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토번에 명장 가르친링이 있어서 당이 패전을 면치 못했죠. 그탓에 당의 내로라하는 명장들이 전부 계급 강등당하거나 패전의 책임을 물어 몰락한 장수들이 많았음.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토번은 승전을 통해 위상이 높아진 가르친링을 견제하다가 그를 죽여버렸고, 그에게 당한 당나라는 망명한 가르친링의 아들들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들은 이후 토번과의 전쟁에 앞장서며 토번의 몰락을 불러왔죠. 어찌보면 아테네의 명장 테미스토클래스와 비슷한 경우. 아테네는 권력 경계해서 내쫒았는데 오히려 침략해온 나라인 페르시아가 받아주는 아이러니한 상황.
역사돋보기 똑바로 역사 알려줄게요 구독료 내놓으세요 아니잖아요 들어보셨죠 과거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랬는데 고로 역사가지고 장사하지않고 과거의 잘못 과거를 거울 삼아 현재의 문제를 타개해보세요 정말 제 개인적으로 대인배라 생각합니다 자기꺼만 아니고 모두를 위해 만드시니까요 정말 존경하고 소의가 아니고 대의 같습니다 그냥 제 머릿속의 느낌입니다 참고로 목쏘리 달달합니다 고백은 절대 아닙니다 걍 온전한 남잡니다 걍존경 끄읕😊
구라라고 봐야죠. 총사령관인 대대로 고정의를 놔두고 참모장인 욕살인 고혜진, 고연수가 전병력을 이끌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죠. 구당서와 신당서에서 주필산전투에서 고구려병력피해가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구당서가 워낙 황당하다보니 신당서에는 고구려병력피해가 확 줄어들죠. 적어도 역사채널을 운영하려면 꼼꼼한 고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태종이 건넌 요수는 만주의 요하가 될 수 없습니다♥ 삼국사기에 수양제 침입떄 부교(浮橋)를 만들어 요수를 건넜고, 구당서 동이열전에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자 교량(橋梁)을 철거했다고 하니, 당나라 시대에 만주 요하를 부교를 만들거나 다리를 만들어서 건너갈 수는 없습니다(배로는 가능하지만...)
사마천사기나 한서지리지에 ♥요서(군)과 요동(군)을 요수를 기준으로 나누었다는 내용이 없으니♥ 지금의 요동은 당나라 시대의 요동(군)이 될 수 없습니다 단) 고구려 멸망후에 당나라 학자가 사기정의에서 요수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를 나누었다는 주석을 달았지만 개인 주장일 뿐입니다
@@jkim949 저도 어느정도 동의하는 바지만, 단순 삼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맥계 민족인데... 만주족은 유전적으로도 친척뻘입니다. 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로 이어지는 예맥계 국가가 만주에서 영위하다가 고구려 멸망 후 무정부 상태에서 거란, 여진이 난립한거니 만주는 현재 한민족의 영토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는 만주족의 땅이라 하긴 애매하죠. 그러면 우리나라 역사가 만주족이라는 뜻인데 J Kim 님의 의견과 모순되는 면이 있네요
고구려는 부여족 백제도 부여족 신라도 초기 부여족시기를 거쳐 왕권이 선비 모용족 모씨에게 넘어갔고 이들은 김씨 모씨 성을 두개 사용함 법흥왕 율령반포나 국호를 신 라 로 한것은 이민족 선비족이 왕귄을 잡았기에 새로울 신 을 국호에 넣은것으로 여겨짐 따라서 신라는. 같은 선비족 동족인 당나라와 친할 수 밖에 없고 부여계 고구려 후예인 발해와는 계속 담쌓고 지냈던 이유가 민족이 다르기에 그러했다고 여겨짐 참고로 부여를 멸망시킨게 선비족 전연이고 부여족인 백제 고구려 모두 선비족에게 망국한것임
문제는 발해가 생기고 망하면서 발해유민들 넘어오고 나서는 통일 신라 이후엔 영원히 만주, 간도 땅은 되찾지 못했음. 그나마 고려, 조선, 구한말 주민들이나 독립운동가 (이회영, 이시영 선생)들께서 건너가서 정착하고 활약했지만 그 놈의 간도협약 때문에 완전히 상실하게 되고 결국 현재에는 그 남쪽 반도도 지키지 못할 꼴이라는 거임.
@@한도경-n2i 고려가 침공 당할때 금나라,송나라,거란등은 멸망했음...고려가 건재했던것이 대단한것임... 조선이 500년을 외침을 견딜때...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도 망했음...조선은 일본에 식민지시절을 지냈지만 다시 대한민국이 탄생한것처럼. 굴욕은 힘이 없으니 어쩔수 없음.
삼한쪽의 남방계와 예맥국가의 북방계가 결합하여 진정한 민족 결합을 이루긴 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의 정체성이 완성된 것도 맞구요. 다만 아쉬운 점은 멸망과정에서 만주쪽의 영토를 잃고, 유목민족의 기계를 잃고 군사력이 약화된 것이 아쉽죠. 삼면의 바다이고 외세의 침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통일 국가를 오래 유지했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국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고 하지만 다른 유럽국가나 중국의 왕조와 비교하면 평화로운 국가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죠. 이때문에 전국시대로 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본에게 침략당하고 후에 식민지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서 그 스노우볼인 신라의 삼국통일은 평화로운 시대에 취해 군사력 약화와 우물안 개구리가 되었으며, 북방의 땅도 잃어버린 아쉬움이 남는 반쪽자리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yeahwoo 고조선과 진국(삼한)은 이웃이라지 각각 여러부족의 연맹체로 시작해서 같은나라라고는 보기 어렵죠. 유민이 흘러들어오는거야 고대 한족들도 한반도로 유입이 되었고 고조선,부여는 고구려,발해을 거쳐 금나라,청나라로 이어졌다고 보는게 맞죠. 진국-삼한은 신라,가야,백제(백제는 만주 또는 제나라 유민이 내려와 왕조를세웠다고보는게)가 삼국을 이루어550년~1000년을 신라가 삼한일통을 하고 후삼한을 거쳐서 고려가 되었고 조선이 되고 대한민국이 되었다는게 진실이고 팩트... 유민이 내려오는거야 신비족이나 한족들이 한반도로 유입이 많이 되었고 그들은 일부일뿐...토착민은 삼한인들이 주인.
Thanks!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라가 통일전쟁을 성공시킨데는 토번의 역할이 컸네요.
그때 토번에 명장 가르친링이 있어서 당이 패전을 면치 못했죠. 그탓에 당의 내로라하는 명장들이 전부 계급 강등당하거나 패전의 책임을 물어 몰락한 장수들이 많았음.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토번은 승전을 통해 위상이 높아진 가르친링을 견제하다가 그를 죽여버렸고, 그에게 당한 당나라는 망명한 가르친링의 아들들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들은 이후 토번과의 전쟁에 앞장서며 토번의 몰락을 불러왔죠.
어찌보면 아테네의 명장 테미스토클래스와 비슷한 경우. 아테네는 권력 경계해서 내쫒았는데 오히려 침략해온 나라인 페르시아가 받아주는 아이러니한 상황.
저때 토번에 치트키 인물인 가르친링이 있었던게 컸죠.
1차 고당전쟁 때 신성은 건재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성, 건안성의 고구려군 때문에 안시성을 우회하여 진격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신성 건안성이 있어서 1차 방어선이 버팀
고당전쟁에서의승리는 안시성뿐아니라 신성과 건안성의 활약도 있습니다
1차 고당전쟁때 동원 당군 수는 다 각자 다르게 기록되어있지만 토산을 쌓을 때 많은 인력이 필요하니 30만보다는 한 50만에서 70만이 아닐까합니다.
주필산에서 15만이 전멸당한 게 아닌데요... 그리고 15만이 안시성 밖에서 싸우는 건 전략이죠. 안시성 안으로 15만 군대가 들어가면 보급은 어떻게 하나요?
닥치고 5천년 적국 중국이란건 잊지말자
반일만 강조하는게 북한
이씨 채널! 인정!
측천무후는 게임에서도 많이 등장합니다
역사돋보기 똑바로 역사 알려줄게요 구독료 내놓으세요 아니잖아요 들어보셨죠 과거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랬는데 고로 역사가지고 장사하지않고 과거의 잘못 과거를 거울 삼아 현재의 문제를 타개해보세요 정말 제 개인적으로 대인배라 생각합니다 자기꺼만 아니고 모두를 위해 만드시니까요 정말 존경하고 소의가 아니고 대의 같습니다 그냥 제 머릿속의 느낌입니다 참고로 목쏘리 달달합니다 고백은 절대 아닙니다 걍 온전한 남잡니다 걍존경 끄읕😊
근데 무조건 신라를 욕할수도없음
저당시 살아남기위해서 최선의선택을한것뿐
애초에 저당시 고구려백제신라는 땅만 한반도에서 같이 있었지 한민족이라는 의미도 없었음
우리야 통일왕조가 여러번 들어서서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긴거지 저때는 한반도 통일국가가 한번도 없었으니
안시성 전투... 상상만해도 피가 끓네요 ㅎㅎ
수당, 고당, 나당전쟁의 의의 중원 세력과 한반도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큰 예시
5:21
개인적 생각에 발해보다 고구려 멸망이 더 가슴 아프네요. 당연히 발해 멸망도 너무 맘 아픈 역사이지요 ㅠㅠ
영토만 보면 고구려보다 발해가 더 컸음
전체적으로 보면 비슷하지 않나요? 다만 발해가 워낙 북쪽에 있다보니 전체 한반도의 넓이는 남북국 시대가 제일 넓었죠.@@양지욱-s6s
웃기는게 눈에 화살맞고 어떻게 사나요?
중국인이군ㅋ
@@모피어스-p2l 아뇨 한국인 입니다
상식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애꾸눈이라는 단어가 있고 옛날에도 안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의안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사고로 눈을 잃은 사람들도 살았을거 같아요.
보통은 화살 눈에 박히면 쇼크사로 즉사합니다.. 정사 기록에도 없는 내용이고 단지 원정 후 돌아가는 길에 묘택에서 등창이 생겨 피부병으로도 고생했다고 기록되어 있음
@@모피어스-p2l 화살이 안구에 박히는 순간 걍 쇼크사임. 안구는 뇌에 직결로 연결되어서 시신경을 통해서 충격이 생생하게 전달됨. 즉 눈알에 화살 박혀서 살아남았다 라는건 진짜 개소리 하지마. 수준인거고 걍 전쟁통에 병원균으로 인해서 눈알에 문제가 생겼다 라는것으로 봐야함.
성주정도 되면 고위급관리일텐데 기록물이 하나도 없다는게 말이되나???
그게 바로 반도인 수준.^^
@@배달의기수-w7e 니도 반도인이다. 우리나라 민족과 우리나라 선조들을 그따위로 폄하하면 뭐가좋냐?
@@KimPanHo414 있는 사실을 얘기하는 것과 깎아내리는 것과는 다름.
주필산 15만 전멸 아님. 고연수가 끌고 간 3~5만정도가 항복및 포로가ㅈ된거임.
더 웃긴건 전쟁 중에 포로를 놔줌 그 것도 구당서 기록으로만 보면 15만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는 한동안 갑자기 기록 없음 누가봐도 냄새가 나는 기록이지
뒤에 오는 병력까지 해서 15만이었다는 뜻이었을 듯. 15만을 한번에 포로로 잡는건 말이 안됨 제 아무리 50만대군을 끌고왔다해도. 앞에 선발대가 녹으니 뒤에 애들은 관망했다가 맞는 해석일듯
"다시는 요하를 넘지말라"
15만이 전멸됐다는건 구라라고 다른유튭에서 봤는데
구라라고 봐야죠.
총사령관인 대대로 고정의를 놔두고
참모장인 욕살인 고혜진, 고연수가 전병력을 이끌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죠.
구당서와 신당서에서 주필산전투에서 고구려병력피해가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구당서가 워낙 황당하다보니 신당서에는 고구려병력피해가 확 줄어들죠.
적어도 역사채널을 운영하려면 꼼꼼한 고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필산에서 안시성까지 딱 10리인데 고작 10리 이동하는데 50일이 소요됐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단 얘기
♥당태종이 건넌 요수는 만주의 요하가 될 수 없습니다♥ 삼국사기에 수양제 침입떄 부교(浮橋)를 만들어 요수를 건넜고, 구당서 동이열전에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자 교량(橋梁)을 철거했다고 하니, 당나라 시대에 만주 요하를 부교를 만들거나 다리를 만들어서 건너갈 수는 없습니다(배로는 가능하지만...)
사마천사기나 한서지리지에 ♥요서(군)과 요동(군)을 요수를 기준으로 나누었다는 내용이 없으니♥ 지금의 요동은 당나라 시대의 요동(군)이 될 수 없습니다 단) 고구려 멸망후에 당나라 학자가 사기정의에서 요수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를 나누었다는 주석을 달았지만 개인 주장일 뿐입니다
1) ♥하북성 중부 형태시 융요현(隆堯縣) 요산(堯山)이♥ 말머리 모양의 산이기에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서 군영을 설치한 마수산(馬首山, 말 마, 머리 수, 메 산)입니다 (구글 위성지도로 확인해 보시길)
2) 하북성 융요현의 요산이 마수산이니 마수산은 한서지리지의 요서군 유성현이 서남쪽에 있으니 형태시 융요현이 한나라 시대의 요서군 지역입니다 따라서 ♥요수는 형태시와 형수시를 지나는 부양하가 됩니다♥ 한나라 시대 이후의 요수가 춘추전국시대 하수(고대 황하)입니다
신당서 동이열전에 내용 【帝度遼水, 徹杠彴, 堅士心. 營馬首山,... 당태종은 요수를 건너자,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게 하였다. 마수산에 군영을 설치한 뒤...요동성으로 갔다】
『 한서지리지 요서군 』 유성현 : 마수산이 유성현 서남에 있다 [원문] 柳城: 馬首山在西南.
소정방이 고립 되었을때
신라가 당나라의 통수를 쳤어야 했는데 ,,
신라의 역할이 컸음 고구려 삭제시킴
안시성 성주 양만춘 과 연개소문이 정말로 극악이엿나 서로? 그게 궁금 야화는소설은 넘 많아서 이세민과연개소문과에 거래? 그게 참~ 학자들 사이 추측아닌가?
연남생 이 쉬키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했을까?
시부레 무열왕
아 아깝다. 백제나 고구려나 더 견더냈으면 좋았을탠데ㅠ
주필산 전투에서 15만이 괘멸됐다라기보다는 실제로는 3만정도 입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은 정예 30만으로 당태종을 격파했습니다 북경근처까지 쫒아가 당태종 이세민은 우물안에 숨었다가 목숨을ㅈ건질 지경에 이르죠
지랄하네 고구려 군편제는 알려진게 없는데 30만은 어디서 나온 숫잔데??? 그리고 연개소문이 당나라 깊숙히 들어갔다는 내용도 기록이 없는데
신라가 통일했으나 역으로 신라가 영토를 잃은거니 그냥 반도만 통일한거임. 넓은 고구려 땅은 날려먹은거...발해 멸망 이후 거기에 여진이나 거란 나중엔 만주족까지 들어온거 보면....
삼한의 영토는 대동강이남땅이지 만주는 만주족의 땅임...
가진적이 없이게 잃어버린게 아님...
고조선은 만주족의 역사이고 한국은 진국-삼한의 역사임...진국과 고조선은 통일된적이 없음...
@@jkim949 저도 어느정도 동의하는 바지만, 단순 삼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맥계 민족인데... 만주족은 유전적으로도 친척뻘입니다. 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로 이어지는 예맥계 국가가 만주에서 영위하다가 고구려 멸망 후 무정부 상태에서 거란, 여진이 난립한거니 만주는 현재 한민족의 영토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는 만주족의 땅이라 하긴 애매하죠. 그러면 우리나라 역사가 만주족이라는 뜻인데 J Kim 님의 의견과 모순되는 면이 있네요
신라가 왜 영토를 잃었나요? 애초에 삼국시대는 '민족' 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 정복전쟁의 개념이었으니 오히려 영토가 확장된거죠.
@@yeahwoo 그 유전자검사는 누가했는데요?
@@Fernando_Sucre 네이처 학자들이 공동연구하여 고대인 유골을 토대로 밝혀진 내용입니다.
역사릏 거짓으로 설명 말라 ㅡ 신라는 동신라와 서신라가 있다
대륙 신라에서 전댕이 있었다
나당연합군은 신라의 전략이였고 당국은 신라에게 이용당했음...
김춘추가 외교사절로 갔지만 실질적 전략은 김유신의 머리에서 나왔고 그래서 백제을 멸하고 고구려가 멸하는데 일등공신임...
신라가 당국에 이용당한게 아님... 신라가 주역임...ㅎ
당나라 미쳤네 쉬지도 않고 계속 전쟁했네
대운하의 힘..
당나라도 한계는 있죠 토번한테 발려 수도가함락되기도 했죠 ㅋ공주까지 토번왕한테 바치고 조공까지한 굴욕도 격죠 ㅋㅋㅋ
수나라, 당나라는 모두 선비족으로 고구려와 동족입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영화 안시성은 고증이 안 됐습니다.
고구려는 부여족
백제도 부여족
신라도 초기 부여족시기를 거쳐
왕권이 선비 모용족 모씨에게 넘어갔고
이들은 김씨 모씨 성을 두개 사용함
법흥왕 율령반포나
국호를 신 라 로 한것은 이민족 선비족이
왕귄을 잡았기에 새로울 신 을 국호에
넣은것으로 여겨짐
따라서 신라는.
같은 선비족 동족인 당나라와 친할 수 밖에 없고 부여계 고구려 후예인 발해와는
계속 담쌓고 지냈던 이유가
민족이 다르기에 그러했다고 여겨짐
참고로
부여를 멸망시킨게 선비족 전연이고
부여족인 백제 고구려 모두
선비족에게 망국한것임
신라의 생존을 위해 백제와 고구려 멸망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이후 생존을 위한 나당 전쟁의 승리를 통해 한반도에서 한민족의 민족적 결합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라의 후임국가인 고려,조선은 외세의 침략으로 영토가 초토화되고, 굴욕을 당하는데
문제는 발해가 생기고 망하면서
발해유민들 넘어오고 나서는
통일 신라 이후엔 영원히 만주, 간도 땅은 되찾지 못했음.
그나마 고려, 조선, 구한말 주민들이나 독립운동가 (이회영, 이시영 선생)들께서 건너가서 정착하고 활약했지만 그 놈의 간도협약 때문에 완전히 상실하게 되고 결국 현재에는 그 남쪽 반도도 지키지 못할 꼴이라는 거임.
@@한도경-n2i 고려가 침공 당할때 금나라,송나라,거란등은 멸망했음...고려가 건재했던것이 대단한것임... 조선이 500년을 외침을 견딜때...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도 망했음...조선은 일본에 식민지시절을 지냈지만 다시 대한민국이 탄생한것처럼. 굴욕은 힘이 없으니 어쩔수 없음.
삼한쪽의 남방계와 예맥국가의 북방계가 결합하여 진정한 민족 결합을 이루긴 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의 정체성이 완성된 것도 맞구요. 다만 아쉬운 점은 멸망과정에서 만주쪽의 영토를 잃고, 유목민족의 기계를 잃고 군사력이 약화된 것이 아쉽죠. 삼면의 바다이고 외세의 침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통일 국가를 오래 유지했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국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고 하지만 다른 유럽국가나 중국의 왕조와 비교하면 평화로운 국가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죠. 이때문에 전국시대로 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본에게 침략당하고 후에 식민지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서 그 스노우볼인 신라의 삼국통일은 평화로운 시대에 취해 군사력 약화와 우물안 개구리가 되었으며, 북방의 땅도 잃어버린 아쉬움이 남는 반쪽자리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yeahwoo 고조선과 진국(삼한)은 이웃이라지 각각 여러부족의 연맹체로 시작해서
같은나라라고는 보기 어렵죠.
유민이 흘러들어오는거야 고대 한족들도 한반도로 유입이 되었고
고조선,부여는 고구려,발해을 거쳐 금나라,청나라로 이어졌다고 보는게 맞죠.
진국-삼한은 신라,가야,백제(백제는 만주 또는 제나라 유민이 내려와 왕조를세웠다고보는게)가 삼국을 이루어550년~1000년을 신라가 삼한일통을 하고 후삼한을 거쳐서 고려가 되었고 조선이 되고 대한민국이 되었다는게 진실이고 팩트...
유민이 내려오는거야 신비족이나 한족들이 한반도로 유입이 많이 되었고 그들은 일부일뿐...토착민은 삼한인들이 주인.
가장 멍청한 삼국통일이라고 생각함
지금도 실라빠들 고대실라가 중국과 그너머에도 신라땅이라고 합니다
어느 귀퉁이에서 지살려고 쥐이빨 갈았던 주제에
안시성 성주는 양만춘이 맞습니다.
고구려군은 주필산에서 대패하지 않았습니다. 주필산에서 패배하기는 하였으나 포위가 풀리면서 고구려 지원군이 안시성으로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설연타가 시안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연개소문이 장안성으로 들이닥쳤기 때문에 당태종이 부랴부랴 후퇴한 것입니다.
소설을 잘 쓰시네요
당나라 존나바빴구나
우리 역사의 최대 역적은 신라, 삼국통일전쟁이 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