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에 조선을 방문한 오스트리아 여행가가 쓴 '조선, 1894년 여름'이란 책의 관점도 흥미로운데, 작가는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이 조병갑의 횡포뿐 아니라 당시 조선인들이 처한 경제적 문제라고도 해석하죠. 이 내용뿐 아니더라도 이 책이 그린 조선의 모습은 굉장히 새롭더라고요! 역사에 관심 많으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듯해요!
근데 우리나라가 답이 없는게 드라마나 여러 민족주의나 국뽕 서사에서 그런 민씨나 고종 등 이씨 왕조나 조선의 정치권력들을 빨아주고 그들이 이 땅의 이 사회의 주체라고 생각한다는거죠 민중들의 집단적 저항과 혁명이라는 훌륭한 동학 농민 혁명이 있는데도 이것이 주체가 아니라 왕조 권력과 사대부 권력층들을 주체로 보다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때 농민군이 나라를 뒤집어 엎고 민주주의 실현하고 민중이 엎은 나라가 댓으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도 크게 바뀌었을 겁니다. 파리 코뮌처럼 엄청난 사건이었을텐데 안타깝죠 정말 중국이랑 일본 끌어들인 정치권력들 때문에..
우금치에서 동학군을 괴멸시킨건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 관군이였습니다. 우금치 전투에 참여한 일본군은 후비부대 1개 중대인데, 이들은 지금으로 치면 예비군 부대로 기관총 같은 중화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금치에 기관총 포대를 설치하고 수만명의 동학군을 몰살시킨건 조선 관군이였던거죠. 아무리 동학군이 수만명이 넘어도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정면으로 붙어선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의 실패를 외세 개입 탓으로 보기 힘듭니다.
사실 그걸 먼저 제안한건 고종이라고 해요. 사실 그 당시 민씨 정권 관료들은 청나라군에 파병요청을 하면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군이 들어와서 조선 땅이 전쟁터가 된다고 만류했는데도 고종과 민비(이 당시까지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지 않았으니 민비라고 쓰는게 맞습니다.)가 일본의 군사력이 갑신정변 때 그 수준일거라 일본이 청나라를 이길 수 없다라고 오판한 상황에서 관료들 의견 무시하고 밀어붙인거라고 해요. 이스라엘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죠. 바로 예레미야가 남유다지역에 바빌론하고 친하게 지내야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무시하고 당장 강해보이는 이집트하고 친하게 지낼려고 하다가 바빌론의 침략으로 망했죠.
사소한 걸 다 보관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기록을 어디까지로 볼지 합의하고, 역사를 중립적으로 바라보아 정치논리를 개입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sns에 넘쳐나는 정치글은 때도 장소도 맞지 않고, 작성자가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낙서 이하의 똥찌끄레기같은 것들이 많습니다. 빅데이터나 AI를 동원해도 그런 출처로 인한 정보오염은 걸러내기 힘듭니다.
참 단순하네... 왜 조선인들이 전부 악 이라고 생각하지?? 지금도 국민의 힘?? 더불어 민주당 이 두당이 서로 물고 싸우고 하듯이 그당시에도 마찬가지임. 정권을 잡으려는 자 정권을 지키려는 자 이들이 있기에 역사라는게 감춘다고 감출수 있는게 아님. 동학혁명군이 들고 일어나서 서울로 진격할때 그 과정에서 대원군측과 어느정도 접촉도 있었고 그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고종 민비 ... 특히 민비는 민비시해 당하기 이전에도 정치세력들이 암살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음.. 그 배후 정치세력들도 다수 있었기에 역사는 기록되는것임. 헌데 조선놈의 문제... 궁중암투 권력 대결 기우제 등등 이런 이벤트 말고 정작 서민들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는것... 조선 아이들은 뭘하고 놀았고 축제는 어떤게 있었고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운동을 했고 등등 소소한 삶의 흔적 들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는게 문제임. 상당히 후진국이였던거지,, 가령 일본은 영조시대때 벌써 백성들이 좋아하는 음식 많이 팔리는 음식 어떻게 만들고 얼마나 소비하는지 등등 다 기록되어있으나 우리는 의복 변천사도 몰라서 가끔 조선시대 무덤 꺼내어 시체가 한복 입고있으면 그걸 꺼내어 연구하는 판이니..
그 조병갑 증손녀가 바로 노무현이 임명한 조기숙인 건 알고 있니? 그 조기숙이 청와대 교육 수석일 때, 자기 증조 할배는 송덕비 받아서 목민관인양 역사 왜곡했었다. 조병갑이 정말 목민관이었다면, 동학 농민군은 폭도란 얘기... 의외로 민주당에 친일파들도 박혀 있고, 그 친일파들이 마치 민족진영인양 친일파 색출하겠다고 난리 친것도 바로 노무현 정권 때 얘기. 김희선 신기남 전 의원이 당시 지방선거 직전에 한나라당을 겨냥하며 친일파 색출하겠다고 완장차고 난리. 알고 보니, 두 의원의 아버지들이 일제시대 때 오장을 하며 조선 수탈의 첨병을 했던 친일파... 이런데도 뻘소리 하는 밑에 것을 보면 한심 그자체...일본과 외교 실패를 민족 감정으로 이용해서 덮으려 했던 문재인 같은 인간을 추종하며, 음주운전 2번에 멀티전과자가 사법제재 피하려고 방탄을 한 것도 모자라, 이젠 간헐적 단식으로 난리치는데도 그런 인간을 추종하고 있으니...진실은 개나 주고 선동에 목매는 멍청한 민주당 인간들은 무식이 자랑인가?
정작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간단한 전모와 결과만 가르쳐줘서, 그냥 크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사건이라고만 배웠고 동학에 대한 거나 달달 외우게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히려 세계에서는 프랑스 혁명처럼 민중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일어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으로 평가해주는군요. 만약 당시 조선에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이 혁명의 결과가 어떻게 됐을 지...
0:59 파인애플 피자를 탄압하지 말아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동학농민운동 한국사능력검정 준비하면서나 고등학교 한국사 시험 때 공부한 기억이 나네요... 그 때는 저 시기에 역사적인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머리아프게만 느껴졌었는데 지금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세삼 무겁게 느껴지네요... 동학농민운동이 결국 실패로 끝나고 청, 일 두 나라의 전쟁터로 전락한걸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조상님들도 최선을 다 해 싸워오신 것자체에도 우리가 자랑스러워할만한 역사라고 생각됩니다. 의미있는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제금동대향로 그래도 우리나라는 역사에 비해 정도가 심각합니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 삼국사기인데요 고대 근동이나 중국, 로마 수준까지의 역사 기록은 바라지도 않지만 일본에 비해서도 너무 사료가 없으니까 아쉬울 뿐이죠 반대로 조선 시대 기록은 너무 방대해서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기 전까지는 정리하기도 힘들었고
@@zzang-mathis 여몽 전쟁 때 우리나라 목조 건물이 80%나 소실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기록이고 유물이고 남아있을 수가 없었죠 거기다 임란도 터지고 일제강점기까지 겪으면서 문화재 보존을 할 수도 없는 시대였었고 대신 그 이전 역사는 중국 사료에는 꽤 남아 있어서 교차 검증도 가능하고 괜찮음 고려 시대가 문제지.
"지금 우리 임금께서는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자애롭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며, (중략) 강직한 신하가 전하를 보좌하여 밝게 한다면 요순(堯舜)의 덕화와 문경(文景)의 통치를 손꼽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신하라는 자들은 나라에 충성을 다할 생각하지 않고 다만 녹봉과 지위를 도둑질하며, 전하의 총명을 가리고 아부하고 뜻만 맞추면서 충성을 간하는 말을 요사스러운 말이라 하고, 정직한 자를 비도(匪徒)라고 한다. " " 우리는 초야에서 사는 백성이지만, 임금의 땅에서 먹고 임금이 준 옷을 입고 있으므로 나라의 위태로움을 좌시할 수 없다. 이에 전국은 한마음으로 수많은 백성과 의논하여 오늘 이 의로운 깃발을 들어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안하게 만들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를 하였다. " *, 전봉준*
영상 잘 봤습니다. 동학의 근본인 천도교의 시초인 경주 현곡 용담정 근처에서 살고 있는데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우연히 알았지만 소파 방정환도 천도교출신(아내가 손병희의 딸)이라 용담정 근처에는 방정환어린이집이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은 좋았지만 결국 청일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지금와서야 팔만대장경보고 와 이런 유물을 남기다니 정말 조상님들 짱이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당시 정세로보면 진짜 미친생각이었음. 나라가 외세에 망해가는데 군비에 엽전한냥 더 보태지못할망정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내하면서 이 작은나라에서 세계최대 인쇄본을 만듬. 지금으로 따지면 IMF때 국난극복 한답시고 정성드려 기도해야한다며 나라에서 롯데월드타워만한 교회를 세우는거랑 똑같음.
비거는 임란 전쟁 중이기도 했고 기록이 너무나 부실해서 추정할 뿐이지만 거북선은 고대선박치고는 자료가 굉장히 풍부한 편입니다. 산타 마리아니 트리니다드 같은 유명한 선박도 사실 기록이 매우 빈약해서 현대 복원된것도 대부분 추정치입니다. 그에 비하면 거북선 설계도면과 치수는 매우 명확한 편입니다.
.... 조선왕조실록이 고려실록을 참고하여 이어서 만든것은 아시나요? 고구려,백제,신라 각각 역사서가 몇 종류씩은 있었고 (권 수가 아닌 종류가) 마찮가지로 발해나 부여,고조선에서도 역사서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위 삼국의 역사서인 신집,유기,국사,백제본기 등등과 같이 전란이나 기타 이유등으로 인해 실전됐을 뿐인거죠
사실 고려는 군사력, 외교력도 높고 전쟁도 많이했지만 기록에 대단히 집착하거나 그런건 없었음. 한국사에서 기록에 집착한 시대는 조선시대때부터임. 조선에 기록에 미쳤던 이유는 원래 성리학 자체가 전쟁,군사,문화, 역사,과학 기술, 반란 등등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미칠 정도로 기록해서 후대에 국가 발전에 이용하게끔 하는 사상이기 때문.
이 시기에 조선을 방문한 오스트리아 여행가가 쓴 '조선, 1894년 여름'이란 책의 관점도 흥미로운데, 작가는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이 조병갑의 횡포뿐 아니라 당시 조선인들이 처한 경제적 문제라고도 해석하죠. 이 내용뿐 아니더라도 이 책이 그린 조선의 모습은 굉장히 새롭더라고요! 역사에 관심 많으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듯해요!
감사합니다~
조선을 엄청 미개하게 봤겠네요 ㅠㅠㅠㅠ
감사합니다
꼭 읽어 보겠습니다.
사발통문이 저희 집안의 고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제 고조할아버지 성함이 사발통문에 적혀져있습니다. 할아버지, 큰아버지께 전해들은 사발통문과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유튜브 영상을 보게되니 반갑습니다.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 집안이십니다.. 동학 전쟁서 이겼으면 아마 일본을 잠재우고 세계 2차대전이 유럽에서만 일어났을텐데...
@@skyyu8777 동학에 대해서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해 보이십니다.
@@노라노라꿈나무뭘 고찰하나요?
@@노라노라꿈나무ㅋ
@@skyyu8777 동학농민운동을 독립운동과 혼동하는듯하네요. 외세의 침략을 받던 상황인지라 그런 성격도 포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론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민란입니다.
태종 이방원:민망하니 기록하지말라!
사관 민인생:'민망하니 기록하지말라! 라고 하셨다' 기록했습니다!
ㅋㅋㅋ
태종이 말에서 떨어지고 둘러보니 사관이 보고 있었기에 사관은 이를 적지 말라고 했으나 상께서 이를 적지말라 하셨다고 쓴 일화
세종의 며느리가 궁녀와 동성애를 하다 처벌받자 세종이 민망한 일이니 사관은 이를 적지말라고 했으나 상께서 적지말라고 쓴 일화 등
만고역적 이성계가 고려사서를 태우지 않았다면 세계1위
@@jaehoonha6 (만고역적이 세운 조선이 만든 한글을 사용하면서)
@@winter413wind 한글 만든건 세종대왕님인데 왜 이성계 욕하는 말에 풀발기함?
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해 근현대사를 보면 항상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나라를 바꾸려한것이 대단함
잃을거 없는 사람들이 진짜로 무서운법임
엄밀히 말하면 태평천국운동이랑 비슷함.
전 세계에서 언제나 발생하는 사태임.
프랑스 시민혁명보면 눈물 흘리겠네
ㅋㅋㅋㅋㅋㅋㅋ 뭐가대단하냐 노예로살다가 선넘으니까 날뛴거지 나라를 바꾸려고한게아니다~
@@liqui-gelsadvil6867 대체 이런 정자는 세포분열을 왜 하는 걸까..
승정원일기는 ㄹㅇ 안타깝더라고요... 인조 이전까지 합치면 ㄹㅇ 방대하다는 말도 모자랐을텐데
사초 씻어내버리지 말지.. 물론 사관이 사담형식으로 적은거라 목잘릴까봐 그런거도 있지만은 너무 아쉬움
@@Sigmar-guide-us 없애지 않은 사초도 있습니다만, 사초를 없애지 않으면 실록과 역사적 다툼이 일어날 소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실록의 권위를 까먹는 짓이죠. 지금이야 다양한 역사적 관점을 적는게 중요하지만 조선시대는 왕조국가라는걸 잊어선 안됩니다.
@@별난키다리 누가 몰러~ 아쉽다는거~
이전에 왕들이 백성들의 삶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했던 이유중 하나가 이런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있었는데 이후에 세도정치 시기가 되면서 모두 무너져서 순리대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외에도 비슷한 일로는 임술농민봉기가 있죠.
"상께서 적지말라 하셨다"라고 써놓기...😂😂😂
어디서 왕이 쾌변한 일을 적었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아침 전하께서 오랜만에 묵은 매화를 하셨다"
쓰즈믈르그ㅠㅠ
태종 이방원: 하 이 변태ㅅㄲ.. 야, 너 그냥 나가라.
사관:아 하나만 더 적고 가도 되나요? 마무리는 해야 되서..
태종 이방원:ㅇㅇ
사관: "상께서 나를 내쫓으셨다"
태종 이방원:....
역시 기록의 나라 조선답네요 ㅋㅋㅋㅋ 😂😂
떨어진건 적지 않았다...
동학 농민 항쟁을 전국적으로 확산 시켜서 근대 개혁으로 가야 했는데,,,, 민씨와 고종이 청나라와 일본을 끌어들이면서 파국을 맞는 정말 어쳐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죠.
요즘 처럼 아쉽고 답답하지만, 그때 동학 농민항쟁을 했던 분들을 기리면서 영상 잘 보았습니다~~.
갑오개혁에서 동학농민 운동이 주장한 과부재혼 허용,노비제 폐지, 관리 채용의 지역 타파등을 들어주긴 했죠
근데 우리나라가 답이 없는게 드라마나 여러 민족주의나 국뽕 서사에서 그런 민씨나 고종 등 이씨 왕조나 조선의 정치권력들을 빨아주고 그들이 이 땅의 이 사회의 주체라고 생각한다는거죠 민중들의 집단적 저항과 혁명이라는 훌륭한 동학 농민 혁명이 있는데도 이것이 주체가 아니라 왕조 권력과 사대부 권력층들을 주체로 보다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때 농민군이 나라를 뒤집어 엎고 민주주의 실현하고 민중이 엎은 나라가 댓으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도 크게 바뀌었을 겁니다. 파리 코뮌처럼 엄청난 사건이었을텐데 안타깝죠 정말 중국이랑 일본 끌어들인 정치권력들 때문에..
그러기에는 돈이 너무 부족해서... 중국도 돈으로 근대화 시도했지만 실패했었고....
우금치에서 동학군을 괴멸시킨건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 관군이였습니다. 우금치 전투에 참여한 일본군은 후비부대 1개 중대인데, 이들은 지금으로 치면 예비군 부대로 기관총 같은 중화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금치에 기관총 포대를 설치하고 수만명의 동학군을 몰살시킨건 조선 관군이였던거죠. 아무리 동학군이 수만명이 넘어도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정면으로 붙어선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의 실패를 외세 개입 탓으로 보기 힘듭니다.
사실 그걸 먼저 제안한건 고종이라고 해요. 사실 그 당시 민씨 정권 관료들은 청나라군에 파병요청을 하면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군이 들어와서 조선 땅이 전쟁터가 된다고 만류했는데도 고종과 민비(이 당시까지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지 않았으니 민비라고 쓰는게 맞습니다.)가 일본의 군사력이 갑신정변 때 그 수준일거라 일본이 청나라를 이길 수 없다라고 오판한 상황에서 관료들 의견 무시하고 밀어붙인거라고 해요. 이스라엘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죠. 바로 예레미야가 남유다지역에 바빌론하고 친하게 지내야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무시하고 당장 강해보이는 이집트하고 친하게 지낼려고 하다가 바빌론의 침략으로 망했죠.
동학농민운동은 매체에서 그리 많이 다루지 않긴 했죠. 녹두꽃이 가장 최근작... 대중적으로 많이 알릴 필요가 있긴 하다는...
대다수의 혁명,시위는 의도를 벗어난 사람들이 많죠 물론 그것을 부정하면 안되죠
어차피 외국인들은 한국 역사에 관심없음 ㅋ
@@피드백-잘하는_윤수호 그건 반한 일뽕 버러지들의 판타지 반한 소설ㅋ
@@miririririririri 그럼 평생 노예로 살던가요 노예가 주인님들은 잘못이 없다고 열심히 빨아주는 세상 ㅉㅉ
@@winter413wind 그럼 안중근 의사는 그럼 애꿎은 사람들만 토벌한거네요 ㄷㄷ
사발통문이 세계 기록유산 지정된거 첨 알았네요ㅎㅎ 퍄퍄킴이랑 콜라보 아이디어 좋네요ㅋㅋ
몇년전에 가족들과 동학농민의 발자취를 걷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요 그때사발통문과 전봉준장군 고택을방문하고 왜일어날수밖에 없는지 설명을 들었는데 다시들어보니 또 슬프네요 잘보고갑니다
통문 하나가 수많은 역사의 상징이 되고 세계의 유산과 함께 기록으로 남게되니 이런 것뿐만 아니라 사소한 거 하나하니 잘 기록하고 보관하여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위안부 기록물도 등재되길...
@@시아대위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한데 언젠가 될 거 같음
사소한 걸 다 보관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기록을 어디까지로 볼지 합의하고, 역사를 중립적으로 바라보아 정치논리를 개입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sns에 넘쳐나는 정치글은 때도 장소도 맞지 않고, 작성자가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낙서 이하의 똥찌끄레기같은 것들이 많습니다. 빅데이터나 AI를 동원해도 그런 출처로 인한 정보오염은 걸러내기 힘듭니다.
@@yacht-responce 그런 똥찌끄레기 글 조차 보관해야 하는 이유는
그 추악함을 보관해서 반면교사로 삼아 사람들에게 경각심과 이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라는 지표가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arondight 정신병자들의 말은 정신병 연구하는 사람들한테나 유용하죠. 1차자료를 반면교사로 쓰면 교육적인 의미보다 악영향이 더 큽니다.
조병갑 후손이 국회의원 된거 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ㄷㄷ 이런 것들도 다 기록이 있기 때문에 후에 구분이 되었다는
그 전설의 열우당 대첩 😂😂😂
조기숙인가 맞죠? 제 휴대번호가 그사람이 예전에 쓰던 번호인데 은행압류 됐다는 문자왔어요
좌파들은 친일파 타파쇼하고 학정 운운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실제는 그들 조상이나 부모가 악질 친일지주나 친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이었지. 그래서 요새 친일청산쇼 안하고 과거 친일파 이미지 이용한 친일타파프레임쇼만 함.
@@자라라모발아그 번호 제가 이어 받았는데 전산 착오라서 압류 다 풀렸다고 문자오더군요
연좌제 따지긴 뭐하니 그럴순 있는데 씁쓸하죠 ㅋㅋ
조선 초기: 이거 어떤게 기록하고 정리하는거야? (모르니깐) 일단 다 적어
조선 중기: 선배님들은 다 적었구나. 다 적어야지
조선 말기: 다 적는게 전통 ㅇㅇ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까 ... 정답입니다. ^^;
ㅋㅋㅋ정읍시 홍보용 어깨띠 두르고 있는거 너무 귀엽네요
들어보기만 한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정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꼭 가봐야겠네요!
고종의 최악의 오판인 청군 파견을 요청한것
그래서 텐진조약으로 일본군까지 합세해서
국권이 점점 망조로 가게 됨
그래서 후에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솔직히 조선은 무슨 짓을 했어도 식민지 루트 벗어나기 힘들었을거에요. 일본보다 먼저 개항을 했다면 모를까 이미 일본은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운요호를 끌고 쳐들어온거라...
대충 삼대 암군 어쩌고..
지역홍보도 되고 유익하니 좋네요.
조병갑이 후손은 정치한다 ㅋㅋㅋ 후...
ㅋㅋㅋㅋㅋㅋㅋㅋ웃기던게 증손녀 비난하던 게 조선일보....왜뽕질에 왜뽕 매국노 옹호하던 기레기가
@@bestoilbanks436 조병갑의 후손은,,, 노무현 정권 핵심 당직자, 이화여대 교수 조기숙 이지요 ㅋㅋㅋ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쪽팔린 과거를 감추지 후손들이 우리들보다 더 낳은 판단을 낳을 것이라고 후대를 생각해서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임 당장 역사왜곡 시키는 사례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뉴라이트 ...라던지
환빠 라던지
그놈의 낳.. 뭘 낳아 ㅠㅜ
참 단순하네... 왜 조선인들이 전부 악 이라고 생각하지??
지금도 국민의 힘?? 더불어 민주당 이 두당이 서로 물고 싸우고 하듯이 그당시에도 마찬가지임.
정권을 잡으려는 자 정권을 지키려는 자 이들이 있기에 역사라는게 감춘다고 감출수 있는게 아님. 동학혁명군이 들고 일어나서 서울로 진격할때 그 과정에서 대원군측과 어느정도 접촉도 있었고 그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고종 민비 ... 특히 민비는 민비시해 당하기 이전에도 정치세력들이 암살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음.. 그 배후 정치세력들도 다수 있었기에 역사는 기록되는것임.
헌데 조선놈의 문제... 궁중암투 권력 대결 기우제 등등 이런 이벤트 말고 정작 서민들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는것... 조선 아이들은 뭘하고 놀았고 축제는 어떤게 있었고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운동을 했고 등등 소소한 삶의 흔적 들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는게 문제임.
상당히 후진국이였던거지,, 가령 일본은 영조시대때 벌써 백성들이 좋아하는 음식 많이 팔리는 음식 어떻게 만들고 얼마나 소비하는지 등등 다 기록되어있으나 우리는 의복 변천사도 몰라서 가끔 조선시대 무덤 꺼내어 시체가 한복 입고있으면 그걸 꺼내어 연구하는 판이니..
낳을 것 -> 나을 것
조병갑, 이용태 같이 사람 껍데기만 쓴 이기적인 기회주의자들은 정말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있으니 항상 주의해서 처리해야 겠습니다
그러게요...할말하않
읍읍읍 읍읍읍
전 압수수색 이 무서워서 아닥합니다
@@최요한-n6g 그러게....멍청해서 검사가 영장 발부하는 지 아는 민주당 스탈...무식한 게 자랑이라능...
그 조병갑 증손녀가 바로 노무현이 임명한 조기숙인 건 알고 있니? 그 조기숙이 청와대 교육 수석일 때, 자기 증조 할배는 송덕비 받아서 목민관인양 역사 왜곡했었다. 조병갑이 정말 목민관이었다면, 동학 농민군은 폭도란 얘기...
의외로 민주당에 친일파들도 박혀 있고, 그 친일파들이 마치 민족진영인양 친일파 색출하겠다고 난리 친것도 바로 노무현 정권 때 얘기. 김희선 신기남 전 의원이 당시 지방선거 직전에 한나라당을 겨냥하며 친일파 색출하겠다고 완장차고 난리. 알고 보니, 두 의원의 아버지들이 일제시대 때 오장을 하며 조선 수탈의 첨병을 했던 친일파...
이런데도 뻘소리 하는 밑에 것을 보면 한심 그자체...일본과 외교 실패를 민족 감정으로 이용해서 덮으려 했던 문재인 같은 인간을 추종하며, 음주운전 2번에 멀티전과자가 사법제재 피하려고 방탄을 한 것도 모자라, 이젠 간헐적 단식으로 난리치는데도 그런 인간을 추종하고 있으니...진실은 개나 주고 선동에 목매는 멍청한 민주당 인간들은 무식이 자랑인가?
심지어 그 둘은 모두 친일파이기까지...
@@최요한-n6gㅜㅅㅠ
우리의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가 정말 똑똑해야 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똑똑해야됨. 지도자만 똑똑하면 왕정이나 독재정이 효율있지
@@kr900924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가 나온다고 하지요
정작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간단한 전모와 결과만 가르쳐줘서, 그냥 크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사건이라고만 배웠고 동학에 대한 거나 달달 외우게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히려 세계에서는 프랑스 혁명처럼 민중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일어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으로 평가해주는군요.
만약 당시 조선에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이 혁명의 결과가 어떻게 됐을 지...
프랑스혁명처럼 권력자들 처단
흥선대원군이 재집권 했을걸요
얻어맞고 진압되지 않았을까요
@@저는기어다닐거에요일본군이나 청군 없이 정부군이랑 싸웠을때는 나름 잘 싸웠던거 보면 한양이 털렸을지도
갑신정변이면 몰라도 동학농민운동은 별로 좋을 거 없었을 듯. 애초에 종교단체가 혁명이랍시고 뭐 해봤자 절대 좋은 꼬라지 안 남.
영상 퀄리티도 좋고 내용도 재밌고 캐릭터도 너무 귀여워요ㅋㅋㅋㅋ 앞으로도 오랫동안 영상 꾸준히 올려주세요!
우리가 오늘날 대부분 평등한 기회를 얻으며 살아가는 것도 다 이런 노력이 있기 때문이겠죠?
노력만 있었지 실질적으로는 핵 두방으로 된거죠
민주주의: ??????????
맞습니다. 스스로 자주적으로 행동할수 있게 하는 생각와 양식이 있습니다.
자유는 누가 돕는다 하여 쟁취되는것이 아닙니다.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은 폄하한다 하여 없어지지 않습니다.
@@youngukkwon민주주의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youngukkwon 일본의 패망=조선의 독립이 아닙니다.
핵 두 방은 일본의 항복시킨 것이지, 조선을 독립시킨 것이 아닙니다.
미스터 갈리폴리도 조선독립을 반대했을 정도로 소련을 제외한 열강들은 식민지의 독립에 절대 우호적이지 않았으니까요.
내 고장 역사를 이렇게 알려주시다니~!!! 매번 잘 보고있습니다.
3:48 아이러니한건 이후 동학농민운동의 주동자들에게 처벌을 내린이가 조병갑이라는것...
0:59 파인애플 피자를 탄압하지 말아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동학농민운동 한국사능력검정 준비하면서나 고등학교 한국사 시험 때 공부한 기억이 나네요... 그 때는 저 시기에 역사적인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머리아프게만 느껴졌었는데 지금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세삼 무겁게 느껴지네요...
동학농민운동이 결국 실패로 끝나고 청, 일 두 나라의 전쟁터로 전락한걸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조상님들도 최선을 다 해 싸워오신 것자체에도 우리가 자랑스러워할만한 역사라고 생각됩니다. 의미있는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민들은 먹고살기위해 스스로 움직였는데 외국에 도움을 청하는 조정이니...
민심을 읽지못하고 제압만을 목표로 삼고있는 꼴을 보아 저때부터 국운이 다 하였다고 보입니다
하와이안피자는 탄압당해야 마땅하다!! 맛역적은 혀를 잘라버려야함
@@gosemf390그쵸.. 게다가 정조가 죽은뒤 세도정치가 63년 일어나고, 흥선대원군이 잡혀가고, 계속해서 힘들어진건 백성들..
1차와 2차 봉기당시 무장 수준도 차이가 심했다고 했는데 1차 봉기당시에는 정부군의 신식무기를 노획했고 그중에는 자신들을 도륙낼 게틀링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화해하면서 무장을 해제했기 때문에 2차봉기당시 무장이 1차봉기보다 매우매우 빈약했다는 말이있죠.
왕이 말에서 타다가 떨어졌는데
왕:야 쪽팔리니까 이건 실록에 적지마
조선실록:전하께서 말타다가 떨어지셨는데 쪽팔린다고 쓰지 말라고 하였다...
좋은 내용의 영상을 귀엽게 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학에 대해 다루는 영상은 많지 않은데 영상이 귀여워 친근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 기록물이 많은건 사실이나 대부분 조선시대부터임. 고려시대를 포함한 그 이전시대에는 비교적 사료가 부족해서 한국사를 전공으로 하시는 분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합니다. 주로 일본과 중국의 외국사료로 추정을 하고 있어서 많이 힘들다고 하네요.
어느나라나 다 과거자료 소실되서 이웃나라 사료랑 비교 많이 합니다
@@백제금동대향로 그래도 우리나라는 역사에 비해 정도가 심각합니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 삼국사기인데요
고대 근동이나 중국, 로마 수준까지의 역사 기록은 바라지도 않지만 일본에 비해서도 너무 사료가 없으니까 아쉬울 뿐이죠
반대로 조선 시대 기록은 너무 방대해서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기 전까지는 정리하기도 힘들었고
@@zzang-mathis 몽고때 한번 타고, 임란때 한번 또 타고, 식민지되서 조선인 말살정책때 한번 또 탔으니
남아있는게 더신기한거긴합니다.
@@zzang-mathis 여몽 전쟁 때 우리나라 목조 건물이 80%나 소실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기록이고 유물이고 남아있을 수가 없었죠 거기다 임란도 터지고 일제강점기까지 겪으면서 문화재 보존을 할 수도 없는 시대였었고 대신 그 이전 역사는 중국 사료에는 꽤 남아 있어서 교차 검증도 가능하고 괜찮음 고려 시대가 문제지.
그래도 삼국사기가 고대서 치고 상당히 중립적이고 나름 정확한 사료를 바탕으로 작성됬다는게 위안거리임. 역사 연구에 많이들 교차 검증한다는 일본서기나 고사기를 보면 국뽕판타지 수준으로 싸갈겨 놨음....
안그래도 다이어리 꾸준히 잘 쓰고 있었는데.. 괜히 그런게 아니었군요 ㅎㅎ
기록물은 저렇게 많은 데 왜 한국사는 대충 쓴 느낌으로 가르치노? 난 기록이 없는 줄 알았어. 이건 교과 과정이 잘 못 된 거라고 본다.
전후 국내 정치가 개판이고 돈도 없어서... 근래야 연구가 많이 이뤄집니다. 민족 역사에서 부여가 진짜 중요한데 학계에선 이제야 부여 박사가 나온다고 함..
찾은 기록물이 많지않았을때의 역사를 가르친것도 있고 너무 많이찾아서 해석본을 만든게 해석할것보다 확연히 적어서 그럼..
수능 한국사 자체가 초딩도 1등급 맞을 수준으로 쉽게 내는 추세라 어렵고 복잡한건 다 생략해버림 ㅋㅋㅋ
너무 방대해서 그렇습니다. 추리고 추려서 학교 커리큘럼에 끼워 맞춘것이죠.
아직 조선시대 기록물도 다 번역이 안됐대요.
옷소매 붉은 끝동에 정조와 덕임 러브스토리도 최근에야 번역되서 알려진거라고...
1분전 귀하다...재밌게 보겠습니당
0:58 파인애플 피자는 생각보다 괜찬습니다.
30분 후 공개 같은 게 없어서 너무 좋다..
정읍에 대한 사족을 달지만 고부가 동학농민군 봉기의 시작점이지만 유명한 독립운동가 구파 백정기 의사님 출생지이고 지금도 그분을 기념하는 기념관도 있을정도로 정읍은 내장산도 있지만 시민봉기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으로 유명하죠
동학농민운동에서 동학농민혁명으로 이름이 바뀐것을 선생님께서 말하셨는데 저는 이름이 바뀐 것을 잘 몰랐었거든요.하지만 이영상을 보고나니 그이유를 알것 같습니다.이제는 “운동”이 아니라 “혁명”으로…
동학운동의 목적은 고종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탐관오리와 외세를 몰아내는 것이였기에 혁명 대신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오히려 전봉준은 조선 왕가에 상당히 호의적인 인물이었죠.
"지금 우리 임금께서는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자애롭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며, (중략) 강직한 신하가 전하를 보좌하여 밝게 한다면 요순(堯舜)의 덕화와 문경(文景)의 통치를 손꼽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신하라는 자들은 나라에 충성을 다할 생각하지 않고 다만 녹봉과 지위를 도둑질하며, 전하의 총명을 가리고 아부하고 뜻만 맞추면서 충성을 간하는 말을 요사스러운 말이라 하고, 정직한 자를 비도(匪徒)라고 한다. "
" 우리는 초야에서 사는 백성이지만, 임금의 땅에서 먹고 임금이 준 옷을 입고 있으므로 나라의 위태로움을 좌시할 수 없다. 이에 전국은 한마음으로 수많은 백성과 의논하여 오늘 이 의로운 깃발을 들어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안하게 만들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를 하였다. "
*, 전봉준*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까지는 아니지않나
대부분 농민들이 참여했고, 처음에는 정부를 상대로 싸우다가 마지막에 일본군이랑 싸웠으니 갑오농민전쟁으로 하는게 좋을거같아요.
동학이라는 명칭이 들어가서 종교적 이미지가 보이거든요..
혁명이면 성공하는게 기준 아닌가요?
영상 잘 봤습니다. 동학의 근본인 천도교의 시초인 경주 현곡 용담정 근처에서 살고 있는데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우연히 알았지만 소파 방정환도 천도교출신(아내가 손병희의 딸)이라 용담정 근처에는 방정환어린이집이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은 좋았지만 결국 청일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사실 군주가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거나 이성적인 사람이었어도 조기에 평화롭게 마무리했거나 어떻게든 우리손으로 진압했을 일인데 고종이 상상이상으로 암군이었던지라..
@@AppleJimed조기에 평화롭게 마무리하려고 "피 볼 필요없다, 죄 안 따질 테니까 무장해제하고 고향가라" 하고 사신 보냈는데 동학군이 썰었어요
@@AppleJimed일단 사신은 동학도가 죽인거 맞고
우리 손으로 진압은 우금치 전투때 일본군은 걍 후방에서 노가리 깠고 실제론 중화기 들고있는 조선군이 다 진압함
ㅇㅇ 고종 까는 두 이유가 다 털렸죠?
@@저는기어다닐거에요누가 그럼?
@@저는기어다닐거에요고인 명예훼손하네?
정읍시에 이런 모시깽이 있었다니 정읍이 고향이었지만 잘 몰랐는데 영상 감사합니다
알기 쉽게 봉기원인과 과정을 잘정리하셨네요. 다만 동학농민군도 화기를 확보, 화승총으로 무장했었는데 칼과 창으로만 묘사된게 아쉽네요. 화승총으로 무장했다지만 유명한 최후의 전투였던 우금치에서 당시 관군이 수입해 보관중이던 최신무기, 기관총에 학살당했죠.
제가 알기론 일본군의 신식무기인 손잡이를 돌려서 발사하는 개틀링포가 있었다는 걸로 알고 있네요
@@김광명-m9p 관군에게는 개틀링 기관총도 있었지만 단순 개인화기도 농민군은 구식 조총으로 무장한데 비해 관군은 독일과 러시아에서 수입한 신형 소총을 가지고 있었죠.
총이라고 말하는데
기록의 나라 대한민국!
근데 썸네일 졸귀..ㅋㅋㅋㅋㅋㅋ
크... 스토리에 빠져들어서봤습니다 고양이캐릭터 하나하나 그림이 또 세심하네요
지금와서야 팔만대장경보고 와 이런 유물을 남기다니 정말 조상님들 짱이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당시 정세로보면 진짜 미친생각이었음. 나라가 외세에 망해가는데 군비에 엽전한냥 더 보태지못할망정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내하면서 이 작은나라에서 세계최대 인쇄본을 만듬.
지금으로 따지면 IMF때 국난극복 한답시고 정성드려 기도해야한다며 나라에서 롯데월드타워만한 교회를 세우는거랑 똑같음.
동학농민운동이 잘 기록되어있는 드라마 ' 녹두꽃 ' 추천
요즘 보는 중인데 내용이 엄청 다이나믹합니다.
정주행 마치고 동학혁명 조금이라도 공부해서 한 번 더 봐야할거같아요.
명작인듯.
지나가다가 우연히 봤는데 뭐야 이거 엄청 유익해
2:32 아...정읍에서 후원했군요...이해...감사...존경...걱정...
사관 : 오늘 전하께서 걷다 넘어지셨다
왕 : 그런것까지 적니?
사관 : 그런것까지 적느냐 물으셨다...
그리고 조병갑은 친일하며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칫
2:25 너무 하찮고 귀엽다 그리고 웃기다
28초 전은 못 참지
와.... 너무 재미있음 파퍄킴 왜냐하면,너무 역사를 잘 소계 해주고 또한,재미있게도 소계 해주기 때문에 내가 이영상을 평가 한다면 별: 🌟 🌟 🌟 🌟 🌟
고려실록, 신집/국사/유기 등을 찾아내는걸 죽기 전엔 보고 싶네요...
기록 덕후의 나라라는 말은 우리나라 게시판에서만 나오는 말. 조선시대 자료는 왕조 실록 외에는 별로 없어서 당시의 생활사를 알기가 힘듬. 같은 시기의 다른 국가는 시시콜콜 일기를 쓰거나 한 자료가 워낙 많고 출판된 책이 많은데 조선시대에는 서점 자체가 없었음.
개인 기록들 많아. 안 찾아보니까 적게 느껴지는거지.
동학농민혁명이 프랑스혁명처럼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고 인정받았군요
그런적 없다 국뽕들이 구라치는거다
동학농민혁명은 혁명도 아니고 그냥 단체로 약탈하고 막 살인하고 다닌 폭력 깡패중에 깡패인데 뭔 프랑스혁명을 비교하고 있지? 혁명도 아님 이 채널도 미화 오지게 하네 중간에 정읍시에 지원을 받아 제작 문구 봤지? 유튜브 그대로 믿는 흑우 없제?
@@피드백-잘하는_윤수호 동학농민혁명의 출발점인 사발통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는데요?ㅋㅋㅋㅋㅋ
@@피드백-잘하는_윤수호 관상은 거짓말을 안하노
@@llllllllll-f4dㅇㅇ 내 관상처럼 나는 진실만 말한다
4:42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농민군이 일어서면 흰 옷이 백산처럼 보인다 했고 앉으면 죽창만이 죽산처럼 보인다 했다고 합니다
탐관오리 조병갑의 증손녀가 한 때 국회의원으로 떵떵거리며 살았던 적도 있었음. 참고로 이름은 '조기숙'이라고 함.
정말 유익하게 잘 봤어요. 구독합니다 😲👍🏽✨
기록 덕후지만 고대의 기록은 빈약해서 아쉬워요
전쟁이 하도 잦았으니...근데 사실 전세계 전체를 기준으로보면 우리나라는 고대사 기록이 풍부하게 보존된 편이라고하네요. 삼국사기, 삼국유사(삼국유사는 설화적인 부분이 강하지만)등등의 가치가 엄청난 셈이죠.
사실 그 정도면 풍부한 편이라고 하네요. 중국의 고대사 사료가 지나치게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
썸네일 정말 잘 만들었다
한국의 시골에 가 보면 마을의 금전 출납부터 대소사 및 역사를 기록한 문서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기록에 진심이었으나 대외비로 관리하며 비거와 거북선은 설계도조차 남겨놓지 않는 치밀함을...
비거는 임란 전쟁 중이기도 했고 기록이 너무나 부실해서 추정할 뿐이지만 거북선은 고대선박치고는 자료가 굉장히 풍부한 편입니다. 산타 마리아니 트리니다드 같은 유명한 선박도 사실 기록이 매우 빈약해서 현대 복원된것도 대부분 추정치입니다. 그에 비하면 거북선 설계도면과 치수는 매우 명확한 편입니다.
왠지 고조선~고려 시대까지 기록 관리를 소홀하게 한것에 대한 서러움으로 저렇게 세밀하게 관찰해 보관한거 아닐까 같은 생각이 드네요.
.... 조선왕조실록이 고려실록을 참고하여 이어서 만든것은 아시나요?
고구려,백제,신라 각각 역사서가 몇 종류씩은 있었고 (권 수가 아닌 종류가)
마찮가지로 발해나 부여,고조선에서도 역사서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위 삼국의 역사서인 신집,유기,국사,백제본기 등등과 같이
전란이나 기타 이유등으로 인해 실전됐을 뿐인거죠
기록물 아시아 1위라니 기쁘면서도 씁쓸하네요. 기록이 남아야 자신의 억울함을 알릴수가 있었으니.
녹두장군 전봉준에 아버지 전창혁도 탐관오리 조병갑에게 반발하다 곤장을 맞고 돌아가셨습니다
황토현 전투 승리 전주성에 함락 전주화약을 했지만 조정에 청나라에게 도움을 불러와서 청일전쟁 그리고 우금치 전투로 인한 동학농민운동군의 대패 전봉준의 체포…. 우리의 안타까운 역사중 하나입니다..
예전 심형래 개그 프로가 생각나네 심형래가 왕 역할로 나오는데 기록하던 신하의 뒷통수를 치며 어리버리한 왕이라고 썻냐며 욕하면서 고치라고 ㅋㅋㅋ
좋아요 꾹!
이후 동학농민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재판관에 조병갑이 컴백하여 모조로 킬하였다는 아이러니........
동학농민운동은 우리나라에선 잘 알려져 있으니까 관련 관광지를 구축하고 관광코스를 구성하는것도 짭잘한 수입처가 될거같은데..
조병갑이 도망가고 새로 고부군수로 부임한 사람이 용안현감이었다는 사실은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 고향이 용안면이라서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생각보다 새벽에 첫닭이 우는 시간에메 하지 싶은데. 시골 살아보면 늦은밤 새벽이나 잠안오는 홀에비닭등이 수시로 울어서 ㅆㅆ
한놈이 울면 따라서 동네 전체 수닭들이 울어제꼈고 지금같이 야간 인공광이 없던 시절이라 비교적 일출 시간에 잘 맞는 편이였을 겁니다.
사실 고려는 군사력, 외교력도 높고 전쟁도 많이했지만 기록에 대단히 집착하거나 그런건 없었음. 한국사에서 기록에 집착한 시대는 조선시대때부터임.
조선에 기록에 미쳤던 이유는 원래 성리학 자체가 전쟁,군사,문화, 역사,과학 기술, 반란 등등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미칠 정도로 기록해서 후대에 국가 발전에 이용하게끔 하는 사상이기 때문.
정읍시 고부면이 옛 고부군의 흔적이죠.
사발통문이 가지는 의의는
근세에서 근대로 한국사의 시대구분이 되는 시점을 기록으로 남겼다는것에 있음.
근세 근대의 구분은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정치사회적으로만 보자면
고려'봉건'사회 - 조선의 중앙집권형 '근세'시대 - 농민계층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에 눈뜬시기.
우리나라도 유네스코에 적극적으로 투자 많이 합시다!
정읍은 이순신 장군께서 현감으로 계시다가 수군통제사로 바로 승진하신 곳입니다.
정읍은 국난 극복의 성지 입니다.
통문은 그러니까 댓글문화의 근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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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동의합니다
이야 너무 재밌다
우리 민족은 뼛속까지 민주주의의 뿌리가 깊은 민족임을 알겠습니다. _()_
ㅋㅋ
대원군이 사주한 동학이 농민운동?
역시 전라도는 민주 지역입니다. 존경합니다.
아니 씨... 동학농민운동의 비극과 제주 4.3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데자부가 느껴지네
조병갑 손녀때문에 사극에 조병갑을 쓰지 못하게 되었지.
고종이 절대 재평가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
고양이 캐릭터 너무 좋음.
근데 조병갑이후 신임군수들은 왜 다 그만둔건가요? 한두명이 아닌데 어떤 이유가있었나요..?
민심이 흉흉하고 민란 조짐이 높아서 다들 기피했었을 겁니다.
기록에 진심인 민족...
아이고 이런거만 보면 왜이리 눈물이 날까요. 전생에 농민이였나 봅니다..
쓰레기영상들도 많은데 양질의 이런 영상 적극 추천. 무신 AI로 만든건지 무신 앱으로 만든건지 쓰레기 영상만들어 클릭하게 만드는 거짓 타이틀걸고 사기치는 것들 많은데...암튼 칭찬합니다. 무튼...우리 스스로 근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었는데 결국 주변것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역사는 봉건 세력이 외세를 빌어 끊임없는 침략과 간섭을 받아 민중들만 항상 피폐했던 역사.
역시 나라는 한명의 병크로 무너지지않아...
북접과 남접의 갈등은 영상에 없네.
1차 봉기 때 북접이 남접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었다는 것도 없고
퍄퍄킴 광고비 광고당 5억씩 받아야하면 개추 ㅋㅋㅋㅋ
조회수1회는 못참지
조선왕조실록도 분량이 엄청 많았는데 임란전에는 4개사고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중에 전주사고였나 거기빼고는 임란때 다 불태워졌다고 하더군요
전주사고는 이순신장군이 전라도 지역을 지킨 덕분에 무사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임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광의 공이지요. 전투에서는 그리 뛰어난 소질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전주성이 위험했을때 사고의 실록을 산으로 전부 피난 시켜서 보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순신 형님이 남해를 꽉 틀어막아준것은 당연히 중요했었지요.
퍄퍄님이 그날의 족적을 따라가보는게 좋겠다 해서 농민보단 관군이지! 하고 관군이했던것처럼 불을 질렀다가 잡혔습니다. 저는 저 좀 꺼내주세요
오히려 일본이 이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본격적으로 조선에 주둔시키면세 침략을 본격적으로 했던 아이러니
너무 재미있다 그림이
저는 일기 하나 쓰는것도 힘든데 조상님들은 대단하시네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