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끝, 즉 종말에 대해서 지혜롭게 행동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일이 또 있을 것이라며 오늘을 흥청망청 살고 있지만 내일은 우리에게 약속된 날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고 외치지만 늘 내일이 올 것으로 착각하며 오늘을 깨어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서 마지막 때에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각성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비유는 1절에 보시면 제자들을 깨닫게 하시려고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 하고 계십니다 3절의 청지기는 해고 된 후 자신의 살아온 삶을 뒤돌아 보면서 그토록 인자 하시던 주인이 왜 나를 매몰차게 해고를 했을까 하고 자신에 대해서 주인이 생각하는 불의가 무엇 인지를 생각하고 깨닫게 됩니다 아 내가 주인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내 마음으로 살아 왔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4절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5절 주인에게 빚진 자를 불러다가 6절 기름 백말은 오십이라 쓰라 하고 7절에는 밀 백석을 팔십이라 쓰라 합니다 위 말씀의 의미는 주인은 자기에게 빚진 자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탕감의 의미는? 방탕한 삶에서 돌이키게 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름과 밀을 탕감 해 주는 의미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으로 대신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탕감 해 주시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많은 죄를 탕감 받았습니다 이것이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아난 것인데요 곧 거듭남을 의미 합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새 사람으로서 청지기인 것인데요 9절에 불의한 재물은 (사악한 자 ,악한 자 란 뜻임) 자신의 의 곧 율법의 의로 살아가면서 자신 만의 삶을 살아 가는 자를 말씀 합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의 의미는? 친구의 의미는 친구는 히브리어 필로스 입니다 필로스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요 불의한 청지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사귐을 가질 때 자기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율법의 의로는 죄인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진리 로만 죄에서 탕감 받고 구원에 이른 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을 비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사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롭게 일을 처리한 불의한 청지기를 8절 에서 주인이 칭찬을 한 것입니다! 좋은 말씀을 해 주신 목사님의 말씀에 누가 되지 않을까 생각 하면서 글을 올립니다!
허당 그레이스 님 체널을 통해 아재 개그 보며 원 없이 웃다가 목사님을 알게 되어 목사님 말씀 동영상 1.75배속으로해서 스트레이트로 초집중 듣고 있는 중입니다. 목사님 반갑습니다.^^ 바른 말씀 감사하고요. 아재 개그에 넘나 웃는 것 보면 제 나이가 짐작 되시죠?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관한 목사님 설교 말씀 잘 헤아려 들었어요.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한 계단 한 계단 쉽게 잘 설명해 주셔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콕 박히네요. 오늘 불의한 청지기 말씀도 누구나 땅에서 해고당한다는 표현 너무 와 닿았어요. 결국, 땅에서 해고 되는 날을 대비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한다는 말씀 잘 새겨들었습니다. 저 역시 질문하신 분처럼 고민하면 읽었던 본문이었는데, 너무 설명을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저는 본문 9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신 말씀이 핵심 아닐까, 생각하며 읽었어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일이 곧 예수님과 사귀는 일로 말이예요. 재물은 불의한 것이지만, 그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일(예를 들어 물질로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구제하는 일. 비유에서 불의한 청지기가 빚을 탕감해 준 일)이 우리가(교회가) 이 땅에서 해고당하는 그날,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로 영원한 생명의 처소로 인도하신다는 의미로 묵상했어요.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다른 본문에서는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라고도 하셨고, 한 부자 비유에서는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는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다.”라고 베푸신 비유와 연관 지어 묵상해 보았어요. 유독 누가복음 본문에 재물(재물사용)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성에 관해 하시는 말씀이 많은 것 같아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언).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전도서) 하신 구약 말씀들도 생각나네요. 암튼,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결국 내가 가진 불의한 재물(주님께서는 재물의 속성을 불의로 단정하시네요.)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땅에서 해고당하는 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처소로 인도해 준다는 비유로 묵상해 보았답니다.
좀 간단히 정리해 보면, 주님의 제자 된 청지기인 성도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니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묵상했어요. 세상의 불의한 청지기도 주인의 재물을 지혜롭게 주인이 기뻐하시는 일(작은자를 구제하는 일, 사랑하는 일)에 사용했는데 말이지요.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헤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청지기는 그 당시 관행처럼 시행된 과도한 이자를 제자리로 돌린 것 뿐이지, 그것이 근본적으로 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청지기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 해고를 당해 쫓겨나게 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청지기는 지금 자신의 형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던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다. 비유 속 청지기가 청지기 자리를 잃는 것은 우리로 말하자면 결국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해고를 당하는 것이고, 우리가 평생 동안 노력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청지기가 청지기 자리를 내려놓아야 하듯이 우리도 삶 자체를 내려놓아야 한다. 잠시 머물면서 수단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들이 어느 순간 목적으로 둔갑되는 것이 심각한 것이다. 우상 숭배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우리를 영접할 친구 즉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근원적으로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집중하는 삶의 자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거나 맞아주지 못하게 되는 바로 그런 순간이 온다는 생각을 늘 해야 하고 이를 지혜롭게 준비해야 한다. 모든 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짐을 정리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나그네처럼 준비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 버릴 그 순간을 우리는 준비하고 있는가? 이제 곧 인생의 자리에서 해고될 우리에게 우리의 친구 되신 그 분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오늘도 귀한 하나님 말씀으로 권면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제 아내에게 유튜브하나교회 채널을 권했더니, 아내는 허당그레이스 채널을 저에게 권하네요. ㅎㅎ 두 분의 말씀과 삶이 하나 되는 모습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셔서 많은 은혜 받습니다. 덕분에 저희 부부도 새로운 결혼을 한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귀하와 이 영상의 제작자 분은 누가복음 16:9의 친구를 예수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한글성경의 단수 "친구"와 달리 모든 영어성경과 원어성경은 복수 "친구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친구"를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하고 본문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해석한 것은 매우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 해석의 중심은 누가복음 16:13에서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여 빛의 아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아들인 불의한 청지기도 빛의 아들인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도 모두 돈을 좋아하는데 "하나님과 재물의 둘다 섬길 수가 없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는 것을 죽음으로 해석하건 개인파산으로 해석하건 상관없지만 "확실한 불행이 그에게 예고되어 있다"는 것을 그 청지기는 깨닫고 "여기에 대비하여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결론적으로 그 불의한 청지기는 모든 재물이 불의한 재물로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자신은 청지기로 어려운 자들에게 탕감하는 태도로 그들을 도와줘 그들을 친구들로 삼아서 그가 청지기에서 해고된 이후의 삶을 그 친구들에게 도움받아 안락하게 살게 되도록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 불의한 청지기가 빛의 아들보다 더 지혜롭게 여겨졌던 것은 불의한 재물을 사용하여 자선을 베품으로 친구들을 만들고 그 자선을 받은 자들이 그를 친구로 영접하게 했기 때문이고 빛의 아들은 불의한 재물로 그들끼리 즐기고 살아가고 이 세상에는 자선을 베풀지 않아 이 세상에서친구들을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바탕에는 빛의 아들이지만 재물을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려는 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초림 당시 빛의 아들의 대표적인 표상은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들입니다. 오늘날에는 빛의 아들이 목사, 신학자, 장로, 권사, 집사 등으로 불리겠죠. 예수께서는 빛의 아들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 하고 있기 때문에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로 따끔하게 훈계한 것입니다. 주안에서 언제나 영원히 평안하세요.
누가복음(16:1~13) 청지기는 평소에도 주인을 속였고 해고 당할때도 자기 유익을 위해 채무자들의 빚을 조작했다. (8절) 그럼에도 주인은 오히려 그가 슬기롭다고 칭찬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 * 청지기같은 사람들이 진짜 지혜롭다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권세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구원받은 의로운자)보다 더 잔꾀를 부린다는 비꼬는 비유임. (쉬운성경은 “[자기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빛의 자녀보다 더 슬기롭다” 인데, 자기 욕심 추구를 위해 온갖 술수를 내는 것이 묵묵히 정직한 의로운자보다 꾀가 많다는 의미임) (9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 거짓된 재물(부정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사귀면 결국 멸망으로 가게됨을 설명함.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는 말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는 말과 비슷한 분위기이므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됨. ‘그들이’는 불의의 재물로 사귄 친구들을 말하는데, 그 인간들이 구원할 능력은 없으므로 결국 나쁜돈으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 옮다고 여겨짐. - 부자/나사로 이야기도 부자는 영원히 죽지않는 멸망의 처소에서 영주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표현으로 하면 “그렇게 술만 먹어봐라! 결국 병에 걸려 죽는다”는 방식의 표현임) (11절)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 “~ (바르게) 충성하지 않으면~” 으로 (바르게)가 빠져있음. 즉 (이미 설명한) ‘불의한 재물’ 사건의 경우에도 이 청지기처럼 살지 말고 바르게 충성하지 않으면 누구도 아무것도 맞겨지지 않을 것임을 말함. (풀어서 표현하면 “불의한 재물의 경우에도 욕심을 위해 꾀부리지 말고, 바르게 충실하지 않으면 누가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절) “너희가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 일꾼이 남의 것(주인의 것)에 충성해야 너희의 것(급여)를 받지 않겠느냐! (13절)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두 주인은 안되듯이 하나님도 다른 것과 함께 섬기는 것은 안됨. (청지기처럼 속이면서 자기 인생을 추구하지 말고, 피조물인 인간은 오직 인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한분만 바로 섬겨야 함) (잠깐 지나가는 세상에 대한 욕망(욕심)으로 하나님께 돈/건강/명예/출세 등을 요구하는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섬기는 것이므로, 오직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고 자신을 이끄심을 믿고 주시는 현재상황에 순종하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가시기를 기도하며 진리의 말씀따라 의의길을 인내하며 가고, 세상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두고 거룩하게 사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시고 구원해 주심을 깨닫게 됨)
이 비유와 관련된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려 합니다. 비슷한 학교에서 다 가르침을 받았을거고,,, 아직도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보고 또보고 과한해석들은 아닐지,,, 넘 어려운 부분이면서 솔직히 잘모르겠다고 고백하는 목사님도 계시네여,,, 목사님의 설교는 그동안 저의 의문과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느낌이고,,, 이땅의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무시하는 설교 즉,,, 어려운 내용이라서 그냥 보편적인 그문구에만 집중하고 앞뒤 맥락은 통으로 날리시는 설교를 해오고,, 저희는 그저 앉아만 있었던거 같아서 충격이었습니다. 열심히 듣고 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좀 궁금했던 부분을 쉽게 설명해주셔서요. 그런데 여태 쉬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요. 왜 영어성경의 'worldly wealth'를 '세상에서 얻은 부'라 하여 부에 대한 중립적 관점으로 옮기지 않고 '불의한 재물'이라 하였는지요? 지엽적인 것이지만 이러한 번역이 부에 대한 부자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조장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어서요. 며칠전부터 하나교회에서 풀어주시는 말씀에 접하고 있습니다. 많은 공감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조심스럽게 여미어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시청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드리자면 '불의한 재물'이란 말은 헬라어 원어 '아디코스' 아(부정 접두어) + 디코스(올바름) 의 번역입니다 영어성경에는 이를 worldly (세속적인) 으로 번역을 했고, 한국어 성경은 '불의한'으로 번역을 한 것이죠 질문해 주신 뜻은 알겠으나, 원어 자체가 '불의한' 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고 영어의 worldly 또한 중립적이기 보다는 '영적이지 못한' '세상적인'.. 뭐 이런 뉘앙스이니 한국어 성경의 '불의한' 이란 번역은 잘못된 번역은 아닌 것이죠.. 물론 성경에 부정확한 번역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가능한 다른 많은 번역본을 참조하여 함께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 주시는 것은 더욱 좋은 태도입니다 ㅎㅎ
목사님! 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고린도전서14장에 방언과 예언에 대한 말씀에 대하여 바울사도가 어떤 의도에서 말씀하신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요즘 유트브에 방언에 대한 수많은 내용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방언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가능하시면 방언대하여 자세히 유트브 설교를 부탁드립니다. 늘 은혜의 말씀을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영어가 되시는 분들은 ruclips.net/video/YV88EHQwWd4/видео.html 영상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기본적으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셨지만 거기에는 바리새인들도 듣고 있었고 그 바리새인들을 위해서도 또 다른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죠. 16장의 청지기 비유를 적어도 15장과 연결시켜서 생각하셔야 하고 또 더 나아가 누가복음에서 저자가 예수의 비유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16장의 이야기를 보아야 하는데 목사님은 달랑 그 본문 하나만 가지고 말씀을 하시니까 많은 오해가 발생하는거 같습니다. 개인 적으로 아멘 하시고 보시는 분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년전 방언은사 받고 묵상 중에 제게 온 깨달음입니다. 이 세상 법으로는 청지기는 배임죄에 해당합니다. 근본적인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인 즉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것이 위치이동 한 것이고 빚진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기에 하나님은 칭찬한 것입니다. 내것은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진정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점검해야할 것 같습니다.
8절과 9절을 반어법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절의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비꼰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친구 참 영악하네..." 라고 보면, 9절도 이해가 갑니다. 9절: "불의한 청지기 같이 불의한 돈으로 친구사궈봐라,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대로, 자기를 그들의 집에 들여서 죽을때까지 먹여 살려주지 않는다" 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한 것은 다시한번 비꼬는 투로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해봐(그런식으로 친구 사궈보라), 그러나 절대 그런 일 (불의한 청지기의 새 친구가 청지기를 자기 집으로 한두번은 영접해 대접하겠지만, 끝까지 먹여주는 일은)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10절부터13절까지가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10-13절을 설명하기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미래를 대비하라는 메세지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바로 앞의 돌아온 탕자같이 불의한 청지기도 회개하고 주인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14절에 비웃었다고 나옵니다. 이 비유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같은 자리에 있는 (15장 1절에서 계속된 말씀이므로) 바리새인들 들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10절이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고자 한 이야기입니다. 미래와 종말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제 생각입니다.
적어도 성경(또는 성서)를 해석할 때 기본이 되는 다섯가지 1. 본문을 둘러싸고 있는 문맥에서 본문을 살펴봐야한다. 2. 본문의 문장들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살펴보고 해석해야한다. 3. 본문은 반드시 본문의 문장이 사용하고 있는 문법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한다.(수동인지 피동인지, 현재 진행인지, 미완료 시제 인지 완료 시제인지) 4. 본문은 반드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해석되어야 한다.(예를들어, 눅15장에서 굳이 여인의 드라크마라고 한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 5. 마지막으로 본문은 반드시 성서 전체의 맥락(the unity of Scripture)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목사님 해석은 많이 벗어나 있지요?
주인은 하나님이시죠 블의한 청지기는 세상 모든사람들 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것을 내 것 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것 입니디 죽음을 앞둔 청지기는 주인(하나님)의 것을 나누어 주는 지혜로운 종이 되어 구원에 이르는 말씀 입니다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고 재물 모두가 하나님의 것 이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모두 맡기셨을 뿐 입니다 주는 지혜로운
오늘날 교회들은 선한 청기지가 되자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해고당한 불의한 청지기이며(창3),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더 많은 불의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달은 자만이 친구되신 예수가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 은혜에 감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지혜인 것이다. 그런데 소위 빛의 아들들(본분 속 바리새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선한 청지기라고 자처하며, 자신들의 성실함으로 자신들의 불의를 덮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겐 친구의 은혜가 필요 없다. 마치 바로 앞장에 등장하는 맏아들이 자신의 성실함으로 자신의 불의를 덮으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작은 질문에 설교순서까지 바꿔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목사님!~^^
저는 청지기의 불의에만집착했는데
관점을 바꿔 우리가 모든 것을 잃게될 때,죽을 때를 생각하며 그 때를 준비하며 사는 것에 대한 지혜를 얻게되어 기쁨입니다 ^^
질문해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마음껏 질문해 주셔요 제가 아는 한 성실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언제 내려놓아도 내려놓아야 할 그것만을 생각하며 이전투구하는 것들을 다시한번 생각하게되었읍니다.
지금부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내 삶의 끝, 즉 종말에 대해서 지혜롭게 행동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일이 또 있을 것이라며 오늘을 흥청망청 살고 있지만 내일은 우리에게 약속된 날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고 외치지만 늘 내일이 올 것으로 착각하며 오늘을 깨어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서 마지막 때에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각성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 대한 귀한 강론에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 기가 막힘니다. (극한 좋은 표현) 요즘은 보고,들은 말씀들을 묵상하니 행복한시간이 길어 지네요. 또한 목사님의 새로운 동영상을 보고 들을때는 설레임이 생기네요...
이렇게 응원해 주시니 더욱 더 말씀을 잘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설교말씀 고맙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ㅎㅎ
저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목사님 말씀이 너무 귀하게 들립니다
좋은말씀 잘 배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아멘
저도 아멘입니다
아멘입니다. 말씀에 은혜가 충만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절대 잃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나라! 본질을 붙잡고 살아가는 믿음으로 채워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목사님, 감사드려요❤ 두 분의 삶이 예쁘고 아름답고 찐텐이여서 저의 마음 깊숙히 훅~ 들어왔어용 ^^
저 또한 감사드립니다 ㅎㅎ
저도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질 않아서 성경책에 퀘스천마크를 해두었었는데ᆢ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저 또한 기쁩니다
허당보다가 구독 좋아요
눌렀어요^^
감사합니다
저두요^^❤❤❤😊😊😊😊😊
늘 은혜를 받습니다. 목사님........!!!
힘이 되는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ㅎㅎ
아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
눅16장
불의한 청지기 비유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니 ~~~
오직예수 오직성령으로 영생을 ~~~
※기초질서를 지키면 미래가 보인다. ※
인천 계양구 임학사거리 조형돌~~~~ . ♡
감사합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비유는 1절에 보시면 제자들을 깨닫게 하시려고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 하고 계십니다
3절의 청지기는 해고 된 후 자신의 살아온 삶을 뒤돌아 보면서 그토록 인자 하시던 주인이 왜 나를 매몰차게 해고를 했을까 하고
자신에 대해서 주인이 생각하는 불의가 무엇 인지를 생각하고 깨닫게 됩니다
아 내가 주인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내 마음으로 살아 왔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4절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5절 주인에게 빚진 자를 불러다가 6절 기름 백말은 오십이라 쓰라 하고 7절에는 밀 백석을 팔십이라 쓰라 합니다
위 말씀의 의미는 주인은 자기에게 빚진 자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탕감의 의미는? 방탕한 삶에서 돌이키게 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름과 밀을 탕감 해 주는 의미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으로 대신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탕감 해 주시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많은 죄를 탕감 받았습니다
이것이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아난 것인데요 곧 거듭남을 의미 합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새 사람으로서 청지기인 것인데요 9절에 불의한 재물은 (사악한 자 ,악한 자 란 뜻임) 자신의 의 곧 율법의 의로
살아가면서 자신 만의 삶을 살아 가는 자를 말씀 합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의 의미는? 친구의 의미는 친구는 히브리어 필로스 입니다
필로스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요 불의한 청지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사귐을 가질 때 자기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율법의 의로는 죄인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진리 로만 죄에서 탕감 받고
구원에 이른 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을 비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사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롭게 일을 처리한 불의한 청지기를 8절 에서 주인이 칭찬을 한 것입니다!
좋은 말씀을 해 주신 목사님의 말씀에 누가 되지 않을까 생각 하면서 글을 올립니다!
온전하신
목사님들
홧팅입니다
허당 그레이스 님 체널을 통해 아재 개그 보며 원 없이 웃다가 목사님을 알게 되어 목사님 말씀 동영상 1.75배속으로해서 스트레이트로 초집중 듣고 있는 중입니다.
목사님 반갑습니다.^^ 바른 말씀 감사하고요. 아재 개그에 넘나 웃는 것 보면 제 나이가 짐작 되시죠?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관한 목사님 설교 말씀 잘 헤아려 들었어요.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한 계단 한 계단 쉽게 잘 설명해 주셔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콕 박히네요. 오늘 불의한 청지기 말씀도 누구나 땅에서 해고당한다는 표현 너무 와 닿았어요.
결국, 땅에서 해고 되는 날을 대비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한다는 말씀 잘 새겨들었습니다. 저 역시 질문하신 분처럼 고민하면 읽었던 본문이었는데, 너무 설명을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저는 본문 9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신 말씀이 핵심 아닐까, 생각하며 읽었어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일이 곧 예수님과 사귀는 일로 말이예요.
재물은 불의한 것이지만, 그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일(예를 들어 물질로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구제하는 일. 비유에서 불의한 청지기가 빚을 탕감해 준 일)이 우리가(교회가) 이 땅에서 해고당하는 그날,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로 영원한 생명의 처소로 인도하신다는 의미로 묵상했어요.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다른 본문에서는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라고도 하셨고, 한 부자 비유에서는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는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다.”라고 베푸신 비유와 연관 지어 묵상해 보았어요. 유독 누가복음 본문에 재물(재물사용)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성에 관해 하시는 말씀이 많은 것 같아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언).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전도서) 하신 구약 말씀들도 생각나네요.
암튼,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결국 내가 가진 불의한 재물(주님께서는 재물의 속성을 불의로 단정하시네요.)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땅에서 해고당하는 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처소로 인도해 준다는 비유로 묵상해 보았답니다.
좀 간단히 정리해 보면, 주님의 제자 된 청지기인 성도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니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묵상했어요. 세상의 불의한 청지기도 주인의 재물을 지혜롭게 주인이 기뻐하시는 일(작은자를 구제하는 일, 사랑하는 일)에 사용했는데 말이지요.
묵상하신 바를 이렇게 함께 나눠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혜로운 말씀 입니다 ㅎㅎ 😊
마치... "쇼생크 탈출" 의 듀프레인이 감옥에서...
지혜를 발휘해 교도소장의 회계장부 머니 💰 를 본인 계좌로 돌린후...
무사히 탈. 출 .해 ...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천국의 소망을 이뤘듯이...... 말입니다 ㅎㅎ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ㅎㅎ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헤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청지기는 그 당시 관행처럼 시행된 과도한 이자를 제자리로 돌린 것 뿐이지, 그것이 근본적으로 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청지기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 해고를 당해 쫓겨나게 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청지기는 지금 자신의 형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던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다. 비유 속 청지기가 청지기 자리를 잃는 것은 우리로 말하자면 결국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해고를 당하는 것이고, 우리가 평생 동안 노력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청지기가 청지기 자리를 내려놓아야 하듯이 우리도 삶 자체를 내려놓아야 한다. 잠시 머물면서 수단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들이 어느 순간 목적으로 둔갑되는 것이 심각한 것이다. 우상 숭배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우리를 영접할 친구 즉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근원적으로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집중하는 삶의 자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거나 맞아주지 못하게 되는 바로 그런 순간이 온다는 생각을 늘 해야 하고 이를 지혜롭게 준비해야 한다. 모든 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짐을 정리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나그네처럼 준비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 버릴 그 순간을 우리는 준비하고 있는가?
이제 곧 인생의 자리에서 해고될 우리에게 우리의 친구 되신 그 분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오늘도 귀한 하나님 말씀으로 권면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제 아내에게 유튜브하나교회 채널을 권했더니, 아내는 허당그레이스 채널을 저에게 권하네요. ㅎㅎ 두 분의 말씀과 삶이 하나 되는 모습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셔서 많은 은혜 받습니다. 덕분에 저희 부부도 새로운 결혼을 한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저희 부부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ㅎㅎ
귀하와 이 영상의 제작자 분은 누가복음 16:9의 친구를 예수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한글성경의 단수 "친구"와 달리 모든 영어성경과 원어성경은 복수 "친구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친구"를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하고 본문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해석한 것은 매우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 해석의 중심은 누가복음 16:13에서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여 빛의 아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아들인 불의한 청지기도 빛의 아들인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도 모두 돈을 좋아하는데
"하나님과 재물의 둘다 섬길 수가 없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는 것을 죽음으로 해석하건 개인파산으로 해석하건 상관없지만
"확실한 불행이 그에게 예고되어 있다"는 것을 그 청지기는 깨닫고 "여기에 대비하여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결론적으로 그 불의한 청지기는 모든 재물이 불의한 재물로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자신은 청지기로 어려운 자들에게 탕감하는 태도로 그들을 도와줘 그들을 친구들로 삼아서
그가 청지기에서 해고된 이후의 삶을 그 친구들에게 도움받아 안락하게 살게 되도록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 불의한 청지기가 빛의 아들보다 더 지혜롭게 여겨졌던 것은 불의한 재물을 사용하여 자선을 베품으로 친구들을 만들고 그 자선을 받은 자들이 그를 친구로 영접하게 했기 때문이고
빛의 아들은 불의한 재물로 그들끼리 즐기고 살아가고 이 세상에는 자선을 베풀지 않아 이 세상에서친구들을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바탕에는 빛의 아들이지만 재물을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려는 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초림 당시 빛의 아들의 대표적인 표상은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들입니다.
오늘날에는 빛의 아들이 목사, 신학자, 장로, 권사, 집사 등으로 불리겠죠.
예수께서는 빛의 아들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 하고 있기 때문에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로 따끔하게 훈계한 것입니다.
주안에서 언제나 영원히 평안하세요.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목사님과 비슷하게나마 유추하여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말씀으로 더 깊이 깨닫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깨어있으신 분이군요 감사합니다
누가복음(16:1~13)
청지기는 평소에도 주인을 속였고 해고 당할때도 자기 유익을 위해 채무자들의 빚을 조작했다.
(8절) 그럼에도 주인은 오히려 그가 슬기롭다고 칭찬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
* 청지기같은 사람들이 진짜 지혜롭다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권세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구원받은 의로운자)보다 더 잔꾀를 부린다는 비꼬는 비유임.
(쉬운성경은 “[자기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빛의 자녀보다 더 슬기롭다” 인데, 자기 욕심 추구를 위해 온갖 술수를 내는 것이 묵묵히 정직한 의로운자보다 꾀가 많다는 의미임)
(9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 거짓된 재물(부정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사귀면 결국 멸망으로 가게됨을 설명함.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는 말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는 말과 비슷한 분위기이므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됨. ‘그들이’는 불의의 재물로 사귄 친구들을 말하는데, 그 인간들이 구원할 능력은 없으므로 결국 나쁜돈으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 옮다고 여겨짐. - 부자/나사로 이야기도 부자는 영원히 죽지않는 멸망의 처소에서 영주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표현으로 하면 “그렇게 술만 먹어봐라! 결국 병에 걸려 죽는다”는 방식의 표현임)
(11절)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 “~ (바르게) 충성하지 않으면~” 으로 (바르게)가 빠져있음. 즉 (이미 설명한) ‘불의한 재물’ 사건의 경우에도 이 청지기처럼 살지 말고 바르게 충성하지 않으면 누구도 아무것도 맞겨지지 않을 것임을 말함.
(풀어서 표현하면 “불의한 재물의 경우에도 욕심을 위해 꾀부리지 말고, 바르게 충실하지 않으면 누가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절) “너희가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 일꾼이 남의 것(주인의 것)에 충성해야 너희의 것(급여)를 받지 않겠느냐!
(13절)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두 주인은 안되듯이 하나님도 다른 것과 함께 섬기는 것은 안됨. (청지기처럼 속이면서 자기 인생을 추구하지 말고, 피조물인 인간은 오직 인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한분만 바로 섬겨야 함)
(잠깐 지나가는 세상에 대한 욕망(욕심)으로 하나님께 돈/건강/명예/출세 등을 요구하는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섬기는 것이므로, 오직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고 자신을 이끄심을 믿고 주시는 현재상황에 순종하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가시기를 기도하며 진리의 말씀따라 의의길을 인내하며 가고, 세상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두고 거룩하게 사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시고 구원해 주심을 깨닫게 됨)
이 비유와 관련된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려 합니다. 비슷한 학교에서 다 가르침을 받았을거고,,, 아직도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보고 또보고 과한해석들은 아닐지,,, 넘 어려운 부분이면서 솔직히 잘모르겠다고 고백하는 목사님도 계시네여,,, 목사님의 설교는 그동안 저의 의문과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느낌이고,,, 이땅의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무시하는 설교 즉,,, 어려운 내용이라서 그냥 보편적인 그문구에만 집중하고 앞뒤 맥락은 통으로 날리시는 설교를 해오고,, 저희는 그저 앉아만 있었던거 같아서 충격이었습니다. 열심히 듣고 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좀 궁금했던 부분을 쉽게 설명해주셔서요. 그런데 여태 쉬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요. 왜 영어성경의 'worldly wealth'를 '세상에서 얻은 부'라 하여 부에 대한 중립적 관점으로 옮기지 않고 '불의한 재물'이라 하였는지요? 지엽적인 것이지만 이러한 번역이 부에 대한 부자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조장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어서요.
며칠전부터 하나교회에서 풀어주시는 말씀에 접하고 있습니다. 많은 공감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조심스럽게 여미어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시청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드리자면 '불의한 재물'이란 말은 헬라어 원어 '아디코스' 아(부정 접두어) + 디코스(올바름) 의 번역입니다
영어성경에는 이를 worldly (세속적인) 으로 번역을 했고, 한국어 성경은 '불의한'으로 번역을 한 것이죠
질문해 주신 뜻은 알겠으나, 원어 자체가 '불의한' 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고 영어의 worldly 또한 중립적이기 보다는 '영적이지 못한' '세상적인'.. 뭐 이런 뉘앙스이니 한국어 성경의 '불의한' 이란 번역은 잘못된 번역은 아닌 것이죠..
물론 성경에 부정확한 번역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가능한 다른 많은 번역본을 참조하여 함께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 주시는 것은 더욱 좋은 태도입니다 ㅎㅎ
정성깃든 답글 감사합니다
목사님!
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고린도전서14장에 방언과
예언에 대한 말씀에 대하여 바울사도가 어떤 의도에서 말씀하신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요즘 유트브에 방언에 대한 수많은 내용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방언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가능하시면 방언대하여 자세히
유트브 설교를 부탁드립니다.
늘 은혜의 말씀을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엣세네파에 관한 이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빛의 아들들, 불의한 재물, 이러한 표현은 다 엣세네파의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 빗대어 그들의 모습을 풍자하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의 삶과 비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인과 청지기는 세상의 자녀일 뿐이며 빛의 자녀와 구별됩니다. 불의한 재물로 어려운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비유 아닐까요?
영어가 되시는 분들은 ruclips.net/video/YV88EHQwWd4/видео.html 영상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기본적으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셨지만 거기에는
바리새인들도 듣고 있었고 그 바리새인들을 위해서도 또 다른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죠.
16장의 청지기 비유를 적어도 15장과 연결시켜서 생각하셔야 하고
또 더 나아가 누가복음에서 저자가 예수의 비유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16장의 이야기를 보아야 하는데
목사님은 달랑 그 본문 하나만 가지고 말씀을 하시니까
많은 오해가 발생하는거 같습니다.
개인 적으로 아멘 하시고 보시는 분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년전 방언은사 받고 묵상 중에 제게 온 깨달음입니다. 이 세상 법으로는 청지기는 배임죄에 해당합니다. 근본적인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인 즉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것이 위치이동 한 것이고 빚진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기에 하나님은 칭찬한 것입니다. 내것은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진정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점검해야할 것 같습니다.
목회자로서 목사님 말씀을 대하고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8절과 9절을 반어법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절의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비꼰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친구 참 영악하네..." 라고 보면, 9절도 이해가 갑니다.
9절: "불의한 청지기 같이 불의한 돈으로 친구사궈봐라,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대로, 자기를 그들의 집에 들여서 죽을때까지 먹여 살려주지 않는다" 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한 것은 다시한번 비꼬는 투로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해봐(그런식으로 친구 사궈보라), 그러나 절대 그런 일 (불의한 청지기의 새 친구가 청지기를 자기 집으로 한두번은 영접해 대접하겠지만, 끝까지 먹여주는 일은)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10절부터13절까지가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10-13절을 설명하기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미래를 대비하라는 메세지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바로 앞의 돌아온 탕자같이 불의한 청지기도 회개하고 주인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14절에 비웃었다고 나옵니다. 이 비유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같은 자리에 있는 (15장 1절에서 계속된 말씀이므로) 바리새인들 들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10절이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고자 한 이야기입니다. 미래와 종말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제 생각입니다.
말씀은 좋은데 너무 너무 빨라서 조금더 침착하게 안정된 평온한마음의 설교가 듣고싶네요
빠른세상에 느림의 미학이 그리워집니다
편집할 때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를 주인이 왜 칭찬 했는지 그리고 불의한 제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 뭔지 구체적
해석이 없네요
적어도 성경(또는 성서)를 해석할 때 기본이 되는 다섯가지
1. 본문을 둘러싸고 있는 문맥에서 본문을 살펴봐야한다.
2. 본문의 문장들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살펴보고 해석해야한다.
3. 본문은 반드시 본문의 문장이 사용하고 있는 문법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한다.(수동인지 피동인지, 현재 진행인지, 미완료 시제 인지 완료 시제인지)
4. 본문은 반드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해석되어야 한다.(예를들어, 눅15장에서 굳이 여인의 드라크마라고 한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
5. 마지막으로 본문은 반드시 성서 전체의 맥락(the unity of Scripture)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목사님 해석은 많이 벗어나 있지요?
말씀에 대한 적용은 훌륭하지만 여전히 청지기의 불의한 행동에 대한 명쾌하고 납득할 만한 강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역시 난해 구절인 것인가요?
주인은 하나님이시죠
블의한 청지기는 세상
모든사람들 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것을 내 것 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것 입니디
죽음을 앞둔 청지기는
주인(하나님)의 것을 나누어 주는 지혜로운
종이 되어 구원에 이르는 말씀 입니다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고 재물 모두가 하나님의 것
이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모두 맡기셨을 뿐 입니다
주는 지혜로운
16장 10절부터 18절까지가 중요한데 이 부분을 언급을 안하셨네요. 반쪽짜리 해석입니다.
난해한 구절이긴 하지요.
예수님이 왜 16절 말씀을 하셨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오늘날 교회들은 선한 청기지가 되자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해고당한 불의한 청지기이며(창3),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더 많은 불의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달은 자만이 친구되신 예수가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 은혜에 감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지혜인 것이다. 그런데 소위 빛의 아들들(본분 속 바리새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선한 청지기라고 자처하며, 자신들의 성실함으로 자신들의 불의를 덮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겐 친구의 은혜가 필요 없다. 마치 바로 앞장에 등장하는 맏아들이 자신의 성실함으로 자신의 불의를 덮으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목사님 ㅋ 옛날에 혹시? 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하셨죠?
ㅎㅎ 아니요 그럴리가요
청지기의 해고예약을
성도의 죽음ᆢ으로 해석하시니
새롭습니다.
지혜롭게 시간을 아껴서
장차 맞이할 주님께 계산될ᆢ
상급들을 쌓아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저도 감사드립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