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궁한 궁녀들이 모여 살던 마을을 궁말이라고 하였고 현재 서울 은평구 갈현동 부근이라 합니다. 또 보통은 10세 전후에 입궁하나 지밀나인의 경우 4~5세 부터도 입궁이 가능했습니다. 지밀의 경우는 왕족 측근에서 보필하는 최측근 of 최측근 이었으므로 세뇌교육이 쉬운 아주 어릴 때부터 뽑아 데려와 가르쳤다 합니다. 또 같은 궁녀들 중에서도 지밀은 학식이나 예법에 있어서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했기때문에 대우가 가장 좋았다 하고요...아무래도 왕족 측근에 있기에 왕의 승은을 입을 기회가 더 많았고요~ 지밀 나인은 일반 나인과 복식부터 차이가 있었을 정도로 궁녀들 중의 탑클래스 엘리트 그룹이었습니다.
연봉 10억을 줘도 안한다 평생을 궁안에서 갇혀지내야 한다면 재산을 모아도 무슨의미가 있나 누가 나보고 군대 말년병장으로 평생 군에있으면서 연봉10억준다고 해도 난 못하겠음 뭐 내가 내인생포기하고 가족들의 행복만 바라면서 돈붙여주면서 살 정도의 마인드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댓글에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시대적인 화폐의 가치를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당시에 비교할 만한 물건의 가격, 즉 쌀 가격과 금 가격 등으로 산정하는데요. 쌀 한가마니(80kg)으로 비교했을때 현재 가치 24만원인데, 18세기 중엽 쌀 한섬(80kg)은 5냥이었습니다. 1원은 10냥이니 18세기 중엽의 쌀가격으로 추정한 1원의 가치는 48000원 정도입니다. 또 1910년 당시 화폐는 일제가 실시한 금본위제가 기본이었으므로 화폐를 금의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는데요. 1910년 1원은 순금 2푼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발행되었고, 금의 무게단위인 1푼은 0.1돈이므로 금 1돈의 시세를 현재 25만원으로 잡으면 1푼은 2만 5천원, 1원은 5만원의 가치로 봅니다.
궁녀는 왕의 여자이기에, 평생 왕 근처도 못가도, 누구와 사귀거나 결혼을 하지 못했음. 출궁해도 똑같은 상황. 내시는 가족을 이룰수 있다고 하나 궁녀들은 누구든 정을 통하면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알고 있음. 태어난 자식까지도. 아무리 재산을 많아도 결국 후손이 없기에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틈틈이 부모나 형제 및 친척들에게 주었을듯. 자신이 죽으면 재산은 사라지기에.
@@이진욱-k5r 이세상돈 다 합쳐도 7경 밖에 안된다니 완전 병신아닌가 예를들어 우리나라 모든재산 다합치면 2경이다(이것은 2018년도 추산) 그러면 미국은 우리나라의 100배가 넘는다 그러면 대략 200경이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170배 대략 340경 그리고 우리나라는 지구의 면적 0.1퍼 면적이다 내가 더이상 계산 하지않아도 대충 알겠는가 ?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많이 달랐습니다 정말 빠르면 50대후반 늦으면 60대후반이었고 제조상궁같은 경우에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70대초반에서 중반까지 있다가 은퇴한 기록이 있습니다 평균 60대 중반에 제조상궁 승진에 실패하면 건강에 큰 문제가 없어도 나오는 경우가 보통이라 합니다
조선시대 지방관리들이 괜히 탐관오리 소리 듣는 게 아닙니다. 조선은 믿지 못하겠지만 세금을 적게 걷었던 국가.. 그래서 항상 국가운영예산이 부족했고 이런 이유로 관리들 급여도 제대로 지급 못했던 나라입니다. 그러니깐 관리들이 세금을 따로 걷어 뒷주머니를 챙기게 됐던 거죠.
상궁 언젠간 될거잖아 농사짓고 흉년엔 굶주리고 힘들게 일하며 돈버는거하고 궁 들어가서 굶을 걱정 없고 가족 먹여 살리고 격일 근무에 특별한일 아님 짤리지도 않는거 하고 비교를 해봐 조선 깔때는 유교니 뭐니 하며 결혼한 여자들이 그렇게 불쌍하다 하더니 왜 평생 솔로로 사는게 마음에 안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
월급에 대한 내용은 2분 40초 다되서야 나오니; 그때까지 별의미없는 성은에 대한 이야기를 할필요는 없어보여요. 차라리 제목과 썸내일에 대한 내용을 앞에 배치하고 부가설명을 뒤에 배치하는게 좋아보입니다. 지식유튜버들 엄청보는데 내용은 맘에드는데 구성에 힘이빠지네요. 재미있게봤고 구독할께요
영원한 사랑은 없잖아요 그리고 헤어지면 결국 남남임 내가 당장 길거리 나 앉는다고 과거 연인이 나를 먹여 살리지는 않잖아요 먹고 사는게 제일 중요한데 그리고 어차피 경제적 여건이 안되면 사랑할 여유도 없어지고 사치가 되어버림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사랑하지도않는 사람과 억지로 결혼 해야하는 일이 더 많음
@@kspa123 저 시절에는 궁녀가 불타는 사랑 한번 하기 위해서는 모든것을 버려야해요 어차피 사랑도 유통기한 있다 보니 너없으면 죽고 못산다는 연인도 결혼후 너 때문에 못산다 원수로 변해요 영원한것은 없지만 몇년후 비참하게 살면서 평생 후회 할수는있죠 한마디로 사랑이나 결혼이나 도박 입니다
조선 초기부터 주로 양인으로 궁녀(생각시, 각시)를 차출하다가... 영조 때 양인 궁녀를 금했으나... 그후로도 지밀, 침방 등의 생각시는 대부분 양인으로 뽑았고... 이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져서 구한말 궁녀 대부분은 중인 출신이었소. ㆍ 무수리, 각심이, 의녀 등은 주로 천출이 맡는 직역이었으나... 높게는 정5품까지 내명부 품계를 받는 궁녀는 좋은 신분을 선호했소.
푸짐하게 한상 차리면 적당히 먹고 상을 물려서 아랫사람들이 남은 음식을 먹는게 관례였죠. 귀한 손님이 왔을때도 똑같이 대접했기에 손님은 적당히 잘 대접 받았다 생각하면 상을 물려서 그 집의 나머지 식솔들이 먹게 해주는게 예의였죠. 애초에 겸상하는 문화가 아니었어요. 가끔 장손이 할아버지와 겸상하는 것은 특별히 손자를 예뻐하고 아끼는 경우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하죠.
@@changhoolee1067 조선 에서 많이 유명한 역사부분중 하나인 조선 초기 세종 시기만 봐도 한글 반포 하나로 다 씹어먹을만큼 찬란한 역사였는데 끝이 흐리다고 어찌 조선 500년 역사 자체를 부정하려 드시나 지금 님이 의사표현을 하게 도와주는 그 글자 그 역사가 조선에서 만들어진건 아시죠?
결혼하기 싫은 비혼 선호하는 여성들은 어떻해 보면 꿀 직업 인데요? 급여도 많이 받고 ~ 결혼은 못해도 출궁후에 몰래 연애정도는 할수있지않나? 하긴 그때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겠죠 하긴 저 시대에 혼인 해봤자 시어머니 구박에 아들 낳아야하는 압밥감과 남편은 첩을 여럿 둘수 있으니 혼인하기 싫은 사람들도 있을듯 ... 어쩔수없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그래도 출궁후에는 자유를 주웠다면 좋았을텐데요 아무리 조선시대라도 출궁한지 3년이 지나면 이혼으로 생각하고 자유를주지 너무 하네요
허리가 부러져도 편안하게 역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저는 70이 넘은 나이에 요추(허리) 2번의 20%가 부러지는 골절상을 입고도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하고 역도를 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흉추 11번이 압박골절로 30%가 손상되고 요추 2번의 20%가 으스러져 산산조각이 나서 또 손상된 상태에서 70이 넘은 노인네가 어떻게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하고 역도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허리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서 병원과 한의원을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려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허리 통증의 고통을 겪어보신 분들이라면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 동감을 할 것입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병원과 한의원에서 허리통증에 대한 치료를 하였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고, 이런 저를 안타깝게 여긴 주변 분들이 여러 가지 운동을 권유했습니다. 누구 누구는 무슨 운동으로 허리병을 고쳤다더라 하면서 말이죠. 국립국악원에서 전통무용까지 배우는 등 무수히 많은것을 해봤지만 허리통증은 악화만 되었습니다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기에 마지막 심정으로 우리 조상들이 험한 들판과 산길을 누비며 수렵 채취를 하며 생활한 것을 본받아 주말에는 용기를 내서 오대산을 등산하고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생각과 달리 허리는 상쾌하고 통증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리통증의 원인은 약해진 허리 주변근육이 자신의 몸이 누르는 중력을 지탱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몸의 반응이 통증임을 알아 냈습니다 저는 허리주변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사무실과 집에도 평행봉을 비치하여 거꾸로 매달려 윗몸일으키기 등 시도 때도 없이 미친듯이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높은 산을 등산하고,2019년 4월부터는 매일 역도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허리 뼈가 일자로 되어 있는 기둥으로 우리 몸의 대들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기둥인 대들보는 일자로 되어 있어 부러지면 집을 받치지 못하여 집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우리 허리 뼈는 일자로 된 기둥이 아니고 33개의 작은 뼈마디 구성 되어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조금 손상되면 나머지를 가지고 사용하면 됩니다. 저는 흉추 11번이 30% 손상되고 허리 2번이 20%가 부러져 손상되었으므로 전체 33개의 뼈를 놓고 보면 전체 뼈의 1.5%가 손상되어 그 정도로 보면 아주 작은 정도의 손상이지만 이 작은 손상이 주는 통증에 인간은 거의 삶이 망가질 정도입니다. 통증을 제외하면 1.5% 정도의 작은 손상은 나머지 98.5%의 기관이 작동하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못합니다. 즉 우리는 척추뼈가 어느 정도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부분을 사용하여 일상적인 생활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척주가 33개로 뼈마디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을 못하고 일자로 된 기둥으로만 생각되기 때문에 허리 뼈가 조금만 손상되어도 몸을 받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우리 몸이 금방 주저 앉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33개의 뼈 모두 손상이 되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어떤 일로 인하여 일부가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걷기에 이어 등산과 역도 등 자신의 여건에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하여 허리 주변근육을 단련하면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자각하고 매일 역도를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등산과 역도는 우리 몸에 작용하는 중력을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운동입니다. 유듀브 등 언론 매체를 보면 허리가 아픈 것은 나쁜 자세 때문이라고 하면서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허리가 아픈 사람은 윗몸일으키기나 등산을 하거나 역도를 하면 아주 나쁘다고 하면서 못하게 하며 평지를 살살 걷거나 뒷방에서 누워 있으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몰라서 평지를 살살 걷고 등산도 안 하고 방에 누워 있었더니 낫기는커녕 더 아파서 사실이 아님을 제 자신이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수 년 전 제가 허리 통증에 대하여 연구할 때 학생들의 과학교과서나 체육교과서 등을 꼼꼼하게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과학교과서가 중력을 예로 들면서 사과나 비가 땅으로 떨어지는 예를 들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 때 이를 배웠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과서 저자에게 중력을 설명할 때 사과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몸을 예로 들어 설명하여 달라고 건의했더니 건의 받은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실생활과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며 다음 교과서 수정 시 반영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교과서를 확인했더니, 2개 출판사의 교과서는 중력을 극복하는 스포츠로 역도 등이 있다고 수정 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제가 건의할 당시 저는 역도가 중력을 극복하는 운동인 것을 몰랐습니다. 과학교과서 저자는 참으로 머리가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70이 넘은 나이에 역도를 시작한 이유는 역도가 몸이 누르는 중력을 빨리 극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목적으로 할 경우 여자분은 10kg, 남자는 15내지 20kg 정도만 가지고 인상을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은 참으로 신기하게 진화가 잘 되어서 허리뼈가 부서져 일부가 없어지더라도 대신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시키면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사람은 왜 목,허리,무릎이 아플까? 4쇄본 본문 중에서) 2021,2 사람은 왜 목 허리 무릎이 아플까? 저자 허리튼튼법무사 이 희 숙(남)서초동
원래 역사적으로 왕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보상을 받았죠. 권력이나 돈으로 ㅎㅎ
서구권도 많은 이들이 왕의 곁에서 측근이 되고 싶어 했던 이유죠. ㅎㅎ
2:58 일반 궁녀 월급
출궁한 궁녀들이 모여 살던 마을을 궁말이라고 하였고 현재 서울 은평구 갈현동 부근이라 합니다. 또 보통은 10세 전후에 입궁하나 지밀나인의 경우 4~5세 부터도 입궁이 가능했습니다. 지밀의 경우는 왕족 측근에서 보필하는 최측근 of 최측근 이었으므로 세뇌교육이 쉬운 아주 어릴 때부터 뽑아 데려와 가르쳤다 합니다. 또 같은 궁녀들 중에서도 지밀은 학식이나 예법에 있어서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했기때문에 대우가 가장 좋았다 하고요...아무래도 왕족 측근에 있기에 왕의 승은을 입을 기회가 더 많았고요~ 지밀 나인은 일반 나인과 복식부터 차이가 있었을 정도로 궁녀들 중의 탑클래스 엘리트 그룹이었습니다.
좋은 정보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소 배우신분...
박학다식 하시네요
이렇게 말하시면 귀에 쏙쏙들어 옵니다~
감사합니다 😁
구독해요!!마니마니 올려주시길..
조선얘기 좋아해서요ㅎㅎ
감사합니다 더욱 부지런히 좋은 정보로 찾아뵐께요^^
ㅍㅍ
2:45 와 조선시대에서는 궁녀가 궁이라는 대기업을 다니는 분들었구나
와 대기업이 입원급 제외하면
대기업이 400~550 벌고 판,검사가 800~1300버는데 980을 버네요 ㄷㄷ
고위 공무원...ㅋㅋㅋ
현재의 청와대에 근무한다고 보면되죠.지금도 그런사람들 있겠지만 예전엔 청와대 근무하는게 온 마을의 경사였던 적도 있었죠.
@@스턴-g6s 판검사가왜 800~1300을벌지? 공무원월급받는건데.. 매년초에 공무원 호봉별월급이 나오자나...판검사초봉 서기관1호봉월급표보세요
@@유후락-o5s 엇 저 작년에 저희 학교 진로선생님한테 빌린책인데 교육부에서 진로쌤들한테 주는 미래 직업 책 있어요 그걸로
웬만한 직업들 월급도 나와있고 하던데...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효종때부터 양인출신들이 궁녀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주로 중인이나 궁궐내 아전이라 할 수 있는 별감집안에서 뽑았고 순조 이후로는 법적으로 양인중에서만 뽑을 수 있게 되죠. 조선 말기에는 양반출신중에서도 뽑았다고 하네요.
아니 하루 8시간 격일 근무면 주4일 32시간 근무네 ㄷㄷ 개꿀이자너 그리고 숙식제공도 해주고
사극에선 맨날 생고생하고 돈도 못받는 완전 개박봉 헬보직인줄 알았는데
고증오류였누
나도 궁녀할래!~~
@@제임스셀렙 대신 결혼을 못하는데?
평생을 거의 궁내에서만 지내야하는데?
연봉 10억을 줘도 안한다 평생을 궁안에서 갇혀지내야 한다면 재산을 모아도 무슨의미가 있나 누가 나보고 군대 말년병장으로 평생 군에있으면서 연봉10억준다고 해도 난 못하겠음 뭐 내가 내인생포기하고 가족들의 행복만 바라면서 돈붙여주면서 살 정도의 마인드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changcho2830 그럼 그 시절 밖에 나와선 뭐 하실거임? 알바가 있음 뭐 스마트폰이 있음 pc방이 있음 밖은 더 개판일텐데
2:16 댓가가 아니라, 대가(代價)가 맞는 표현입니다.
목소리가 은은하고 부드러워 듣기에 정말 좋습니다 ^^
앞으로도 좋은 영상 부탁합니다.
2:09 궁녀도 양반 품계랑 똑같이 정오품에서 종구품까지 품계가 있는데 정오품이 최대 상한선인 궁녀가, 정삼품인 당상관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았다?는 근거나 출처가 궁금해요.
궁녀가 정삼품보다 더 많았다는것은 먹고자는것을 궁에서 해결했기 때문일겁니다
궁금한 사항이 더 있으시면
저자: 박영규
이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재밌네용👍🏻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알려주시네요 구독 했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로 찾아뵙겠습니다
저러니 최고의 형벌은 궁에서 내쫓기는거라는게 맞는 말임
삼국중에서 조선이 제일 월급이 높았다고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봤음
@@선영이-d3m 죄송한데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는 다릅니다
@@착함 명나라 조선 왜 이렇게 삼국인거같습니다
@@착함 댓삭튀 ㄱㄱ
@@착함 ㅂㅅ
예나 지금이나 사회생활 쉽지 않네..
궁녀가 결혼할수 없었던건 아닙니다. 궁녀가 결혼하여 출궁할수 있는 방법은 당상관 이상과의 결혼이었고 왕의 허락이 있으면 가능했습니다 ^^
조선초에나 가능..
@@SamuelSmith1221 조선 말에도 가능했는데
.. 일반 양반은 안되고 반드시 당상관 이상이야하고 당상관이면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이라 궁녀들도 시집 안가려하죠. 차라리 왕의 승은을 노리거나 상궁자리를 노리는게 낫지
당상관 이상 나이 지긋한 아저씨한테 파릇파릇한 여자가 시집 안가죠 ^^
어짜피 급여가 문제지 첩실로 들어가는 자리니
궁녀들의 허드렛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무수리, 무수리의 종들은 각간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던 걸로 봐선 최소 중인이상의 신분 이었을겁니다. 무수리들이 양민, 각간들이 천민이었겠죠.
그리고 조선시대의 경우 양반관료에게 녹봉을 계절 단위(3개월)로 지급한 것이 일반적인데 궁녀는 월급, 즉 월단위로 봉급을 받은 건가요?
궁녀의 보수는 월급제였습니다. 여기에는 의전옷값, 선반밥, 삭료봉급 등 세 가지가 있었는데
의전은 1년에 두 차례 지급되는 옷값이고, 선반은 이들에게 제공되는 식사입니다
삭료는 매달 주는 월급으로 쌀, 콩, 북어 세 가지를 지급했습니다.
돈은 많이 받았겠지만
태움문화 장난아니었을 듯
조선시대 여초직장... 상상만해도 무섭군
젤 많이 받던 지밀궁녀라는 궁녀는 250 ~ 980만원 사이. 기타 대부분 궁녀는 200 - 400 만원.
끝.
아~~
아하~~아
이때 일반 국민들은 30만원 50만원 벌던 시절.
궁녀는 9급공무원?
@@maybe0110 4급서기관급
2:20 시작
유익하고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정보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로 찾아뵙겠습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당시 1원이 지금 5만원이었군요
감사합니다 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로 찾아뵙겠습니다 ^^
1원이 5만원이였다고? 근거는 있나요?어떻게 값어치를 따지는지 궁금해요.
댓글에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시대적인 화폐의 가치를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당시에 비교할 만한 물건의 가격, 즉 쌀 가격과 금 가격 등으로 산정하는데요.
쌀 한가마니(80kg)으로 비교했을때 현재 가치 24만원인데, 18세기 중엽 쌀 한섬(80kg)은 5냥이었습니다.
1원은 10냥이니 18세기 중엽의 쌀가격으로 추정한 1원의 가치는 48000원 정도입니다.
또 1910년 당시 화폐는 일제가 실시한 금본위제가 기본이었으므로 화폐를 금의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는데요.
1910년 1원은 순금 2푼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발행되었고, 금의 무게단위인 1푼은 0.1돈이므로
금 1돈의 시세를 현재 25만원으로 잡으면 1푼은 2만 5천원, 1원은 5만원의 가치로 봅니다.
궁녀는 왕의 여자이기에, 평생 왕 근처도 못가도, 누구와 사귀거나 결혼을 하지 못했음. 출궁해도 똑같은 상황. 내시는 가족을 이룰수 있다고 하나 궁녀들은 누구든 정을 통하면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알고 있음. 태어난 자식까지도. 아무리 재산을 많아도 결국 후손이 없기에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틈틈이 부모나 형제 및 친척들에게 주었을듯. 자신이 죽으면 재산은 사라지기에.
8시간일하고 다음 하루쉬면 꿀일아니냐 ㅋㅋㅋㅋㅋ
갸꿀이지 ㅋㅋㅋ 현재에도 하루 24시간 근무 스고 하루 겨우 쉬는데
저 정도 월급이면 가족중 한 아이가 궁녀로 들어가면 온 가족이 편안하게 먹고 살듯 하네요..
조선의 역사가 찬란했다고? 한국사중 가장 역겨운 나라가 조선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원래 관점에 따라 많이 바뀌잖아요
찬란하게 굴욕당하고 짓밟히긴 했죠~젤 역겨운건 암만 외세에 침략당해도 고려땐 그나마 자주사상이 남아있었는데 조선조부터 간쓸개 다빼놓고 자존심마저 내팽개친 사대사상.
사극에서 이런 내용을 방영해 주시면 조선왕조의 왕실에 대해 좀더 이해가 가지않겠나 싶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90퍼센투가 노비였는데 찬란한유산은 아니었지
제발 그 90퍼 개같은 논리 그만 지겨움
4:02 함께 살다 쓸쓸히 죽었다고? 뭔 어이없게 막던지는것임?
돈도 많을테고 노후걱정없이 노동도 안하고 아랫것들 부리며 취미생활 하며 편히 잘 놀았겠구만.
하여간 이것들은 생각이라는게 없어.
1900년대 와국인이 1달러를 조선돈으로 환전 했는데 엽전을 8궤짝으로 환전 받아서 엽전 가마꾼을 8명 기용했는데 일당과 밥값이 더나와서 당황했다고 합니다
1925년도의 1원이 지금돈 5만원
1950년 전쟁당시 쌀한가마가 8원 였다고 하는데
그당시 미국에서 전쟁물자와 전쟁비용으로 680억달러를 지원해줬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무기 물자를 엄청나게 팔아먹으며 680억의 지원금의 60퍼를 일본이 가져갔으니 그돈으로 일본경제의 호황을 맞았던 것이지요
그당시 1달러를 100원 였다면
1달러에 쌀 12가마
현재 쌀한가마 80키로 28만원
280000원×12가마×68000000000$=228480000000000000원
22경8천4백80조
일본이 저걸로 일어났으니.. 지금도 한반도 전쟁 획책중..
지금지구상에있는돈 다합해도 7경이다 이 정신나간놈아ㅋ
반푼이가 부지런하면 안되는 이유
@@이진욱-k5r
그러면 너님이 계산해보시든가
그당시 1달러의 원환산이 잘못될수도 있었지만 내가 의미하는건 그마만큼 어마무시한 미국의 원조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함
@@이진욱-k5r
이세상돈 다 합쳐도 7경 밖에 안된다니 완전 병신아닌가
예를들어 우리나라 모든재산 다합치면 2경이다(이것은 2018년도 추산)
그러면
미국은 우리나라의 100배가 넘는다 그러면 대략 200경이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170배 대략 340경
그리고
우리나라는 지구의 면적 0.1퍼 면적이다
내가 더이상 계산 하지않아도 대충 알겠는가 ?
나이가 들어 퇴궁 해야 되는 나이가 얼마였는지 궁금하네요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많이 달랐습니다 정말 빠르면 50대후반 늦으면 60대후반이었고 제조상궁같은 경우에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70대초반에서 중반까지 있다가 은퇴한 기록이 있습니다 평균 60대 중반에 제조상궁 승진에 실패하면 건강에 큰 문제가 없어도 나오는 경우가 보통이라 합니다
@@HS-od4ei 친절한 답변 감사 드립니다
@@HS-od4ei 조선시대에 그렇게 오래살았다고요?
돈으로 월급 준건 조선 말 갑오개혁부터 이야기인데 조선 시대 전체를 통틀어 저 정도 돈으로 준 듯 한 뉘앙스네
저것도 조선말기 명목상 기준이지 실제로는 그렇게 받지도 못했고 또 시대별로 달랐을텐데요.. 양반이 평생을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해도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면 말단관직이나 돌면서 입에 풀칠 겨우 할 정도로 박봉이었던 게 조선인데요...
조선시대 지방관리들이 괜히 탐관오리 소리 듣는 게 아닙니다. 조선은 믿지 못하겠지만 세금을 적게 걷었던 국가.. 그래서 항상 국가운영예산이 부족했고 이런 이유로 관리들 급여도 제대로 지급 못했던 나라입니다. 그러니깐 관리들이 세금을 따로 걷어 뒷주머니를 챙기게 됐던 거죠.
아니 저 근무조건 복지에 저 월급 실화냐?
쓸쓸히 죽는건 전혀 문제가 안돼는데?
역시 공무원...!!!ㅋㅋㅋㅋ
공무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무원 이라뇨~!! 궁무원이죠 ㅎ
궁녀의 업무량과 월급을 줄테니 조선시대에서 살라해도 지금 살고 있는게 다행인듯 조선은 심심할거같어...
심지어 어디 잘나가지도 못했을거 같은데 궁녀는...?
수고많으셨습니다...어르신들
아이고~ 고생 많으셨네요. ㅠㅠ
까딱하다 목숨에 위협받아서ㅜ 위험수당포함인것 같아요
근무시간이 ㅈㄴ 좋은데?
식생활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200~400만원이면 괜찮네.
그런데 결혼도 못하고 거의 평생을 궁에서 살아야 하니.
어지간한 농민들이 끼니 한끼 제대로 못챙겨먹는 생활을 영위한거 생각하면 그정도 페널티는 뭐...
@@minsubyoon8931 그렇게 보면 궁녀는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았다고 볼수 있네요.
@@manganjo3137 그리고 결혼은 못해도 연애 같은 경우는 내시들이랑 눈맞는 경우가 공공연하게 있었다고 함.
@@minsubyoon8931 대를 잇는 본능에서 출발한 성욕은 어쩔수 없죠.
내시들도 양자를 들여서 집안을 이어간 경우가 여럿이 된다네요.
비혼이면 상관 없을듯요 저 시대에 혼인 해봤자 시어머니 구박에 아들 낳아야하고 남편들이 첩도 둘수있고 ... 해서 혼인하기 싫은 사람도 있을듯요
부와권력을 얻을수있어도 홀로 살아야한다면 의미가 있나...
가족 먹여 살려야지...... 의미가 없긴 왜없어
아.. 왜 사극에서 왕이 죽으면 돌아와달라고 처마에서 그리도 울부짓어는지 이해가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우씨... 상궁이 저정도니 고추 자르고 내시로 들어가면 월급이 쏠쏠했겠구만.. 그래도 나는 못자른다 이놈들.........
민주주의는 위대한 사상이지 정말...
아님.실패한 정치제도임.결국 더욱 진보한 왕정제가 다시 올것임.민주주의는 200년 정도 보고 있지만,현실적으론 남은 100여년도 버티기 쉽지 않음.
@@gilbertjeong5599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건전한 중산층과 무조건 표찍는 🐕🐖가 없어야한다는 전제가 먼저 이뤄져야함. 오히려 왕정이 전제군주가 지극히 유능하다면 단기간이겠지만 더 높은 성과를 이룰수있음.
@@happyhour2133 역사적으로 봐도 단기적이지 평균적이고 꾸준하지는 않은듯요
@@jinseokkim3450 전제군주제가 어떤상황인지알고 이런리플쓰는건가요???
그냥 역사지만 왕이라는게 여러사람 인생 조지는시스템임 경멸스러움
막말로 ..합법적인 기생 시스템 ...
지금도 200백벌고 결혼못하는 사람들 많던데..
그거랑 뭔상관이여~할놈들은알아서 다해~
200만원300만원받고
평생솔로로사는거면
별로 많이번것도아니네
제조상궁처럼 800만원은벌어야
혼자살아도대지
상궁 언젠간 될거잖아 농사짓고 흉년엔 굶주리고 힘들게 일하며 돈버는거하고 궁 들어가서 굶을 걱정 없고 가족 먹여 살리고 격일 근무에 특별한일 아님 짤리지도 않는거 하고 비교를 해봐
조선 깔때는 유교니 뭐니 하며 결혼한 여자들이 그렇게 불쌍하다 하더니 왜 평생 솔로로 사는게 마음에 안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
@@25nimo11
계집은 남자에게 씨받이로
가축으로길들여져서
애를숭풍승픙낳아야하는데
결혼을안하니문제지
가축이 결혼안하고 애도안닣으면
800만원은줘야지
해야댈일은안하고 유전자번식
솔로로사는데
돈도조나조금주는거지
결혼은 못했지만 진짜 성관계를 안했을까?
했네.. 했어..
궁 안에만 있는데 그러면 뭐 네시랑 섹스하냐
@@검둥이페페 네 내관이랑 하는 경우 많았습니다
궁녀도 엘리트 교육을 받았을테니 월급이 쎄겠죠? 지금도 재벌집이나 유럽 왕가에서 설겆이를 해도 많을 받을겁니다
내시에 월급도 궁굼하오
우리 조상들은 그래도 줄건 주면서
일을 시켰구나
그 대신 자유는 없었고...
누가 줄거 안주고 일시키나요?
@@어린배스-h1p 노예
@@nolboo_korea 저는 돈을 주는 입장이라 노예는 아닙니다 ㅎ
@@어린배스-h1p 님 말고
양반출신도 있지 않았나요?
왕도 개인재산이 있을텐데 왕은 어디서 얼마나 벌거나 받는걸까요
왕은 개인재산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어요. 거기서 관리하는거죠.
월급 받으면 쓸 시간은 있었나..승은을 입을 확율은 이뻐야지 젊어야지..하늘에 별 따기..당시에두 노 총각 으로 늙어서 죽은 사람들두 많았을 탠데..
살살 꼬리치면 의외로 잘 넘어옴
높은사람 따라다니는 군 기자도
해외에 나가면 최고급 호텔에서 잔다는데
최고급 식품들도 받아오고
들어오는거 기자주나봐 완전 꿀
국민세금으로 부럽따
겉으로 들어난 모습일뿐
밤이 되면 깜깜하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름 ~~~
마님 소인 변강쇠 이옵니다
어서 들어와
맘껏 재주를 펼쳐보거라 ~~~😢
연봉 일억이 넘는다니....헉!
내시는 얼마나 벌까요?
내시의 삶이란...
꼬치 땅콩 자르고 시작하는데 많이 받지 않을까요 ㅋㅋ
생각보다 월급이 많았네요.
월급에 대한 내용은 2분 40초 다되서야 나오니; 그때까지 별의미없는 성은에 대한 이야기를 할필요는 없어보여요. 차라리 제목과 썸내일에 대한 내용을 앞에 배치하고 부가설명을 뒤에 배치하는게 좋아보입니다. 지식유튜버들 엄청보는데 내용은 맘에드는데 구성에 힘이빠지네요. 재미있게봤고 구독할께요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의견에 맞춰 개선해서 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ㅎㅎㅎ 저는 보기 좋았어요 모른거 많이 알아서 이대로 해도 좋을거 같은디
감사합니다. 유익한 내용으로 찾아뵐께요~
이런 사람들 쓰잘때기없는 불평불만에 하나하나 휘둘리면 채널망합니다 소신갖고 영상 업로드하세요 ㅋㅋ
부족하지만 소중한 의견들 잘 새겨듣고 좋은 채널로 찾아뵙겠습니다
멋
지금보다 근무환경이 좋네
화폐가 대중화 되기전에는 북어로 임금준걸로 아는데..
네 맞아요 이전에는 쌀 콩 북어로 월급이 지급되었었죠~^^
출퇴근하는 궁녀도있었다고봤는데...
돈많이 받으면뭐하나... 연애도 못해보고 늙어서가는 궁녀인생...불쌍하네
여잔 남자보다 돈을 더 좋아함...lol
영원한 사랑은 없잖아요 그리고 헤어지면 결국 남남임 내가 당장 길거리 나 앉는다고 과거 연인이 나를 먹여 살리지는 않잖아요 먹고 사는게 제일 중요한데 그리고 어차피 경제적 여건이 안되면 사랑할 여유도 없어지고 사치가 되어버림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사랑하지도않는 사람과 억지로 결혼 해야하는 일이 더 많음
@@sj-qx2gu 뭘좀아네 하버드출신임?...lol
사랑은 영원하지않을수 있지만 어차피 한번사는거 불타는 사랑 한번쯤은 하고 싶지 않을까요?
@@kspa123 저 시절에는 궁녀가 불타는 사랑 한번 하기 위해서는 모든것을 버려야해요 어차피 사랑도 유통기한 있다 보니 너없으면 죽고 못산다는 연인도 결혼후 너 때문에 못산다 원수로 변해요 영원한것은 없지만 몇년후 비참하게 살면서 평생 후회 할수는있죠 한마디로 사랑이나 결혼이나 도박 입니다
중국은 궁녀 내시들은 월급이 없었죠
내관들도 ㅜ ㅜ.....거시기 싹둑하고 그 와중에 온갖 병에 시달리고... 이들도 늙으면 궁궐 밖에서 죽어가야 했는데 세상사 인식은 .....생략
썸네일 아따맘마인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궁녀는...
대부분 중인 출신이고,
양인(상민 이상) 신분만 가능하오.
중인이나 양인출신으로만 뽑은건 순조 이후임
조선 초기부터 주로 양인으로 궁녀(생각시, 각시)를 차출하다가...
영조 때 양인 궁녀를 금했으나...
그후로도 지밀, 침방 등의 생각시는 대부분 양인으로 뽑았고...
이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져서 구한말 궁녀 대부분은 중인 출신이었소.
ㆍ
무수리, 각심이, 의녀 등은 주로 천출이 맡는 직역이었으나...
높게는 정5품까지 내명부 품계를 받는 궁녀는 좋은 신분을 선호했소.
광해를 보면 왕을 시중드는 궁녀들은 끼니도 굶던데...
궁녀는 왕이 남긴 음식을 먹었고 하인은 주인이 먹던 음식을 먹었습니다...그래서 차린 음식을 다먹으면 아주 매너없는 인간이 되는거죠 ~~
@@charlieshin9513 그래서 옛날 제사상이 그렇게 푸짐한거죠. 제사때나마 배부르게 먹을수있도록 한 선조들의 나름 복지정책임 ㅋㅋㅋ
푸짐하게 한상 차리면 적당히 먹고 상을 물려서 아랫사람들이 남은 음식을 먹는게 관례였죠.
귀한 손님이 왔을때도 똑같이 대접했기에 손님은 적당히 잘 대접 받았다 생각하면 상을 물려서 그 집의 나머지 식솔들이 먹게 해주는게 예의였죠.
애초에 겸상하는 문화가 아니었어요.
가끔 장손이 할아버지와 겸상하는 것은 특별히 손자를 예뻐하고 아끼는 경우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하죠.
궁녀만 수백이었으니
궁녀월급으로만 수억 깨졌겠네 지금으로 치면
조선이 찬란하진 않았지ㅋㅋㅋㅋ
나도 뭐 궁녀나 다를바가 없.,
중국이었으면 순장도 당했을텐데
조선은 근무환경좋지
부럽다
와씨 그럼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때 궁녀들은 그 고생다해야함
권력과부을 쫓는 학생들이 많을수로 그나라는 부패했다
2분 30초부터
02:15
다음엔 환관도 부탁해요.
오우 의식주 해결되고 세후 200만 되도 좋은데
나는 장금이밖에 몰라여 무수리~??
맨날 조선시대 드라마는 금수저들 얘기만 .....
궁무원ㅇㅇ
조선시대 찬란한역사????
공부좀 하세요.
조선 말기가 500년 역사의 전부가 아님
참.. 무식해 진짜
@@하루곰-d1p 끝이 중요한거 아닌감? 곰같은하루?
@@changhoolee1067 조선 에서 많이 유명한 역사부분중 하나인 조선 초기 세종 시기만 봐도 한글 반포 하나로 다 씹어먹을만큼 찬란한 역사였는데 끝이 흐리다고 어찌
조선 500년 역사 자체를 부정하려 드시나 지금 님이 의사표현을 하게 도와주는 그 글자 그 역사가 조선에서 만들어진건 아시죠?
똑같은 얘기를 두세번씩 해서 영상길이 늘리니까 듣기싫다
결혼하기 싫은 비혼 선호하는 여성들은 어떻해 보면 꿀 직업 인데요? 급여도 많이 받고 ~ 결혼은 못해도 출궁후에 몰래 연애정도는 할수있지않나? 하긴 그때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겠죠 하긴 저 시대에 혼인 해봤자 시어머니 구박에 아들 낳아야하는 압밥감과 남편은 첩을 여럿 둘수 있으니 혼인하기 싫은 사람들도 있을듯 ... 어쩔수없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그래도 출궁후에는 자유를 주웠다면 좋았을텐데요 아무리 조선시대라도 출궁한지 3년이 지나면 이혼으로 생각하고 자유를주지 너무 하네요
연애도 결혼도 못하는 여자들이 드글드글한 여초직장이라...
조선이 찬란한역사 였나요?
허리가 부러져도 편안하게 역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저는 70이 넘은 나이에 요추(허리) 2번의 20%가 부러지는 골절상을 입고도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하고 역도를 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흉추 11번이 압박골절로 30%가 손상되고 요추 2번의 20%가 으스러져 산산조각이 나서 또 손상된 상태에서 70이 넘은 노인네가 어떻게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하고 역도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허리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서 병원과 한의원을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려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허리 통증의 고통을 겪어보신 분들이라면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 동감을 할 것입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병원과 한의원에서 허리통증에 대한 치료를 하였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고, 이런 저를 안타깝게 여긴 주변 분들이 여러 가지 운동을 권유했습니다.
누구 누구는 무슨 운동으로 허리병을 고쳤다더라 하면서 말이죠. 국립국악원에서 전통무용까지 배우는 등 무수히 많은것을 해봤지만 허리통증은 악화만 되었습니다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기에 마지막 심정으로 우리 조상들이 험한 들판과 산길을 누비며 수렵 채취를 하며 생활한 것을 본받아 주말에는 용기를 내서 오대산을 등산하고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생각과 달리 허리는 상쾌하고 통증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리통증의 원인은 약해진 허리 주변근육이 자신의 몸이 누르는 중력을 지탱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몸의 반응이 통증임을 알아 냈습니다
저는 허리주변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사무실과 집에도 평행봉을 비치하여 거꾸로 매달려 윗몸일으키기 등 시도 때도 없이 미친듯이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높은 산을 등산하고,2019년 4월부터는 매일 역도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허리 뼈가 일자로 되어 있는 기둥으로 우리 몸의 대들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기둥인 대들보는 일자로 되어 있어 부러지면 집을 받치지 못하여 집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우리 허리 뼈는 일자로 된 기둥이 아니고 33개의 작은 뼈마디 구성 되어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조금 손상되면 나머지를 가지고 사용하면 됩니다.
저는 흉추 11번이 30% 손상되고 허리 2번이 20%가 부러져 손상되었으므로 전체 33개의 뼈를 놓고 보면 전체 뼈의 1.5%가 손상되어 그 정도로 보면 아주 작은 정도의 손상이지만 이 작은 손상이 주는 통증에 인간은 거의 삶이 망가질 정도입니다. 통증을 제외하면 1.5% 정도의 작은 손상은 나머지 98.5%의 기관이 작동하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못합니다.
즉 우리는 척추뼈가 어느 정도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부분을 사용하여 일상적인 생활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척주가 33개로 뼈마디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을 못하고 일자로 된 기둥으로만 생각되기 때문에 허리 뼈가 조금만 손상되어도 몸을 받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우리 몸이 금방 주저 앉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33개의 뼈 모두 손상이 되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어떤 일로 인하여 일부가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걷기에 이어 등산과 역도 등 자신의 여건에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하여 허리 주변근육을 단련하면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자각하고 매일 역도를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등산과 역도는 우리 몸에 작용하는 중력을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운동입니다.
유듀브 등 언론 매체를 보면 허리가 아픈 것은 나쁜 자세 때문이라고 하면서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허리가 아픈 사람은 윗몸일으키기나 등산을 하거나 역도를 하면 아주 나쁘다고 하면서 못하게 하며 평지를 살살 걷거나 뒷방에서 누워 있으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몰라서 평지를 살살 걷고 등산도 안 하고 방에 누워 있었더니 낫기는커녕 더 아파서 사실이 아님을 제 자신이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수 년 전 제가 허리 통증에 대하여 연구할 때 학생들의 과학교과서나 체육교과서 등을 꼼꼼하게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과학교과서가 중력을 예로 들면서 사과나 비가 땅으로 떨어지는 예를 들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 때 이를 배웠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과서 저자에게 중력을 설명할 때 사과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몸을 예로 들어 설명하여 달라고 건의했더니 건의 받은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실생활과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며 다음 교과서 수정 시 반영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교과서를 확인했더니, 2개 출판사의 교과서는 중력을 극복하는 스포츠로 역도 등이 있다고 수정 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제가 건의할 당시 저는 역도가 중력을 극복하는 운동인 것을 몰랐습니다. 과학교과서 저자는 참으로 머리가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70이 넘은 나이에 역도를 시작한 이유는 역도가 몸이 누르는 중력을 빨리 극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목적으로 할 경우 여자분은 10kg, 남자는 15내지 20kg 정도만 가지고 인상을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은 참으로 신기하게 진화가 잘 되어서 허리뼈가 부서져 일부가 없어지더라도 대신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시키면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사람은 왜 목,허리,무릎이 아플까? 4쇄본 본문 중에서)
2021,2
사람은 왜 목 허리 무릎이 아플까?
저자 허리튼튼법무사 이 희 숙(남)서초동
미친놈인가?
끔찍한 조선시대 .
당대 유럽이고 해외도 다를 거 없었어요....
@@muktongx 그래서요 ?
지랄하고 염병해봤자...난 궁녀보다 낮구나..............
다 좋은데
임진왜란, 사화, 유링민이 들끓다가 일제에 망한 조선을 찬란한 역사 표현은 좀
음..... 관노비 궁녀는 무수리 아닌가요?
조선시대가 무신 찬란한 역사라고, 말은 바로 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