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 부여/고구려계 해씨 및 백제 8대 성씨 분포(사,연,협,해,진,국,목,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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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1 ноя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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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j-hotel
전주에 사는데 사람들이 여기가 백제땅이고 후백제의 수도라고 소설을 쓰고있는것에 의혹이 많았었는데, 이영상을 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번뜩여집니다.
700년 고대국가가 제대로된 성 하나 없다는건 어불성설이죠
옳습니다
이거 하나로.. 백제가.. 여기라는 소리네....한반도의 백제일수없네요..
삼국이 대륙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닐 까 생각 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륙 삼국에 대한 확신이 드내요.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를 책으로 출판해주세요, 영원히 증거로 남기게. 수고하셨읍니다.
대단합니다. 고생 크셨고, 진심 감사드립니다.
박대표님이 하시는 이런 작업이 진짜 "실증"이지요(기존의 대다수 저들(?)은 그냥 소설을 쓸 뿐. 지들 스승들이 그려준 frame을 금과옥조 삼아 그 boudary에서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하는 지적 지진아들). 발로 뛰고 고생스런 작업후의 성과물에 근거한 상식적인 추론.
수많은 유튜브 역사 강의를 봐 왔지만 국내사학교수+민간사학자 합친거보다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이여서 반박이나 논란거리가 없내요
목씨의 집성촌인 사수는 사비성의 사자와 똑같네요
사비성은 사수근처에 있다고 보는것이 타당할듯 합니다
누가 곡부가 사비일거라는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사수 근처이니 대충 비슷하군요.
조사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귀한 내용을 너무 편하게 시청해서 죄송할 따름.
감사합니다.
선생의 열의와 노고에 진심으로 성원과 박수를 보냅니다.
정말 신박하고 유익한 강의였습니다 ㅉㅉㅉㅉㅉ
훌륭합니다
이것으로 백제는 대륙인걸로~🙉
더 말이 불필요
사천목씨 종중회가
도봉구의 정희공주묘 옆에 있던데
경남사천이 아닌
중국 사천이겠네요
놀랍습니다
매 영상마다 최고점을 갱신하고 계시네요ㄷㄷㄷ 수고하셨습니다 :)
무덤+성씨+지명 이건 빼박아닙니까????
역사를 성씨기원으로 분류하며 전개하니 신박합니다!
우리 고대사에 대한 색다른 각도로 조영하니 유익하네요!!
향후에도 조선민족의 잃어버린 고토와 역사고찰에 대한 활약을 기대합니다!!!
엄청난자료네요~
북경반점 선생님의 귀한 영상 고맙습니다. 구독으로 응원 드립니다!
😂훌륭하십니다🎉
산동에 거주하는 백제 귀족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생각을 할까요? 그것이 궁금합니다.분명 족보를 가지고 있을텐데요..
@@BJ-Hotel 멋진 생각입니다.
꼭 그들의대답을 듣고싶어요 감사합니다
한반도엔 부여씨가 없습니다
북경반점님, 안녕하세요? 굉장한 분이시네요. 교수 몇 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 다 하시는군요.
질문드립니다. 扶餘씨를 扶씨나 夫씨로는 절대 안 줄이죠?
요청드립니다. 예(禰)씨, 흑치(黑齒)씨, 여(餘)씨,
목씨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임(林)씨 집성촌도 한 번 찾아 봐 주세요.
사씨 집성촌은 사(砂)씨로도 찾아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택(沙宅=砂宅)
저는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출처 = 나무위키)
백(苩)=백(白)=묘(苗)/수(首)
목(木)=목(沐)=목라(木羅)=목리(木刕)=목협(木劦)=협(劦)
진(眞)=진모(眞牟=眞慕)=조미(祖彌)=저미(姐彌)=저(姐)=찬(贊)
"중국 사서에만 등장하는 성씨들 중 정씨(貞氏)는 진씨(眞氏)의 오기로, 묘씨(苗氏)와 수씨(首氏)는 백씨(苩氏)의 오기로 여겨진다. "
의견입니다. 《수서》 〈동이전〉 백제조에 이렇게 나오는 걸로 봐서,
"國中大姓有八族" (나라 안에 큰 성씨 여덟 가문이 있다)
8족 중 하나는 扶餘씨가 아닐까요?
(이하 나무위키)
백(苩)=백(白)=묘(苗)/수(首)
5대 초고왕 48년(213년) 7월에 등장한 회회(茴會)가 백씨(苩氏)라는 주장이 있다. 백제 관련 기록에서 '회(茴)'라는 글자는 오직 여기에서만 보이기 때문이다.
회(茴)가 성씨인지 그냥 이름의 일부인지 알 수 없다.
백씨는 24대 동성왕 대에 사택씨, 연비씨와 함께 등용되었다. 두각을 드러낸 백가(苩加)는 동성왕 8년(486년) 2월 위사좌평이 되었다.
현대에는 수가 가장 많은 수원 백씨를 위시한 여러 본관의 백씨들이 있으나 대성팔족 백씨와의 관계는 아직 불명이다. 그러나 대종(大宗)이자 주류인 수원, 대흥, 남포 등의 백씨들의 관향이 전통적인 옛 백제 영토에 위치하고,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신라에 잔류한 대성팔족들이 성씨를 바꾸거나 숨겼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백가(白加): 27대 위덕왕 대의 인물이다. 588년 왜국의 대신 소가노 우마코의 요청으로 은솔 수신(首信) 등과 함께 왜국으로 파견되어 호코지(法興寺) 창건에 참여한 화공이다.
백매순(白昧淳): 27대 위덕왕 대의 인물이다. 관등은 장덕(將德)이며, 백가와 함께 기술자로서 왜국에 파견되어 호코지 창건에 참여했다. 직책이 노반박사(鑪盤博士)였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호코지의 불탑 상륜부를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기(苩奇): 30대 무왕 대의 인물. 달솔이며 616년 10월 신라의 아막성을 공격했다.
목(木)=목(沐)=목라(木羅)=목리(木刕)=목협(木劦)=협(劦)
"문주가 곧 목협만치(木劦滿致)와 조미걸취(祖彌桀取)를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다.
【목협(木劦)과 조미(祖彌)는 모두 두 자 성인데, 《수서》에서는 목(木)과 협(劦)을 두 개의 성으로 보았으나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로왕 21년(475년) 9월
목라(木羅), 목협(木劦)이라고도 표기되었는데, 목협(木劦)은 목리(木刕)를 잘못 기재한 것이다.
한국, 일본의 기록에서 목협씨(木劦氏)로 협(劦)자가 등장하지만 협씨(劦氏)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것은 중국 기록 뿐이다.
그 때문에 목리씨(木刕氏)를 착각하여 탄생한 결과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또한, 목리(木刕)와 목라(木羅)가 《일본서기》에서는 별도의 훈 없이 똑같이 '모쿠라'라고 읽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목라씨였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참고로 '刕'의 음은 네이버 한자사전으로 검색해보면 '가를 리' 하나만 나오지만 다음 한자사전에 의하면 '가를 리, 가를 례'의 2개가 나온다.
'목협(木劦)'이 목례라 표기된 경우는 후자를 따른 경우이다. 刕는 현대 중국어나 일본어에서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그냥 '리'로 읽는다.
《삼국사기》에는 목협만치(木劦滿致)가 전부고, 《일본서기》의 목만치와 동일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일본서기》의 목라근자, 목리금돈, 목리마나, 목리문차 등이 목씨로 여겨진다.
일본 《신찬성씨록》에서는 하야시씨(林氏)가 목씨에서 유래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목씨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나주 임씨(羅州 林氏)가 있다.
목금(沐衿): 21대 개로왕 대의 인물. 목(木) 자가 아닌 목(沐) 자를 썼다.
예씨(禰氏)
대성팔족 외에 백제 후기의 유력한 귀족으로는 의자왕 대의 배신자 예식진(禰寔進)으로 유명한 예씨(禰氏)가 있다. 예씨는 무령왕 대의 반란으로 몰락하게 된 백씨(苩氏)를 대체해 요충지인 웅진성을 차지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백제의 지방 구분인 5방 중 하나인 북방을 관할하는 북방령을 역임하기도 했던 것으로 볼 때 '대성'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타 성씨와 달리 예씨에게는 반란으로 조국을 아예 망하게 했다는 큰 오점이 있다.
예식진의 손자인 예인수(禰仁秀)의 묘지명에 의하면 예씨의 선조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명한 독설가 예형(禰衡)이라고 한다.
예씨의 묘지명들끼리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어서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유물을 통해 볼 때 예씨가 중국계이거나 적어도 중국계와 깊은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예씨 일족 대부분은 2000년대 이후 발견된 예씨 묘지명에서 확인되었다.
예색돈(禮塞敦): 26대 성왕 대의 인물이다.
예숭(禰嵩), 예복(禰福), 예예다(禰譽多), 예사선(禰思善).
예식진(禰寔進): 의자왕 시기에 웅진성을 담당하는 백제 북방령 겸 웅진성주였다.
예식(禰植): 《신당서》 〈소정방 열전〉에만 등장. 예식진과 동일인 추정.
예군(禰軍), 예소사(禰素士), 예인수(禰仁秀).
긴 글 감사합니다. 이후 연구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BJ-Hotel 긴 글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길게 보내서 죄송합니다.
@@BJ-Hotel 아, 선생님, 백제 연씨와 연나라는 아무 관계가 없나요?
@@이지섭-j4i 네
협씨는 일본으로 건너간거 아닌지 확인 필요합니다. 목협만치가 유명합니다
딱 여기까지가 한계지요
대륙고려는 절대 인정하지 않죠?
한국사 데이타베이스에 고려사ㆍ삼국사기에 엄연히 팩트체크가 가능한데도 눈꼽만큼도 ㅋ
어휴 진짜 정신병이지. 근거자료나 가져와
흑치씨 을지씨도 없지요
산동에 없는 백제 성씨의 나머지 후손은 일본에 있습니다. 전 35년전에 역사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나중에 확인을 다른 분 통해 올거니 하구요. ㅎㅎㅎ
생각해보니 백제 패망 후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그 일부가 따라 갔을 거라 생각하면 맞는 것 같습니다
하타씨가 있죠 고훈인 유전자는 정확히 백제계로 대륙 산동성과 일치합니다
백제가 래이(萊夷)의 후손이란게 증명되네요
왕건이 사씨 였네요.
당연히 왕씨인줄 알았더니 아부지가 사씨..😅
양직공도에도 백제가 옛 래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백제가 부여 소서노일파라 후에 마한 대방 점령시도 주력근거지가 래이임을 알수 있음 일본 사료에도 백제계 왕족 귀족 그리고 천황가 설명시 부여계 일족으로 명기하고 부른다고 함 (예전 일본에서 거주할때 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그때는 저 래이가 한반도에 없으니
도대체 여기가 어딘데 래이 래이 그럴까 했는데 이해가 되네요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1 [부여왕 해부루解夫婁 동부여 해모수解慕漱 ] 삼국사기 백제본기1 [ 1)북부여>>>졸본부여 2)북부여왕 해부루觧扶婁] 이리 나와있으니 참조하시기 부탁드립니다
한국엔 백제 성씨가 없음 ㅠ 있긴 한가요?
영상 중에 답이 있습니다.
묘족은 산동에서 왔다고 운남에 있는 묘족들이 말했는데요......... 삼국사기에도 삼국의 후예는 묘족이라고 써놨단 말이죠....
묘족은 치우를 조상신으로 모십니다... 우리도 치우를 조상으로 알고 있지요... 비록 형상은 도깨비(2002 월드컵 붉은악마 깃발을 보시면 바로아실겁니다)로 한 것이지만요..
치우는 14대 찬왕이라 알고도 있지만 치우의 휘는 대화씨이라 할수 있고 양족에서 웅족으로 데리사위를 와서 웅족을 다스렸던 인물이고 이런 내용이 대화정 청동기에서 확인된 내용이라 할수있습니다
대화씨의 아버지는 신농이고 섬서에서 산동 곡부로 장가를 가서 산동에서 대화씨를 부를때 서방님이라 불렸습니다
목씨는 일본으로 건너갔을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에 키(紀)씨라고 귀족성씨가 있는데 일본어로 키는 나무와 발음이 똑같습니다. 키씨의 '키(紀)'(=き=키)는 『고사기』나 『일본서기』에는 '목(木)'(=き)으로도 표현되어 있다. 일본 음으로 '키(紀)'나 '목(木)'은 같은 키(=き)음인 것이다. 예를 들면 '紀臣'이 '木臣'으로도 씌어 있다.
[출처] [역사노트]백제의 목(木)씨와 일본의 키(紀)씨의 관계|작성자 원한의 거리
참고 자료 감사합니다.
저도 영상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백제 멸망후 곧 왜가 백제이니 현 반도보다도 열도에 백제 성씨가 더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 라고요.
물론 추측뿐이고 일본어는 문외한이라 전공하시는 분들이 풀이 해주시면 감사할텐데 말이죠.
그들의 신찬성씨록에 도래인계의 성씨가 수백가지라 하니 그 세세한 내용이 무엇일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목씨가 일본으로 모두 건너갔겠습니까? 일부만 갔겠지.
상곡은 산서성 ㅋㅋㅋㅋㅋㅋㅋㅋ 멍청한 역사학자들
사학자=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잔당들이죠
●삼국사기 권 제14 고구려본기 제2 > 모본왕(慕本王)
2년(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등을 습격하였다. 그런데 요동태수(遼東大守) 제융(祭肜)이 은혜와 신의로 대우하므로 다시 화친을 맺었다.
●삼국사기 > 고구려본기 제3 > 태조대왕(太祖大王)
3년(55) 봄 2월에 요서(遼西)에 10성을 쌓아 한나라의 군대에 대비하였다.
(三年, 春二月, 築遼西十城, 以備漢兵.)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반도내에 백제계 8대 성씨가 드문 이유는 백제 폐망후 정령자인 신라의 악박을 피해서 성을 다르게하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특히 木씨는 李씨로 바꿨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씨중에는 전주나 전의 이씨처럼 본관이 옛 백제 땅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폐망-->패망
@@dolgum826 지적 고마워요.
그럴 가능성이 매우높습니다 특히 산동성 부근 발해만 이씨비율이 높은것이 정확히 분포 일치합니다
성씨로의 접근은 정말 과학적입니다.
왕조나 왕성은 바뀔 수 있겠지만 백성들은
그대로있기 때문이죠.
조선왕조 실록에도 토성과 사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성씨가 600여 개가 된다고 하였는데
중국 백가성의 씨족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구의 수를 왜놈들이 조작질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래봐야 규모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너무 멍청하게 급하게 줄이는 바람에 원본에 오류가
들통이 나기도 했습니다. 원본과 남녀 합이 다릅니다.
말도 안 돼는 거죠.
조선이라는 나라의 규모를 줄이고 황제국이었다는 것을
줄여서 일본의 영원한 신민으로 만들려고 했던 조작들이
다 들통이 날 것입니다.
다음에는 신라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의미 있는 내용입니다. 중국 북제서에 동성왕이 백제 귀족에게 피살당한 후 세력이 약해져서 한남(한반도 남부)으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팔대 성씨의 후손을 찾아서 인터뷰를 했으면 빼박 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주변에 해가촌 촌장을 찾아 인터뷰해볼 생각입니다.
제나라때 한남=한반도 남쪽이라고 했다면 이땅에 백제의 흔적이 있어야 할텐데요...
아마도 중국의 황산쪽을 찾아보시는게 더 타당해 보입니다.
그곳에 갯뻘이 있고 성터의 윤곽이 존재 하더군요.
북경반점님❤
목씨는 ’목만치‘라는 본국검법의 달인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여곤(곤지왕)을 도와 일본에서 높은 직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목씨 후손이 일본에 많을것 같습니다.
늘 궁금했던건데 와아 감사합니다.
백제계 해씨가 소서노가 이끌고 간 비류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