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ebaryo8853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약 200km나 도피했다. 이순신의 일기에 썼다. 명량해전의 목적은 한일 모두 명량해협의 점거이기 때문에 거기에 성공한 일본이 이긴 것은 명확하다. 200km나 도망친 이순신이 이겼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뇌가 망가지고 있다.
@@sujzang 그것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다. 이순신이 일본을 이긴 것은 전쟁 개시 직후 3개월 만으로 한산도 해전이 마지막이다. 그 후 이순신은 모든 전투에서 지고 있다. 일본 기록에 이순신을 기록한 것은 한 번만 그가 죽었을 때뿐이다. 다른 일화는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가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아마 몰랐을 것이다.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직후 2개월 정도만이다. 일본군의 배가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이긴 것은 한산도 해전이 마지막이며, 그 이후는 매회 패주했다. 다음은 조선문서에 있는 기술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쓰여 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패퇴했다. 난중 일기에 쓰여있다.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하고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후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이때 거의 모든 조선군의 사령관이 죽었기 때문에 이후 홍타이지와의 전쟁에서는 대패하여 청국의 속국이 되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 일본군의 사령관에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고, 2년 후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다. 이 사실을 비교하면 조선군은 일본군에 패배해 일본군의 귀국을 멈출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약 200km나 도피했다. 이순신의 일기에 썼다. 명량해전의 목적은 한일 모두 명량해협의 점거이기 때문에 거기에 성공한 일본이 이긴 것은 명확하다. 200km나 도망친 이순신이 이겼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뇌가 망가지고 있다.
4년전에 한번떨어졌었지.. 버드나무가지를 동여매고 마지막까지 무과치르는모습은 그때 유명해졌었고.. 그리고 장군직위까지 올라가는사람들 대부분 20대초반에 무과급제합니다. 이순신장군님도 늦은나이에 무과급제했는데 상급자와 매번 의견충돌로 싸우다보니 진급시기도 항상 놓쳐서 임진왜란 직전까지 종6품~7품 왔다갔다하는 이도저도아닌 장수에 불과했는데 유성룡이 임란 전에 천거하여 장군이 된거죠. 어찌보면 능력은있었겠지만 시대를 타고났고 그 타고난 시대에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지금도 감사하게 우리나라에서 살고있는것같습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약 200km나 도피했다. 이순신의 일기에 썼다. 명량해전의 목적은 한일 모두 명량해협의 점거이기 때문에 거기에 성공한 일본이 이긴 것은 명확하다. 200km나 도망친 이순신이 이겼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뇌가 망가지고 있다.
명량해전에서 바닷사이를 가르는 쇠 철책을 썼다는 것도 역사적 팩트가 아니구요. 이런 주장은 명량해전 당시 겁을 먹고 뒤에서 맨 뒤에 있던 김응암의 후손들이 퍼트린 유언비어에 가깝죠. 아무튼 장군은 안위의 배가 오기전까지 1:133으로 싸우신 정말 하늘이 내리신 위대한 영웅입니다. 세계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전쟁영웅.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약 200km나 도피했다. 이순신의 일기에 썼다. 명량해전의 목적은 한일 모두 명량해협의 점거이기 때문에 거기에 성공한 일본이 이긴 것은 명확하다. 200km나 도망친 이순신이 이겼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뇌가 망가지고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듯한... 우리의 지리적 특성이 일.영.미처럼 바다를 전략적 돌파구로 여기기에 큰 문제가 있아요. 조선부터 급격히 국력이 약해진 가장큰 이유는 무과.. 무신들 정책이 급속도로 약해지고.. 결국 국방력에 큰 구멍이 뚫리게 만든게 첫번째? 그래도 실제의 한.중.일의 실제 역사기록 우리가 알고있는 거짓 왜곡이 아닌 진짜 기록들만 얼핏 보아도 고려까지 우린 그래도 강한 군사력과 만주. 지금의 러샤 극동지역 까지도 우리 영토였다 타국에 적혀 있을만큼 지금보다 큰 영토... 또 당하면 기필코 복수를 하겠단 군사적 의지와 전략이. 조선과는 전혀다른 실제로 강했던게 사실.. 몽골과 수십년을 싸워온 보기힘든 국가! 만만치 않던 국력인게 팩트! 우린 지금 너무나 잘못된 시각으로.. 색안경에 민족을 폄하고.. 패배주의 팽배한 역사 교육이 큰 문제임.. 똑똑하기로 소문난 우리 국민이 참 아쉬울뿐..
대항해시대 같은소리하네 ㅋㅋㅋㅋ 유럽이야 당시 비단이나 향신료같은 여러 복합적인 아유때문에 그런거지만 조선은 당시 중국이 제일 강하고 거대한 나라고 선진국인데 뭔 딴데랑 교류를 하냐? 아니면 뭐 섬들을 정벌하고 다니냐?고등학교때 잠 안자고 수업만 들어도 이런 말도 안되는 말은 안했을텐데 ㅉㅉ
고증. 1.일본은 배가 물살에 흔들리므로 조총은 조준자체가 안됩니다. 살상력x 2.일본의 주력무기는 창입니다. 3. 조선군의 화포는 연사가 안됩니다.한번쏘고 휴식기를 가진 후 쏘아야함으로 대장선 요격으로 쓰였습니다. 4. 판옥선은 일본배에 비해 더 크고 높았으므로 일본은 사다리를 판옥선에 물살을 피해 걸쳐 유지하는거부터 일입니다. 너무 쉽게 갈고리를 채우고 사다리를 걸치는데 아닙니다. 5.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은 일본 30척의 배를 붙잡아 놓고 있었습니다. 6. 대장선보다 위험했던 것은 오히려 뒤늦게 합류해서 포지션을 못 잡은 안위의 배였습니다. 7.안위의 배가 함락 - 붕괴되기 직전에 이순신 장군이 도우려가는데 이때가 가장 위험했던 순간입니다. 8.이순신 장군이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라인 유지를 못해 포지션이 붕괴 되는것이지, 적들과의 단병접전이 아니였습니다. 일본이 후퇴한 뒤에도 라인 유지하면서 밤을 지새우고자 했습니다. 9. 이순신 장군도 뽀록 운빨게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일본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무너졌습니다. 10. 일본 배가 물살을 못 이겨 일본 장군 한명이 바다에 빠져 죽고 시작합니다
이순신장군님이 이길수 있었던 이유는 목숨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초월하신점. 여기가 무너지면 백성과 나라가 일어서지 못할거라는 애민정신 병고와 고통에도 굳건한 인내와 용기 신중함 모든걸 걸었기에 가능했던 역사에 다시 나오기 힘든 장군님 같습니다 이순신님과 6.25전사자분들과. 5.18항쟁.세종대왕님등등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신분들이 있기에 저희가 있다는걸 알기에 항상 감사한마음으로 받들겠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최민식 배우가 가장 심적 부담이 컷던 역할이라고 회고했을 정도로 온 열정을 다해서 연기했던 작품...
역대 스크린으로 본 이순신 중에서 가장 존경심이 느껴지는 연기였습니다.
그것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hiroono1
@@saebaryo8853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약 200km나 도피했다. 이순신의 일기에 썼다.
명량해전의 목적은 한일 모두 명량해협의 점거이기 때문에 거기에 성공한 일본이 이긴 것은 명확하다. 200km나 도망친 이순신이 이겼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뇌가 망가지고 있다.
나의장군님은 아직 김명민. 장군님과 함께라면 이 한목숨 기꺼이 바치리라 ~ 방포하라~~ 한놈도 살려두지 마라~~
진짜... 우리나라의 영웅이다
백성들의 고충을 알고 천하다 생각하지 않고 보살폈기에 전투상황에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전하고 승리의 기쁨을 모두 다 같이 나누는 한국사가 낳은 진정한 성웅
와중에 선조포함 양반집 개새끼들은 도망가고 와중에 정치질 하느하 바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순신 장군님께 포상이나 지원을 아끼지 않고 했어도 모자랄판에 지 민심 떡락한다고 잡아서 고문했을 수준이니
그것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맞습니다. 그래서 영웅이 아니라 성웅이죠.^^
진짜 백성을 위한 마음으로 이 나라의 정상적인 인간들의, 그리고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겠죠~
@@sujzang 그것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다.
이순신이 일본을 이긴 것은 전쟁 개시 직후 3개월 만으로 한산도 해전이 마지막이다. 그 후 이순신은 모든 전투에서 지고 있다. 일본 기록에 이순신을 기록한 것은 한 번만 그가 죽었을 때뿐이다. 다른 일화는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가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아마 몰랐을 것이다.
@@hiroono1이러네ㅋ 정신승리
명량... 진짜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20번은 넘게 돌려보았지만 질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순신 장군님이 우리 조선에 계셨다는게 정말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직후 2개월 정도만이다. 일본군의 배가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이긴 것은 한산도 해전이 마지막이며, 그 이후는 매회 패주했다. 다음은 조선문서에 있는 기술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쓰여 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패퇴했다. 난중 일기에 쓰여있다.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하고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후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이때 거의 모든 조선군의 사령관이 죽었기 때문에 이후 홍타이지와의 전쟁에서는 대패하여 청국의 속국이 되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 일본군의 사령관에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고, 2년 후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다. 이 사실을 비교하면 조선군은 일본군에 패배해 일본군의 귀국을 멈출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다시봐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영화
장군이 있어 내가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진심 이순신 영화 3편중에 명량이ㅜ지립니다... 최민식배우님연기가...
언제봐도 웅장하고 멋짐
정말 우리나라 레전드 영웅이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약 200km나 도피했다. 이순신의 일기에 썼다.
명량해전의 목적은 한일 모두 명량해협의 점거이기 때문에 거기에 성공한 일본이 이긴 것은 명확하다. 200km나 도망친 이순신이 이겼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뇌가 망가지고 있다.
이순신이 대단한게 전략전술도 진짜 뛰어난데 본인이 옳다고생각한거에대해 뜻을 꺽지않고 밀고나감 저당시 임금은 신과같은 존재인데
멍청하고 질투심많은 선조 말을 들었다면 정유재란도 볼것없이 임진왜란때 이미 왜에 함락됐을것임
그떄당시 선좃 은
고집불통 정몽규죠..
전쟁에서 이긴것보다 인류사를통떨어 이보다 더나은 인격을 보여주고 기록된 사람이 있을까하는 진정한영웅이라고 밖에 할말이없는분
알면알수록 경외감이들고 그상황에 그현실에 그런판단과 그런실행들은 믿기지않을뿐
성스러운 영웅 이 순신
저당시 수명이 40세 인데 평균 과거시험이 36세라니요... 사헌부 애들 나이만봐도 나오는데..
11:16 온영삼 성우:모두 엎드려라!!!
그때 웅장하죠
"통제공께서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일이라 하셨습니다"라는 대사를 말하는 사람은 나대용 군관입니다. 거북선을 설계하고 제작을 감독한 사람이죠.
그 공으로 우리나라 잠수함중에 나대용함이 있는 것이구요.
님 왤케 나대용
@@o_VVv ㅁㅊㅋㅋㅋㅋㅋㅋ
@@o_VVv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랏 매 ㄴ ㅋㅋㅋㅋㅋ케
고맙습니다.
그런 위인을 우리는 역사책에서조차 배우지도 못한...
나대용 군관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와.ㅈ.
존경스러운 이순신 장군님
세편중에 이게제일 재밌었음 천만찍은 이유가 다있다 ㅇㅇ
그시절 과거 시험에 붙은 연령이 평균 36이면 이순신 장군님이 34에 붙은건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자부심이자 상징인 이순신 장군님 존경합니다.
4년전에 한번떨어졌었지.. 버드나무가지를 동여매고 마지막까지 무과치르는모습은 그때 유명해졌었고.. 그리고 장군직위까지 올라가는사람들 대부분 20대초반에 무과급제합니다. 이순신장군님도 늦은나이에 무과급제했는데 상급자와 매번 의견충돌로 싸우다보니 진급시기도 항상 놓쳐서 임진왜란 직전까지 종6품~7품 왔다갔다하는 이도저도아닌 장수에 불과했는데 유성룡이 임란 전에 천거하여 장군이 된거죠. 어찌보면 능력은있었겠지만 시대를 타고났고 그 타고난 시대에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지금도 감사하게 우리나라에서 살고있는것같습니다
충무공이순신 장군이외 여럿 장수들과 이름없는 수군병사들이 모두가 힘합쳐서 지켜낸 바다. 기억하겟습니다
이순신영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순신 장군님 역사 이미지에 걸맞는 대단한 대배우들 ㄷ ㄷ
진정한 리더의 모습.
11:32 "대장선이 살아있다아!!!!!!"
처참한 심정으로 보고 있다가 이때 눈물 핑 도네
11:34 가 대장선이 살아있단데
다른 장수들같으면 뒷짐지고 뒤에서 명령이나 내렸을텐데 이순신은 선봉에서 그것도 혼자서 적선들과 맞다이를 까다니, 그의 전략도 전략이지만 용기도 탈인간급이다.
2:35 임진왜란에 참여했던 구르지마는 미치유키, 정유 재란때 참여했던 구르지마는 동생인 미치후사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명량해전당시 사실 12척이아니라 다른 아군 배들은 겁먹어서 전투하지못하고 이순신장군 대장선 한척과 왜선 몇십척이 3시간이상 싸웠고 나머지 아군배들은 나중에 참전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약 200km나 도피했다. 이순신의 일기에 썼다.
명량해전의 목적은 한일 모두 명량해협의 점거이기 때문에 거기에 성공한 일본이 이긴 것은 명확하다. 200km나 도망친 이순신이 이겼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뇌가 망가지고 있다.
김윤석 배우 이순신장군 말로표현불가 무조건 영화관에서 관람 권장 드립니다 시간순삭 명작이네요~
이건 최민식 배우인데
이런 채날이 왜 구독자가 없지.... 정말 잘 보고갑니다❤️
임진왜란때 참여했던건 이순신에게 죽임당했던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형이었고 정유재란때 참여한게 마다시로 불렸던 구루지마 미치후사입니다. 영화에도 나온 내용이에요
보고 또 봐도 볼때 마다 눈물남 ㅠㅠ
이순신 장군님이 환생해서 이 영화 보면서 "캬 내가 싸움 하나는 기가 막히게 했지" 하실듯
이런 역사물 볼때마다 느끼는건데....나라를 지킨건 왕이였던 적이 없었던거 같다.
멋진 장군과 그를 따르는 용감한 군인들...그리고 의병.
일제시대때도 그렇고...
6.25때도 그렇고...
이순신장군님은 진짜 10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완벽한 장군님이시다 솔직히 영화로도 12척으로 300척이 넘는 배를 이겼다고 하면 욕먹을 판국에 이걸 실화로 만드신 대단하신분 진짜..
말도안돼ㅜㅜ
진심으로 신이셨기에 가능했던
싸움이었던거같습니다.
이순신 충무공님 신이맞습니다.
대한민국 지켜주셔서감사합니다.
다들 장군의 신묘한 전략과 충성심을 이야기 하지만.
포로가 된 어린 왜구(징집병)가 우는걸 측은이 여겨
밤에 효경을 읽어주시던..
적군에게도 사연을 살펴시던.. 인간적 인격자 성품의 소유자임..
이 정도면 미래에서 이순신 전기 다 읽고 과거로 가서 재현한 수준 아닌가... 그냥 신에 가까운 존재인듯
하 리뷰 보는데도 눈물이 ㅋ 감사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
언제봐도 명작입니다. 몇번을봐도 소름돋음
와 역시 이순신장군 짱이다
내 인생 최고의 영화
2:35 1차 2차 다른 구루지마 아닌가요?
구루지마 미치후사 구루지마 미치유키
이순신 장군초상화가 5만원지폐가
되지못한이유가 미스테리다..
여성가족부때문이다.해체가 답이다.
백원짜리에 뭐가 그려져있더라?
오늘이 이순신장군님 탄신일이네요..
장군님.. 감사합니다..
명량개꿀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산다.
울돌목 은 지금 진도대교 가설치된 바로 밑이다 봄에 가면 틀채로 숭어 뜨는거 또한 관광코스임 그만큼 물살 이빠르다
정확히는 1: 333
명량2가 제작 중이라 들었는데 언제 개봉 하나요
한산 올해 7월에 개봉합니다
심지어 저것도 이순신을 엄청 너프 시킨 거. 명랑해전 당시 조선군 사상자는 겨우 5명이었음
봐도봐도 대단한 이순신장군님♡♡♡♡
명량해전에서 바닷사이를 가르는 쇠 철책을 썼다는 것도 역사적 팩트가 아니구요. 이런 주장은 명량해전 당시 겁을 먹고 뒤에서 맨 뒤에 있던 김응암의 후손들이 퍼트린 유언비어에 가깝죠. 아무튼 장군은 안위의 배가 오기전까지 1:133으로 싸우신 정말 하늘이 내리신 위대한 영웅입니다. 세계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전쟁영웅.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약 200km나 도피했다. 이순신의 일기에 썼다.
명량해전의 목적은 한일 모두 명량해협의 점거이기 때문에 거기에 성공한 일본이 이긴 것은 명확하다. 200km나 도망친 이순신이 이겼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뇌가 망가지고 있다.
명량 솔직히 2탄도 나왓으면 좋겠다
10:50 이부분 좋아ㅋㅋ
그러다 다 죽을수다
된다고 말하게!!
조란탄 천군에 비슷한게 나오져
명량 한산 노랑중에서 명량에 나온 이순신 희립이 제일 연기 잘함
백병전이 사실상 없지 않았나요.? 구루지마 목은 어떻게 수급했는지
실제로는 함포로 구루지마가 탄 배를 침몰 시켰고 해안으로 떠밀려온 그의 시신을 항왜였던 준사라는 인물이 알아보고 목을 잘라 대장선에 걸어두었습니다
다구리에 장사 없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해군 제독 이순신 장군은…더 무슨할말이 없다
남한산성이랑 사도도 만들어주세요~ 이미 기획 중이시겠지만 ㅎㅎ
구루지마 등장신과...그의 개성넘치는 수하들....감독님이 영웅전 영화를 지대루 만드실줄 아는분....영웅에 맞서는 지독하게 강한 상대...그것도 베일에 가려지다가...등장신부터 강렬한 포스로....구루지마 캐릭터 없었으면 어쩔...
15:30 진짜 겁나 침착하게 싹 잘라버리네
ㅇㅈ
10:15 이라샤이마세? 어서오세요? ㅋㅋㅋ
미해군들도 배우고 세계 백과사전에도 등록되어 계신 이순신 장군님... 너무나도 존경스럽습니다. "장군님"이란 칭호는 이런분한테 붙혀야지.. 북한 3대 돼지들이 아니고...
그분들은 "장군이"라고 부릅니다
진짜 거짓말 진짜..닭살이돋을정도의 영화다 진짜 ..레전드다..
류승룡개멋짐
멋있긴하지만 우리의 적임
엥? 세계 3대 해전 아닌가요? 우리나라 명량까지 4대 해전으로 처주나요?
세계 4대해전으로 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명량은 여기에 못들어감. 살라미스 해전,레판토 해전,트라팔가르 해전,미드웨이 해전 이렇게 4개임
08:23 조총으로 선제사격??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위대한 영웅
바다의 이순신
육지의 정기룡
둘다 60전60승 전승을기록한
최고의영웅
명나라에서조차 임진왜란때 최고를뽑는다면
이순신과 정기룡은 꼭들어감
명량…첫사랑과 함께봣던…어차피 짝사랑에 고백했다 까엿지만…부디 늘 행복했으면 좋겟다…
이건 아니지~
구루지마는 임진왜란때 죽은 동생의 원수를 갚으려 온거잖아요?
16:06 볼때마다 소름돋네 진짜
영화에선 백병전이 나오긴하는데 실제 난중일기에선 백병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게 신기할정도다...
그건 감독 마음이잖아요
오늘이 탄신일입니다.
하지만 이순신 후로 조선은 바다를 버렸고, 대륙을 택한 조선은 결국 대항해시대를 준비하지 못해 망했다고 한다.
역사를 좀 알고 계시는 분이군요 댓글보니 참 수준이....
조선이 바보라그런게아니죠..일단농본국가라는게 가장큰 이유였지요... 영국이나 일본은 섬나라여서 해양쪽으로발전된거고요 결과만보고판단할게아니라 왜그런선택을했는지 이유부터봐야겠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듯한... 우리의 지리적 특성이 일.영.미처럼 바다를 전략적 돌파구로 여기기에 큰 문제가 있아요. 조선부터 급격히 국력이 약해진 가장큰 이유는 무과.. 무신들 정책이 급속도로 약해지고.. 결국 국방력에 큰 구멍이 뚫리게 만든게 첫번째? 그래도 실제의 한.중.일의 실제 역사기록 우리가 알고있는 거짓 왜곡이 아닌 진짜 기록들만 얼핏 보아도 고려까지 우린 그래도 강한 군사력과 만주. 지금의 러샤 극동지역 까지도 우리 영토였다 타국에 적혀 있을만큼 지금보다 큰 영토... 또 당하면 기필코 복수를 하겠단 군사적 의지와 전략이. 조선과는 전혀다른 실제로 강했던게 사실.. 몽골과 수십년을 싸워온 보기힘든 국가! 만만치 않던 국력인게 팩트! 우린 지금 너무나 잘못된 시각으로.. 색안경에 민족을 폄하고.. 패배주의 팽배한 역사 교육이 큰 문제임.. 똑똑하기로 소문난 우리 국민이 참 아쉬울뿐..
대항해시대 같은소리하네 ㅋㅋㅋㅋ 유럽이야 당시 비단이나 향신료같은 여러 복합적인 아유때문에 그런거지만 조선은 당시 중국이 제일 강하고 거대한 나라고 선진국인데 뭔 딴데랑 교류를 하냐? 아니면 뭐 섬들을 정벌하고 다니냐?고등학교때 잠 안자고 수업만 들어도 이런 말도 안되는 말은 안했을텐데 ㅉㅉ
조선은 대대적으로 쇄국국가였음 중국 위로보면서까지 변화를 두려워한 거지
글고 대항해시대의 기준을 모르시나..
잘 봅니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믿어줘야 할 국가에게 배신당하고서도 기여이 가라앉던 나라를 홀로 일으켜세운 영웅.... 하지만 그 후 조선은 이순신과 같은 영웅을 맞이할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13척이 아니라 한척이지요. 잘 보고 갑니다.
영화 지만. 언던게. 장수들이 배를 뒤로갈수가
총잡이. 명중. 사투에시간있어다
대단한 리더싶 이영화 재미을위하여 충파로 변경햇지만 쇠사슬로 배을 가둬노코 작살낸 전투 인데 명량 은 재미나게 각색 한듯 문제 는역사왜곡은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존윅 4 의 오마주 됐었죠
우리나라 영화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가 명량이라고합니다.
조선에 진정한 왕은 이순신인듯
고증. 1.일본은 배가 물살에 흔들리므로 조총은 조준자체가 안됩니다. 살상력x
2.일본의 주력무기는 창입니다.
3. 조선군의 화포는 연사가 안됩니다.한번쏘고 휴식기를 가진 후 쏘아야함으로 대장선 요격으로 쓰였습니다.
4. 판옥선은 일본배에 비해 더 크고 높았으므로 일본은 사다리를 판옥선에 물살을 피해 걸쳐 유지하는거부터 일입니다.
너무 쉽게 갈고리를 채우고 사다리를 걸치는데 아닙니다.
5.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은 일본 30척의 배를 붙잡아 놓고 있었습니다.
6. 대장선보다 위험했던 것은 오히려 뒤늦게 합류해서 포지션을 못 잡은 안위의 배였습니다.
7.안위의 배가 함락 - 붕괴되기 직전에 이순신 장군이 도우려가는데 이때가 가장 위험했던 순간입니다.
8.이순신 장군이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라인 유지를 못해 포지션이 붕괴 되는것이지, 적들과의 단병접전이 아니였습니다. 일본이 후퇴한 뒤에도 라인 유지하면서 밤을 지새우고자 했습니다.
9. 이순신 장군도 뽀록 운빨게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일본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무너졌습니다.
10. 일본 배가 물살을 못 이겨 일본 장군 한명이 바다에 빠져 죽고 시작합니다
사즉필생 생즉필사 아님...?
13:133:이 아닌 1:133임
이순신장군님이 이길수 있었던 이유는 목숨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초월하신점.
여기가 무너지면 백성과 나라가 일어서지 못할거라는 애민정신
병고와 고통에도 굳건한 인내와 용기
신중함 모든걸 걸었기에 가능했던 역사에 다시 나오기 힘든 장군님 같습니다
이순신님과 6.25전사자분들과. 5.18항쟁.세종대왕님등등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신분들이 있기에 저희가 있다는걸 알기에 항상 감사한마음으로 받들겠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이순신장군님:즉생 필사
명량은 명작중명작 ㄷㄷ
왜군 330척이에요 그리고 조선군 12척이에요
이순신님❤❤❤❤❤❤
정확히는 구루지마 미치유키가 1592년에 죽고 그의동생인 미치후사가 명량에출전하지여
잉 3브작린데 먼저 죽으면ㅇ? 머냐?
저렇게 힘들게 지켜낸 나라인데… …😢 어쩌다가 요즘은…………….
뭐 요즘엔 다른나라에 잡아 먹히기라도 햇나요? 뭔 개같은 소릴 지껄이나 ㅋㅋㅋ
동귀어진?
ㅋㅋ
역시 ㄷㄷㄷㄷㄷㄷㄷ
이순신 역활은
김명민이 최고다,
다 좋았는데, 영화상 묘사가,, 백병전을 그렇게 했는데 우리군 숫자는 거의 줄어들지 않는 모습..이 아쉬움, 백병전을 못하게 막거나 완벽하게 이기는 묘사였으면 이해가됬을텐데ㅠ
세계 4대해전 살라미스 레판토 트라팔카 미드웨이 해전입니다
일본 해적왕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본거지가 히로시마입니다. 원자폭탄이 왜 히로시마에 떨어졌는가 연관하여 생각해 봅니다.
에히메 아닌가요?
조선입장 으로 바라보면 임진왜란 은 이긴게 아니라 피해만 본 전투
당연한게 전장지가 조선즉 한반도라서 그렇죠
@@백승엽-x4p 임진왜란 본질 이 일본은
조총부대 를 죽이기위해 고심한끝에
조선으로 타겟을 정한거고 안죽고 이기면 조선을지배할수있으니 일석이조 반면 조선은 장수들과
조선에 핍박받던 승려들뿐
화폐개혁해야지요?
100원이 뭐고? 10만원짜리 현금 만들고 거기에 장군님 넣어라~~
우리만 기억한다
기성세대만
역사교과서에서 빠졌다는데
전교조가 잡으니 이리 빠른시간에 역사를 말아먹는건가
충무공이 벌떡 일어서실 일
일본도 미국도 영국도 인정한 성웅을 우리만 까내리는게 어이가 없제
누가 까내린다고 쉐도우복싱질을 하고 앉아있냐ㅋㅋ
누가 까내림?정신병잇나 ㅋㅋㅋ
마리오의 보스가 불 뿜는 거북이인 이유
거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