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전투는 세계3대 고전이라 지들 맘대로 갖다부치지만 현장에 가보면 손바닥만한 논과 기슭에서 20만 병사가 뒤엉켜 싸운다? 말도 안되는 소리. 세계3대 고전이란 게티즈버즈 남북전쟁, 워털루전쟁인데 거기에 숟가락을 얹나 근데 20만이란 어디서 나온 숫자인가 세키가하라전투의 소설을 쓴 도쿠가와 이에야스빠가 쓴 소설속에 나올뿐이다
@@zenio7199 이런 일뽕을 봤나 내가 반일운동 ?? 을 한게 뭔가 자네 현장이라도 가봤나? 그리고 누가 세계3대고전이라 했는가 그리고 참전한 병사가 20만이란 근거는? 당시 임진정유재란 직후였는데 아직도 일본에는 그많은 병사의 숫자가 남아있는가 자네가 알고있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내가 추구하는 역사는 학문이다 학문은 진리추구 인것이다
@@신종욱-z4e 세키가하라 전투를 '실제 전투를 벌였던 병력은 10만도 안 되는 평범한 전투'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왜 평범한 전투가 되는지 의아해서요.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3대 대첩 한산도, 진주성, 행주산성 각 싸움 모두 양측 병력 합쳐 10만이 안 됩니다. 그러니 님 말씀대로면 이 전투들도 평범한 전투가 됩니다. 그리고 일본이 전쟁 중 단일 전투로 가장 많은 병력을 투입한 제2차 진주성 전투는 10만에 거의 육박하는데 외부로부터의 원군 차단용으로 배치된 부대 빼고 실제로 조선군과 싸운 병력은 10만이 안 됩니다. 이 역시 평범한 전투가 되겠네요..
전쟁에선 비록 패했으나 사무라이로써는 오오이꾸사 즉 큰 전투를 벌여본 사무라이의 영예의 끝을 달렸죠. 전투에서 패해서 이에야스에 앞에 섰을때도 이에야스나 쿠로다 나가마사 같은 장수들은 두텁게 대해줬다 합니다. 어쨌든 자기 주인이었던 히데요시 에 충성을 다한거니깐요..다만 노부나가에 충성한 히데요시가 천하인이 된것과 달리 미츠나리는 그렇게 될수없었다..그것이 아마 히데요시와 미츠나리의 능력차였겠죠..전투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능력도 그렇고...상대에게 맞춰주며 온갖 아양을 떠는 히데요시와 달리 배타적이고 자신의 논리만이 정석으로 여기는 미츠나리의.그릇의 차이일지도...
세키가하라전투는 세계3대 고전이라 지들 맘대로 갖다부치지만 현장에 가보면 손바닥만한 논과 기슭에서 20만 병사가 뒤엉켜 싸운다? 말도 안되는 소리. 세계3대 고전이란 게티즈버즈 남북전쟁, 워털루전쟁인데 거기에 숟가락을 얹나 근데 20만이란 어디서 나온 숫자인가 세키가하라전투의 소설을 쓴 도쿠가와 이에야스빠가 쓴 소설속에 나올뿐이다
대부분 산에서 진을 치고있었고 들판에 있던 일부부대와 하산한 일부병력만 전투한거임 논있는 평지만 보고 반일운동하지 마세요
@@zenio7199 이런 일뽕을 봤나 내가 반일운동 ?? 을 한게 뭔가 자네 현장이라도 가봤나? 그리고 누가 세계3대고전이라 했는가 그리고 참전한 병사가 20만이란 근거는? 당시 임진정유재란 직후였는데 아직도 일본에는 그많은 병사의 숫자가 남아있는가 자네가 알고있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내가 추구하는 역사는 학문이다 학문은 진리추구 인것이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세력만 참전한거고 세키가하라는 일본 열도 전역의 운명을 결정짓는전투라 전지역의 다이묘가 참전항 얼추 비슷할거같은데
@@xzxzxzxz9892 그러게 20만이란 숫자의 근거를 대보라니까 소설속의 숫자 말고
저도 이게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
동/서군 양측 얼추 8만씩해서
도합 16만정도라고 하는데
임진왜란이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대병력이 나오는것도 그렇고
그런 여분의 병력이 있음에도 조선에서
철수한다는게 의아했음
실제 전투를 벌였던 병력은 10만도 안되는
평범한 전투임 이시다가 신망을 받지 못해
전투에 참여 안한 다이묘가 여럿이고 배반
한 다이묘도 있어 결국은 패망한 전투
처신과 인내를 갖추고때를 기다린 덕천가강
행정가의 능력으로 그를 넘어서기엔 준비도
자세도 시기도 잘못된내용
심지어 관록도 부족 이에야스는 7살부터 볼모생활하면서 갖은 산전수전을 다겪었는데 미츠나리는 나이도 이에야스보다 훨씬 적었고 차하나 잘내왔다는 이유로 히데요시 밑에 들어가서 벼락출세한 인물임 그러한 거사를 치룰 무사기질이 있던것도 아닌 행정가였고
'병력은 10만도 안 되는 평범한 전투' ㅋㅋ 임진왜란 주요 대첩들 죄다 평범한 전투됐노
@@place01 이시기 조선인구 약700만 예상
일본인구 2000만 즉 한녀vs일본녀
@@place01 임진왜란하고 세키가하라전투
가 먼 접점이 있지요? 제가 임진왜란을
논한것도 아니고 실제로 기록을 살펴보면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서로 배후를 지키기
위해 후방과 측면에 적지않은 병력은
참가하지 않았고요
@@신종욱-z4e 세키가하라 전투를 '실제 전투를 벌였던 병력은 10만도 안 되는 평범한 전투'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왜 평범한 전투가 되는지 의아해서요.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3대 대첩 한산도, 진주성, 행주산성 각 싸움 모두 양측 병력 합쳐 10만이 안 됩니다. 그러니 님 말씀대로면 이 전투들도 평범한 전투가 됩니다. 그리고 일본이 전쟁 중 단일 전투로 가장 많은 병력을 투입한 제2차 진주성 전투는 10만에 거의 육박하는데 외부로부터의 원군 차단용으로 배치된 부대 빼고 실제로 조선군과 싸운 병력은 10만이 안 됩니다. 이 역시 평범한 전투가 되겠네요..
이시다 미츠나리o 세키가하라 전투는 8시~14시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 결론은 이것입니다
3개의 고지를 점령하고 먼저 자리 잡아 학익진으로 동군의 병력을 감싸고 있고 병력까지 우세한데, 정말 서군이 지기 힘들었던 싸움....
댓글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까?
이츠다가 아니고 이시다
일본 역사상 가장 거대한ㅠㅜ 장대스런 대전투 ㅋㅎ
결과론으로 보면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시다 미츠나리는 군사능력없이 제 잘난 맛만 있는 실속없는 거품 그 자체. 인망이 없으니. 서군 총대장. 바지사장으로 모리가문을 앉힘
배신의DNA가 어딜가겠어
만날 쌈박질만 하다보니 침략의달인됨
서군의 패배는 도쿠가와를 믿었는 바보같은 짓 얍삽한 짓에 넘어간거지 오사카 겨울 여름 전투 다 이겼다
이츠다 이치다 미츠나리가 아니라 이시다 미츠나리임. 이시는 일본 한자로는 돌석 자 다는 밭전 미츠는 석삼 석전삼성임.
이거보면 서울의봄 같음 도쿠가와 전두환 미츠나리 장태완 갑자기 죽은 도요토미 박정희
서군이 이겼으면 막부시대는 없었는데
??
이시다가 주제를 모르는 주판쟁이라서...
이치다 미츠나리 x 써 있는 대로 이시다 미츠나리요~~
백제 구하러 간 20만 일본군은?
백강전투? 4만임 그리고 그때는 일본군이 아니라 백제유민세력
그마마 미츠나리 정도 라도 되는 충신이 있었으니 망정이었지... 도요토미 죽고 나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도쿠가와 로 전향 했었나...
미츠나리를 높이 평가 하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도쿠가와 가문이 득세할걸 알면서도 충의를 지킴
전쟁에선 비록 패했으나 사무라이로써는 오오이꾸사 즉 큰 전투를 벌여본 사무라이의 영예의 끝을 달렸죠. 전투에서 패해서 이에야스에 앞에 섰을때도 이에야스나 쿠로다 나가마사 같은 장수들은 두텁게 대해줬다 합니다. 어쨌든 자기 주인이었던 히데요시 에 충성을 다한거니깐요..다만 노부나가에 충성한 히데요시가 천하인이 된것과 달리 미츠나리는 그렇게 될수없었다..그것이 아마 히데요시와 미츠나리의 능력차였겠죠..전투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능력도 그렇고...상대에게 맞춰주며 온갖 아양을 떠는 히데요시와 달리 배타적이고 자신의 논리만이 정석으로 여기는 미츠나리의.그릇의 차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