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생 지금은 돌아가신 익산 출생 우리 할아버지가 부르시던게 생각나네요. 가톨릭 신자이신데도 ‘하나님이 보호하사~’라고 부르셨던 기억이ㅎㅎㅎ 저희 할아버지는 큰형이 일제 강제징용으로 사망하여 시체도 찾지 못했고 어머니하고 여동생 한명은 일제 공출로 아사, 아버지는 남동생 6.25때 공산군에게 가톨릭이라고 충살당하시고 남동생 한명은 전사하셨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6.25 전쟁에 참전하여 왼발 엄지발가락을 잃으셨죠. 우리 어르신들은 그시대를 도대체 어떻게 살아오신 걸까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이 애국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896년 독립문 개소식 때 배재학당(현재 배재고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불려졌던 것이 최초로 알고 있습니다. 올드랭사인이란 노래 자체가 16세기말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영국이 맞설때 당시 세곙최강이었던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대항하여 징집에 나섰던 쳥년들이 사실상 죽으러 나가면서 살아서 다시 보자고 다짐한데서 유래했다고 햐죠. 그래서 노래가 한층 비장한 기분을 주는 것 같아요. 이러한 이유때문에 19세기말 중국 북양정부에서도 이 노래에 가사만 바꿔 국가로 사용했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중국사람들도 굳이 자기네 곡조를 쓰지 않고 이 곡을 쓴 이유는 한 가지라고 봅니다. 즉 이곡을 국가로 불렀을 때 중국은 그야말로 국가의 존망이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일촉측발의 상태였기에 비장한 정신무장이 필요했던 것이죠. 즉 우리의 상대가 너무 강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극복해나가자는 뜻이 많이 내포됩니다.
일제시대엔 계속 불렀다합니다. 이 곡은 상해임시정부 애국가로도 쓰였기 땜에 광복군가로도 활용했었고 심지어 초기 김일성 시대의 북한에서도 불렀으니까요. 우리나라도 6•25까진 불렀다고 알고 있어용 간혹 예전 시대극 드라마에서 일제강점기 무대일땐 간간히 부르는 장면도 나왔었네요
어릴때 알고 이게 더 좋았던 애국가
당연히 전세계가 부르는 베스트셀러 노래랑 비교하기 힘들지.
올드랭 사인은 온갖 나라 버전이 다 있어. 일본 버전 중국버전 베트남 버전 아랍버전 등등
지금 저도 이것만 즐겨들어요
6.25때까지도 불리었다죠
안물ㅋㅋ
@@디디크3 ㅋㅋㅋ ㅈㄹ
1932년생 지금은 돌아가신 익산 출생 우리 할아버지가 부르시던게 생각나네요. 가톨릭 신자이신데도 ‘하나님이 보호하사~’라고 부르셨던 기억이ㅎㅎㅎ 저희 할아버지는 큰형이 일제 강제징용으로 사망하여 시체도 찾지 못했고 어머니하고 여동생 한명은 일제 공출로 아사, 아버지는 남동생 6.25때 공산군에게 가톨릭이라고 충살당하시고 남동생 한명은 전사하셨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6.25 전쟁에 참전하여 왼발 엄지발가락을 잃으셨죠. 우리 어르신들은 그시대를 도대체 어떻게 살아오신 걸까요
애국가를 바꾸어야 한다면
올드 랭 사인 애국가로 가는 게 맞을 듯
그리 된다면 백파이프 군악연주는 필수니 군악대에 백파이프 악단도 만들어야지
이 애국가로 하면 좋을텐데
더 좋네요
진정한 애국가 입니다.
무슨소리릴 하시는지 아셨으면 좋겠어요
@@슈샤슈샤슈샤 안익태는 친일 매국노에 나치부역자기에 저분 말씀이 백번천번 옳습니다
@@김민성-q8u 그 안익태의 곡을 애국가로 처음으로 채택한게 임시정부입니다
@@핑핑이-i8i 당시에 친일행적 나치 부역자인것을 숨기고 접근했으니 당연하죠 나치부역도 최근에 밝혀졌습니다
이 올드랭사인 버전은 처음 들어보네요. 언제 부른 건지 궁금합니다.
1944년인가 1942년에 녹음한걸로 알고있습니다.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이 애국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896년 독립문 개소식 때 배재학당(현재 배재고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불려졌던 것이 최초로 알고 있습니다. 올드랭사인이란 노래 자체가 16세기말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영국이 맞설때 당시 세곙최강이었던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대항하여 징집에 나섰던 쳥년들이 사실상 죽으러 나가면서 살아서 다시 보자고 다짐한데서 유래했다고 햐죠. 그래서 노래가 한층 비장한 기분을 주는 것 같아요. 이러한 이유때문에 19세기말 중국 북양정부에서도 이 노래에 가사만 바꿔 국가로 사용했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중국사람들도 굳이 자기네 곡조를 쓰지 않고 이 곡을 쓴 이유는 한 가지라고 봅니다. 즉 이곡을 국가로 불렀을 때 중국은 그야말로 국가의 존망이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일촉측발의 상태였기에 비장한 정신무장이 필요했던 것이죠. 즉 우리의 상대가 너무 강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극복해나가자는 뜻이 많이 내포됩니다.
일제시대엔 계속 불렀다합니다. 이 곡은 상해임시정부 애국가로도 쓰였기 땜에 광복군가로도 활용했었고 심지어 초기 김일성 시대의 북한에서도 불렀으니까요. 우리나라도 6•25까진 불렀다고 알고 있어용
간혹 예전 시대극 드라마에서 일제강점기 무대일땐 간간히 부르는 장면도 나왔었네요
우리 아버님이 일제 소학교 졸업할때 일본 사람들이 오드랭사인을 " 호다루는 히카리 마도노 유기"
蛍の光、窓の雪…
아버님이 일본분이신가요 아님 일제때 부유했나요.
일본인이 다니는 소학교랑 조선인이 다니는 국민학교는 분류 되었다던데
Good version
?
왜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노?
차라리 안익태 애국가에서 올드 랭 사인 애국가로 바꾸자.
6.25전쟁 폐어 광주리속 아이가 우는 장면 찾아주세요ㅠㅠ
우리 민족이 작곡한 우리 민요를 스코틀랜드 민요라고 속이고 빼앗은 뒤, 안익태의 새 곡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곡조입니다. 서구가 우리를 짓밟고 있을 때 왜 서구의 노래를 애국가라고 불렀으면 정신 나간 겁니다.
이거 보고 듣는생각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