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기독교의 존재이유이자 출발선. 예수 정체성 논쟁이 인간 개인 정체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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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0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8

  • @dmitrybivol7486
    @dmitrybivol7486 Месяц назад

    암흑과 별.. 나라는 사람으로서 내가 보는 그리스도, 인자의 아들. 신의 시나리오..
    나. 지금이라는 창조력과,
    세상. 현실이라는 아버지의-이름과,
    신. 영원, 이 우주의 암흑의 무한력과 별, 그리고 다음 우주에 대한 짐작..
    빛이 무한하겠지 하고 생각이 드네요. 지금도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그 빛으로, 야곱의 사다리로, 그 척추로 근육을 끌어모아 현실을 즐겨요. 아이처럼. 가볍게 하지만 무겁게.
    이번편 개인적으로 너무 좋네요!
    좋은 주말되세요!

    • @dnach_didasko
      @dnach_didasko  Месяц назад +1

      오 올만이시 자주오시

    • @dmitrybivol7486
      @dmitrybivol7486 Месяц назад

      @@dnach_didasko😁😁😁👍

    • @dmitrybivol7486
      @dmitrybivol7486 Месяц назад

      @@dnach_didasko
      “Through the Middle Ages, Jesus’ love created the individual and reshaped the modern West.”
      Ai한테 표어 주문해서 받았는데 어떤가요? Reshaped 가 resurrection의 중의적인 느낌도 있고.. 뭔가 멋진것같은데..
      어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랑 아침까지 진탕 술먹고 욕망의 뒷구녕에서 잔뜩 망가지다 늦게 일어났는데,
      유아기때부터, 부모와 연결되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억압한 감정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찾아들어왔요. 노크하듯, 사건도 생각도 노크하듯, 지옥도 구원도 노크하듯,
      아무튼 억압된 감정은 예수, 예수의 사랑, 그자체가 아닐까 생각들었어요. 내가 억압한 내면아이, 그 억압한 감정이 예수라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억압된 내면아이, 억압된 예수. 내면아이는 예수가 아닐까요?
      ‘예수’를 통해 숨쉬고 생각하고 살아야겠어요. 욕망의 존재들에게 내 심장이 인지부조화의 신호를 보낼때마다, 불편할때마다, 서운해할때마다, 사랑할 수 있게. 심장이 예수가 될때까지.
      욕망이 급작시에 또 나를 찾아오겠죠? 얼마나 수모를 더 겪어야 할까요. 쓸만큼 다 쓴 것 같은데 영원히 샘솟는 부처럼 썻다하면 채워지고 썻다하면 채워지고 ㅋㅋ. 빌어먹을 대상a..
      제겐 예수가 답이네요 근력이고
      거지인 욕망을 행복과 자부심으로 변환시켜주는 야곱의 사다리

    • @dnach_didasko
      @dnach_didasko  Месяц назад

      ruclips.net/user/shortsn33E_O5oE6Y?si=4LVRXezaAfySO_nJ
      안그런척 쟤들 넘 웃김

  • @주영이아빠-r5z
    @주영이아빠-r5z Месяц назад

    영상 속의 화자는 본인이신가요? 어떤 분이신지 간략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 @한마음-v7w
    @한마음-v7w Месяц назад

    김국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