족(父族), 모족(母族), 처족(妻族),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삼족(三族)은 위로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백부·숙부 등 조족(祖族), 옆으로 형제와 그 소생인 조카 등을 포함한 부족(父族), 아래로는 아들과 손자 등을 의미하는 기족(己族)을 의미한다.

    • @인문학여행
      @인문학여행  3 года назад

      @Amicus 저도 근래에 사료를 보고 알게되었는데, 아직 이견이 있습니다. 갑신정변에 주역들도 3족의 멸했는데, 주동자인 김옥균의 생가는 마을자체를 없애버려 지금도 방치되고 있지만, 서재필의 장인은 무사했죠. 처가를 제외하는 것은 출가외인의 남성중심의 성씨개념 같습니다. 결국 잔인한 연좌제로 절대왕권의 강화하였고, 혁명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되었죠. 조선시대에 혁명은 다른 전주이씨를 왕으로 옹립하는 중종반정, 인조반정 정도였으니 연좌제는 전주이씨의 입장에서는 성공한 제도였죠.

  • @마라고-v9p
    @마라고-v9p 3 года назад

    擊鼓催人命
    回頭日欲斜
    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
    둥둥둥 복소리 인명을 재촉하는데,
    고개돌리니 해가 지려 하는구나.
    황천길에 주막 하나 없다는데,
    오늘밤 누구집에서 묵어 갈거나?
    가시는 길이 얼마나 막막했으면 이런 시를 다 지어셨을까?.
    참으로 애석하도다!!!.
    근보 선생의 의거가 성공했더라면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가 없었을 뿐만아니라, 임진란, 정묘란, 병자란,한일합방의 치욕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수양과 한명회의 죄업으로 발생한 일이다.

    • @인문학여행
      @인문학여행  3 года назад

      동서고금에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1인 절대왕정 때문인 듯 합니다.
      즉, 왕이 전쟁하자고 하면... 그게 그냥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인 거죠.
      현대사회에 전쟁이 없는 이유는 정치외교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고
      임진란, 병자란, 한일병합 등은 각 각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 @마라고-v9p
      @마라고-v9p 3 года назад

      @@인문학여행 유전학 공부 좀 해보시지요. 조선의 역사는 계유정란을 기점으로 크게 왜곡됩니다. 수양대군의 손자 성종이 잘산군으로 있을때, 연산군 생모 폐비 윤씨가 시중을 들었지요. 그뒤 한명회의 딸과 혼례를 올렸으나 일찍 죽자, 폐비 윤씨를 성종이 고집하여 계비로 맏아들이고, 연산군을 낫지요. 이 폐륜아 연산군이 2개의 사화를 일으키지요. 이후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이 됩니다. 중종은 우유부단하고, 어리석은 자 입니다, 이때 기묘,을사사화가 일어납니다. 명종 이후의 조선왕조 핏줄은 전부 중종과 창빈 안씨 후손들입니다.
      말한마디 잘못하면 목이 달아나는데 어느 누가 바른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사화가 몰고온 폐해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임진란을 맞은 거지요. 그 당시를 보면 사소한것 하나 까지도 전부 조정에다 상소를 올려 어찌할까요? 하고 물었다는 겁니다.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선조, 인조에 이어 흥선대원군, 고종,순종이 다 중종과 창빈안씨 핏줄이지요. 만일 단종의 핏줄이 조선 왕조의 대를 이었다면 전혀 다른 역사가 펼쳐 졌을 것입니다.
      수양의 핏줄 연산군과 중종, 그뒤를 이은 중종의 핏줄 선조,인조, 고종이 나라를 망쳤어요. 동의가 안된다면 유전학적으로 접근해 보시지요.

  • @설정의
    @설정의 Год назад

    세조와 이방원

  • @kwleel5874
    @kwleel5874 3 года назад +1

    조선이 이 반도에 없었는데 어찌 성삼문의 묘가 이땅에 있을수 있을런지요.. 경복궁을 보고 첨성대를 보고 의문이 없다면 이 글이 무슨 이유가 있을까하지만, 구한말 이땅을 다녀간 서양인들의 기록을 보면 1926년까지 조선은 현 중국대륙에 있었던것이 서지적으로 증명이 되지요..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백두산으로 구한말 서양인들이 기록한 백두산이 어딘지를 찾는다면 강단사학의 허구는 단번에 밝혀지겠지요..서양인들은 백두산이 알타이산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일만년 조선의 강역이 자연스레 나올것입니다..

  • @강연철-n5f
    @강연철-n5f 3 года назад

    성삼문 선생이 지 친구인가 성삼문의 묘가 뭡니까? 선생의묘도 있는데

    • @인문학여행
      @인문학여행  3 года назад

      사료는 인물에 존칭, 호칭을 안합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모세의 기적, 나폴레옹의 원정,

    • @나때는말이야명언.격
      @나때는말이야명언.격 3 года назад

      학예가 뛰어난사람 을 높여 이르는말입니다.

    • @서리태콩
      @서리태콩 22 дня назад

      성삼문묘에서 차로 20여분거리에 견훤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