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를 바꾼 대전투..!! '세키가하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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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9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78

  • @루테나
    @루테나 Год назад +43

    세키가하라전투는 세계3대 고전이라 지들 맘대로 갖다부치지만 현장에 가보면 손바닥만한 논과 기슭에서 20만 병사가 뒤엉켜 싸운다? 말도 안되는 소리. 세계3대 고전이란 게티즈버즈 남북전쟁, 워털루전쟁인데 거기에 숟가락을 얹나 근데 20만이란 어디서 나온 숫자인가 세키가하라전투의 소설을 쓴 도쿠가와 이에야스빠가 쓴 소설속에 나올뿐이다

    • @zenio7199
      @zenio7199 Год назад +10

      대부분 산에서 진을 치고있었고 들판에 있던 일부부대와 하산한 일부병력만 전투한거임 논있는 평지만 보고 반일운동하지 마세요

    • @루테나
      @루테나 Год назад +18

      @@zenio7199 이런 일뽕을 봤나 내가 반일운동 ?? 을 한게 뭔가 자네 현장이라도 가봤나? 그리고 누가 세계3대고전이라 했는가 그리고 참전한 병사가 20만이란 근거는? 당시 임진정유재란 직후였는데 아직도 일본에는 그많은 병사의 숫자가 남아있는가 자네가 알고있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내가 추구하는 역사는 학문이다 학문은 진리추구 인것이다

    • @xzxzxzxz9892
      @xzxzxzxz9892 Год назад +6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세력만 참전한거고 세키가하라는 일본 열도 전역의 운명을 결정짓는전투라 전지역의 다이묘가 참전항 얼추 비슷할거같은데

    • @루테나
      @루테나 Год назад +2

      @@xzxzxzxz9892 그러게 20만이란 숫자의 근거를 대보라니까 소설속의 숫자 말고

    • @lch6732
      @lch6732 Год назад +4

      저도 이게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
      동/서군 양측 얼추 8만씩해서
      도합 16만정도라고 하는데
      임진왜란이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대병력이 나오는것도 그렇고
      그런 여분의 병력이 있음에도 조선에서
      철수한다는게 의아했음

  • @신종욱-z4e
    @신종욱-z4e Год назад +15

    실제 전투를 벌였던 병력은 10만도 안되는
    평범한 전투임 이시다가 신망을 받지 못해
    전투에 참여 안한 다이묘가 여럿이고 배반
    한 다이묘도 있어 결국은 패망한 전투
    처신과 인내를 갖추고때를 기다린 덕천가강
    행정가의 능력으로 그를 넘어서기엔 준비도
    자세도 시기도 잘못된내용

    • @xzxzxzxz9892
      @xzxzxzxz9892 Год назад +1

      심지어 관록도 부족 이에야스는 7살부터 볼모생활하면서 갖은 산전수전을 다겪었는데 미츠나리는 나이도 이에야스보다 훨씬 적었고 차하나 잘내왔다는 이유로 히데요시 밑에 들어가서 벼락출세한 인물임 그러한 거사를 치룰 무사기질이 있던것도 아닌 행정가였고

    • @place01
      @place01 Год назад +4

      '병력은 10만도 안 되는 평범한 전투' ㅋㅋ 임진왜란 주요 대첩들 죄다 평범한 전투됐노

    • @xzxzxzxz9892
      @xzxzxzxz9892 Год назад

      @@place01 이시기 조선인구 약700만 예상
      일본인구 2000만 즉 한녀vs일본녀

    • @신종욱-z4e
      @신종욱-z4e Год назад

      @@place01 임진왜란하고 세키가하라전투
      가 먼 접점이 있지요? 제가 임진왜란을
      논한것도 아니고 실제로 기록을 살펴보면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서로 배후를 지키기
      위해 후방과 측면에 적지않은 병력은
      참가하지 않았고요

    • @place01
      @place01 Год назад +2

      @@신종욱-z4e 세키가하라 전투를 '실제 전투를 벌였던 병력은 10만도 안 되는 평범한 전투'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왜 평범한 전투가 되는지 의아해서요.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3대 대첩 한산도, 진주성, 행주산성 각 싸움 모두 양측 병력 합쳐 10만이 안 됩니다. 그러니 님 말씀대로면 이 전투들도 평범한 전투가 됩니다. 그리고 일본이 전쟁 중 단일 전투로 가장 많은 병력을 투입한 제2차 진주성 전투는 10만에 거의 육박하는데 외부로부터의 원군 차단용으로 배치된 부대 빼고 실제로 조선군과 싸운 병력은 10만이 안 됩니다. 이 역시 평범한 전투가 되겠네요..

  • @97mantis
    @97mantis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시다 미츠나리o 세키가하라 전투는 8시~14시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코스모스-k1l
    @코스모스-k1l Год назад +6

    동물의 왕국!!! 결론은 이것입니다

  • @제임스-w2n
    @제임스-w2n Год назад +2

    3개의 고지를 점령하고 먼저 자리 잡아 학익진으로 동군의 병력을 감싸고 있고 병력까지 우세한데, 정말 서군이 지기 힘들었던 싸움....

  • @전아무개-t7q
    @전아무개-t7q Год назад +3

    댓글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까?

  • @서병석-g2i
    @서병석-g2i Год назад +6

    이츠다가 아니고 이시다

  • @조계호-h1e
    @조계호-h1e Год назад +2

    일본 역사상 가장 거대한ㅠㅜ 장대스런 대전투 ㅋㅎ

  • @마르키시오-v7l
    @마르키시오-v7l Год назад +2

    결과론으로 보면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시다 미츠나리는 군사능력없이 제 잘난 맛만 있는 실속없는 거품 그 자체. 인망이 없으니. 서군 총대장. 바지사장으로 모리가문을 앉힘

  • @Kmj-e4z
    @Kmj-e4z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배신의DNA가 어딜가겠어

  • @코스모스-y7z
    @코스모스-y7z Год назад +2

    만날 쌈박질만 하다보니 침략의달인됨

  • @KOREA_DAEGUMAN
    @KOREA_DAEGUMAN Год назад +1

    서군의 패배는 도쿠가와를 믿었는 바보같은 짓 얍삽한 짓에 넘어간거지 오사카 겨울 여름 전투 다 이겼다

  • @mitsnariishida5320
    @mitsnariishida5320 Месяц назад

    이츠다 이치다 미츠나리가 아니라 이시다 미츠나리임. 이시는 일본 한자로는 돌석 자 다는 밭전 미츠는 석삼 석전삼성임.

  • @말티즈-z4h
    @말티즈-z4h Год назад +1

    이거보면 서울의봄 같음 도쿠가와 전두환 미츠나리 장태완 갑자기 죽은 도요토미 박정희

  • @안수요비-k4x
    @안수요비-k4x Год назад +3

    서군이 이겼으면 막부시대는 없었는데

  • @이븐할둔-t3o
    @이븐할둔-t3o Год назад +2

    이시다가 주제를 모르는 주판쟁이라서...

  • @jaeseungful
    @jaeseungful 3 месяца назад

    이치다 미츠나리 x 써 있는 대로 이시다 미츠나리요~~

  • @Sam-hs2zy
    @Sam-hs2zy Год назад +2

    백제 구하러 간 20만 일본군은?

    • @xzxzxzxz9892
      @xzxzxzxz9892 Год назад +1

      백강전투? 4만임 그리고 그때는 일본군이 아니라 백제유민세력

  • @bobby-iu2cj
    @bobby-iu2cj Год назад +3

    그마마 미츠나리 정도 라도 되는 충신이 있었으니 망정이었지... 도요토미 죽고 나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도쿠가와 로 전향 했었나...
    미츠나리를 높이 평가 하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도쿠가와 가문이 득세할걸 알면서도 충의를 지킴

    • @mitsnariishida5320
      @mitsnariishida5320 Год назад

      전쟁에선 비록 패했으나 사무라이로써는 오오이꾸사 즉 큰 전투를 벌여본 사무라이의 영예의 끝을 달렸죠. 전투에서 패해서 이에야스에 앞에 섰을때도 이에야스나 쿠로다 나가마사 같은 장수들은 두텁게 대해줬다 합니다. 어쨌든 자기 주인이었던 히데요시 에 충성을 다한거니깐요..다만 노부나가에 충성한 히데요시가 천하인이 된것과 달리 미츠나리는 그렇게 될수없었다..그것이 아마 히데요시와 미츠나리의 능력차였겠죠..전투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능력도 그렇고...상대에게 맞춰주며 온갖 아양을 떠는 히데요시와 달리 배타적이고 자신의 논리만이 정석으로 여기는 미츠나리의.그릇의 차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