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리초 요서10성(55년)~책성비(98년) 3대 대무신태왕(28~64) 재위 37년 ※생몰 4~64 (60세 사망) 4대 민중태왕(64~68) 재위5년 ※생몰 7~68 (59세 사망) 대무신 아우.. 5대 모본태왕(68~73) 재위6년 ※생몰 40~73 (33세 사망) 대무신 아들.. 6대 신명선태왕(73~112) 재위40년 ※생몰 48~121 (73세 사망) 대무신 아들이자 호동 친동생.. 7대 태조호태왕(112~146) 재위35년 ※생몰 68~165 (97세 사망) 신명선태왕 아들 1. 대무신태왕(28~64) 북어상태 사구(49) 18~28년 온조 섭정 시대를 거쳐, 서기28년 24살의 대무신태왕이 즉위했다. 48년(대무신 21) 옛 구리(&고조선) 땅 다물을 목표로 강력한 대제국 고구리 건설을 위한 정복전쟁을 계획한다. 이듬해인 49년(대무신 22), 대무신태왕은 네 갈래 길로 나누어 후한의 군사 요충지 태원, 상곡, 북평, 어양을 동시에 치기로 하고, 우도는 태원(현토군)을, 오의는 상곡(요)을, 두로는 북평(대방군)을, 재사는 어양(요동)을 정벌케 했다. 1년 내내 고구리군이 네 곳을 정벌하고 주변을 빼앗자 요동태수 제융은 고구리에 화친을 구걸하며 매년 조공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살아남았다. 북평(임둔), 태원(현토), 상곡(낙랑), 어양, 요동 북쪽지역까지 점령.. 55년(대무신 28)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 한족 침략에 대비했다. 50여년뒤 요동6성을 뺏는다. 북평-어양-상곡-태원을 49년(사구) 뺏음.. 2. 태행산맥(태백산으로 가는 산맥) 태백산으로 가는 산맥의 근원(바탕)이 되는 곳이 ‘태원’, 태백산 동남쪽=행인국.. 여양산맥에 있는 도시가 ‘양맥’.. 3. 55년(대무신 28) 고구리땅 요서(요의 서쪽)에 10성을 쌓아 선비족, 한족에 대비했다. 요서10성 중 ‘거란’도 있네.. 얘네가 나중에 커서 요나라~~ '거란'도 '고구리'였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고리거란전쟁은 동족끼리 헤게모니를 다투는 전쟁이었다는 얘기다. 부자 재벌이 죽었을 때, 유산을 다투며 형제끼리 피튀기게 싸우는 꼴을 흔히 볼 수 있다. 차라리 남의 나라와 전쟁할 때는 노예로 써야 하니까 살려두기도 하는데, 형제국끼리 '정통성 헤게모니'를 다툴 때는 죽여버린다. 더 잔인하게 군다. 4. 56년(대무신 29) 동옥저를 무릎꿇렸다. 동옥저=한반도땅 대륙에서 넘어갈 때 장령산맥과 압록강이 가로막고 있는 척박한 한반도땅은 역사무대의 변방으로 서로 공격하고 복수하는 전쟁기록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지역이다. 당시 산업은 농업이 사실상 전부였고 땅을 누가 얼마나 더 많이 갖고 있느냐가 국력을 가늠하는 잣대였다. 많은 땅을 인구가 많으며, 그 인구를 기반으로 전쟁시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들 간의 피튀기는 수천년간의 전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지역은 태행산맥 동쪽의 넓은 중원땅이었다. 고구리-백제-신라-대진고리(발해)-고리의 무대는 바로 그곳 대륙동부였다. 실성왕때(406), 자비왕때(465) 슈퍼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갔던 곳, 609년(진평31) 모지악산 화산폭발로 10달간 용암이 흘러내린 곳, 657년 토함산 화산폭발후 불타오르기를 3년동안 한 곳은 경상도가 아니라 대륙 안휘성였다는 얘기다. 올해 우리 고토 날씨가 어떻던가? 옛 고구리 땅은 땡볕에 이상고온으로 말라가고, 옛 백제땅 황하남쪽 하남성 하택시는 토네이도로 건문 2800채가 무너지고 80명이 죽었다. 옛 신라땅 양자강유역은 한달째 쏟아붓는 폭우로 안휘성이 물에 잠겼다. 최대강수량 266mm를 기록하며 주민24만이 긴급대피하기도 했다. 또한 동정호 제방이 무너져 호북과 호남성은 수중도시가 되어버렸다. 이는 108년 파사이사금 때 경상도땅에 홍수가 나서 민중이 굶어죽어가는데, 같은 해 경기도의 기루왕 땅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들어 흉년으로 민중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기록 나온 거랑 왠지 겹치지 않나? 무열왕 때인 657년 신라 일선군에 대홍수가 나서 물에 빠져 죽는 자가 3백명! 그런데 백제(의자 17)는 가뭄으로 땅이 빨갛게 타들어간다. 뭔가 올해 중국 재난보도랑 겹친다는 게 안 느껴져? 동서 300km 이 코딱지만한 땅덩어리에서 가능한 일이겠나, 아니면 올해 대륙의 기상소식에서 보듯 대륙고토에서 가능한 일이겠나? '생각'이란 걸 좀 해 보시라. (퍽이나, 하겠냐마는~) 5. 56년 한반도땅(동옥저)까지 고구리 성읍으로 삼은 바, 동쪽 영토는 창해(滄海)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살수(薩水) 에 이르렀다. ① 동해 vs 창해 : 대륙의 동쪽 바다=동해, 한반도 동쪽 수심깊은 푸른 바다=창해(滄海) ② 살수(薩水) 즉 '살색 물'은 '황하 또는 황하 지류'를 뜻한다. 6. 68년(모본1) 갈사왕 항복 BC6년(대소1) 동부여 대소왕이 고구리 졸본성을 침략하였으나 큰 눈이 와서 실패, AD13년(대소 19), 대소가 다시 고구리를 쳤으나 대패.. AD22년(대소 28), 이번엔 고구리가 침략했고 대소 목을 땀.. 동부여는 고구리에 복속됐으나, 일부세력은 갈사국(길림) 세움.. 갈사국 3대 도두왕 때인 68년(=고구리 모본1), 나라를 들어 항복했다. 3세 47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 고구리는 도두를 '우태'로 삼고 집을 내려주고, 혼춘을 식읍으로 삼게 하여 동부여후에 봉하였다. ※'우태'는 고구리 12품 중 4품 상대부에 해당하는 고위직관료.. ※'공경대부(公卿大夫)'라는 말을 쓰는데, 1품 태보·좌부·우보를 '공公'이라 하고, 2품 주병·주민·주형·주공·주곡 5대가(대경·소경), 3품 대주부·대장군·대사자·대대로를 '경(卿 대경·소경)'이라 한다. 4품 상대부, 5품 중대부, 6품 하대부를 합하여 '대부大夫'라 한다. 4품 이상이면 고위관료!! 1품 3명, 2품 10명.. 가을 7월 왕의 친척 동생이 옛 도읍 백성 만여명을 데리고 고구리에 투항하니, 고구리는 그를 봉하여 왕으로 삼고 연나부에 안치하였다. 그의 등에 띠와 같은 무늬가 있었던 까닭에 낙씨의 성을 하사하였는데 뒤에 차츰 자립하여 개원 서북쪽 백랑곡에 옮기니 바로 연나라의 땅에 가까운 곳이었다. 7. 72년(모본5) 조나 정벌 동부여 속국 조나(조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관나부 패자 달가를 보내 평정! 달가는 목탁과 함께 조나국 왕을 사로잡았고, 목탁은 조나국 공주 창을 처로 삼는다(조나국을 제후국 삼음). 8. 74년(신명선2) 주나 정벌 환나부 패자 설유를 보내 반란을 평정한 뒤, 왕자 을음을 사로잡았는데, 고추가 벼슬을 주었다. ※'고추가古鄒加'는 고구리 제후국 우두머리에게 주어지는 벼슬(작위 성격도 가짐)..
9. 북한 평양은 '평양'이 아니고 '한성漢城'!! 평양 중앙력사박물관에 전시된 평양성 각자성벽(네번째 것)에 "병술년12월, '한성漢城' 아래뒤부분을 '소형小兄' 문달이 여기로부터 서북방향 성벽을 맡는다(漢城하후부 小兄문달 절자차서북행보지)"라 쓰여있다. '소형小兄'이라는 작위가 고구리 품계에 실제 존재했음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해준 것이다. 그리고 현 북한 평양은 당시에 '평양'이 아니라 '한성漢城'이었음을 고고학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세종대왕 때 신하들과 고구리-백제-신라 수도를 알아보라 하는 내용이 에 기록되어 있는데, 신하들이 "백제 수도는 전주인 거 같고, 신라 수도는 경주인 거 같은데, 고구리 수도는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반도 땅 안에서 도저히 때려맞출 수 없었던 것이다. 위대한 한글을 만든 세종도 고구리 수도를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 역사학자들은 고구리 수도를 북한 평양이라고 입으로 나불거려?? 쓰다 소키치가 '고구리 수도=대동강 평양'이라 했다는 건데, 일본놈 쓰다 소키치가 신이냐? 북한의 평양을 고구리 평양으로 하면 일본 영토보다 작아지게 만들 수 있잖냐? '고구리-백제-신라' 합친 게 일본열도보다 작아야 했던 거다. 걔네 마인드 파악 안 돼? 모르겠어? 고구리 제후국 한반도 끝자락 경주에 '임자 모르는 무덤들'이 많다. 천자로부터 받은 선물은 죽어서도 가져가야 할 중요한 물건들이라 무덤임자와 함께 묻었다. 김유신 없는 김유신묘, 김춘추 없는 김춘추묘(무열왕릉), 김미추 없는 김미추묘(미추왕릉), 김인문·김양 없는 김인문·김양묘, 김선덕 없는 김선덕묘(狼山 선덕여왕릉), 그리고 주인없는 천마총, 황남대총 등 숱한 고구리 제후 무덤들.. 이제 그만 역사진실을 좀 바라보자. 제발~~ (퍽이나 그러겠냐마는~) 9. 98년(신명선26) 책성(동부여 수도, 현 장춘)에 순행했다. 유화부인이 죽은 곳이고, 여기서 금와왕이 황후의 예로 장사지내준 곳이다. 신명선태왕 기록은 매우 빈약한데, 책성 순행 기록 전 21년간 기록이 전무하다. 책성에 공적비를 세웠다는데, 이게 발견되면 대박이겠지만, 신명선태왕의 존재 자체도 지운 마당에 비석이 온전히 남아있을 턱이 없다고 본다. 고리의 황제국 모습을 지우겠다고 고리의 모든 책과 지도와 그림도 다 없앨 만큼 한 나라의 총력이 동원된 '역사 지우기 작업'에 어찌 당해내겠나? 10. 한국사학자떼 우리나라 역사학자 중 고구리 태왕별 영토를 그려서 가르치는 사람이 단 한마리라도 있나? No, no.. 단 한마리도 없다. 그래놓고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가르친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어깨 힘 빡 주는 꼴 보면 가소롭기 그지없다. 쓰다 소키치 총독부사관에 끼워맞추기 힘들다는 이유로 한국의 삼국시대 정사 도 개무시하며, 보조재로도 취급 안 한다. 취급 안 하고 중국사서 위주로만 삼국 중세사를 해석한다는 면에서 9할 강단사학자(반도사학), 1할 재야사학자(만주사학) 다 마찬가지다. 말세에 환부역조하는 자들은 다 지옥에 간다는 말이 있는데, 환부역조 (換父易祖)는 '아버지를 바꾸고 조상을 팔아먹는다는 뜻'인데 대한민국 역사교수, 강사떼는 다 '환부역조'하는 놈들이다.
살색,살구, 살수 모두 살색을 띄는 물 맑은 모래색도 살색이죠. 을지문덕의 문덕진이 있는곳 옆에 대사하가 흐르는데 이 물줄기가 모래가 아주 많고 오대산에서 흘러나와서 맑죠. 물이 얋고 모래사장이 넓은 곳을 도강할 수 있는 곳으로 알고 건널때 공격받으면 둔해서 방어를 못하죠. 지면이 단단한 곳으로 못가게 공격하니 건너온 곳으로 못건너가고 넓고 얇은 대사하(살수)를 건너가는 수나라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한 것이죠. 살수는 현재는 대사하입니다.
고구리 수도 평양이 백제에 너무 가깝네요. (백제가 고구리의 일부 같습니다.) 북어상태 4성 없다면 수도 위치가 한나라의 공격에 위험하겠습니다. 평양의 위치는 군사적 강함이 있어야 Yuji가 가능합니다. 상업과 인력 문화 행정 활동측면에서 고구리 수도의 위치가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상해의 소금 교역과 군대를 배치하기 좋은 위치가 고구리 수도 같습니다.
고구리 수도 한성 (漢城) 조선 수도와 한국의 수도 서울을 중국인들은 한성(漢城)으로 부릅니다. 왜 고구리와 조선은 가장 중요한 수도를 적국인 漢(한)으로 표기 하였을까요? 고구리와 조선이 사용한 한(漢)에는 다른 뜻이 있을것이라 추측합니다. 漢 푸주(한) 푸주:마른 두부 껍질 장기에 등장하는 한(漢)은 어느 나라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고구리??
영상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참고하시라고... 명나라는 주원장이 홍건적을 등에 업고 건국했는데 사상적 근원은 종교집단 일월교(日月敎)였습니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일월교의 日과 月을 합친 明나라로 지음. 주원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말처럼 원나라를 밀어낸 이후 일월교가 명나라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일월교를 탄압함.
고구리초 요서10성(55년)~책성비(98년)
3대 대무신태왕(28~64) 재위 37년 ※생몰 4~64 (60세 사망)
4대 민중태왕(64~68) 재위5년 ※생몰 7~68 (59세 사망) 대무신 아우..
5대 모본태왕(68~73) 재위6년 ※생몰 40~73 (33세 사망) 대무신 아들..
6대 신명선태왕(73~112) 재위40년 ※생몰 48~121 (73세 사망) 대무신 아들이자 호동 친동생..
7대 태조호태왕(112~146) 재위35년 ※생몰 68~165 (97세 사망) 신명선태왕 아들
1. 대무신태왕(28~64) 북어상태 사구(49)
18~28년 온조 섭정 시대를 거쳐, 서기28년 24살의 대무신태왕이 즉위했다.
48년(대무신 21) 옛 구리(&고조선) 땅 다물을 목표로 강력한 대제국 고구리 건설을 위한 정복전쟁을 계획한다. 이듬해인 49년(대무신 22), 대무신태왕은 네 갈래 길로 나누어 후한의 군사 요충지 태원, 상곡, 북평, 어양을 동시에 치기로 하고, 우도는 태원(현토군)을, 오의는 상곡(요)을, 두로는 북평(대방군)을, 재사는 어양(요동)을 정벌케 했다. 1년 내내 고구리군이 네 곳을 정벌하고 주변을 빼앗자 요동태수 제융은 고구리에 화친을 구걸하며 매년 조공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살아남았다.
북평(임둔), 태원(현토), 상곡(낙랑), 어양, 요동 북쪽지역까지 점령.. 55년(대무신 28)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 한족 침략에 대비했다. 50여년뒤 요동6성을 뺏는다. 북평-어양-상곡-태원을 49년(사구) 뺏음..
2. 태행산맥(태백산으로 가는 산맥)
태백산으로 가는 산맥의 근원(바탕)이 되는 곳이 ‘태원’, 태백산 동남쪽=행인국.. 여양산맥에 있는 도시가 ‘양맥’..
3. 55년(대무신 28) 고구리땅 요서(요의 서쪽)에 10성을 쌓아 선비족, 한족에 대비했다.
요서10성 중 ‘거란’도 있네.. 얘네가 나중에 커서 요나라~~ '거란'도 '고구리'였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고리거란전쟁은 동족끼리 헤게모니를 다투는 전쟁이었다는 얘기다. 부자 재벌이 죽었을 때, 유산을 다투며 형제끼리 피튀기게 싸우는 꼴을 흔히 볼 수 있다. 차라리 남의 나라와 전쟁할 때는 노예로 써야 하니까 살려두기도 하는데, 형제국끼리 '정통성 헤게모니'를 다툴 때는 죽여버린다. 더 잔인하게 군다.
4. 56년(대무신 29) 동옥저를 무릎꿇렸다. 동옥저=한반도땅
대륙에서 넘어갈 때 장령산맥과 압록강이 가로막고 있는 척박한 한반도땅은 역사무대의 변방으로 서로 공격하고 복수하는 전쟁기록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지역이다. 당시 산업은 농업이 사실상 전부였고 땅을 누가 얼마나 더 많이 갖고 있느냐가 국력을 가늠하는 잣대였다. 많은 땅을 인구가 많으며, 그 인구를 기반으로 전쟁시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들 간의 피튀기는 수천년간의 전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지역은 태행산맥 동쪽의 넓은 중원땅이었다. 고구리-백제-신라-대진고리(발해)-고리의 무대는 바로 그곳 대륙동부였다.
실성왕때(406), 자비왕때(465) 슈퍼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갔던 곳, 609년(진평31) 모지악산 화산폭발로 10달간 용암이 흘러내린 곳, 657년 토함산 화산폭발후 불타오르기를 3년동안 한 곳은 경상도가 아니라 대륙 안휘성였다는 얘기다.
올해 우리 고토 날씨가 어떻던가? 옛 고구리 땅은 땡볕에 이상고온으로 말라가고, 옛 백제땅 황하남쪽 하남성 하택시는 토네이도로 건문 2800채가 무너지고 80명이 죽었다. 옛 신라땅 양자강유역은 한달째 쏟아붓는 폭우로 안휘성이 물에 잠겼다. 최대강수량 266mm를 기록하며 주민24만이 긴급대피하기도 했다. 또한 동정호 제방이 무너져 호북과 호남성은 수중도시가 되어버렸다.
이는 108년 파사이사금 때 경상도땅에 홍수가 나서 민중이 굶어죽어가는데, 같은 해 경기도의 기루왕 땅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들어 흉년으로 민중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기록 나온 거랑 왠지 겹치지 않나?
무열왕 때인 657년 신라 일선군에 대홍수가 나서 물에 빠져 죽는 자가 3백명! 그런데 백제(의자 17)는 가뭄으로 땅이 빨갛게 타들어간다. 뭔가 올해 중국 재난보도랑 겹친다는 게 안 느껴져?
동서 300km 이 코딱지만한 땅덩어리에서 가능한 일이겠나, 아니면 올해 대륙의 기상소식에서 보듯 대륙고토에서 가능한 일이겠나? '생각'이란 걸 좀 해 보시라. (퍽이나, 하겠냐마는~)
5. 56년 한반도땅(동옥저)까지 고구리 성읍으로 삼은 바, 동쪽 영토는 창해(滄海)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살수(薩水) 에 이르렀다.
① 동해 vs 창해 : 대륙의 동쪽 바다=동해, 한반도 동쪽 수심깊은 푸른 바다=창해(滄海)
② 살수(薩水) 즉 '살색 물'은 '황하 또는 황하 지류'를 뜻한다.
6. 68년(모본1) 갈사왕 항복
BC6년(대소1) 동부여 대소왕이 고구리 졸본성을 침략하였으나 큰 눈이 와서 실패, AD13년(대소 19), 대소가 다시 고구리를 쳤으나 대패.. AD22년(대소 28), 이번엔 고구리가 침략했고 대소 목을 땀.. 동부여는 고구리에 복속됐으나, 일부세력은 갈사국(길림) 세움..
갈사국 3대 도두왕 때인 68년(=고구리 모본1), 나라를 들어 항복했다. 3세 47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 고구리는 도두를 '우태'로 삼고 집을 내려주고, 혼춘을 식읍으로 삼게 하여 동부여후에 봉하였다. ※'우태'는 고구리 12품 중 4품 상대부에 해당하는 고위직관료..
※'공경대부(公卿大夫)'라는 말을 쓰는데, 1품 태보·좌부·우보를 '공公'이라 하고, 2품 주병·주민·주형·주공·주곡 5대가(대경·소경), 3품 대주부·대장군·대사자·대대로를 '경(卿 대경·소경)'이라 한다. 4품 상대부, 5품 중대부, 6품 하대부를 합하여 '대부大夫'라 한다. 4품 이상이면 고위관료!! 1품 3명, 2품 10명..
가을 7월 왕의 친척 동생이 옛 도읍 백성 만여명을 데리고 고구리에 투항하니, 고구리는 그를 봉하여 왕으로 삼고 연나부에 안치하였다. 그의 등에 띠와 같은 무늬가 있었던 까닭에 낙씨의 성을 하사하였는데 뒤에 차츰 자립하여 개원 서북쪽 백랑곡에 옮기니 바로 연나라의 땅에 가까운 곳이었다.
7. 72년(모본5) 조나 정벌
동부여 속국 조나(조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관나부 패자 달가를 보내 평정! 달가는 목탁과 함께 조나국 왕을 사로잡았고, 목탁은 조나국 공주 창을 처로 삼는다(조나국을 제후국 삼음).
8. 74년(신명선2) 주나 정벌
환나부 패자 설유를 보내 반란을 평정한 뒤, 왕자 을음을 사로잡았는데, 고추가 벼슬을 주었다. ※'고추가古鄒加'는 고구리 제후국 우두머리에게 주어지는 벼슬(작위 성격도 가짐)..
9. 북한 평양은 '평양'이 아니고 '한성漢城'!!
평양 중앙력사박물관에 전시된 평양성 각자성벽(네번째 것)에 "병술년12월, '한성漢城' 아래뒤부분을 '소형小兄' 문달이 여기로부터 서북방향 성벽을 맡는다(漢城하후부 小兄문달 절자차서북행보지)"라 쓰여있다.
'소형小兄'이라는 작위가 고구리 품계에 실제 존재했음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해준 것이다. 그리고 현 북한 평양은 당시에 '평양'이 아니라 '한성漢城'이었음을 고고학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세종대왕 때 신하들과 고구리-백제-신라 수도를 알아보라 하는 내용이 에 기록되어 있는데, 신하들이 "백제 수도는 전주인 거 같고, 신라 수도는 경주인 거 같은데, 고구리 수도는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반도 땅 안에서 도저히 때려맞출 수 없었던 것이다. 위대한 한글을 만든 세종도 고구리 수도를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 역사학자들은 고구리 수도를 북한 평양이라고 입으로 나불거려??
쓰다 소키치가 '고구리 수도=대동강 평양'이라 했다는 건데, 일본놈 쓰다 소키치가 신이냐? 북한의 평양을 고구리 평양으로 하면 일본 영토보다 작아지게 만들 수 있잖냐? '고구리-백제-신라' 합친 게 일본열도보다 작아야 했던 거다. 걔네 마인드 파악 안 돼? 모르겠어?
고구리 제후국 한반도 끝자락 경주에 '임자 모르는 무덤들'이 많다. 천자로부터 받은 선물은 죽어서도 가져가야 할 중요한 물건들이라 무덤임자와 함께 묻었다.
김유신 없는 김유신묘, 김춘추 없는 김춘추묘(무열왕릉), 김미추 없는 김미추묘(미추왕릉), 김인문·김양 없는 김인문·김양묘, 김선덕 없는 김선덕묘(狼山 선덕여왕릉), 그리고 주인없는 천마총, 황남대총 등 숱한 고구리 제후 무덤들.. 이제 그만 역사진실을 좀 바라보자. 제발~~ (퍽이나 그러겠냐마는~)
9. 98년(신명선26)
책성(동부여 수도, 현 장춘)에 순행했다. 유화부인이 죽은 곳이고, 여기서 금와왕이 황후의 예로 장사지내준 곳이다.
신명선태왕 기록은 매우 빈약한데, 책성 순행 기록 전 21년간 기록이 전무하다. 책성에 공적비를 세웠다는데, 이게 발견되면 대박이겠지만, 신명선태왕의 존재 자체도 지운 마당에 비석이 온전히 남아있을 턱이 없다고 본다. 고리의 황제국 모습을 지우겠다고 고리의 모든 책과 지도와 그림도 다 없앨 만큼 한 나라의 총력이 동원된 '역사 지우기 작업'에 어찌 당해내겠나?
10. 한국사학자떼
우리나라 역사학자 중 고구리 태왕별 영토를 그려서 가르치는 사람이 단 한마리라도 있나? No, no.. 단 한마리도 없다. 그래놓고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가르친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어깨 힘 빡 주는 꼴 보면 가소롭기 그지없다.
쓰다 소키치 총독부사관에 끼워맞추기 힘들다는 이유로 한국의 삼국시대 정사 도 개무시하며, 보조재로도 취급 안 한다. 취급 안 하고 중국사서 위주로만 삼국 중세사를 해석한다는 면에서 9할 강단사학자(반도사학), 1할 재야사학자(만주사학) 다 마찬가지다.
말세에 환부역조하는 자들은 다 지옥에 간다는 말이 있는데, 환부역조 (換父易祖)는 '아버지를 바꾸고 조상을 팔아먹는다는 뜻'인데 대한민국 역사교수, 강사떼는 다 '환부역조'하는 놈들이다.
이용훈박사님, 감사합니다.
또다시 들어도 재미있어요 역시 👍 입니다
지도보면서 설명 들으니까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한수와 살수의 위치, 갈사국,조나국, 등등 쉽게 알려주는 삼국사기 이야기.
오늘도 명강의 입니다🎉🎉🎉
1:20 시작합니다.
에고고 일떄문에 라이브 놓치고 지금 다시보기 보려고합니다 명강의 잘보겠습니다
살색,살구, 살수
모두 살색을 띄는 물
맑은 모래색도 살색이죠.
을지문덕의 문덕진이 있는곳 옆에 대사하가 흐르는데 이 물줄기가 모래가 아주 많고 오대산에서 흘러나와서 맑죠.
물이 얋고 모래사장이 넓은 곳을 도강할 수 있는 곳으로 알고 건널때 공격받으면 둔해서 방어를 못하죠. 지면이 단단한 곳으로 못가게 공격하니 건너온 곳으로 못건너가고 넓고 얇은 대사하(살수)를 건너가는 수나라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한 것이죠.
살수는 현재는 대사하입니다.
● 책보고 고려 주요 26개 영상들 링크 >
(북경이 고려의 서경임을 증명하는 동영상 포함)
● 1) 고려영토 옛지도발견.우리가 모르던 영토
ruclips.net/video/_N2L4NbdZzA/видео.htmlsi=CTAnZYkK6pd88BAK
● 2) 거란,요나라위치
ruclips.net/video/Sn-CyiVb2wg/видео.htmlsi=_sMnwvHtf4YrnwDw
● 3) 고려낙타의 비밀
ruclips.net/video/CYfkbYlvI_w/видео.htmlsi=0z7npqPZP4kw42yc
● 4) 고려강화의 위치
ruclips.net/video/cPDmKw59AbM/видео.htmlsi=-9KBM-caEAlxATs3
● 5) 고려서경지도
ruclips.net/video/KzaJW_UjydM/видео.htmlsi=AIu3aGQvWSkTf455
● 6) 고려서경16개 핵심증거
ruclips.net/video/6oa7YRIbBbs/видео.htmlsi=1W-G7BTrSha2cbFr
● 7) 고려최충
ruclips.net/video/aMce5mN-awU/видео.htmlsi=8bSLSxcReLaSxSpz
● 8) 고려사 원문강의
ruclips.net/video/T1TrmNvMF34/видео.htmlsi=Cl7YceuSzRrk0BUb
● 9) 서희의 담판 고려사 원문
ruclips.net/video/6x3jAOy1Lts/видео.htmlsi=6z2yyJCWdiykIDL
● 10) 고려영토관
ruclips.net/video/lDdJ6tBC2Oo/видео.htmlsi=R_JXk_X1v0UDz4sD
● 11) 고려거란전쟁 위치비교
ruclips.net/video/I_R6Io6DZ1M/видео.htmlsi=Y3z4hOuMOGh8Pfly
● 12) 북한의 고려유적.유물
ruclips.net/video/u0OzQsseXHk/видео.htmlsi=BAQTeH26iLzUyB1W
● 13) 고려거란.서북장성 위치
ruclips.net/video/ouzcBstKJmI/видео.htmlsi=CyHcdjuPb6pTWqO5
● 14) 중국동부의 고려절?
ruclips.net/video/sqQfMKnF5l8/видео.htmlsi=juSobPEQWwpxjEEv
● 15) 고려말기 영토의 축소기록
ruclips.net/video/i-Mrc5bnvU8/видео.htmlsi=vfqFGyFQ0Ox01Eud
● 16) 고려거란 전쟁사 동국병감
ruclips.net/video/qhghMTCITns/видео.htmlsi=CmEBCJSUBSkCXL3J
● 17) 고려강화도와 삼별초위치
ruclips.net/video/UsRF02pE84k/видео.htmlsi=IZnoBRkn_luAbBmH
● 18) 도이, 오키나와 정체
ruclips.net/video/09ZowM1yJM8/видео.htmlsi=zyGxHNgl_YpqwC2t
● 19) 송나라 고려도경 세계최초 뱃길추적
ruclips.net/video/pxUmCsJn27s/видео.htmlsi=Y7klVAcHyC-B50_Y
● 20) 그림없는 그림책 고려도경 책 분석
ruclips.net/video/7PueEqN9z5w/видео.htmlsi=_ynpHSoi3n7M6NTc
● 21) 중국역대왕조들 위치와 삼국.고려
ruclips.net/video/rFytOlDro24/видео.htmlsi=SNhOBUGt9I4YdrqJ
● 22) 1388년 고려말 수도위치
ruclips.net/video/e1rYNpCgD0A/видео.htmlsi=6NbSGVGRrXZreg05
● 23) 고려땅 장춘
ruclips.net/video/WSJw16xTE48/видео.htmlsi=PZzbhXivQBEOQfNE
● 24) 고려말 이성계 만주하얼빈 점령기록
ruclips.net/video/7_LhbPb7r8o/видео.htmlsi=dLdh7zmK7Y0CoEuF
● 25) 북경서경 검증 및 고려영토
ruclips.net/user/live29Hpg8W91g4?si=ZKJoF1dcIawztvEd
26) 발해유민의 정안국 실제위치
ruclips.net/video/cenbTYohkLQ/видео.htmlsi=Lk7layJVFKgCgFR4
북경이 고려의 서경임을 증명하는 관련 동영상들 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북경이 서경임을 증명하라는 분들에게는 필독 독영상이니 꼭 보시길!
장군 상사 중사 하사
현행 군 계급과 같은 부분이 있네요.
Ps. 이순신제독
고구리 수도 평양이
백제에 너무 가깝네요.
(백제가 고구리의 일부 같습니다.)
북어상태 4성 없다면 수도 위치가
한나라의 공격에 위험하겠습니다.
평양의 위치는
군사적 강함이 있어야 Yuji가 가능합니다.
상업과 인력 문화 행정 활동측면에서
고구리 수도의 위치가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상해의 소금 교역과 군대를 배치하기 좋은 위치가
고구리 수도 같습니다.
@@DevilGate.ChertovyVorotaCave 이 당시 백제는 고구려의 제후국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동부여처럼 고구려 땅으로 표현해도 되는 시기입니다. 훗날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 때 이르러 백제는 더욱 남쪽으로 영토가 내려가게 됩니다.
@@three.empires
네, 잘 배웠습니다.
고구리 수도
한성 (漢城)
조선 수도와 한국의 수도 서울을
중국인들은 한성(漢城)으로 부릅니다.
왜
고구리와 조선은 가장 중요한 수도를
적국인 漢(한)으로 표기 하였을까요?
고구리와 조선이 사용한
한(漢)에는 다른 뜻이 있을것이라 추측합니다.
漢 푸주(한)
푸주:마른 두부 껍질
장기에 등장하는 한(漢)은
어느 나라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고구리??
영상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참고하시라고... 명나라는 주원장이 홍건적을 등에 업고 건국했는데 사상적 근원은 종교집단 일월교(日月敎)였습니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일월교의 日과 月을 합친 明나라로 지음. 주원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말처럼 원나라를 밀어낸 이후 일월교가 명나라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일월교를 탄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