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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7

  • @나조아-v8u
    @나조아-v8u 3 месяца назад +6

    이런 프로그램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를 깊이 있게 알 수 있어 애청합니다

  • @SKY-f8d7f
    @SKY-f8d7f 3 месяца назад +7

    조선에 가장 빛나고
    애민정신이 탁월했던분은
    세종대왕님
    정조대왕님
    ❤❤❤❤

  • @qwertmnbvcasdfg
    @qwertmnbvcasdfg 4 месяца назад +4

    너무 유익하고 재미있어요..이 프로그램 국내편 다하면.해외편까지~~~

  • @方瑞振11
    @方瑞振11 3 месяца назад +5

    9:07 남대문인 숭례문은 전소되지 않았습니다. 화재 이후 하층은 약 90%정도가 남아있었고 상층 또한 약 10%정도가 남아있었지요. 그래서 하층의 경우 하층 평주, 창방, 평방, 툇보를 일부 재사용하였습니다. 상층의 경우도 도리, 첨차 등을 재사용했고요.
    10:30 교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성벽 위의 구조물은 '여장'이라 하고요.
    10:32 자막의 벽돌 시설물은 '치' 라고 하여 삼국시대부터 쓰인 성벽 방어 구조물입니다. 사례료는 백암성이 있겠습니다.
    11:35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의 성곽 단면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뒤채움석이라 하여 성벽 뒤로는 잡석과 흙을 채워넣어 우수로 인한 횡력으부터 성곽의 유실을 막습니다. 수원화성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성들은 서양처럼 앞.뒤로 성벽이 자리하지 않지요.
    13:53 모든 전통건축물은 기단이 하나입니다. 기단은 위에서 봤을 때 처마선 안으로 들어가게 설계하고요, 영상의 세번째 기단에 해당합니다. 영상의 첫번째 기단, 두번째 기단이라 하는 것은 하월대, 상월대라는 것으로 기단이 아니라 월대가 옳은 표현입니다.
    왕족만 3단의 기단을 쓸 수 있다, 부자는 2단밖에 못 쌓는다고 하는 말은 기단은 ~단으로 세지 않고 그저 기단이기에 틀린 말이 되는 것이죠.

    • @최정근우람
      @최정근우람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섬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월대와 기단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경복궁 근정전은 3단 월대 +1기단 인건가요? 아니면 2단 월대...?)

    • @方瑞振11
      @方瑞振11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최정근우람 기단은 탑이나 건물의 하부에 지면보다 높게 쌓은 단으로 우수로부터 건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처마선 안쪽으로 설치됩니다. (의장적인 목적보다는 건조물을 보호하는 구조적인 목적이 더 큽니다.)
      월대의 경우 궁궐의 정전, 편전, 침전, 종묘 정전과 같이 건물의 기단 앞에 넓게 비워놓은 대를 의미합니다. 또 처마선보다 바깥으로 설치합니다.
      월대는 비단 궁궐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고 종묘, 왕릉의 정자각, 향교의 대성전, 일부 사찰에서도 설치됩니다. (월대를 까는 것 보다 기단을 높이는 것이 우수 방지에는 더 낫기 때문에 행사, 권위, 의식을 위한 의장적인 목적으로 쓰입니다.)
      현존 우리나라 월대는 상월대, 하월대가 전부로 경복궁 근정전은 2단 월대+기단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3단 월대는 없습니다.)
      기단은 ~단 이 아닌 그저 기단입니다.
      ~단 기단이라고는 불리지 않아요. (1단 기단, 3단 기단은 없습니다.)
      쉽게 구분 하자면 처마선 안으로 들어오는 단은 기단, 밖으로 나와있는 단은 월대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월대 중에서도 제일 아래에 놓인 것은 하월대. 하월대와 기단 사이에 놓인 것은 상월대 로 모두 처마선 바깥으로 설치됩니다. 상월대보다 위에 있으며 처마선 안쪽으로 설치된 것이 기단이지요.
      또 하나 덧붙일 말로 자세히 보시면 눈치채는 분도 계시겠지만 월대와 기단 보두 건조물 바깥 방향으로 구배(경사)를 주어 우수를 월대.기단에 쌓아두지 않고 밖으로 자연스레 배출시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다르죠.
      전통건축에 이렇게 숨겨진 조상님의 지혜가 수두룩한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고 이쁘다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것 같아 슬픕니다. 우리 건축입니다. 우리가 알아야지요! 언젠가 그 지혜가 상식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mooyook2
    @mooyook2 3 месяца назад

    소를 기르고 도축을 하게 한 곳은 지금의 수원이 아니라 화성시 남양읍이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 천주교가 활성화가 되고 박해를 받은 지역들보면 화성이나 서산처럼
    갯벌 바닷가에 인근한 해안 마을과 백정들이 모여사는 마을들에서였죠. (신분계급 차별에 따른 현실이 있다보니 그들이 많이 믿게 된..)
    일제 강점기때까지도 화성은 수원부에 속했던 곳이죠. 화성과 용인 기흥 일부와 처인구 일부까지 가진 굉장히 넓은 구역을 가진 행정 구역이었습니다.
    또 넓은 구역으로는 경기 광주부라고 해서 지금의 성남, 광주, 위례, 송파구, 강동구. 하남. 용인 수지와 기흥 일부를 아우르는 곳이었고,
    양주부는 양주시와 구리. 의정부. 고양시. 강북구. 도봉구. 까지 아우르는 곳이었죠.
    이런 넓은 행정 구역을 가진 이유는 당시 인구가 많지 않고. 또 산과 강을 따라 돌아서 이동을 해야하는지라
    그 경계선을 따라서 행정구역을 가지게 된 경우이죠.
    이외에도 넓은 곳은 경주. 상주. 전주. 충주. 등이었구요.

  • @saucechili5897
    @saucechili5897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정조가 대단한 인물은 많네요

  • @mincastle0614
    @mincastle0614 3 месяца назад

    나의 사랑 나의 수원 💙🤍❤️

  • @몽이-c9n
    @몽이-c9n 3 месяца назад

    나도 라이카 써보고싶다 필름으로 m7 사고싶다

  • @ujuoh7730
    @ujuoh7730 3 месяца назад +10

    수원화성이 조선시대 최초의 계획도시라는 건 잘못된 정보입니다. 한양자체가 이미 계획도시 였기 때문이죠.

    • @김유건-p1j
      @김유건-p1j 3 месяца назад +1

      ㄹㅇㅇㅈ 한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도시계획은 세워질 수밖에 없는데

    • @eumbyullee1516
      @eumbyullee1516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설명대로면 한양은 고려시대때 계획한 도시네요
      따러서 조선시대 최초 계획도시는 수원화성이 맞네요

    • @mooyook2
      @mooyook2 3 месяца назад

      @@eumbyullee1516 네 맞아요. 한양은 고려 때에 계획하고 일부 주민들을 거주시킨 곳이었죠.
      공민왕 때에 신돈에 의해 개성(개경)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고자. 풍수지리학적으로 더 좋은 한양을 계획했죠.
      그래서 청와대가 있는 삼각산에서 북한산까지 이르는 일대에 유난히도 절이 많았고.
      아이를 점지하고 부를 부르는 고려 석상이나 불상들이 많은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우리가 역사를 너무나 많이 잘못 알고들 있어요. 신랏대랑 조선 시대, 일제 강점기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과거 나라를 지우기 위해서 신라는 고구려. 백제. 발해역사를 조선은 특히 고려의 강역을 지울 수 있는 자료들을
      많이 분성갱유하거나 자신들의 업적으로 둔갑 시킨 것들이 많아요.
      가령 비류백제가 인천에 도읍을 하였다면 최소한의 백제 초기 유물이나 시설물들이 나와야 하는데 전혀 없고,
      발해 또한 그렇고. 고려도 물론이구요. 고려 청자, 팔만대장경. 삼국사기, 삼국 유사밖에 없잖아요.
      물론 절들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요. 종교는 정치적 목적을 최대한 배제해야 하느라 절은 자기들만의 역사만 가지고 보존해왓구요

    • @김하루-t6s
      @김하루-t6s 3 месяца назад

      @@eumbyullee1516뭔소리임 애초에 건국이후에 계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한건데

  • @stivejin9281
    @stivejin9281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거중기로 수원화성 지을때보다 훨씬 전에 프랑스에선 더 거대한 거중기로 노틀담 대성당 지었음... 수원화성 지을시기에 런던에 세계 최초 지하철 공사하고있었고

    • @Jdg208
      @Jdg208 3 месяца назад +3

      팩트 넌 지금도 거중기 못 만든다 풒 ㅋ

  • @케이오디
    @케이오디 4 месяца назад +1

    탁재훈 썸넬 보고 와쓰요

  • @냥이사랑-q8q
    @냥이사랑-q8q 3 месяца назад

    수원사는 1인으로서,
    유현준소장님, 혹시 처음 아니시죠? 사실 이 영상은 4,5회봤어요.
    건축사 공부할때...동양건축사겠죠.😂😂😂 배운기억이...사실 없어요. 저는 수원 살아서 띨랑구 애기때 많이 갔어요. 펜데믹전이죠. 그때 화차 내 옆자리 외국인들보면...노르웨이, 저먼, 미쿡...진짜 많은 나라분들 계셨어요. 그래서 우와,.. 우리는 걸어서 집앞인데. 유럽에서도 오네? 했죠.
    무튼 ... 국가차원에서 크게 더 크게 ...지자체도 ...전에 염시장님때는 겁나 활황였는데.. 요즘은 그냥 행궁동 먹자골목 느낌이라...잘 안가게 되네요.
    리퍼 느낌으로 한번더 와주세요!!!

  • @StarShevron
    @StarShevron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유현준 교수님은 전통 성에대힌 지식이 부족한 것 같네요. 토성은 화성의 특징이 아니라 우리나라 성들의 전반적인 특징이죠. 한양 도성도 다 토성입니다. 만리장성같이 돼 있는 성은 없죠.,,

    • @fouryoufam2333
      @fouryoufam2333 4 месяца назад

      오~ 그런거 같네요!

    • @07shkim70
      @07shkim70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유현준 교수님께서 토성이란 점이 우리나라의 다른 성들과 달리 특별하다는게 아니라 벽돌을 사용한게 특별하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토성을 바탕으로 바깥에 돌을 쌓은 점은 다른 성들과는 달라서 장점인게 아니라 그냥 전부 벽돌로 쌓거나하는 것과 달리 훨씬 경제적이기때문에 장점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

    • @kahlo_
      @kahlo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토성과 석성이 병존한다는 거 화성의 독특한 특징 맞아요. 한양도성도 태조 시대에 지어진 부분이 토성이지만, 잘 무너지는 단점 때문에 세종 때 석성으로 개축했고 이후 시대에는 모두 석성으로 지어졌어요.

    • @KrMorgan12
      @KrMorgan12 3 месяца назад

      ​@@kahlo_ 대부분은 토성을 돌로 덮은거에요.

  • @kjihyeon1358
    @kjihyeon1358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전현무씨 그만 좀 나왔으면....좋아하는 mc이긴 한데 진짜 방송에 너무너무 많이 나오니까 질린다

  • @stellar19911
    @stellar19911 3 месяца назад

    이 프로 TV에서 보았는데 나는 타지에서 수원으로 와서 50년을 넘게 산 사람으로 수원에 대하여 모르던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많이 도움이 되었다.
    다만 내가 보기에는 극히 일부지만 다소 해석에 무리가 있는 듯한 것도 있었다.
    그 보다 요사이 많이 잘못 사용되고 있는 공수(空輸)라는 용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수는 '공중으로 수송한다'는 뜻인데 화성을 지을 때 토목자재를 인근 산 등에서 공수했다는 말이 몇 번 나온다.
    요사이 이것 뿐 아니라 한자어로 된 용어가 잘못 쓰이는 경우가 자꾸 늘어가는 추세인데 한글관계 기관 등에서 바로 잡는 활동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홍진경이 방화수류정에 있는 십자 문양을 보고 천주교에 대한 자신의 편향된 내용을 말하는 것은 많이 거슬렸다.
    전현무가 배산임수를 말할 때는 무속이냐고 다구치더니 건물에 십자가 문양을 보고는 자기집을 지을 때는 건물 곳곳에 십자가를 넣어서 지어서 사는데 겁이 나지 않는다는 다분이 더 무속적인 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