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검법 연계: 매인설한-매화인동-매화만개 / 무협 단편: 아미파 속가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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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6

  • @hwasansword
    @hwasansword  Год назад +5

    (영상 속의 동양화는 수도자 제작이므로 저작권에 문제 없습니다. :) 매번 새로운 동양화가 올려질 예정입니다.)
    - 차 한잔 무협단편: 아미파 속가 제자들 -
    송나라 시대의 시작과 함께 당시 사회에선 여성이 그 전 시대에비해 훨씬 활발한 소비활동을 할수 있었다. 당시 고려 사회 또한 마찬가지였듯이, 여성을 위한 상품들이 시장에 더욱 많이 들어섰다. 예를 들어 화장유, 향유, 머리치장 용품, 피부미백용 미안수, 진보적인 의류 등 이었다. 분과 연지 등은 그 이전시대 부터 있었지만, 송대에 들어서 의류와 미용제품들의 확연한 발전이 있었다. 동시대 고려의 향유는 이웃 나라들로 수출될 정도였다고 한다. 여러 상품들에대한 소비자가 급증하면 그만큼 부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며, 부자집 자녀들의 수도 늘어난다. 당연히 이 시대 부자집 소저들은 집에만 틀어박히도록 강요받지 않았다. 밖으로 자유롭게 다니길 추구했는데, 문제는 이들의 안전이었다. 왕족, 귀족 집안도 아니고 정부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신흥 부유층이라 흑도나 사파의 쉬운 표적이 될수 있었다.
    아미파의 속가제자들은 부유한 상인들 딸의 호위무사로 자주 채용되었다. 안전을 많이 신경쓰는 집에서는 호위무사가 딸의 목욕시간에도 철저 호위하도록 요구했기에, 당연히 여성의 문파를 선호했다. 처음엔 아미파의 독점인 듯 했으나 화산파의 여성 매화검수들이 고용되기 시작하자, 두 문파 사이에 이 분야에서 경쟁이 있게되었다. 아미파 검법의 원리는 '면리장침'(綿裏藏針) 이었다. 즉 상대방이 강하게 공격해 올수록 그 상대는 치명상을 입을수 있다. 바늘을 감춘 솜을 강하게 쥘수록 바늘이 깊게 박히는 원리이다. 무당파의 태극검법과 비슷한 이론 같지만, 태극검법과는 달리 공격측의 검날에 자신의 검날을 밀착해서 원형으로 돌리는 초식이 없었다. 이러한 '착검' 보다는 회피와 공격이 동시에 이뤄지는 초식들이 많았다. 특히 사파나 흑도에서 덩치가 우람하고 무거운 무기를 쓰는 자들 중에 아미파 제자들에게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 주로 산길이나 반점에서 추근덕거리다 혼쭐이 나는 경우였다.
    호위무사가 되는 경우는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아미산에 계속 남아 고행을 할 생각이 없다면, 비전 검법인 난피풍검법(亂披風劍法)까지 습득한 후 하산하여 살 길을 찾아야했다. 젊어서 재정적 안정을 꾀하는 제자들은 항주, 낙양, 개봉 등 큰 도시 객잔의 무희가 되어 검무를 추었다. 이들은 다른 무희들과는 친해지지 못했다. 시기를 샀기 때문이다. 무공으로 날렵함과 미모를 오랜 세월 유지할수 있었으므로, 다른 무희들은 자기들끼리 이들을 '요녀'라 부르곤 했다. 세월이 지난 후엔 아미파 출신 무희들끼리 돈을 모아 객잔을 차려서 하산하는 후배들을 무희로 불러들였다. 이러한 객잔은 진상이나 폭력적인 손님이 있을수 없었다. 난동을 피우면 금방 무공으로 제압당했기에. 정파 무인들은 아미파 제자들의 객잔을 선호했다. 무엇보다 우선 음식이 안전했기 때문이다. 산행을 뚫고 큰 도시에 도착한 정파 무인들은 아미파 객잔의 특기인 두부 요리를 시켜 먹고는 숙박하여 여독을 풀고자 했다. 하지만 밝은 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파인들이 시비, 또는 접수를 목적으로 무리지어 들이닥치곤 했다. 관가의 순찰이 허술한 늦은 밤에 혈전이 일어나곤 했는데, 투숙하던 정파 무인들이 싸움에 가세하여 강호의 은원이 이곳에서도 쌓였다. 그래서 정파 무인들끼리 하는 말이 있었다. '아미파 제자들 객잔에선 안전한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잘 때는 검을 품고 자라.'
    객잔과 연관되고 싶지 않은 아미파 제자들 중 의술이 뛰어난 이들은 큰 거리에서 침술원을 차렸다. 탕약도 제공하는 곳이었다. 이들의 삶이 의원이라해서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건물주가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있어서였다. 매해마다 월세를 올리는 건물주가 있는가 하면, 침 맞으러 왔다면서 추행을 시도하는 건물주도 있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면 그만큼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야 하므로, 이 제자들의 얼굴엔 수심이 자주 있었다. 차라리 건물주가 사파나 흑도여서 한바탕 검을 겨루면 시원할 터였다. 자주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그러고는 독백했다. '아, 하산 후 평범하게 살려했으나 오히려 삶이 고단해졌구나.'
    이들 중엔 침술원을 정리하고 시장 한 구석에서 약재만 파는 제자도 있었다. 그 시대의 특성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젊은 처자가 시집은 안가고 시장 구석에서 처량하네.' 이런 식 이었다.
    속세에서 도인의 마음을 지키기가 힘든 중에 아미파 제자들은 이태백의 싯귀를 독백했다.
    올려 바라보니 푸른 하늘 보이고
    강가의 풀은 근심을 알지 못하며
    바위 위의 꽃은 다만 다투어 피었구나!

    • @withgoodmanner318
      @withgoodmanner318 Год назад +1

      무협소설에서 우리네 현실이 읽히네요. 정말 최고입니다 ㅇㅁㅇ)b

    • @hwasansword
      @hwasansword  Год назад +1

      @@withgoodmanner318 남겨주신 글 보며 다행이라 생각됬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주말 되십시요. :)

  • @lilSUNGMINlil
    @lilSUNGMINlil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포토샵 좀 하면 굉장히 멋있을것 같네요

    • @hwasansword
      @hwasansword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언 감사합니다! ^_^ 알아보고 연습해봐야겠습니다.

  • @Devilocean666
    @Devilocean666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진짜 무공 써보고 싶다 기공같은거

    • @hwasansword
      @hwasansword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수련의 세계는 즐거움 입니다. ^_^ 좋은 주말 되십시요.

  • @user-moderately
    @user-moderately Год назад +1

    화려합니다.🎉

    • @hwasansword
      @hwasansword  Год назад +1

      안녕하세요 김 선생님. ^_^ 이렇게 격려의 메시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금요일 되십시요. :)

  • @ESB_lmh
    @ESB_lmh Год назад +2

    가검이라도 쓰는게 더 멋있을것 같아요..동작은 멋진데 칼 보면 웃음벨임

    • @hwasansword
      @hwasansword  Год назад

      조언 감사합니다. :) 한국에 있는 가검들이 대부분 날이 한 면인 '도'이더라구요. 그래서 검의 형태인 가검을 제작하려 했는데, 가격이 부담이 됬습니다.

  • @남자는맵게
    @남자는맵게 Год назад +1

    요즘이 난세가 맞죠. 공감합니다.

  • @sonamu2008
    @sonamu2008 Год назад +1

    참한 단전공부!

    • @hwasansword
      @hwasansword  Год назад

      선생님 안녕하세요. :) 좋은 주말 되십시요.

  • @만쥬-b3q
    @만쥬-b3q Год назад +1

    특징: 이동이 빠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