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너무 가슴이 시린 러브스토리네요 샘때문에 대학교때 백석 시집을 다시 생각나게 하네요~ 우리샘은 말도 예쁘게 하지만 오늘 옷입은 모습은 그시대 ~구시대를 그리게 되는군요~ 미국에서 60대인 이 여인네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군요~~~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죠 !!! 샘 고마워요 ~
법정 스님 오시기전 대원각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평생 먹어보지 못한 음식 맛이 있었지요 제가 80이 넘었으니까 법정스님이 오시기 전 김영환씨가 법정스님에게 절로만드시라고했지만 맞지않으려했습니다 스닙 방도 갖지 않으셨지요 법정스님 신도가 엄청 많았어요 그중 저도 법정스님 법문 엄청 좋아 했지요 불명은 다른스님에게 받고받았지요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르네요
백석이 사랑한 여인은 한두명이 아니죠 나타샤 개인은 영원히 간직한 사랑 일진 몰라도 제가 알고 있는 백석은 여인에게 사랑 받아선 안될 시인으로 보이거덩요 제가 백석을 알게 된건 1989년 유치환 시인의 생가를 여행 갔다가 우연히 통영에서 백석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 당시만 해도 백석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시인이 아니었지요 제가 고향이 경북 청도라 우리 고장 출신 시인 이호우 시인과 그분의 여동생 이영도 시인을 공부하다가 이영도 시인과 유치환 시인의 이룰 수 없는 애틋한 사연을 알게 되었지요 유치환 시인의 시 "행복" 이나 "바위" 는 사랑했던 여인 이영도 시인 때문에 나온것이죠 학창시절에 청마 시를 정말 좋아 했지요 그래서 그 시의 사연을 알고 해서 통영을 한번 가보고 싶었지요 통영엔 지난번 한나샘이 김춘추라고 했던 꽃으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고향이구도 하지요 그때에 유치환 선생님과 얼추 비슷한 러브 스토리리를 남긴 시인이 있다고 하면서 백석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통영 출신인 난 이란 여인을 너무나 백석이 사랑 했다고 합니다 백석의 시 곳곳에 난의 흔적이 남아 있지요 결국 시인과 가장 절친했던 친구에게 뺏겼지만~ 백석은 난과의 사랑에 실패하고 상당기간 방황 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 백석이 사랑한 여인이 몇명 인지도 몰라요 1945년엔 무려 15살이나 어린 여인과 결혼을 했잖아요 그런 백석에게 그 사랑이 아름답다고 우리가 표현 할 수 있을까요? 저도 나타샤가 등장 하기전엔 난 을 향한 백석의 사랑이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웠다 생각 했는데~ 나타샤가 나오고 또 다른 제3 4 5 ~~ 여자가 나오니 정말 한심 했지요 이건뭐 카사노바 수준 이었지요 ㅎㅎ 암튼 나타샤 분은 개인적으론 가슴에 간직한 소중한 사랑 이었겠지요 또한 백석의 시는 참으로 훌륭하구요 이런말이 있잖아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라고~예술가들의 작품속엔 윗 내용처럼 많은 숨겨진 스토리가 있는듯 합니다 그 사연을 알고 읽고 보는 것은 그 만큼 감동을 더 느끼기 마련이죠 백석 시인은 정말로 너무 많은 여인을 사랑했나 봅니다 우리가 모르는 또 어떤 여인이 있을지~~~~ 천억이 백석 시 한줄 보다 못하다 란 나타샤님의 말씀은 정말로 감동을 주네요 영국이 세익스피어 한사람을 인도를 다준다 해도 바꿀수 없다 라고 했듯이요👈 감사히 잘 들었어요 이 영상에서 입으신 한복도 한나샘에게 넘나 잘 아우라 지네요❤💋
시인을 전부 좋아하는데 백석 과 김영한의 관계에 대해 사실을 떠나 그당시 1000억 현시세는 5천억을 넘을건데 절에 시주하면서 한말로보아 어는정도 인정해 주어야 백석이 통영의박경란을 마음에 두었으나 친구 신현중과 결혼하여 잘살고 있었는데 박경란은 백석에 마음이 없었던것 같아요 남편 신현중은 경성제대학생이고 열혈독립투사 인지라 물론 개인가정사가있으니 말 다 못하겠지만? 선생님 전부 고인이 되었지만 박경란선생에 대해 심층취재부탁해요 제일가슴아픈것은 백석이 산골로 쫒겨나 농장일을한 30년 ? 얼마나 힘들었을까 살아남기위해 마음에 없는용비어천가를 써야 했으니
구독과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6ㆍ25 전쟁 이후로 백석 시인은 북한 평양에서 시인으로 잠시 살다가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지내다가, 김일성이 조만식을 숙청하며 첩첩산중 삼수갑산의 삼수로 쫒겨나서 고생하다가 1998년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백석 시인은 북한에 머물다가 6ㆍ25 전쟁으로 김영한과 생이별을 했다네요.
자야 입장에서는 가질 수 없어 나이들어가며 옛 기억이 더 아름답게 포장되었게지만 이야기나 그의 발자취를 좀 들어보면 글재주와 잘난 외모로 여자나 후렸던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글쎄요. 남한에서 살았다면 대원각 안주인이 자기 가슴에 못 박은 나쁜 남자로 생각했을 수 있게죠. 딸 가진 엄마 입장에서 한마디 해 봅니다.
과연 백석과 김영한의 사랑이야기가 진짜 일까요? 제가 검색을 해 볼수록 김영한의 거짓말이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듭니다. 백석은 결백증 환자였습니다. 그리고 김영한은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석관련 자료나 시집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백석연구가들이 가서 물어봐도 별로 아는게 없었습니다.
해방전까지 만주국 공무원(통역, 세관 공무원 등)으로 근무 해방 이후 고향인 이북에서 김일성 찬양시를 쓰는등 순수문예 활동보다는 김일성과 공산주의 선전선동 활동에 전념했으며, '사상 이외 문학성도 중시해야 한다'는 그의 논조로 인해 1960년대 즈음 북한 문단에서 숙청당했다. 이후 량강도 삼수군의 한 협동농장에서 농부로 일했고, 부업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학 과외를 하며 여생을 보냈지만, 문단에는 복귀하지 못하고 19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전엔 친일파 해방후엔 공산당 그랬군요.
백석시인과 김영한(애칭 자야 /법명 김부전. 길상화) 여사에 대한 러브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김영한 여사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 몇 장면은 " 천재시인 백석과 김영한의 사랑 그리고 최후의 마찬" 이란 제목으로 ㅡ네이버에서도 읽을 수 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다 들 고생 많습니다.
좋은 영상 고맙습니다. 설명이 참 좋네요. 다시한번 백석의 시를 느끼게 해 주는 영상입니다.
아아~
너무 가슴이 시린 러브스토리네요
샘때문에 대학교때 백석 시집을
다시 생각나게 하네요~
우리샘은 말도 예쁘게 하지만
오늘 옷입은 모습은 그시대 ~구시대를
그리게 되는군요~
미국에서 60대인 이 여인네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군요~~~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죠 !!!
샘 고마워요 ~
메인화면의 여인분 사진은 김영한분이 아니라 백석이 사랑했던 박경란이란 분으로 알아요 착오가 있으신것 같아요
통영의 박경련님입니다.
좋은 영상과 정보 감사합니다..북의 체제하에서 재능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평범한 촌부로 살아갔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시립니다..저승에서나마 이승에서 못다떨친 기개를
마음껏 떨치시길 기원합니다..백석과 자야 두분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예전 기생은 시인이자 화가와 가무에 능한 예술가들이지요.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소중한 정보 감사드려요~
훈훈하고...
멋진 이야기네요...
감사합니다...!!!
마음이 정화되는 아름다운 이야기 감사 합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낭만이 있네요
법정스님은 길상사에서 단 하루도 묵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
썸네일에 있는 여성 사진은 김영한(자야)이 아니라 백석의 시 '통영'에서 묘사된 박경련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한가지 사실이 아닌 것이 있네요
법정스님은 살아계실 때는 길상사에 하루도 머문적이 없고
열반에 드신 날 길상사에 계셨습니다
법문을 마치면 바로 강원도 산골로 가셨습니다
감동. 감동!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시려온다는 말이 이분들 이야기내요..ㅠㅠ
아무것도 필요 없고 이런 죽더라도 못잊을 사랑을 하셨다는 것도 하늘이 주신 복이겠죠..
법정 스님 오시기전 대원각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평생 먹어보지 못한 음식 맛이 있었지요 제가 80이 넘었으니까 법정스님이 오시기 전 김영환씨가 법정스님에게 절로만드시라고했지만 맞지않으려했습니다 스닙 방도 갖지 않으셨지요 법정스님 신도가 엄청 많았어요 그중 저도 법정스님 법문 엄청 좋아 했지요 불명은 다른스님에게 받고받았지요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르네요
오, 신기하군요.
대원각을 다녀오셨다니, 뭔가 긴 인생 스토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전 법정스님의 글을 좋아해서 춘천 어느 절까지 찿아 간 적도 있지요.
매일 한나tv 역사스캔들 들으면서 자고있는데 토요일에 있었던 kbs한국어능력시험에 가 나왔어요 작가를 맞추는 문제였는데 이 영상 덕분에 고민없이 바로 백석 골랐어요ㅎㅎ 그래서 한나님께 감사댓글 쓰러왔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역사스캔들 많이 올려주세요!
이쁜 한나 선생님😉😘💕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처음 알게 된 프로이자 이야기인데~ 너무 부럽고 감동적이네요~^^ 그분의 발뒷꿈치도 따라갈수 없는 작은 맘보지만
조금이라도 닮아가고 싶네요^^
이렇게 좋은 얘기를 듵려주셔서 감사해요 ()()()^^
매력과 지성을 겸비하신 bj 한나께 감사드립니다. 백석 시인과 자야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순수와 영원을 생각하게 합니다.
유익한 이야기 감사드려요
구독 누르고가요!
아 .. 길상사가 그런 스토리가 있었을 줄이야
그래도 결국은 전쟁은 이기지못한
사랑이네요.
전쟁과 분단을 뛰어넘어서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백석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두 자식이 사진에 찍혔는데 .......지금쯤 한국으로 탈북했을까 아니면 북한에서 생사는 ??
쓸쓸하다고 말한 시는 「남신유주 유동 박시 봉방」이란 시인데 해방 전 만주 빙랑 때 쓴 시입니다.
방랑시이기 때문에 쓸쓸함과 외로움이 짙게 배어 있는 겁니다.
그동안 길상사 가면 진영각에 계신 법정스님께만 예배드렸는데 길상화 보살님을 잊었었던것 같네요. 자세히 알려쥬서 감사합니다. 합장
한나님과 백석시인이 닮았네요. 잘 어울리네요. 백석시인은 저와도 닮았네요. 눈썹....ㅋ
혹시 백석 이야기를 쓴 책이 있나요..?
잘 어울려요
사람은 살아 있을 때나 죽고 나면 자기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살아 있을 때나 죽고 나면 가죽을 남깁니다.
아래 김삼맥종 선생의 말씀과 같이, 백석은 카사노바(?) 수준이었지.... 백석에게 김영한 이라는 기생은 여러 여인 가운데 한 사람 이었지 않았을까?....
맞자요.말제비죠.
김영한은 혼자 살다 죽었지만 백석 시인은 결혼도 하고 3남2녀 낳고 살다 노환으로 죽음. 부인과 자식이 있으니 옛사랑은 그저 추억이였을듯
맞아요.나도남자라.똑같음
돈을 더 사랑한 자야,,,,
백석이 사랑한 여인은 한두명이 아니죠 나타샤 개인은 영원히 간직한 사랑 일진 몰라도 제가 알고 있는 백석은 여인에게 사랑 받아선 안될 시인으로 보이거덩요 제가 백석을 알게 된건 1989년 유치환 시인의 생가를 여행 갔다가 우연히 통영에서 백석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 당시만 해도 백석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시인이 아니었지요 제가 고향이 경북 청도라 우리 고장 출신 시인 이호우 시인과 그분의 여동생 이영도 시인을
공부하다가 이영도 시인과 유치환 시인의 이룰 수 없는 애틋한 사연을 알게 되었지요 유치환 시인의 시 "행복" 이나 "바위" 는 사랑했던 여인 이영도 시인 때문에 나온것이죠
학창시절에 청마 시를 정말 좋아 했지요 그래서 그 시의 사연을 알고 해서 통영을 한번 가보고 싶었지요 통영엔 지난번 한나샘이 김춘추라고 했던 꽃으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고향이구도 하지요 그때에 유치환 선생님과 얼추 비슷한 러브 스토리리를 남긴 시인이 있다고 하면서 백석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통영 출신인 난 이란 여인을 너무나 백석이 사랑 했다고 합니다 백석의 시 곳곳에 난의 흔적이 남아 있지요 결국 시인과 가장 절친했던 친구에게 뺏겼지만~ 백석은 난과의 사랑에 실패하고 상당기간 방황 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 백석이 사랑한 여인이 몇명 인지도 몰라요 1945년엔 무려 15살이나 어린 여인과 결혼을 했잖아요 그런 백석에게 그 사랑이 아름답다고 우리가 표현 할 수 있을까요? 저도 나타샤가 등장 하기전엔 난 을 향한 백석의 사랑이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웠다 생각 했는데~ 나타샤가 나오고 또 다른 제3 4 5 ~~ 여자가 나오니 정말 한심 했지요 이건뭐 카사노바 수준 이었지요 ㅎㅎ 암튼 나타샤 분은 개인적으론 가슴에 간직한 소중한 사랑 이었겠지요 또한 백석의 시는 참으로 훌륭하구요 이런말이 있잖아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라고~예술가들의 작품속엔 윗 내용처럼 많은 숨겨진 스토리가 있는듯 합니다 그 사연을 알고 읽고 보는 것은 그 만큼 감동을 더 느끼기 마련이죠 백석 시인은 정말로 너무 많은 여인을 사랑했나 봅니다 우리가 모르는 또 어떤 여인이 있을지~~~~ 천억이 백석 시 한줄 보다 못하다 란 나타샤님의 말씀은 정말로 감동을 주네요 영국이 세익스피어 한사람을 인도를 다준다 해도 바꿀수 없다 라고 했듯이요👈
감사히 잘 들었어요
이 영상에서 입으신 한복도 한나샘에게 넘나 잘 아우라 지네요❤💋
시란무엇인가?
천억보다귀하다~
세익스피어와인도
문학.시.가인생에있어서중요하고삶의목표~
백석은 통영의 란을 사랑했지만...자야는 사랑한게 아니라...기생과 걍 동거한거죠...자야는 사랑이라 주장하지만 백석은 아닙니다...소설가 최정희하고도 썸씽 있었는데 나타샤는 최정희를 생각하고 지은시라는 말도있어요...생긴거만큼 여자관계도 많았나본데..순수한 사랑은 통영의 란 뿐입니다...
@@송세영-d2x😅,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가서 김영한에 영정사진속에서 그 분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옆동네 부처님 오신날에 가끔 찾아가는 절입니다.
법정스님 김영한~~
진흙 속에 핀 아름다운 연꽃이라! 가슴이 뭉클하고 낭만이 있네요
법정스님의 길상사! 내 재산도 법정스님께게 모두 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미카엘
북한에서 백석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셨을까요? 가슴이 아프내요ᆢ
이런 참 답답한 사람들 ....백석과 자야는 죽어서도 이루려는 사랑이지만.....백석 본부인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셨나요 ! 죽어 저승에 가서도 " 예약된 버림받음 " 을 살아서도 엄청 속이 터졌을 텐데... 외로워라 이내 몸은 뉘와함께 저승갈꼬.
봄바람이 살랑불면 생각나는 모던보이...
그리고 나타샤와 흰 당나귀 입니다 잘 보고갑니다
시인을 전부 좋아하는데 백석 과 김영한의 관계에 대해 사실을 떠나 그당시 1000억 현시세는 5천억을 넘을건데 절에 시주하면서 한말로보아 어는정도 인정해 주어야 백석이 통영의박경란을 마음에 두었으나 친구 신현중과 결혼하여 잘살고 있었는데 박경란은 백석에 마음이 없었던것 같아요 남편 신현중은 경성제대학생이고 열혈독립투사 인지라 물론 개인가정사가있으니 말 다 못하겠지만? 선생님 전부 고인이 되었지만 박경란선생에 대해 심층취재부탁해요 제일가슴아픈것은 백석이 산골로 쫒겨나 농장일을한 30년 ? 얼마나 힘들었을까 살아남기위해 마음에 없는용비어천가를 써야 했으니
무섭네요.그런 사랑은 무서워요.
큰오빠입니다.잘듣고 갈께요.
구독과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6ㆍ25 전쟁 이후로 백석 시인은 북한 평양에서 시인으로 잠시 살다가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지내다가, 김일성이 조만식을 숙청하며 첩첩산중 삼수갑산의 삼수로 쫒겨나서 고생하다가 1998년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백석 시인은 북한에 머물다가 6ㆍ25 전쟁으로 김영한과 생이별을 했다네요.
훌륭해...!!!
감사합니다
나의 평생의 스승 ~~
젋은이들의 햇불
사랑의 등대
너무도 아름다운 🌸
마음들 ~~~
감동임니다
감사합니다
삼년 동안 동거 를 했는데 왜 자식이 없었을 까요 ?
백석시인이 사랑한 여인이 두분이엿나요 자야 뿐인줄 알았어요
자야 입장에서는 가질 수 없어 나이들어가며 옛 기억이 더 아름답게 포장되었게지만 이야기나 그의 발자취를 좀 들어보면 글재주와 잘난 외모로 여자나 후렸던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글쎄요. 남한에서 살았다면 대원각 안주인이 자기 가슴에 못 박은 나쁜 남자로 생각했을 수 있게죠. 딸 가진 엄마 입장에서 한마디 해 봅니다.
한국의 괴테라해도 과언은 아닌가싶네요. 진짜사랑한 여인은 통영여인 아닌가요? 나타샤는 김자야가 아닌것으로 알고있는데...
과연 백석과 김영한의 사랑이야기가 진짜 일까요?
제가 검색을 해 볼수록 김영한의 거짓말이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듭니다.
백석은 결백증 환자였습니다.
그리고 김영한은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석관련 자료나 시집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백석연구가들이 가서 물어봐도 별로 아는게 없었습니다.
백석의 사랑은 통영 박경련...
백석 시의 주인공 나타샤는 박경련
저 시절 문학가들이 기생보다 예뻤전
아이러니하다. 평생 한남자에 대한 집착과 suffering 한 여자와 집착을 버리고 행복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불교. ** 법정스님은 길상사에서 귀가 한적이 없습니다. 살아생전 단 하루밤도 길상사에서 주무신 적이 없어요.
3대 요정: 삼청각, 오진암, 대원각이라고 함
자야라는 닉네임은 백석 스스로가
김영한에게 지어준 애칭인데 아닌가?
기생집에서 첫만남이 있을때 말이다.
참고하시길....
예쁘다.
그녀.
성북동에 살았구나.
위에 올라가면 호주대사관도 있지.
유명 그릅 회장댁도 즐비하구.
역사에 관심있어서 들어오게됬는데 자막있으면 더 좋을거같아요!
해방전까지 만주국 공무원(통역, 세관 공무원 등)으로 근무
해방 이후 고향인 이북에서 김일성 찬양시를 쓰는등 순수문예 활동보다는 김일성과 공산주의 선전선동 활동에 전념했으며, '사상 이외 문학성도 중시해야 한다'는 그의 논조로 인해 1960년대 즈음 북한 문단에서 숙청당했다. 이후 량강도 삼수군의 한 협동농장에서 농부로 일했고, 부업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학 과외를 하며 여생을 보냈지만, 문단에는 복귀하지 못하고 19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전엔 친일파
해방후엔 공산당
그랬군요.
자야라는 여자 혼자쓴 소설이겠지
[법정 스님 눈길]
두껍아, 너는 무슨 재미로 산중에 혼자 사느냐
그냥 들어만 주세요~ ^^
법정 스님은 두꺼비랑 대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그리고 홀로 사시면서 모두와 함께 사신다고도 하셨습니다.
자야와 백석의 이야기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 문학계와 백석을 아는 사람들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야가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전부 새빨간 거짓말 뻥이요 거기속아서 평생 올바른 사랑 못해보고 헛껏을 사랑했너요.
대원각이 길상사군요..
여신님 오늘도 문안인사 드립니다
백석시인과 김영한(애칭 자야 /법명 김부전. 길상화) 여사에 대한 러브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김영한 여사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 몇 장면은 " 천재시인 백석과 김영한의 사랑 그리고 최후의 마찬" 이란 제목으로 ㅡ네이버에서도 읽을 수 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다 들 고생 많습니다.
길상사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잘 알아봐요 기생은 모른다는데
자식은 1남1녀 낳았는데 왜 안낳았다고해요
한나가 김영한과 비슷해 보여요..
백석의 애인 김영한이요..
기생집 뭐하는곳임
몇살이세여 너무 이쁘자너~
댓글 40 김영환 과백석 길상사 러브스토이 서울 눈을부 려주오
왜.탈북을? 왜 결혼을해?말로 홀렸네.
잘 모르면 서 주서들은 예기로 하지마라.
니가 무얼 안다고 예기하나,,
역사는 그당시의 사회 였으니 그때가 이러했다 고 논해야 되지 않는가???
역사로사 예기해라
안녕하세요~ 최근 알게되어 몰아보는데요.. 혹 과거하고 최근하고 좀 느낌이 틀린데 같은?분 맞죠? 다른 방송에서 얼굴은 안 건드렸다고 보앗는데요.. 실례되는 질문 죄송요 두 분다 아름다우신데 목소리도 다른거 같고 ㅎ 걍 궁금해서요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
박만석 얼굴은 안건드렸고 가슴을 좀 키웠습니다 ㅋㅋ
한나TV 감사합니다 한나의 역사스캔들 대박 나세요~~^^
구한말 기생의 복장은 아닌것 같소이다.
적어도 역사적 고증은 같아야 하거나 비슷하거나 해야겠죠~
기생 이야기를 왜 이리 하기 좋아하지? 옷도 그렇고.
제 유튜브 콘텐츠에서 기생이야기가 몇개나 될까요? 성급한 일반화십니다
한나TV 그러게요.
시를 얼굴로 쓰냐 유정은.....
박효신이랑 비슷하게 생겼네
나만큼이나 말을 잼없게 못하시네
어이 길살사 진지구축은 잘햇나 네 중대장님 ^^
무슨말인지..집중이안되네요
처자식 있죠 북한에 아닌가요
한나.
기생가토.
섹씨해.
예뻐.
짱.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
남자는 다 그런지 백석은 4번이라는 결혼을 한것을 보면 자야혼자서만 짝사랑한것 아닌가 생각 하게 하네요
농담따먹기 ㅋㅋㅋㅋㅋㅋㅋㅋ
설명이 그닥 설득력이 없네.....
그시대는 남의것 뺏아서 제것으로 만들어요.
더깊이 알아보세요.
쥴리 건희 야 김영한 자야의 10000/1 이라도 따라해봐라 결혼을 몇번을 더해야 만족하니
운영자분!
그 길상사 원래 주인은 월북한 박헌영씨 소유입니다.
그걸 기부한겁니다.
사랑으로 분칠한 미담!
에이구~~
니가 기생같이.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