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시의 묘(權諰之墓) Tomb of Gwon Si 조선시대 문화사적 가치가 큰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1호 서구 탄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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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7 янв 2025
-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자료
권시의 묘(權諰之墓)
Tomb of Gwon Si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1호
(2008년 8월 22일 지정)
면적 6,944m2
수량 묘 1기, 석물 1식
시대 조선시대
탄옹 권시(炭翁 權諰, 1604~1672)의 묘는
우암, 동춘당, 초려 이유태 등과 함께
이 고장의 대표적인 예학자 중 한분의 묘로
1700년(숙종 26) 11월에 지금의 탄방동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이장을 거쳤지만 묘역의 석물들이 유래가 확실하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조선 중기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이곳은 조선 후기 공주 탄방에 세거하였던
예학자이자 문신인 탄옹 권시(炭翁 權諰)의 묘이다.
탄옹은 어려서 안자(顔子: 공자의 수제자 안회)에 비유될 정도로
총명하였으며 학문에도 독실했다.
조선 인조 때인 1636년에는 대군사부(大君師傅)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였고, 이후에도 선릉참봉,
세자시강원자 등의 벼슬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후 1649년 공조좌랑(工曹佐郎)으로 처음 벼슬길에 나아가
경상도사, 승지, 찬선(贊善)을 역임한 후 한성부 우윤에 임명되었다.
사후에 좌참찬(左參贊)으로 추증되었으며,
대전 도산서원에 제향(祭享)되었다.
묘소는 조선 현종 13년(1672) 보문산 사정동에 조성되었다가
조선 숙종 26년(1700)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묘소는 부인 함양 박씨와 합장묘(合葬墓)로 조성되었으며,
석물로는 신도비, 문인석, 신·구 묘정비, 상석, 망주석 등이 있다.
구 묘정비(廟庭碑)는 1712년에 세웠던 것으로,
조선 영조 때인 1737년에 신 묘정비를 세우면서 현재의 분묘 인근에
묻었던 것을 다시 세운 것이다.
신 묘정비의 비문은 탄옹의 사위이자 문인이었던 윤증(尹拯)이 지었고,
글씨는 외증손 윤동원(尹東源)이 썼다.
망주석은 기둥이 정사각형의 단면이고, 위쪽은 둥글게 처리되어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망주석은 조선시대의 분묘에서는
찾아보기 매우 어려운 예로, 문화사적 가치가 크다.
현재의 상석은 새로 만든 것이고,
이전의 상석은 현재의 묘소 부근에 묻었다.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239-1
239-1 Tanbang-dong, Seo-gu, Daejeon
202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