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w4181 사람에 따라서 달랐어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겠어요? 일본인들이 자기 부인들 한테 하대 하는것을보고, 그것도 뽄이라고, 그게 멋있게 보였는지 따라하는 사람들이 인격이 모자란 사람들이죠! 친정 부친께서는 일제 강정기에 결혼을 하신 분들이지만, 돌아가실때 까지 어머니 에게 하대 하시는것 못봤어요.
세상에.. 대단하고 놀라운 일이다.. 그 편지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진주 하씨 평소 입고 쓰던 옷가지하며 편지까지 송진으로 정성껏 관을 덮어 모셨다는게.. 정말 감탄에 감격에 감동..으로도 표현안되는 경이로운 일이다. 그 가문의 자손들이여..부디 조상의 넋을 잘 달래어주시길 바란다..
곽주 선생께서 1617년 돌아가시고 하씨 부인이 1652년 이후 돌아가셨다고 한다 거의 30년 가까이 되는 세월에 하씨 부인이 남편의 편지를 얼마나 읽고 또 읽었을지 가늠이 쉬이 되지 않는다 끝없이 애지중지하였기에 저리 400년을 함께 쉬지 않았겠나 하씨부인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까마득한 세월을 지나 그들의 삶에 마음한켠이 저리는 것은 그들 역시 사람이었고 희노애락의 삶을 살아낸바 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삶은 선물이라고... 기쁘면 기쁜대로 화나면 화나는대로 최선으로 사랑하며 남김없이 즐거워하는 우리네 삶이 되길 바란다 오늘도 그리 살아보자
170여매의 한글편지를 주고 받았을 애뜻한 부부애도 놀랍고 대단하지만, 조선 500년 한글교육 주체가 여성인 어머니 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 또한 놀라운 발견. 저희 씨가가 진주하씨문중이라... 더 더욱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400년전이라고 해서 모두가 현풍 곽씨이신 곽주어르신과 진주 하씨부인처럼 사이가 좋게 다 잘 지낸 것은 아니죠! 당시에도 경제적인 이유, 성격차이등으로 자결을 하거나 도망을 가는 경우도 꽤 있었을 것으로 사려가 됩니다. 쉽게 말해서 요즘이랑 별반 다를봐가 없었을 거란 말이죠!
내나이 이제 70세 이영상을 보다보니 나의 할머니가 생각나는데 어릴때부터 나는 서울에살고있었고 나의 할머니는 남원에 살고계셨는데 서울 나의 어머니께로 붓글씨 편지를 가끔 부쳐오셨는데 언문(한글)으로 쓴 편지였다~ 그때 당시 나는 철없던 때라 그냥 그렇게 지나쳐 버렸는데 정말 귀하다면 귀한 편지였구나~ 이제야 왜 생각이나는지 ....
저희 친정 어머니도 진주 하씨입니다. 무덤속에서 나온 남편의 아내에 대한 편지의 내용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이네요. 언젠가 유트뷰에서 세상먼저 떠나 남편을 그리움과 보고싶어사는 아내의 사무친 편지가 그 또한 400년만에 공개 된것을 보았을때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그립고 보고싶었으면 하늘로간 남편의 사무침을 보낼수 없는 편지를 쓴 아내의 사랑이 가슴이 저릴정도였다. 여기서도 남편이 진주하씨의 아내에게 보낸편지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수 있다. 참! 첩이 아니였다면 이 들은 너무행복한 부부로 살았을 것이다 가슴이 찡하고 마음이 아프다.
관에서 나온 유물이 보석이 아니라 남편이 보낸 편지였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네요. 뼈대있는 진짜 양반은 아내에게 존대뿐만 아니라 자리도 여성이 상석에 앉게 합니다. 그게 유교죠. 지금은 왜곡된 유교사상만 남아 있는것 같아 곽씨 가문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후손분들 잘되실길 기원합니다.
본 받아야 할 인간다움을 가르켜 준다.한 사람 한 사람 세상 떠 날때 그렇게 준비하여 갈수 있었다면.모든 조상들이 그럴수 있었다면 .내용들이 희귀하지 않았을 것이나. 특별한 💑 부부 사랑과 자녀 가르침.그 족적을 남김이.막 무덤이 있는 우리 대촌리 지역과 그 교훈이 극과 같아 씁쓸하다.국가가 수습해야 할 나당전투로 인하여 만들어진 한 많은 역사실록 은 언제 🤔수습 될까? 막막하고 답닾하다
흥미로운건 남편이 아내에게 존댓말로 편지를 쓴 점이네요. 조선시대 남자 더더군다나 경상도 대구지역이라면 더욱더 가부장적이고 그럴거라 생각하는 편견도 있는데, 13:28에 편지내용을 보면 "슈고롭사오신 언문 가르치옵쇼셔" 라고 존댓말을 썼네요. 아내가 나이도 더 어렸을텐데 조선시대 부부상에 대해 상식을 깨네요. 아내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 훌륭합니다
종이도 한지입니다.
부모님의 편지를 귀히여겨 어머님 곁에 묻어준 자식들의 효심으로 후대들이 다시한번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를 주네요.
@@chslee6113 아니지인석아
@@chslee6113 화학종이도 공기와 닿지않고 산화되지않으면 수백년은 갈듯합니다 집에 곧 100년 될 서적들이 아직도 건재합니다
@@경산남TV 3
1:12 1:12 1:12 1:13
감동입니다. 저 시대에 부인에게 존대말을 사용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구구절절 표현할 줄아는 멋있는 그 시대분들, 지금이나 그때나 우리 마음은 똑같음을 느낍니다.
옛 어른들은
부인이라고 말을 낮추지는 않고
늘 높인말을 써다네요
00
양반가에서는 부인에게 하대 하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깍듯이 존대를 했죠.
일제강점기부터 부인을 낮추어 불렀죠
왜? 일본이 부부관계가 상하관계니까
그대로 답습한거죠
원래는 조선시대까지 부부관계는 동등하게
서로 존대하고 살았는데
@@kgw4181 사람에 따라서 달랐어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겠어요?
일본인들이 자기 부인들 한테 하대 하는것을보고, 그것도 뽄이라고, 그게 멋있게 보였는지 따라하는 사람들이 인격이 모자란 사람들이죠!
친정 부친께서는 일제 강정기에 결혼을 하신 분들이지만, 돌아가실때 까지 어머니 에게 하대 하시는것 못봤어요.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품격있게 아내에게 사랑을 가지고 애뜻하게 보낸 사연이 가슴뭉클 하네요!!!
곽주선생께서 돌아가시고 35년 후에 부인 하씨께서 돌아가셨는데 그 긴 세월동안 남편의 편지를 보관하신걸 보면 부부의 정이 얼마나 애틋한지 가히 짐작이 가네요
진한 감동이 밀려오네요
400전에도 이런 진정한 사랑꾼이 계셨다는게 참
놀랍습니다
잘 먹고 잘 살던 양반가문이였으니 저정도이죠! 못 살아서 먹고 살기에 바빴던 평민들에게는 어림도 없었던 일이죠!
와우~ 대단하네요. 관을 덮었던 송진이 모든 것을 잘 보관한 것이군요. 자녀들의 효심에 감동하고.. 또 부인께서는 살아 생전에 부군의 편지를 얼마나 많이 읽었을까요.? 편지를 관 속에 까지 넣은 것을 보니 두 분의 사랑이 참 애틋합니다. 감동입니다.
원주 경찰의 고소장 손괴를 ...뇌물수수도 300만원 허위의 수사기록도 계속 재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병재올림 널리 알려주세요 부패행위 입니다
@@이병재-p2e ㅐ
0000
ㅣㅣ1
저걸 세상에 공개한 현풍 곽씨 가문도 대단하네요. 역사의 중요한 사료인데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감사해요
괜히 양반이아님
세상에.. 대단하고 놀라운 일이다.. 그 편지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진주 하씨 평소 입고 쓰던 옷가지하며 편지까지 송진으로 정성껏 관을 덮어 모셨다는게.. 정말 감탄에 감격에 감동..으로도 표현안되는 경이로운 일이다. 그 가문의 자손들이여..부디 조상의 넋을 잘 달래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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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주 선생께서 1617년 돌아가시고 하씨 부인이 1652년 이후 돌아가셨다고 한다
거의 30년 가까이 되는 세월에
하씨 부인이 남편의 편지를 얼마나
읽고 또 읽었을지 가늠이 쉬이 되지 않는다
끝없이 애지중지하였기에
저리 400년을 함께 쉬지 않았겠나
하씨부인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까마득한 세월을 지나 그들의 삶에
마음한켠이 저리는 것은
그들 역시 사람이었고 희노애락의 삶을
살아낸바 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삶은 선물이라고...
기쁘면 기쁜대로
화나면 화나는대로
최선으로 사랑하며
남김없이 즐거워하는
우리네 삶이 되길 바란다
오늘도 그리 살아보자
대단 하시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멋진 글입니다~~~👍
생명은 선물이죠.
헛되게 쓰서 그렇지
너무 좋은 말씀입니다
파묘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습니다..
나두..
나두..
나두..
Same here. I watched the movie today
¹1¹11¹11111011q11111
무엇보다 400년전이란 어마어마한
세월전에 부부의 애뜻 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고 상상이 되어서
정말 감동적입니다
400년이 어마어마한 세월??? ...지나간과겨는 100억년이됐건 10억년이됐건400년이 됐건 간에
눈깜빡할새죠..
@@별뽕-n5t 눈깜빡할새는 금방지나가는거고..저건 까마득한옛날이라고하죠..
자넨뭘했는가 조선의 정호는 지도를그렷잔아
넌 이불에지도그렷냐 ㅋ
😅
보관한 편지를 같이 묻어주신 후손님들도 존경스럽습니다.
지극한 애처가셨나보네 편지 내용 하나하나가 존중과 그리움, 사랑이 묻어나네요
젊은 후처인디 이쁘지~
와 ~~ 대단하다 ~~ 한글교육의 주체는 여성이었다 ^^ 너무 대단한 우리의 어머님들 ~~~
저도진주하씨..
어머니들은위대하단 말이맞는듯
유튜브가 활성화되면서 그 전에는 정말 접하기 힘들었던 것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귀중한 영상을 찍을 수 있게 해준 문중분들도 대단하고 이렇게 재밌고 유익하게 편집한 분들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감동적인 영상을 볼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400년전 부부애가 저리 로맨틱할수가.. 품격이 넘치네요..
6
@@김지원-x2g7w p
@@김지원-x2g7w 1기,
🎉
@@김지원-x2g7wㆍ
현풍곽씨 곽재우장군할아버지 직계 후손으로서 마음이 벅차고 뿌듯하네요 갑자기 진주 하씨집안을 보면 웬지 잘대해줘야할듯^^그렇게 하씨 할머니를 아껴주신것도 참으로 후손으로서 자랑스럽고 뿌듯하네요
귀한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히 보았습니다. 우리가 한글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어머니들이 한글 교육을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머니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이름이 또 있을까요^^
5
아버지
400년전 종이 편지가 묘중에 부패하지 않고 보존 돼 있다니 놀랍다.
한글이 정말 선명 ㅎㅎ
한지 위엄
명당 이기에 보존된것 입니다. 화 이 팅 ~~~~
[행정안전부] 비와 눈이 지면에서 얼거나 도로 살얼음이 발생하여 미끄러운곳이 있겠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고, 운전시에는 안전거리 유지 및 저속 운행 바랍니다.
@@신재열-t9q q
170여매의 한글편지를 주고 받았을 애뜻한 부부애도 놀랍고 대단하지만, 조선 500년 한글교육 주체가 여성인 어머니 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 또한 놀라운 발견. 저희 씨가가 진주하씨문중이라... 더 더욱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잉?
그래서 한글은 잘 하는고?
자녀분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루었는지 나타나네요.
400년 간 제사를 올린 것도 대단.
부럽네요 400년간 기억
남편이 진주하씨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아꼈는지 느껴집니다...
거기에 아들들도 어머니를 끔찍히 사랑했으니 장사지내면서 저렇게나 많은 송진을 채취해서 어머님의 관을 밀봉하고 그 안에 유물도 많이 넣은 것 같네요
그 집안의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네요
아버지의 삶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으니 지식들도 따라 했으리라 생각해보네요
재가하지 미쳤다고 수절하냐???
@@b.w1503 400년 시대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대로 하시는 말씀을 보니...,
@@b.w1503 ㄱㄱ
@@b.w1503 짐승이냐 ᆢ
그야말로 요즘 부부들이 본받아야될 우리조상님들의 하늘같은 가르침입니다~~
400년전이라고 해서 모두가 현풍 곽씨이신 곽주어르신과 진주 하씨부인처럼 사이가 좋게 다 잘 지낸 것은 아니죠! 당시에도 경제적인 이유, 성격차이등으로 자결을 하거나 도망을 가는 경우도 꽤 있었을 것으로 사려가 됩니다. 쉽게 말해서 요즘이랑 별반 다를봐가 없었을 거란 말이죠!
@@STARGATE_SGC 요즘이랑 별반 다를게 없다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저런 사례를 보고 본받아야한다는게 중점 아닐까요
ㄷㆍㅋ,ㅈㄱ,.
영상 끝까지 보니 가슴이 뭉클하네요.,
400여년 전 남편 곽씨가 부득이하게 따로 사는 부인 하씨에게 쓴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
하씨 부인은 틀림없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일본놈들은정말로나뿐들이다우리의적이다
에효... 행복하면 머합니까 혼자있는데ㅋ
5.
ㅡ393😮😅
ㅡㅡ
.?'ㄱㅇㆍ
와우. 정말 400년동안 송진으로 보존된편지며 옷감들!상상이안가는 지혜와 우리조상님들의 효?저도 현풍곽씨 자손 입니다. 늘 자부심을느끼면서 살고있답니다. 친정은. 진주이구요. ㅎ 곽씨 집안 남자들이 가정적이고 다정한면이 많아요 ㅎ. 귀한 문화유산을 사료로 내노신. 곽씨문중 분들 돈경합니다
남편의 사랑과 정성이 아내의 묘를 저렇게 온전히 지킨듯합니다~감동이네요~!
동우연명석
고태진
따로 떨어져 살아도 많은 사랑을 받으신걸 알겠네요.
그 애틋함이 후손에게 귀한 자료를 남기게 될줄은 모르셨겠죠~~ 👍 👍 👍
저희 시집 고향 현풍 이동네 모친 진주 하씨
대단한 자료 감사합니다 .
알고리즘에 떠서 보러왔어요 진주하씨인데 이장되시는 분이 조상님이라 기분이 묘하네요 한글이라 400년전이라도 글자가 읽히는게 재미있어요 잘봤습니다
666666666oop0
저두요 !!
400년전 우리나라 남편이 저리 다정다감하셨네요. 감동이다. 아내 하씨도 편지를 보냈을 것인데 떨어져 살았다니 그 내용을 알 수없어 안따깝네요.
정말 대단한 내용. 400년동안 잘 보관되 있다니 옛 선조들의 지혜로움은 경탄하지 않을수 없내요.
그려 본좌도인정
저것도 권세있고 잘 살던 양반지이라서 가능한 것이었지 평민들이나 천민들은 택도 없는 이야기였죠!
@@STARGATE_SGC 400년 전이면 어딜가도 그러함 ㅋ
@@SenseMachine 400년 전만 그럴까요? 지금도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저거보다 더 좋은 무덤을 쓸 수도 있지요
@@STARGATE_SGC 지금은 돈만 많으면 어디서 무얼 하건 자유.
저때는 으딜 감히 평민 천민이 돈좀 있다고?
요꼴 납니다 ㅋ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그모슾이 보이는듯 하네요 묘새같이 각박하고 모서운 세상에 귀감이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
.
남존여비 사상이었던 시대에 저렇게 아내를 존중하며 많은 사랑의 편지를 쓴 남편분도 대단하다
사실상 남존여비는 조선후기에 심했지 조선 초중기에는 심하지않았어요
아들면회간엄마.
저때 양반가애서 존대말을 썼죠
생각보다 남존여비도 안 지켜지고 재혼도 하고 연애도 하니까 열녀비를 줘서라도 권장한 거라고 하네요.
애당초 진정 사랑했다면 시대불문 그냥 서로 아꼈겠지. 지금도 커뮤니티에서는 한남, 한녀 외치면서 싸우지만 그걸로 대한민국의 모든 연인관계를 단정 지을순 없잖아요?
남편 편지글 내용이 감동적이네요~~ 알려지게 되어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최고예요. 고귀한 자료를 제공한 효심도...
대단한 발견입니다 귀한자료 후대에 역사자료 가되길바랍니다.
400년이라....나도 모르게 우와~~했다...너무신기하고 ..놀랍다는 표현 이..
저도 현풍곽씨에 후손으로써 자부심을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한사람으로써
영상을 우연히보게되엇는데 너무감동적이라
영상을보고잇는동안 우와우와 대단함이
그리고 많은것을 배움과 느낌을주는 울림입니다~
영상너무 고맙게잘봣습니다
현풍곽씨열여가많다는데 곽씨여자분들대부분 착한편 고지식한면도있다 나의동생들도 착한편 친척분들도한결같다
내나이 이제 70세 이영상을 보다보니 나의 할머니가 생각나는데 어릴때부터 나는 서울에살고있었고 나의 할머니는 남원에 살고계셨는데 서울 나의 어머니께로 붓글씨 편지를 가끔 부쳐오셨는데 언문(한글)으로 쓴 편지였다~ 그때 당시 나는 철없던 때라 그냥 그렇게 지나쳐 버렸는데 정말 귀하다면 귀한 편지였구나~ 이제야 왜 생각이나는지 ....
현풍곽씨 !
대단하십니다 ᆢ
그유전자도 대단하타는걸
알수 있네요ᆢ
곽씨 아저씨^^~^^♡
요즘은 돌상놈 이지요
그러게요 돌상놈 이죠..
곽상도?
낭만적이다 거기다 여성이 한글 교육의 주체라는 것도 멋있다
정말이지 정이많아
참 아름다운 부부네요
진주하씨는 그리 많지도 않았을 400 년전 일이란것이 더욱 감동입니다.
우리도 진주 하씨 입니다.
남편이 진주 하씨네요. 반갑습니다 ^^
저는 진주 강씨 입니다 ,
저도 진주 하씨요...^^
감사합니다!!!
@@asd-uu7db 어릴 때 진주 강씨 여자아이를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루어 질 수 없다며 서운해 했던....ㅎㅎㅎ 초등학교 4학년 땐가 그랬어요...
저도 진주 하씨 임 ㅎ
옛시대나 요즘 시대나 전처에 자식하고는 좋지 않았네 .
떨어저 지낸 삶이 어때설까 .
애뜻한 사랑만이 서로를 지킬 수 있었군요.
깊은 사랑에 감동입니다.
그리움에 지처 .
현풍 곽씨입니다~
반가워 보고갑니다..어찌저리 보존이 잘 되었는지..놀랍네요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이들에게 언문(한글)을 가르치라던 곽씨도 대단하고
편지를 받고 언문(한글)을 가르쳤던 하씨도 대단하네요.
저도진주하씨..
@@ehhe29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진주하가입니다.
첫째부인 아들과 계모인 진주하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군요. 곽주씨는 첫째아들과 살고 둘째부인과는 자주 왕래하면서 살았지만 같은집에서 동거는 하지 않으셨나봅니다. 곽주님이 엄마 잃은 첫째아들을 나몰라라 안하고 챙긴 책임있는 아버지였군요.
저도 진주하씨 🙋♀️
대단하다.400년이라 .곽씨 문중에 관해서 자주 이야기을 들었는데.이렇게 빛을 보네요.
다음에 시간이 되면 곽씨문중 제실에 한번 방문해 보고싶네요.
모친이 현풍곽씨이시고
부친이 진주하씨인데,
400년전 두 집안에
관계된 조상님묘라니,
너무 대단합니다!
저희집도요 ^^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종친님
@@하미미-z8n 반갑습니다
종친님
오 하군 감축하네
@@암행어사출두여닉값 하군이라니.. 댓글쓰신거 보니 니보다 한참 어르신인데? ㅋ
와 조상님 전에 큰절 올림니다
제가 진주하씨 사직공파 32대 손 입니다
너무 감동 입니다
저는 시랑공파 34세손입니다.
@@ha1958-f8c 시랑공파 도 있군요 2개의 파가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만 제가 잘못
알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새미의일상 네, 하공진을 시조로 모시고 진주성내에 경절사에 모십니다.진주성의 공북문이 하공진 시조의 공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더군요.
@@새미의일상 사직공파,시랑공파,단계공파 3파입니다.
저희 친정 어머니도 진주 하씨입니다.
무덤속에서 나온 남편의 아내에 대한
편지의 내용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이네요.
언젠가 유트뷰에서 세상먼저 떠나 남편을
그리움과 보고싶어사는 아내의 사무친
편지가 그 또한 400년만에 공개 된것을
보았을때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그립고 보고싶었으면 하늘로간
남편의 사무침을 보낼수 없는 편지를 쓴
아내의 사랑이 가슴이 저릴정도였다.
여기서도 남편이 진주하씨의 아내에게
보낸편지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수
있다.
참! 첩이 아니였다면 이 들은 너무행복한
부부로 살았을 것이다
가슴이 찡하고 마음이 아프다.
첩은 살아있는 부인이 있고 들어온 여인이 첩이라부르고 이분은 후처라 부름이 맞는것 같네요
@@suk9009 아~~! 그러네요.^^
나이가 들다보니 단어가 쉽게 떠오르질
않더라구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별하고난 후 새로맞이한
후처이지 첩이 아닙니다
첫번째부인과 동등한위치입니다
송진이 부패를 완벽하게 보호할수 있었다니
새롭습니다.👍😱🇰🇷
@@sanyaroo 수박도 생긴다 참외도 성주참외
@@b.w1503 조까
관에서 나온 유물이 보석이 아니라 남편이 보낸 편지였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네요. 뼈대있는 진짜 양반은 아내에게 존대뿐만 아니라 자리도 여성이 상석에 앉게 합니다. 그게 유교죠. 지금은 왜곡된 유교사상만 남아 있는것 같아 곽씨 가문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후손분들 잘되실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동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경의를 표합니다.
별별님의 댓글도 넘 감동입니다🥺
참 대단 하시네요
가문의 가보 일텐데 ᆢ
그터 명당터 입니다
아무리 송진,으로 처맂해도 400년 동안 의복 서책 등등 이 보존 돈다는건 그터 자체가 습기가 차지않고 물이 고이지 않는다는거겠죠 ᆢ
참 대단하십니다
400년이 되었는데도 유물이 그렇게 보존되었다니
정말 다행히 잘 보존되어서 지금 세대에게 아주 귀중한 사료가 된것 같아요~! 문화재 및 유물 발굴에 힘쓰고 있는 많은 연구원분들과 공무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부가 얼마나 서로 존중하고 사랑 했으믄 무덤을 정성 들이고 고인이 쓰던것을 넣어주고 그시절에 하기 힘든세월도 보낸 것 같아요 그래도 그시절 참으로 하기 힘든 가정에 충실하고 사랑에 감탄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배웠으믄 좋겠어요
본 받아야 할 인간다움을 가르켜 준다.한 사람 한 사람 세상 떠 날때 그렇게 준비하여
갈수 있었다면.모든 조상들이
그럴수 있었다면 .내용들이 희귀하지 않았을 것이나. 특별한 💑 부부 사랑과
자녀 가르침.그 족적을
남김이.막 무덤이 있는 우리 대촌리 지역과 그 교훈이
극과 같아 씁쓸하다.국가가
수습해야 할 나당전투로 인하여 만들어진 한 많은
역사실록 은 언제 🤔수습
될까? 막막하고 답닾하다
+
.
너무나 대단한 가문이네요...
파묘 보고오신분 ㅎㅎ
유튜브에서 보게 되다니. 반가운 분, 반가운 함자, 종친회장이 되셨군요. 여전히 건강하신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씀을 종종하셨습니다. 영자 배, 병자 배 분들도 이제는 노인이 다 되셨겠습니다. 저도 육십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당시에 장손의 위세가 대단하엿나 보네요..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과 그 자식들을 딸로 살게 한 걸 보니
.
그 장손의 어머니 묘는 요 ? 첫번째 부인이요? 잊혀진 여인이 된건가 보네요
대단하고 놀랍습니다
명복을빕니다
부부간의 존경이 보이네요 아름답네요
아 재밌게 봤습니다.
자상한 남편의 마음이 400년이나 지났지만 그대로 느껴지네요.
특히 한글로 된 편지와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여성분들이 한글을 많이 썼나봐요. ㅜㅜ
역사스페셜 어느 편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그 편에서도
먼저 하늘로 간 남편분에게 한글 편지랑 짚에 자기 머리를 섞어 짚신 한 켤레도 만들어 넣어주셨더라고요. 그립고, 애틋함이 느껴지는 예쁜 글의 편지였어요ㅜㅜ
원희엄마의 편지 안닌가요?
저도 본것 같아요
원이 아버지께. 라는 편지고요. 이 편지를 바탕으로 능소화라는 소설로 나온 것도 있어요.
저는 63세 아버지는 몇해전 돌아가시고 성함은 곽 주 ..외아들은 ..곽 영..
묘한 감정이~
여기 할아버지와 하씨 할머니의 사랑과 비교할순 없지만 유전적 동질감이 ㅎㅎ
언제 함 현풍 찾아가볼듯~~
제가 현풍곽씨후손인것이 자랑스럽네요^^
저도 현풍곽씨예요 자랑스러워요
오올ㅡㅡㅡ👍👍👍
지금 현시대에서도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최선의 💕 사랑으로 하루 하루 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면서 행복한 삶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곽씨 문중 존중합니다
정말 신비한 역사를 보는 듯, 감사합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마음이 맞지않고 힘들면 쉽게 이혼 을 하는 요즘세태에 우리선조님들을 따라배우고 섬기고 인격을 존중하는 울림이 있다 생각합니다
정말대단 하내요 저런유물이라 들은 공개
하기도 정말 힘든일인대
중요한 유 물입니다
길이길이 보존해야 될것
갇습니다
부부의 정이 숙연하게 만드네요.
지금은 같이 계시겠죠.
흥미로운건 남편이 아내에게 존댓말로 편지를 쓴 점이네요.
조선시대 남자 더더군다나 경상도 대구지역이라면 더욱더 가부장적이고 그럴거라 생각하는 편견도 있는데,
13:28에 편지내용을 보면 "슈고롭사오신 언문 가르치옵쇼셔" 라고 존댓말을 썼네요. 아내가 나이도 더 어렸을텐데 조선시대 부부상에 대해 상식을 깨네요. 아내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 훌륭합니다
aruiarth 조선시대는 남자도 부인에게 존칭을 썼습니다.더구나 양반가문이라면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남존여비가 강해졌어요~~
일제잔제이지요~~
고려시대랑 조선초까지는 지금보다 남녀가평등했답니당~^^
재산도 똑같이 제사도 똑같이지냈다해용
조선초까지는 남여평등사상이었죠 4대사화를거치면서 사림파가집권하는16세기부터 여자의인권이 땅바닥으로떨어지죠
곽주가 장모인 합산댁에게 쓴글입니다.
aruiarth
조선초기에는
여자들도상속권이있었습니다.조선후기.유교가공고해지면서.여자들신분이.노비계급처럼.추락하게됩니다!
고려때는
여자가결혼해도.친정에서.남편과같이살다가.
첫아기가 생기면 낳아서
시집으로갔습니다
남자들이
여자의모든걸.무시하고
통제하면 얼마나편합니까!
자기들은축첩에난리면서
과부는재혼도못하게하고
조선.후기는
개자식들
닐리리맘보여쓰습니다
이편지 보고 눈물 많이 흘렷다
지금도 부부지간의 정은 이와
다르지 않다.
문장이 부인에게도 존중하는 말씨네요..... 배울점이네요...
모지리삼룡아 장모라잖아
@@성이름-e2u8r 니기미 시벌이다
그럼 우리 조상들이 부인들에게 함부로 반말한줄 아셨나요? 저는 조선시대에 자기아내에게 모두 존대말 썼다고 들었던거 같습니다.
@Kim Tim 왜 화났음?
가슴뭉클한 한국판러브스토리 오늘날 물질만능 에 젖은 현대인들 에게 많은 사건이다 교훈을주는
소중한 자료 잘 시청합니다
곽재우 장군님
역시 훌륭한 집안입니다
감동이 크게 다가 옵니다
부부사랑이 애뜻하네요 감동입니다
어머나 이름이 똑같네 나도 박정숙
애틋하다
부럽습니다 부인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보이네요
3남5녀 금슬좋은 부부였네요. 편지를봐도 그렇고...
3남5녀쯤은 저시절에 기본이였음
진짜 대단하네요 그 긴 세월동안 잘 보존 되었다니
제가 현풍곽가 32대손이고 남편이 진주하씨 32대손인데 각자 조상님들 께서 이리 각별하셨다니 반갑네요 ^^
너무 신기해요~~ ^^
그래서 곽도은이 잘 사는가?
참으로 귀한 인연이 십니다.
조상님들의 계획이 있으셨던가 봅니다.😊
곽주선생이 참 다정다감한 분이셨네요. 그리고 하씨부인도 아마도 돌아 가시기전에
자식들에게 편지를 관에 넣어 주라고 유언을 했겠죠.
본인은 진주하씨 를부인으로두었는데 참 마음이깊고넓어 평소 남자인나보다 마음이 넓네그려!
공무원 .지방자치의원 . 지역사회봉사와 열정으로 자부하는데 뒫바라지하느라 고생많이시켯다싶고 이제 86
세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구려! 해여져야할 시간은가까워오는데 80먹은 할미가조석을 너무잘해주어 참 고맙고 애처롭고 향기롭고! 부부란 평생동지요 영원한친구요. 일급신하요. 사랑하는벗이라 황혼에로멘스여.!
송목은 고궁 객사 한옥등을짓는데필수자제이다.특히 적송 홍송! 관솔 송진을 올려아름들이객사기둥. 살아,천년 죽어천년.생천 사천이요!
400년전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어느누구든선조님들에게
감사한마음을가져야한다고생각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나무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낭무아미타불
왕생 극락 발원
대단한발견 입니다
곽씨 가문의 무궁힌
발전을 빕니다
와우 감동에 소름...진짜 좋은발견이었네요
곽,씨님들 행복하세요,,,
곽씨 후손으로써 자랑스럽고 부부가 서로 존중하는 모습이 놀랍네요.
송진으로 관을 메워서 부패를 방지를 하고
한글로 자녀교육을 시킨 모습도 존경스럽네요
도굴 손상 방지였지, 부패 방지는 아니었을 겁니다.
저도 현풍郭씨인데 조상님을 이렇게 만나뵙게되네요..
👍👍👍
능소하 아름답다
사랑받고 사신 할머니 아름다운 삶이다
저도진주하씨..
@@ehhe29 하씨는 모두 진주하씨 입니다
제가 현풍곽씨인걸 어떻게 알고...
우리 조상님 존경합니다!!!
👍👍👍👍👍
와 진짜감동이네요 애틋한 사람자식사랑 ~~~
마음 뭉클해 집니다 ㅠㅠ
본처아들이 위세가높아요
저희 친할아버지가 하씨이시고 친할머니가 곽씨이십니다 문득 뿌듯하고 감동이 새롭습니다~♡^^
대단한 명문가는 맞는것 같네.
위대한 유산을 남기셨소.
우리 시조어르신 곽 제우 장군의 은혜을 감사드립니다 !
오호 진주 하씨인데 이런 스토리는 몰랐네요
한글을 지켜온 우리 어머니들 존경합니다.
여보세요!?.나도알고있어요.교수님. 맟아욬ㅋㅋ?
감동입니다~ 애틋한 부부애와 자식교육까지 신경쓰셨던 아버지의 뜻
옛날양반가는 부부사이에 존대했어요.
우리부모님도 서로 존대했었는데.
싸울때는 쌍욕하셨지만,평소엔 존대
또는 반존대..
다시없을 귀한 사료 정보
감동입니다. 현시대 세계
여러나라의언어나글자를 중요시하며 한글은 별로로 아는것 갔습니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다큐로 연재하여 국민성을높이는계기가되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