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낙산리 삼층석탑만 알고있는데, 지리와 풍속에 관한 설명을 곁들이니 전혀 다른 뜻으로 다가오네요. 신라불교의 발원지이자 신라불교의 성역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찌보면 불교는 외국에서온 외래종교이고 그 결과 신라토착민들이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거이고, 그래서 신라의 본거지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낙산리에서 정착을 한 다음, 조금씩 수백년을 걸쳐 낙산리 일대를 중심으로 전파되가면서 불교중심의 종교도시가 되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정착하고 살아가고 생업을 유지하고, 불교식 제사와 안장을 하는 곳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많아 쓰는데 강감찬 장군은 진주 강씨라 표현해도 맞고 금천 강씨라 표현해도 맞습니다. 원래 강감찬 장군은 진주 강씨 인물이 맞으나 워낙 나라에 대단한 공을 세웠기에 그를 파조로 삼고 금천 강씨로 새로운 파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니까 진주 강씨의 인물로 태어나 금천 강씨의 파조가 된 경우죠
구미 자체가 조령 화령 추풍령으로 가는 길목이죠 지금의 3번국도따라서 선산을 지나 김천 상주 문경으로해서 아달라왕때 뚫은 하늘재로 혹은 구미에서 25번국도를 따라서 상주 화령을 지나 보은으로 하나는 4번국도를 따라서 김천으로 해서 추풍령으로 넘어갈수있는 북진루트중 하나가 구미와 선산이죠
금오산 도선굴 안에 금고가 버려져서 몇 년이나 그대로 있었습니다. 2년 전까지도 그대로 였는데 전에 굴 안쪽에 불상을 모시고 촛불켜놓은 옆에 놓였던 불전함 용도였을 겁니다. 듣기로는 무속인이 차려놓은 거라던데 불상이나 촛불. 그리고 좌대 등은 철거됬더군요. 하지만 금고는 부서진 채로 버려져 있었어요. 시청 시의원 관리사무소 그 누구도 금고를 안보거나 못보거나 관심없거나 치운다는 생각을 안한 모양입니다. 볼 때마다 전화를 하려다 언제까지 두는지 그냥 왔는데,,, 폭포 안내판에는 새마을 운동 발상지에다가 박대통령이 쓰레기 줍는 사진이 있어요. 하루에 수백은 다녀갈떤데 참새나 토끼보고 치우라고 해야는지, 현재는 치워졌는지 모르겠네요
구미에 살아서 여기 나오는 곳들 여러 곳을 가봤는데, 구미시의 문화재세 대한 인식이 정말 처참함을 느꼈습니다. 그나마 이전 시장 장세용은 문화재로 관광을 좀 일으켜 볼까..싶어서 좀 보긴 했는데, 지금 시장은 그냥 먹고놀자 판으로 별의별 축제만 만들어서 시재정을 해먹고 있네요. 시골 논 한가운데에 있는 문화재를 보고 있으면, 진짜 구미시는 아무 생각이 없구나..싶습니다.
오 개인적으로는 일리천을 사이에 두었다, 좌중우후 4개의 집단군이 있었다, 대규모의 군대였다 등의 이유로 선산 앞 뜰로 생각합니다. 후백제는 남쪽, 고려는 북쪽에서 접근하고요 낙산리라면 낙동강이나 낙산리 가운데로 흐르는 하천이었겠지요, 전자면 동서에서 접근, 후자면 남북에서 접근. 평지 상황으로보면 양측 합쳐 1-2만의 군대가 회전을 벌일수 있을것 같습니다, 흰구름이 일었다고했는데 이를 흙먼지로 본다면 하상의 모래밭이라보고, 흰구름이 적진으로 향했다고하니 양력9월말 북풍이라 가정하면 남북으로 진형을 짰을것 같습니다🤔
오늘도 타임머신 타고 옛 땅에 잠시 머무르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한해 대단히 수고 하셨습니다 ^^
시청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그냥 낙산리 삼층석탑만 알고있는데, 지리와 풍속에 관한 설명을 곁들이니 전혀 다른 뜻으로 다가오네요. 신라불교의 발원지이자 신라불교의 성역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찌보면 불교는 외국에서온 외래종교이고 그 결과 신라토착민들이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거이고, 그래서 신라의 본거지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낙산리에서 정착을 한 다음, 조금씩 수백년을 걸쳐 낙산리 일대를 중심으로 전파되가면서 불교중심의 종교도시가 되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정착하고 살아가고 생업을 유지하고, 불교식 제사와 안장을 하는 곳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대단하십니다.!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오늘도 구석구석 우리 조상님들의 흔적의 파편들을 알게 되었네요
최대한 많이 남겨놓겠습니다😌
낙동강줄기로 생활터전 잡고 살았고 불교도 강줄기로 탑이 만날수있는 일이군요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
시청 감사드려요😌
신라-발해시대라는 표현이 너무 좋네요
앞으로 고정 용어로 사용하려합니다😌
바람쐬러 자주 가는 냉산 일대가 어마어마한 역사적 배경이 있을거라 짐작했지만 전문적인 설명이 더해져서 감회가 새롭네요. 영상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냉산이 그냥가도 참 좋지요, 전망도 그렇고 역사적으로도 그렇고요, 처음 도리사 올라갈때 과수원에 햇빛이 반사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아 이래서 도리사구나 했었지요😄
냉산의 금수굴이 황금으로 뒤덮혀 빛났다고도 하더라구요. 재밋는 이야기도 많고 냉산 임도도 재밋고 무엇보다 제가 여기저기 다녀가본 곳이 많이보여서 너무 반갑습니다.
안전하게 또 건강히 앞으로도 좋은 영상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사적돌
옛 신라 고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저도 모르게 한번 땅 파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항상 하죠 ㅎㅎ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올 한해 잘마무리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호미를 들고 부처밭골로!!!^^
ㅎㅎㅎ 저도 개인적으로 발견해봤으면 좋겠어요😄
낙산리 참 흥미롭네요. 도시화가 진행된 곳이 아니라 발굴조사에 따라서 대단한 유물과 유적들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지자체의 의지만 있다면 태조산의 문화유적은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불교유래 관련영상아라 흥미로운이라
잘보았습니다
불교가 정착되기이전의 지역이라생각이 듭니다
왕실후원이 강하고대중들이 지지를받았다면 규모크고
더욱더 왕성했기에.
또한 낙동강이주는지리적 위치때문에. 있지않을가요 고대사
나 근현대를보왔도 수로와해안지역이 선진문화를 빨리받았드
려고 발전되었지요
가야고분군이 존재한다면 신라의팽창할시기가 않이라는 생각이들곤
합니다 그리고불교관련유물이 나왔다는것은 이지역호족세력들과 함께
흉함이되었다는 생각이듭니다
신라하대로갈수록 불교가지방호족과 융합되어발전되겠어기에
늘 유익하고 역사에있어울림 되는영상이라 감사드립니다
후원해드리고 싶은데 방법은가르처주세요😊
오 마음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부담갖지 마시고 편하게 즐기시면 됩니다😄
몇년전에 가족들과 낙산리 고분군에 다녀왔더랬습니다
수십년전에 비해서 비교적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깜짝놀라기도 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고분군 사이사이를 거닐다보면 문득 옛정취에 흠뻑 빠져들곤 합니다^~^
오밀조밀한 능선에 산책하기 좋은 자리지요😄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많아 쓰는데 강감찬 장군은 진주 강씨라 표현해도 맞고 금천 강씨라 표현해도 맞습니다. 원래 강감찬 장군은 진주 강씨 인물이 맞으나 워낙 나라에 대단한 공을 세웠기에 그를 파조로 삼고 금천 강씨로 새로운 파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니까 진주 강씨의 인물로 태어나 금천 강씨의 파조가 된 경우죠
시청 감사드립니다😌
구미에도 가야유물이 나온다니 놀랍네요
전북에서도 가야유물이 쏟아지니 발굴이 많아질수록 흥미로운 역사가 나타나는듯합니다😄
구미 자체가 조령 화령 추풍령으로 가는 길목이죠
지금의 3번국도따라서 선산을 지나 김천 상주 문경으로해서 아달라왕때 뚫은 하늘재로
혹은 구미에서 25번국도를 따라서 상주 화령을 지나 보은으로
하나는 4번국도를 따라서 김천으로 해서 추풍령으로 넘어갈수있는 북진루트중 하나가 구미와 선산이죠
7세기까지 번성한걸로봐서 딱 신라의 확장과 맞물린듯합니다🤔
@@사적돌 신라가 죽령을 넘는데 500년걸렸다고했으니.
구 조령인 하늘재와 추풍령은 진작에 넘었죠.
안동 영양에 전탑이 많은데
이 전탑이랑 모전석탑이 충북 북부까지 올라가죠
영양도 찍어와야되는데 너무 멀어서 못가고 있습니다😅
차타고 20분 거리인데 한번 가봐야겠네요
오 즐거운 답사되시길 바랍니다😄
금오산 도선굴 안에 금고가 버려져서 몇 년이나 그대로 있었습니다. 2년 전까지도 그대로 였는데 전에 굴 안쪽에 불상을 모시고 촛불켜놓은 옆에 놓였던 불전함 용도였을 겁니다. 듣기로는 무속인이 차려놓은 거라던데 불상이나 촛불. 그리고 좌대 등은 철거됬더군요. 하지만 금고는 부서진 채로 버려져 있었어요.
시청 시의원 관리사무소 그 누구도 금고를 안보거나 못보거나 관심없거나 치운다는 생각을 안한 모양입니다.
볼 때마다 전화를 하려다 언제까지 두는지 그냥 왔는데,,, 폭포 안내판에는 새마을 운동 발상지에다가 박대통령이 쓰레기 줍는 사진이 있어요.
하루에 수백은 다녀갈떤데 참새나 토끼보고 치우라고 해야는지,
현재는 치워졌는지 모르겠네요
오 왜 내버려뒀을까요🤔
구미에 살아서 여기 나오는 곳들 여러 곳을 가봤는데, 구미시의 문화재세 대한 인식이 정말 처참함을 느꼈습니다.
그나마 이전 시장 장세용은 문화재로 관광을 좀 일으켜 볼까..싶어서 좀 보긴 했는데, 지금 시장은 그냥 먹고놀자 판으로 별의별 축제만 만들어서 시재정을 해먹고 있네요.
시골 논 한가운데에 있는 문화재를 보고 있으면, 진짜 구미시는 아무 생각이 없구나..싶습니다.
후삼국관련, 불교관련 유적이 많으니 중심주제를 잡으면 관광상품화하기 좋을것 같네요🤔
구미가 공단성장논리에 묻혀 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낙산리 고분군 주변으로 고분군이 더 있었군요. 산을 가로질러 있길래 설명을 들으니 완벽히 이해가 됩니다 😊
강변 능선 전체가 고분군일줄은 몰랐어요, 평지는 유물산포지고요😮
구미는 아직 가보지못했네요 ㅎㅎ
구미에 은근 답사지가 많네요😄
@@사적돌 근처 선산읍이 후백제 최후의 전투장소죠
아도화상. 구미 도리사가 신라불교 초전지죠.
죽장리 있는 국보 130호
산너머에 초전지, 강너머에 죽장리 😄
선생님같은분께서
만주와 이북지역을 여행한다면
많은 고구려 연구를 알수있을텐데요 ㅠㅠ 너무 안타깝습니다.
만약 전업할수 있게되면 중국에서 최대한 오래 머무르면서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찍어오고 싶지요, 그다음에는 중앙아시아로 넘어가고요😄
후삼국 통일전쟁 최후의 전투인 일리천 전투도 구미 일원의 낙동강에서 이뤄졌죠. 구미도 역사가 깊은 도시입니다.😊
조만간 일리천 전투 영상도 올라갑니다😄
@@사적돌 괜히 스포(?) 한 거 아닌가요? 기대가 큽니다. ^^
오 아닙니다, 밝혀진 사실이 거의 없어서 간략한 소설을 쓰려고합니다😅@@공햇님
아도와 아유타 가 관련있을 가능성은?
어디선가 백제사서가 나와주기를 바랍니다🤔
저도 저 낙산의 해평리 탑을 4년 전에 답사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곳이 일리천전투의 현장이라 생각하여 그 탑이 마치 경관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했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울런지요?
오 개인적으로는 일리천을 사이에 두었다, 좌중우후 4개의 집단군이 있었다, 대규모의 군대였다 등의 이유로 선산 앞 뜰로 생각합니다. 후백제는 남쪽, 고려는 북쪽에서 접근하고요
낙산리라면 낙동강이나 낙산리 가운데로 흐르는 하천이었겠지요, 전자면 동서에서 접근, 후자면 남북에서 접근.
평지 상황으로보면 양측 합쳐 1-2만의 군대가 회전을 벌일수 있을것 같습니다,
흰구름이 일었다고했는데 이를 흙먼지로 본다면 하상의 모래밭이라보고, 흰구름이 적진으로 향했다고하니 양력9월말 북풍이라 가정하면 남북으로 진형을 짰을것 같습니다🤔
미추왕때랑 눌지왕때의 아도는 아마 동명이인의 다른 승려같습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태조산 도리사에는 부처님 진시사리가 모셔져 있어 적멸보궁이라 칭하기도 하는데요.. 몇 년전 참배 차 들렀던 곳입니다. 마을 이름 '해평'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아늑한 마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생님의 답사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그렇습니다😌 해평 마을이름이 참 예쁘네요😄 시청 감사드립니다
박정희김재규의 고장
시청 감사드립니다😌